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不是風動  不是幡動  仁者心動

불시풍동   불시번동    인자심동


『육조단경』

 

 


   6조 혜능(慧能) 대사가 인종 법사(印宗法師, 627~713)의 회상에 찾아갔을 때, 두 스님이 바람과 깃발[幡]을 보고 다투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깃발[幡]이 움직인다.’고 하였다. 이에 6조가 말하였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그러자 두 스님이 깜짝 놀랐다.


   이것은 불교 역사상 드높은 산봉우리를 이루며 빛을 발하고 있는 6조 혜능의 이야기다. 중국 신주(新州)의 한 촌락에 노(盧)씨 성을 가진 젊은 나무꾼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땔나무를 여관집에다 팔고 돌아서는 길에 경전을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당히 마음을 어디에 머물지 말라[應無所住而生其心]”는 말이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혜능은 자신도 모르게 온 세상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을 느꼈다.


   혜능은 경을 읽은 스님을 찾아 인사하고 비로소 세상에 불교가 존재하는 것을 알았다. 혜능은 그 스님의 주선으로 5조 홍인(弘忍) 스님에게로 출가를 하였고 그곳에서 법맥을 전수받았다. 이후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냥꾼들 속에서 숨어 살다가 당나라 고종(高宗, 649년 즉위~34년 재위) 때 비로소 광주의 법성사(法性寺)를 찾아갔다.


   그 때 마침 인종 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두 스님이 각자의 불교적 안목으로 다투는 일이 있었다. 혜능은 이 다툼에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깃발이 있고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그 곳에 있던 사람이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이다. 사람은 마음을 가진 존재다. 만약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깃발도 한 원인이며 바람도 한 원인이며 사람이 그곳에 있어서 마음으로 보고 느낀 것도 한 원인이다.


   혜능 스님이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라고 한 것도 당시의 불교적 소양으로서는 대단히 신기한 말일지 모르나 참으로 꼭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적지 않다. 모두가 각자의 몫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너럭바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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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遊行)하 고 있었다.
중생은 근기따라 어울린다 !!
(유유상종)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그 때 수보리, 목련, 대가섭 등 많은 비구들과 함께
또한 제달바도그 무리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근기와 성품이 서로 같은 점이 있어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과 어울리고,
악한 사람은악한 사람과 어울린다.

그것은 마치 물과 기름이 각기 서로 어울리는 것과 같다.
중생도 근기 와 행하는 법에 따라 서로 각기
어울리게 된다.」

그러시면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쁜 벗이나 어리석은 이들과
더불어 함께 어울리지 말고
착한 벗이나 지혜로운 이와
항상 더불어 사귀어라,

사람이 본래 악한 것은 아니지만
악한 사람과 가까이 친하게 되면
뒷날에 반드시 악행으로 물들어
좋지 않은 이름이 세상에 퍼지라라.

이 말씀을 들은 제바달다의 무리들이 부처님께 용서를
빌고 참회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내 너희들의 참회를 들어주노니,과거의 허물을 고치고
미래를 닦아 다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 증일아함경 中 -

    출처 : 밀양 불교 사랑
    글쓴이 : 목우거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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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신(肉身)♧ 내 몸 은 부모님 이 주시고 하늘이 살기를 허락 햇건만 내 멋대로 사는줄 알고 제 탓에 육신이 늙어 가네 나 잘살자고 이룬것 없는데 굿은일 험한일 로 나도 잃고 영혼마저 타락하니 하루 하루 가 亡 하여 되돌리기 어려 워라 이몸이 나락에 떨어져도 회생 하지 말것를 다시나면 그 죄가 수미산이요 고통 일것를 내 육신 은 흩어져 자연으로 가소서

    日覺

    출처 : 인터넷불교(人佛邦)
    글쓴이 : 마하야(日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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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3 맘입니다.

    어제 저녁 11시쯤 아이를 학원에서 데리고 오는 길

    운전하면서 늘 손에 108염주를 들고 관세음보살님을 작은소리로 부르며 기도합니다.

