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대승경전 / 제1장 피안에 이르는길 / 1. 집착없는 보시

 

어느때 부처님께서 천이백오십 명의 많은 비구들과 함께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이른 아침 걸식을 마치시고 발을 씻으신뒤 좌선을 하고 계시는데, 많은 대중이 부처님 곁에
모여 들었다. 그때 장로 비구인 수보리도 자리를 같이 했었다. 그는 부처님께 합장하고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보살들을 잘 보살펴 주시고 그들에게 부촉하십니다. 구도의 길에 나선
선남자 선여인은 어떻게 행동하며, 그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 하셨다.
"착하다. 수보리야. 잘 들어라. 보살이 깨달으려는 마음을 낸 다음에는 이와 같이 그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중생들, 즉 알에서 태어난 것, 태에서 태어난 것,
습기에서 태어난 것. 저절로 태어난 것, 형체가 있는 것, 형체가 없는 것, 생각이 있는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것, 이와 같은 온갖 중생들을 모두 열반에
들도록 제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렇듯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했다 할지라도 사실은
한 중생도 제도를 얻은 이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에게 나라든가 남이라든가 중생이라든가
오래산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는 벌써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살은 또 무엇에 집착하여 보시해서는 안 된다. 즉 형상에 집착함이 없이 보시해야 하며,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감촉이나 생각의 대상에 집착함이 없이 보시해야 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보시하되
아무런 생각의 자취도 없이 해야 한다. 왜냐하념 보살이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이 보시하면 그
공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쪽
허공의 크기를 헤아릴 수 있겠느냐?"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남쪽과 서쪽과 북쪽과 위 아래에 있는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헤아릴 수 없습니다."
"수보리야, 그와 같다. 보살이 어디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한 공덕도 그와 같아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보살은 마땅히 위에 말한 바와 같이 행동해야 할 것이다."
[金剛經 : 금강경]

 

 

출처 : 영주암시민선원
글쓴이 : 보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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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靑梅禪師 十無益頌 / 진달래꽃 춘강 화

    청매선사의 십무익송

     

     

     

    一. 心不返照 看經無益

    마음을 반조하지 않으면, 경을 보아도 이익이 없다.

     

    二. 不達性空 坐禪無益

    성품이 공함을 깨닫지 못하면, 좌선을 하더라도 이익이 없다.

     

    三. 不信正法 苦行無益

    정법을 믿지 않으면, 고행을 하더라도 이익이 없다.

     

    四. 不折我慢 學法無益

    아만을 꺽지 못하면, 법을 배우더라도 이익이 없다.

     

    五. 欠人師德 濟衆無益

    타인의 스승이 될 덕이 부족하면, 중생을 제도하더라도 이익이 없다.

     

    六. 內無實德 外儀無益

    안으로 참다운 덕이 없으면, 밖으로 위의가 있더라도 이익이 없다.

     

    七. 心非信實 巧言無益

    마음에 믿음이 실답지 않으면, 말을 잘하더라도 이익이 없다.

     

    八. 輕因望果 求道無益

    원인을 가벼이 여기고 결과만 바란다면, 도를 구하여도 이익이 없다.

     

    九. 滿腹無識 驕慢無益

    속에 무식이 가득하면, 교만하여 이익이 없다.

     

    十. 一生乖角 處衆無益

    일생동안 괴각을 일삼으면, 대중과 함께 있더라도 이익이 없다.

출처 : 원효대사(법안스님)
글쓴이 : 요석보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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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되고 싶으냐?  / 칠통 조규일

 


착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착한 행을 하면 착한 사람이 된다.
자기 자신이 착한 행을 하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모든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착한 행을 하면 착한 사람이라고 하니
착한 사람이 된다.


선업(善業)을 짓고 싶으면
착한 일을 하면 선업을 짓게 된다.


악업을 짓고 싶은 사람이야 없겠지만
자기 자신이 살겠다고 악한 행을 하면
악업을 짓게 된다


성인이 되고 싶으면
성인의 행을 하면 성인이 된다.
자기 자신이 성인의 행을 하는 사람을 성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모든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성인의 행을 하는 사람을 성인이라고 하니
성인의 행을 하면 성인이 된다.


이와 같이
부처가 되고 싶으면 부처의 행을 하라.
그러면 부처가 되리라.


부처의 행은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득만을 추구하거나
부처라는 말이나 글로는 부처가 되지 않는다.
부처는 행이 부처를 만든다.


