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급 구축함

대형 구축함 시대의 선구자

미처급의 선도함인 미처함(DL-2). 선도 구축함이지만 아직도 2차 대전 당시 순양함의 외형이 남아 있다. <출처 : 미 해군>


개발의 역사

2차 대전을 거치면서 해전의 주역에서 물러난 전함과 달리 구축함(DD, Destroyer)은 전쟁 중에 크게 활약하면서 주력 전투함의 위치로 승격하였다. 구축함은 파괴자라는 명칭 그대로 주력 함대를 노리는 성가신 어뢰정을 쫓아내기 위해 영국 해군이 개발한 군함이다. 이처럼 어뢰정을 격파하기 위해 등장한 구축함의 주요 무장은 함포와 어뢰발사관이다. 특히, 구축함은 덩치가 크고 무거운 전함보다 민첩하고 빠르게 항해할 수 있으며, 실전에서 대잠, 대공, 정찰, 어뢰 공격, 기뢰 부설, 고속 수송 등 다양한 임무를 해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구축함은 어뢰로 무장한 대형 어뢰정에 불과하였고 대잠 및 대공 방어용으로 건조된 전투함은 아니었다. 치열한 태평양 해전은 구축함을 성능의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구축함의 배수량은 2,000톤 정도에 불과하고 다양한 임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탑재하기에는 공간이 크게 부족하였다.

플레처급은 태평양 전쟁에서 미 해군의 주력 구축함으로 활약하였지만 성능의 한계를 드러냈다. <출처 : 미 해군>

2차 대전 당시 많은 구축함이 기동함대에 배속되자 구축함 전대를 지휘할 군함이 필요하였다. 급한 대로 미 해군은 경순양함으로 하여금 구축함 전대의 지휘를 맡도록 하였다. 다수의 함포를 탑재한 경순양함은 30 노트(knot) 항해가 가능하기 때문에 충분히 구축함 전대를 지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순양함은 구축함보다 건조 비용이 높아서 대량으로 건조하기에는 예산 측면에서 비경제적이었다.

다양한 임무를 위해 각종 장비를 추가한 결과 함대 구축함은 대형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출처 : 미 해군>

이러한 이유로 영국 해군은 경순양함 대신에 선도 구축함(DL, Destroyer, Leader)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군함을 고안하였다. 향도(嚮導) 구축함이라고도 불리는 선도(先導) 구축함은 말 그대로 구축함 전대를 지휘하는 군함이다. 구축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휘관이 작전을 지휘하는 지휘통제실과 고성능 통신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선체도 일반 구축함보다 약간 크다.

소련 해군은 독일 해군의 21형 잠수함 기술을 입수하는데 성공하였다. <출처 : 미 해군>

2차 대전이 끝나고 미 해군은 순양함과 구축함의 중간급(Mid-Mix)에 해당하는 함대 구축함(Fleet Destroyer)을 검토하였다. 대잠 작전에 필수적인 장비인 고출력 대형 소나(sonar)를 탑재하려면 아무래도 기존의 소형 구축함으로는 부족하였다. 2차 대전 중에 항모기동함대는 고속으로 항해하면 대부분 적 잠수함의 위협을 피할 수 있었다. 재래식 잠수함의 속도는 수상에서 20노트, 수중에서 10노트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30노트로 항해하는 항모기동함대를 추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 말에 등장한 독일 해군의 21형(XXI) 잠수함은 잠항 속도가 17노트로 높아졌고 슈노켈(snorkel)을 사용하여 계속 잠항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악천후에도 파도를 헤치고 끈질기게 잠수함을 사냥하려면 구축함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대잠 구축함의 대형화 가능성을 열어준 노퍽급 선도 구축함 <출처 : 미 해군>

2차 대전 당시 미 해군 구축함의 배수량은 플레처급 2,000톤, 기어링급 2,600톤 정도였다. 그러나 대잠 소나와 더불어 대공 탐색 레이더까지 탑재하면서 함대 구축함의 배수량은 3,500톤을 넘어서게 되었다. 더구나 선도 구축함은 항모기동함대의 대공 방어까지 맡고 있어서 대형화는 필연적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함대 구축함이 바로 미처(Mitscher)급이다. 계획 단계에서는 함대 구축함(DD-927~DD-930)으로 분류되었으나 선체가 너무 커서 1951년에 선도 구축함(DL)으로 변경되었다. 선도함인 미처함(DL-2)은 1953년에 취역하였으며, 1955년에 프리깃(DL, Frigate)으로 함종이 변경되었다.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미처급 선도 구축함 <출처 : 미 해군>

