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S 정치   2009.07.10

 

“북한, 당과 인민의 후계자 추대 곧 있을 것”
박한식 조지아대 교수가 본 '북한은 지금'
미 여기자 실형 선고하고도 형 집행하지 않는 건 미국과의 대화 노린 것
최근 연달아 쏜 미사일 군함 격침 능력 과시 목적 … 후계자 문제와 상관 없어

북한이 심상치 않다. 핵실험과 잇따른 미사일 발사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 문제도 주변국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김영희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가 지난 4일부터 4박5일 동안 평양을 방문한 박한식 조지아대 석좌교수를 9일 오후 만나 최근 북한의 분위기를 들어봤다.


-북한의 후계자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평양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가까운 장래에 후계자 문제가 공식화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후계자 문제에 대한 언급조차 꺼리던 사람들이 ‘당과 인민이 추대하는 일이 가까운 장래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유사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지도층 사이에선 공감대가 있는 듯했습니다.”

-현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인 김정운이 유력하게 얘기되고 있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누가 후계자로 결정됐는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현재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 통치가 고착화돼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 없는 김정일 시대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에는 이미 모든 분야에서 정책 노선이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차기 계승자는 정책 결정에 큰 고심을 하지 않아도, 큰 지혜나 지식이 없어도 별 문제가 없으리라 봅니다.”

-최근 미사일 발사를 후계자 문제와 연관 짓는 견해들도 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것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과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북한의 상선을 다른 나라의 해군 군함이 와서 조사를 하는 것은 해적 행위가 아니냐고 반발합니다. 군함을 미사일로 격침시킬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한 걸로 해석됩니다.”

-미국은 매우 강경합니다. 이번에는 손을 보겠다는 입장 아닌가요.

“냉정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주는 군수산업자들 입장에선 북한이 절대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들이 작성하는 보고서에 가장 첫 번째 위협국으로 북한을 꼽는 게 증거입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정치 신인이다 보니 군수산업의 이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개혁·개방, 민주주의, 인권을 강조합니다. 유연성을 가지고 다양성을 포용하자는 원칙도 있지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중간 수준의 입장입니다. 반면 네오콘들은 북한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화와 충돌을 놓고 혼돈스러운 것입니다.”

-미국 여기자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나요.

“여기자들은 초대소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북한을 흠집 내려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려 한 것에 대해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미국의 입장 표명이 없다는 서운함도 묻어났습니다. 정치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조문단을 보내지 않고 핵실험을 강행한 것을 두고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핵실험은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 같아요. 실험 직전에 노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당황한 것 같아요. 조문단 파견에 대해선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남북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정주영·정몽헌 회장 장례식 때는 관계가 좋아 말하기 쉬웠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남북관계 전망은 어떻게 하시나요.

“북한 입장에선 MB정부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극한적인 입장인 것 같아요. 차기 정권에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선거에서도 현 정부와 대북정책 기조를 같이하는 정권이 들어선다면 남북관계 단절은 장기화할 것입니다.” 

정리=정용수 기자

◆박한식 교수는=2004년 11월 북한과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트랙2 대화’를 개최하는 등 북·미 민간 교류의 전면에 섰던 대북 전문가. 그동안 북한을 40여 차례 다녀왔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 후보의 한반도 정책팀장 등과 친분이 두텁다.

출처 : 해군 병기사 모임
글쓴이 : 송상교(하128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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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박정희 대통령의 삶의 사진 공개 ** 

 




 




 




 




 




 




 




 




 




 




 




 




 




 




 




 




 




 




 




 


 

 

 

 

출처 : 행복 에너지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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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자 625

 

6.25 전쟁은 400만 여명의 인명피해와 1.000만여명의 이산가족, 수많은 상이군인, 전쟁미망인 전쟁고아들이 

생겨나고 국토의 80%이상이 파괴되는등 우리 민족사에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6.25전쟁 56주년을 맞이하여 북한 공산세력의 무력 적화통일 야욕을 저지하고 자유를 수호하기위해

헌신한 국내,외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아울러 6.25전쟁의 역사적 의미와 값진교훈을

우리의 후세들에게 올바로 인식시켜 주어야 하겠읍니다. 

 



‘6.25 그 역사의 순간’ 미공개 사진 완전공개

▲ M-26 tank를 배경으로 자신의 남동생을 업고 사진을 찍은 소녀
 

 최근 한국전쟁 당시의 생생한 전쟁터 모습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주한미군에서 공개해 화제가 되고있다.

 

 플리커 닷컴(http://www.flickr.com/photos/imcomkorea/sets/72157607808414225)과 유튜브(http://www.youtube.com)를 통해 일반에 공개한 이번 사진, 영상들은 6.25 전쟁 당시 미군 사진사들과 카메라맨들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한국전쟁당시 참혹했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사진에는 탱크를 배경으로 아이를 업고있는 소녀의 모습과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슬퍼하는 사람들의 장면, 부상자를 헬기로 후송하는 장면, 북으로 진군하던 유엔군이 38선을 거쳐 퇴각하는 장면, 그리고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장면 등 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모습이 담겨져있다.

