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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아름 다운 사찰

관악산 연주대




월출산 무위사




두륜산 만일암터




두륜산 대흥사




충남 가야산 개심사




충남 가야산 개심사




충남 가야산 보원사터




도봉산 망월사




도봉산 망월사




태백산 망경사




태백산 망경사




삼각산 진관사




삼각산 진관사




운길산 수종사



 

운길산 수종사




금정산 범어사




금정산 범어사




금정산 범어사




덕숭산 수덕사




덕숭산 수덕사




덕숭산 수덕사




덕숭산 수덕사




덕숭산 수덕사




추월산 보리암




강천산 강천사




속리산 법주사




속리산 법주사




주왕산 대전사




설악산 봉정암




천태산 녕국사




포천 이동 백운산 흑룡사




지리산 쌍계사




지리산 쌍계사




지리산 연곡사




지리산 연곡사




팔영산 능가사


수도산 수도암




수도산 수도암




수도산 수도암




비슬산 대견사터


마이산(馬耳山) 탑사(塔寺)


관악산(冠岳山) 연주대(戀主臺)




관악산(冠岳山)연주암


가야산 용탑선원




가야산 마애불입상




가야산 석조여래입상(보물264호)




가야산 해인사




가야산 해인사




가야산 해인사




설악산 봉정암




월악산 미륵사지




화암사 쌍사자석등과 무학대사의 부도




화암사




내장사(內藏寺)




내장사(內藏寺) 백련암에서 바라본 전망대




운주사(雲住寺) 9층석탑



 
운주사(雲住寺)




운주사(雲住寺)




운주사(雲住寺와 와불


 

운주사...가운데 석실안에는 등을 맞대고 앉은 부처가 있다.




운주사




쌍봉사(雙峰寺)




쌍봉사(雙峰寺) 철감선 사탑




선암사(仙巖寺)




선암사(仙巖寺)




선암사(仙巖寺)




두타산(頭陀山) 삼화사(三和寺)




내연산 보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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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창녕 관룡사                                                                        written by 한국의 사찰과 문화유산

 ▲ 관룡사 용선대 석조 석가여래좌상 모습(2002년 4월 촬영)

관룡사 석장승(경남 민속자료 6호)  

 ▲ 도난/회수 이후의 석장승 모습(2006년11월)

 ▲ 도난 이전의 석장승 모습(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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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로 가는 오솔길 양쪽에 서 있는 한 쌍의 돌장승이다. 사찰 입구에 두는 장승은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과 더불어 잡귀의 출입을 막고, 풍수지리적으로 허한 곳의 기운을 불어넣는 등의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곳의 장승은 사찰의 경계표시·수문장의 역할과 함께 마을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수호신이 되고 있다.

도난 창녕 석장승, 충남 홍성서 발견

뉴시스|기사입력 2004-02-02 15:45 |최종수정2004-02-02 15:45

지난 11일 분실됐던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관룡사 경내 석장승 1쌍이 충남 홍성의 폐공장에서 발견, 회수됐다. 2일 창녕군과 창녕경찰서에 따르면 1일 오후 1시20분께 창녕군청 대표전화로 걸려온 "석장승이 충남 홍성군 구항면 폐공장에 있다"는 내용의 제보전화를 현장 확인한 결과, 구항면 구항리 D벽돌 폐공장 내에서 발견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창녕군으로 걸려온 전화번호를 역추적, 제보자 인적사항을 조사하는 한편 석장승이 발견된 홍성 등지 문화재 전문 절도 용의자와 일대 장물업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창녕군은 지난 10일 오후 군청 문화공보과 직원들이 지난해 태풍 '매미' 당시 산사태로 쓰러져 훼손방지를 위해 흙으로 덮어 두었던 석장승들이 없어진 것을 발견, 경찰에 도난신고를 했다.

▲ 관룡사 돌계단과 석문 입구 전경(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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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경치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 돌문 사이로 본 모습

▲ 돌계단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 길을 따라서 오르면 입구가 바로 보입니다.

▲ 경내로 들어서면 바로 좌측에 있는 범종각과 종각내 법고 모습입니다.

보물 212호(관룡사 대웅전)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는 것이 일반적인데, 특이하게 이 관룡사 대웅전엔 비로자나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1965년 8월 보수공사 때, 천장 부근에서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이 건물은 조선 태종 1년(1401)에 짓고,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 9년(1617)에 고쳐 세워, 이듬해에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앞면과 옆면이 모두 3칸 크기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가운데부분을 한층 높게 한 점이 특이하다.

