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보살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보살입니다.
범어로는 만주스리로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로 한역경전에서는 묘길상, 묘덕보살이라고 했습니다.
환희장마니보적불이라고도 부릅니다.

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비로자나 부처님의 왼쪽에서 보필하고 있는데요 .
특히 《화엄경》에선 보현보살과 함께
비로자나 부처님의 양쪽에서 보필하는 분으로 등장합니다.
보현보살이 세상에서 실천 구도행을 할 때
문수보살은 지혜의 좌표가 됐다고 전합니다.
그 때문에 불교를 지혜와 실천의 종교라 할 때
지혜는 문수보살, 실천은 보현보살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습니다.

오대산 상원사에 가면 아주 예쁜 문수동자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동자는 조선 세조가 등창병으로 고생할 때
오대산 상원사에서 백일기도를 한 뒤에
문수동자를 만나 병이 나은 인연으로 조성된 분입니다.
이후부터 문수신앙은 조선시대에 더욱 성행하게 됐습니다.

《유마경》제5품은 문수사리질문품입니다.
유마거사가 병이 들자 부처님께서 십대 제자들에게 병위문을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유마거사의 지혜가 워낙 뛰어나
과거에 혼쭐 났던 기억이 있어 모두들 문병가길 꺼립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여러 보살들에게
유마거사를 찾아가 병문안 하라고 이르십니다.
그러나 여러 보살 역시
유마거사의 뛰어난 재능을 감당할 길 없다고 머뭇거리지요.
이때 부처님께서
지혜와 언변이 가장 뛰어난 문수보살에게
유마거사의 문병을 갈 것을 당부하십니다.
여러 제자와 보살들을 대표해 문수보살이 찾아간 것이 바로
《유마경》의 본문에 해당하는 제5품입니다.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은 중국의 청량산(일명 오대산)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기도를 올립니다.
이레만에 보살로부터 사구게를 받고
한 노스님으로부터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받았으며
신라에 구층탑을 세워 나라를 편안케 해달라는 부탁을 함께 받지요.
귀국한 자장율사는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고
오대산 중대에 적멸보궁을 건립하는 한편
오대산을 문수보살이 항상 머무시는 도량으로 만들었습니다.


상원사 문수동자상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수도량은
오대산 외에 강원도의 청평사, 경남 고성 문수사 등이 있습니다.
전북 고창 문수사가 있는 곳의 지명은 문수면이고
그 뒷산은 문수산이죠 강화도에는 문수산성이 있습니다.
모두 문수사가 자리했던 곳에서 유래된 이름들입니다.

통일신라 때의 보천스님은
오대산 중대에 1만 분의 문수보살이 머문다고 강조해서
문수보살에게 올리는 사람들의 향공양, 꽃공양이
끊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한산과 습득이란 당나라 스님 이야기도 잠깐 하고 갈까요.
습득이란 스님은 국청사에 계셨고,
한산스님은 강소성 소주의 한암이란 곳에서 홀로 수행을 하셨습니다.
한산스님은 밥때가 되면 국청사에 갑니다.
먹다 남은 음식을 얻어 먹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누구도그 모습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두고써야 할 한자가 있습니다.
'화합'이 그것입니다.
한산스님과 습득스님의 도반으로서의 우정은 아주 뜨겁습니다.
그래서 더 화합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산스님이 쓴 선시에는 무소유의 걸림없는 삶,
깨달음의 노래가 고스란히 청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 한산스님을 가리켜 사람들은 '문수보살의 화신'이라 부르고
습득스님을 일러 '보현보살의 화신'이라 했습니다.

일설에는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교화를 돕기 위해서
잠시 몸을 바꿔 보살에 머물고 있다 합니다.
성불은 이미 오래전에 하셔서, 대신불이란 이름을 지니고 있구요.
미래에는 보견여래라는 부처님으로 그 모습을 나투신다로 합니다.

보장 부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대가 공덕을 지은 것이 길고도길어 좋은 지위를 얻길 원하니
이제 너의 이름을 문수사리라 부르리라.
북방 환희세계에 있어선 부처님이 돼 이름을 환희장마니보적불이라 했는데
지금까지 그 이름이 드날려
이름만 들어도 네 가지 중한 죄를 소멸한다.
보살이 되어 석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문수보살의 또 다른 이름이 환희장마니보적불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른손에 지혜의 칼을 들고
왼손에 금강저를 위에 세운 청련과 경전을 갖고
용맹과 위엄을 상징하는 사자 위에 타고 있습니다.

