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 옆 사찰 ‘불편한 이웃’…
40 ~ 50m 거리
정혁수기자
대웅전 앞 예배 등 1년넘게 갈등
신학대 인근에 사찰이 들어서면서 신학대와 사찰 간 ‘불편한 동거’가 1년여 넘게 계속되고 있다.
양측의 어색한 관계는 지난해 2월 대전 유성구 하기동에 위치한 대전침례신학대 옆에
조계종 사찰 원광사가 들어서면서 불거졌다.
신학대는 학교와 불과 40~5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사찰 건축허가를 내준 관할 구청에 항의했지만
종교부지 내 합법적인 사찰 건축을 막지는 못했다.
침신대 관계자는 “법을 떠나 굳이 신학대 인근에 사찰을 지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며
“사찰이 들어선 지대가 높아 마치 사찰이 캠퍼스 내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소연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불편함도 많았다.
아침·저녁 진행되는 예불소리와 독경소리가 신학대 교정에 울려퍼지는가 하면 이에 정서적 거부감을 보이는
일부 학생들이 사찰로 몰려가 대웅전 앞에서 예배를 강행하는 등의 ‘시위’를 벌이는 갈등을 빚기도 했다.
원광사 주지 현정 스님은 침신대의 반응에 “서로 다른 종교일 뿐 ‘한 길’을 가는 사람들 아니냐,
신앙인들이 화해하고 더불어 살 수는 없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참다 못한 침신대는 사찰을 가리기 위해 5층 규모의 건물을 신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전 원광산 홈페이지:
http://www.042-226-5119.kti114.net/
대전 | 정혁수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141756055&code=940100
//////////////////////////////한마디//////////////////////////////
부처님은 예수의 기도소리가 걸림이 없는데,
어찌 예수는 부처의 명상소리에 귀가 찢어지는가?
과연 무엇의 차이더란 말인가?
정서적 거부감?
원광사는 더 높은 곳에서 더욱 많은 거부감을 느낄텐데도 마음에 걸림이 없는 이유는 뭔가?
솔바람에도 넘어지는 하루살이,
광풍에도 고즈넉한 거송의 차이가 아닌가?
원수도 사랑하라더니....
원수도 아닌 이웃인데,
죽여 없애고 싶단 말인가?
내 집 옆에 다른 집이 이사왔다고
그 집에 몰려가 나가라고 행패부리는 깡패와 무엇이 다른가?
그대들이 온갖 협박으로 불교병원을 폐원시켜버리고,
절 옆에 교회를 세워 결국
절이 떠나버린 수많은 예는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참으로 스스로 귀에 번뇌를 지어내
그 번뇌에 걸려 신음하는 어리석은 미신 신봉자들이로다!
어디 전국에 교회 사찰이 가까운 곳이 한 두 곳이란 말인가?
나는 기독교인인데 옆집이 불교인라고
옆집에 쳐들어가 나가라는 소린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소리는
예수의 소리가 아닌 악마의 소리가 아닌가?
그대들이 악마일진대.......
하기사 그대들의 경전을 보면 틀림없는 시기.질투하는
나 아니면 모두 유황불 끓는 용암에 쳐 넣는
저주와 증오와 독선과 배타의
악마의 시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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