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G-35 전투기

전통의 명가가 선보인 역작이지만 판매량은 신통치 못한 전투기

입력 : 2021.05.13 07:53

MiG-35 전투기의 편대비행 장면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소련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이 신예기를 배치하면 곧바로 대항마를 선보이면서 하늘에서의 주도권 다툼에서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전통의 공중전 방식인 독파이팅이 아니라 미사일과 레이더를 앞세워 눈으로 보이지 않는 먼 거리에서 교전을 펼치는 제3세대 전투기 시대부터 점차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자충수 덕분에 그럭저럭 F-4에 대항할 수 있었지만 전투기의 성능이 열세임은 확실했다.

러시아 공군 곡예비행대 소속의 Su-27과 MiG-29 편대. TsAGI의 연구를 바탕으로 체급을 달리해 개발되었기에 외형이 유사하다. < 출처 : (cc) Aleksandr Markin at Wikimedia.org >

서둘러 MiG-23을 개발해서 배치에 나섰으나 그때 미국은 성능이 더욱 향상된 레이더, 항전장비, 플라이 바이 와이어 등을 이용하는 제4세대 전투기 시대의 개막을 목전에 두고 있던 상태였다. 이에 MiG-23의 본격 양산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TsAGI(중앙 유체 역학 연구소)의 개념 연구를 시작으로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착수했다. 여기서 격차가 더 벌어지면 상당히 곤란하다고 보았기에 상당히 조급했다.

그러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해 1982년부터 실전 배치된 전투기가 흔히 F-16의 대항마로 알려진 MiG-29다. 소련의 제4세대 전투기 시대를 개막한 역작으로 지상 기지의 관제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전작들과 달리 독자적으로도 다목적 임무에 투입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1988년 영국 판보로(Farnborough) 에어쇼에 존재를 드러내 서방에 위용을 자랑했을 정도로 회심의 역작이었다.

폴란드 공군의 MiG-29. 원래 동독군이 운용하던 것이었으나 통일 후 전력 유지가 불필요하다고 결정한 독일로부터 거저 얻다시피 했다. < 출처 : (cc) Łukasz Golowanow at Wikimedia.org >

그런데 서방에 공포를 선사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소련 내부에서는 고민이 많았다. 여전히 해당 분야의 기술력이 떨어져서 가장 중요한 레이더와 항전장비 등의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을 감추고 일단 배치부터 시작했을 만큼 당시 소련은 초조했다. 냉전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결국 1990년 독일이 통일된 후 동독군이 운용하던 MiG-29를 서방이 획득하면서 그동안 감춰 온 문제점이 드러났다.

근접전 능력은 소문대로 뛰어나지만 단지 그뿐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었다. 물론 소련도 처음부터 개량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사실 선 배치 후 개량은 이전부터 소련이 사용해 온 전력 확충 기법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오히려 1991년에 체제가 붕괴되는 엄청난 사건까지 벌어졌다. 순식간 수많은 무기 제조 업체들이 각자도생에 나서야 했다. 미그 설계국(MiG Design Bureau, 이하 미그)도 마찬가지였다.

MiG-33은 MiG-29M의 대외 판매용 이름이다. 이를 기반으로 MiG-35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 출처 : (cc) Alex Beltyukov at Wikimedia.org >

그 와중에 소련의 대부분을 승계한 러시아가 국방비 절감을 위해 Su-27로 주력기를 단일화하기로 결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걸프전쟁,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에서 드러난 MiG-29의 실전 기록은 실망스러웠다. 더구나 1999년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전쟁 중 벌어진 공중전에서 Su-27에 격추당하기도 했다. 이에 미그는 개량형인 MiG-29M을 MiG-33이라고 재명명해서 판매에 나섰으나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어려웠다.

당장 대안이 없던 미그는 소련 시절에 확보했던 해외 시장마저 잃을 상황이 되자 MiG-33의 대대적인 전면 재설계에 착수했다. 그러한 개발 과정을 거쳐 2007년에 초도 비행에 성공한 신예기가 MiG-35다. 나토에서 MiG-29의 개량형을 의미하는 펄크럼(Fulcrum)-F로 명명했듯이 외형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MiG-35는 항속 거리, 레이더의 성능, 무장 능력이 대폭 향상된 21세기형 전투기로 제4.5세대로도 구분된다.

미그를 살리기 위한 러시아 당국의 결정으로 간신히 양산이 시작되었으나 향후 전망은 불분명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미그는 일단 기존 MiG-29 사용국의 대체 수요를 잡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내심 내수 탈환도 염원했다. 그러나 대대적인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해외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러시아에서는 Su-35에 밀리면서 양산 여부마저 불투명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2017년에 생산 인프라로써 미그의 전략적인 위상을 고려한 러시아 공군에서 24기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2020년 현재까지 시제기 포함해 총 14기가 제작되었다.

종종 1970년대 개발된 MiG-29가 기반이므로 MiG-35의 성능을 폄훼하는 의견도 있으나 이는 오해다. 비단 MiG-33뿐 아니라 현재 활약 중인 제4세대 전투기들의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 공군의 F-15K나 향후 미 공군이 배치할 예정인 F-15EX의 기반도 1970년대 개발된 F-15다. 이렇게 많은 전투기들이 40년 넘게 주력기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 발달에 힘입어 꾸준히 성능을 개량해 왔기 때문이다.