 

 사진 중에는 특히 전장에서 동료를 잃은 슬픔에 다른 동료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고 있는 한 미군병사의 모습 뒤로 다른 병사가 태연하게 사망자를 기록하는 모습과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남한에 주둔 중이던 1만 3천여명의 미 해병 1사단 장병들을 앞에 두고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미국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위문공연 차원에서 노래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 죽은 아버지를 잡고 슬퍼하는 가족들

 

 

▲ 미해병이 잡은 북한군들

 

 

▲ 길에서 혼자 울고있는 아이

 

▲ 자는 아이 옆에서 걱정하는 부모

 

▲ 미군에 입양된 고아

 

 

 

 

 

 

 

 

 

 

 

 

 

 

 

 

 

 

 

 

 

 

 

▲ 야간 로켓발사

 

▲ UN 공수부대 강하

 

▲ 피난 행렬

 

▲ 전장에서 동료를 잃은 슬픔에 다른 동료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고 있는 한 미군병사의 모습 뒤로 다른 병사가 '태연하게' 사망자를 기록하는 모습

 

▲ 31연대 예배모습

 

▲ 마를린 먼로 위문공연
 

 

 

 

▲ 유엔총사령관 맥아더 장군
 


▲ 아내와 8개월된 아들을 안아주는 군인

 

 자료를 공개한 시설관리사령부의 에드워드 존슨 대변인은 "이 자료들은 한국전쟁 당시와 그 이후의 한국 역사를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라며 공개된 자료들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출처 : 산수원 대추마을
글쓴이 : 대추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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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향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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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인 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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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군 병기사 모임
글쓴이 : 송상교(하128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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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중의 삐라. 포스터. 전단지 그리고

1948년에 있었던

여순반란사건의 관계 전단지 자료들을 올려 봅니다.

쉽게 구경하기 어려웠던 귀한 자료들입니다. 
 



1. 독립행진곡. 1945년 해방 기념으로 나온 엽서 뒷면입니다.

여기에 독립행진곡 가사가 1절부터 3절까지 소개되어 있습니다.

독립행진곡은 지금까지 1절까지만 주로 알려져 왔습니다.





 

 2. 6.25 전쟁 발발 후 첫 삐라.
 

1950.6.29일 맥아더장군이 영등포 전선을 시찰한 직후인

30일경 후퇴하는 국군과 피난민들에게 뿌린 삐라로

일본주둔 미군이 참전한다는 내용입니다.
 

주일 미군은 7.1일 참전, 삐라의 앞면에는 유엔마크 아래

국한문으로 뒷면에는 영문으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10*16센치 크기입니다.

 

국제연합회는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에게 평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의 무법한 침략에 대하여 반항하는 귀국을

원조하라고 요청하였음으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원조하겠습니다.
 

견고, 침착, 대담하며 맹렬히 적을 대항하십시오.

우리는 한국과 힘을 합하여 침략자를 귀국으로부터 격퇴하겠습니다.





  

도민에게 고함.

6.25 당시 수도 서울을 사흘만에 함락당하고 후퇴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계속 국민들에게는 승리의 소식을 전함으로써

동요를 막고자 했습니다. 이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도민 여러분
북한 괴뢰군은 불법하게도 남침을 감행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용감한 군경은 그들을 맹렬히 반격하고 있는 중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 공군은 28일 밤에는 평양을 비롯한 이북 5대도시를

맹폭하고 30일 아치에는 재차 평양, 함흥, 원산, 평강 비행장을

폭격해서 그들의 비행기 60대 이상을 폭파하고 기지를

사용 불능케까지 하였습니다.
 

남침해 있는 괴뢰군은 그 후퇴로까지 완전히 단절당하여

독안의 쥐가 되고 그완전잔멸은 시간 문제입니다.

해안 역시 우리 해공군이 철통같이 수비하여 괴뢰군이

1인도 상륙할 여지없게 되어있습니다.

도민 여러분은 군경작전에 절대 신뢰하시고 유언, 억측 등에

동요되지 말고 각자 생업에 충실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단기 4283년 6월 30일 경상북도 공보과 발표





6.25전쟁 당시의 사진을 표지 사진으로 한

최근의 미국 잡지 [스미소니안]입니다.
피난민과 미군이 서로 엇갈려 걸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6.25 전쟁 당시 중국 정부가 발행한 징집 통지서입니다.

 중국은 이 전쟁을 항미원조전쟁(미제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는 전쟁)이라 부릅니다.

'희보'(喜報,기쁜 소식)와 '항미원조 보가위국' (미제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자  국가를 보위하자)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백선엽 장군이 발행한 귀순증명서.

지리산 지구 빨치산 토벌 작전 당시의 귀순증입니다.


 

 

6.25 전쟁당시 전선으로 보낼 혈액을 공급하기 위하여

미국당국이 제작한 헌혈을 권장하는 포스터로

1950년에 제작된 것입니다.


 



6.25 전쟁을 다룬 미국 영화 포스터.

미션 오버 코리아 라는 제목의 영화
포스터 입니다. 1953년에 제작된 것.


 

 

미군 입대 독려 포스터.

1951년 미국에서 발행된 포스터로 군대에 자원

입대할 것을 독려하는 내용입니다.


 




유엔측에서 뿌린 삐라입니다.




 

북한에서 발행한 전쟁 포스터입니다.

1950년7월 15일 탁원길의 작품이며, '미제국주의'의 총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줄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모자의 모습을

표현하고있습니다. (서울 아트뱅크 소장)


 



1951년 겨울에 뿌려진 삐라입니다.


 



우리측이 뿌린 삐라입니다.

중공군은 좋은 무기는 자기네가 차지하고 못쓸 무기만 북한군에

넘겨주고 있다. 왜? 북한이 약해져서 집어 먹기 쉬우니까..

북한주민들이여! 이젠 여려분이 중공군이 왜 북한군에 쏘지 못할

무기만 넘겨주는지 알았을 것이다.

중공군은 여러분의 적이다!!






우리측이 뿌린 삐라입니다.

