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거대하고 호화스러운 꿈의 배 "타이타닉호"

 

영국 화이트스타사(社)가 1911년에 건조한 대형 호화여객선. 그리스신화의

 타이탄(Titan)신족의 이름을 따와 타아타닉으로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총톤수 46,328t. 길이 259.08m. 너비 28.19m. 주기(主機)는 터빈의

삼연성기기(三連成汽機)의 조립으로 된 기관이다.

삼축선(三軸船)으로 속력은 22kn이며,획기적인 이중 선저(船底)와 방수구획을 채용한

불침선(不沈船)으로서, 당시 4만t급 이상 객선의 개척선이었다.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뉴욕을 향해 2224명의 승객·승무원을

태운처녀항해로 출항하여, 5일째인 4월 14일 밤 11시 40분 뉴펀들랜드의

그랜드 뱅크스남쪽 150㎞ 난바다를 22kn(시속 약 40.7㎞)로 항해하던 중

부류 빙산에 부딪쳐 수면아래에 길이 90m 가량의 틈이 생겨,

16개의 방수구획 가운데 앞부분 5구획이 침수되어 15일 오전 2시 20분에 침몰하였다.

 

구명정 수용인원은 모두 1178명 밖에 안되어 1513명의 희생자를 낸 세계

최대의 해난사고이며 이때 국제적으로 정해진 구난신호SOS>를 최초로

발신하기도 하였다.

이 참사 결과 1913년 해상의 인명안전에 관한 국제회의가 런던에서열려

오늘날과 같이 배의 안전시설을 충실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좌 : 침몰한 타이타닉호에서 발견된 실제 다이아몬드 목걸이
우:태양의 심장 호프 다이아몬드

 

 


 

 

 

1912년 4월 10일 첫 출항, 1912년 4월 14일 11시 40분 빙산 충돌, 2시간 40분만에 완전 침몰

  

타이타닉 탑승자 생존율


1위 - 1등실 여자와 아이들 (탑승객 156명, 생존자 145명) 생존율 93%

2위 - 여자 승무원 (탑승객 23명, 생존자 20명) 생존율 87%

3위 - 2등실 여자와 아이들 (탑승객 128명, 생존자 104명) 생존율 81%

4위 - 3등실 여자와 아이들 (탑승객 224명, 생존자 105명) 생존율 47%

5위 - 1등실 성인 남자 (탑승객 173명, 생존자 54명) 생존율 31%

6위 - 남자 승무원 (탑승객 876명, 생존자 194명) 생존율 22%

7위 - 3등실 성인 남자 (탑승객 486명, 생존자 69명) 생존율 14%

8위 - 2등실 성인 남자 (탑승객 157명, 생존자 15명) 생존율 10%

 

 

 

출처 : 竹馬故友
글쓴이 : 오인의 벗 원글보기
메모 :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옛 정이 그리워 지는구려 한많는 
배고품과 서려움이 우리의 인생사의 옛날이 
생각이 납니다.

박대통령 옛 사진

벼베기 대회 참가(65.10.11)

선산 성묘(65.9.11)

박정희 대통령은 추석 다음날인 11일 저녁

고향 경북 선산군 구미음 상모리 뒷산 선영에

 부인 육영수 여사와 아들 지만군,  딸 근혜 근영양과 함께

두 시간에  걸쳐 고향을 찾아 성묘했다. 

박대통령이 술을 따르고 향불을 피운 뒤

다섯 식구는 차례로

대통령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묘 앞에서

 묵례를 한 뒤 박대통령은 아들에게

'네게 증조할머니 묘다' 라는 등 일일이 설명


선산 성묘(71.10.4)

선산 성묘(71.10.4)

선산 성묘(71.10.4)

선산 성묘(71.10.4)

74년도부터는 추석명절날 국립묘지에도 들르셔야 했습니다.

 

국립묘지참배(74.9.30)

故 육영수 여사 묘소 참배(79.8.14)

故 육영수 여사 묘소 참배(79.8.14)

'육영수' 인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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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육영수
 
 
출생 :  1925년 11월 29일
 
 
사망 :  1974년 8월 15일
 
 
출생지 :  충청북도 옥천
 
 
 
가족 :  남편 前 대통령 박정희, 딸 국회의원 박근혜, 딸 사회기관단체인 박서영
경력 :  양지회 명예재단 고문
특이사항 :  박정희 前 대통령의 부인, 1974년 8.15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에게 피살

 

박대통령은 1978년 9월 22일 귀로에

옥천 인터체인지에서 차를 돌려 옥천읍 교동 뒷산의
장인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영부인 고 육영수 여사의 생가에 들러

잠시 쉰 뒤 서울로 돌아오십니다. 

육영수여사 충북옥천지구

파월장병가족 방문 중 성묘(66.5.12)


故 육영수 여사 묘소 참배(77.9.17)

 

故육영수 여사 묘소를 찾는 국민들은

세월이 흘러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됩니다.
추모 2주기 때엔 현 박근혜 의원이

대 국민 감사의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합니다.


