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밥 한번 먹어요◈―감동♡여운글♬
얼마만이요? 우리 밥 한번 먹읍시다.!
뭐라고?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무슨 부탁을 하려고 저러시나? 세상에 '밥 한번 먹자'처럼 다양한 의미를 가진 말이 또 있을까?
단순히 밥을 먹자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마음에 들거나 친해지고 싶을 때, 마음에 빗이 남아 있을 때, 혹은 긴히 할 말이 있을 경우에 하는 말이다. 밥값이야 얼마 되지 않겠지만, 축하해 줄 때에도, 감사를 표시 할 때도 ‘우리 밥 한번 먹자고 한다.’
끼니를 함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감각과 기억 그리고 시간을 공유하며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결과적으로, 점심 한 끼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여 좋은 감정이 생기는 동기가 된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 혼자 식사를 하면 대충대충, 아무거나, 맛없이 후다닥 먹어 치우기 마련이다. 그래서 건강은 나빠지고 외로움도 한결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밥 한 끼는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행사일지도 모른다.
친구가 찾아왔는데 강남엔들 못 가랴? 그래서 마음 맞는 친구들을 불러내서 맛집을 찾아 전국을 유랑한다. 밥 한번 산 셈 치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우리는 흔히 “셈치고” 라는 말을 자주 한다. 도둑맞은 셈치고, 술 마신 셈치고, 엉뚱한 곳에 돈을 써도 이 한마디로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위안을 받는다. 남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도 “셈치고 ”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이다.
셈은 계산(計算)이다. 계산은 숫자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림대중으로 늘이거나 줄일 수는 없는 일. 숫자는 감정이 없이 매정한 것이어서 정확한 규칙과 객관성이 따른다. 그러나 셈치고는 그 반대로 “냉엄한 계산의 세계를 쉽게 얼버무리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후한 속담은 찾아보기 어렵다. 객관성보다 주관적인 기분을 중시하는 “셈치고”는 우리 사회에서나 가능한 말이다. “셈치고”라는 불합리한 말에 동의하기 않지만 지나치게 합리적인 현대문명의 야멸참을 보니 쓸쓸해진다.
고봉과 저울눈금
고봉은 순 우리말로 “수북이”를 뜻한다. 흘러내릴 것이 뻔한 대도, 쌀이나 알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몇 번씩이나 다시 퍼 올려 “고봉”으로 퍼주는 한국인의 손길이 부럽다. “셈 문화”는 비합리주의가 아니라 초 합리주의다.
저울을 다는데 눈금이 조금 오르니까 고추 한 개를 내려놓는다. 이번에는 저울 눈금이 조금 처지자, 가위로 고추를 반으로 잘라 저울에서 눈을 채운다. 이 정확성, 엄정성, 객관성, 역시 데카르트의 후예들은 고추를 팔아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그 반 토막 난 고추를 보면서 수십 년 동안 '셈 치고' 살아온 우리로서는 섭섭하고 야박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속일 때 속이더라도 고봉으로 말을 되는 재래시장의 훈훈한 인정이 새삼스럽게 그리워진다. 고봉이 아니라 수평으로 깎아도 무방하지만, 마지막까지 싹 훑지 않고 한 뼘 정도는 약간 남긴다. 야박하게 끝까지 싹 쓸지 않는 것이 한국인의 정이다.
길을 물으면
시골에서는 길을 물으면 십 리 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시골 사람들은 객관적인 길이보다 걷는 사람의 감정을 먼저 생각한다.
어차피 갈 길인데,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야 나그네는 안도를 하고 피로가 풀릴 것이다. 거의 다 왔다고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황희정승이 밭가는 농부에게 물었다. 가까운 주막이 얼마를 더 가야 나옵니까? 그러자 농부는 딴청을 부렸다. 정승 일행이 가던 길을 재촉하자 농부가 말하기를 “형씨들 보폭을 보니 한식경이면 되리다.”
그러고 보면 '좋은 게 좋다.'는 그 기묘한 한국식 표현도 '셈 치고'라는 말과 이웃사촌이다. 좋은 것이면 그만이지 그거 꼬치꼬치 원인을 캐고 원칙을 따져서 나쁘게 만들 것이 없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도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죽은 셈 치고 라는 삶의 계산법이다. 죽은 셈 치면 어떤 불행한 일도 다행으로 보인다. 교통사고를 당해 팔다리가 없어져도 죽은 셈 치면 눈물이 멎는다.
요즘 아이들이 잘 쓰는 '뿅 간다.'는 말이 그것이다. 의태어와 의성어가 유난히 발달한 한국인답게 살짝 도는 것을 그리고 순간적으로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뿅'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셈 문화'는 '비합리주의'도 '반 합리주의'도 아니다. 합리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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