    그런데요. 매일 다니는 길인데

    삼거리에서 세대의 차가 동시에 들어온거예요.

    제 차와,,그리고 두대의 다른길에서의 차들

    둘중 하나와 반드시 부딪혀야할 상황이였어요.

    한손엔 염주를 꼭 쥐고 좌측 산길 위로 핸들을 확! 꺽었답니다.

    뒷 자석에서 자고 있던 우리 아이도 차 바닥에 떨어지고요.

    그런데요. 정확히 ㅜ 자로 두대의 차가 멈첬는데

    제차와 그 차 모두 멀쩡하고 아무도 안다쳤어요,

    먼저 부딪히려한 차주에게 사과하고

    돌아서서 우리아이의 몸상태를 살피고있는데

    너무 감사해서 눈물나고

    오늘 새벽에 일어나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입었다고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납니다.

    너무너무 감사해서요.

     

    아이도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갔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한 체험을 한것 같아요.

    마치 꿈을 꾼듯 합니다.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재빛바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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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지친 영혼이여
    지친 나그네여,,
    여기서 잠시 머물다 가소서

    누군가 날 사랑한 시기와
    내가 그를 사랑했던 시기가
    일치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아주, 가끔 ....
    그리고 긴~그리움 하나까지,,,,






    명상음악 17곡 모음


          01 마음
          02 마음의노래
          03 아름다운 마음
          04 마음의 눈
          05 마음이 마음을 안다
          06 마음에 향기를 담고

          07 마음의 문을 열며
          08 마음의 그림자
          09 님 향한 마음
          10 마음의도리
          11 마음이 허공 같을때
          12 내 마음의 기도

          13 이마음 빈 들이여
          14 내마음은 가을달인가
          15 청정한 마음
          16 선의 마음
          17 마음을 청정하여


    출처 : chungmyungsan
    글쓴이 : 우곡 김덕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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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현 세태를
    그대로 쓴 스님의 슬픈 노래이기에
    현실의 아픔을 돌아보며 옮깁니다.



    아범아! 내 아들아~!

    -작사, 작곡, 노래 : 능인 (스님)-

    1, 아범아! 내 아들아! 날 제발 데려가다오
    밥 굶어도 나는 좋고 헐벗어도 나는 좋단다,
    너의 얼굴 바라보면 밥 먹은듯 배가 부르고
    너와 함께 사는 것은 옷 입은 듯 나를 감싸니
    애비야! 내 아들아! 제발 날 좀 데려 가다오,


    2, 어멈아! 내 며늘아! 날 제발 데려가다오,
    우리 손주 재롱보며 행복하게 살고 싶구나,
    달이 가고 해가 가도 그리운 건 너희 얼굴들
    가고파도 갈 수 없는 기구한 나의 운명을
    에미야! 새 아가야! 제발 날 좀 데려 가다오,


    3, 아가야! 내 손주야! 날 제발 데려가다오,
    너의 애비 키우던 정 아직도 변함 없는데
    이 할미를 원망할까 니 애비를 미워할까,
    애지중지 키운자식 세월 따라 멀어만가니
    아가야! 내 손주야! 제발 날 좀 데려가다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스님의 사연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는
    며느리 ...

    거기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손자
    그러나 그러한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아서
    양로원을 찾아가야만 했던 어머니

    그것도 오후에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동승하여 차를 태워서
    이름모를 길에 내려 주면서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라고 해 놓고
    다음날 새벽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아들과 며느리...
    양로원에 갔다가 어느 할머니의 가슴아픈 사연을 듣고
    나는 아연실색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씀 한 마디면 공무원과 교육자라는 신분만
    가지고도
    아들도 며느리도 과연 안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할머니는 자식이 그리워 눈물로 지내시면서도
    우리 아들이 잘 되야 한다고 하시니
    도대체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19년전 예천 연꽃 마을에 방생법회를 갔을 때 만난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다.