故 육영수 여사 묘소 참배(79.8.14)

추석 선산 성묘(77.10.8)

선산 성묘(79.10.6)

 

64년도 당시 비석 뒷면엔 육군 대장이며

현직 대통령인 박정희라는 아들을 두고 김종필을

손자 사위로 가졌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형님댁 (67.5.7)    박대통령의 형님(박동희옹. 맞은 편)

 

고향 방문시 동네 주민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레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고 합니다.  


형님댁 (67.5.7)

그리고 농촌 주택 개량 사업 및 살림살이 등

동네를 관심 있게 둘러 보십니다.


선산 성묘(71.10.4)

선산 성묘 및 주민과 환담(72.9.22)

선산 성묘 및 주민과 환담(77.10.8)

 

박대통령은 1978년 9월 22일 생가 입구에 있는

김덕용옹(99세)의 집에 들러 옛집보다 넓어졌지요라면서

인사를 했고, 옛날 천경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의 제자 주배씨(53세)를

단번에 알아보고 있다가

우리 집으로 오게라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오후 2시45분

주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뒷산에 대나무 등이

드리워진 20평 남짓 한 생가에 도착

대문 앞까지 달려나온 형수 송임무(63세)의 마중을 받았다.


선산 성묘 및 주민과 환담(78.9.20)

 

박대통령은 마루에 올라 잠시 쉬면서

막걸리를 찾았으며  이 때 집으로 온

제자 주씨와  마주 앉았다.

예고 없는 귀향으로 풋고추와 김치 고추장으로

준비한 술상이 나오자 우리 집인데 내가 안 사니까

 대접이 이렇다고 농담을 하면서 

주씨에게 막걸리를 권했다.

박대통령은  옛날 자전거로 가정방문을

가면 수염이 긴 학부형들로부터 

막걸리를 대접받던 생각이 난다고  회상하면서

제자들의 안부를 물었다.

 약 45분 뒤 생가를 떠나면서 주민들

박수에 손을 흔들어 답례했고 마을 여귀의

경로당인 금오당 앞에

차를 세우고 그곳 안으로

들어가 추석을 잘 들 쉬셨습니까하고 인사.

박대통령은 청와대 구경을 하고 싶다는

노인들 건의를 받고 내년 봄에 연락하겠다면서

금일봉을 주었다.


선산 성묘 및 주민과 환담(78.9.20)

선산 성묘 및 주민과 환담(78.9.20)

선산 성묘 및 주민과 환담(79.10.6)

 

선산 성묘 및 주민과 환담(79.10.6)


박정희(朴正熙)  "왜 이따위 짓 했나? 절대 위해 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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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전 문공장관 증언,
 
박정희 "즉각 돌려보내고 절대로 위해 가하지 말라"

'1974년 김대중 납치 사건'은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과잉충성의 산물이며, 납치 사실을 보고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 중정부장을 질타하며 김대중씨를 귀가시켰다는 김성진 전 문공장관의 증언이 나와 주목된다.


이는 국정원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의 "이 사건의 주범은 이후락 중정부장이지만 그 배후에서 박 전 대통령이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중간결론과 정면배치되는 증언이어서 향후 적잖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박정희 "왜 이따위 짓 했나? 절대 위해 가하지 말라"

박정희 정권시절 문공부장관을 지낸 김성진씨는 16일 오전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국가차원에서 진상 조사가 진행중인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 "그 때 마침 제가 옆에서 지켜 볼 기회가 있었다"며 자신의 목격담을 상세히 전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은 처음에 전혀 모르고 있다가 제가 뉴스 내용을 박 대통령께 보고 드렸더니 깜짝 놀라시면서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시더니 금방 세 군데에 확인 전화를 하셨다.
외무부, 중앙정보부, 경호실 이 세군데 지시를 내려 이런 일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셨다"며 "세 군데서 '전부 그런 일 없다', '모른다'고 대답이 왔다. 그러니까 박 전 대통령은 '아하, 이것이 야당에서 일부러 꾸민 트릭이구나'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이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청와대에 들어와 박 전 대통령에게 '김대중씨를 한국으로 데려왔다'는 보고를 했다"며 "그 순간 박 전 대통령은 깜짝 놀라시면서 '김대중씨를 당장 돌려 보내라, 절대로 위해를 가하지 말라'며 호통을 치셨다.
결국 김 대중씨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후 여러가지 신문에 보도된대로 문제가 커지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재차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대단히 노했다 .
'왜 이따위 짓을 했나'고 하시면서 '절대 위해를 가하지 말고 빨리 집으로 돌려 보내라'고 말씀하시면서 대단히 화를 냈다"며 "그 후에 무슨 기회가 있을 때 박 전 대통령은 '너희들 이런 짓을 하면 안된다.
차라리 그 김대중씨를 일본으로 돌려보내라' 이렇게까지 화풀이했다"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그는 "이런 것으로 미뤄볼 때 박 전 대통령은 김 대중씨 납치에 대해 사전에 전혀 몰랐던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후락 부장이 김대중 전대통령을 납치한 이유와 관련, "밑에 사람들의 일종의 과잉충성 때문"이라며 "중앙정보부와 경호실과 비서실의 경쟁자끼리 알력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그것은 밑에 있는 사람들 생각이고 박 전 대통령의 참뜻을 읽지 못해 이런 사고를 저지른 것"이라며
"아마 지금 정권에서도 대통령의 뜻을 잘못 읽고 이렇게 하는 것이 대통령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쓸데 없는, 잘못된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상조사위 추측에 동의 못해"

