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1.
최근 함포에 고장이 발생한 문무대왕함은 구축함 이라고 하더군요
세종대왕함은 (이지스)순양함이고...이때 구축함과 순양함의 구별 기준이 뭡니까?
배수량? 아니면 작전시 목적이 다른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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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1만톤급 이상은 순양함, 5000~1만톤급은 구축함, 3000~5000톤급 전투함정은 호위함(프리깃)이라고 합니다.

 

최근의 구축함 순양함들은 아무리 미사일로 무장했다고 해도 근접전에선 함포가 필요할텐데 왜 달랑 하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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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함 미사일의 사거리는 대개 100~200km, 러시아는 300km 짜리 함대함미사일을 개발중이라고 하죠.
대규모 함대끼리 전투를 함으로써 상대방 주력함정들을 격파하는전투를 함대결전이라고 합니다. 이 함대결전이 벌어지는 거리는 가시거리바깥 수십km~100km이상되는 거리죠.
대함미사일의 사거리때문에 어떤 함정들도 손쉽게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함포전이 벌어질수있는 20~30km 정도의 거리까지 접근하는일이 거의 없다는 얘기가 되죠.
이 거리에선 함포보다 어뢰가 더 효과적입니다. 아스록같은 대잠어뢰는 10~20km를 날아가 수중으로 입수해 다시 10km정도를 진행해 함정을 격침합니다.함포의 명중율을 고려할때 어뢰는 정확성이 훨씬 우수한편이죠.
우리가 함포를 쏠때 적이 대함미사일이나 아스록같은 대잠(로켓)어뢰를 발사할수도 있고....
명중시키지 못하면 당하는거죠. 따라서 함포로 해전을 치를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힘포의 용도는 함정에 접근하는 적 소형선박, 지상지원작전등이죠.
함포 하나가 고장난다해도 대지상작전지원능력은 함대지미사일로 커버되고, 분당 20발정도 쏘는 함포는 지상작전에 큰 기여를 하기 어렵습니다. 보조적인 역할을 할뿐이죠.
미 해군함정들은 5인지함포등 주포와함께 57밀리 함포등을 갖춰서 적소형선박에 대응하다거나 하는등 다목적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소형선박에 귀한 대함미사일을 쏠수도 없죠.




질문2.
미국의 태평양 함대 같은 부대를 항모전단이라고 하지요?
이런 항모전단?전대? 는 보통 구성이 어떻게 되나요? 항모는 1대?
그리고 미국에는 이런 전대가 몇개 있는지 러시아에도 있는지
그리고 역시 항모를 보유하고 있다는 영국 프랑스 등의 규모는 어떻게 되는지, 강대국들의 해군력을 항모중심으로 설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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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편제도 육군처럼 단게적으로 있죠.
편대 - 전대- 전단 - 함대로 구성됩니다.
편대는 주로 고속정에서 편성되는데 2~3척이 모여서 편대를 이룹니다.
구축함편대라면 구축함 2척정도죠.
전대는 편대가 2개정도모여서 만들어 진다고 합니다.
전단은 2~3개의 전대가 모여서 이뤄지죠.
당연히 함대도 2~3개 전단이 모여 이루어 집니다.
해군의 고속정편대장은 대개 소령, 전대장은 중령, 전단장은 대령~준장, 함대사령관은 소장이죠.
육군도 단장이나 여단장은 대령이고 여단장중엔 준장도 있잖아요.
전단은 육군의 단급부대라고 보면되겠죠.
통신단, 공병단같은...
미 항모전단은 12척의 현역항모에 맞춰서 12개 항모전단을 꾸릴수 있으나 현역에서 활동하는 전단은 6~7개정도로 알고있습니다.
나머지는 예비전력이거나 사령부 직할함이죠.


