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이셔스급 항공모함

현대 항공모함의 기원이 된 영국 해군의 자부심

 

1970년 지중해에서 항진 중인 오데이셔스급 항공모함 1번 함 이글(R05). 원래 예정된 함명은 오데이셔스이었다. 때문에 정작 해당 함은 없지만 오데이셔스급으로 불린다. < 출처 : (cc) Isaac Newton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미국은 함정에서 항공기의 이착함을 처음으로 성공시킨 나라다. 그리고 현재 항공모함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전력을 운용 중이다. 그런데 정작 항공모함을 최초로 만든 나라는 영국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1위의 해군을 보유했던 전통의 해군 강국답게 그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고 전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항공모함과 관련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의 대부분을 선도했다.

여객선 선체를 개조해서 만든 최초의 항공모함 아거스(I49). 이처럼 영국은 새로운 해군의 역사를 선도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래서 핵 추진 정도를 제외한다면 현대 항공모함의 기본이 되는 기술과 노하우의 대부분이 영국에서 탄생했다. 최초로 항공모함을 실전에 투입했고 최초로 격침된 항공모함도 영국 것이었다. 당연히 후발국들은 영국이 개척한 길을 벤치마킹했다. 그렇게 역사에 등장한 항공모함은 제2차 대전을 거치면서 해전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전함, 순양전함을 밀어내고 바다의 제왕이 되면서 거함거포 시대를 순식간 종식시켰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거대한 변화를 이끈 주역은 후발국의 항공모함이었다. 타란토항 공습, 비스마르크 추격전처럼 일부 전과가 있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연일 엄청난 격전을 이끌고 있던 미국, 일본의 항공모함들과 비교한다면 영국의 항공모함 활약상은 인상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전시에 영국 해군이 본토에 인접한 대서양, 지중해에서의 작전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데이셔스급의 개발 기반이 되었던 임플래커블(R86). 갑판이 장갑화된 좋은 항공모함이었으나 크기가 작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제2차 대전 이후 제트기 운용이 어려워 조기 퇴역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제2차 대전 발발 당시에 프랑스는 동맹이었고 해군력 공동 1위였던 미국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일본이 문제였으나 지리적으로 멀어서 충돌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우려스러운 상대인 독일, 이탈리아, 소련은 바다에서 영국과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영국과 바다에서 대결을 벌일 나라가 없었다. 때문에 항공모함이 주인공으로 나설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해서 항공모함 함대를 별도로 운용한 미국, 일본과 달리 영국의 항공모함은 전함 중심으로 구성된 함대를 지원하는 용도였기에 10척이나 보유했음에도 작전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발발한 태평양전쟁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당장 독일과 싸우기 바빴음에도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절감한 영국은 1942년 당시 기준으로 초대형에 속하는 만재 배수량 43,000톤 규모의 신형 항공모함 제작에 착수했다.

아크로열(R09)의 취역 직후 모습. 원래 예정된 함명은 이리지스터블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는 당시 미국이 본격 도입 중이던 에식스급보다 10,000여 톤이 더 나가는 규모였다. 애초 4척 획득을 예정했으나 연합국의 승리가 확실시되면서 2척은 취소되었다. 원래 초도함은 오데이셔스(Audacious)로 명명이 예정되었으나 1942년에 유보트의 공격으로 산화한 항공모함 이글(Eagle)의 함명을 승계하기로 바뀌었다. 사실 이글은 원래 3번 함에 부여하기로 예정된 이름이었으나 건조가 취소되면서 초도함에 명명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때 이리지스터블(Irresistible)로 예정되었던 2번 함도 비스마르크를 잡는 데 공을 세웠으나 1941년에 격침당한 항공모함 아크로열(Ark Royal)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전시에 장렬하게 싸우다 상실한 항공모함들을 복원한다는 조치였다. 그만큼 영국 해군이 새로운 항공모함에 걸었던 기대는 컸다. 이런 이유로 인해 취소된 것을 포함해 4척의 동급함들은 오데이셔스급 항공모함으로 불리지만 정작 오데이셔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1972년 아크로열(R09)의 항행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나 1943년을 넘어서부터 유럽 전역에서 항공모함의 역할이 감소되었고 미국의 막대한 지원이 개시되자 건조는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1945년 종전이 되면서 건조가 중단되었다. 곧이어 닥친 대대적인 군비 감축으로 기존에 운용하던 수많은 함정들마저 대거 퇴역에 들어가는 상황이다 보니 당연한 조치라 할 수 있었다. 노후함 대체 등을 고려하여 프로젝트를 완전히 취소한 것은 아니었으나 앞날이 불투명했다.

선체가 거의 완성된 1번 함 이글은 이듬해 3월 진수는 했으나 기약도 없이 바다 위에 떠 있어야 했고 2번 함 아크로열은 건조가 취소될 가능성이 보였다. 바로 그때 냉전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건조가 재개되어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1년에 이글이, 1955년에는 아크로열이 각각 취역했다. 이처럼 기공에서 취역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기는 했으나 제트 시대의 도래에 맞춰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퇴역 직전이던 1978년 노포크에 정박 중인 아크로열과 니미츠. 크기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활약 당시에는 미국의 슈퍼캐리어 다음의 항공모함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경사갑판(Angled Deck), 증기사출기, 착함 유도장치 등등은 이후 등장하는 항공모함들이 따라 한 대표적 기술들이다. 덕분에 오데이셔스급은 현대 항공모함의 기원으로도 여겨진다. 이후에 성능 향상을 위해 수차례의 개장이 이루어지면서 1979년 퇴역 당시에 아크로열은 만재 배수량이 50,000톤을 넘겼다. 35년 후인 2014년에서야 퀸엘리자베스가 취역하면서 영국은 이보다 더 큰 항공모함을 가질 수 있었을 정도로 컸다.