김 전장관은 국정원 과거진상조사위원회의 "이 사건의 주범은 이후락 중정부장이지만 그 배후에서 박 전 대통령이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중간결론도 정면 부인했다.


그는 "거기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다"며 "박 전대통령이 김대중씨를 꼭 납치해 와야 한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나?
김대중씨가 정적이지만, 밖에 나가 있으면 안심하고 내버려 두는 것이다.
해외에서 하는 반체제 운동이야 밖에서 하는 것인데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나"고 말했다.

그는 "아마 지금 진상조사 위원회에서 '박 전 대통령이 이 일을 지시하지 않았느냐'
이런 추측을 갖고 파고 들어간 것 같은데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뷰스앤뉴스
박태견 기자
 
 
출처 : 여산
글쓴이 : 여산 원글보기
메모 :

 

 

 

스카이프 설치 방법입니다.

 

 

아래 문서 파일 첨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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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ile.naver.com/pc/view.html?fnum=231468&cat=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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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천불사 태산스님 (빙의,무병치료)
글쓴이 : 혜향(慧香) 원글보기
메모 :


  마야문명은 현재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에서 과테말라, 유카탄 반도 전역과 온두라스 일부에 퍼져 있으며, 과테말라 북부 페텐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고대 문명을 가리킨다. 기원전 2500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문명보다도 신비로운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고대 문명의 발상지들이 온대 기후에 강이 있는 비옥한 토지에서 발생했던 것과는 달리 마야문명은 인간이 살기 부적합한 밀림 속에서 이룩되었다는 점.
둘째, 마야인들이 세운 밀림 속 도시, 티칼은 마야 최고의 대도시로서 신전, 궁전, 승원 등의 석조 건축물이 무려 3,000개 이상이나 되는데,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하면서도 마야인들은 도시와 밀림을 연결하는 포장도로를 만들지 않았고, 수레바퀴의 사용법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퀴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재들을 운반했다는 점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셋째, 수학을 비롯하여 역법, 천문학 등이 매우 발달해 마야인들은 1년이 365.2420일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밝혀냈다. 현대에 이르러 최첨단 과학조사로 밝혀낸 오늘날의 날짜는 365.2422일로 불과 17.28초(0.0002일×24시간×60분×60초)의 차이인 것을 보면 그들의 수치계산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찬란하게 꽃피었던 마야문명은 8세기경부터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해 9세기 이후 갑자기 사라져버려 수많은 의문점들을 낳았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흔적이 없을 뿐더러 문명의 후계자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 사실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나돌기도 했는데, 최종적인 추측으로 내부 반란과 외부 정복자들의 침입, 지역적인 기후 조건의 한계, 전염병 등의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해 멸망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플로리다 해안과 푸에르토리코, 버뮤다의 세 곳을 이은 삼각형의 해역을 일컫는다. 평화롭게 비행장을 출발한 비행기가 이 지역을 지나다가 외마디 소리만 통제소에 남긴 채 갑자기 사라지거나 행방을 알 수 없는 배의 파편이 수천 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는 등 괴이한 실종 사건들이 속출해서 ‘마의 삼각지대’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괴현상은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지역에서 끓는 물과 어지러운 반구형의 물기둥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이처럼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발생한 의문의 사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학자들이 가설을 내세웠는데, 대표적인 가설로 미국의 랜돌프 윈터즈의 ‘평행 우주를 향한 차원의 문’ 설이 제기되고 있다. 지구로부터 약 720광년 떨어진 두 개의 거대한 태양이 쏜 광선들이 어떤 지점의 시간대를 찢어지게 만들고, 이 찢어진 시간대로 들어간 에너지들이
평행 우주로 들어가는 차원의 문을 열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가설로는 대규모의 메탄가스 방출을 원인으로 추측하고 있다. 극지방과 대륙연변 해저, 대륙사면 등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해저 산사태 등으로 인해 분해되어 방출되면 바닷물은 메탄가스로 포화되어 밀도가 극히 낮아지게 된다. 그 결과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방출되는 지역을 지나는 선박들은 부력을 잃게 되어 침몰하며 비행기들은 공기 오염으로 인한 엔진 고장으로 추락하게 되는 것. 이 밖의 원인으로 블랙홀, UFO 출현 등 여러 가지 가설들이 대두되고 있지만 속 시원한 해답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스터 섬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아열대 기후의 작은 화산섬으로 칠레 앞바다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작은 섬이 유명해진 이유는 ‘모아이(Moai)’라고 불리는 거대한 석상들 때문이다. 긴 귀와 강인한 턱을 가진 위풍당당한 모습의 석상들은 지금까지 약 1,000개 가량 발견되었고, 높이가 최소 3.5m에서 최대 10m에 달한다. 대부분 서기 400~1680년 사이에 만들어졌고 11세기경 가장 많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네덜란드 제독 야코프 로헤벤인데, 1722년 섬 주위를 항해하다가 지도
에도 표시되지 않은 작은 섬에 거대한 군인들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 배를 접근시켜 살펴보니 거대한 군인들의 정체가 단순한 석상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스터 섬’이라는 이름도 제독이 섬을 발견한 날이 때마침 4월 5일, 부활절(이스터)이어서 붙여졌다. “누가, 왜, 어떻게”라는 주제로 엄청난 크기의 모아이 제작에 관해 갖가지 추측과 전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학자들이 수세기 동안 연구로 밝혀낸 모아이에 대한 결론은 이렇다. 모아이는 신비에 가득 찬 유물이 아닌 이스터 섬 주민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것. 모아이의 재질은 화산석으로서 돌연장으로 단시간 내에 조각할 수 있을 정도로 무른 재질을 갖췄고, 그 당시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야자나무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 하에 정교한 ‘Y자’형의 나무로 만든 썰매를 이용하면 적은 인원으로도 쉽게 거대한 모아이를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렇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조각한 것일까? 원주민들의 선조나 존경할 만한 사람을 모아이의 모델로 만들었다는 등의 다양한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새로 들어온 종족들이 자신들보다 발달되지 않은 이스터 섬을 지배하기 위해 신적인 존재로 모아이를 만들었다는 설이다. 모아이를 만듦으로써 지배자로 떠올랐지만 인구가 늘어나고 먹을 것이 부족해 불안해진 사람들을 잠재우기 위해 더 큰 모아이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자연이 고갈되어 먹을 것이 없어지자 서로 싸우다가 망했다는 것이 이스터 섬의 비밀에 대한 설명이다. 이로써 모아이에 대한 의문은 어느 정도 풀린 듯하지만, 이스터 섬은 여전히 수수께끼가 가득한 미스터리 섬임에는 분명하다.