미 해군 최초의 선도 구축함인 노퍽함(DL-1)은 대잠작전용 경순양함(CLK, Cruiser, Light, submarine Killer)으로 출발하여 선도 구축함으로 변경되었다. 반면에 미처급은 반대로 함대 구축함으로 출발하여 대형화되면서 선도 구축함으로 승격한 경우에 속한다. 미처함(DL2)은 노퍽함(1951년 12월 29일)보다 간발의 차이로 늦게 진수(1952년 1월 26일) 되어 최초의 선도 구축함이라는 영예를 노퍽함(DL-1)에 빼앗기고 말았다.


특징

선체

미처급은 거친 바다에서 항해할 수 있도록 함수의 건현이 높다. <출처 : 미 해군>

미처급은 함대 구축함에서 발전하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플레처(Fletcher)급부터 시작된 평갑판 선형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다만 선체가 대형화되면서 건현이 상당히 높아져서 높은 파도에서 항해하는 데 유리하다.

미처급 구축함의 승조원 거주 구역 <출처 : Swtpc6800 at wikimedia.org>

선체의 규모로 구분할 때 미처급은 구축함과 경순양함의 중간 정도에 속한다. 따라서 대전형 구축함보다 함교 구조물이 높고 크며, 연돌과 함포의 배치가 균형이 잡혀 있어서 당당하고 강인한 인상을 주는 점이 특징이다.

진수를 마치고 의장 작업 중인 미처급 선도 구축함. 옆에 있는 기어링급 구축함(DD-828)과 비교할 때 선체의 규모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출처 : 미 해군>

 

기관

선체가 대형화되었지만 본래 구축함인 미처급은 고속으로 항해할 수 있다. <출처 : 미 해군>

주기관은 고압 보일러를 사용하여 증기 터빈을 구동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미처급은 미 해군 최초로 1,200 psi 급 고압 보일러를 탑재하였다. 대형 선체가 고속으로 항해하려면 큰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큰 힘을 얻으려면 보일러 역시 더 커져야 한다. 그러나 한정된 함내 공간에서 주기관을 대형화하면 연료 탑재량이 줄어들면서 항속 거리가 급속하게 짧아진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 해군은 보일러의 크기를 줄이고 증기의 압력을 더욱 높여서 증기 터빈을 구동하는 방식을 개발하였다. 기관실은 전후 분리되어 있고 각 기관실에는 2기의 보일러와 1기의 증기 터빈이 있다. 각 증기 터빈은 40,000 마력의 출력을 발휘하며 2축 추진 방식으로 항해한다. 증기 터빈은 고속항해용 고압터빈, 순항용 중압터빈, 후진용 저압터빈이 구분되어 있다. 각 터빈에는 출력 500kW 발전기가 2대씩 설치되어 있고 비상용 출력 300kW 디젤 발전기 2대를 별도로 갖추고 있다.

연안에서 저속으로 항해하는 존 S. 맥케인(DDG-36) 미사일 구축함 <출처 : 미 해군>

 

대공무장

RIM-24 타타 함대공 미사일이 개발되면서 미 해군의 구축함은 강력한 방공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출처 : 미 해군>

미 해군은 1958년부터 타이폰 전투체계(Typhon Combat System)라고 불리는 오늘날 이지스 전투체계(Aegis Combat System)와 비슷한 고성능 대공방어체계를 개발하였다. 그러나 아날로그 기술의 한계와 개발비 상승으로 인하여 1964년에 개발이 중단되었다. 타이폰 전투체계의 개발이 중단되자 함대방공의 공백을 우려한 미 해군은 기존의 대잠 구축함을 차출하여 타타 체계(Tartar System)를 탑재하는 미사일 구축함으로 개조하였다. 미처급의 경우에도 선도함(DL-2), 2번함(DL-3)이 미사일 구축함으로 개조되었다. 주요 개조 내역은 후방의 3인치 함포 철거, RIM-24 타타 함대공 미사일 발사용 Mk.13 단장 발사기 설치, 함내 미사일 탄약고 설치 등이다.

