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神話)
고대 인도의 신화에 의하면, 일식과 월식은 행성의 하나이며 유성의 왕으로 여겨진 악마의 별 라후(Rhu)에 의해 발생된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태고적에 신들이 바닷물을 휘저어 애써서 만들어낸 불사(不死)의 음료 암리타를 악마들의 손에서 되찾아 그것을 마시려고 모였을 때 라후는 교묘하게 변장하여 신들의 일원인 것처럼 그 자리에 섞여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눈치를 챈 태양과 달이 그의 정체를 간파하여 대신(大神) 비슈누에게 알렸다. 이 때문에 라후는 암리타를 막 한 모금 마시는 순간에 비슈누의 무기인 원반에 의해 목이 잘려져 머리는 신음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날아 올랐고, 몸통은 지면에 쓰러져 대지를 진동시켰다. 그러나 이미 암리타를 마셨으므로 불사신이 된 라후의 머리는 그대로 별이 되어 태양과 달을 쫓아가서 삼켜버려 일식과 월식을 일으켜 옛날의 원한을 계속 풀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먀오족[苗族]의 신화에 의하면, 태양은 원래 10개가 있었고 순서에 따라 출현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시에 하늘에 나와 세계를 혹독한 열로 괴롭히고 가뭄을 가져왔다.
그래서 국왕이 활의 명수에게 명해 9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게 했더니 마지막 남은 태양이 이를 두려워하여 산 뒤로 숨어버려, 암흑이 오래 계속되었다. 국왕이 이번에는 목소리가 큰 동물에게 태양을 불러내도록 명했다. 사자와 소가 실패한 다음 수탉이 부르자 그 아름다운 목소리에 끌린 태양이 동쪽 산정에 얼굴을 보여 세계가 즉시 밝아졌다.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며 환영하자, 태양은 앞으로는 밤의 휴식 뒤에 수탉이 부르면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그 증거로 붉은 포(布)로 볏을 만들어 수탉에게 주었다.
북유럽의 신화에 의하면, 태양은 스콜이라는 이름의 늑대에 쫓기고 달은 하티라는 늑대에 쫓기고 있었는데, 이 늑대들이 가끔 태양과 달을 삼키면 일식이나 월식이 생긴다고 믿었다. 이때 사람들은 모든 물건 소리와 외침소리를 내어 늑대를 놀라게 하여 삼키고 있는 태양이나 달을 토해내도록 했다.
이와 같이 태양과 달이 괴물에 삼켜지면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때에는 지상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어 괴물에게 태양이나 달을 토해내도록 해야 된다고 하는 신앙과 풍속이 전세계에 퍼져 있다. 남아메리카 투피족의 신앙에 의하면, 태양과 달을 위협하고 있는 괴물은 재규어(jagar)인데, 인도 아삼지방의 나가족 신앙에서는 그것을 호랑이라 믿었으며, 아삼의 쿠키족이나 아프리카 북서안 마데이라제도의 원주민은 그것을 개라 믿었고, 인도네시아의 여러 지방에서는 뱀으로 여겼다.
괴물을 위협할 목적으로 에스키모 사람들은 개의 귀를 잡아당겨 짖게 했으며, 모리타니에서는 하늘을 향해 발포했고, 다른 많은 지역에서는 북이나 징을 크게 울렸다.
중국 고대의 일식 의례 중국에서 일식은 모든 생명력의 원천인 태양의 변이현상으로서 고대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대상이었고, 이를 구하기 위한 갖가지 의례를 낳았다. 이미 은(殷)나라의 복사(卜辭)에 일식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나타나 있고,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시월지교(十月之交)>에는 당시의 정치적 혼란에 대한 천견(天譴)으로서 읊어져 있다.
《좌씨전(左氏傳)》 소공(昭公) 16년에 구일(救日)의 의례로서 <고;악관)가 고(鼓)를 울리고, 색부(嗇夫:재물을 관장하는 사람)는 뛰며, 서인(庶人;색부의 부하)은 달린다>라고 나와 있는데, 이것은 태양의 힘을 회복하기 위한 의례로 여겨진다.
한(漢)의 《백호통(白虎通)》에는 북을 치고 공물을 바치고 빨강실을 둘러치며 떠들었다고 하는데, 《구오대사(舊五代史)》에는 무장한 병마를 내보내 떠들썩하게 했다고 한다. 이와같은 주술적 의례의 방법은 세계적인 공통이지만 다만 중국에서 이것이 신화적 방법으로 전해지지 않은 것은 음양사상 등에 의한 자연해석이 일찍부터 행해졌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한국에서의 일식 전통적으로 재이(災異) 중 가장 의미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고대사회 이래로 관측·기록되었다. 한국에서 태양은 제왕을 상징한다고 믿었으므로 일식은 곧 제왕이 본래의 빛을 잃는 것으로 여겨져서 흉조라고 생각하였다. 기록상으로 보면, 일식은 《삼국사기》에 67건, 《고려사》에 132건이 기록되어 있다.
또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삼국시대에 66건(고구려 11회, 백제 26회, 신라 29회), 고려시대에 131건, 조선시대에 190건이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BC 54년(신라 박혁거세 4) 4월 1일 첫 일식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식은 중요한 재이로 여겨져 재앙을 예방하기 위하여 고려·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구식의(救蝕儀)를 행하였다.
《고려사》 <예지(禮志)>에 따르면,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백관이 소복을 하고 북을 울렸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여러 나라와 유사한 면을 보이고 있다. 또 신하들이 검은 관에 소복을 차려 입고 시립하면 왕이 소복하고 들어와 의식을 진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일식을 일종의 정치적 사건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었는데, 이는 유교적 재이사상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출처:네이버 질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