질문3.
2차대전때는 일본의 야마토와 같은 거대전함이 주력으로 사용되었다던데 이들은 현대에는 왜 사용되지 않는지? 그리고 지금의 구축함 순양함 등과 비교했을때 크기가 어느정도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러시아에는 지금도 어마어마한 크기와 무장을 갖춘 순양함들이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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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주 전함은 현대전에서 쓸모가 없고 만일 이들이 지금도 있다면 초계함에서도 발사하는 대함미사일 하푼을 8발정도 맞으면 격침당할것입니다.
다만 미국은 아이오와급등 2차대전당시 전함 몇척을 개량해 각종 전자장비를 탑재하고 대지상공격용 토마호크 미사일을 탑재해 90년대초반까지 써먹었죠.
하지만 곧 완전 퇴역시켰습니다.
선체가 워낙 구식이라 현대식으로 개조해 써먹는데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들 전함들은 배수량이 2~3만톤급에 달해 구 소련의 순양함에 버금가는 대형규모였습니다.
러시아 순양함은 현재 1144 Orlan(Kirov)급(25,000톤)과 1164 Atlant(Krasina / Slava)급(11,000톤)이 있죠.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world/russia/ship.htm

질문4
최근 한국의 신형 고속정으로 기존의 참수리가 아닌 검독수리가 도입됫다던데 이런 고속정들은 크기나 기능면에서 구축함등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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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정은 1000톤급 미만 함정들로서 35노트이상의 고속이동이 가능하도록 경량화 소형화된 함정입니다.
기능은 연안함대의 주력함정들로서 먼바다가 아닌 가까운 연근해에대해 초계활동과 해전시엔 섬과섬들사이에 매복해있다가 치고빠지는 전술을 구사할수 있는 함정들이죠.
구축함은 대양에서의 해전에 적합한 함정입니다.


마지막 질문.....

F-XX 시리즈의 전투기중 함재기로 쓰이는 것들과 아닌 것들을 구분해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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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기로 쓰이는 대표적인 전투기는 F/A-18C/D, F/A-18E/F와 작년에 퇴역한 F-14, 그리고 F-14를 대체하는 F-35가 있습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미 해군의 함재전투기죠.

출처 : 해군 병기사 모임
글쓴이 : 송상교(하128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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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UDT


UDT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시작되었다. UDT의 기원을 추적해보면 1942년 북아프리카를 침투한 ‘정찰공격대’와 1943년 시실리를 침투한 상륙군을 위해 해안장애물을 제거한 해군공병단이 있었다. 미 해병대는 1942년 타라와 상륙작전 당시 해안에 매설된 기뢰와 수중 철조망, 각종 폭발물과 인공장애물로 큰 피해를 당했다. 이러한 수중장애물 제거를 위해 창설된 부대가 NCDU(Naval Combat Demolition Units : 해군 전투 폭파대)이다.

해군 전투 폭파대의 최초요원은 해군 공병대대와 해군 해변단 및 전탐 지원병으로 모집되었으며, 1943년 교육대장으로 임명된 카프만 소령은 임무수행에 있어서 체력, 용기, 개인능력 등에 뛰어난 사람이 필요하여 아주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 혹독한 훈련은 오늘날 해군 특수전 요원 양성의 바탕이 되고 있다.

해군전투 폭파대’ 및 ‘정찰공격대’는 여러 작전에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통합되어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로 불리게 되었다. 'PROG MAN’으로 알려진 UDT는 한국전 동안 유명해졌는데 해안이나 강으로부터 접근하기 쉬운 다리나 터널을 은밀침투, 폭파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인천상륙작전 임무도 맡았으며, 항만과 강에서 제한된 기뢰제거작전까지 실시하였다.
출처 : 해군 병기사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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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SEAL
SEAL의 탄생


케네디대통령은 1961년 4월, 쿠바 전복 작전인 피그만 사건의 실패로 특수전능력의 부재를 알고 특수부대와 비정규전 부대를 증가 재정비할 계획을 결정하였고, 당시 UDT-21팀 지휘관이던 빌 해밀턴 소령은 대통령의 결정을 듣고 예전에 구상했던 UDT가 이제까지 수행하였던 상륙작전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해군부대의 창설을 제안하였는데, 이 부대는 바다(Sea) 뿐 아니라 하늘(Air), 땅(Land)에서 활동한 해군특수부대이며 이런 광범위한 부대인 까닭에 이름도 SEAL이었다.

