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17 무인 표적/정찰기

표적기에서 소련 최초 무인정찰기로 발전하다

 

1950년대 무인표적기로 개발되었지만, 소련의 첫 무인정찰기로 개조된 La-17. 사진은 La-17K 무인표적기 <출처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개발의 역사

러시아 항공 산업의 뿌리는 제정 러시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행기가 본격적으로 전쟁에 사용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당시 제정 러시아에는 약 24개 항공기 제작사가 있었다. 당시 제정 러시아는 이고르 시코르스키(Igor Sikorsky, 1889.05.25~1972.10.26)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4발 폭격기인 일리야 무로메츠(Ilya Muromets) 같은 항공기 역사에 기념비적 기체들도 있다.

혁명 후, 소련이 들어서면서 기업 간 자유 경쟁은 배제되고 철저한 계획 경제 체제가 들어섰다. 항공기 개발도 마찬가지였다. 항공기 설계와 개발은 Опытное конструкторское бюро(영어 Experimental Design Bureau)의 약자인 OKB로 알려진 항공기 설계국들과 생산 공장으로 이원화되었다. OKB들이 당국의 요구에 따라 실험적인 설계를 개발하고, 이를 정부가 평가 후 승인하면 생산 공장에서 양산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라보치킨 설계국이 개발하여 독소전에서 사용된 La-5 전투기 <출처 : vvsregiaavions.com>

소련의 항공기 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독일 항공기에서 입수한 엔진 등의 기술과 전쟁이 끝난 후 영국 정부가 제공한 제트 엔진 등을 기반으로 서방보다 늦었던 제트 엔진 시대를 따라가게 되었다.

동서 냉전이 시작되면서 무기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1950년 초반, 소련은 빨라진 전투기 조종사들과 지대공 미사일 부대의 훈련을 위해 현대적인 항공기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새로운 무인표적기를 요구했다. 무인표적기 개발을 위해 선택된 곳은 세묜 알렉세예비치 라보치킨(Semyon Alekseyevich Lavochkin, 1900~1960)이 수석 설계자로 있던 OKB-301, 일명 라보치킨 설계국(현 JSC NPO Lavochkina)이었다.

1937년 설립된 라보치킨 설계국은 독소전쟁에서 활약한 La(Ла)-5, La-7 같은 피스톤 엔진 전투기들을 만들어냈고,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는 노획한 독일 융커스(Junkers)의 유모(Jumo) 004 엔진을 소련 클리모프(Klimov)가 복제한 RD-10을 탑재한 소련 최초의 제트전투기 La-150을 개발하기도 했다.

MiG-15와의 경쟁에서 패한 La-15 <출처 : Public Domain>

1948년에는 소련 최초의 후퇴익 제트전투기 La-160 개발했지만, 야심 차게 개발한 La-15가 미코얀-구레비치(Mikoyan-Gurevich) 설계국의 MiG-15와의 경쟁에서 패하는 등 제트 엔진 시대에는 별 활약상을 보이지 못했다.

표적기 개발에 있어 라보치킨 설계국이 요구받은 핵심은 저렴한 도입 및 운용비였다. 저렴한 기체를 만들기 위해 착륙 장치 등 다양한 장치를 장착해야 하는 재사용 가능한 기체 대신 일회용으로 만들기로 했다. 라보치킨 설계국은 1950년 6월부터 '공장 색인 번호 201'로 명명된 신형 표적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가늘고 긴 동체 아래 램제트 엔진을 단 La-17 <출처 : topwar.ru>

기체는 직선형 날개를 가진 무선조종 항공기로 개발했다. 엔진은 기체 내부에 다는 대신 동체 아래에 장착하는 방식을 채택했으며, OKB-670이 개발한 휘발유를 사용하는 RD-900 램제트 엔진을 장착했다. 램제트 엔진은 자체 압축기가 없기 때문에 연소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엔진 또는 로켓을 사용하여 가속하거나 높은 곳에서 빠른 속도로 낙하 시켜 점화 속도에 도달해야 했다.