 ▲ 원음각(대웅전 정면)  ▲ 칠성각(대웅전 우측)

 ▲ 산령각과 응진전(칠성각 뒤편)  ▲ 명부전(대웅전 좌측)

보물 146호(관룡사 약사전)

 ▲ 관룡사 약사전 전경(2006.11 촬영)  ▲ 2002년 4월 촬영, 당시 대웅전 보수중인 모습 보임

관룡사는 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절의 역사에 관한 뚜렷한 기록은 없다. 임진왜란 때 약사전만 남기고 다른 건물들은 모두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약사전은 조선 전기의 건물로 추정하며, 건물 안에는 중생의 병을 고쳐 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1칸·옆면 1칸으로 매우 작은 불당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간결한 형태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 약사전 뒤편 모습  ▲ 약사전 뒤편에서 바라본 명부전과 대웅전

이와 비슷한 구성을 가진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송광사 국사전(국보 제56호)과 좋은 비교가 된다. 옆면 지붕이 크기에 비해 길게 뻗어 나왔는데도 무게와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건물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몇 안되는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로, 작은 규모에도 짜임새가 훌륭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경남 유형문화재 11호)  

관룡사 약사전 앞에 있는 3층 석탑이다. 석탑은 바위를 바닥돌 삼아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했고, 가운데기둥 양 옆으로 얇고 넓직하게 안상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는 1층 지붕돌이 파손이 심한 편이며,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개씩의 돌로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으로 간략화되었다. 규모도 작아졌고, 각 부분의 양식이 간략해진 모습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보물 519호(관룡사 석조여래좌상)

관룡사의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다. 표현기법에 있어 절의 서쪽 계곡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머리에는 큼직하게 표현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이마 위쪽으로 반달 모양이 표현되어 고려시대 불상의 머리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 있어야 할 3개의 주름은 가슴 윗부분에 표현되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얕은 선을 이용해 형식적으로 표현하였다.

겉옷 안에는 두 가닥의 접힌 옷자락이 역시 도식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른손은 왼발 위에, 왼손은 오른발 위에 놓여 있는 독특한 손모양이며 왼손 위에는 약그릇이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상·중·하대를 모두 갖추고 있는데, 연속된 거북이 등모양으로 연꽃을 표현하고 있는 상대가 특이하다. 머리에 표현된 반달 모양과 형식화된 세부표현 기법 등에서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을 고려시대에 이 지방의 장인이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관룡사 부도(경남 문화재자료 19호)  

부도란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둔다. 이 부도는 관룡사 내에 있는 7기의 부도 중 하나로, 절 북쪽의 화왕산으로 오르는 길 옆에 자리하고 있다. 2단의 바닥돌 위로, 아래·가운데·위의 세 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을 쌓고, 공모양의 탑몸돌을 올린 후 사각 지붕돌을 올린 모습으로, 아래에 비해 윗부분의 몸집이 더 커 보인다.

아래 받침돌은 옆면마다 두 개의 공간을 만들어 무늬를 넣고,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둘러 새겼다. 가운데 받침돌 역시 조각을 두었으나 무늬가 뚜렷치 않고, 윗받침돌 밑면에 새긴 연꽃무늬 역시 많이 닳아있는 상태이다. 지붕돌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있었을 듯 하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부도의 구조와 조각솜씨들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비록 많이 닳아있긴 하나, 창녕군의 대표적인 부도라 할 만큼 아름답고 정교한 작품이다.

보물 295호(관룡사 용선대 석조 석가여래좌상)

관룡사 근처의 용선대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산 꼭대기 높은 바위 위에 모셔졌으며 광배는 없어진 상태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단아한 인상이며 미소를 띤 표정에서는 자비로운 불심이 느껴진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몸에 밀착되었으며,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으로 처리되어 도식적인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신체의 양감이 줄어들고 약간 위축된 모습이지만 안정감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무릎에 놓인 손은 두툼하지만 섬세하게 조각되었으며, 앉은 자세에서는 다소 둔중함이 느껴진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반구형의 상대석은 연꽃을 새겼고, 8각 중대석은 각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두었으며, 하대석은 4각의 받침 위에 겹으로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양감이 줄어든 신체 표현, 도식적인 옷주름선, 8각 연꽃무늬 대좌의 형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 9세기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 용선대 사진 3장은 2002년 4월 촬영  ▲ 위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옴.

[김영택의 펜화 기행] 극락 가는 배 타는 곳 [중앙일보]
화왕산 용선대
화왕산 관룡사 용선대, 종이에 먹펜, 36X50cm, 2007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어디로 갈까요? 교회에 다니던 분은 요단강을 건너 천국에 가고, 절에 다니던 분은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고해(苦海)를 건너 극락세계로 간다고 합니다. 통도사 극락전 뒷벽에 잘 그린 반야용선 벽화가 있습니다. 용머리와 꼬리를 갖춘 배에 일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여러 인간을 극락세계로 데려가는 모습입니다.