특징

오데이셔스급의 기반이 되었던 임플래커블(Implacable)급은 제2차 대전 기준으로 보자면 시대를 선도할 만한 항공모함이었으나 앞서 언급한 이유로 말미암아 갑판과 격납고의 크기가 작았다. 때문에 제트기 시대에 진입하면서 함재기 운용에 애를 먹다가 결국 개량을 포기하고 조기 퇴역했다. 그래서 오데이셔스급은 장갑화된 비행갑판 같은 장점은 그대로 승계하고 크기를 늘리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1964년 촬영된 이글. 이착함 공간을 분리시키기 위해 경사갑판을 설치했다. 그러나 승강기가 선수와 선미 중앙에 설치되어 운용 효율이 좋지 않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처음에는 전형적인 대전형 평갑판 구조였으나 앞서 언급처럼 중심축에서 8.5도의 기울어진 경사갑판을 설치해 이착함 공간을 분리했다. 이는 반사경을 이용한 착함 장치와 더불어 항공모함 역사에 혁명적인 변화를 이끈 기술들이었다. 2기의 증기사출기를 장착했으나 성능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 한 기는 설치된 위치가 착함로와 겹쳤다. 또한 2개의 승강기도 갑판 중앙에 설치되어 효율성을 떨어뜨렸다.

아크로열에서 이함 하기 위해 출력을 올리는 F-4K 팬텀 FG.1. < 출처 : Public Domain >

활동 당시에 오데이셔스급은 미국의 슈퍼캐리어 다음가는 항공모함이었지만 새로운 기술들을 완벽하게 구현하기에는 작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시캣 대공미사일 발사기 6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장을 제거하고 방공 임무는 호위함들이 담당하도록 조치되었다. 이후 F-4K 팬텀 FG.1 도입에 맞춰서 추가 개장을 실시해야 했는데 비용 문제로 아크로열만 개량이 이루어졌고 이글은 조기 퇴역했다.


운용 현황

오데이셔스급은 제2차 대전 후에 식민지들이 대거 독립하면서 주로 본토 인근에서 활동했고 영국의 이익이 걸린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에 원정을 나가고는 했다. 이글은 1956년에 발발한 제2차 중동전쟁에 참전하면서 최초의 실전을 벌였다.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연합군의 전력이 이집트를 압도해서 별다른 차질 없이 작전을 수행했다. 그 외 1964년 인도네시아 분쟁, 1966년 로디지아 석유 금수 작전, 1967년 남예멘 공산화 당시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글은 실전 기록이 많은 편이나 제2차 중동전쟁을 제외한다면 위력 과시 등을 목적으로 모습을 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에 비한다면 아크로열은 실전 경험이 없다시피했다. 제2차 중동전쟁 당시에 출동했으나 추진 계통에 심각한 고장이 발생하면서 중도에 귀환했다. 1970년 훈련 도중에 소련 해군의 구축함과 충돌하면서 선체 일부가 손상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양측 모두 과실이 커서 문제가 크게 비화되지는 않았다. 1972년에는 벨리즈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던 과테말라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카리브해에 전개되기도 했다.

1971년 북대서양에서 미국의 인디펜던스와 합동 훈련 중인 아크로열. < 출처 : Public Domain >

원래 오데이셔스급은 미국의 포레스탈급과 맞먹은 CVA-01이 실전 배치될 때까지 활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이유로 후속함 사업이 취소되면서 개량을 거쳐 1970년대 말까지 활약했다. 이후 영국은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한 경항공모함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퀸엘리자베스급이 도입되기 전까지 영국 해군에게는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던 역사를 상징하는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은 존재였다.


변형 및 파생형

HMS Eagle(R05)

발주 1942년(최초 함명: Audacious)
기공 1942년 10월 24일
진수 1946년 3월 19일
취역 1951년 10월 5일
퇴역 1972년 1월 26일

HMS 이글 < 출처 : (cc) Isaac Newton at Wikimedia.org >

HMS Ark Royal(R09)

발주 1942년(최초 함명: Irresistible)
기공 1943년 5월 3일
진수 1950년 5월 3일
취역 1955년 2월 22일
퇴역 1979년 2월 14일

HMS 아크로열 < 출처 : (cc) Isaac Newton at Wikimedia.org >

HMS Eagle

발주 1942년
기공 1944년 4월 16일
취소 1946년 1월

HMS Africa

발주 1943년
취소 1945년 10월 15일


제원(Ark Royal[R09])

경하 배수량: 43,340톤
만재 배수량: 53,060톤
전장: 245m
선폭: 52m (개장 후)
흘수: 10m
추진기관: 8×어드미럴티 3드럼 보일러(총 113,000kW)
4×파슨스 터빈
4×프로펠러
속력: 31.5노트
무장: 4×시캣 함대공미사일(개장 후)
함재기: 38기(개장 후)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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