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로 가는길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다. 죽음이란 영혼이 육신의 속박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학대전’을 쓴 토마스 아퀴나스는 존재를 살아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을 혼(anima)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혼은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해 주는 기준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정신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단계가 높아지면서 영계, 즉 영혼은 어디에 가서 거처할까 하고 궁금해 한다. 불교에서는 그곳을 극락이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천당이라고 한다. 둘 다 같은 개념이다.

아미타경에 따르면 극락세계는 아미타불이 설법하고 관장하는 영역으로 10억 부처를 지나서 있다고 한다. 거기서 거듭 태어나는 자는 심신의 괴로움이 없고, 다만 즐거움만 있다고 전한다.

이처럼 공간적인 거리와 사람이 사후에 간다는 시간적인 거리는 물질적인 낙토관(樂土觀)을 담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거기에 중생구제 사상이 담겨져 있다는 점이다. 10억 부처 너머에 아미타부처가 있다면, 은하계로 말하면 10억개의 은하계 저 너머에 극락이 있다는 이야기일까 하고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관념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되었건 사람의 머리로는 영혼이 거처하는 곳을 이해하기 힘들다. 여기저기가 아니다. 영혼은 그냥 우주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공간을 생각하는 인간들의 상상일 뿐이다.

우주 본체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은 전혀 없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하여 만든 개념이다. 시간이란 원래 없는 것이다. 현재 이 순간이 태초이자, 과거 현재 미래이다. 지금은 무한히 계속되며 시작도 끝도 없다.

극락이나 천당이라는 것은 어떤 공간이라기보다는 그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마음 가운데 근심걱정을 완전히 벗어난 상태, 즉 해탈의 상태에서 마음이 안정되어 있을 때, 그런 상태를 극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이 완전히 안정된 상태에 진입한 영혼을 불교에서는 부처, 기독교에서는 성인(Saint)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천당을 공간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영계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영적 세계인 것이다.


 

춘목(春牧) 칼럼니스트

 

 

 

  

마음이 청정하며/명상음악

 

 

 

 

 

출처 : 행복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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