창설멤버는 기존의 UDT를 SEAL로 전환하는 것은 제외되었다. 왜냐하면 상륙부대들에게 UDT는 여전히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최초의 SEAL팀은 UDT 대원들로부터 구성되었지만 그후로는 새로운 훈련병을 모집하였다. SEAL팀은 1961년 12월 인준을 받았으며, 1962년 1월 1일 2개팀이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2개의 SEAL팀이 겨우 조직의 모습을 갖추게 되자마자 전투현장에 투입되었다. 작전배치명령은 1962년 4월 27일에서 5월 6일 동안 10일간 6명의 팀이 쿠바의 하바나 해안에 잠입하여 예상 상륙지점을 정찰하는 것이었다. 물론 정찰은 성공적이었으며, 5개월 뒤 쿠바 위기 상황이 닥치자 적의 코마 초계정을 파괴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임무를 부여받아 이번 임무 또한 아무런 위험없이 수행하였다.
SEAL의 등장
초기 SEAL팀은 1962년초 두명의 SEAL장교가 파견되어 베트남에서 SEAL이 어떤 종류의 활동을 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조사하고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3월 두 명의 대원이 비정규전교육을 위해 파견되었으며 다른 SEAL팀원들이 베트남군의 특공대를 교육하였다.

1963년 미군의 개입이 증가함에 따라 더 많은 SEAL 분견대들이 투입되었으며, 기지도 설립되었으나 실제 작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본토의 SEAL대원은 미 육군 특수전학교와 다른 특수병과교에서 학습 가능한 모든 게릴라 전술을 습득하였으며, 유럽의 NATO 소속군과 공동훈련을 수행하였다.

1963년 SEAL 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해상 및 하천 환경에서 적선적, 시설, 교량, 철도, 기타 부대시설을 파괴하는 능력 개발과 우군 시설의 해상 하천 환경을 유사한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것’이었다. 이런한 임무를 부여받기 전에는 UDT임무와 다를 바 없었는데 이제 특수전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이들의 임무는 확고해져갔으며 자신들이 무슨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SEAL의 월남파병의 직접적인 영향은 필립 H. 버클로우 대령의 ‘버클로우 보고서’이었는데, 이 보고서는 미 해군은 본격적인 군사개입에 나서기 보다는 비밀작전의 지원에 나서는 것이 더욱 이익이 되며, 그 임무를 맡을 수 있는 것은 특수전 요소이며 최선의 옵션은 바로 SEAL팀임을 명시하였다.



1964년 8월 4일 통킹만 공해상에서 미 구축함 매독스의 월맹공격을 계기로 미군은 본격적인 개입을 하였으나 실제적인 SEAL의 개입은 1966년 2월 SEAL 1TEAM이 18명으로 구성된 델타 분견대이다. 초기 작전은 지리적으로 익숙치 않았기 때문에 기습과 은밀작전에 국한되었다.


1966년 한 해 동안 163회 전투작전에서 베트공 확인사살 86명, 추정사살 15명, 삼판 21척, 보트 2척 파괴, 33개 벙커와 가옥, 520,000파운드의 식량을 못쓰게 만드는 전과를 세웠다.

SEAL팀은 1967년부터 현저하게 개입하였으며 ‘셜로우 드래프트 A’, ‘크림슨 타이드’등 비밀작전을 실행하였다. 1968년 처음으로 SEAL팀의 정체가 기사화되었으며, ‘피닉스 프로젝트’의 비밀작전으로 실행하였고 이런한 공적으로 1969년 SEAL 1TEAM이 대통령 부대 표창을 수상하였다.

