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니라 대통령의 本分에 관한 문제다
수금에 뛰어든 대통령이 과연 정상인가

조선 선우정 부국장

입력 2020.09.09 03:20

 

 

 

 

 

 

선우정 부국장

청와대에서 지난 3일 열린 한국판 뉴딜 전략 회의는 ‘대통령은 대체 무엇하는 존재인가’란 기본적 질문을 국민에게 던졌다. 청와대는 그날 회의에 국내 금융권 대표 40여 명을 불렀다. 대통령은 거대 여당 대표,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청와대 비서진을 옆에 두고 “뉴딜 성공을 위해선 금융의 적극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홍콩 증권사는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한국 대통령이 펀드매니저로 나섰다”는 보고서를 냈다. 엄밀히 말하면 비유가 잘못됐다. 대통령은 펀드 자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가 아니라 펀드 자금을 모으는 관제 브로커 혹은 계주(契主)로 나선 것이다.

그날 그 자리엔 참석해도 문제없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권력이든 조폭이든 시장에선 힘이 개입된 세일즈를 강매(强賣)라고 한다. 대통령을 위시한 경제의 권부(權府)가 모두 참여함으로써 그 자리는 회의가 아니라 강매 현장이 됐다. 불려 나간 금융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금융사만 참석했다면 직접이든 간접이든 그들 중 투자에 개입할 수 있는 대표가 있을 수 없다.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금융사 대표의 투자 개입은 허용 자체가 은행의 거대 리스크로 작용한다. 사채 회사가 아닌 웬만한 금융회사라면 대표와 분리된 전문 위원회를 따로 두고 투자를 결정한다. 관치 금융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정착된 금융계의 원칙이다. 청와대만 모를 뿐이다. 대통령의 ‘적극적 뒷받침’ 발언은 그들에게 직권에도 없는 개입을 요구한 것과 다름없다. 그들 중 네 금융지주회사는 채용 비리 혐의로 대표가 문 정권의 사법 심판대에 오른 경험이 있다.

청와대 회의 직후 언론은 손실이 날 경우 결국 세금으로 원금을 보전하는 펀드의 설계 방식을 문제 삼았다. 사실 이 펀드는 국가 재정을 지렛대 삼아 거대 민간 자금을 끌어모으는 전대미문의 특혜 펀드이자 투자의 자기 책임 원칙을 허물어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괴물 펀드다. 국민 세금을 담보로 민간의 돈을 꿔서 창출해 내는 정권 펀드와 다름없다. 이전 정권도 관제 펀드를 유도한 일이 있다. 하지만 세금을 담보로 원금을 보장하지 않았다. ‘돈 놓고 돈 먹기’지 이게 무슨 투자 상품인가. 손익에 상관없이 대한민국 금융시장에 이런 펀드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의 본분(本分)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펀드 수금에 뛰어드는 모습은 과연 정상인가.

과거에도 나라의 최고 책임자가 이례적으로 수금에 직접 뛰어든 적이 있다. 대한제국 시절 고종이다. 나라가 거덜 나고 있을 때 고종은 황실 기능을 역대 최대 규모로 키웠다. 요즘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하는 궁내부가 돈도 직접 찍고 홍삼도 직접 팔고 세금까지 직접 거뒀다. 해외 투자자도 직접 찾았다. 그 돈으로 탄광도 직접 개발하고 철도도 직접 깔았다. ‘도통(道統)과 치통(治統)을 겸비한 초월적 성인(聖人) 군주’라는 간판을 내세워 황제가 시장의 말단까지 지배하려 했지만 사실은 저물어가는 왕조의 열등감과 초조감이 만들어낸 허상의 권력에 불과했다. 결과는 한국 근대사가 보여준 그대로다.

군주가 직접 나서면 당연히 일반 백성을 상대로 한 무명 잡세까지 더 잘 걷힌다.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하는 데 황제 권력만큼 강력한 배경이 또 있을까.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세금은 물론 펀드 수금도 더 잘된다. 그럼에도 역대 군주나 대통령이 그런 일을 꺼린 것은 그것이 그들의 본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 사가(史家)들은 군주의 본분을 “영웅을 발탁하는 것과 민심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했고, 군주가 구구한 일에 나설 때 “도리의 본말(本末)을 어둡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웅’을 ‘인재’로 바꾸면 현대의 대통령만이 아니라 평범한 중소기업 사장에게도 적용되는 직분의 정의일 것이다.

문 정권이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철학이라니까. 그런데 5년짜리 정권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빚 400조원을 국민에게 물려주고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좀 더 안정적인 수익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곗돈 모으듯 펀드 수금에 나섰다. 이것은 큰 정부, 작은 정부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역할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몰고 가고 있다. 문 대통령도 고종처럼 자신을 ‘도통과 치통을 겸비한 초월적 성인 군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일까. “찍으면 무조건 대박 난다”는 족집게 도사의 경지까지 도달했다고 여기는 것일까. 내 눈엔 재정을 거덜 낸 절대 권력이 국민의 호주머니로 눈을 돌리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선우정 부국장 편집국 부국장 겸 뉴스 총괄에디터

 

논설위원, 사회·국제·주말뉴스부장, 도쿄특파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