  지구 반대쪽에 위치한 남미 페루의 나스카 평원은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맥 기슭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 나스카 평원에는 각종 동물과 곤충, 나무 등의 그림을 비롯해 소용돌이, 사다리꼴과 같은 수많은 곡선과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200여 개 이상 그려져 있기로 유명한 데, 어떤 것은 직선의 길이가 8km에 달해 마치 긴 활주로처럼 뻗어 있는 것도 있다. 나스카의 신기한 부호는 16세기에 이미 스페인의 연대기 작가인 ‘시에사 데 레온’에 의해 거론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학자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41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나스카의 문양은 지면에서는 도저히 그 의미를 알 수 없고, 상공 1km에서 보아야만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B.C. 200년이었던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생명체만이 이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또한 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와 외계인이 그린 것이 아닌가라는 조심스런 추측이 나돌기도 했지만, 그 시대의 기술만으로도 그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학자들은 당시 나스카인들이 그렸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우주 조종사 출신 짐 우드맨이 1973년 나스카의 문양 근처 도굴된 무덤에서 발견된 직물에서 기구나 연으로 보이는 물체로 비행하는 그림과 날고 있는 남자의 그림을 발견해 나스카인들이 어떻
게 거대한 문양을 그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푸는 데 도움을 주었다
.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한 설도 다양하게 제기됐는데, 외계인에 대한 신앙의 표현으로 문양을 만들었다는 설과 태양신을 숭배하던 이 지역 사람들의 신을 위한 종교적인 문양이었으리라는 추측이 난무하는 등 여전히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을 안고 있다.