참된 애국자로서 중공군이 한국에 들어오기를 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한국에 와 있는가?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있게 때문이다.

한국의 자유를 말살함으로써 덕을 보는 장본인이.....

그것은 로서아다. 반공! 항로!


 

 

우리측이 뿌린 삐라입니다.

 

북한과 중공지도자들은 그들이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로서아의

비밀승락없이는 감히 한국에 대한 침략전을 시작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침략전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한국사람이 죽었으며

수백만명이 집을 잃게되어 한때 자랑스럽고 아름답던

한국이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되었으나 로서아는

여전히 뒤에 앉아 불붙은 침략전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뒤에 서서 이 침략전을 지휘하고 있는 로서아의

침략정책으로 인하여 남녀노소 아까운 한국사람들만

마구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로서아 식민지 노예 정책에 결사 반대하라!!


 



유엔군측에서 인민군에게 뿌린 삐리입니다.


인민군을 멀리하라. 우리측이 뿌린 삐라입니다.
 



 

전단지입니다.

여순반란사건 당시 지리산의 빨치산에게 뿌린 것인데,

갱지에 인쇄한 것이라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해독 불능한 부분을 포함해 내용을 올립니다.

山사람이여 보라.

이치없는 주장과 불가능한 목적아래 희망없이 단말마적인

농산(籠山)을 계속하고 있는 산 사람 여러분!

군들이 그와 같이 굶고 헐벗고 산야를 헤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족을 위함인가? 가족을 위함인가? 또는 자손을 위함인가?

민족을 위한다면 동족 상잔이 무슨 말이며, 가족을 위한다면 헐벗고

굶주리며살고 있는 그대의 가족들은 어찌 된 일인가?

이가 자손을 위함이 아님은 두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대들의 그릇된 사상과 행동으로 인한 일거수 일투족이

우리리 민국을 해하며 민족을 상하고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
 

그러타면 그대들의 사상과 목적이란 근본부터 전복되는

것이 아닌가. 그대들이여 뉘우쳐라. 우리 민족은 4천년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 아닌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싸워야 하며

서로 죽여야 하겠는가 서로 서로가 우리 3천리 강토에서

새로 전 세계의 승인을 받은 당당한 대한민국을 받들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타민족 타국가에 지지않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지 않으려는가?

그대들이여 사람에게는 누구나 한번은 과오가 있는것이고,

잘못을 생각할때 결연히 그 과오를 청산함에는 절대적인

용기가 필요하며 그는 우리도 잘안다.
 

군들이여 군들의 압길을 생각하여 보라.

날은 점점 추워질 것이며 식량 , 탄약 역시 결핍하여

질것이고 그 위에 정예한 우리 국군의 대대적인 토벌도

근일 중에 있을 것이라. 그러면 군들에게는 죽음이 있을

뿐인가? 아니다. 단 한가지 살길이 있다.

그것은 즉 이번 대통령명령으로 또는 전투사령부에서 선명하신

1월말일까지 무기 지참자는 이유불문하고 즉시 석방함.

무기불지참자도 우(오른쪽)에 00하라는 관대하신 은전000.

산에 있는 그대들이여. 이것이 0000이니 돌연 과오를

청산하고 하루 속히 근방에 있는 지서나 대한청년단으로

귀순하라. 그러면 그대들의 가족의 안전은 물론

그대들도 무조건 석방할 것이다.

이를 믿지 못하는 자여. 대통령께서나 사령관께서

공적으로 천명한 것을 이행하지 않을 이유가 어데 있는가?

잘못을 뉘우쳐라. 결연한 결심을 가지고 이 관대한

은전을 굳게 믿고 하루 속히 나오라.

우리는 따뜻한 마음으로 두손 들고 맞으리라.

                                              대한청년단보도부


 



전단지입니다.

 

제군들과 함께 싸우던 이 병사는 유엔측으로 넘어온

후로부터 조곰도 먹을 걱정없이 매일을 기쁘게 지나고 있다.

귀순한 10여만 동료들과 같이 그는 지난 날의 긴 야간 행군을 할 때

배고프던 그 쓰라림을 또 다시 겪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그는 지금 배부르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군들은 어떠한가. 왜 제군들은 유엔측이 먹을 것을 보증

하는데도 불구하고 굶어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어서 유엔군측으로 넘어오라!!





최근에 구한 현대사 자료입니다.

제목은 반란제군에 고함. 이 전단지의 작성일은 1949년 1월 15일.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항쟁하고 있는

'반란군'을 회유하기 위한 전단지로 보입니다.

식별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원문을 옮깁니다.
 

반란제군에 고함

제군은 다같은 백의민족이다. 혈통이 같고 풍속이 같고 언어가 같은

단군성조의 자손이 아니냐?? 일시적 그릇된 모략과 선동에 유인되어

자신을 희생하고 부모와 처자를 잃으며 선영을 욕되게 할 이유가

무엇인가? 살인, 방화, 약탈, 강간 등 어느 사회에서나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인 것이다. 인간은 한때의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고치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제군이 어떠한 죄들을 지었다 할 지라도 하루빨리 이를 뉘우치고

자수해 돌아오면 제군의 신명을 안보할 수(편히 지킬 수) 있고

부모와 처자로 더불어 평화스러운 가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좌의 방침으로써 제군의 장래를 보장할 터이니 이 기회를 잃지말고

속히 돌아와 대한민국의 참다운 국민이되라. 만약 차시에

귀순 안한 자는 철처히 전멸 당할 것이다.
 

