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당시에 가장 힘든 해전이 바로 대서양에서 벌어진 잠수함과의 싸움이었다. 태평양에서 벌어진 항공모함의 격돌과 대서양 해전의 양상은 사뭇 달랐다. 태평양 해전은 목표가 분명하였고, 어떤 해전이 벌어질지 예상하고 싸움을 준비하였다. 해전에 앞서 상대편의 정보수집를 수집하고자 노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반면에 대서양에서의 대잠수함 전투(ASW, Anti-Submarine Warfare)는 상대편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노출되어 있는 불리한 싸움이었다. 미국을 출발하여 대서양을 횡단하는 동안 언제 어디에서 잠수함의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승조원은 끝없는 공포를 견뎌야만 했다.
독일 해군의 21형 잠수함은 연속 잠항이 가능하였다. <출처 : 미 해군>
1943년 중반까지 맹렬한 기세로 연합군의 호송함대를 괴롭힌 독일 해군의 잠수함은 여름을 넘기면서 서서히 위세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실전을 경험한 연합군은 잠수함 사냥꾼인 호위구축함(DE, Destroyer, Escort)을 증강하였고 짜임새 있게 대형을 구성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특히 호위항공모함(CVE, Escort Carrier)이 호송함대에 합류하면서 주야간으로 항공기가 출격하여 공중에서 감시하기 시작하였다. 독일 해군의 잠수함은 주로 낮에 호송함대를 미행하다가 밤에 공격을 가하는 전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잠수함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공기가 없는 수중에서는 디젤엔진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축전지를 동력으로 전동기를 가동한다. 그리고 축전지가 방전되면 수면으로 부상하여 다시 디젤 엔진으로 발전기를 구동하여 축전지를 충전해야 한다. 잠수함으로서는 이때가 가장 취약하다. 충분하게 충전하지 않은 상태로 공격을 피해 잠수하면 다시 떠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2차 대전 당시의 잠수함은 항상 잠수하는 것이 아닌 필요할 때 잠깐만 잠수하는 군함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해군의 잠수함은 노출을 피해서 주로 야간에 부상하여 축전지를 재충전하였다. 그러나 레이더를 탑재한 호위구축함과 호위항공모함에서 출격한 항공기가 24시간 수면을 감시하는 상황이 되자 독일 해군의 잠수함은 바다에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졌다.
잠항 중에도 디젤 엔진에 공기를 공급하는 슈노켈 <출처 : 미 해군>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해군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난관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다름이 아닌 슈노켈(Schnorchel)이라고 불린 공기공급 장치였다. 이전까지 잠수함은 디젤엔진을 가동하기 위해서 선체가 모두 물위로 떠올랐으며 멀리서 발견되기 쉬웠다. 그러나 슈노켈이라는 장치만 있으면 선체를 물속에 숨긴 채로 디젤엔진을 가동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U-21(XXI)형 잠수함은 독일 잠수함의 약점이었던 축전지 용량을 대폭 늘렸다. 이에 따라 장시간 잠항이 가능해졌고 물속에서 저항이 적은 유선형 선체로 건조되었다. 이 덕분에 수중 최대속도가 종전의 2배 수준인 15노트 급으로 높아지자 종전의 호위구축함의 순항속도로는 발견하더라도 추격이 쉽지 않았다. 반면에 신형 잠수함을 추격하려고 호위구축함이 항해속도를 높이면 연료 소모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항해거리가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이처럼 U-21형 잠수함은 기술적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쟁 말기의 인력과 자원 부족으로 인하여 크게 활약하지는 못하였다.
미 해군의 방공함인 애틀란타급 경순양함 <출처 : 미 해군>
2차 대전이 끝나고 연합군은 독일 해군의 U-21형 잠수함과 설계 기술을 입수하였다. 영국 해군이 주도하여 노획한 U-21형 잠수함으로 가상 해전을 벌인 결과 영국 해군의 함대 중앙까지 침투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결과에 당황한 미 해군 지휘부는 대책을 서둘렀다. 독일 해군의 최신 잠수함 기술은 미국과 영국 뿐만 아니라 소련도 입수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미 해군은 신형 대잠함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2차 대전 당시에 가미카제 공격에 큰 피해를 입은 미 해군은 고성능 대형 레이더를 탑재한 구축함을 함대의 전방에 배치하여 사전에 공습을 탐지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개념과 비슷하게 대잠전의 경우에도 강력한 출력의 소나(sonar)를 탑재한 대잠함을 함대의 전방에 배치하여 숨어있는 적 잠수함을 조기에 탐지하고자 하였다. 다각적인 검토 결과 신형 대잠함은 거친 파도에서도 속도를 유지하면서 함대의 안전을 책임질 필요가 있었다. 또한 고출력 대형 소나의 탑재는 대형 선체가 유리하였다. 미 해군은 기본 선체로 경순양함과 구축함을 비교 검토하였다. 1947년 2월에 미 해군은 경순양함을 기반으로 대잠순양함(CLK, Cruiser, Light, submarine Killer) 2척을 건조한다는 방안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등장한 대잠전 전문 경순양함이 바로 노퍽(Norfolk)급이다.