  ‘늙은 봉우리’라는 뜻의 마추픽추는 해발 2,280m, 페루 남부 쿠스코 시에 위치한 잉카 유적지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하늘을 찌르는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어 ‘공중 도시’라고도 불린다. 마추픽추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11년 미국의 젊은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에 의해서다. 전문가들과 함께 본격적인 탐사를 통해 유적지를 발굴했지만, 비밀 요새와도 같은 마추픽추를 완벽하게 발굴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가 1964년에 이르러서야 미국의 고고학자 진 사보이가 이 지역의 전모를 파헤치게 된다. 마추픽추 유적의 면적은 약 13k㎡로, 배수 시설을 갖춘 계단식 밭이 3m씩 40단으로 총 3,000개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200여 개에 이르는 돌로 만든 집과 정교한 다면체로 쌓아올린 석조 건축물 등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수준 높은 기술력과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마추픽추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건설되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잉카인들이 스페인의 공격을 피해 산 속 깊숙이 세운 것이라고도 하고, 훗날 스페인에 복수하기 위해 지은 비밀도시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홍수 등의 자연재해를 피해 만든 피난용 도시라는 설도 있다. 이 밖에 마추픽추에는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남아 있다. 도시의 관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앳된 여성들의 미라가 땅에 묻히지 않을 채 발견되었는데, 이상한 점은 남성의 미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여자들만 남아 살다가 전염병으로 인해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왕궁 옆에 있는 탑인 태양 신전에 있는 지하계단은 어느 곳으로도 연결되지 않은 채 끊겨 있는데, 과연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도 의문스럽다. 이처럼 마추픽추에는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여전히 발굴되고 있어 언젠가는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B.C. 280년 무렵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지시로 소스트라투스가 알렉산드리아 항구 근처의 작은 섬 파로스에 세운 세계 최초의 등대를 말한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 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 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등대는 이곳의 동쪽 끝에 서 있었다. 대리석으로 된 등대의 높이는 135m이고, 꼭대기에는 점화 장치가 있었으며 램프 뒤쪽의 반사경에서 비추는 타오르는 불길은 50㎞ 이상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등대 안쪽으로는 나선형의 통로가 꼭대기 층인 옥탑까지 나 있었고, 옥탑 위에는 거대한 여신상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아마도 알렉산더 대왕이나 태양신 헬리오스의 모습을 본떴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파로스 등대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등대로서의 역할을 했었는데, 1100년과 1307년에 일어난 두 차례의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그 모습을 감추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반,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등대의 흔적을 발견함으로써 그 존재를 처음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1994년에는 프랑스 해저 고고학 발굴팀이 심해 속에서 등대의 잔해를 건지는 데 성공해 오랫동안 수수께끼에 싸여 있던 파로스 등대의 신비를 조금이나마 벗길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로 어떻게 이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을 세웠는지, 어떤 원리로 불을 지피고 비추었는지에 관해서는 밝혀지지 않아 여전히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남아있다.

  1990년대 중반, 잠수부에 의해 일본 오키나와 섬 남단의 요나구니지마(與那國島) 해저에서 고대 유적이 발견되어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지질학계가 들썩였다. 그러던 중 1998년에는 수심 25m 지점에서 인공으로 만들어진 석판이 발견되었는데, 그곳에는 직경 2~3cm 정도의 타원형 구멍이 두 개 나 있는 것으로 보아 밧줄을 꿰어 큰 석판들을 끌어 올리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후 일본 학자들은 전설적인 해저 유적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
는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계단식 피라미드와 흡사한 길이 200m, 높이 90m, 폭 150m의 석조 건축물이다. 학자들은 이 피라미드를 소형 지구라트(Ziggurat)라고 불렀는데, 지구라트란 메소포타미아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말한다. 지질학자들은 이 유적의 발생연대를 최소 10,000년 전이라고 추정했고, 유물의 지반들은 적어도 5,000년, 많게는 25,000년 동안 물속에 침수되어 있었다는 지질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질학상으로 이것이 만약 인간의 작품이라면 제작 시기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훨씬 전인 B.C. 8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원시시대에 이러한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설계할 능력이 있었다는 것은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회의론자들 사이에서 해저 유물이 특별한 구조를 지닌 단순한 ‘침식된 암석덩어리’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곳곳에서 발견된 인간에 의해 처리된 흔적이나 풍화한 흔적이 없는 것을 보면 어느 몰락한 문명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2000년에는 인간의 얼굴과 흡사한 거대한 바위까지 발견되어 인간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주장에 큰 힘을 실어 넣고 있다. 하지만, 해저도시에 어떤 문명이 살았으며 그 흔적이 왜 그 장소에 있었는지에 관한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작사 : Lord Burgess
작곡 : William Attaway
편곡 : Unknown




Banana Boat Song - Harry Belafonte

Day-o, day-ay-ay-o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 me say day, me say day
me say day me say day-ay-ay-o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Work all night on a drink of rum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Stack banana till de morning come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Come, Mister tally man, tally me banana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Come, Mister tally man, tally me banana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Lift six foot, seven foot, eight foot bunch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Lift six foot, seven foot, eight foot bunch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ay-ay-o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 me say day, me say day,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Beautiful bunch of ripe banana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Hide the deadly black tarantula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Lift six foot, seven foot, eight foot bunch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Six foot, seven foot, eight foot bunch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ay-ay-o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 me say day, me say day,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Come, Mister tally man, tally me banana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Come, Mister tally man, tally me banana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ay-ay-o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 me say day, me say day,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um Cafe 'MysteryTourGuide' Since 040505> 신비한 세계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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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비여행가이드(MysteryTourGuide)
글쓴이 : 지지의 신비여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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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竹馬故友
글쓴이 : 오인의 벗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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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 하는 강기갑 대표~~~



민노당 강기갑 의원 무죄

★*… '국회 폭력' 사태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14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강 대표는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 대한 강제해산에 항의하며 국회 사무총장실에 들어가 사무총장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공무집행방해 등)로 불구속 기소됐었다. /연합뉴스


 

강기갑 무죄 선고 내린 이동연 판사는

  • 입력 : 2010.01.15 13:45 / 수정 : 2010.01.15 13:51
이동연 판사
14일 민노당 강기갑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남부지법 이동연(46) 판사는 지난해 12월에도 민주노총 조합원 김모(36)씨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해 수사기관과 대립각을 세운 적이 있다.