그대들의 부모와 처자는 눈물로써 그대들의 귀순을 기다리고 있다.

깊이 반성하라.
 

1. 1월 말일까지 무기휴대 귀순자는 죄상여하를 불문하고 석방함.

무기지참치 안한 자도 선처한다.

기타 좌익 단체에 가입한 자도 자수한 자도 이와 같이 선처함

4282년 1월 15일

투사령관 제5구경찰서장
구례군수 대한청년단장
국민회 구례지부 구례군시국대책위원회



                                                             

전장에피는꽃 / 블루벨즈

출처 : 竹馬故友
글쓴이 : 오인의 벗 원글보기
메모 :

 

 


 
 
 
      우주의 저 멀리 돌아오지 않는 육여사 ―1974년 11월 1일

                   


                  한국의 밤은 깊어만 가고


                  초생달 밤하늘에 은빛의 별


                  슬픔을 안겨준 국민의 벗이여


                  꽃같이 아름답고 우아한 마음

                  우주의 저멀리 돌아오지 않는 육여사


                  한국의 바다에 해가 저물고

                  산 하늘의 새 날아가도다

                  세월은 유사같이 행복은 사라지고

                  꽃같이 아름답고 우아한 마음

                  우주의 저멀리 돌아오지 않는 육여사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1974년 9월 4일(수)
               
                                                                       박 정 희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몇번이나 다짐했건만
              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
              그 우아한 모습 그 다정한 목소리
              그 온화한 미소 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
              이제는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버리려고 하면 더욱 더

              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
              당신의 그림자
              당신의 손때
              당신의 체취
              당신의 앉았던 의자
              당신이 만지던 물건
              당신이 입던 의복
              당신이 신던 신발
              당신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이거 보세요" "어디계세요"
              평생을 두고 나에게
              "여보" 한번 부르지 못하던
              결혼하던 그날부터 이십사년간
              하루같이 정숙하고도 상냥한 아내로서
              간직하여온 현모양처의 덕을 어찌 잊으리.
              어찌 잊을수가 있으리.

               

               
               

              출처 : 지식백과
              글쓴이 : 삽살개 원글보기
              메모 :

               

              1972년 吳源哲 경제수석이 작성, 보고한 核무기 개발의 마스터 플랜 ; 『1980년대 초, 高純度 플루토늄彈을 완성한다』

               

               

              플루토늄彈을 건의

                

              1970년대 朴正熙 대통령의 지시 아래 진행된 한국 정부의 核무기 개발 계획이 최근 문서로 확인됐다. 이 核개발 비밀문서는 청와대 제2경제수석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1972년 9월8일 吳源哲(오원철ㆍ74) 당시 대통령 제2 경제수석(중화학 공업 및 방위산업 담당)이 朴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비밀 보고서는 그간 공공연한 비밀로만 알려져 온 朴대통령의 核개발 계획이 우리 국내 문서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史料的(사료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표지를 포함, A4용지 아홉 장 분량인 「보고번호 제48호」의 이 보고서는 「2급 비밀」로 분류돼 있으며, 보고서의 제목은 「원자 核연료 개발 계획」이다.

               

               보고서 첫 페이지에는 비서실장과 대통령의 결재란, 보고관인 吳源哲 수석의 이름, 그리고 職印(직인) 등이 찍혀 있고, 「원자 核연료 사업 계획을 별첨과 같이 작성」, 「별첨 계획의 결론에 의거, 원자핵 연료 사업을 추진할 것을 건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보고서의 전체적인 서술은 ▲核무기의 종류 및 우리의 개발 방향, ▲核무기의 비교(도표) ▲高純度(고순도) 플루토늄 생산과정(그림) ▲우리나라의 核물질 보유를 위한 개발 방향 ▲高純度 플루토늄 생산 방안 비교(도표) ▲결론 ▲高純度 플루토늄 생산을 위하여 개발하여야 할 核연료 사이클(그림) 순으로 돼 있다.

               

               첫 페이지의 제목 「원자 핵원료 개발 계획」과는 달리, 두 번째 장부터는 「核무기」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이 보고서의 둘째 장부터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核무기의 종류로 「核분열 에너지를 이용한 폭탄」(우라늄 235폭탄, 플루토늄 239폭탄)과 「核융합 에너지를 이용한 폭탄」(수소폭탄) 중 어떤 것을 선택할까 하는 문제를 도표를 이용해 설명하고 있다.

               

               「우라늄 235폭탄의 원료는 90% 이상의 高濃縮(고농축) 우라늄 235, 플루토늄 239폭탄의 원료물질은 90% 이상의 高純度(고순도) 플루토늄 239, 수소폭탄의 원료도 液化(액화)중수소 및 三重水素(삼중수소) 또는 重水素化(중수소화) 리튬6」인데, 어떤 핵 원료 물질을 이용해 核을 개발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이 보고서가 核에 대한 원론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미뤄 청와대에 보고되는 核개발을 위한 최초 보고임을 짐작케 한다.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개발해야 할 核무기는 「과대한 투자를 요하지 않고 약간의 기술도입과 국내 기술개발로 생산이 가능한 플루토늄彈(탄)을 擇(택)함이 타당함」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우라늄彈엔 9억 달러 소요

               