부처가 되고 싶으면 부처의 행을 행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착한 사람 성인이라고 하는 것과 부처라 하리라.
부처는 말이나 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행에 있다.


보살 역시도 말이나 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에 있다.
보살의 행을 했을 때 또는 보살의 행을 보았을 때
행을 보고 행하는 그 사람을 보살이라 하듯이
부처 역시도 말이나 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에 있다.
부처의 행을 했을 때 또는 부처의 행을 보았을 때
행을 보고 행하는 그 사람을 부처라 할 것이다.
그런 만큼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부처의 행을 하라.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부처의 마음을 알아야 부처의 마음을 행할 것이며
부처의 언행을 알아야 부처의 언행을 행할 수 있는 만큼
부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고
부처의 언행은 어떤 언행이 부처의 언행이겠습니까?
살피고 살펴보소서
그리고 행하소서
그러면 그대는 부처가 되리요.


착한 사람이 되고자 하면서 착한 행을 하지 않는다면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며
성인이 되고자 하면서 성인의 행을 하지 않는다면

 성인이 되지 못하고
보살이 되고자 하면서 보살의 행을 하지 않는다면

 보살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부처가 되고자 하면서 부처의 행을 하지 않는다면

부처가 되지 못한다.
그런 만큼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부처의 언행을 하라.

 그러면 부처가 되리라.


2009. 03. 11. 14:44

 

 

 