    하루하루 아들을 그리워 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노래한
    이 노래는
    고학력 자식 일 수록 부모님을 외면하는 이 시대의 가장 뼈아픈
    어머니의 마음을 노래 한 것이리라 생각 하지만
    아마도 젊은 사람들은 싫어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나는 이 노래를 만들어서 공연장에 가면 자신 있게
    부른다.

    이 시대에 효의 정신이 아롱거리는 아지랑이 처럼
    다시 아물아물 피어 오르는 그날 까지.........

    출처 : 竹馬故友
    글쓴이 : 오인의 벗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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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의 방법

    <염처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그리고 더 나아가,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걷고 있을 때는 다음과 같이 의식해야 한다. - ‘나는 걷고 있다’ - 또는 수행자가 서 있거나, 앉거나, 누워 있을 때는 그는 그것들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2) 그리고 더 나아가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바라보거나, 눈길을 돌리거나, 그의 팔다리를 구부리거나 펴거나, 옷을 입거나 벗거나, 그릇을 씻거나 또는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 또는 화장실에 가 있을 때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가고, 서고, 앉고, 잠자고, 보고, 말하고, 침묵을 지킬 때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그리고 더 나아가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이 몸에 대해서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엇으로 구성(즉, 4대요소) 되었는지에 대해서 관찰해야 한다.
    4) 오,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즐거운 기분을 느낄 때는 그것을 의식하고 ‘나는 즐거운 기분을 느끼고 있다’고 관찰한다. 마찬가지로 그가 고통스러운 느낌을 받을 때도 그것을 의식한다.
    오,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만약 탐욕스러운 마음이 생기면 이것을 의식해야 하며, 또는 탐욕에서 자유로우면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5) 오,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감각적 욕망이 생기면 그것을 의식하고 있어야 하며, ‘나는 감각적 욕망을 갖고 있다’고 관찰해야 한다.

     

    1. 배가 나오고 들어가는 움직임

    배가 나오고 들어가는 움직임을 명상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매우 일치한다. 이러한 배의 나옴과 들어감은 공기요소의 압력에 의해 야기되는 물질적인 과정이다.

    * 이러한 부처님의 가름침을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배가 나오는 동안에는 ‘나옴’, 배가 들어가는 동안에는 ‘들어감’, 팔다리를 구부리는 동안에는 ‘구부림’, 팔다리를 펴는 동안에는 ‘폄’, 마음이 산란할 때는 ‘산란함’, 생각, 관찰 또는 앎에 전념하고 있을 때는 ‘생각함, 관찰함’ 또는 ‘알고 있음’, 딱딱함, 더움 또는 고통을 느낄 때는 각각에 그 느낌을 알고 있으며, 또한 ‘걷고, 서고, 앉음’ 각각의 자세에 대해서도 그 상태를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팔리 경전에서 ‘내적인 공기의 요소의 움직임을 알아차려서 팔다리의 움직임을 뚜렷이 의식한다’ 대신에 걷고 있음 등등의 평범한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공기 요소는 다섯가지 물질의 모임인 오온(skandh)에, 12처(ayatana)의 촉각의 대상에, 18 요소(dhatu)의 몸의 느낌에, 4 사대(maha-bhuta)의 바람의 요소에, 사성제의 괴로움의 진리에 포함되어 있다.
    물질적 모임, 접촉의 대상, 몸의 느낌, 괴로움의 진리들은 확실히 통찰명상의 대상이다. 분명히 그것들은 서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배가 나오고 들어가는 움직임은 매우 적절한 명상의 대상이며, 그렇게 명상하는 동안 이것은 단지 공기요소의 움직임이며, 무상, 괴로움, 무아의 법칙에 지배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이와 같이 배의 나오고 들어가는 움직임의 명상은 위에서 설명한 것과 일치하고, 또한 염처경에서 여러 가지 요소들을 관찰하는 것과 일치한다. 다시 배의 움직임과 압력을 야기시키고 육체의 모임에 구성되어 있는 공기의 요소는 괴로움의 진리에 속한다.

