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죽어서 가게 된다는 천당과 지옥은 우리에겐 아직도 영원한 미스터리인가. 언제나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의문,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문제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질 수밖에 없는가. 영계(靈界)를 볼 수도 없고 또한 만질 수도 없다고 해서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사후(死後)세계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각자 종교적 신념이나 세계관에 따라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종교인은 죽음이 ‘존재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생물학적인 사망 이후에도 의식이나 생명이 어떤 형태로든 지속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유대교나 기독교 등 중동의 종교 전통과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 인도의 종교 전통이 이같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유교를 비롯한 중국 문화권의 종교 전통은 죽음이란 말 그대로 ‘존재의 소멸’로 간주합니다.
영계는 아직 우리에겐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영계의 비밀이 밝혀진다면 지상인들에게는 혁명적 변화가 오게 될 것입니다. 우선 교리적 차이나 이해타산에 따라 분열을 거듭해온 종교의 혼란을 수습할 뿐만 아니라 인간 각자의 생활태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즉 많은 사람이 증거하듯이 지상생활이 영계의 삶을 위한 준비기간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세상에 이만한 구속력을 가진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생과 사, 혹은 사후세계에 대한 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은 물론 아직 지상의 삶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까지도 모두 사후에 전개될 세계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제 사후세계에 대한 미스터리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증거를 통해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영통인(靈通人)이나 ‘사후 보고서’와 같은 영계 관련 서적들을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영계에서 수많은 영통인들을 통해 계시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애벌레가 각고의 어려움, 즉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허물을 벗고 대자연의 품속에 안기듯이, 인간도 언젠가는 육신의 탈을 벗어던지고 시공을 초월하는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에 휩싸일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식, 영계의 삶에 대해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계에 대한 증언의 공통점
사후세계에 대한 증언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영계는 천리법도, 원리원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정도나 정직과 같은 원리원칙이 인격의 잣대가 된다는 것은 영계나 지상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청소년들이 성적으로 타락하고 가난과 병마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며 전쟁으로 죽고 죽이는 세상이 된 것은 천리법도가 무너진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주나 인간의 육신에서 원리원칙의 극치를 보게 됩니다. 만일 영계가 있다고 한다면 그 세계는 이보다 더 원리원칙이 적용되는 세계일 것입니다. 이 사실은 많은 영통인이 증언하는 내용입니다. 그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지상에서 일탈된 삶을 살 것이 아니라 원리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영계는 사랑의 세계입니다. 인간생활에서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부부나 이웃 간의 사랑이든 하나님의 사랑이든지 간에 사랑은 늘 강조돼 왔습니다. 성인들도 물론 사랑을 최고의 덕목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면 영계에서는 어떨까요. 영계에서도 사랑은 영인들의 인격을 가늠하는 최고의 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은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을 테고, 나라와 세계를 사랑했던 사람은 그만한 수준의 세계에 살 수 있습니다. 역시 남을 괴롭혔던 사람, 자기만을 위해 산 사람은 사랑의 세계에서는 도저히 양심의 가책 때문에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이 넘치는 곳, 살맛나는 세상이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영계는 자율적 통제가 이뤄지는 세계입니다. 지상인이 임종 후 자기 스스로 심판하고 자신의 영적 기준에 맞춰 거처를 찾아가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영계가 원리원칙이 강조되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영계에서도 좋은 곳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본래 인간은 지상생활에서 영혼을 성장시킨 후에 영계에 가도록 돼 있습니다. 결국 육신의 허물을 벗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세계, 영혼의 세상에서 어느 곳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육신생활을 통해 만들어진 영혼의 반응에 따라 결정됩니다. 따라서 영계의 삶은 지상에서 자신의 영혼을 어떻게 잘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욕심에 찌들려 살았거나 늘 의심의 눈초리로 타인을 보는 데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영계라는 별천지 세계에서도 그 습관을 버리기 어렵습니다. 세상에서 비뚤어진 성격을 바꾸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잘못 형성된 영혼으로서는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 영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옥을 만들거나 인간을 그 지옥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영계에서 스스로 자기가 살 곳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영인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영계는 판사들이 없다. 세상에서 말하는 그러한 대심판관도 없다. 누구나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처리한다. 자신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 된다. 그러한 심판은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지상에서 한정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 기간 우리는 인격의 성숙을 위해 온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성장은 육체와 정신의 성숙을 의미합니다. 즉 지상생활은 참인간으로 성숙되기 위한 훈련기간이라고 보면 됩니다. 참인간으로 성숙될 때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요 삶의 목표와 의미가 제대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논리이지만 교육이나 종교가 그것을 추구해 왔고 성인이나 위인들이 한결같이 주장해온 내용입니다. 종교인이나 영계 연구자들이 주장하지 않더라도 지상생활의 최대 목표는 정신적으로 성숙하여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분명히 그것을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을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성장시킬 수 있을까요. 각 종교단체는 영계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영혼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영계에 대한 교육에 나설 때입니다. 각자는 지상에서 영혼을 올바로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면서 영계의 삶을 준비할 때가 지금입니다.
