위기의 삼성전자…싸늘한 여의도 (서영태 연합인포맥스 기자) | 경제ON 취재파일 

 

[위기의 삼성전자, 전문가 진단] [1] 진대제 前 삼성전자 사장

입력 2024.10.15. 01:24업데이트 2024.10.15. 14:42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인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회장은 삼성전자 위기론에 대해 “관료화되고 느슨해진 조직 문화가 고착화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삼성전자가 위기론에 휩싸여 있다. 외부뿐 아니라 안에서도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 대표 기업 삼성의 위기는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고용·세수 등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삼성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찾기 위한 전문가들의 연쇄 인터뷰를 싣는다.

◇경영·실무진 모두 세계 1등이어야

“1990년대 초 삼성 반도체가 세계 1등이 된 후에도 삼성전자에는 벤처 기업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사장부터 과장까지 100명이 모여 치열하게 토론하고 해법을 찾아내 밀어붙였다. 세계 1등이 된 지 30년이 지나면서 조직이 관료화되고 느슨해졌다.”

세계 최초로 16MB, 256MB D램 개발을 이끌며 삼성전자 반도체를 세계 1위에 올려 놓은 진대제(72)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이하 스카이레이크) 회장(전 삼성전자 사장)은 11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위기의 원인으로 가장 먼저 조직 문화를 꼽았다. 그는 “세계 1등이 되려면 경영진부터 실무진들까지 모두 각자 세계 1등이어야 한다”며 “그렇게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분위기가 삼성에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고 했다. 진 회장은 삼성이 글로벌 무대에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1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족쇄도 풀어줄 때가 됐다고 했다.

-삼성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명실상부 세계 1등 기업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삼성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뭐가 문제인가?

“1993년 삼성전자가 반도체 1등이 됐다. 미국에서 연구하던 선배가 삼성에 와서 놀라더라. 1등 기업인데도 벤처 회사 같은 분위기라는 것이었다. 회의를 하면 경영진부터 과장급까지 100명이 모여 회의한다. 그 자리에서 사장이 과장한테 직접 묻기도 하고, 치열하게 토론했다. 모든 사람이 소통하면서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세세한 내용까지 공유했다. 결론을 내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고 나갔다. 실패하더라도 그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치열한 회의 문화와 정보 공유 분위기, 추진력이 없어졌다. 한마디로 관료화됐다.”

-진대제, 황창규, 권오현 같은 사람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설계부터 공정 개발, 양산까지 모든 반도체 생산 체계를 꿰뚫고 있었다. 이들을 일명 ‘핵심코어그룹’으로 불렀다. 20~30명의 핵심코어 멤버는 매주 수요일마다 기술회의를 했다. 3시간 회의는 기본이었고, 1000번 넘게 이어졌다. 문제가 터지면 핵심코어 인력이 단계별 책임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주재하면서 해결했다. 문제는 설계 하나가 잘못돼서 생기는 게 아니라, 양산 단계까지 복합적으로 연관돼 있다. 그런 일이 수시로 터지기 때문에 핵심코어그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핵심코어 인재만 노리고 스카우트하자, 삼성은 2000년대 이후에는 한두 사람이 모든 문제를 알지 못하도록 조직 구조를 바꿨다. ‘기술 통합 정책’에서 ‘기술 분산 정책’으로 경영 방침을 바꾼 것인데, 실책이었다고 본다.”

- 핵심코어 인재는 어떻게 양성했나.

“스탠퍼드대학이나 실리콘밸리에서 박사급 인재들을 경력직으로 끌고 오거나 공채 출신 중 능력 있는 사람들을 뽑았다. 1년에 한 번씩 승진시키면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인센티브를 확실히 줬다. 개개인의 능력이 예전보다 못하다고 보지 않는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기술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체를 볼 수 있는 핵심 인력이 예전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세계 1등이 되려면 경영진부터 실무진들까지 모두 각각 세계 1등이어야 한다.”