    1) 비구들이여, 그대의 마음을 철저하게 몸에 주시하면서 그것의 진실한 본성을 무상함으로 보도록 하라.
    2)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무상한 그의 몸을 무상함으로 볼 때, 그의 이러한 견해는 올바른 견해이다.
    3) 오,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물질적인 형상이다. 이것은 그것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그것의 사라짐이다.’
    4) 비구들이여, 그대의 마음을 접촉의 대상에 철저히 주시하라. 그리고 그것들의 진실한 본성을 무상함으로 보도록 하라.
    5)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접촉의 대상을 무상함으로 본다면 그의 이러한 견해는 올바른 견해이다.
    6) 그러나 접촉의 대상을 완전히 알며, 이해하며,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고 그것을 떨쳐 버리면서 수행자는 고통을 소멸시킬 수 있다.
    7) 접촉의 대상을 무상한 것으로 알고 보는 자에게 무지는 사라지고, 지혜가 일어난다.
    8) 오,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접촉의 감각기관을 알고 있어야 한다.
    9) 움직임의 내적인 요소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리고 움직임의 외적인 요소가 무엇이든지 간에, 이것들은 단지 움직임의 요소들일 뿐이다. 완전한 직관적 지혜에 의하여, 이것은 사실 그대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10) 그리고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진리는 무엇인가? 말하자면 괴로움은 다섯가지 물질의 모임(오온)이다. 비구들이여, 그럼으로 괴로움은 완전히 이해되어야 한다.

     

    2. 처음은 유형의 물질을 갖고 시작한다.

    비파사나(통찰) 명상을 수련하는 자는 유형의 물질로 시작해야 하는데, 이것은 정신적인 것보다 훨씬 쉽게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에서 말한 주석서와 주해서에 의존해서 명상자에게 명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배가 나오고 들어가는 움직임을 관찰하는데서 시작하고 가르쳤다.
    그렇지만 집중이 발전되었을 때, 명상은 여섯 개의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에 대한 효과는 이미 명상자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가르쳐준대로 명상자는 명상을 매우 잘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로지 배가 나오고 들어가는 움직임을 명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 통찰명상을 하는 자는 4가지 요소 - 지, 수, 화, 풍 -를 구별한다.
    2) 명상은 명상자가 명백하고 쉽게 구별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3) 통찰명상은 구별할 수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명상은 구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쉽게 구별될 수 없는 것도 나중에는 어떻게든지 구별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3. 여섯 개의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것을 명상하라.

    여섯 개의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명상을 해야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어떻다는 생각을 내어서는 안된다.

    *배가 나옴과 들어감을 명상할 때 그 움직임을 아는 자는 대상에 대해 아무런 번뇌의 일어남을 느끼지 않고, 주의깊고 분명한 관찰로 감각(번뇌)을 극복할 수 있다.

    1) 그는 보는 대상에 대하여 아무런 번뇌의 씨앗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주의깊고 분명한 관찰로 감각(번뇌)을 극복할 수 있다. 평온한 마음으로, 집착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2) 그는 듣고, 냄새맡고, 맛보는 대상에 대하여 또는 접촉의 대상에 대하여 아무런 번뇌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주의깊고 명료한 관찰로 감각(번뇌)을 극복할 수 있다. 평온한 마음으로 집착에 매달리지 않는다.
    3)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완전히 알아야 한다.

    *위의 구절에서 ‘완전한 앎’은 여섯 개의 감각기관에서 물질적, 정신적인 일어남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배의 나옴과 들어감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은 ‘유형의 것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에 포함된다.
    그러면 완전히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무엇인가? 눈, 시각적 대상을 완전히 알아야 하며, 눈의 접촉을 완전히 알아야 하며, 눈의 접촉 때문에 일어나는 행복, 슬픔, 중립적인 상태를 또한 완전히 알아야 한다.
    눈을 완전히 알아야 하고, 소리를 완전히 알아야 하고, 코, 냄새, 혀, 맛, 몸을 완전히 알아야 하고, 유형의 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고, 마음을 완전히 알아야 하고, 마음의 상태를 완전히 알아야 한다.

