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대 비행중인 우리공군 소속의 F-4E. 종전 F-4C, F-4D의 엔진과 비교해보면 엔진 노즐이 약간 더 길어졌다. 한편 신형 엔진인 J79-GE-17 J79시리즈 엔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매연문제를 좀 개선한 모델이기도 했다(, 매연을 완전히 없애진 못했다). 팬텀의 심한 매연 때문에 북베트남 조종사들은 멀리서도 눈으로 팬텀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

 

 

F-4K/F-4M 전투기

영국을 위해 탄생한 팬텀

 

항공모함 아크로열에 탑재된 F-4K. 미국에서 생산되었으나 엔진과 부품의 상당 부분이 영국산인 별종 팬텀 전투기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F-4 팬텀 II는 1958년부터 1981년까지 실험기를 포함해서 총 5,195기가 생산되었다. 이는 서방에서 개발된 초음속기로는 최대 규모다. 물론 지속적인 개량을 거치기는 했지만 1950년대 기술로 탄생한 전투기임에도 2021년 현재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5개국에서 200여 기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이처럼 많이 만들어지고 오랫동안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성능이 좋다는 의미다.

영국 공군 소속의 F-4M. 팬텀 도입을 시작으로 영국은 현재까지 단독 전투기 개발을 포기한 상태다. < 출처 : (cc) Mike Freer at Wikipedia.org >

원래 미 해군의 항공모함 탑재용 전투기로 개발되었음에도 라이벌인 미 공군이 자존심을 버리고 군말 없이 주력기로 택했을 만큼 모두가 동시대 전투기 중 최고라고 인정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곤욕을 치르기는 했지만 이는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도록 발을 묶어 버린 정치권이 강요한 엉뚱한 교전 수칙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소련제 전투기들을 압도했다. 당연히 많은 나라에서 앞다투어 도입했다.

지금도 전투기를 수출 혹은 공여할 경우에는 생산국과 도입국의 정치적 관계, 현지 환경 등을 고려해서 특화된 기종이 공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F-4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일본의 F-4EJ는 대지공격 능력이 제거되었고, 독일의 F-4F는 단기간만 운용할 예정이어서 많은 기능이 삭제되었다. 이스라엘의 Kurnass, 그리스의 Peace Icarus 2000처럼 도입 후 현지에서 개량한 파생형도 있다.

제2차 중동전쟁 당시 항공모함 이글에서 출격 준비 중인 호커 시호크 전투기. 소련의 압력과 미국의 방관으로 전쟁에서 손 떼면서 영국은 더 이상 제국주의 시절의 대영제국이 아님을 절감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중 F-4K/F-4M는 오로지 영국만을 위해 탄생한 팬텀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초강대국이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제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히 쇠락하던 영국은 어떻게든 제국주의 시대의 영광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쳤으나 1956년 수에즈 전쟁(제2차 중동전쟁)을 통해 더 이상 과거의 위상을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1960년대가 되자 많은 식민지들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독립시켜 주어야 했을 만큼 쇠락은 더욱 급속히 진행되었다. 냉전 시기에 미국과 더불어 군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어쩔 수 없이 군비 감축에 나서야 했다. 당시 해군은 시 빅슨 전투기를, 공군은 캔버라 폭격기와 호커 헌터 전투기를 교체해 주어야 할 시점이었다. 당연히 사업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해군과 공군이 공통으로 채용할 예정이었던 P.1154 초음속 수직이착륙전투기가 개발이 무산되면서 영국 해군항공은 급하게 대체 기종을 찾아야만 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결국 이제 막 배치가 시작된 버캐니어 공격기를 제외하고 양군이 함께 사용할 예정인 수직이착륙 방식의 초음속 전투기인 P.1154 사업과 여기에 더해 캔버라 폭격기 대체를 위한 공군의 TSR.2 사업이 동시에 무산되었다. 여담으로 이러한 폭풍 칼날 속에서 P.1154를 대폭 축소한 P.1127 사업만 살아남았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해리어 전투기다. 덕분에 해리어는 현재까지 영국이 단독으로 개발한 마지막 전투기가 되었다.

