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들어낸 바다의 영웅들
3척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들은 그야말로 해전사의 전설들이다. 지금까지 이들 형제들보다 뛰어난 전공을 올린 항공모함은 없다.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현재 미 해군은 양적, 질적으로 미국 이외 모든 국가의 해군을 합친 것보다도 강력할 만큼 압도적인데 이는 제2차 대전의 유산이다. 미국은 사상 최대의 전쟁을 거치면서 불과 4년 만에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전력을 구축했다. 이후 시대 흐름에 발맞춰 여러 차례 감축이 이루어졌음에도 장기간 지속된 냉전과 패권에 대한 열망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절대 강자의 지위를 고수하고 있다.
일본의 급습 직전인 1941년 10월의 진주만. 당시에도 미국 해군은 세계 1위였지만 지금처럼 경쟁국들을 압도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 Public Domain >
제2차 대전 이전에도 미국은 세계 1위이기는 했지만 다자간 군축으로 인해 주력함 기준으로만 보면 전통의 해군 강국인 영국과 공동 선두였다. 그다음인 일본과는 5 : 3 정도로 앞섰으나 전력을 태평양과 대서양에 나누어 배치한 관계로 양국이 마주한 태평양만 놓고 보자면 우위를 장담할 형편은 아니었다. 이는 일본이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을 급습해서 태평양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해군력은 구축하는 데 비용은 차치하고 일단 시간이 많이 든다. 때문에 일본은 초전에 미국 태평양 함대를 궤멸 수준으로 타격하면 미국이 순순히 강화에 응할 것이라 낙관했다.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해군을 격멸시킨 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던 경험이 이런 결정을 내리도록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는 엄청난 착각이었지만 미국이 전쟁의 주도권을 잡기 이전인 1942년까지 벌어진 대결은 그야말로 일진일퇴의 연속이었다.
1941년 12월 초, 진주만을 급습하기 위해 은밀히 항진 중인 일본 항공모함 카가(좌)와 주이카쿠. 이처럼 태평양 전쟁은 항공모함에 의해 시작되었고 전쟁 내내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 Public Domain >
이때 바다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것이 항공모함이었다. 전쟁의 시작이었던 진주만 급습부터 종전 때까지 벌어진 수많은 격전들에서 미국과 일본의 항공모함들은 예외 없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함포의 사거리 밖에서 출격한 함재기들이 공격의 선봉에 서면서 오래된 해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그렇게 19세기 말부터 반세기가 넘게 해군 사상을 지배하며 전함, 순양함 등으로 상징되던 거함거포의 시대는 홀연히 사라져갔다.
이때를 전환점으로 바다의 제왕에 오른 항공모함은 오늘날 강대국을 상징하는 강력한 전략 무기가 되었다. 특히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은 2020년 현재 도전할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존재이며 미국이 개입한 전쟁, 분쟁, 위기 상황에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는 한다. 이처럼 더 이상 미국과 바다에서 싸울 상대가 없으니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항공모함을 앞세워 벌인 해전은 태평양전쟁이 마지막이다.
1942년 10월 26일, 산타크루즈 해전 당시에 일본군의 맹폭을 받는 CV-6 엔터프라이즈. 요크타운급 3형제 중 유일하게 종전 때까지 생존한 불사신이었다. < Public Domain >
당시 많은 항공모함들이 제작되어 활약을 펼쳤는데, 그중에서 3척의 요크타운급(Yorktown class)은 가히 신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흔적을 해전사에 남겼다. 바다를 중심으로 벌어진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전쟁의 물꼬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인류사에 있었던 수많은 해전 중에서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과를 남긴 특정 군함은 없었고 앞으로도 재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항공모함이 대단한 무기지만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등에서는 전쟁의 향방을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바다에서 미 해군을 상대로 해전을 할 수 없다 보니 벌어진 일종의 착시다. 해전은 전선을 형성해서 밀고 당기며 싸우는 것이 아니어서 아무리 전투 공역이 넓어도 상대의 핵심 전력을 잡으면 그것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특히 양측의 전력이 팽팽할 때 효과가 크다. 요크타운급이 바로 그런 역할을 담당했다.
유일하게 3형제가 모두 참전한 미드웨이 해전 첫날에 전투 공역을 향해 항진 중인 CV-5 요크타운. < Public Domain >
이들의 탄생은 제1차 대전 후 단행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과 관련이 많다. 각국의 주력함 보유가 제한을 받게 되면서 많은 전함, 순양함의 건조가 취소되었는데, 이때 이들 선체를 이용한 항공모함이 대거 등장했다. 여전히 거함거포를 맹신하던 시절이었지만 운용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자 1922년 실전 배치된 일본 해군의 호쇼(鳳翔)를 시작으로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설계되고 제작된 함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여타 국가처럼 기존 선체를 개량한 항공모함을 운용하고 있었던 미국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1940년대에 활약할 신예 항공모함 획득 계획을 수립했다. 그런데 당시 항공모함은 탄생한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낯선 무기여서 프로젝트를 시작한 1931년에도 모르는 것이 많았다. 미국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우선 기준 배수량 15,000톤의 경항공모함 제작에 나서 1934년 CV-4 레인저(Ranger)라는 이름으로 취역시켰다.
