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호(LST)와 장사상륙작전|⊙ 해군 자료

송상교(하128기) | | 조회 1 |추천 0 | 2019.06.27. 23:59 http://cafe.daum.net/offensive/3y5I/687 


<1950915일 경북 영덕군 장사리 앞바다에 좌초한 문산호- 출처 해군>


문산호는 정부 수립 직후 미국으로부터 인수한 수송선으로 교통부 산하 대한해운공사에서 운용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에는 묵호항(現 동해항)에서 석탄운반을 준비하고 있다가 해군에 동원됐다.
    * 문산호는 미국 해군이 1943년 건조한 LST-120함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음


이후 문산호는 1950년 6월 26일 묵호경비부 대원을 묵호에서 포항으로, 7월 27일에는 육군의 이응준 장군이 지휘하는 병력과 차량을 여수에서 진해로 철수시켰다. 특히 문산호는 여수철수작전 시 북한군이 부두 가까이 접근하며 공격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지휘를 맡고 있던 백두산함 명령 없이는 출항할 수 없다며 마지막까지 육군 병력을 탑승시켜 철수를 완료했다.


백두산함 갑판사관 최영섭 해양소년단연맹 고문은 ‘6‧25전쟁과 한국해군작전’ 책에서 “당시 여수 부두까지 적군들이 왔으나 문산호는 출항명령이 없다고 해서 부두에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라며 “문산호 선원들을 어느 군인들 못지않게 군인정신이 투철했다.”고 밝히고 있다.


1950년 9월 14일에는 장사상륙작전에 참가한다.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주력부대를 유인하기 위해 시행됐다. 이에 따라 문산호는 9월 14일 육군 제1유격대 부대원 772명을 태우고 부산을 출항, 이튿날 새벽 포항 북쪽 장사해안에 도착해 태풍으로 인한 강한 파도에도 불구하고 상륙을 감행했다.


당시 문산호는 큰 풍랑으로 닻이 절단되면서 해안가에 좌초됐으나, 문산호 선원들의 해안가 소나무에 홋줄 연결 작업 등 각고의 노력으로 육군 유격대원들을 성공적으로 상륙시킬 수 있었다. 북한군은 대규모 병력이 상륙한 것으로 알고 주력부대를 이동시켰고, 문산호 선원과 유격대원들은 배가 좌초되어 철수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약 일주일간 적과의 전투를 벌여 2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과정에서 우리 군(軍)도 문산호 선원을 포함한 130여 명의 전사자와 11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장사상륙작전에서 전사한 문산호 선원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해군이 지난 2016년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순직선원위령탑 경내에 설립한 ‘LST 문산호 전사자 기념비’>



이러한 문산호 선원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해군은 2016년 부산 영도구에 LST 문산호 전사자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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