               비밀 보고서는 우라늄 235탄과 플루토늄 239탄에 대한 비교도 곁들이고 있다. 히로시마(廣島)에 투하됐던 우라늄 235탄은 한 개의 核무기를 만드는 데 농축 우라늄(원자번호 235) 25kg이 필요하고, 나가사키(長崎)에 투하된 플루토늄 239탄 1개를 만드는 데는 고순도 플루토늄 239가 8kg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라늄 235탄은 천연우라늄→농축→고농축 우라늄 235, 플루토늄 239탄은 천연우라늄→원자로→高純度 플루토늄 239의 과정을 거쳐 제조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보고서는 우라늄 235탄은 고농축 시설 건설에 막대한 자금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우라늄 235탄 1개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연간 우라늄 134kg을 생산해야 하고, 그 투자액은 약 9억 달러, 시설 건설기간에 8년이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우라늄彈을 만들기 위한 소요전력만도 200만kW가 들어가는데다 기술의 도입이나 개발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라늄탄은, 농축시설을 보유하면 상업발전용 농축 우라늄 연료도 생산할 수 있고, 수소폭탄의 「방아쇠」로 유리하며, 毒性(독성)이 없어 취급이 안전하다는 장점 등도 꼽고 있다.

               

               플루토늄彈의 경우, 고순도 플루토늄 생산에 비교적 투자비가 적게 든다는 점을 들었다. 그 예로 연간 8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데 투자비가 약 4200만 달러, 시설 건설기간은 6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약간의 기술도입으로 국내 개발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플루토늄은 원자력 발전용 연료로 사용도 가능해 一擧兩得(일거양득)임을 강조하고 있다. 단지, 플루토늄은 有害(유해)물질이므로 취급하기에 위험이 따른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 초 플루토늄 생산」

               

               이 비밀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核개발을 위한 플루토늄도 얻고 발전도 할 수 있는 「중수로형 원자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일한 原電인 古里(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고순도 플루토늄을 생산하려면 非정상 가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즉 정상 가동으로 생산되는 플루토늄은 연간 I00kg이지만, 플루토늄의 純度(순도)가 70% 이하이므로, 군사용(90% 이상의 純度 요구)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고서는 고순도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해 두 가지 案(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고순도 플루토늄의 생산 및 발전이 가능한 「겸용爐(로)」에 의하는 방법이다. 건설될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제2호기를 50만kW급 「천연 우라늄, 중수형 발전로」로 해 연간 高純度 플루토늄을 200kg 정도 추출하는 방법으로, 日本ㆍ印度(인도)가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商用(상용)발전과는 별도로 플루토늄 생산용 「연구로」를 도입하는 방법이다. 연간 8kg의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한 4만kW의 「천연 우라늄, 중수형 연구로」를 건설하는 방법으로 자유중국(대만)이 그 예라고 밝혔다.

               

               高純度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겸용로」를 건설하는 데는 총 2억 달러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분석했다. 발전로는 1억5500만 달러(경수로는 1억1000만 달러), 再처리 비용 4200만 달러, 가공비용 300만 달러가 든다. 「연구로」를 도입할 경우의 투자비용은 총 4200만 달러가 소요되는데, 발전로 가격이 2900만 달러, 再처리 비용이 1100만 달러, 가공비용이 200만 달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겸용로」를 채택하면, 商用 발전을 겸할 수 있는 데다가 플루토늄 量産(양산)이 가능하고, 核彈(핵탄) 수요가 없을 때는 발전로 및 재처리 공장을 商用으로 전환할 수 있으나, 비교적 투자비가 많이 든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연구로」를 채택하면, 투자비가 적은 장점이 있으나 商用발전을 겸할 수 없고, 플루토늄 생산량이 적어 核彈 수요가 없을 경우에는 연구목적으로밖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1案인 「겸용로」를 택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에 따라 古里발전소 2호기를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重水爐(중수로)로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核연료인 플루토늄이 생산되는 시기를 1980년대 초로 잡았다.

               

               

              「해외 한국인 기술자를 불러오라」

               

               비밀 보고서는 核무기 비밀 개발계획을 다음과 같이 종합, 결론지었다. 보고서는 核개발 주무 부서와 인력확보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摘示(적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술수준, 재정 능력으로 보아 플루토늄彈을 개발한다.

               

               ▲1973년도부터 과학기술처(원자력연구소)로 하여금 상공부(한국전력)와 합동으로 核연료 기본기술 개발에 착수하여 철저한 기초작업을 수행한다. 1974년부터 건설계획을 추진하여 1980년대 초에 고순도 플루토늄을 생산한다.

               

               ▲원자력연구소는 상기 목적에 맞도록 개편ㆍ보강한다.

               

               가. 해외 한국인 원자력 기술자를 채용하여 인원을 보강함.

               

               나. 기술자를 해외에서 훈련시키되 반드시 특정 임무를 부여하여 전문훈련을 받도록 함.

               

               다. 현재의 실험 원자로 및 기타 시설은 원자력 전공 대학생의 교육훈련용으로 50% 이상을 할애함.

               

               라. 원자력을 전공하고자 하는 대학생 전원에 대하여 장학금을 지급하여 원자력연구소에서 실기교육을 받고, 졸업 후 원자 核연료 사업에 종사토록 함>

               

               보고서의 마지막 章 상단에는 캐나다産 원자로인 「캔두(CANDU)」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한국은 1974년부터 캐나다와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는 CANDU型 중수형 원자로의 교섭에 나섰다.

               

               한국이 再처리 시설 도입을 프랑스와 교섭하고, CANDU형 원자로까지 도입키로 하자 포드 행정부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核무기 개발을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품고 갖가지 외교 압박을 가해 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75년 5월, 印度에서 原爆(원폭) 실험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공교롭게도 인도에서 사용한 원자로가 바로 한국에서 도입하기로 한 CANDU型 원자로였던 것이다.