◇영계에 대한 준비, 올바른 영혼 성장법
영계는 지상생활을 통해 성장된 영혼이 생활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영계의 삶이 행복하려면 지상생활에서 자신의 영혼을 올바르게 성장시키는 길밖에 없습니다. 영계의 행복한 삶을 위한 준비, 영혼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세가지 원칙을 특별히 지켜야 합니다.
그 첫째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 즉 자연 순응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세상의 존재 목표가 있다면 그 뜻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연 순응적 삶, 다시 말하면 자연의 순리대로 산다는 것은 요즘 이야기하는 생태주의적 삶을 말합니다. 생태주의는 천지법도적 삶이요 도덕·진리적 삶입니다. 최근 각 분야에서 생태주의가 크게 부각되는 것은 마구잡이식 개발경쟁으로 자연환경의 훼손상태가 심각해진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지만 ‘지은 바 그대로’, 즉 인간과 자연의 조화 없이는 인간의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환경친화적 삶은 본래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돕고 살게 돼 있는 천리법도 때문이기도 합니다. 원리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간과 인간의 조화, 즉 상대방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연체적, 공생체적 관계로 이뤄졌기 때문에 서로 돕지 않을 경우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처럼 인간 서로 간에도 적용됩니다. 성인들이 부르짖은 사랑이나 자비, 인(仁), 희생적 삶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반대되는 이기심이나 타락적 근성과 같은 것은 인간이 배우면 배울수록 자기에게 손해를 가져오게 됩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경쟁논리도 따지고 보면 장점도 있지만 인간성을 말살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인간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기독교의 주장대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창조목적대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본연의 행복된 삶을 통해 영혼을 올바르게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한 이후 한번도 창조본연의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창조본연의 삶은 자연순응적 삶이요, 남과 어울려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행복의 극치를 지상에서 맛볼 때만이 영계에서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영계를 아는 이들의 증언입니다.
영계에 대한 실상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금 인간에게는 신비스럽고 복잡하기만 한 영계의 내용을 체계화하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와 과학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영계의 신비를 밝혀줄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관심만 갖는다면 불가능할 일도 아닙니다. 지금 안타깝게도 지상인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영계에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계에서 전개되는 모든 생활이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영계에 대한 교육을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타락성을 벗어버리는 교육, 영혼을 올바로 성장시키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천국생활을 위해 영계의 구조와 규범, 영인들의 자세 등을 담은 커리큘럼을 만들어 교육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개인을 위한 삶은 생존 중심의 1차원적 삶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정립한 터전 위에서 2차원적 삶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즉 개인과 개인의 집합체인 사회적 삶, 공생체적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어서 3차원의 삶인 영적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입체적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는가 하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여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정말 인간다운 삶, 영원한 세계를 위해 영혼을 올바로 성장시키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