당시 이 판사는 철도노조 집행부를 검거하기 위해 검문 중인 박모 순경(31)을 카니발 차량으로 들이받은 혐의로 붙잡힌 김씨에 대해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 판사는 “불심검문은 범죄 혐의자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며 “적법하지 않은 검문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은 “민주노총 건물 안에 체포 대상자들이 있었고, 또 다른 체포 대상자가 건물로 들어가려는 것인지를 확인하려 했던 것이므로 검문은 정당했다”며 반발했다.

논란이 일자 남부지법은 “김씨는 서행 중이었고, 차량이 박 순경을 스쳐 지나간 정도여서 거의 다치지 않았다”며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사법연수원 26기인 이 판사는 전남 장흥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지난 1997년 법관으로 임용됐으며, 대전·충남 지역에서 근무하다가 지난해 2월 남부지법으로 발령을 받았다.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소속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MB, 정당해산권 행사하라"

[CBS 정치부 정보보고]


▣ 올바른사람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찬종 전 의원 22일 낸 칼럼 전문


이명박대통령은 고유권한인 정당해산권을 행사하라

-친이계, 친박계를 해체하라-

정치, 이대로 방치할 수 없습니다.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회, 국회의원, 정당들의 이 행태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됩니다.

내년에 G20정상회의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한다고 합니다. 이런 정치의 몰골을 가지고 내년 G20회의를 개최하려고 합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2년차를 마무리하면서 이제 국가선진화의 기초를 다졌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의도정치, 이 꼴을 두고 어떻게 선진화의 기초가 다져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토론과 타협이 실종되고 폭력과 날치기 패거리싸움으로 점철되고 있는 여의도식 한국정치, 폭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이 일정한 한계에 도달하면 그 민심이 폭발할 것이고 그것은 엄청난 후유증을 낳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권은 스스로 개혁할 자정능력을 상실하였습니다.

이대통령에게 간곡히 말씀을 드립니다. 왜 여의도정치가 이 꼴이 되었는가? 한마디로 헌법46조에 규정되어 있는 국회의원들의 자율권행사가 원천봉쇄 당하고 이를 포기한 상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헌법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며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자율권행사가 불가능하게 된 원인은 국회의원후보의 공천방식이 위헌적이고,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헌법 8조는 ‘국회의원후보 공천을 포함한 모든 정당활동이 상향식, 민주적 절차에 따라야하며 이를 위반했을 때는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제소를 하여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후보들에 대한 정당의 공천은 철저하게 하향식으로, 소수 실권자들이 밀실, 야합, 줄세우기, 패거리나누기, 돈 공천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그러한 공천 작태가 계속되는 한 국회의원들의 자율권행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국회의원의 자율권은 거세당하고 말았습니다.

최근 한나라당 정대표가 민주당의원들의 이른바 4대강 사업예산안을 볼모로 국회에서 농성하고 있는 사태를 풀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 등 3자회동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런 제안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고유권한인 예산심의권을 자율적으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참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헌법은 엄격한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당과 야당도 그 삼권분립의 틀 안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삼권분립을 강제하는 고리가 헌법46조의 국회의원의 자율권입니다. 자율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헌법8조에서 대통령에게 정당해산제소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당해산제소권은 대통령만이 갖고 있는 고유권한입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고 헌법수호의 최고, 최종책임자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헌법 66조).

이대통령께 부탁드립니다. 우선 한나라당부터 솔선수범해서 개혁해야 합니다.

한나라당 안에 친이계가 있고 친박계가 있다는 현상자체가 헌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친이계 친박계 존재자체는 그 계파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이 자율권행사를 할 수 없도록 울타리에 가두고 또 앞으로 국회의원후보공천에 있어서 계파중심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대통령은 친이계 계파종식과 해체를 선언하십시오. 그 계파의 족쇄를 풀어야 합니다. 박근혜 의원도 친박계의 족쇄의 틀을 풀고 계파해체선언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 한 헌법46조의 자율권을 살리고 정당의 민주적질서로의 회복은 불가능합니다.

이대통령은 헌법수호의 최종적책임을 지고 있는 국가원수로서 정당해산제소권의 행사와 국회의원자율권확보를 위한 헌법적결단을 결행해야 할 시점입니다. 대통령의 결단만이 현재의 여의도식 정치를 혁파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선택입니다.




아무 공(功)이 없으면서 녹(祿)을 먹는 일은 하지 않는다.