대웅전에선 부처님의 왼쪽에서 지혜를 맡고 있으며
특별히 문수신앙이 강한 절에선
문수보살상만을 모신 문수전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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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시대 화엄종의 선사인 무착스님은 문수보살을 친견하기위해 영지(靈地)인 중국 오대산 금강굴에서 용맹정진 했다. 하루는 양식이 떨어져 마을로 가서 탁발을 하고 오다가 한 노인을 만나 법거량을 했는데 노인의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라는 공안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노인은 간곳없고 허공에서 게송 한 구절이 들려왔다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面上無瞋供養具)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口裏無瞋吐妙香)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心裏無瞋是珍寶)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無染無垢是眞常)

무착선사는 문수보살을 직접 뵙고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더욱 정진하여 마침내 앙산(仰山) 선사의 법을 받아 깨치고 대자유인이 되었다. 어느 해 겨울, 무착스님이 동지팥죽을 쑤는데 김이 나는 죽 속에서 문수보살의 모습이 거룩하고 장엄하게 나타났다. 그러자 무착스님은 팥죽 젓던 주걱으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문수보살은 “내가 바로 자네가 그리도 만나고자 했던 문수라네 문수” 라고 말했다. 무착스님은 “문수는 문수고 무착은 무착이다. 석가나 미륵이 나타날지라도 내 주걱 맛을 보여주겠다” 하니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그 유명한 문수동자게와 팥죽 주걱 맞은 문수보살에 얽힌 이야기다.


문수는 지혜상징… ‘부처님의 어머니’

조선 세조 때 문수동자 치료 설화 ‘유명
문수보살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처럼 스님들의 수행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무착선사 앞에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듯 문수보살은 자장율사 앞에 남루한 차림의 거사로 화현했는데 자장은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문수보살에 얽힌 사연들은 관음이나 미타 지장 등 다른 대승의 보살들과는 내용이 약간 다르다. 이들이 주로 일반 서민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반면 문수보살은 스님들의 수행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문수신앙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수는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지혜란 세속에서는 명석한 두뇌를 가리키지만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이루는 혜안을 말한다. 지혜와 행원은 불교의 두축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측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 우측에는 행원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모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깨달음의 핵심적 내용인 지혜를 상징하다 보니 문수보살은 주로 수행자들의 공부를 경책하는 역할을 많이 맡는다.



/ 문수는 왜 동자상인가

화엄경소에 나오는 동자형서 근거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보듯 문수보살은 보통 동자형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문명대 교수는 이에 대해 710년 중국어로 번역된 불설문수사리법보장다라니경(佛說文殊師利法寶藏陀羅尼經)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다.

이 경에는 동북방 대진나(大振那=神州)에 있는 오정산(五頂山)에 문수사리동자(文殊師利童子)가 유행하여 거주하면서 설법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경을 기초로 한 징관의 화엄경소에서는 문수는 머리에 5불관(五佛之冠)을 썼는데 정수리에는 5방으로 상투를 나누었다고 한 말에서 상투 동자형이 나왔다고 한다.



/ 문수보살의 십대원

중생제도 위해 세운 10가지 원력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신앙의 대상으로 숭상받는 것은 다른 불보살처럼 중생을 제도하기위한 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를 문수보살십대원(十大願)이라고 한다.
①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게 하고 갖가지 방편으로 불도에 들게 한다.
② 문수를 비방하고 미워하고 죽음을 주는 중생이라도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③ 문수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깨끗한 행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거나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④ 문수를 속이거나 업신여기거나 삼보(三寶)를 비방하며 교만한 자들이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⑤ 문수를 천대하고 방해하며 구하지 않는 자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⑥ 살생을 업으로 하는 자나 재물에 욕심이 많은 자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⑦ 모든 복덕을 부처님의 보리도에 회향하고 중생이 모두 복을 받게 하며, 모든 수행자에게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⑧ 육도(六途)의 중생과 함께 나서 중생을 교화하며 그들이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⑨ 삼보를 비방하고 악업을 일삼는 중생들이 모두 보리심을 내어 위없는 도를 구하게 한다.
⑩ 자비희사(慈悲喜捨)와 허공같이 넓은 마음으로 중생을 끊임없이 제도하여 보리를 깨닫고 정각을 이루게 한다.
님의 참 좋은 벗 순수나라^^*"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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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우주 제1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능엄주 수행은 수행중에서도 깊은 수행으로 가는 수행입니다

먼저 선정바라밀과 반야바라밀, 정과 혜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음의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제01) 사람이 부처님이다 (무비스님) 불광출판부, 5,000원

 

* 내가 바로 부처임을 알아, 중생상을 타파함

 

 

 

 

제02) 수행의 단계 (달라이 라마) 정우서적

 

* 사마타(선정바라밀)와 위빠사나(반야바라밀)에 대한 친절한 가르침

 

 

 

 

제03) 번뇌, 업, 고통 (정승석 교수님) 민족사

 

* 51가지 유식 30송의 심소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함

 

 

 

 

제04) 화엄경 제78번재 권 (80화엄, 입법계품, 미륵보살을 만나다)

 

* 보리심에 대한 설명

 

 

 

 