영국은 항공기 역사를 선도한 국가지만 향후 전력 유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자 어쩔 수 없이 외부에서 후속기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제2차 대전 당시에 랜드 리스 형식으로 미국으로부터 많은 작전기를 들여오기도 했으나 이는 전력을 신속히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신예기의 국내 개발 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었기에 상황이 전혀 달랐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미국이 이제 막 배치를 시작한 F-4였다.

영국용 팬텀의 기반이 된 미 해군의 F-4J 함상전투기 < 출처 : Public Domain >

일단 다목적기여서 모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데다 특히 함재기로 개발되었다는 점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이에 1965년 맥도넬에 미 해군의 F-4J형을 기반으로 하는 영국산 팬텀의 제작을 의뢰했다. 다만 연관 산업 보호를 위해 많은 장비와 부품을 영국산으로 충당하고 유지 보수도 영국 업체가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영국만을 위해 탄생한 팬텀이 해군형인 F-4K Phantom FG.1과 공군형인 F-4M Phantom FGR.2다.

영국은 테스트를 위해 4기(YF-4K 2기, YF-4M 2기)의 프로토타입을 우선 주문했다. 1966년 6월 27일 미국 현지에서 YF-4K 1호기의 초도 비행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실험에 들어가 영국군의 요건 조건에 맞춰 개선이 진행되었다. 이후 영국으로 옮겨 와 추가로 현지에서 적합성 검사를 거친 후 본격 양산이 개시되어 1968년 4월 30일 해군형 F-4K, 같은 해 8월 23일 공군형 F-4M의 일선 배치가 시작되었다.

비행 테스트 중인 YF-4K 프로토타입 1호기 < 출처 : Public Domain >

애초 영국은 F-4K 140기, F-4M 260기를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추가 개조 등으로 단가가 상승하면서 총 170기로 사업이 종료되었다. 특히 F-4K는 차세대 항공모함으로 계획하던 2척의 CVA-01 건조가 전격 취소되어 계획의 1/3 수준인 48기만 제작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기존 2척의 오디셔스급 중 아크로열(R09)만 개장이 이루어지면서 20기는 도입과 동시에 공군에 이전되었고 28기만 해군에 배치되었다.

 

 

영국 해군항공의 팬텀 운용 역사 <출처: 유튜브>

 


특징

공군형 F-4M은 기본적으로 해군형 F-4K에서 이착함 관련 장치 등이 생략된 것이라 할 수 있으므로 양 기종의 차이는 크지 않다. 이들이 미국산 F-4와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엔진이다. 연소 시 발생하는 특유의 검은 매연으로 유명한 GE J79 터보제트 엔진 대신에 작은 영국의 항공모함에서 운용이 가능하도록 추력이 더 나가는 롤스로이스 Spey 터보팬 엔진을 장착했다.

이함 직전의 F-4K. 노즐이 큰 영국제 엔진을 장착하면서 전장이 짧아지고 동체 후위가 커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때문에 F-4K/F-4M의 기체 형상은 여타 F-4보다 길이가 1.7m 정도 짧고 동체 후방이 굵어서 전반전으로 둔중한 모양이다. 이로 인해 최고 속도가 시속 120km 정도 덜 나가는 마하 1.9이나 대신 가속력, 항속 거리, 상승력, 이착륙 거리 등은 향상되었다. 그럼에도 아크로열(R09)이 미국의 항공모함보다 작아서 F-4K는 이함 시 양력을 많이 받기 위해 길이가 늘어난 랜딩 기어를 장착했다.