반야용선이 그림으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녕 화왕산에 진짜 반야용선이 있습니다. 관룡사 마당을 거쳐 20분쯤 오르면 배처럼 생긴 큰 바위를 만나게 됩니다. 신라 사람들이 이 배 위에 부처님을 모셔서 진짜 반야용선을 만들었습니다.

망망대해와 같은 드넓은 산야를 내려다보는 부처의 용모와 자태가 뛰어납니다. 신체의 비례가 좋고, 법의도 제대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미소를 머금은 근엄한 표정에 정이 갑니다. 비바람 거센 바위 위에서 이처럼 훌륭한 불상을 조각한 석공은 누구일까요. 좌대의 조각도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관룡사 용선대(左)와 통도사 극락전 반야용선 벽화

보물 제295호인 석조여래좌상은 높이가 2.98m로 꽤 큰 편입니다. 헬리콥터도 없던 신라시대에 수십 길 절벽 위에 무거운 부처와 좌대를 어떤 방법으로 모셨을까요. 조사해 보니 절벽 위의 돌로 부처와 좌대를 만든 것으로 판명되었답니다. 만든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좁은 바위 위에서 부처와 좌대를 어떻게 옮겼을까요?

천야만야한 벼랑 위 좁은 터에 굵은 기둥을 얽어 세워놓고 부처와 좌대를 들어 옮긴 신라의 드잡이(무거운 물건을 들어 옮기는 장인)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펜화로 옮기며 석등의 하대석과 근래에 설치한 쇠 난간을 빼버렸습니다.

가을 용선대를 찾아 가시면 5만여 평에 달하는 화왕산성 억새꽃의 장관은 특별 보너스가 됩니다.  용선대하면 커다란 단감 생각이 잊혀지지 않네요  용선대는 하왕산 하산길에  있어서 종일 걸어서 시장기가 어찌 드는지 옆지기 만류에도 뿌리치고 커다란 단감을 "부처님 죄송합니다  지친 몸 배도 고프고요 저도 부처님 감 먹겠습니다 " 한입에 먹고는 지금까지  갚지를 못했네요  7~8년전됐을텐데...

08년 가을엔 꼭 부처님 단감 갚으로 가야지... 동행자 없나요??ㅎ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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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불사의 현장 / 중국 옥천사

 
 

중국 사천성 중경시 북동쪽에 있는 대족의 석굴은 승려 조봉지에 의해 그려지고 조각되었으며

3대에 걸쳐 작업을 하였으나 거의 완성을 앞둔 미완의 작품으로

중국의 운강석굴, 용문석굴과 함께 3대 석굴 중에서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다.
또한 다른 석굴과 다른 특징은 한 사람의 계획된 불교적인 내용이 연속적으로 표현된 단일 작품이다.
사진은 실제 관람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입구에서 출구까지 순서대로 배열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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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산사의 명상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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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탐구 사후세계는 어떤 곳인가<21> 임사체험④

고차원적 의식의 세계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천장부근을 떠다니면서 내가 수술받는 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혼이 육체와 분리되는 체외이탈 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일러스트.
핀란드 출신 미국의 의학박사인 라우니 리나 루카넨 킬데(Rauni-Leena Luukanen-Kilde)는 1969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면서 급성복막염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됩니다. 그는 전신마취로 의식을 잃을 상태에서 임사체험을 하게 됩니다.

“전신마취를 했기 때문에 의식을 잃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천장부근에 떠다니면서 내가 수술받는 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수술을 하고 있던 의사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메스를 들고 자르려고 하고 있구나, 그런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르려는 부분에 작은 동맥이 감춰져 있었다는 것도 어찌된 일인지 알았어요. 그러나 의사는 그것을 몰랐는지 그 동맥을 잘라버리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중지시키려고 소리를 쳤습니다. ‘거길 자르면 안돼! 거기에 동맥이 있어!’ 그러나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예상한 대로 그는 동맥을 잘라버렸지요. 피가 분출해 천장까지 솟아오르는 게 보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터널 속은 캄캄했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편에 밝게 빛나는 빛이 보였고 나는 거기로 들어갔지요. 그곳은 자유의 여신상만큼 거대하고 강한 빛을 품고 있었습니다. 빛은 따뜻하고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빛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나는 직접 볼 수 없었어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앞에 꿇어 앉았습니다.”(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임사체험 상)