공장 시험은 1953년 5월까지 진행되었고, 기체를 탑재하고 비행할 개조된 투폴레프(Tupolev) Tu-4와 지상 통제장비를 포함한 국가시험이 1954년 6월 21일부터 10월 5일까지 진행되었다. 국가시험에서 통과한 후 La-17이라는 제식명이 부여되었다. 생산은 1956년부터 60년까지 이루어졌다.

소련이 B-29를 복제한 Tu-4 날개 아래에 탑재된 La-17 <출처 : topwar.ru>

1958년 8월, La-17의 개량이 시작되었다. A.G. 체스노코프(Chesnokov)가 설계를 주도한 개량형은 공장 색인 번호 203을 부여했다. 203은 엔진을 투만스키(Tumansky) RD-9BK 터보제트 엔진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Tu-4 같은 탑재 항공기를 이용하는 대신, 지상에서 로켓 부스터 2개를 장착하여 이륙했다.

이미 만들어진 동체에 엔진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개량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개량에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1959년 시제품의 공장 시험이 이루어졌고, 1960년 5월부터 국가시험이 시작되었다. 국가시험을 통과한 후 개량형을 뜻하는 La-17M이라는 제식명이 부여되었고, 1961년부터 생산되었다.

로켓 부스터를 이용하여 발사되는 개량형 La-17M <출처 : topwar.ru>

1961년 말부터 공장 색인 번호 202를 부여한 La-17M의 개량형 개발에 착수했고, 1964년부터 1월 R-11F2S-300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하고 La-17MM이라는 제식명으로 양산되었다. La-17MM은 비행시간과 항속 거리가 연장되었다.

표적기로서의 성능을 개량하는 와중에 소련 군부에서 전선에서 사용할 카메라를 갖춘 무인항공기, 즉 무인정찰기에 대한 요구가 나왔다. 1960년 말부터 라보치킨 설계국은 La-17M을 기반으로 공장 색인 번호 204를 붙인 사진 촬영용 무인정찰기 개발을 시작했다. 전선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새로운 오토파일럿과 무선 통제 장치를 장착했고, 기수에 카메라를 장착했다.

 

1996년 촬영된 La-17K 훈련 영상

 

1961년 11월부터 1962년 7월까지 시제품의 국가시험이 진행되었고, 1962년 12월부터 1963년 7월까지 두 번째 국가시험이 진행되었다. 1964년 말에 모든 개량과 시험이 끝났고 La-17R이라는 제식명을 부여받았다.

동체 아래, 엔진 연결부 앞에 페어링이 더해진 La-17R은 소련 최초의 전술 무인정찰기로 기록되고 있다. La-17R은 무인전술 정찰기(Takticheskiy bespilotny razvedchik)의 약자를 따 ТБР(영어 TBR)-1으로도 불렸다.

La-17R의 기체는 이후 개량된 표적기 설계에도 이어졌다. 1965년 La-17R의 개량형인 La-17RM이 만들어진 후, 생산 원가 절감을 위해 표적기와 무인정찰기의 형상을 통일한 La-17U가 만들어졌다. La-17U의 표적기형은 La-17UM, 무인정찰기형은 La-17UR로 각각 명명되었다.

동체 아래, 엔진 앞 페어링에 카메라용 창이 달린 La-17R <출처 : xn--80aafy5bs.xn--p1ai>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라보치킨 설계국은 우주선 개발 등으로 임무를 전환하면서 더 이상 La-17 계열의 개발에 관여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La-17과 관련한 업무는 군용 글라이더 등 훈련 장비를 개발하던 소콜 설계국(OKB-Sokol)으로 이관되었다.