합동 훈련 중 미 항공모함 인디펜던스에 이함 준비 중인 F-4K. 옆에 위치한 미 해군의 F-4J와 비교하면 랜딩기어의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항전장비 등도 영국산을 대거 사용했는데 이로 인해 수직 꼬리날개 끝단에 사각형 구조물과 안정핀이 추가되었다. 미국에서 조립되었어도 이처럼 약 50퍼센트 정도의 장비와 부품을 영국산으로 사용했기에 외형과 성능에 차이가 있다. 어쩌면 F-4K/F-4M은 시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력 전투기의 독자 개발은 포기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영국의 사정이 반영된 전투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운용 현황

48기가 제작된 F-4K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28기만 해군이 운용했다. 이들은 제767, 제892전투비행대에 배치되었는데 제767비행대가 훈련비행대여서 항공모함에 오른 기체는 제892비행대대 소속 12기에 불과하다. 당시 함재기 중 버캐니어를 공격기로 운용했고 F-4K는 함대방공 임무를 전담했다. 1978년 아크로열이 퇴역하고 비행대가 해체되면서 전량이 공군으로 넘어가 활약했다.

SUU-23/A 건 포드를 장착한 영국 공군의 F-4K. 해군으로부터 이전 받은 기체다. < 출처 : (cc) Mike Freer at Wikipedia.org >

공군은 116기의 F-4M과 해군에 배치되지 않은 20기의 F-4K를 방공, CAS, 정찰 임무에 투입했다. 주로 북해, 대서양 일대로 진출하는 소련 해군을 요격하는 임무를 담당했고 6개 편대는 냉전 당시 최일선인 서독의 3개 기지에 전개되었다. 포클랜드 전쟁 후 1개 비행대가 현지에 배치되어 임무를 담당했다. 이로 인해 본토 방공 임무에 차질이 발생하자 미국이 보관 중인 중고 F-4J를 15기 도입하여 배치했다.

영국 공군 소속 F-4M. 서독, 포클랜드, 사이프러스에 위치한 해외 기지에도 전개했었다. < 출처 : (cc) Mike Freer at Wikipedia.org >

이것이 영국이 운용한 팬텀 중 하나인 F-4J(UK) Phantom F.3다. 영국에서 개조가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엔진을 비롯한 많은 부분이 미국산이어서 전작들과 다른 기종이다. 1991년 걸프전 당시에 만일을 대비해 2개 편대의 F-4M이 사이프러스에 전개한 적이 있으나 영국의 팬텀이 실전을 벌인 사례는 없다. 이들 F-4K/F-4M/F-4J(UK)는 파나비어 토네이도가 배치되면서 1991년 전량 퇴역했다.

 

 

R09 아크로얄 항모에 착함하는 F-4K 팬텀 FG.1 함상전투기 <출처: 유튜브>


변형 및 파생형

F-4K Phantom FG.1: F-4J 기반 영국 해군형. 프로토타입, 추가 생산 포함 52기.

F-4K 팬텀 FG.1 < 출처 : Public Domain >

F-4M Phantom FGR.2: F-4J 기반 영국 공군형. 프로토타입 포함 118기.

F-4M 팬텀 FGR.2 < 출처 : (cc) Rob Schleiffert at Wikipedia.org >

F-4J(UK) Phantom F.3: F-4S 사양으로 개량된 F-4J 직도입분. 15기.

F-4J 팬텀 F.3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F-4K)

형식: 쌍발 터보팬 전폭기
전폭: 11.7m
전장: 17.55m
전고: 4.9m
주익 면적: 49.2㎡
최대 이륙 중량: 25,402kg
엔진: 롤스로이스 스페이 203 터보팬(12,140파운드)×2
최고 속도: 2,231km/h(마하 1.9)
실용 상승 한도: 18,300m
최대 항속 거리: 2,816km
무장: SUU-23/A 건포드×1
AIM-7 또는 스카이플래쉬 공대공미사일×4
AIM-9 공대공미사일×4
SNEB 68mm 무유도 로켓×180
500파운드, 750파운드, 1000파운드 폭탄
B28, B43, B57 전술핵폭탄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