               

               기자는 지난 7월8일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청평호반으로 차를 몰았다. 문건을 작성한 吳源哲 당시 경제 제2수석을 만나 核무기 개발 계획을 담은 문서를 작성하게 된 경위를 묻기 위해서였다. 吳 前 수석은 『내가 작성한 문서가 틀림없다. 이 보고를 한 얼마 후 다시 유사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말하고, 『그 이상은 답변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보고서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核연료를 만들겠다는 내용이지 核개발과는 무관하다』면서, 기자의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당시에 (미국 정부에) 당한 것만 해도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그는 『金正日이 核을 갖고 우리 국민을 위협하는 상황인데, 우리도 核개발을 했었다고 하면 똑같은 「망나니」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비밀 보고서를 朴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작성했는지, 제2경제수석실에서 자체적으로 작성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튿날 오후 기자는 金正廉(김정렴ㆍ79)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를 찾아가 문서를 보여 주었다. 그는 결재란에 자신과 대통령의 「서명」이 없다면서 『보고서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吳수석이 朴대통령에게 直報(직보)했다는 뜻인가요.

               

               『그건 불가능해요. 朴대통령은 외부인을 접견할 때 비서실장을 꼭 배석시키셨습니다. 그분은 참모장(비서실장)은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어요. 참모(수석)가 참모장을 제치고 총사령관(대통령)에게 불쑥 이야기한다는 것은 군인 출신이었던 그분이 용납을 안 했을 겁니다』

               

               ─보고서는 청와대 보고 양식인가요.

               

               『그렇습니다. 보고번호 제48호는 경제수석실 자체 문서 분류 번호일 겁니다』

               

               그는 核개발에 관한 문서가 2급으로 분류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문서는 영원히 비밀로 남아야 하는 것인데, 어떻게 일반문서로 분류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아요』

               

               ─대통령이 核개발을 지시했을까요.

               

               『朴대통령이 직접 「核무기 개발」이란 말을 입에 담으신 적은 없습니다. 만약 吳源哲 수석이 문서를 작성했다면 중화학 공업과 방위산업을 담당했으니까 자발적으로 보고서를 챙겼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최근 비밀 해제된 美 외교문서에 나타난 한국의 核개발

               

               朴正熙 대통령은 왜 核무기를 가지려 한 것일까. 朴대통령은, 1969년 닉슨 독트린과 1971년 주한 美 7사단의 일방적인 철수로 自主國防(자주국방)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朴대통령의 의지가 미국의 안보공약에 대한 不信에서 출발한 것이다.

               

               197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朴대통령의 목표는 카터(1977~1980년)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정책을 철회시키는 것이었다.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核무기 개발문제를 놓고 韓·美 양국은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朴대통령은 자주국방을 위해 1971년 기관총과 박격포, 수류탄 등을 1972년 초까지 개발하는 「번개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극비리에 核무기와 이를 운반하기 위한 장거리 地對地(지대지) 미사일 개발도 진행했다. 미국은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장비를 제조하려는 것이 아닐까, 「색안경」을 끼고 주시했다. 첨단 미사일 생산능력을 갖추고 핵무기를 개발하게 된다면 한반도 정세에 심각한 전략적 문제를 야기시킬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朴대통령의 지시로 비밀 核개발이 추진되면서 원자력 연구소 등은 연구용 원자로와 再처리 시설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1972년 崔亨燮(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은 프랑스와 再처리 기술 및 시설도입 교섭에 나섰다. 연구용 원자로는 核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배출할 수 있는 高순도의 사용 후 核연료를 만들어 내며, 재처리 시설은 이 사용 후 核연료로부터 플루토늄을 뽑아내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吳源哲 청와대 수석을 사령탑으로 한 核개발팀은 연구용 원자로는 캐나다의 NRX형을, 재처리 시설은 프랑스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1973~1974년 이를 적극 추진했다. 캐나다의 중수로 원자로를 소개한 것은 이스라엘의 국제상인 사울 아이젠버그였다.

               

               원자력 연구소는 파키스탄 등 核개발을 꾀하는 국가들에 재처리 시설을 수출한 경험이 있는 프랑스 SGN社로부터 재처리 시설을 도입키로 하고 1973년 9월 고위관계자가 SGN사를 방문, 정부 간 차관교섭이 매듭지어지는 대로 공장건설 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1975년 4월 원자력연구소와 SGN社 사이에 재처리 시설 건설을 위한 기술용역 및 공급계약이 체결됐다.

               

               정부는 이와 함께 캐나다로부터 CANDU(캔두)형 중수로의 도입을 추진했는데, 이는 평화적인 원자력 발전소 확보 외에 중수로가 수시로 사용 후 核연료를 꺼낼 수 있어 비밀 핵개발에 유리하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제 경수로는 1년에 한 번 정도 발전소 가동을 중단시킨 뒤 연료를 교체한다. 미국은 이 점에 착안, CANDU型 원자로의 획득이 재처리 기술 확대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한국 측에 민감기술(sensitive technology)을 넘겨주기로 돼 있던 캐나다, 프랑스, 벨기에 등에 압력을 가했다. 캐나다 정부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 중수로 1기와 함께 한국에 끼워 팔기로 돼 있던 NRX 연구로의 판매협상을 중단했다.

