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4U 전투기
프로펠러 전투기 시대의 대미를 장식하다
미국의 자부심인 F4U는 프로펠러 전투기 시대의 대미를 장식한 걸작이다.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제1차 대전을 거치면서 공중전, 폭격 등이 시작되었지만 당시에 활약한 항공기는 성능이 부족해서 전쟁의 향방을 바꿀만한 수단은 아니었다. 더구나 운용 여건이 열악한 함재기나 수상기는 전투용 수단으로 사용하기조차 어려웠다. 때문에 종전 후 다자간 해군 군축이 성립되었을 때 여타 수상함에 비해 항공모함에 가해진 제약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전간기 동안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영국 항공모함 포미더블에서 출격을 준비 중인 F4U. 처음부터 함재기로 개발되었지만 이착함 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육상 배치부터 이루어졌다. < Public Domain >
여전히 거함거포주의를 숭상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일각에서 함재기들이 더 멀리 있는 목표를 때릴 수 있으므로 항공모함이 전함보다 효율이 좋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강들이 항공모함에 차츰 신경 쓰기 시작했는데, 특히 일본의 발걸음이 빨랐다. 이는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에 근심거리가 되었다. 일본이 신예 함재기들을 개발해서 속속 배치한다는 정보는 미국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사실 제2차 대전 발발 전까지 항공모함이 어떤 식으로 제작되고 어떻게 운용되어야 좋은지 아는 이는 없었다. 경험을 통해 하나하나 터득하고 개선해 나가야 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함재기의 성능이 좋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항공모함이 아무리 좋아도 함재기의 성능이 나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은 굳이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다. 미국은 주변국의 행동에 자극받아 대응에 나섰다.
F4F는 배치되기 전부터 성능 부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때문에 F4F와 별개로 후속할 신예기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 (cc) Greg Goebel at wikimedia.org >
미 해군이 1934년 실시한 새로운 함상전투기 사업에서 그루먼의 F4F가 치열한 경쟁 끝에 브루스터의 F2A을 이기고 채택되었다. 하지만 정작 배치가 목전에 이른 시점이 되자 고민이 생겼다. 중일전쟁에 등장한 일본의 함재기들을 분석한 결과 복엽기를 기반으로 개발된 F4F로는 우위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판단된 것이었다. 때문에 F4F가 배치되어도 주력기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에 미 해군은 F4F 배치와 별개로 1938년 2월 신예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경쟁에 참여한 업체들에게 내건 조건은 현존하거나 앞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함상용 전투기들을 압도하는 성능이었다. 말은 간단하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그런데 경쟁에 참여한 보우트(Vought)는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함재기를 넘어 공군의 전투기보다도 뛰어난 당대 최강의 전투기를 개발하던 중이었다.
F4U의 심장인 플랫 휘트니 R-2800 공랭식 성형 엔진. 이전에 존재하던 엔진들의 2배 정도 힘을 발휘하는 강력한 엔진으로 F6F, P-47에도 장착되었다. < Public Domain >
전투기의 성능을 판가름하는 지표는 많지만 초음속 시대를 개막한 제2세대 전투기 시절까지 가장 중요했던 것은 속도였다. 공중전이 이른바 독파이팅으로 벌어졌기에 빨라야 좋은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엔진이 좋아야 했다. 보우트는 플랫 휘트니(Pratt & Whitney)가 이제 막 개발한 R-2800 엔진에 주목했다. 무려 2,000마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목표로 하는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해당 엔진은 보우트의 신예기뿐 아니라 이후 전투기 역사에 커다란 흔적들을 남긴 F6F, P-47 등에도 장착되었다. 일단 해군의 요구가 급했기에 1938년 보우트는 F4F의 심장인 R-1830 엔진을 장착한 V-166A와 아직 신뢰성이 구현되지는 못한 R-2800을 장착한 V-166B를 함께 제출했다. 제안을 검토한 해군이 V-166B을 신예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제식명 F4U라는 이름으로 본격 개발이 시작되었다.
