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물건(一物)

 

 

한 물건이 있으니

天地가 생기기 전에도 항상 있었고 天地가 다 없어진 후에도 항상 있다.

천지가 천 번 생기고 만 번 부서져도 이 물건은 털끝만치도 변동 없이 항상 있다.

크기로 말하면 가없는 허공의 몇 억 만배가 되어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그래서 이 물건의 크기를 큰 바다에 비유하면

十方의 넓고 넓은 허공은 바다 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물거품과 같다.

또 日月보다 몇 억 만배나 더 밝은 광명으로써 항상 十方世界를 비추고 있다.

밝음과 어두움을 벗어난 이 절대적인 광명은 항상 宇宙萬物을 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 물건은 모든 名相과 分別을 떠난 절대적인 것이다.

絶對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지만은 부득이해서 절대라는 것이다.

 

한 물건이란 이름도 지을 수 없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한 물건(一物)이란 이름으로 표현하니

한 물건이란 이름을 붙일 때 벌써 거짓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十方의 모든 부처님이 일시에 나타나서 억천만겁이 다하도록 설명하려 해도

이 물건을 털끝만치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自己가 깨쳐서 쓸 따름이요 남에게 설명도 못하고 할 수도 없다.

이 물건을 깨친 사람은 부처라 하여

生死苦를 영원히 벗어나서 미래가 다하도록 자유재한 것이다.

이 물건을 깨치지 못한 중생들은 항상 生死바다에 헤매어 四生六途에 윤회하면서

억천만겁토록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중생이라도 다 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

깨친 부처나 깨치지 못한 조그마한 개미 벌레까지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다른 것은 이 물건을 깨쳤느냐 못깨쳤느냐에 있다.

釋迦와 達磨도 이 물건은 눈을 들고 보지도 못하고 입을 열어 설명하지도 못한다.

이 물건을 보려고 하면 석가도 눈이 멀고 달마도 눈이 먼다.

또 이 물건을 설명하려고 하면 부처와 조사가 다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오직 깨쳐서 자유자재하게 쓸 따름이다.

그러므로 古人이 말씀하기를 ‘대장경은 모든 고름 닦아 버린 헌종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말하노니

 ‘팔만대장경으로써 사람을 살리려는 것은

설비상으로써 사람을 살리려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경정 가운데도 小乘과 大乘이 있으니,

大乘經에서는 말하기를

‘설사 비상으로써 사람을 먹일지언정 小乘經法으로써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大乘經 역시 비상인줄 왜 몰랐을까? 알면서도 부득이한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크게 정신차려야 한다.

 

오직 이 한물건만 믿는 것을 바른 信心이라 한다.

釋迦도 쓸데없고 達磨도 쓸데없다.

八萬藏經이란 다 무슨 잔소리인가 ?

오로지 이 한물건만 믿고 이것 깨치는 공부만 할 따름이요

그 외에는 전부 외도며 마군이들이다.

모든 사람들은 모두 다 念佛해서

죽어 극락세계에 가서 말할 수 없는 쾌락을 받아도

그러나

나는 이 물건 찾는 工夫를 하다가 잘못되어 지옥에 딸어져

억천만겁토록 무한한 고통을 받더라도

조금도 후회하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오직 이 工夫를 성취하고야 만다!

이러한 決心이 아니면 도저히 이 공부는 성취하지 못한다.

故人은 말씀하기를

‘사람을 죽이면서도 눈 한번 깜짝이지 않는 사람이라야 工夫를 성취한다’고 하였다.

나는 말하노니

‘청상과부가 외동아들이 벼락을 맞아 죽어도

눈썹하나 까딱이지 않을 만한

무서운 생각이 아니면 절대로 이 공부할 생각을 말아라’고 하겠다.

천근을 들려면 천근 들 힘이 필요하고 만근을 들려면 만근 들 힘이 필요하다.

열근도 못들 힘을 가지고 천근 만근을 들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면 미친 사람일 것이다.

힘이 부족하면 하루 바삐 힘을 길러야 한다.

자기를 낳아 길러준 가장 은혜 깊은 부모가 굶어서 길바닥에 엎어져 죽더라도

눈 한번 거들떠 보지 않는 무서운 마음 이것이 古人의 志操이다.

常王이 스승으로 모시려 하여도 목을 베이면 베였지

절대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古人의 지操이다.

四海의 當貴는 풀잎 끝의 이슬 방울이요

만승의 천자는 진흙 위의 똥덩이라는 이런 생각,

이런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야 꿈결같은 세상 영화를 벗어나

영원불멸한 행복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털끝만한 利害로써 칼부림이 나는 소위 지금의 工夫人과는 하늘과 땅일 것이다.

다 떨어진 헌 누더기로써 거품같은 이 몸을 가리우고

심산 토굴에서 감자나 심어 먹고 사는

최저의 생활로써 최대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

오직 大道를 성취하기 위하여 자나깨나 죽을 힘을 다해서 工夫해야 한다.

大를 위해서 小를 희생시키지 않으면 大는 도저히 성취하지 못한다.

 

사람 몸 얻기도 어렵고 佛法 만나기도 어렵다.

모든 佛菩薩은 중생들이 항상 죄 짓는 것을 보고 잠시도 눈물 마를 때가 없다고 한다.

중생이란 알고도 죄짓고 모르고도 죄 짓는다.

항상 말 할 수 없이 많이 지은 罪報로서

四生六途에 돌아 다니며 말 할 수 없는 苦生을 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 몸 얻기란 사막에서 풀잎 얻는 것과 같다.

설사 사람 몸 얻게 된다 하더라도 워낙 罪報이 지중해서 佛法 만나기란 더 어렵고 어렵다.

과거에 수많은 부처님이 출현하시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했건만은

아직껏 生死苦를 면치 못한 것을 보면 佛法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것이다.

이렇게 얻기 어려운 사람 몸을 얻어 더 한층 만나기 어려운 佛法을 만났으니

生命을 떼어놓고 工夫하여 속히 이 한 물건을 깨쳐야 한다.

 

사람의 생명은 허망해서 믿을 수 없나니

어른도 죽고 아이도 죽고 병든 사람도 죽고 멀쩡한 사람도 죽는다.

어느 때 어떻게 죽을지는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생명이니

어찌 工夫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리오?

이 물건을 깨치기 전에 만약 죽게 된다면

또 짐승이 될런지, 새가 될런지, 지옥으로 떨어질런지,

어느 때 다시 사람 몸 받아서 佛法을 만나게 될런지,

佛法을 만나도 최상 최고의 길인

이 한 물건 찾는 工夫를 하게 될는 지 참으로 발 뻗고 통곡할 일이다.

이다지도 얻기 어려운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않으면

다시 어느 生에 工夫하여 이 몸을 건지리오.

제일도 勞力, 제이 제삼도 勞力, 勞力없는 성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勞力한 그 만큼 성공하는 법이니 勞力하고 勞力할 지어다.

 

 

 

 

 

 

 

 

 

 

 

 

 

 

 

 

출처 : 대불정능엄신주
글쓴이 : 정혜스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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