               

               1977년엔 원자력 연구소가 벨기에 BN社와 추진하던, 플루토늄을 재사용한 제2핵연료 가공사업도 취소되고 말았다. 이것은 再처리 연구에 필수적인 것으로, 再처리 사업이 싹도 틔워 보지 못하고 사그러들고 만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그간 미국 정부가 공개를 거부해 온 96건의 비밀 외교문서 중 朴대통령 시절의 核 관련 문건 15건이 공개됨으로써 확인되었다. 당시 공개된 비밀 문서들은 제럴드 포드(1974~ 1977년) 美 행정부에서 작성, 보고된 것들로 그간 베일에 가려졌던 한국 정부의 핵개발 계획과 이를 저지하려던 미국의 총력 외교전을 담고 있다.

               

               미국의 온갖 압박으로 한국은 1975년 12월경부터 프랑스로부터 再처리 시설 도입을 포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한국정부는 물러서는 명분으로 미국으로부터 원자력 협력이라는 대가를 선택한 것이었다.

               

               

              주한 미군 철수 포기를 이끌어 내다

               

               CANDU형 원자로를 캐나다로부터 도입하는 데 대해 미국은 核무기 개발에 대한 의구심뿐만 아니라 利害(이해)도 걸려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농축 우라늄 공급은 미국으로서는 커다란 상업적 시장이었다. 한국이 원자력 수입선을 다변화한다면 미국은 이 시장을 잠식당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한 基의 건설비가 20억 달러씩 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각국은 대통령 자신이 원자력 발전소 판매에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캐나다로부터 구입하기로 했으니 미국이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미국은 원자로 판매를 하지 말라고 캐나다에도 압력을 가했고, 재처리 시설을 판매하지 말라고 프랑스에도 압력을 가했다. 한국은 美 국무부와 의회의 압력으로 197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비준했다. 그러나 1977년에 들어선 카터 행정부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美 의회는 수출입은행에 대해 古里 2호기 건설에 대한 금융지원 보류를 결의하기도 했다.

               

               1979년 6월, 카터는 한국을 방문하면서 1978년에 철수한 병력 3400명을 제외하고는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사실상 철회했다. 朴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면 한국은 미사일을 비롯한 核개발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카터 행정부에 전달한 결과였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前 주한 美 대사는 그의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국의 核개발은 核 확산 방지체제에 대한 중대 도전일 뿐 아니라 일본과 북한에 위험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1975년 초 포드 행정부는 한국의 핵개발 계획에 대해 직접적 행동에 나서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 결정이 있기 전 수 개월에 걸쳐 미국은 한국이 核 재처리 장비 및 기술과 플루토늄 생산 중수로를 프랑스 및 캐나다로부터 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협의와 노력을 계속했다.

               

               朴대통령은 한국의 기본적인 안보관계가 위험에 빠졌다고 인식하자 核 노력을 포기하겠다고 묵시적으로 동의했다. 미국은 그 문제를 비밀로 하기로 하고 체면을 세워 주는 보상조치에 합의했다>

               

               

              『본격적으로 추진하되 떠들썩하지 않게 할 것』

               

               미국의 방해로 재처리 시설 도입과 CANDU형 원자로 도입이 좌절된 1976년 무렵, 朴대통령은 金正濂 비서실장과 吳源哲 수석을 청와대 내에 있는 서재로 조용히 불렀다. 朴대통령은 『원자력 산업을 종합적으로, 본격적으로 추진하라』고 강력히 지시했다. 金실장의 말에 따르면, 朴대통령은 일본式으로 원자력 산업을 발전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일본은 원자력 발전소도 자체 제작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갖고 있다. 일본은 필요하다고 마음만 먹으면 核무기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公知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核무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리고 원자력 산업정책에 대해 일본은 미국을 위시한 어떤 나라로부터 간섭을 받고 있지 않다. 문제는 실력을 갖추는 일이다. 원자력 산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되 떠들썩하게 하지 말라』

               

               吳源哲 수석은 원자력 산업의 종합계획을 작성해서 裁可(재가)를 받고 재빠르게 추진해 나갔다. 金실장은 『떠들썩하게 하지 말라』는 대통령 지시를 극비로 추진하라는 말로 해석했다고 한다. 우선 착수한 사업이 원자력 발전소에 공급할 核 연료봉을 만드는 공장의 추진이었다.

               

               연료봉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경수로용 연료봉과 중수로용 연료봉이다. 경수로용 연료봉을 제조하려면 미국에서 농축 우라늄을 구입해서 제조해야 한다. 그런데 중수로용 연료봉은 천연 우라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고 제조가 용이하다. 그래서 정부는 우선 중수로용 연료봉 공장을 건설하게 된다. 이를 위해 1976년 12월1일 핵연료개발공단이 발족했다. 이것이 바로 원자로용 연료봉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核연료개발공단에서는 「화학처리 대체 사업」을 했다. 하도 미국 정부에 시달리다보니 「再처리」는 금지된 언어가 돼 버렸고 대신 「화학처리」로 둔갑해서 재처리 기술을 우회적으로 배우려고 한 것이었다. 재처리와 관련된 여러 가지 기술을 따로 익혀 놓은 뒤 나중에 하나로 통합한다는 전략이었다.