1970년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3~4명으로 구성된 ‘브라이트 라이트’ 작전팀을 편성하여 포로들의 구출에 나서게 되었으나, 1971년 2월부터 2TEAM의 작전소대들이 귀환을 시작 12월 1TEAM의 M소대가 본국으로 귀환함으로써 SEAL팀 작전소대는 베트남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1972년 이후 남은 인원들의 주 임무는 군사고문이었으며 해군무관 파견은 1975년 베트남의 공산화를 계기로 중단되었다.
현대의 SEAL
1970년 SEAL팀과 UDT의 특수부대용 기장이 공식으로 제정되었으나 UDT 기장과 SEAL기장은 독수리를 제외하면 너무나 비슷하여 1980년대 초부터 UDT는 자신들의 기장을 포기하여 SEAL기장을 착용하였으며, 1987년 해군 특수전사령부로 개편되면서 기존의 UDT는 해체되어 SEAL 팀과 SDV(Seal Delivery Vehicle)로 흡수 되었다.
1980년대 이란과의 급속한 냉각관계에서 미 대사관이 점거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나 이란 인질 구출작전인 델타팀의 ‘이글스 크로우’ 작전 실패를 보고 해군내에도 대테러 전력이 필요하다고 판단, 리차트 마친코 중령은 최고 우선권을 부여받아 SEAL 의 최정예이자 극비부대인 ‘SEAL팀 6’이라는 대테러부대를 창설하게 되었다.

해군 대테러의 시초는 ‘MOB6’이라는 기동타격대 프로젝트 그룹이었으며 20명으로 구성된 ‘MOB6’을 모체로 1980년 10월 1일 ‘SEAL팀 6’으로 정식 발족되어 연합특수전사령부 산하에 있으면서 육군의 델타포스와 선의 경쟁을 하게 되었다.

SEAL팀은 1983년 그라나다전쟁, 1985년 이집트에서 ‘이탈리아 여객선 납치사건’과 이란의 페르시아만에서 ‘어네스트 월 작전’을 실행하였으며 파나마에서 ‘대의명분작전’을, 걸프전에서 ‘해상차단작전’, ‘기만상륙작전’을 수행하였고, 소말리아, 보스니아, 아이티, 리베리아, 이라크에서 작전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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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대한해군 SSU 혹한기훈련

"우리는 세계최강의 SSU((Ship Salvage Unit, 해난구조대)이다"

그 어떤 군대가 최고를 말하고 꿈꾸지 않겠는가?

군의 생명은 '장병들의 사기'이고 그것은 군의 명예와 직결된다.

그러기에 세계의 모든 군은 명예를 중요시하고 명예를 지키기위해 목숨까지 바친다.

하지만 진정 '최고'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부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며, 그 몇몇에 당당히 설 수 있는 부대가 바로 대한해군의 자랑인 SSU인 것이다.

 

지난 24일 진해 앞바다에 위치한 진해 작전사령부내 특수전전단 심해잠수사 소속(SSU)장병들이 강도 높은 혹한기 훈련에 나서 한겨울의 추위를 녹였다.

해마다 해수온도가 가장 떨어지는 1월에 실시되는 SSU 혹한기 내한훈련은 전 심해잠수사 요원들이 최악의 해상조건하에서 

최고의 구조작전 능력을 배양하기 위함이라 한다.   

이날 훈련이 펼쳐진 부대내 기온은 영상 1도 내외였지만  바닷바람이 상당히 심하게 불어 실제 필자가 느끼는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내외 정도였고, 두겹 세겹으로 껴입은 필자는 외투의 깃을 한껏 세웠지만 차가운 바닷바람은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가만히 서있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훈련은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첫 훈련은 몸을 풀고 땀을 나게 하기위한 맨몸 구보로 출발했다.

