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우 변호사를 기억하시는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광화문에서 사자후를 통하던 멋진 분 말이다. 미국에 있으니 한동안 뜸했던 그가 요즘 한국 상황과 관련해 뜻밖의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우릴 놀라게 했다. “한국의 부정선거론은 대통령 윤석열을 교주로 하고 전광훈을 담임목사로 하고 극우 유튜버들을 전도사로 한 정치·종교 카르텔”이란 당혹스러운 주장을 펼친 것이다.
부정선거론자들은 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끌어들여 국제적 극우 정치종교 교파로 키운다는 망상을 키우고 있으니 가엽다는 말까지 그는 덧붙였다. 가소롭다. 그리고 터무니없다. 상식이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1차 체제전쟁이고, 지금은 2차 체제전쟁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김평우의 눈엔 8년 전 싸움은 정당했지만, 지금의 싸움은 극우 또라이들의 광란극으로밖에 안 보이는가?
왕년의 김평우가 왜 저 지경이란 말인가? 이유가 있다. 김평우 뒤엔 자유우파를 배신한 조갑제가 있다. 실제로 김평우 글은 조갑제닷컴에 버젓이 실려있다. 그 글엔 “부정선거론을 알고 싶은 분은 조갑제의 유튜브 ‘부정선거 음모론에 영혼이 접수된 윤석열의 범죄적 망상’을 보라”는 권유까지 있다. 김평우는 예전 조갑제닷컴에서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러저런 이유로 자유의 전사 김평우는 죽고, 조갑제가 오염시킨 김평우만이 남아있다.
그렇다. 조갑제는 몸통이다. 부정선거론을 음모론이자 망상장애로 후려치는 이 모든 장난, 이 모든 배신극의 중심에는 그가 떡하니 똬리를 틀고 있다. 지난주 나는 조갑제를 포함한 정규재·이병태·김순덕·최보식은 부정선거론을 비웃는 자유우파 배신자 5인방이라고 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조갑제의 그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조갑제는 해방둥이 즉 1945년생인데, 잡지 기자 출신으로 올해로 80세 할배인 그의 파괴적 영향력이 이렇게 크다.
▲ 조갑제는 부정선거론 논란 이전에 광주5.18 북한 개입설 부정 등 때만 되면 자유우파에 찬물을 뿌리는 걸로 악명이 높다. 특히 자유우파와 좌익이 큰 싸움을 벌이는 결정적 순간마다 쌍심지를 돋운다. 물론 자유우파를 준엄하게 꾸짖으며, 좌익에 덜컥 동조한다.
참 궁금하다. 그가 언제부터 저렇게 됐지? 그리고 왜? 조갑제가 삐딱하게 놀기 시작한 건 꽤 됐다. 10년 전인 2015년 전 자유우파가 서울시장 박원순의 아들 박주신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했을 때부터 조갑제는 느닷없이 쌍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그런 의혹은 근거 없는 마녀사냥이며“문명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행태”라고 어깃장을 놨다. 박원순·조갑제 사이의 밀월은 지금도 도무지 이해 못할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런 조갑제는 부정선거론 논란 이전에 광주5.18 북한 개입설 부정 등 때만 되면 자유우파에 찬물을 뿌리는 걸로 악명이 높다. 특히 자유우파와 좌익이 큰 싸움을 벌이는 결정적 순간마다 쌍심지를 돋운다. 물론 자유우파를 준엄하게 꾸짖으며, 좌익에 덜컥 동조한다. 상황이 그러니 어느 틈엔가 입이 쫙 찢어진 좌익은 횡재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늙은 조갑제를 치켜세운다.
당장 인터넷 공간을 뒤져보라. 조갑제는 진영논리에 빠져나온 멋쟁이요, 합리적 우파라는 칭찬이 수두룩하다. 그가 강경 보수일 순 있어도 극우는 결코 아니라며 쉴드를 쳐주기도 한다. 조갑제는 한때 어울렸던 전광훈 목사 같은 부류와도 요즘엔 깔끔하게 선을 긋고 있으니 참 대견하다는 투다. 기도 안 찬다. 아니 추악하고 엽기적이다. 그렇게 그가 좌익을 위한 애완견 노릇을 하니까 어느덧 저들은 조갑제의 머리를 쓰다듬주는 진풍경인 것이다.
그렇다. 한국경제신문 출신의 정규재가 그러하듯 조갑제는 이제 돌아오기 힘든 사람이 됐다. 1~2년 전이던가? 그가 국민의힘 당대표 출신인 이준석을 옹호하고, 윤석열을 죽어라 까대는 걸 보면 조갑제는 변질이 돼도 한참 변질됐다. 지난주 칼럼에서 언급했던대로 요즘 ‘조갑제 간첩’ 얘기가 나오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식의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 없음을 밝혀둔다.
두 가지 이유다. 우리와 견해가 다르다고 간첩이라고 규정하는 건 누구에게도 득이 없다. 또 조갑제는 1980년대 이후 보수주의 활동을 해왔으며, 지금도 종북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유지해왔다. 자위적 핵무장론도 펼치며, 정치인 김대중을 비판하는 책도 펴냈다. 윤이상·이응노 등 붉은 예술인을 까는데도 앞장섰다.무엇보다 박정희에 대한 그의 책은 아직도 낡지 않았다.
그럼 ‘노추(老醜) 할배’ 조갑제는 대체 왜 저 지경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여전히 미스터리다. 분명한 건 지난 칼럼처럼 그는 정규재·이병태·김순덕·최보식 등과 함께 제 잘난 맛에 하는 헛똑똑이다. 나름 정의감이 살아있어서 좌익에 적극 동조를 하진 않았지만, 그게 전부다. 그들은 얄팍한 머리를 굴리는 기회주의자 내지 위선적 리버럴리스트로 남아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을 결정적으로 망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 조갑제는 머리가 나쁘다. 미 트럼프 대통령의 성소수자와 이슬람에 대한 비판을 이해 못하는 걸 보면 에드먼드 버크 이후 보수주의 철학의 뿌리를 모른다. 결정적으로 동시대 역사에 대한 전체적인 통찰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조갑제와, 그의 아류 정규재·이병태·김순덕·최보식의 세상은 끝나가고 있다.시대가 그걸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