360도 회전하면서 넓은 범위에서 공중 목표물을 탐색하는 AN/SPS-6 레이더 <출처 : Panda 51 at wikimedia.org>

미처급은 함대방공 임무를 위해 AN/SPS-6 대공탐색 레이더, AN/SPS-8 고각측정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 미처급은 단순하게 내습하는 적기에 대한 방어에만 머물지 않고 함대의 대공 방어 구역에 있는 아군 항공기를 유도, 관제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미사일 구축함으로 개조된 미처급 2척(DDG-35~36)의 레이더는 RIM-24 타타 함대공 미사일을 탑재하면서 AN/SPS-37 대공탐색 레이더, AN/SPS-48 3차원 대공탐색 레이더로 개량되었다.

미사일 구축함으로 성능 개량된 미처급 2척은 방위와 고각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AN/SPS-48 3차원 대공 탐색 레이더를 탑재하였다. <출처 : 미 해군>

 

대잠무장

RUR-4 웨폰 알파 대잠 박격포의 사격 훈련 <출처 : 미 해군>

1950년대에 대잠 작전에 효과적인 신형 소나와 무장이 개발되자 1960년에 미 해군은 4척의 미처급을 대상으로 FRAM(Fleet Rehabilitation And Modernization) 성능 개량에 준하는 개조를 실시하였다. FRAM 성능개량의 개념은 개량형 고출력 소나를 사용하여 적 잠수함을 조기에 탐지하고, 어뢰로 무장한 무인헬기를 출격시켜 신속하게 추격, 섬멸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QH-50 무인헬기를 탑재하는 개조가 우선적이었다. 한편, 구형 533mm 연장 어뢰발사관은 신형 324mm 3연장 어뢰발사기로 변경되었다. 취역 당시 탑재되었던 Mk.108 웨폰 알파(Weapon Alfa) 대잠 박격포는 신형 70구경 3인치 함포가 설치되면서 중량 문제로 철거되었다. 한편 미사일 구축함으로 개조된 3번함, 4번함은 함교 구조물 전방에 Mk.16 ASROC 8연장 발사기가 설치되었다.

고성능 대잠 장비라고 할 수 있는 AN/SQS-26 고출력 소나는 미처급 3번함과 4번함에만 설치되었다. <출처 : 미 해군>

취역 당시 미처급은 QHB 탐색용 소나, AN/SQG-1 공격용 소나를 탑재하였다. 이후 1950년대에 구형 소나는 AN/SQS-4 소나로 교체되었다. 선도함(DL-2)과 2번함(DL-3)은 미사일 구축함으로 개조되면서 AN/SQS-23 소나, 3번함(DL-4), 4번함(DL-5)은 FRAM 성능 개량을 통해 신형 AN/SQS-26 저주파 소나로 교체되었다.

 

함포

1950년대 미 해군의 표준 함포인 Mk.42 54구경 5인치 단장 함포 <출처 : 미 해군>

미처급은 건조 당시 고속 사격이 가능한 Mk.26 70구경 3인치(76.2mm) 연장 함포와 Mk.42 54구경 단장 5인치(127mm) 함포를 탑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신형 3인치 함포의 개발이 지연되자 일단 기존 Mk.33 50구경 3인치 연장 함포를 탑재하고 취역하였다. 함포는 상부 구조물의 전방과 후방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전후방 및 측방에 대한 사격이 모두 가능하다. 미처급의 함포는 모두 레이더를 사용하여 사격을 통제하며 대수상, 대지 사격은 Mk.67/Mk.68, 대공 사격은 Mk.56 함포사격통제체계(GFCS)를 사용한다. Mk.26 70구경 3인치 함포의 개발이 끝나자 1957년부터 Mk.33 50구경 3인치 함포는 신형 3인치 함포로 교체되었다.