해군작전사 영내 10km 정도를 상의를 벗고 달리는 장병들의 몸에서 아지랭이 같은 땀기운이 피어났다.

얼굴은 불게 물들었고 그 동안의 훈련으로 단련된 몸은 차라리 아름답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잘 조각 되어 있었다.

맨몸구보 후 장병들은 간단히 몸을 푸는 체조를 한 뒤 곧 바로 바다로 뛰어들기 위해 선착장으로 내려서 모인 뒤 줄을 섰다.

검푸른 겨울바다는 세찬 바람에 파도가 각을 세웠고 해수온도는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락 하고 있었다.물론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이상이었겠지만...

맨손체조로 몸을 푼 뒤 바다를 향해 악! 악! 악! 소리치며 출발 신호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가 고향인 그들에게도 겨울은 혹독하다. 물에 뛰어든 장병들의 얼굴은 붉어지고 입술은 멍이 든 듯 파랗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가? 바다에 있는 시간이 육지에서 있는 시간보다 많은 바다의 사나이들이 아닌가!

바다에 뛰어든 지 1분여 만에 장병들의 얼굴에선 웃음꽃이 피면서 서로 장난도 하고 구호도 외치며 군가도 불렀다.

 

                                          "창파를 헤쳐나갈 뜨거운 정열...

                                           타오르는 사명감에 오늘을 산다.

                                           다듬고 빛내자 해난구조대

                                           바다에 새 하늘에 떨칠 용사들"

 


 


 


 

30여분간 계속된 맨몸수영을 끝내고 전함에 오르자 전함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우들이 박수로 전우들을 맞이하였고

서로 고생했다고 격려를 주고 받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진한 전우애가 느껴졌다.

사실 이들의 전우애는 남다르다.

모두 지원제로 뽑는 SSU대원이 되기위한 기본자격이 까다롭고 기초체력훈련이 '지옥훈련'이라 불릴 정도로 힘들기 때문에

10대1의 지원율을 뚫고 입소한 지원자들도 첫번째 훈련에서 절반정도가 탈락한다고 한다.

때문에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자랑스런 SSU대원이 된 전우들간의 전우애는 피를 나눈 형제에 못지않게 돈독하다고 한다.


 


 


 


 

맨몸수영 후 마스크와 핀을 착용한 수영을 끝낸 뒤 수중호흡장치(SCUBA : Self-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를 착용한 심해수중탐색훈련이

실시되었다.

수중심해탐사를 위한 준비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복잡했다.

세사람의 요원이 준비대에 앉고 한명의 탐사요원당 두명씩의 장비요원이 붙어 안전장비의 착용을 도와주었고

책임자는 각 과정마다 착용이 완벽하게 되었는 지 점검을 하며 안전을 확인했다. 

100m 이상의 잠수를 하는 심해잠수사가 되기 위해서는 10년이상의 특수과정을 이수하며 경력을 쌓아야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 SSU대원의 심해작전 능력은 가히 세계 최고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96년의 동해안에서 침몰한 북한의 잠수정 인양때에는 미해군이 3개월여 걸릴 것으로 예측한 것을 단지 며칠만에 인양에 성공해 세계를 놀래킨 바가 있다.

또한, 99년 남해 반 잠수정 인양시 포화잠수체계를 이용 150m에서 작전을 성공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처럼 세계최강의 SSU가 되기까지는 평소 완벽한 훈련체계와 훈련역량 을 갖추고 혹한기 내한 훈련등 최고의 훈련을 통해서만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날 훈련을 돌아보면서 사회 어떤 곳에서도 최고가 되기위해서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새삼 되새길 수 있었고 오로지 인내하고 노력하는 것만이 최악의 조건을

벗어나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떤 조건에서도 물러섬이 없이 불가능에 도전하는 불굴의 투혼이 있는 군, 그것이 바로 대한해군 SSU였다.

출처 : 해군 병기사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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