진수되는 노퍽함(DL-1) <출처 : 미 해군>
1949년 9월부터 건조가 시작된 노퍽급 대잠순양함은 미 해군 최초의 선도구축함(DL, Destroyer, Leader)이다. 노퍽급의 기준배수량은 5,500톤으로 당시 일반적인 구축함의 2배가 넘는 상당히 큰 전투함이다. 그러나 높은 성능을 추구하면서 건조 비용이 대폭 증가하였고, 1940년대 말에 미 해군이 크게 위축되는 정치적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예산이 감축되었다. 이로 인하여 노퍽급 2번함의 건조는 중단되었다. 대잠전에 특화된 단일 목적의 전투함인 노퍽급은 뒤에 등장한 대잠 구축함과 호위함의 설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자매함이 없이 1척만 완성된 노퍽급은 1953년 3월에 취역하였다. 그러나 대잠전에만 집중하였던 노퍽급은 대공, 대해상 전투력이 크게 떨어져 비용 대 효과가 낮았다. 따라서 취역 후 20년을 채우지 못하고 1970년 1월에 일선에서 물러났다. 미 해군은 1975년에 선도구축함(DL)을 순양함(CG)으로 변경하였다. 노퍽급은 함종의 변경보다 앞서 퇴역하였기 때문에 아직까지 유일한 선도구축함으로 남아있다.
애틀란타급 경순양함의 선체를 물려받은 노퍽급은 상당히 큰 전투함에 속한다. <출처 : 미 해군>
특징
선체
노퍽급은 고전적인 전투함이라고 할 수 있는 순양함의 외형을 이어받고 있다. <출처 : 미 해군>
대잠순양함으로 등장한 노퍽급은 2차 대전 당시에 건조된 애틀란타(Atlanta)급 경순양함의 선체를 이어받고 있다. 배수량에 비해서 무장을 가벼운 노퍽급이 위풍당당한 외모를 가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축함보다 훨씬 큰 선체를 기반으로 개발된 노퍽급은 대서양의 거친 파도에 견딜 수 있는 내파성을 가지고 있으며, 파도가 갑판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건현(乾舷)이 매우 높다. 순양함의 설계를 이어받아 선체의 내부는 2중 구조이며, 고장력강이 많이 사용되었다. 선형은 기본적으로 평갑판형이며 배수량에 비해서 상부 구조물의 크기가 작은 편이다. 순양함 설계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상부 구조물의 앞뒤가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서 다양한 무장을 배치하는데 유리하다.
노퍽급은 함수와 함미에 3인치 연장 함포와 웨펀 알파 발사기를 주무장으로 탑재한다. <출처 :미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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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2차 대전 당시 주력 전투함에 많이 사용되었던 증기터빈(steam turbine) 기관을 탑재하고 있다. 기관의 배치는 애틀란타급과 같으며 4기의 보일러에서 발생하는 고압 증기로 2기의 증기터빈(각 40,000 마력)을 구동하는 2축 추진방식이다. 최대속도는 33노트, 순항속도는 20노트이며 순항속도만으로도 소련의 재래식 잠수함의 수중 항해속도를 능가한다.
지나치게 대잠 임무에 특화된 노퍽급은 다양한 임무 수행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출처 : 미 해군>
대잠함인 노퍽급은 선체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줄이도록 설계되었다. 이 때문에 추진용 프로펠러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낮추기 위해 직경을 줄였고 방향타도 하나만 있다. 증기터빈에 연결된 4대의 발전기(각 750kW)로 함내에 전원을 공급하며, 2대의 비상용 디젤발전기(각 300kW)가 마련되어 있다. 유사시 피격을 당하여도 비상용 발전기만으로 대잠무기와 함포를 가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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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잠무장
Mk.108 웨펀 알파 발사기(좌)와 RUR-4 웨펀 알파 대잠 로켓탄(우) <출처 : Sturmvogel 66 at wikimedia.org>
대잠전이 주 임무인 노퍽급은 미 해군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QHB 소나를 탑재하였다. QHB 스캔 소나(scanned sonar)로 적 잠수함을 탐지하면 AN/SQG-1 고주파 소나로 위치를 식별한다. 탑재하는 소나만 보아도 노퍽급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미 해군의 의도와 대잠전 기술을 가늠할 수 있다.