킬데씨는 임사체험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대수술 중이었습니다. 그 후 진료기록부를 확인한 결과 임사체험 중에서 본대로 수술이 이뤄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체외이탈과 초현실적 현상= 킬데씨는 “임사체험이란 일상세계를 성립하는 차원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건너가기 위한 다리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죽음의 실체는, 3차원의 세계에서 우리들이 입고있는 육체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차원을 달리하는 세계로 들어간다고 하면 아주 어려운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텔레비전 채널을 지상파에서 위성방송으로 전환하는 것과 같아요. 텔레비전을 지상시스템에서 우주시스템으로, 그 시스템의 차원을 바꾸더라도 당신의 존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3차원 세계에서 고차원으로 존재 시스템을 이동시켜도 육체를 떠난 당신의 본질적 존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다른 차원에서 당신은 계속 존재하고, 계속 생각하고, 계속 감각을 지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요. 의사들도 빨리 그 사실을 깨달아 마지막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플라톤이 “인간의 혼은 육체라는 감옥에 사로잡혀 있는 수인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 것처럼, “육체는 혼 혹은 에너지체가 살고 있는 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것처럼 에너지는 불멸이고 다만 모습이 바뀔 뿐이라는 것입니다. 혼을 에너지체라고 한다면 에너지불멸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고, 그래서 영혼이 영원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킬데씨는 손발 등 말초혈관의 혈류를 점점 감소시켜 혈류가 심장과 뇌에 집중되도록 자기체면을 걸어 체외이탈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체외이탈을 통해 침대 위에 누워있는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게 됐고 자유롭게 생각대로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마음에 아무런 동요도 없이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 육체 곁으로 내려가 열심히 관찰하기로 마음먹고 호흡수를 헤아려 보기도 했습니다. 마취의사도 겸하고 있는 그녀는 정상치의 절반인 1분에 10회 정도 호흡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헬싱키의 부모님 집 거실로 날아가는 체험도 했습니다. 다음날 집으로 전화를 해보니 임사체험을 통해 보았던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킬데씨는 이 경험을 통해 체외이탈이 초현실적 현상임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글을 쓰고= 킬데씨의 저서인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도 초현실적 체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절반이 킬데씨가 자신의 임사체험을 쓴 것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51세에 죽은 종형에 의해 씌어진 것입니다. 그 부분은 사람이 왜 죽는가, 왜 인간은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불행과 고통은 왜 존재하는가 등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고있는 의문에 대해 답하는 내용입니다.

잡념을 제거하고 정신을 집중시키는 모임에 나가면서 그녀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원인 모를 강한 힘이 오른 손을 공중에 꽉 잡아두었고, 그후 ‘솔베이지’라는 종형의 이름이 씌어진 뒤에야 손을 아래로 내릴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솔베이지는 자기의 이름을 쓰고 난 뒤 또 ‘나는 살아있다’고 쓰는 것이었습니다. 솔베이지는 ‘1981년에 너는 책을 쓰게 될 것이다. 그것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세계 각국에서 번역될 것이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1981년이 되자 갑자기 ‘쓰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통틀어 24시간 만에 이 책 의 일부를 쓴 것입니다. 물론 그녀는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아주 캄캄한 어둠 속에서 쓴 적도 있다는 것입니다.

킬데씨는 트랜스상태에 빠져 있어서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내 손이 보이지 않는 장갑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되어 그 장갑이 마음대로 움직이며 내 손을 조종하는 것이다. 자신의 손이 무엇을 쓰려고 하고 있는가는 자신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쓰고 난 다음 그것을 읽고 나서 ‘아, 이런 걸 쓰고 있었구나’하고 깨닫게 됐다”고 증언했습니다. 즉 스스로 쓰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영적 존재에 의해 글이 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례는 여러 사람에게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로즈마리 브라운이라는 여성은 베토벤, 바흐, 쇼팽, 슈베르트, 슈만, 라흐마니노프 등 유명작곡가의 영이 차례로 자신의 몸에 들어왔다고 말하며 6년 동안 400여곡을 작곡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는 것도 들어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이 과학적으로 볼 때는 허무맹랑할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상하고 초현실적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현상이 존재한다면 과학은 그것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아 보편적 원리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지금까지 과학은 비정상적인 것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켜 왔지만, 그러한 태도는 동시에 가장 창조성 넘치는 부분을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고차원적인 의식의 세계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야 할 때가 됐습니다.


