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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누가 해군 병사들 살해한 北 도발 정보 묵살했는가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이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NLL(북방한계선)을 침범, 남쪽으로 내려와 우리 해군을 선제공격해 고속정 참수리 357정 정장(艇長) 윤영하 소령 등 24명의 해군 장병을 살해하고 부상을 입힌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 우리 군이 북의 명확한 도발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북한 경비정 684호는 도발 이틀 전인 6월 27일 상급 부대인 8전대(戰隊) 사령부와 교신하면서 '발포 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고 보고했다. 당시 우리 대북 통신감청 부대는 이 내용을 '특수 정보'로 분류해 상부에 보고했다. 감청 부대는 그에 앞서 6월 13일에도 북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에 쏠 무기 종류까지 언급하며 '발포'라고 표현한 교신 내용을 감청해 역시 특수 정보로 보고하면서 '월드컵 관련 긴장 조성 가능성 배제 불가'란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런데도 보고 과정의 어느 단계에서 이런 경고를 깔아뭉개 결국 우리 해군은 사전 대비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요원으로 일하다 2004년 탈북한 장진성씨는 "2차 연평도 도발은 통일전선부가 기획하고 북한 해군사령부가 총지휘한 사건"이라면서 "통전부가 도발 시기를 월드컵이 진행되던 때로 정한 것은 NLL 이슈를 국제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감청 부대 보고에도 도발 당일 북한 해군사령부가 8전대 사령부를 제쳐두고 684호 경비정에 "사격했으니 이탈해 올라오라"고 직접 지시한 내용이 나온다. 북한 지도부와 군 상층부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도발이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당시 우리 군 지도부는 북 도발 직후까지도 '우발적 도발' 운운했다. 지금에 와선 "국방장관 책임이다" "합참 책임이다"고 서로 잘못을 떠넘기고 있다. 책임 소재는 앞으로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게 되면 밝혀지겠지만, 당시 군이 군답지 않은 분위기에 젖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당시는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과 회담한 후 대북 유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 때다. 그래서 군 지휘부가 알아서 기는 분위기도 팽배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해군은 북 도발에 반격에 나서 북 경비정을 반쯤 침몰시켰으나 갑자기 사격 중지 명령이 떨어져 배를 돌려야 했다. 당시 군은 "확전을 우려해 자제했다"는 말도 안 되는 설명을 내놓았다.

이제라도 그때 누가 왜 북의 도발 징후 보고를 묵살하고 북 도발에 엉거주춤한 대응을 하도록 했는지를 가려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해군 병기사 모임
글쓴이 : 송상교(하128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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