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BTR-50

 

급하게 탄생한 BTR 시리즈의 이단아

 

BTR-50은 소련(러시아)의 병력수송장갑차인 BTR 시리즈 중에서 유일하게 궤도식이다. 장점도 있었지만 여러 문제점들로 인해 후속작들은 차륜식으로 바뀌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전쟁은 필연적으로 무기의 발달을 촉진시킨다. 제2차 대전처럼 규모가 크고 기간도 길면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전쟁 말에 등장한 핵폭탄은 오늘날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굳이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전차, 전투기, 폭격기 같은 주요 무기의 경우도 제2차 대전이 시작되었을 당시와 종전 시점을 비교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기려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대전 당시 미군의 발 노릇을 담당한 M3 하프트랙. 종종 장갑차로 오인하나 트럭의 일종이었다. < 출처 : (cc) D. Miller at Wikimedia.org >

그런데 의외로 그렇지 않은 무기도 있었다. 필요성도 충분했고 기술력이 있었음에도 예전 것을 그냥 사용하는 사례도 많았다. 군대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소총이 대표적이었다. M1 개런드로 무장한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교전국들이 19세기 말에 개발한 단발식 볼트액션 소총을 사용했다. 제2차 대전 말에 StG44가 등장했으나 돌격소총의 본격적인 실용화는 종전 이후에나 가능했다.

오늘날 전차와 더불어 기갑부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장갑차도 그런 사례다. 제2차 대전의 지상전 상황을 고려하면 장갑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개발과 배치가 등한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병력을 신속히 이동시킨다는 목적에서 독일의 Sd.Kfz. 251, 미국의 M2, M3 하프트랙이 그런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단지 야지 기동력이 좋은 트럭이었을 뿐이었다.

BTR-40은 1개 분대를 태울 수는 있었지만 BTR(보병수송장갑차)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성능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당시 전차의 수준을 고려하면 장갑차를 만들 능력은 충분했다. 하지만 추축국, 연합국 가리지 않고 모두 이를 등한시했다. 하루에 수천의 사상자가 흔했을 정도로 제2차 대전에서 인명 피해가 많았던 이유 중 하나가 이처럼 병력 보호에 대한 개념이 낮았던 점도 포함된다. 어쨌든 그렇게 전쟁이 끝났지만 앞으로 그렇게 싸울 수는 없었다. 특히 최소 추산으로도 2,000만 명의 손실을 경험한 소련은 더했다.

소련은 1940년대 말에 BTR-152, BTR-40 등을 제작해서 보급했으나 이들은 BTR(병력수송장갑차: Bronetransportyor)이라는 이름과 달리 기존 트럭을 개조한 수준이어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에 소련군 재편을 주도하며 모든 보병부대를 기계화하기로 결정한 국방장관 주코프의 지시로 제대로 된 장갑차 개발에 나섰다. 비단 소련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였을 정도로 장갑차의 시작은 전차에 비해 상당히 늦었다.

BTR-50의 기반이 된 PT-76 수륙양용경전차 < 출처 : (cc) Владимир Саппинен at Wikimedia.org >

장갑차는 보병을 전장까지 이동시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므로 무엇보다 기동력이 중시되었다. 그리고 탑승자들을 보호할 방어력과 필요할 경우 대응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되었다. 지난 제2차 대전 당시에 수많은 기갑전투를 겪었으면서도 정작 어느 정도 수준까지 성능을 갖춰야 하는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하자 소련 군부는 다급해졌다.

이를 기화로 만일 새로운 세계대전이 벌어지면 유럽 중앙 평원이 주전장이 될 것이 확실하므로 당장 장갑차의 전력화가 요구되었다. 시간이 촉박하자 현재 진행 중인 연구와 별개로 우선 기존 장비를 기반으로 장갑차를 개발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이에 따라 ChTZ(첼랴빈스크 탱크 공장) 소속 엔지니어인 샤슈무린(Nikolai F. Shashmurin)의 주도로 Object 750으로 명명된 사업이 시작되었다.