[ 옮겨왔습니다. ]

출처 : 竹馬故友
글쓴이 : 오인의 벗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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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사의 와 신비의 자연 ***
 
 

- 50년동안 불타는 불구덩이 !!

투르크메니스탄에 위치한 너비 60m, 깊이
20m의 이 불구덩이는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신비한 불구덩이는 화산 활동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란다. 애초에는 1950년대에 가스를 얻기위해
굴착을 했으나 땅속에 거대 구덩이가 발견되었고, 그
안에서 가스가 분출되었다고 함니다.


 
가스를 소진시키기 위해 불을 붙였는데 가스는
소진되지 않고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타고 있다고
하지요. 아무도 이 구덩이 밑에 얼마나 많은 가스가
들어 있는지는 모른다고.


 
어두운 밤이면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를 내며 뜨거운
열기 때문에 곁에 오래 있을 수 없다고 하는데, 이 불구덩이
는 해외 인터넷에서 “지옥으로 향하는 문”으로 불린다고.


 
압도적인 자연의 위력을 보여주는 이 불구덩이는 사진작가
존 브래들리의 사진, 유튜브의 동영상 등을 통해 소개되면서,
해외 네티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 사막지대에 있는 나무화석


미국 서부 사막지대에 있는 나무화석! 신기하지요.
나무를 누가 이렇게 칼로 자른듯이 부러뜨려 놓았을까?
부러진 나무의 크기는 지름이 사람키만 하다고..

-스스로 움직이는 돌


미국의 한 마른 호수에서 움직이는 돌 발견!
미국의 과학계에서 아직도 조사 연구중이라며 바람
이냐? 자력이냐? 또 다른 힘에 의해서이야?
 

- 물이 없는 폭포

미국 포웰 호수에 물이 없는 폭포가..
모래가 물처럼 흘러 내려서 이루어 지는
모래폭포 라고 하는데..

- 오색바위 위에호수!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석회수 온천
으로 생긴 아름다운 오색바위 위에호수 모습

- 미,요세미테 국립공원의 수직바위



미국의 요세미테 국립공원에는 엄청
 나게 큰 바위(수직벽 높이 500m)가 칼로
자른 듯이 잘라져 있다.

2. 신비의 대자연(사막편)


 

Moon on 28th October morning 


 
In the Sand-sea



Great Sand-sea in Egypt


 
White Desert, Egypt



Dune Grass



 Other Sossus Vlei



Dune in the Great Sand-sea of Egypt



Dune in the Great Sand-sea of Egypt



Boiling Sanddunes



South Algeria



South Algeria



South Algeria



Mushroom Rock



Simple Stone - For me a Diamand!


 
Wonderful Erosin 

 

Sanddune and Stone-needles



Untitled



Untitled



 White Desert, Egypt

White Cave with Dune 


Unknown Slot-canyon in Algeria 



The Blue Hole


Window in White Desert 


 

 Mushroom-Rock



Startrail in White Desert


 

Dune in the Great Sand-sea of the Sahara


 

Sand  In the Sand-sea of the Sahara


 
Early morning light in the Namib Desert


 
Namiba Desert


White Desert at Sunset



Great Sand-sea Egypt


 
White Desert


 
Great Sand-sea Egypt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안녕히

                                            

    


출처 : 竹馬故友
글쓴이 : 오인의 벗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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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謹 賀 新 年 ♣




몇시간 남지 않은 올 한 해 지만




마무리 잘 하시고 건강 하셨으면 합니다.




여의동호회에 보내어주신




따스한 情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새해 庚寅年에는 所望하시는 일 모두 成就하시고,




家庭에 健康과 萬福이 함께 하시길




여의동호회 지킴이 松巖이 祈願드립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올리는 기도 
마지막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아쉬운 시간 
저 멀리 지나가 버린 기억 차곡차곡 쌓아 
튼튼한 나이테를 만들게 하소서!
한해를 보내며 후회가 더 많이 있을 테지만 
우리는 다가올 시간이 희망으로 있기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 안부를 띄우는 기도를 하게 하시고
욕심을 채우려 발버둥쳤던 지나온 시간을 반성하며 
잘못을 아는 시간이 너무 늦어 아픔이지만 
아직 늦지 않았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작은 것에 행복할 줄 아는 우리 가슴마다 
웃음 가득하게 하시고 허황된 꿈을 접어 
겸허한 우리가 되게 하소서!
맑은 눈을 가지고 새해에 세운 계획을 
헛되게 보내지 않게 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모두가 원하는 그런 복을 가슴마다
가득 차게 하시고 빛나는 눈으로 
밝은 세상으로 걷게 하소서!
[ 모셔온 글 ]

출처 : 竹馬故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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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귀성 대란 사진

 

 

 

※우리도 고향의 추석 명절 지내러 갈때 이런적이 잇었죠!!