               

               한국 정부가 연료봉 공장 건설을 서두르게 된 이유는 한국이 재처리 시설을 프랑스에서 도입하려고 했을 때, 미국 측이 『한국에서 再처리 시설을 건설하겠다고 하는데, 再처리 시설에서 타고 남은 우라늄을 분리해 냈다고 하더라도 한국에는 이 우라늄을 써서 연료봉을 만드는 시설도 없지 않느냐. 그렇다면 재처리 시설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지는 데 대해 대꾸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은 꾸준히 원자기술의 自立을 추구해 왔다. ▲원자로 설계 기술 ▲核연료 설계 및 제작 기술 ▲농축ㆍ재처리 등 민감 기술 확보 및 原鑛(원광)에서 방사능 폐기물 처리까지의 核연료 공급 주기의 완성 ▲운전 기술 등 원자력 기술의 자립항목 중에서 한국은 「농축ㆍ재처리」만 제외하고는 완전한 기술자립을 이뤘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가 가동하고 있는 原電은 18基로 발전용량(40%)으로 따지면 세계 4~6위권의 원자력 대국이다. 月城1호기의 경우, 세계 최고의 운전효율을 기록하고 있는 원자로로 손꼽힌다고 한다. 아무튼 1979년 10월 朴대통령이 피살되자 한국의 원자력은 후견인을 잃었다. 核공단이 원자력연구소로 통합됐고, 에너지연구소로 명칭마저 바뀌었다. 1980년대 全斗煥 정권 출범 초기에는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나마 자라는 싹마저 잘라 버렸다. 核개발 포기를 약속하는 의미에서 연구소의 이름마저도 「원자력」이란 말을 떼어 버린 것이다.

               

               

              남북한의 核개발 경쟁

               

               우리나라의 원자력 역사는 1956년 2월3일 韓美 간에 체결된 「원자력의 非군사적 이용에 관한 쌍무협정」으로부터 시작된다.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은 원자력 연구에 대한 강한 열의를 갖고 있었다.

               

               한국은 1957년 8월18일 IAEA(국제원자력기구)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1958년 3월11일에는 원자력법이 공표됐다. 이 法은 우리나라의 法 중 483번째로 제정, 공포됐으니 꽤 일찍 제정된 법이다. 1959년 1월21일에는 원자력원이 창설되고, 1959년 3월1일에는 원자력 연구소가 개소됐으며, 1962년 3월30일에는 비록 250kW의 작은 규모이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실험용 원자로가 가동을 개시했다. 미국 원조 35만 달러를 포함해 총 73만 달러가 투자된 이 원자로는 교육 및 기초 연구용이었다.

               

               우리나라는 1968년 7월1일 핵확산 금지조약(NPT)에 서명했으나 인준만은 보류해 왔었다. 남북이 함께 NPT에 가입해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우리의 요구 때문이었다. 오늘날 한국에 건설된 원자력 발전소와 원자력 기술은 李承晩 대통령을 거쳐 朴正熙 대통령 연간에 이룩된 것들이다. 이후 대통령들은 원자력 발전에 획기전인 轉機(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원자력 개발도 우리와 시기는 비슷하다. 金日成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핵무기를 위협수단으로 휴전협정을 이끌어 내는 것을 보고 핵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한다.

               

               북한의 원자력연구개발은 1950년대 중반 舊소련의 드브나(Dubna) 연합 核연구소에 최학근을 대표로 하는 약 250여 명의 과학자들을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舊소련 과학자들 또한 북한을 방문해 원자력기술 개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金日成 종합대학과 김책공대에 원자물리학부를 개설했고, 과학원 산하의 연구소에서 원자력 분야 훈련을 주관하였다. 1959년 북한과 소련은 북한에 의해서 「가구 공장」으로 명명된 북한 원자력연구단지 건립을 지원하는 상호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연구용 원자로 건설, 지질조사, 전문가 훈련 등을 소련이 지원하였다.

               

               이때 영변 구룡강 기슭에 현재의 영변 원자력연구단지가 결정되었고, 30여 명의 소련 核과학자들이 단지 건설에 참여하였다. 영변 원자력연구단지는 1967년에 조성이 완료돼 「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李升基(이승기) 박사가 초대 소장으로 부임했다. 영변 원자력연구단지內에 건설된 방사화학연구소는 그 후 1975년에서 1987년까지 再처리 공정을 개발 완료하였고, 이 일이 현재 북한 核문제를 유발시킨 근원이 되었다.

               

               북한의 核개발 시스템은 북한산 천연 우라늄→연구로→再처리 공장으로 이어지는 核연료 순환 사이클을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외국에서 간섭할 방법이 없어 외교적 압력이 잘 먹히지 않는다. 사회시스템도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데 유리하다.

               

               

              核보유는 失이 더 크다

               

               核물리학자인 鄭根謨(정근모ㆍ63) 박사는 한국의 초기 核개발과 관련, 『한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核무기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는 등 核 관련 조약이나 기구에는 모두 가입한 상태여서 국제적인 감시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核개발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의지」입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북한 등 저개발 국가가 국제적인 감시망을 뚫고 核개발에 성공하려면 국제적인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核개발을 강행할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核개발 자체는 1940년대의 기술로서,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核무기를 만들 수 있는 「비밀 자료」들이 수두룩하게 널려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核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폐쇄된 북한과는 엄연히 달라요. 우리는 미국이라는 큰 시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을 무시한다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옵니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고, 핵우산下에 있는 상황에서 핵을 보유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는 스위스, 스웨덴 등 核개발 능력이 있는 나라들도 왜 核을 갖지 않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면 核보유 필요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南阿共(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은 집권하면서 核무기를 폐기했고, 우크라이나ㆍ카자흐스탄도 核무기를 러시아에 반납한 사례를 들면서 『요즘 핵무기를 갖는다는 것은 결국 得(득)보다는 失(실)이 많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核 전문가들은 『한국은 평화적 再처리 기술 개발을 全세계에 선언해야 한다』면서 『북한의 核개발은 남한의 강력한 대응개발을 초래하고, 북한이 자진해서 核개발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 北核 해결의 열쇠』라고 말하고 있다

               

              출처 : 지식백과
              글쓴이 : 삽살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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