차체 상부에 장갑이 설치되고 기관총이 탑재된 양산형 BTR-50PK < 출처 : (cc) Львова Анастасия at Wikimedia.org >

그는 LKZ(레닌그라드 키로프 공장)의 코틴(Josef Kotin)과 함께 개발한 PT-76 수륙양용경전차를 기반으로 개발에 나섰다. PT-76은 기동력이 좋고 수륙양용이어서 공병의 도움 없이 하천을 신속 도하할 수 있었다. 때문에 포탑을 제거하고 내부를 개조하면 장갑차로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오픈 탑 구조를 택했을 정도로 병력 보호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2년 만에 개발을 끝내고 1954년부터 양산과 동시에 배치가 시작된 장갑차가 BTR-50이다. 여타 BTR 시리즈와 사용 용도와 목적은 대동소이하나 BTR-50은 유일하게 주행 장치가 궤도식이어서 외형상으로 쉽게 구분이 된다. 오늘날 장갑차와 비교하면 부족한 점도 많고 전작인 BTR-152, BTR-40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BTR-50이 제대로 된 소련 최초의 병력수송장갑차라고 할 수 있다.

현재도 많은 나라에서 BTR-50을 사용 중이나 보조 전력으로 취급된다. < 출처 : (cc) Srđan Popović at Wikimedia.org >

앞서 언급한 것처럼 BTR-50의 등장은 상당히 급했지만 성능이 충분했다면 오랫동안 주력으로 활약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 전차를 개조한 형식이어서 이런저런 문제점이 드러났고 가격도 비쌌다. 결국 BTR-50을 운용하며 터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소련군은 전투에 중점을 둔 궤도식 BMP(보병전투차: Boyevaya Mashina Pekhoty)와 수송을 주목적으로 하되 보다 성능이 향상된 장륜식 BTR로 장갑차 전력을 이원화하게 되었다.


특징

BTR-50은 PT-76이 기반이어서 전반적인 형태가 보트와 비슷하며 수상 주행 시에는 차체 후방 양측의 하이드로 제트 추진기를 이용한다. 전면 장갑이 13mm에 불과해서 방어력이 빈약한데, 이는 비단 BTR-50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차와 달리 무게에 제약이 많은 장갑차에 해당되는 공통적인 고민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초기형은 보병 탑승 공간 상부가 훤히 뚫려있는 오픈 탑 구조였다.

초기형은 오픈 탑 구조여서 보병의 승하차가 편리했으나 유사시 탑승 병력 보호가 어려웠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같은 구조의 BTR-152가 헝가리 혁명, 제2차 중동전 등에서 맥없이 격파되자 BTR-50PK부터 밀폐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NBC 방호장치가 없어서 화생방전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전면전 시 소련군은 핵탄두로 선공을 가한 후 기갑부대가 돌격해서 목표를 점령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었기에 NBC 방호장치가 중요했다. 이의 부재는 BTR-50이 조기에 퇴출되거나 2선 급 장비로 물러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차체 후면 양측에 설치된 하이드로 제트 추진기로 수상 주행이 가능하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BTR-50은 2명의 승무원 이외에 20명의 병력을 탑승시킬 수 있다. 현재 러시아군의 주력인 BTR-80의 탑승 병력이 7명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상당한 많지만 그만큼 내부 구조가 간단하고 방어력 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오픈 탑일 때는 승하차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지만 차체 후위에 엔진이 장착되어 있어 BTR-50PK부터는 상부 해치만을 이용한다. 최초 비무장이었고 후에 자위용 기관총을 장비했으나 공격력은 빈약하다.