소콜 설계국은 1970년대 말에 마지막 변형인 La-17K를 개발했다. La-17K는 미그(Mig)-21 전투기에서 떼어낸 R11F-300 터보제트 엔진에서 애프터버너를 없앤 R-11K-300을 장착했다. La-17K는 1993년까지 생산되었고, 러시아군에서 소량이 운용되었다. 하지만, 정확한 퇴역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특징

La-17 무인항공기는 생산 비용과 운용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최대한 단순한 설계로 만들어졌다. 동체 안에 엔진을 장착할 경우 전체적인 크기가 커져 생산비가 올라가므로, 이를 낮추기 위해 작은 동체에 그 아래 엔진을 장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La-17 삼면도 <출처 : zen.yandex.ru>

주익은 동체 중앙에 장착되는 직선형이며, 동체 끝에는 1개의 대형 수직미익과 수평미익이 달려 있다. 기본적으로 일회용으로 쓰일 것을 염두에 두었기에 착륙용 바퀴 등은 장착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가늘고 긴 둥근 동체를 유지했지만, 정찰기인 La-17R은 동체 아래, 엔진 연결부 앞에 페어링이 더해진 형태를 가졌다.

동체 착륙으로 엔진이 종종 손상되었다. <출처 : airwar.ru>

기체는 파괴되지 않았을 경우 회수를 위해서 지상으로 활주하면서 내려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엔진이 종종 손상되는 일이 발생했다. 엔진 손상을 막기 위해 개량형부터는 낙하산이 장착되었다.

기체는 모두 금속으로 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기체 중간에 연료 탱크가 있고, 바닥엔 연료를 엔진으로 밀어내기 위한 압축 공기가 들어 있었다. 기수에는 무선 조종 신호를 수신하기 위한 장비가 부착되었고, 꼬리 날개에는 오토파일럿 장비가 장착되었다. 이들 장비를 작동시킬 전원을 생산하기 위해 기수 앞에 2엽 프로펠러를 가진 발전기가 장착되었다.

기수부에 있는 발전기용 2엽 프로펠러 <출처 : topwar.ru>

처음 개발된 표적기인 La-17은 투만스키 RD-900 램제트 엔진을 장착했다. La-17은 Tu-4 폭격기를 개조한 기체의 날개 아래에 장착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약 8,000 ~ 8,500m 고도에서 약 500km/h의 속도에서 분리된 후 90초간 하강하면서 900km/h의 속도로 가속되었다. 이때 램제트 엔진이 작동하고 다시 상승하면서 최대 고도 9,750m까지 상승한다. 렘제트 엔진은 10분간 작동이 가능했다.

La-17은 길이 8.4m, 날개 길이 7.5m, 이륙 중량 1,810kg, 최고 속도 900km/h, 비행시간은 최대 40분이었다.

정찰기인 La-17R 내부 배치도 <출처 : weaponsandwarfare.com>

개량형인 La-17M부터는 램제트 엔진 대신 터보제트 엔진이 달리기 시작했다. La-17M에는 RD-9BK 터보제트 엔진이 장착되었다. La-17MM은 R-11F2S-300을, 최종 개량형인 La-17K은 미그(Mig)-21 전투기에서 떼어낸 R11F-300 터보제트 엔진에서 애프터버너를 없앤 R-11K-300을 장착했다. 터보제트 엔진의 장착으로 비행시간이 60분으로 늘어났고, 최대 운용 고도도 17,000m로 높아졌다.

 

La-17R의 정찰 수행 개념 <출처 : weaponsandwarfare.com>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하면서 이륙 방식도 바뀌었다. La-17의 Tu-4 폭격기 개조 기체 대신, 지상에서 PRD-23M 로켓 부스터 2개를 장착하여 이루어졌다. La-17M과 이후 개량형은 KS-19 100mm 대공포 운반차량을 기반으로 개조된 PU-17M 발사대 또는 ZIL-134K 차량을 이용한 SATR-1 발사대를 사용했다.

PU-17M 발사대 위에 있는 La-17K <출처 : topwar.ru>

개량형인 La-17M은 길이 8.4m, 날개 길이 7.5m, 이륙 중량 3,065kg, 최고 속도 880km/h, 운용 거리 490km의 제원을 가졌다.

ZIL-134K 트럭을 이용한 La-17 이동식 발사대 <출처 : arms-expo.ru>

무인정찰기형인 La-17R은 주요 정찰 장비인 카메라로 RNS-40, RNS-20 또는 21-BAF ASCHFA 5M을 장착했다. 나중에는 치비스(Chibis) TV 카메라도 장착되었다. 냉전 당시 핵무기 경쟁도 치열했던 관계로 시그마(Sigma) 방사능 측정 장비도 장착했다.