출처 : 달마가 영어를 만났을 때
글쓴이 : 선우 원글보기
메모 :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염불법(念佛法)♤ 
예로부터 전래되는 
염불법은 수없이 많다.
입으로만 이미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이 있는가 하면,
고요히 앉아 부처님의 형상을 
관념(觀念)하는 관상염불(觀想念佛)도 있고,
일체 만유의 진실한 자성(資性)인 
법신(法身)을 관하는 실상염불(實相念佛)도 있다.
그리고 좌선할 때처럼
선정에 들어서 부처님을 관하는 정업염불(定業念佛)과
가나 앉으나 누우나 한결같이 염불하는 
산업염불(散業念佛)도 있으며,
더러운 세계를 싫어하여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며
염불하는 유상업염불(有相業念佛)이 있는가 하면
비록 염불하여 정토를 구하나 자기 몸이 
곧 정토라고 보는 무상업염불(無相業念佛)도 있다.
또 그 방법상에 있어서는 속도와 
음율을 달리하는 오회염불법(五會念佛法)도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낮은 음성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다가 
제2회에는 약간 음을 높여 역시 느리게 부르며,
제3회에는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게 부른다.
제4회에는 점점 급하게 부르다가,
제5회에는 앞뒤 사이의 간격없이 ‘아니타불 아미타불.......’
네 자만을 부를는 것이다.
이때 한숨에 108번 이상을 염할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이미 염불로 인한 염력(念力)이 생긴 자로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염불삼매(念佛三昧)는
그리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때에 이르면 마(魔)를 경계해야 한다.
수행이 깊으면 마도 따라서 
치성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만,
이 마 또한 우리의 마음을 모으면,
마는 오히려 우리의 수행을 도와 줄 뿐이다.
수행자가 두려워 할 것은 결코 장애나 마가 아니다.
일념(一念)의 상태,
일심(一心)의 염불이 되지 못하는 것 외에
수행자가 따로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없다.
참된 염불 수행인의 고민은 어떻게 마음 밭의 
잡초를 거름으로 바꾸는가 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마음밭에는 
번뇌망상이라는 잡초가 있어 
일심의 염불을 방해하게 된다.
그 잡초 때문에 일념 염불은 잡스러워지고,
우리의 삶은 숱한 수난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번뇌 망상의 잡초와 함께 수행해야 하는
슬픔은 잡초의 허물일 수가 없다.
그 잡초가 무성해지도록 방치했던 자는 자신이 아닌가.
이제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마음 밭을 살펴보자.
잡초! 그것은 수행의 밑거름이다.
잡초는 바로 내가 지은 삼업의 그림자 이다.
어떤 경계가 닥아 와도 내 마음의 그림자이고 망상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상대하지도 마라. 그냥 관(觀)하라!
그러면 곧 물려갈 것이다. 그림자에 자성이 없듯이.
염불 쪽으로 마음을 옮겨라 그리고 계속 이어가라
그러나 이렇게 내 마음의 지음이 많음을 인정하라.
그것이 지금이든 옛일이든 전생이든 인정은 해야 한다.
그 인정이 분심과 정진심(精進心)으로 이어지도록..
호미를 들고 낫을 쥐어라!
염불수행이 곧 그것이니까.
마음 밭에 뛰어들어 잡초를 제거하자.
제거한 잡초를 퇴비장에 옮겨서 
푹 잘 썩힌 다음 거름으로 사용하자.
수행을 방해하던 잡초가 
오히려 밑거름이 되어서 마음의 밭에 심은 
깨달음의 나무를 더욱 잘 자라게 할 것이다.
우리가 마음 밭에 자라고 있는
번뇌의 잡초들을 지혜롭게 받아들일 때
잡초들은 스스로 참염불을 도우는 거름이 된다.
이 시절에 이르면 마음의 잡초들은 
더 이상 염불자을 괴롭히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잡초들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잡초들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한 마음 지혜롭게 쓰면 필경 
이 잡초들이 인생을 기름지게 할 것이고,
‘어떻게 할 때 잡초를 거름으로 바꿀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될 때 염불 수행은 급진전을 이룰 것이다.
염불과 잡초,
그리고 마음밭을 함께 살펴보자.
그러면 어떻게 잡초가 거름으로 바뀌는가를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밭에는 애초부터 주인도 객도 없었다.
그저 청정하고 또 잡초가 무성한 속에서도 청정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청정한 본바탕을 
팽개친 채 잡초만을 잡고 씨름한다.
그러다 보니 잡초를 거름으로 바꾸는 노력이
수행의 필연이 되고 만 것이다.
잡초가 완전한 거름이 될 때가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우면서 마지막 순간을
넘어서는 하나의 수행으로 매진해야만 한다.
‘내’가 ‘아미타불’을 ‘염하고 있다’는 생각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는 염불삼매(念佛三昧)에 몰입하여,
‘아미타불’이나 극락이 고요하면서도 또렷또렷하게 잡힐 
그때까지 마음의 밭을 염불로써 지키고 살펴야만 한다.
망상의 잡초가 거름으로 바뀔 때
마음은 청정해지고 극락은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미타불의 무량한 빛과 무량한 수명이 
곧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아니 마음 그 자체에서 떠나지 않았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일치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일심으로 염불하는 자!
그에게는 극락이 다가와서 펼쳐질 것이다.
극락이 스스로 이미 와 있는 것이다!
그는 어디에서나 극락(極樂)을 볼 것이다.
어느 때에나 극락을 즐길 것이다.
사바세계 어느 사찰의 극락전(極樂殿)에
굳이 앉아 있지 않을 지라도........!
***염불기도로 대원성취 하옵서서()()()!***
***화곡산 화엄정사에서 원오 합장***