    4) 비구들이여, 눈을 이해하여야 하며, 시각적 대상이 이해되어야 하며, 몸이 이해되어야 하며, 유형의 것을 이해하여야 하며, 마음을 이해하여야 하며, 마음의 상태를 이해하여야 한다.

     

    4. 이전에 선정의 경험이 없는 자의 통찰명상

    이전에 定(Jhana)의 경험이 없이 통찰(비파사나) 명상을 직접적으로 시작하는 것은 가능하다.

    *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전에 완전한 집중을 얻기 위해 수련해본 경험이 없이도 통찰명상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수련방법이 통찰명상인 사람은 사대(지, 수, 화, 풍)을 구별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또한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염처경의 21개 부분이 숨쉬는 것을 다루는 것을 제외하고 모두 육체가 혐오감 그리고 9개의 공동묘지에 대한 명상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통찰명상이 그것들에 의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주석서들은 이 부분들이 근접 집중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근접 집중은 몸의 자세와 기타 등등에 대해서 명상하는 동안 다섯가지 장애를 극복하고 마음의 순수함을 얻었을 때 발전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숟디막가(청정도론)는 통찰명상과 연관된 물질적 요소의 관찰을 다루고 있는데, ‘요소의 구별’이라 불리는 주제에서 사대를 명상하는 동안에 장애가 극복되고 집중의 접근이 얻어지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처럼 사대나 또는 사대 중 하나, 둘, 셋을 명상하는 동안에 근접 집중이 발전될 수 있고 장애가 극복될 수 있으며 마음의 순수가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고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것은 명상을 부지런히 수련하는 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다.

    1)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이전에 선정을 닦지 않고 오온의 집착을 무상함 등으로 명상하였다. 이러한 명상은 통찰명상이다.
    2) 다섯가지 모임(오온)은 존경스러운 수행자가 무상, 고통, 아픔, 병듬, 일시적인, 비어있는, 무아의 방법으로 곰곰히 생각해야 하는 조건들이다.
    예류과에 있는 자도 집착의 다섯모음을 이와 같이 명상한다.
    한번 돌아오는 자(一來者)도 그렇게 명상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不還者)도 그렇게 생각한다.
    과연 비구니들이여, 존경스러운 수행자가 이같은 방법으로 다섯가지 모임(오온)을 명상하면 예류과를 깨달을 수 있다.
    예류자가 일래과를 깨달을 수 있다. 일래자가 불환과를 깨달을 수 있다. 불환자가 아라한과를 깨달을 수 있다.

    * 이러한 과정은 고결한 자는 다섯가지 집착의 모임을 잘 명상할 수 있으며, 그렇게 명상하면서 깨닫고 실제적으로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그리고 아라한과를 얻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배의 나옴과 들어감의 움직임은 유형들의 모임(육체)에 포함된 공기의 요소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분명히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배의 나옴과 들어감의 움직임에 근거를 든 명상방법과 여섯 개의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다섯 개의 집착의 모임(오온)에 대한 명상은 정확하고 올바르게 아라한과의 실현으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신체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물질의 본성을 명상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며 또한 몸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공기요소를 명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다.