운용 현황

열병식에 등장한 BTR-50P < 출처 : Public Domain >

BTR-50은 1954년부터 1970년까지 6,500여 대가 제작되었다. 상당한 수량처럼 보이나 수만 대가 기본이었던 후속작들과 비교하면 그리 많다고 볼 수 없다. 초도 물량은 바르샤바 조약국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동독 주둔 소련군과 동독군에 우선 배치되었다. 그 정도로 상황이 시급했으나 소련 장갑차의 실질적인 시작인 BTR-60과 BMP-1이 본격적으로 양산된 이후 급격히 퇴출되었다.

동독군도 소련군과 함께 우선적으로 BTR-50을 지급받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렇게 2선 급으로 물러난 상당수 물량이 40여 개 국가에 공여되거나 판매되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퇴출되었지만 30여 국에서 활동 중이고 북한도 사용 중이다. 베트남전쟁, 제2차 중동전쟁, 제3차 중동전쟁 등에서 활약했다. 흥미로운 점은 제2차 중동전쟁 당시에 노획된 이스라엘군 소속 BTR-50과 이집트군 소속 BTR-50이 이후 지엽적인 분쟁에서 싸운 적도 있었다. 이 정도 외에 특별히 의미를 둘 만한 실전 사례는 없다.

동독군이 보유한 BTR-50 등 기갑차량의 소개영상 < 출처 : 유튜브 >

https://youtu.be/bWgLoiQxvE4


변형 및 파생형

BTR-50P: 오픈 탑에 고정 무장이 없는 초기 양산형

BTR-50P < 출처 : Public Domain >

BTR-50PA: 차장용 큐폴라에 14.5mm KPV 중기관총 탑재

BTR-50PK: 밀폐식 상부 장갑을 설치하고 7.62mm SGMB 중기관총 탑재

BTR-50PK < 출처 : (cc) Bukvoed at Wikimedia.org >

BTR-50PU: BTR-50PK 기반 지휘차

BTR-50PU < 출처 : (cc) ShinePhantom at Wikimedia.org >

BTR-50PK(B): BTR-50PK 기반 구난회수차

MTP: BTR-50PK 기반 공병차

MTK: BTR-50PK 반 지뢰살포차

MTK < 출처 : Public Domain >

UR-67: BTR-50PK 기반 지뢰지대개척차

UR-67 < 출처 : (cc) ShinePhantom at Wikimedia.org >

BTR-50PUM-1: BTR-50PU 개량형

BTR-50PUM-1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BTR-50PKM: BTR-50PK 기반 벨라루스 개량형

BTR-50PKM < 출처 : minotor-service.com >

BTR-50S: 세르비아 유고임포트 SPDR이 제안한 개수형

BTR-50S < 출처 : (cc) Srđan Popović at Wikimedia.org >

R-82: BTR-50PU 기반 불가리아 개량형

OT-62 TOPAS: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가 공동 개발한 파생형

OT-62 TOPAS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WPT-TOPAS: OT-62 TOPAS 기반 폴란드군용 구난회수차

WPT-TOPAS < 출처 : Public Domain >

SPW 50P: 소련 생산 동독군 공급형

SPW 50P < 출처 : Public Domain >

77式两栖装甲输送车: PT-76과 BTR-50을 참고한 중국의 수륙양용장갑차

77식 수륙양용 수송장갑차 < 출처 : (cc) Baidu.com >

BTR-50 MEV: BTR-50PK 기반 남레바논군 야전구급차

BTR-50 MEV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제원

생산업체: Kirov 외
도입 연도: 1954년
중량: 14.5톤
전장: 7.08m
전폭: 3.14m
전고: 2.03m
무장: 14.5mm KPV 기관총 1문
7.62mm SGBM 기관총 1문
엔진: V-6 6기통 수랭식 디젤 240마력(179kW)
추력 대비 중량: 16.6마력/톤
서스펜션: 토션바
항속 거리: 약 400km
최고 속도: 44km/h, 11km/h(수상)
탑승 인원 : 승무원 2명 + 보병 20명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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