출처 : 晩峰精舍[만봉정사]
글쓴이 : 만봉정사 원글보기
메모 :
대불정능엄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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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가타야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나모 바가바테 사캬무나예
타타가타야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나모 바가바테 라트나쿠수마 케투라자야
타타가타야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나모 바가바테 타타가타 쿠라야
나모 바가바테 파드마 쿠라야
나모 바가바테 바즈라 쿠라야
나모 바가바테 마니 쿠라야
나모 바가바테 가르자 쿠라야

나모 데바르시남
나모 싣다비댜다라남
나모 싣다비댜다라르시남 사파누그라하 사마르타남
나모 브라흐마네
나모 인드라야

나모 바가바테 루드라야 우마파티사헤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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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리시가나 프라사스타 타타가토스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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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브룸 마타나

훔브룸 파라비댜삼밬사나카라
훔브룸 사르바두스타남 스탐바나카라
훔브룸 사르바얔사 랔사사그라하남 비드밤사나카라

훔브룸 차투라시티남 그라하사하스라남 비나사나카라
훔브룸 아스타빔사티남 낰사트라남 프라사다나카라
훔브룸 아스타남 마하그라하남 비드밤사나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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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스라시르사이 코티사타사하스라네트레
아벰댜 즈바리타나타나카 마하바즈로다라 트르부바나만다라
옴 스바스티르바바투 마마

라자 바야
초라 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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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니 바야
아카라므르튜 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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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카파타 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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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라니 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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랔사사 그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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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타 그라하
쿰반다 그라하
푸타나 그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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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다 그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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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사 하리냐
메다 하리냐
마자 하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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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나그나스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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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한타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br>
비타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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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즈라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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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흐마크르탐 루드라크르탐 나라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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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즈라파니 구햐카디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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랔사랔사 맘 바가밤 시타타파트라
나모 스투테 아시타나라르카 프라바스푸타 비카시타타파트레
즈바라즈바라 다카다카 비다카비다카
다라다라 비다라비다라 친다친다 빈다빈다
훔훔 파트파트 스바하

헤헤 파트
아모가야 파트
아프라티하타야 파트
바라프라다야 파트
아수라비드라파카야 파트

사르바 데베뱧 파트
사르바 나게뱧 파트
사르바 얔세뱧 파트
사르바 랔사세뱧 파트

사르바 가루데뱧 파트
사르바 간다르베뱧 파트
사르바 아수레뱧 파트
사르바 킨다레뱧 파트
사르바 마호라게뱧 파트

사르바 부테뱧 파트
사르바 피사체뱧 파트
사르바 쿰반데뱧 파트
사르바 푸타네뱧 파트
사르바 카타푸타네뱧 파트

사르바 두르람기테뱧 파트
사르바 두스프렠시테뱧 파트
사르바 즈바레뱧 파트
사르바 아파스마레뱧 파트
사르바 스라마네뱧 파트
사르바 티르티케뱧 파트
사르바 운맘데뱧 파트
사르바 비댜차례뱧 파트

자야카라마두카라 사르바르타 사다케뵤 비댜차례뱧 파트
차투르바기니뱧 파트
바즈라 코마리 쿠란다리 비댜라제뱧 파트
마하프라튱기레뱧 파트
바즈라상카라야 프라튱기라라자야 파트
마하카라야 마트르가나 나마스크르타야 파트

인드라야 파트
브라흐미니예 파트
루드라야 파트
비스나비예 파트
비스네비예 파트
브라흐미예 파트
아그니예 파트
마하카리예 파트
로드리예 파트
카라단디예 파트
아인드리예 파트
마트리예 파트
차문디예 파트
카라라트리예 파트
카파리예 파트
아디뭌토카스마사나 바시니예 파트

예케 칱타
사트바 마마 두스타 칱타
파파 칱타
로드라 칱타
비드바이사 칱타
아마이트라 칱타

우트파다
키라 얀티
만트라 얀티
자판티 조한티

우자 하라
가르바 하라
루디라 하라
맘사 하라
메다 하라
마자 하라
바사 하라
자타 하라
지비타 하라
마랴 하랴
바랴 하라
간다 하라
푸스파 하라
파라 하라
사샤 하라