    출처 : 시냇물의 블로그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메모 :

    <명상이 필요한 이유>

    학창시절,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여행에 나선 주인공 애벌레는 많은 애벌레들이 줄을 지어 올라가는 높은 탑을 발견하고 그 대열에 합류한다. 수많은 애벌레들이 서로 짓밟으며 기를 쓰고 올라가는 그 탑은 사실, 애벌레들로 이루어진 탑이었다. 실망한 애벌레는 결국 내려온다. 그러고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고는 나비가 되리라 다짐한다. 나비가 되려면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깨닫고, 길을 떠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높은 곳에 오르려는 것은 모든 사람의 소망이다. 사람들은 출세와 성공을 위해 이 순간도 열심히 뛰고 있다. 그러나 삶에 대한 자각 없이 그저 눈앞의 표피적인 욕망에 이끌리는 삶은 애벌레의 단계에 불과하다. 애벌레 차원에서는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땅의 연장선일 뿐이다. 하늘을 나는 자유와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나비는 삶의 의미를 깨닫고, 이 세상에서 자신이 이뤄야 할 꿈이 무엇인지 알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도, 헛된 욕망에 치이지도 않는다. 하늘을 나는 자유로움과 멀리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성취한다. 스스로 기쁨을 누릴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아간다.

    나비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속으로 침잠하여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내면의 침잠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현실의 세계와 괴리되기 쉽다. 시중에 나와 있는 명상책들을 보라. 대부분 은둔하는 삶 속에서 느껴지는 평화, 영혼의 감성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들은 맑고 깨끗해서 잠시 청량제의 역할은 할 지 모르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는 나비가 될 수 없다.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면서도 세상 속에서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라보기 명상’이다.

    하루 5분만이라도 번데기의 시간을 가져보자. 5분만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느끼고 바라보자. 하루 5분의 멈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담배 한 대, 커피 한 잔과 가벼운 잡담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바라보기 명상에 투자하라. 얼마 지나지 않아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명상이 편안하고 소중한 시간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문득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유와 행복은 원래 당신의 몫이었음을.

    <도움되는 명상방법>

    1. 걷기명상

    1) 준비자세

    걷기 명상은 한마디로 걸어가면서 하는 명상입니다. 몸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다른 명상에 비해 따분하지 않고 집중하기가 쉬워 초보자들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걷기 명상을 하기 전에는 팔과 어깨, 그리고 몸통을 가볍게 움직이고 풀어줍니다. 몸에 힘을 빼고 편안하고 자연스런 상태를 만드십시오.

    2) 기본걷기

    기본 걷기 명상에서는 호흡과 발의 움직임을 일치시킵니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립니다. 천천히 발뒤꿈치부터 들어 올리다가 발전체를 지면에서 약간 들어 올린 상태에서 앞쪽으로 옮깁니다. 그런 다음에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다리를 지면으로 내려놓습니다. 다리를 내려놓을 때도 발뒤꿈치가 먼저 지면에 닿고 서서히 발바닥 전체가 지면에 닿게 합니다. 오른쪽 발바닥이 지면에 완전히 닿았을 때 다시 왼쪽 발뒤꿈치를 서서히 들어올린다.

    같은 요령으로 번갈아 진행합니다. 사실 이것은 보통 때 걸음걸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아주 느린 동작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다리의 동작과 호흡을 결합해서 숨을 들이마실 때 다리가 지면에서 떨어지고 숨을 내쉴 때 다리가 다시 지면에 닿습니다. 숨을 내쉴 때 다리를 지긋이 바닥에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걷기 명상의 기본 수련에서는 다리의 느낌이 주된 관찰대상입니다. 천천히 한 발자국 씩 옮길 때마다 몸의 무게 중심은 좌우로 바뀌고 다리의 느낌도 긴장에서 이완, 이완에서 긴장으로 계속 변화합니다. 가만히 그 느낌의 변화를 알아차려봅니다. 기본 수련은 동작이 아주 느리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원을 그리면서 걸어 갈 경우 그리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방이나 거실 같은 좁은 곳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걷기 명상을 해보면 금방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거리에서

    기본 수련을 충분히 하면 일상생활 속의 걷기도 명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배운 기본 걷기 명상을 약간 응용하면 됩니다. 딱히 호흡에 일치시킬 필요 없이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깁니다. 호흡과 다리의 느낌을 중심으로 삼되 주변의 풍경들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깨어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멀리 보이는 하늘, 불어오는 바람,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거리의 풍경, 다가오는 사람, 달리는 자동차, 주변의 소리에 대해서 순간순간 알아차려 보도록 합니다. 바쁜 생활 중에서 틈틈이 걷기 명상을 해보십시오.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 불과하였던 걷는 행위가 하나의 소중한 목적이 됩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놓쳐버렸던 걸어가는 순간순간의 아름다움과 소중함도 되찾게 될 것입니다.