양산형에 비해 동체 길이가 짧은 제작된 XF4U-1 프로토타입.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었으나 당시까지 등장한 모든 미군 군용기 중 최고의 속도를 냈다. < Public Domain >
기존 엔진의 두 배 정도인 R-2800의 강력한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기체도 그에 걸맞아야 했다. 때문에 개발이 쉽지 않았다. 1940년 5월 29일 초도 비행에 나선 XF4U-1 프로토타입이 착륙 사고가 발생했을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그해가 가기 전에 F4U는 미국 군용기 최초로 수평 비행에서 시속 400마일(630km)의 벽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며 속도에서만큼은 목표 성능을 손쉽게 달성했다. 그럼에도 개선할 점이 많았다.
그러던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급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우려대로 F4F가 고전을 겪자 일선에서 신예기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개발을 서두른 보우트는 1942년 6월부터 F4U-1을 일선에 공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함 시 시계 확보가 힘들고 착함 시에 자세 제어가 어려운 문제 등으로 육상 기지에서만 운용했다. 이처럼 부족한 상태에서 배치에 나섰을 만큼 당시 미국은 다급했다.
그렇게 데뷔했지만 공중전에서 A6M을 비롯한 일본 전투기들을 압도해 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성능 개량을 끝낸 F4U-1A가 1943년 11월, 항공모함 CV-9 에식스와 CV-17 벙커힐을 필두로 본격 배치가 이루어지면서 함상 전투기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F4U는 곧바로 일본 조종사들이 가장 겁내는 대상이 되었고 제2차 대전 종전 후 제트전투기 시대가 도래 한 후에도 공격기로 상당 기간 활약했다.
특징
R-2800은 강력하지만 이를 장착하려면 일단 기체가 커야 했다. 더해서 장거리 항속이 가능하려면 많은 연료를 탑재하여야 하는데, 이것도 기체의 크기와 관련이 많다. 결론적으로 기체가 커지지 않고 성능을 비약적으로 늘리기 어려웠다. 크기가 커진다는 것은 무게가 늘어난다는 의미이므로 그만큼 착함 시에 가해지는 충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기체의 강도와 구조도 튼튼하게 제작되어야 했다.
충격 흡수가 쉽도록 제작된 짧은 강착 장치. 기체의 전고를 낮추지 않도록 주익이 꺾이는 부위에 설치되어 프로펠러가 바닥에 닿는 문제를 해결했다. < (cc) Julian Herzog at wikimedia.org >
보우트는 길이가 짧은 강착 장치로 충격을 흡수하고자 했지만 R-2800의 힘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 장착한 직경 13피트 4인치의 커다란 프로펠러가 바닥이 닿는 문제가 생겼다. 이에 역갈매기형 주익을 채택하고 꺾이는 부분에 강착 장치를 넣어 주기 시 높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고속 비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인상적인 구조는 F4U의 상징이 되었다.
F4U는 전면에서 보면 공랭식 엔진을 장착한 여타 전투기들처럼 통통한 구조를 갖춘 것 같지만 기수를 길게 늘려 전반적인 기체의 형상은 상당히 날렵한 편이다. 이로 인해 조종석의 위치가 뒤에 있어 초기형의 경우 이착륙이 어려웠으나 이후 항공모함에서 운용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성능 개선이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당시까지 개발된 거의 모든 기술이 총 집결된 최고의 프로펠러 전투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F4U는 최고의 프로펠러 전투기 중 하나로 중소 국가에서는 1970년대까지 활약했다. < (cc) Gerry Metzler at wikimedia.org >
운용 현황
F4U는 총 12,571기가 생산되었는데 대부분은 제2차 대전 당시인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1953년까지 꾸준히 제작이 이루어져 미국제 피스톤 엔진 전투기로는 가장 오랫동안 생산되었다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F4U의 성능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영국에 공급된 일부가 유럽 전역에서 사용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태평양 전역에서 일본을 상대로 활약했다.
오키나와 전투 당시 지상 목표를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F4U < Public Domain >
종전 때까지 벌어진 공중전에서 F4U는 2,140기의 일본 전투기를 격추시킨 반면 손실은 189기에 불과할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본격적으로 배치가 이루어진 전쟁 후기는 일본이 숙련된 조종사를 많이 상실하기도 했던 시기였으나 전투기의 성능 차이가 컸기에 벌어진 결과였다. 폭장 능력도 훌륭해서 15,000여 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는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 전투기가 떨어뜨린 폭탄의 70퍼센트 정도였다.