파파 칱 타
두스타 칱 타

데바 그라하
나가 그라하
얔사 그라하
랔사사 그라하

아수라 그라하
가루나 그라하
킨다라 그라하

마호라가 그라하

프레타 그라하
피사차 그라하
부타 그라하
푸타나 그라하
카타푸타나 그라하
쿰반다 그라하

스칸다 그라하
운마다 그라하
차야 그라하
아파스마라 그라하
다카다키니 그라하
레바티 그라하
자미카 그라하
사쿠니 그라하
난디카 그라하
람비카 그라하
칸타파니 그라하
즈바라 에카히카

드바이티야카

트레티야카
차투르타카
니탸즈바라 비사마즈바라 바티카
파이티카
스레스미카
산디파티카
사르바즈바라 시로르티 아르다바베다카
아로차카

앜시 로감
무카 로감
흐르드 로감
카르나 수람
단다 수람
흐르다야 수람
마르마 수람
파라스바 수람
프르스타 수람
우다라 수람
카티 수람
바스티 수람
우루 수람
잠가 수람
하스타 수람
파다 수람
사르방가프라튱가 수람

부타베타다 다카다키니
즈바라다드루칸듀키티 바로타바이
사르파로하링가 소사트라사가라
비사요가 아그니 우다카 마라베라
칸타라 아카라므르튜
트라이무카 트라이라타카 브르스치카
사르파나쿠라 심햐 뱌그라맄사 타라맄사
차마라지비베 테삼사르베삼 시타타파트라
마하바즈로오스니삼 마하프라튱기람
야바드바 다사요자나 뱐타레나

사마 반담 카로미
디사 반담 카로미
파라비댜 반담 카로미
테조 반담 카로미
하스타 반담 카로미
파다 반담 카로미
사르방가프라튱가 반담 카로미

타댜타

아나레아나레 비사다비사다
반다반다 반다니반다니
바이라바즈라파니 파트 훔브룸 파트 스바하

나모
스타타가타야 수가타야르하테 사먘삼붇다야
시댬투 반트라파다 스바하

정림사 부처님




※ 이 능엄주 독송은 마산 정인사 주지이신 원행스님께서 하신 것으로, 해인사 백련암에서 테잎으로 제작하여 신도님들에게 배포하는 것입니다.


출처 : 晩峰精舍[만봉정사]
글쓴이 : 만봉정사 원글보기
메모 :

    충남 공주시 寺谷面 雲岩里, 泰華山 동쪽 산허리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本寺이다.
    “마곡사 事蹟立案”의 기록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慈藏이 창건하였으며, 고려 明宗 때 1172년 普照國師가 중수하고, 梵日이 재건하였으며, 다시 道詵國師가 중수하고, 淳覺이 보수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려 ‘靈山殿’이라고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는데,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801)·大光寶殿:보물 802·영산전(보물 800)·사천왕문·解脫門 등이 있을 뿐이다. 이 밖에 寺寶로는 5층 석탑(보물 799)·梵鐘:지방유형문화재 62, 掛佛 1폭,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輦), 청동 향로(지방유형문화재 20)가 있고,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보물 270) 및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269)이 있다. [백과사전 에서]

                   

                   

                   

                   

                   

                   

                   

                   

                   

                   

                   

                   

                   

                  이 절의 이름은 신라 보철화상이 설법 전도할 때 모인 신도가 삼밭의 삼대 같다고 하여
                             마곡사라 지은 것이라 한다.
                             절에서 내려오는 얘기로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2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하여 고려 보
                             조국사가 재건하였다 하나,  그 처음 연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고 전하는 연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선덕여왕 12년은 백제 멸망이전 백제 의자왕 2년에 해당한다.
                             만일 642년 창건이 사실이라면, 의자왕 2년으로 전해져야 하는데 적대관계의 신라 연대
                             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금물이나 은물로 베껴 쓴 필사 불경들이 지금도 여러 점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려후
                             기 불교문화의 대표적 유산이기도 하다.
                             이 절과 관련해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일대가 조선조 십승지지, 즉 전란기에 위험
                             을 피할 수 있는 특별한 지역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마곡사는 임진왜란의 전란을 피하였으며, 한국전쟁 때도 병화
                             를 입지 않았던 것으로 전한다.