CV-4 레인저는 미국 최초로 항공모함으로 설계되고 건조된 항공모함이다. 이를 건조하면서 터득한 많은 기술과 노하우가 요크타운급에 적용되었다. < Public Domain >
레인저는 순양함을 기반으로 제작된 기존 렉싱턴(Lexington)급보다 크기가 작았지만 운용 효율은 오히려 뛰어났다. 하지만 여러 문제점도 함께 드러나면서 구조를 개선하고 좀 더 선체를 키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검토 끝에 3척의 신예 항공모함은 기준 배수량이 20,000톤은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 보유가 허용된 항공모함 총 톤수가 135,000톤이었는데 남은 여유는 55,000톤뿐이었다.
고심 끝에 미국은 2척은 20,000톤 급으로, 나머지 한 척은 15,000톤 규모의 경항공모함으로 획득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1934년 5월, 7월에 각각 건조에 착수해 1937년에 CV-5 요크타운이, 이듬해 CV-6 엔터프라이즈(Enterprise)가 순차적으로 취역했다. 이들이 바로 요크타운급이다. 그런데 요크타운급이 건조에 착수한 바로 그 해 일본이 군축 조약을 탈퇴하고 해군력 증강을 선언하면서 상황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1937년 2월 8일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 동시에 건조 중인 CV-5 요크타운(우)과 CV-6 엔터프라이즈. < Public Domain >
이에 따라 요크타운급을 축소한 형태로 설계가 완료되어 기공을 앞두고 있던 경항공모함 CV-7 와스프(Wasp)와는 별개로 요크타운급의 추가 발주가 이루어졌다. 1939년 9월 25일, 착공에 들어간 3번 함 CV-8 호넷(Hornet)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대전이 발발한 직후였기에 건조가 신속히 진행되었고 진주만을 급습 당하기 50여 일 전에 취역했다. 그렇게 미국은 최초 구상대로 3척의 요크타운급을 확보할 수 있었다.
특징
석탄 운반선을 개조해서 만든 미국 최초의 항공모함 CV-1 랭글리(Langley). 요크타운급도 처음에는 이 같은 평갑판 구조로 예정되었었다. < Public Domain >
초창기 항공모함은 이전에 없던 함종이고 기존 군함이나 상선의 선체를 개조해서 만들다 보니 그야말로 모양과 구조가 중구난방이었다. 최초의 항공모함 중 하나인 영국의 퓨리어스(HMS Furious)는 선체 중앙에 함교가 있고 선수와 선미에 각각 비행갑판을 설치했을 정도였다. 미국의 개발팀은 이런 식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나하나 알게 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요크타운급을 설계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평갑판으로 예정했으나 이런 방식을 채택한 항공모함들이 보일러의 배기가스 배출과 함재기 통제에 애로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져 함교가 도입되었다. 순양전함을 개조한 렉싱턴급의 밀폐식 격납고와 달리 실험용으로 건조한 레인저의 개방식 격납고가 효과적이라고 보고 이를 채택했다. 때문에 실전에서 유폭 에너지를 밖으로 빼내지 못해 낭패를 본 렉싱턴급과 달리 요크타운급은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요크타운급은 비행갑판 하부의 격납고 측면이 외부에 개방된 형태여서 전투나 사고로 유폭이 벌어질 경우 외부로 폭발 에너지를 즉시 방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 Public Domain >
승강기는 비행갑판 중앙을 따라 3개가 설치되었다. 당연히 함재기 이동 시 이함이나 착함이 어려웠다. 같은 시기에 건조된 와스프가 초보적이고 효율적인 구조는 아니지만 선체 측면에 승강기를 설치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속한 에섹스(Essex)급, 미드웨이(Midway)급도 취역 당시에 이런 방식을 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초창기 측면 승강기의 설치 및 운용이 생각보다는 어려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영국의 커레지어스(Courageous)급이나 일본의 카가(加賀), 아카기(赤城) 같은 초기 항공모함 중 일부는 이함과 착함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다층 구조 갑판을 갖추었다. 운용해 본 결과 효과가 나빠서 이후 단일 갑판으로 개조되기는 했으나 이런 영향 때문이었는지 요크타운급도 처음에 격납고에서 함재기가 곧바로 이함 할 수 있도록 선수 부분에도 사출기를 설치했다. 하지만 효과가 너무 떨어지고 공간만 차지해 얼마 지나지 않아 제거되었다.
1945년 5월 21일, 가미카제의 자살 공격을 받은 CV-6 엔터프라이즈. 요크타운급은 배수량을 맞추기 위해 장갑의 많은 부분을 포기했지만 생각보다 방어력이 좋았다. < Public Domain >
요크타운급은 기준 배수량 19,800톤에 만재 배수량 25,500톤으로 제작되었다. 사실 해군은 27,000톤 정도가 되어야 원하는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워싱턴 군축 조약을 준수하다 보니 축소하고 포기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무게를 상당 부분 차지하는 장갑이 그랬는데, 대표적으로 어뢰의 공격을 버티는 방뢰 능력은 그저 형식적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실전에서 양호한 방어력을 발휘했다.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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