 

탑재헬기

대형 선체를 가진 미처급은 미사일 구축함으로 개량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가지고 있다. <출처 : 미 해군>

취역 당시 미처급은 헬기를 탑재하지 않았고 비행갑판도 없었다. 이후 FRAM 성능 개량을 통해 후방 3인치 포탑을 철거하고 QH-50 DASH(Drone Anti-Submarine Helicopter) 무인헬기가 내릴 수 있는 비행갑판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추락 사고가 계속 발생하면서 QH-50 무인헬기의 활약은 단기간에 그쳤다. 미 해군은 FRAM 성능 개량을 추진하면서 구축함에 헬기 탑재가 가능한지 확인하고자 1957년에 미처급의 후방갑판에서 벨(Bell) HTL 소형헬기의 착함을 실험하였다.


동급함(미처급 4척)

고속으로 항해하는 미처급 선도 구축함 <출처 : 미 해군>

함번

함명

착공

진수

취역

퇴역

건조

비고

DD-927/

DL-2/

DDG-35

미처

(Mitscher)

1949.10.3

1952.1.26

1953.5.15

1978.6.1

Bath Iron Works

해체

DD-928/

DL-3/

DDG-36

S. 맥케인

(John S. McCain)

1949.10.24

1952.7.12

1953.10.12

1978.4.29

Bath Iron Works

해체

DD-929/

DL-4

윌리스 A.

(Willis A. Lee)

1949.11.1

1952.1.26

1954.9.28

1969.12.19

Bethlehem Steel

해체

DD-930/

DL-5

윌킨슨

(Wilkinson)

1950.2.1

1952.4.23

1954.7.29

1969.12.19

Bethlehem Steel

해체


운용 현황

미처급 구축함은 2차 대전 중에 건조된 구축함과 달리 위풍당당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출처 : 미 해군>

선도 구축함으로 취역한 미처급(DL-2~DL-5) 4척 중에서 선도함(DL-2)과 2번함(DL-3)은 1960년대에 미 해군의 함대방공 능력의 강화 방침에 따라 타타 함대공 미사일을 탑재하는 미사일 구축함(DDG-35/-36)으로 개조되었다. 미처급 3번함(DL-4)과 4번함(DL-5)은 예산 문제로 미사일 구축함으로 개조되지 못하고 신형 AN/SQS-26 저주파 소나를 선수 돔(bow dome)에 탑재하는 개조가 실시되었다. 미사일 구축함으로 개조된 선도함과 2번함은 1978년까지 항모기동함대의 방공 임무를 수행하였다. 반면에 3번함과 4번함은 미사일 구축함으로 개조되지 못한 채 대잠 임무에만 투입되었다. 1960년대에 소련 해군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 증가하면서 미처급의 대잠 작전 능력 부족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추가적인 성능 개량을 하기에는 선체가 노후화된 상태였다. 이에 따라 성능 개량 없이 2척(DL-4/DL-5) 모두 1969년에 퇴역하였다.

미사일 구축함으로 개조된 미처함(DDG-35) <출처 : Swtpc6800 at wikimedia.org>

 


제원

함명 : 미처급
함종 : 미사일 구축함(DDG)
만재 배수량 : 5,200톤
전장 : 150.3m
전폭 : 15.2m
흘수 : 6.7m
최대 속도 : 33kt
항속 거리 : 4,500nm/20kt
승조원 : 377명(사관 28명)
주기관 : 보일러 × 4, 증기터빈(40,000 마력) × 2, 2축 추진
무장(미사일) : Mk.13 Mod.2 단장 Tartar 함대공 미사일 발사기(40발) × 1
무장(대잠) : Mk.16 ASROC 8연장 발사기 × 1, Mk.32 3연장 어뢰발사관 × 2
무장(함포) : Mk.42 5인치(127 mm)/54 단장 함포 × 2
레이더 : AN/SPS-37 대공탐색 레이더, AN/SPS-48 3차원 대공탐색 레이더
소나 : AN/SQS-23


저자 소개

이재필 | 군사 저술가

항공 및 방위산업 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실무적 경험을 바탕으로, 군용기와 민항기를 모두 포함한 항공산업의 발전과 역사, 그리고 해군 함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국내 여러 매체에 방산과 항공 관련 원고를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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