                             * 주요문화재
                              마곡사5층석탑(보물 799호), 마곡사영산전(보물 800호)
                              마곡사대웅보전(보물 801호), 대광보전(보물 802호)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1(보물 269호),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6(보물 270호),
                              천왕문(문화재자료 62호), 응진전(문화재자료 65호)
                              명부전(문화재자료 64호), 동제은입향로(문화재자료 20호)
                              해탈문(문화재자료 66호), 동종(문화재자료 71호)
                              심검당 및 고방(문화재자료 135호), 국사당(문화재자료 63호)
                              세조대왕가마(문화재자료 14호), 괘불(문화재자료 345호)

                  등산코스 : 영은암 - 대원암 - 토굴암 - 백련암 - 부용암 - 북가섭암

                  입 장 료 : 개인 - 어른 2,000원 / 청소년 1,500원 / 어린이 1,000원
                             단체 - 어른 1,600원 / 청소년 1,200원 / 어린이   800원

                  주차요금 : 대형 - 4,000원 / 소형 - 2,000원

                  도로안내 : * 서울
                               서울 IC - 천안 JCT 톨게이트 -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 진입 - 정안 톨게이트부터
                               마곡사 표지판따라서 - 604번 지방도이용(18km 지점)
                             * 대전
                               대전 유성IC - 32번 국도 타고 공주 도착 (30분 소요)
                             * 공주
                               공주에서 예산(아산)방면으로 32번 국도 이용 직진해서 10km 정도 가다가 사곡면 소
                               재지에서 우회전 마곡사 입구까지 진입가능, 거리는 20km로 30분~1시간 소요됨.
                             * 천안 남부지역
                               광덕사 지나 곡두터널 - 동해리 - 마곡사.
                             * 천안
                               천안에서 공주로 오는  국도 23호선 중 차령고개를 넘어 바로 나타나는 공주시 정안
                               면 소재지(광정)에서 오른쪽 길(604번 지방도)로 들어가는 길.

                  현지교통 : 공주버스터미널에서 마곡사까지 7번 시내버스 종점하차 (06:10∼20:30, 40분소요)

                  주변숙박지 : 공주지역의 호텔이나 여관, 민박 이용가능

                  * 백범 김구선생이 마곡사에서 잠시 은거한 곳으로도 널리 알려짐.

                출처 : 보헤미안의 유토피아
                글쓴이 : 月 明 居 士 원글보기
                메모 :

                 

                 

                 

                 

                 

                부석사 (浮石寺)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소재 )

                 

                 

                소백산 줄기의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부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송고승전 宋高僧傳〉 의상전(義湘傳)에는 의상과 선묘, 부석사 창건에 관한 설화가 자세히 적혀 있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善達寺) 또는 흥교사(興敎寺)라 불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

                부석의 향음(鄕音)으로 보기도 한다.

                의상을 부석존자(浮石尊者)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 부석종(浮石宗)이라 하는 것은

                이 절의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다.

                의상 이후 혜철(惠哲)을 비롯하여 신라 무열왕의 8대손인 무염(無染)과 징효(澄曉) 등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었다.

                만년에 이곳에 머문 원융(圓融)은 대장경을 인쇄했는데

                지금 부석사에 전하고 있는 화엄경판은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372년(공민왕 21) 원응(圓應)국사가 주지로 임명되어 가람을 크게 중창했다.

                경내에는 고려시대의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조사당(국보 제19호)을 비롯하여

                원각전·응진전·안양루·선묘각·범종루·자인당 등 조선시대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무량수전앞석등(국보 제17호)·소조불좌상(국보 제45호)·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3층석탑(보물 제249호)·당간지주(보물 제255호)·고려판각(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등이 있다. 이밖에도 이 절의 창건설화와 관련있는 석룡(石龍)·

                대석단(大石壇)·선묘정(善妙井)·녹유전(綠釉塼)·선비화(禪扉花) 등이 전해지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09/05/05)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정되기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

                그러므로 무량수전은 고대 불전 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인데 

                고려시대의 법식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 주지만 그 가운데 가장 유의하여 볼 부분은

                평면의 안허리곡(曲),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 배흘림, 항아리형 보 등의 의장 수법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착시에 의한 왜곡 현상을 막는 동시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하여 고안된 고도의 기법들이다.

                 

                짧은 시간에 돌아 보는 부석사 경내는 다른 사찰과는 다른

                느낌이였습니다.

                역사적인 의미를 더하지 않아도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찰 분위기가 발길을 잡았지만

                일정에 쫓겨 부지런히 발길을 돌려아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머지 않은날에 여유로움의 시간에 다시 찾아 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남기며 부지런히

                다음 일정을 따라 발길을 재촉합니다.

                 

                 


                 

                 

                 


                출처 : 보헤미안의 유토피아
                글쓴이 : 月 明 居 士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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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은사 泉隱寺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


                천은사는 구례에서 지리산 노고단으로 오르는 산문山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수홍루와 어우러진 계곡이며 짙푸른 호수가 은은한 정취를 풍긴다. 


                서기 828년(신라 흥덕왕 3년)에 덕운 조사와 인도의 사루스님 등 2분에 의해 창건되어 감로사로 불리다

                서기 1592년에 전소된 후, 1679년(조선 숙종 5년) 조유선사에 의해 중창되고 절 이름도 현재의 천은사로 개칭되었다.

                1773년(조선 영조 49년)에  원인 모를 불이 나 여러 건물이 다시 소실되어, 1774년에 다시 혜암선사에 의해 모두 재건되었다.