22년 전 진대제와 이건희 - 진대제(맨 왼쪽) 스카이레이크 회장이 삼성전자 사장을 맡고 있던 2002년 7월 이건희(왼쪽에서 둘째) 당시 회장에게 디지털 신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삼성전자

- 일하는 분위기가 느슨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 52시간 근무제 영향이 컸다.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있어도 사람이라는 게 점점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국가적으로 법까지 만들어 정해진 근로시간을 넘어가면 처벌한다는데 어느 회사, 어느 직원이 열심히 할까. 결국 국가 전체 연구개발(R&D) 기능이 약해졌다. 삼성전자라고 예외일 수 없다.”

-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는 것이 버거워 보인다.

“우리가 그동안 삼성전자에 1등 기업이라는 족쇄를 걸었던 게 원인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TSMC의 경우 대만에서 호국신산(護國神山·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이라고까지 부른다. 대만 국민은 TSMC에 애정을 표현하고, 정부나 사회에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노조도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삼성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지탄의 대상이 된다. (삼성은 이미) 많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 파운드리 사업 우려가 많다.

“삼성이 파운드리까지 1등을 하기에는 무리다. 메모리를 잘하고 있는데 첨단 파운드리까지 다 잘하겠다고 하면 누가 지켜보기만 할까. 독과점 체제로 가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파운드리 사업은) 분리하거나 포기하는 게 낫다. 파운드리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1000억달러(약 135조원) 수준인데, 거기서 TSMC가 60%가량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패키징과 같은 후(後)공정이 더 커질 것이다. 파운드리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 각국에서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푸는데.

“삼성이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보조금 줄 필요는 없고, 세제 혜택 정도면 충분하다. 미국은 반도체산업이 없으니 보조금을 푸는 것이다. 차라리 반도체 인력 확보를 위해 공대생들이 늘어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해야 한다. 지금은 인재들이 의대로 가거나 공대로 오더라도 소프트웨어나 플랫폼 기업으로 향한다.”

진 회장은 인터뷰 이튿날일 토요일(12일) 이른 시간에 다시 전화를 걸어와 “못한 말이 있다”고 했다. 대부분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였다.

- 과거 이건희 회장 때도 위기는 있었다.

“그럴 때면 이건희 회장은 조직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불시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경영진에게 전화하니 경영진은 긴장하면서 살 수밖에 없고, 조직 전체가 긴장했다. 이건희 회장은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삼성을 좌지우지한 것은 기술자가 아닌 사람들이다. 인텔이 느슨해지기 시작한 것도 2000년대 초 기술자였던 앤디 그로브가 떠난 뒤 재무통들이 오랫동안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이후다. 이번에 삼성전자가 톱다운 방식으로 기술을 중시하겠다고 했으니 기대를 걸어봐야 한다. 실패를 용인해주는 회사 분위기도 필요하다.”

◇삼성 시총, 미국이었다면 지금의 2배

- 삼성 내에서 리더십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

“이건희 회장이 계시다면 신경영을 통해 혁신해야 한다며 그룹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하며 정신 차리게 할 것이다. 회사는 총수의 생각에 따라 기업 문화가 만들어지고 움직인다. 그런데 지금처럼 총수(이재용 회장)가 사법 문제에 발목이 잡혀 침울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떻게 일에 집중할 수 있겠나. 정부는 총수가 스스로 경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이재용 회장은 국정 농단 사건으로 2016년부터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1년 가까이 구속됐고, 현재 삼성그룹 부당 합병 사건으로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 우리 사회가 삼성을 위해 해줘야 할 것은?

“가만히 놔두면 된다. 정부가 도와줄 것도 없다. 분기에 9조원 이익을 냈으면 많이 번 것이다. 위기가 있는 것처럼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니 시가총액이 300조~400조원에 그치는 것이다. 미국 기업이었다면 벌써 시총 두 배 이상은 됐을 것이다.”

☞진대제

1980~1990년대 세계 최초로 16MB, 256MB D램 개발을 주도하며 삼성전자 반도체가 세계 1위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휼렛 팩커드와 IBM 연구원을 거쳐 1985년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부문 상무 등을 거쳐 디지털미디어총괄 대표이사를 지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생전에 “삼성에 아쉽게도 천재는 없지만 준천재가 3명 있다”고 했는데, 진 회장과 황창규 전 KT 회장, 이윤우 전 광주과학기술원 이사장이었다. 현재 국내 사모 펀드 운용사인 스카이레이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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