전후 제트시대가 도래한 이후에는 공격기로 임무를 바꾸어 6·25전쟁에서 지상군 지원에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러면서 공산군 전투기들과 공중전을 벌이기도 했는데 보델론(Guy P. Bordelon) 같은 경우는 미국의 마지막 프로펠러 전투기 에이스가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1957년에 퇴역했지만 영국, 프랑스에 공급된 물량은 제1차 베트남전쟁, 제2차 중동전쟁, 알제리 독립전쟁 등에서 활약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함대 상공을 경계 중인 제113전투비행대 소속 F4U-4B < Public Domain >
마지막 실전은 1969년 벌어진 이른바 축구전쟁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온두라스의 F4U가 상대한 적수는 엘살바도르의 P-51이었다. 제2차 대전 당시에 미 해군과 미 육군이 서로 최고라고 주장하던 전투기들이 최초로 실전을 벌인 것이었다. F4U에 부여된 코르세어(Corsair)라는 이름이 1967년부터 배치된 보우트 A-7 공격기에게 승계되었을 만큼 F4U는 미국의 자부심이었다.
변형 및 파생형
XF4U-1: 프로토타입
F4U-1: 초기 양산형
F4U-1 < Public Domain >
F3A-1: 브르스터 위탁 생산형 F4U-1. 품질 문제로 훈련기로만 운용.
F3A-1 < Public Domain >
FG-1: 굿이어 위탁 생산형 F4U-1. 육상 운용을 전제로 접이식 주익 폐지.
F4U-1A: 전방 시야 확보를 위해 조종석 위치를 변경한 개량형
F4U-1A < (cc) Tomás Del Coro at wikimedia.org >
F4U-1B: 영국 공여 분 F4U-1A
F4U-1C: 무장을 AN-M2 20mm 기관포 4문으로 변경한 개량형
F4U-1D: 물 분사 장치를 갖춘 R-2800-8W 엔진을 장착형
F4U-1D < (cc) Sanjay Acharya at wikimedia.org >
F3A-1D: 브르스터 위탁 생산형 F4U-1D
FG-1D: 굿이어 위탁 생산형 F4U-1D
FG-1D < (cc) Xenomorph at wikimedia.org >
FG-1E: F4U-1D에 레이더를 탑재한 굿이어 위탁 생산형
F4U-1P: F4U-1 기반 정찰기
F4U-2: 전천후 작전용 레이더 포드를 장비 한 야간 전투기
F4U-2 < Public Domain >
XF4U-3: 터보 과급기를 장착한 고고도 전투기 제안형
XF4U-3 < Public Domain >
F4U-4: R-2800-18W 또는 R-2800-42W 엔진 장착 개량형
F4U-4 < Public Domain >
F4U-4B: 종전으로 취소된 영국 공여 예정 F4U-4
F4U-4B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F4U-4C: 무장을 AN-M2 20mm 기관포 4문으로 변경한 F4U-4 개량형
F4U-4E: AN/APS-4 레이더 포드를 장비한 F4U-4 야간 전투기
F4U-4N: AN/APS-6 레이더 포드를 장비 한 F4U-4 야간 전투기 제안형
F4U-4P: F4U-4 기반 정찰기
F4U-4P < Public Domain >
F4U-5: AN-M3 20mm 기관포 4문, R-2800-32W 엔진을 장착 고고도 전투기형
F4U-5N: AN/APS-19 레이더 포드를 장비한 F4U-5 야간 전투기
F4U-5N < Public Domain >
F4U-5NL: F4U-5N 기반 한랭지 작전형
F4U-5NL < (cc) TMWolf at wikimedia.org >
F4U-5P: F4U-5 기반 정찰기
XF4U-6: R-2800-83W 엔진 장착한 공격기 프로토타입
AU-1: XF4U-6 양산형
AU-1 < Public Domain >
F4U-7: 프랑스 해군에 공급된 최종 양산형
F4U-7 < Public Domain >
제원(F4U-4)
전폭: 12.50m
전장: 10.26m
전고: 4.50m
주익 면적: 29.17㎡
최대 이륙 중량: 6,592kg
엔진: 플랫 휘트니 R-2800-18W 성형 엔진, 2,380hp(1,770kW)×1
최고 속도: 717km/h
실용 상승 한도: 12,600m
전투 행동반경: 528km
무장: 12.7mm M2 기관총×6 또는 20mm AN/M3 기관포×4
5인치 로켓×4
1,800kg 폭장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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