                천은사를 남방제일선찰 南方第一禪刹 이라 하는데

                산내 중선원인 수도암이 고려에서 가장 뛰어난 선승禪僧들이 많아 고려시대 충렬왕이 하사한 칭호이다. 


                [전설]

                천은사에는 샘에 얽힌 전설이 있다.

                천하제일의 물맛이라는 샘이 있어, 옛날에는 이슬처럼 맑은 샘이라 절 이름도 감로사甘露寺라 했는데,

                어느 날 이 샘을 보호하던 구렁이가 밖에 나왔다가 어떤 사람의 돌팔매에 맞아 죽게 되었다.

                놀란 스님들이 묻어주고 치성을 드렸으나 물줄기가 끊어지고 말아 이후 절 이름도 <샘이 숨은 절>이란 뜻의 천은사泉隱寺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원인모를 화재가 자주 일어나서 걱정거리가 되었다.

                스님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는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조선 명필의 한 사람인 이광사를 초청하여 마치 물 흐르듯 수기를 불어 넣는 수체水體의 글씨로

                <智異山泉隱寺> 현판을 써서 일주문에 걸게 하였는데,  그 뒤부터 화재가 없었다고 한다.

                 

                 

                # 일주문 :

                 

                # 극락보전 極樂寶殿 : 전남 유형문화재 제50호

                극락보전은 아미타여래상을 안치한 불전으로 천은사의 가장 주된 건물이다.

                서기 828년(신라 흥덕왕 3년)에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됐던 것을 1774년에 혜암선사가 재건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이며 지붕마루 부분에 삼각형의 벽과 팔八자 모양으로 널빤지를 붙인 형태의 지붕(팔작지붕)으로 

                공포는 외3출목의 조선 중기 이후의 다포양식(기둥 위,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공포를 설치한 형태)의 건물로

                지반地盤은 규칙적인 4각 판석으로 쌓아올린 축대 위에 자연석 초석을 배치했으며

                그 위에 세운 원주圓柱는 민흘림기둥이다.

                내부는 용의 머리를 새겨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천정은 우물천정인데 삼존불 뒤쪽에 비룡상을 그려 더욱 장엄함을 더하고 있다.   

                 # 아미타후불탱화 : 보물 제924호

                탱화란 그림을 그려서 벽에 거는 불교그림을 말하며,

                이 탱화는 서기 1776년(조선 영조 52년)에 그려진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아미타불화로

                아미타불이 서방극락에서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이다.

                중앙 사각대좌(수미단) 위에 앉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하단에 8보살(좌우로 관음, 대세지, 문수, 화현, 금강장, 제장애보살 등)과 사천왕상, 사천왕,

                상단에 10대 제자 등이 둥글게 여백을 주지 않고 그려져 있다.

                각각의 불보살들에게는 광배의 한쪽에 붉은색의 사각형 칸을 만들어 흰 글씨로 불상의 이름을 적고 있다.

                이 기록은 당대의 아미타불화 뿐만 아니라 불화의 형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  극락전의 처마 : 앞에 용머리 뒤에 용꼬리가 나와 있다.

                                                                        용은 극락으로 인도하는 방편으로 쓰였다.

                 

                # 극락보전의 주련과 앞마당의 석등

                                                                                # 실상사, 화엄사 , 천은사의 석등들이 닮았다.

                 

                # 관음전 :

                관음보살은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이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즉시 그 음성을 관하고 중생의 근기에 맞는 모습으로 나타내 대자비심을 베푼다는 보살이다.

                관음보살은 아미타여래의 좌협시 보살로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별도로 마련한 건물에 단독으로 모시고 관음전觀音殿이라고 하는데,

                사찰에 따라서는 원통전圓通殿 또는 보타전寶陀殿이라는 편액을 걸어 두기도 한다.

                이는 <나무 원통교주圓通敎主 관세음보살>이라고 관음보살을 부르는 때문인데, 원통圓通이란 이근원통耳根圓通을 줄인 말이다.

                관음보살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 신앙했던 보살이다.

                숭유배불의 조선시대에 왕실에서도 관음전을 능陵 가까이 세우고 

                왕족의 극락왕생과 왕릉의 안전 보존을 기원할 정도로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이 깊었다. 

                 

                ## 감로수 : 관음전 앞

                  

                # 팔상전 

                석가모니의 생애를 8개로 나누어 그림으로 그린 것이 팔상도이고,

                팔상도와 불상을 보안한 전각을 팔상전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설법회상인 영산회상에서 유래하여 영산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불단 없이 벽에 팔상도를 봉안하는 것이 보통이다.

                주불은 석가모니불리고 좌우 협시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봉안한다.  

                 

                          # 팔상도  : 팔상전의 내벽에 있는 그림

                 

                 

                 

                # 응진전 :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하여 좌우에 석가모니의 제자 가운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성자들을 봉안한다.

                500나한을 모신 오백나한전羅漢殿과 16나한상을 모신 응진전應眞殿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백나한이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해 준다고 믿어 많은 나한전이 생기게 되었다.