    4) 숲속에서

    걷기 명상을 하기에 제일 좋은 장소는 역시 숲입니다. 사람들은 숲에 가서도 목적지를 정해놓고 그저 휙 둘러보고 돌아옵니다. 숲에서 걸어갈 때는 걷는 순간 자체를 즐겨보십시오. 요령은 생활 중의 걷기 명상과 비슷합니다. 다만 거리의 걷기보다 훨씬 더 느리게 걷는 것이 좋습니다. 호흡과 발걸음을 맞출 필요도 없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주변의 풍경과 상황에 대해서 깨어서 알아차려 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최대한 자신의 몸에 힘을 빼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마음도 편안하게 내려놓으면 더욱 좋습니다. 내 몸에 힘을 뺄 때 자연이 훨씬 더 쉽게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내려놓고 걷는 것 자체를 즐겨보십시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숲 사이의 따스한 햇살, 새 소리, 풀 향기들이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자연과의 황홀한 대화 속에서 마음 속 깊은 곳의 평화와 환희를 느껴보십시오.


    2. 식사명상

    식사 명상 핵심 요령은 음식의 맛에 집중하면서 천천히 먹는 것입니다. 우선 밥상을 앞에 놓고 잠시 눈을 감고 들숨 날숨을 가만히 느껴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식사 기도를 올립니다. 이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 수고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이 소중한 음식을 집중하면서 천천히 먹겠노라고 다짐합니다. 그런 다음에 천천히 숟가락으로 밥을 한 술 떠서 입에 넣습니다. 밥은 물론 잡곡밥이면 더욱 좋습니다. 천천히 꼭꼭 씹어가면서 가만히 혀에 마음을 모으고 미각을 잘 알아차려 보십시오. 처음에는 잘 못 느끼지만 점차 여러 가지 곡식에서 우러나오는 오묘한 맛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계절에 알맞은 신선하고 담백한 야채와 나물 무침을 먹어보십시오. 그 속에서 자연의 맛을 가만히 알아차려 보십시오. 그리고 잘 발효된 된장으로 만든 담백한 된장국의 깊은 맛을 느껴 보십시오. 이렇게 바라보기 명상을 하면서 식사를 하면 밥과 반찬 두어 가지로도 얼마든지 깊고 오묘한 맛을 느끼면서 먹는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몸과 마음의 건강에 아주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3. 설거지명상

    설거지는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면서도 귀찮은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빨리 끝내려는 마음으로 서둘러 설거지를 합니다. 그러나 설거지는 단순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명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귀찮은 설거지를 훌륭한 명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우선 편안한 마음으로 싱크대에 서서 어깨에 쓸데없는 힘을 뺍니다. 손과 팔의 느낌을 잘 알아차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 다음에 느긋한 마음으로 내가 씻어야 할 많은 그릇들을 바라봅니다. 기름때가 많은 그릇과 기름때가 없는 그릇을 잘 분류하여 우선 세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그릇들을 먼저 씻습니다. 천천히 한 손으로 수세미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릇을 잡고 씻기 시작합니다. 그릇을 씻을 때 내 손에 느껴지는 감각을 알아차리고 손과 팔의 움직임을 알아차려봅니다. 그리고 내 손에 닿는 물의 촉감과 온도도 알아차려봅니다. 기름때가 있는 그릇들은 분해가 잘 되는 생태적인 세제로 정성스럽게 닦습니다. 세제가 묻었을 때의 미끈한 느낌과 세제가 씻겨나갔을 때 뽀독뽀독한 느낌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물을 아껴가면서 그릇들을 헹굽니다. 그릇들을 다 씻은 다음에는 주변 싱크대를 깨끗이 닦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주를 빨아서 깨끗이 짜고 옆에 두면 됩니다.