La-17의 각 개량형 외형 비교도 <출처 : arms-expo.ru>

 


운용 현황

La-17과 개량형은 소련 및 러시아군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La-17은 1956년부터 60년까지 제21 및 제31 공장에서 847대가 생산되었다. La-17M은 1961년부터 트빌리시의 제31 공장, 1962년부터는 오렌부르크의 제47 공장에서 생산이 시작되었다. 오렌부르크의 제47 공장은 La-17MM의 생산도 담당했다.

1970년대 소련군의 운용 모습 <출처 : easternorbat.com>

정찰기인 La-17R은 스몰렌스크의 제475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최종 개량형인 La-17K는 소콜 설계국에서 설계가 이루어졌고, 오렌베르그 기계제작공장(Orenburg Machine-Building Plant)에서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제작되었다.

La-17 계열의 수출은 1980년대 시리아에 La-17M을 소량 판매한 것이 유일하다. 이 밖에 중국이 소련이 제공한 기체를 분석하여 자체 생산했다.

중국이 La-17을 역공학으로 만들어낸 CK-1 <출처 : globalsecurity.org>

1950년대 후반, 소련이 중국에 소량의 La-17을 제공했다. 그러나, 중국은 소련과 관계가 악화되자 역공학(reverse engineer)을 통해 La-17 생산을 시도했다. 중국은 1966년부터 CK(Chang Kong, 영어 Blue Sky)-1이라는 이름으로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CK-1은 RD-9B의 중국 카피판인 WP-6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했다. 중국은 CK-1을 꾸준히 발전시켜 CK-1A로 개량했고, 1983년에는 CK-1B을 만들었고, CK-1C로 개량했다.


변형 및 파생형

La-17: 1956년부터 생산된 초기 생산형 표적기

초기 개발형으로 램제트 엔진을 장착한 La-17 <출처 : airwar.ru>

La-17M: 1961년부터 생산된 RD-9BK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한 개량형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하고 지상에서 로켓 부스터로 이륙하는 La-17M <출처 : airwar.ru>

La-17MM: 1965년부터 생산된 La-17M 개량형. R-11F2S-300 터보제트 엔진 장착.

La-17M을 개량한 La-17MM <출처 : airwar.ru>

La-17R: 1964년 배치 시 시작된 무인정찰기형

동체 아래 페이링이 장착된 La-17R 무인정찰기 <출처 : missiles.ru>

La-17RM: La-17R 개량형

La-17U: La-17RM 개발 후 표적기와 정찰기 설계 통일 위해 개발된 통합형

La-17UM: La-17U의 표적기형

La-17UR: La-17U의 정찰기형

La-17K: 1970년 말 개발된 최종 개량형. 1993년까지 생산. R-11K-300 터보제트 엔진 장착.

La-17의 최종 개량형인 La-17K <출처 : airwar.ru>

 

중국 역공학 모델

CK-1: 1966년 첫 비행 후, 1976년부터 배치된 중국의 역공학 모델

중국이 역공학으로 개발한 CK-1 <출처 : globalsecurity.org>

CK-1A: 핵 방사능 탐지용 무인기

핵 방사능 탐지용 CK-1A <출처 : airwar.ru>

CK-1B: 저고도 대공방어 미사일 훈련용 저고도 표적기

저고도 대공방어 미사일 훈련용 CK-1B <출처 : airwar.ru>

CK-1C: 고고도 대공방어 미사일 훈련용 고고도 표적기

CK-1U: 저고도 대공방어 포대 훈련용 초저고도 표적기


제원(La-17M 기준)

구분: 무인표적기
설계 및 생산: 라보치킨 설계국(OKB-301) /
길이: 8.4m,
날개 길이: 7.5m,
높이: 2.98m
이륙 중량: 3,065kg
최고 속도: 880km/h
운용 거리: 490km
비행 고도: 17,000m
최고 비행시간 : 60분
엔진: 투만스키 RD-9BK 터보제트 엔진


저자 소개

최현호 | 군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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