MiG-35는 미그의 노력이 결집된 전투기이나 여러 이유로 말미암아 크게 돋보이지 않는 신세가 되었다. < 출처 : (cc) Vitaly V. Kuzmin at Wikimedia.org >

따라서 MiG-35는 성능 때문이 아니라 냉전 종식과 이로 인한 군비 감축의 시대상으로 인해 양산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오히려 성능은 적극적으로 대외 판매를 시도한 덕분에 충분히 검증된 상황이므로 만일 냉전 당시였다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MiG-35는 과거의 위상을 지키려는 전통의 명가가 자신만만하게 선보였으나 시대를 잘 못 타고난 역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징

MiG-35는 외형상으로 MiG-29와 기본적 형태가 같다. 굳이 차이라면 주익, 보조익, 수평 미익의 크기가 커진 것과 고받음각 비행에 유리하기 위해 스트레이크부 앞전을 첨예하게 만든 점 등을 들 수 있다. 기동력이 향상되었으나 사실 MiG-29도 근접전의 최강자라는 소리를 들었기에 크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최신 전투기일수록 기동력보다 레이더, 항전장비, 무장의 성능이 중요하다.

MiG-35 기수에 장착된 주크 AESA 레이더. < 출처 : (cc) Allocer at Wikimedia.org >

미그는 MiG-35에 주크(Zhuk)라고 불리는 AESA 레이더를 탑재했다. 옵션에 따라 구매자가 선택을 달리할 수 있는데 고급형의 경우는 탐지 거리가 250km에 이른다. 컴퓨터와 연동되어 30기의 적기를 동시에 추적해 6기와 교전이 가능하고 지상의 목표도 동시에 2곳을 타격할 수 있다. 주익의 하드포인트도 각 4개소로 증가해 더 많은 무장의 탑재가 가능하다. 한마디로 눈과 주먹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늘린 것이다.

MiG-35에 장착된 RD-33MK 터보팬 엔진은 전작보다 10퍼센트 정도 추력이 향상되었고 가동 수명도 늘어났다. < 출처 : (cc) Vitaly V. Kuzmin at Wikimedia.org >

MiG-35는 전방 동체를 연장시켜 내부 연료 탑재량이 늘리고 보조 탱크도 3개까지 장착할 수 있어 작전 반경이 MiG-29보다 30퍼센트 이상 증가되었다. 엔진도 10퍼센트 정도 추력이 향상되었고 가동 시간이 늘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여러 경쟁작들과 비교했을 때 앞서는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자국 내에서조차 Su-35에 밀린다. 경전투기라는 체급 차이로 말미암아 여전히 어중간하다는 평가를 듣는 편이다.


운용 현황

MiG-35는 앞서 언급처럼 시제기 포함해서 현재까지 러시아 공군이 도입한 14기만 제작되었다. 현재 러시아 공군이 배치 중인 주력기가 Su-35이고 이를 후속해서 향후 도입이 예정된 Su-57이 이런저런 이유로 양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정도도 감지덕지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만일 당국이 미그를 구제할 의지가 없었다면 MiG-35는 그냥 사장되었을 것이다.

대외 판매에 연이어 실패하면서 현재 러시아만 소량 운용 중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전통의 소련 전투기 사용국이던 인도, 이집트에 판매를 시도했으나 모두 좌절되었다. 특히 이집트는 계약 성사 단계까지 갔지만 최종적으로 MiG-29M이 낙찰되었다. 그러나 미그는 아르헨티나, 페루,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미얀마 시장을 꾸준히 노크하고 러시아 해군에 Su-33 대체를 위한 해군형을 제한하면서 MiG-35에 대한 미련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MiG-35의 앞날은 상당히 불투명하다.

 

MiG-35의 이집트 판매는 계약성사 직전단계까지 갔으나 실패했다. 영상은 이집트공군 도장의 MiG-35이다. < 출처 : 유튜브 >


변형 및 파생형

MiG-35: 양산전 1인승 단좌기

MiG-35 단좌시제기인 "961"번 기체 < 출처 : airforce.ru >

MiG-35D: 양산전 2인승 복좌기

시범 비행 중인 MiG-35D. 제4.5세대로도 구분되는 최신예기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MiG-35S: 러시아 공군용 단좌기

MiG-35S < 출처 : Public Domain >

MiG-35UB: 러시아 공군용 복좌기

MiG-35UB < 출처 : RussianPlanes.NET >

 


제원

형식: 쌍발 터보팬 다목적 전투기
전폭: 12m
전장: 17.3m
전고: 4.73m
주익 면적: 41㎡
최대 이륙 중량: 24,500kg
엔진: RD-33MK 터보팬(19,900파운드) × 2
최고 속도: 마하 2.25
실용 상승 한도: 16,000m
전투 행동반경: 1,000km
무장: 30mm Gsh-301 기관포 × 1
R-73, R-77 공대공미사일
Kh-25MAE, Kh-29L/TE, Kh-38ME 공대지미사일
S-8, S-13, S-24, S-25 로켓
하드포인트 9개소에 최대 6,500kg 탑재 가능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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