노퍽함(DL-1)의 ASROC 발사기에 장전되는 RUR-5 ASROC 대잠로켓(좌)과 이를 발사하기 위한 Mk.112 8연장 ASROC 대잠로켓 발사기(우) <출처 :미 해군>
전통적으로 수중에 숨어 있는 잠수함을 공격할 때 폭뢰를 사용한다. 그러나 정확도와 신속성이 떨어지는 폭뢰를 대신하여 노퍽급은 신형 대잠무장인 RUR-4 웨펀 알파(Weapon Alfa), Mk.35 21인치(533 mm) 대잠 어뢰를 탑재하였다. Mk.108 웨펀 알파는 324 mm 대잠 로켓탄을 박격포처럼 연속으로 발사하는 고성능 대잠 무기이다. 2차 대전 당시에 수작업으로 진행되었던 대잠전과 달리 노퍽급은 여러 종류의 대잠 무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UBFCS(Underwater Battery Fire Control System) 전투체계를 탑재한 점에서 이전의 대잠함과 구별된다.
AN/SPS-6 대공 탐색 레이더 <출처 : g7ahn at wikimedia.org>
점차 높아지는 대공, 대잠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 해군은 1950년대 후반에 대대적으로 성능개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비용 대 효과 문제로 인하여 진행하지는 못하였으며 대신에 AN/SPS-26 3차원 대공 탐색 레이더, ASROC 대잠로켓을 탑재하는 부분적인 개량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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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포
Mk.33 구형 3인치 함포를 탑재한 노퍽함(DL-1) <출처 :미 해군>
원래 방공용 경순양함인 애틀란타급은 다수의 5인치(127 mm) 함포를 탑재하였다. 그러나 대잠함인 노퍽급은 3인치(76.2 mm) 연장 함포로 변경되었다. 원래 노퍽급에는 사거리가 향상된 신형 함포인 Mk.37 70구경 3인치 연장 함포를 탑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발이 지연되면서 취역할 때는 구형 Mk.33 50구경 3인치 연장 함포를 탑재하였으며, 1956년에 신형 Mk.37 함포로 교체하였다.
3인치 함포를 탑재한 노퍽급은 제한적인 대공 방어만 가능하며, 부상한 적 잠수함에 대한 격파사격도 가능하다. 함포 사격은 소형 레이더를 사용하는 Mk.56 함포사격통제체계(GFCS)로 통제한다.
동급함(노퍽급 1척)
함번
함명
착공
진수
취역
퇴역
건조
비고
DL1
노퍽
(Norfolk)
1949.9.1
1951.12.29
1953.3.4
1970.1.15
New York Shipbuilding
해체
운용 현황
2차 대전 당시 대서양 해전의 교훈을 기초로 애틀란타급 경순양함을 개량하여 건조된 노퍽급은 취역 당시 고출력 대형 소나와 최신 대잠무장을 갖춘 고성능 대잠함이었다. 1953년에 취역한 이후 노퍽급은 대서양 함대에서 항모 기동함대의 대잠 호위임무에 주로 활약하였다. 1968년에 노퍽급은 중동해역을 담당하는 중부해군사령부의 기함이 되어 활동하였다. 1968년 말에 노퍽 해군기지로 귀항한 노퍽급은 이듬해 1월에 퇴역하였다.
취역할 당시 노퍽급의 대잠무장은 대잠로켓, 대잠어뢰와 함포가 중심이었다. <출처 : 미 해군>
원래 미 해군은 경순양함의 선체를 가진 노퍽급을 FRAM 구축함과 동일하게 개조하고, 타이폰(Typhon) 전투체계를 추가하여 완전한 다목적 대형 전투함으로 탈바꿈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배수량이 작은 구축함에도 탑재 가능한 타타 함대공 미사일 체계가 등장하면서 비용 대 효과가 낮은 노퍽급 성능개량은 취소되었다. 특히 구축함에 탑재하는 ASROC 대잠로켓이 등장하면서 대잠 전문 전투함인 노퍽급의 존재가치는 크게 낮아졌다. 성능개량이 취소된 이후 자매함이 없는 노퍽급은 유지비용이 크게 상승하였고 결국 취역 후 20년을 채우지 못하고 1970년에 퇴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