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릉 도 원 기 (武 陵 桃 源 記)

                                                                            도 연 명 (陶 淵 明)




                                                                  화창한 봄날

 

무릉에 사는 한 어부가 


여느 때처럼 배를 저어 산골짜기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물고기를 잡다보니, 골짜기를 지나 얼마나 왔는지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한참을 헤매다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그윽히 풍겨오는 향기에 취해 배를 저어가니,

 

 마침내 골짜기는 좁고 산이 앞을 가로막아 배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골짜기사이로 조그마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는 희미한 빛이 있는 것같이 보였다.
 
어부는 배를 매어놓고 구멍으로 들어가니  처음입구는 지극히 좁고,

 

한 사람이 겨우 들어 갈만하던 굴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넓어지더니, 이내사방이 환한 넓은 세상이 나타났다. 

 

 

부신 눈을 비비고 바라보니, 산에는 다른 나무라고는

 

한그루도 없는 온통 복사꽃 수풀이요,

 

새소리와 도원일색의 너무나도 곱고 향기로운 경치였다. 

 

 


 어부는 한동안 넋을 잃다 복숭아나무 숲 언덕으로 올라보니,

 

땅은 끝없이 넓고, 집들은 즐비하게 늘어섰으며,

 

멀리 가까이 호수사이로 기름진 논밭과 굽이치는 강변을 따라

 

복사꽃 숲 사이로 차밭, 뽕나무,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닭소리, 개소리가 들리고 누렁소와 논 밭일을 하는 사람과

 

마을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타국사람 같은 옷을 입었으며,

 

백발의 노인이나 어린이나 여자나 남자나 모두 즐거운 듯 웃는 얼굴이었다.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는 어부를 발견한 그곳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 놀라며, 어디서 온 사람인가 물었다. 


어부가 오게 된 까닭을 이야기하니, 그들은 곧 어부를 반가이 맞으며

 

어느 집으로 안내하고, 밥을 짓고 술과 닭고기를 내어 크게 환대하였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서로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 조상께서 처자와 함께 진(秦)나라 때 전쟁에 찌든 피폐로

 

과중한 세금과 부역의 폭정을 피해 멀고 험한 이곳으로 왔다가,

 

그 후로 구차하게 살며 한번도 바깥 세상에 나가지 않고 살았으므로,

 

다른 곳 사람들과는 사귀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은 어떻게 되었는지요?” 

 

 


  그들은 한(漢)나라도 모르거니와 그 뒤의 위(魏)나라,

 

 500년 후의 진(晉)나라 일은 더더구나 말할 것도 없다.
 
어부가 아는 것을 하나하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들은 혹은 놀라며 감회가 깊은 듯 들었다. 

 

 


  유방과 항우의 싸움과 생매장, 유목민 흉노와 전쟁과 공주의 시집,

 

중국에 온 불교, 삼국의 피비린내 난세의 조조와 관운장, 사마염의 진(晉)나라 이야기... 

 

어부는 이집 저집으로 초대를 받아, 향긋한 음식과 술을 대접받고 지내는 동안

어느 듯 며칠인줄 모르게 지나갔다. 


 
오래 머물러 달라 붙잡는 마을사람들과 간신히 돌아가는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마을을 나와 배를 매두었던 곳에 이르러

 

선물로 받은 복사꽃을 잔잔한 강물에 뿌리며 흐르는 꽃잎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을 나올 때 촌로가 말하기를 “우리 동네 이야기는 남에게는 하지 말아주시오” 하는

 

당부를 들었지만, 어부는 지나오는 길에 군데군데 표적을 남겨 놓았다.
 
집으로 돌아온 어부는 곧 태수에게 가서 자기가 보고 온 진귀한 일을 이야기하였다. 

 


 
무릉골짜기 도원향 마을의 그들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가르치고,

 

어려움에 희생을 아끼지 않았으며, 농사에 힘쓰고 해가 지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집으로 돌아와 쉬며, 기록한 달력이 없어도

 

매화꽃 피면 때를 알아 농사에 서두르며, 바람 차가와 낙엽지면

 

추수를 하고도 세금 낼 걱정도 아니 한다. 

 


 
꽃핀 후 열매 달리니 누구나 먹고, 아이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노래 부르고,

 

노인들도 역시 그렇다. 집집마다 쳐진 울타리가 없었으며,

 

자식이 성장하매 부자(父子)관계는 있어도 군신(君臣)의 차별이 없었다.

 

 

 

 따라서 욕심의 흥망도 없다. 마을을 서로 왕래하며

 

흥겨운 잔치를 즐겨하고 술을 마셔도 다툼이 없었다.
 
어부의 이야기를 듣고 태수도 퍽 흥미로워하여,

 

어부를 따라 관병을 보내어 그곳으로 가보았으나,

 

돌아오는 길에 남겨놓은 표적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고,

 

처음 갔던 길을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때 마침 남양에 사는 유자기라는 선비가 있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이상한 마을이 요순(堯舜)같은 태평성대의 평화선경(平和仙境)으로

 

알고 몸소 찾아가고 싶어 했으나,

 

수십 년 동안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 그곳을 찾으려 나루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후세 사람들은 무릉(武陵)의 도원향(桃園鄕)

 

그곳이 신선(神仙)이 사는 선경(仙境)이라고도 하고,

 

혹은 어떤 사람은 예전부터 도원을 말하는 자는 신선에 미혹한 이야기라고도 하고,

 

오직 도연명과 한유, 왕안석만이 사실이라 말하였다.

 

 

 


 

출처 : 푸른산
글쓴이 : 푸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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