(출처:저장 사진에서)                                                                                                                                           

 

▲추석 보름달 (1969년 9월26일)


▲"싼 것이나 사 입혀야죠" 추석 한산한 시장에 나온 어머니.

(동대문시장. 1962년9월10일)


▲귀성객으로 붐비는 서울역.(1967년 9월16일)


 

▲초만원을 이룬 귀성열차. (1968년 10월5일)


▲콩나물 시루 같은 객차에나마 미처 타지 못한 귀성객들은

기관차에 매달려서라도 고향으로 가야겠다고 기적이 울리는

가운데 기관차에 매달린 두아낙네의 몸부림이 안타깝다.

(1969년9월24일)


▲정원87명의 3등객차 안에 2백30여명씩이나 들어 찬 객차 안은

이젠 더 앉지도 서지도 못해 짐 얹는 선반이 인기있는

침대(?)로 변하기도.

(1969년 9월24일)


▲ 추석을 이틀 앞둔 24일 서울역은 추석 귀성객들로 붐벼

8만1천여명이 서울역을 거쳐 나갔다.(1969년 9월24일)


▲8만 귀성객이 몰린 서울역엔 철도 직원외에도 사고를 막기위해

4백80여명의 기동경찰관까지 동원, 귀성객들을 정리하느라

대막대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데모 진압 장면을 방불케했다.

(1969년9월24일)


▲귀성객이 버스 창문으로 오르는등 고속버스정류장 대혼잡

(광주고속버스정류장. 1970년 9월14일)


▲삼륜차까지 동원되어 1인당 1백원에 성묘객을 나르고 있다.

홍제동. (1970년 9월15일)


▲60~70년대에 선보였던 대표적인 추석 인기 선물 - 설탕세트.


 ▲잔뜩 찌푸렸던 추석날씨가 오후부터 차차 개자 고궁에는

알록달록한 명절옷을 차려입은 아가씨들의 해맑은

웃음이 가득찼다.

(경복궁. 1976년 9월11일)


▲ 꿈속에 달려간 고향. 지하도에서 새벽을 기다리며

새우잠을 자는 귀성객들.

 (서울역앞에서. 1978년 9월16일 새벽2시)


▲ 추석 전날 시골 풍경 (1980년 9월)


 ▲한복정장차림으로 추석제례를 올리고 있는 4대째의 일가족.

올해 1백살난 姜敬燮할머니가 시부모의 묘에 절을 할때

80세된 며느리 呂判敎할머니와 손자 손부 증손자

증손부와 문중일가 20여명이 지켜보고 있다.

 (慶北 金陵군. 1980년 9월24일)


▲추석 귀성객 (1980년)


 ▲ 추석 귀성객은 돌아오기도 고달프다. 통금이 넘어 14일 새벽 0시20분에 도착한 연무대발 서울행 고속버스 승객들이 야간통행증을 발급받고 있다. (1981년 9월14일)


▲ 광주행 고속버스표를 예매한 여의도광장에는 3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삽시간에 표가 동나버렸다.

 (1982년 9월19일 정오)


▲ 짐인지 사람인지... 귀성버스도 북새통. 연휴 마지막날인 3일

한꺼번에 몰린 귀성객들로 짐짝처럼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관광버스 짐싣는 곳에 승객이 앉아 있다.

(1982년 10월3일)


▲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 추석귀성을 위한 고속버스 승차권

예매행렬이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끝이 없이 늘어서 있다.

(여의도광장. 1983년 9월10일)


▲ 이번 추석 귀성길에는 고속도로 국도마다 차량홍수를 이루면서

중앙선 침범, 끼어 들기등 무질서한 운행으로 극심한

교통체증과 혼란을 빚었다 (벽제국도.1987년 10월7일)


▲ 24일 서울역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귀성객이 몰려 큰 혼잡을

빚었다. (1988년 9월24일)


▲추석 귀성열차표를 사기위해 서울 용산역광장에 몰려든 예매객들. (1989년 8월27일)


▲가다가 쉬다가... 추석인 14일오전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에는

귀성객과 성묘객들의 차량이 몰려 평소보다 2~3배나

시간이 더 걸리는 심한 정체현상을 빚었다.

(1989년 9월14일)


 ▲ 멀고 먼 귀성길 5일부터 추석귀성 열차표 예매가 시작되자

6일 발매되는 호남선 열차표를 사려는 시민들이앞자리를

뺏기지 않기위해 텐트와 돗자리까지 동원, 새우잠을 자며

날새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역. 1992년8월6일)


 

▲ 한가위 가족나들이 (동작대교. 1992년)

[사진출처 : 동아일보 사진DB]



출처 : 竹馬故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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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朴正熙의 서울死守 선언

1975년 월남 패망 뒤 총력 안보 체제를 다짐하면서 "南侵 때는 나도 남아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법대로(회원토론방)   

 박정희 대통령 월남 패망과 관련 특별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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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03, 22:39 ]


출처 : 竹馬故友
글쓴이 : 오인의 벗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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