                경북 영천군 거조암 영산전靈山殿의 500나한상과 청도군 운문사의 오백나한전이 유명하다.

                나한전에 봉안된 현존 나한상은 거의 조선시대 작품으로 다른 불상들과는 달리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표정도 해학적이면서 인간적 정취를 자아내므로 친근감을 일으킨다.  

                나한 중에서도 16나한을 모시는 건물로 나한신앙을 배경으로 조성된 것이다.

                대개 응진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阿難과 가섭迦葉을, 주위에 16나한을 배치하고

                끝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봉안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경북 울진군 서면에 있는 불영사佛影寺의 응진전(보물 제730호)이 대표적이다.

                 

                 

                 

                 

                # 나옹화상 원불불감 : 보물 제1546호

                고려 공민왕의 스승인 나옹화상이 천은사 산내 상선암에 주석하시며 조석으로 신봉하던 불상이다.

                높이 29cm, 지붕높이 11cm, 폭 35cm인 불감佛龕으로,

                문을 열면 양편에 인왕상이 매우 정교할 뿐 아니라 생동감이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한 조각 솜씨를 보여 마치 대가람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초가집 형태의 전각(우진각형)으로 고려말 조선초의 대표적인 불감이다.

                안에는 금동삼신불(법신불, 불신불, 응신불)상이 모셔져 있고,

                뒤 벽면에는 법신불인 비로자나삼신상과 10명의 제자상을

                좌우 벽면에는 화려한 꽃무늬를,

                입구문에는 불법의 수호신인 칼을 든 인황을 새겼다.

                삼신불을 받치고 있는 대좌는 연꽃 모양과 연꽃을 엎어놓은 무늬는 14세기말 내지 1세기겨의 불상 양식과 같은 것이다.

                벽면에 새겨진 불상의 얼굴 형태와 옷 주름의 선이 부드럽고 무늬가 화려할 뿐 아니라

                인왕의 힘차고 발랄한 표현 등은 수준 높은 작품의 불감임을 보여준다.

                불감 뒷면에는 불감을 만든 이와 시주자가 새겨져 있고

                당대의 우진각형 건축양식의 일면을 보여주어 귀중한 건축 자료로서도 가치가 크다.


                # 천은사 괘불탱 : 보물 제1340호

                서기 1673년에 경심, 지감, 능성 등의 화원이 그린 이 괘불은

                길이 894cm, 폭 567cm로 거대한 화면에 곽 차게 정면을 향해 서있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그렸다.

                또한 형태, 향토색이 강한 독특한 채색, 필선, 문양 등에서 17세기 후반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 

                 

                # 보제루

                보普는 <널리 두루>, 제濟는 <건너다><건지다>라는 뜻이니,

                보제는 <두루 구제한다>, <널리 보살핀다>라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중생이 생사 왕래하는 세 가지 세계를 뜻하는 삼계三界에 투망을 놓아 인천人天의 고기를 건진다는 뜻으로 본다.

                  # 삼계 : 중생이 윤회하는 세 가지 영역의 세계.

                              생명체가 머무는 세계 전체. 생사 유전하는 미혹의 세계를 세 단계로 구분, 즉 욕계, 색계, 무색계.

                 

                 

                # 범종각 

                                                                            ## 범종각에 있는 목어

                 

                # 운고각 雲鼓閣 :

                    같은 범종각을 밖에서 보면서 운고각이라 이름지었다.

                 

                #  천왕문

                 

                 

                 

                 

                # 수홍루 : 

                 

                # 부도전 :

                 

                 

                 

                # 산문 山門  :

                                        <밖에서...>                                                                                     <안에서...>

                 

                 


                출처 : 보헤미안의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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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효자의 눈물 독경 / 영인스님

                다생부모십종대은(多生父母十種大恩)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뱃속에 있을 적에 잘 보호한 은혜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해산할 때에 괴로움을 받던 은혜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갓난아기 낳고 나면 고통을 잊는 은혜
                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먹여 주신 은혜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마른자리 젖은 자리를 가려 눕히는 은혜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젖을 먹이어 양육하신 은혜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더러운 옷을 세탁하여 길러준 은혜
                원행억념은(遠行億念恩)
                먼 길을 떠나면 항상 근심하는 은혜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자식을 위하여 악한 죄도 짓는 은혜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언제나 연민의 정을 가지시는 은혜

                어머님의 참 사랑이 하도 그리워
                내 고향 두메산골 찾아 왔건만
                반겨 주실 어머님은 대답이 없네.
                어머니! 어머니!
                이것이 인생길에 설움 인가요.
                어머님의 그 목소리 그립습니다.

                언제나 잘 되라고 말씀하시던
                그 말씀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이것이 자식들의 마음 인가요.

                선망부모 왕생정토진언(先亡父母 往生淨土眞言)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숫제유리 사바하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숫제유리 사바하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숫제유리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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