 

출처: 종교신문

 

권오문  omkwon@segye.com

 

 

 

 

G. Donizetti / Il Duca d'Alba 中 Angelo casto e bel
(정결하고 아름다운 천사여)

 


 Luciano Pavarotti

 

출처 : 행복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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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탐구 사후세계는 어떤 곳인가<22> 임사체험⑤

 

 神은 한 분, 眞理는 하나

◇ “내가 벽 너머에서 보았던 그 에너지와 사랑으로 가득찬 빛 자체, 그것이야말로 신일 거라고 생각해요.”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하나님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며, 진리는 하나라는 사실을 힘주어 주장하곤 한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종교적으로도 놀라운 증언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도 하나님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며, 진리는 하나라는 사실을 힘주어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 교회의 신앙행태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코네티컷대학의 케네스 링 교수가 임사체험자의 의식변화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각도에서 조사를 한 뒤 그 결과물로 펴낸 ‘오메가를향해(Heading toward OMEGA)’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증언이 담겨져 있습니다.

“체험전 나는 무신론자였습니다. 하나님이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의 정수가 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거대한 에너지원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이 세계의 핵에 있고, 우리들 인간은 그 핵에서 떨어져 나온 원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모두에게 계십니다. 우리들은 모두 신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임사체험자들은 하나님이 계심을 실감있게 증언하고 있으며, 현재 기독교에서 증거하고 있는 논리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본질에 다가섰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믿음= 그러나 임사체험자들은 현재의 형식적인 교회체제와 영계에 무지한 신앙생활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입니다. 그들은 직접 하나님과 소통하고 보니 요즘 신앙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체험전 나는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교회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임사체험후 나는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마찬가지로 안 갑니다. 나는 교회가 하고 있는 것을 하나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하는 방식이 싫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 저렇게 된다고 청중을 협박하는 말을 곧잘 합니다. 하지만 그럴리가 없습니다. 나는 이후로도 내 나름의 신앙심을 계속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케네스 링은 임사체험자의 종교에 관한 의식변화를 총괄하면 다음 7 가지 항목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1)자신을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영적인 존재라 생각한다. (2)내적으로 신을 친근한 존재로 느낀다. (3)예배 등 기존 종교의 형식적 측면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4)종교적 신앙과는 무관하게 사후의 삶이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5)윤회전생에 대해서도 편견을 갖지 않게 되었다. 또한 동양종교에 대해 전반적으로 공감을 느끼게 되었다. (6)모든 종교가 기본적인 본질 부분에서는 일치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7)전인류를 포용하는 보편적 종교의 확립을 원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신에 대한 새로운 파악입니다. 핀란드 출신의 의학박사인 라우니 리나 루카넨 킬데 씨는 “신은 하나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인 것입니다. 개별적인 도그마를 고집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도그마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지 신이 만든 것은 아닙니다”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표명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신의 편재감(遍在感), 신과의 일체감, 모든 것은 하나라고 하는 이같은 주장이 임사체험자에게도 잘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인식에서 모든 종교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인식이 나옵니다.

“종교는 모두 동일한 진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종교는 달라도 그 신앙 내용의 중요 부분에는 아주 작은 차이만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신 아래, 하나의 진리 아래, 하나의 정신적인 신앙 아래 모을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 종교를 연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깨달은 것은 결국 순수한 종교는 똑같다는 사실입니다. 사실상 차이는 없습니다.”

◇세상이 달라졌어요= 케네스 링의 연구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임사체험후 삶에 대한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체험자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체험전에는 물질적 욕망만을 위해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내 소유물과 내 욕구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체험후에는 이 지상에서 소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사라졌습니다. 욕망도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내일의 일 따위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든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에서 운송을 하고 있는 앨런 설리반(59)의 경우 심근경색 발작을 일으켜 응급수술을 받을 당시 체외 이탈하여 임사체험을 했습니다. 그는 이 체험을 통해 자신의 인생관이 뿌리째 바뀌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불가지론자로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 체험을 한 후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물론 종교를 믿게 된 것은 아닙니다. 내가 벽 너머에서 보았던 그 에너지와 사랑으로 가득찬 빛 자체, 그것이야말로 신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서부터 나는 완전히 마음이 바뀌었어요. 그때까지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로 흑인이나 호모를 대단히 싫어했고, 여러 사람을 편견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지요.”(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임사체험 상)

임사체험자들은 “죽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는 말과 함께 “임사체험을 한 후 삶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더욱 더 잘 살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쨌든 죽을 때는 죽는다. 사는 것은 사는 동안에만 가능하다. 살아있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죽음에 대해 아무리 고뇌해도 소용없는데 언제까지나 이래저래 고민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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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종교심문

 

권오문omkwon@segye.com



  G. Faure / Cantique de Jean Racine (라신느 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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