    설거지 명상을 하면서 감각과 느낌만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해서도 깨어 있으려고 하십시오. 설거지는 하천오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그릇을 씻을 때 세제를 펑펑 쓰면 나의 그릇은 깔끔해질지 몰라도 강물은 더러워집니다. 그리고 그 더러워진 물이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그마한 일상의 물줄기들이 모여서 큰 삶의 강물을 이루고 한 사람의 자그마한 행동이 모여서 우리의 사회, 우리의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작은 행동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출처 : 시냇물의 블로그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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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보감 86. 행주좌와에 생사를 살펴라 / 
    앙산 원 (仰山圓) 선사 
      
    
    
    
    ◈ 인천보감 86. 행주좌와에 생사를 살펴라 / 앙산 원 (仰山圓) 선사 
     앙산원 (仰山圓) 선사는 우강 (旴江) 사람이다. 
    구족계를 받고 나서 도를 배우기로 용단을 내렸는데, 
    묘희 (妙喜) 선사가 매양 (梅陽) 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찾아가 귀의하였다. 
    거기서 열심히 밥짓고 부엌일을 하며 각고의 정진을 하였다. 
    묘희선사는 그의 예리하고 빈틈없는 
    식견을 보고 남다르다고 여겼다. 
    한번은 소참 (小參) 때 묘희선사가, 
    ‘범부의 법을 가졌으면서도 범부를 모르고 
    성인의 법을 가졌으면서도 성인을 모르니, 
    성인을 알면 그가 바로 범부요 범부를 알면 
    그가 바로 성인이다' 하신 수산주 (修山主) 의 
    말씀을 들려주었는데, 앙산선사는 
    이 말을 듣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에 구주 (衢州) 상부사 (祥符寺) 에 주지하다가 
    원주 (袁州) 의 앙산 (仰山) 으로 옮겼다. 
    거기서 일을 맡아본 지 7일 만에 선문 (禪門) 의 
    고향례 (告香禮:스승에게 향을 사르며 설법을 청하는 예) 를 
    하게 되어 수좌가 대중을 이끌고 
    일제히 절을 올린 다음 법을 청하였다. 
    “생사란 큰 일이고 죽음은 신속히 찾아옵니다. 
    부디 바라옵건대,
     자비로서 인연을 열어 보여 주십시오." 
    원선사는 천천히 말하였다. 
    “생사대사를 밝히고자 한다면 바로 행주좌와하는 가운데서 
    「생은 어디서 왔으며 사는 어디로 가는가. 
    결국 생사란 어떻게 생겼는가'를 살펴보아야 하느니라." 
    그리고는 한참을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더니 
    이윽고 그대로 몸을 벗었다. 
    「행장 (行狀) 」 
    ***참나를 찾아서 참되게 살아가라. 
    나무아미타불()()()***
    ***화엄동산에서 보현행 합장***
    
    화엄동산 원오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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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비란.. / 석자연스님 유화선순(柔和善順)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부드럽고 평화롭고 착하고 순수하다는 뜻이지요... 때로는 앞서가고 남보다 약삭 빠르게 사는 것이 시류의 흐름에 따른다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강한것은 부드러움을 넘지 못하고 폭력은 평화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이기심은 착함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며 약싹 빠름은 순수함 앞에서 물러납니다... 만일 누군가 부드럽고 늘 평화롭게 착하고 순수하게 살고 있다면 그는 자비를 실천하는 분입니다... 거기에 지혜를 보탠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깨달음에 다다른 사람이니 감히 부처라 할수 있습니다.... 항상 착하고 순수하게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지내시이다... 석자연()

     
    출처 : 생활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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