펌 글입니다

출처 : 우담발화
글쓴이 : 우담바라 원글보기
메모 :
아미타불 내영도
나무아미타불! 
조현준 / 경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출처:오대칼럼 
참으로 큰 깨달음을 이루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분과 참으로 
극락세계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이 글을 올립니다. 
이러한 희망이 자신과는 무관한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비하하시는 분은 우선 자신이 '살아 계시는 부처님'으로서의 
모든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부터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교사를 하려면 우선 의사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면허증이나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모두 의사나 교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사나 교사를 하기 전에 우선 면허증이나 자격증을 
먼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은 부족한 점도 물론 있지만, 살아 계시는 부처님으로서의 
모든 자격을 다 가지고 있다'는 생각부터 먼저 가지고, 구체적으로 
극락세계를 통해 부처님이 되는 과정을 진지하게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대부분의 윤리 . 종교 . 도덕에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체험과 관찰을 통해 이러한 
희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희망은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의 세계는 우리 
사바세계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사바세계의 말로는 거의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부처의 세계에 대한 설명도 물론 있습니다. 화엄경이 바로 부처의 
세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나 화엄경은 너무나 길고, 난해해서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사실 무리가 많습니다. 
그리고 고대 한글로 된 화엄경이 아니라 현대 한글로 된 화엄경이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극락세계에 대해서도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당히 유사하게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바세계 중생들은 바로 부처가 되는 것보다 극락세계를 
거쳐서 부처가 되는 방법이 더 용이하고 더 빨리 부처가 되는 
방법입니다. 우선 우리의 중간 목표인 극락세계가 어떤 것인지 알아봅시다. 
'극락세계가 어디 있냐?' 극락세계는 다 우리 마음 속에 있지!'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저는 몽둥이로 사정없이 두들려 버릴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몽둥이도, 아픔도 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을 테니, 저를 원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안심하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두들겨 버릴 것입니다. 
극락세계가 우리 마음 속에 있다는 식의 '무식하면서 용감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미타경 2장 1절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리불 장로님, 여기서 서쪽으로 십만억 나라를 지나면, 
아미타 부처님께서 설법하고 계시는 극락세계가 있습니다."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악마의 
'거룩함을 가장한, 참으로 위험한 소리'를 믿는 바보입니다. 
극락세계가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석가모니 부처님꼐서는 3장, 4장, 
5장에 걸쳐 극락세계의 모습을 자상하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극락세계 중생들은 어떤 괴로움도 없습니다." 온갖 즐거움들만 
누리고 있습니다. 
... 중략 ... 극락 세계는'네 가지 최고 보물'로 일곱 겹 난간과 
일곱 겹 그물과 일곱 겹 가로수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 중략 ... 
극락세계에는 '여덟 가지 좋은 점을 가지고 있는 물'로 가득 
차 있는 '일곱 가지 최고 보물'의 연못이 있습니다. 
... 중략 ... 파란색 꽃과 파란빛을 내는 꽃들도 피어 있고, 노란색 
꽃과 노란빛을 내는 꽃들도 피어 있고, 빨간색 꽃과 빨간빛을 내는 
꽃들도 피어 있고, 하얀색 꽃과 하얀빛을 내는 꽃들도 피어 있고, 
온갖 색 꽃과 온갖 빛을 내는 꽃들도 피어 있고, 참으로 향기롭습니다. 
... 중략 ... 항상 좋은 음악이 들리며, 땅은 황금으로 되어 있고, 
하늘이는 쉬지 않고 연꽃비가 가득히 내리고 있습니다. 
... 중략 ... 매우 아름다운 여러 빛깔의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 중략 ... 극락세계에는 지옥 . 아귀 . 축생이 없습니다. 
극락세계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악마의 
'거룩함을 가장한, 참으로 위험한 소리'를 믿는 바보입니다. 
다음으로는 아미타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봅시다. 물론 아미타 
부처님께서는 극락세계의 주인이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마타 부처님의 빛은 한량없이 밝습니다. 조금도 걸림없이 시방세계 
를 비춥니다. 그래서 무량광 부처님이라고도 합니다. 사리불 장로님, 
아미타 부처님의 수명은 무량 무변 아승기겁입니다. 
그래서 무량수 부처님이라고도 합니다. ... 중략 ... 아미타 부처님 
나라 극락세계 중생들은 윤회 중생으로 되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아미타 부처님 나라 극락세계 중생 중에는 '다음 생에 부처가 될 분' 
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무량 무변 아승기 겁을 말해야 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습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악마의 
'거룩함을 가장한, 참으로 위험한 소리'를 믿는 바보입니다. 이제 
아미타 부처님 나라 극락세계에 가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작은 선행의 복으로는 아미타 부처님 나라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없습니다.사리불 장로님, 하루 . 이틀 . 사흘 . 나흘 . 닷새 . 
엿새 . 이레 . 동안만이라도 온 마음과 온 몸으로 '나무 아미타불' 
을 하다가 임종하는 
선남자 선여인 모두를 아미타 부처님과 제자들과 보살들께서 
인도하십니다.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아미타 부처님 나라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소원하며 온 마은과 온 몸으로 '나무 아미타불!'을 
해야 합니다."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더불어 
"동방세계에서도, 남방세계에서도, 서방세계에서도, 북방세계에서도, 
하방세계에서도, 상방세계에서도 강가 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부처님들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각자의 세계에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미치는 큰 목소리로 간절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어야 합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상상할 수 
없이 큰 공덕을 믿어야 합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악마의 
'거룩함을 가장한, 참으로 위험한 소리'를 믿는 바보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참으로 간절히 말씀하십니다. 
"아미타 부처님 나라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소원하며 온 마음과 
온 몸으로 '나무 아미타불'을 하다가 이미 임종한 사람이나 지금 
임종하고 있는 사람이나 앞으로 임종할 사람들은 한 사람도 
큰 깨달음에서 벗어나지 않고, 
모두 극락세계에 이미 태어났거나 지금 태어나고 있는 중이거나 
앞으로 태어날 것입니다. 사리불 장로님, 모든 선남자 선여인은 
이경의 말씀을 믿고, 아미타 부처님 나라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소원하며 온 마음과 온 몸으로 '나무 아미타불!'을 해야 합니다. 
... 중략 ... 알아야 합니다. 제가 오탁악세 사바세계에서 큰 
깨달음을 이루고, '중생들로서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법'을 말씀 
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라고 간절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극락세계로 갑시다.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극락세계로 갑시다. 
온 마음과 온 몸으로 '나무 아미타불!'을 하여 극락세계로 갑시다. 
고통이 전혀 없고 온갖 즐거움만 있는 세계, 윤회중생으로는 절대로 
되돌아오지 않는 세계, 참으로 거룩한 분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는 
세계, 극락세계로 갑시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엄정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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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는 염불은 칭념염불稱念念佛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고성高聲으로 염불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다고 해도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새어나가기만 합니다.

 

 아   강철 같은 신심信心으로 몸도 마음도 뻑뻑하지만..

 “나무아미타불”염불을 한고비를 반드시 넘기여야 합니다.

인욕忍辱의 갑옷을 입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놓치지 않고 하면은

세월이 흘러가면 허공으로 다 새어 버리는 염불이 허공이 꽉 찰 때가 있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도 세월이 가면 물이 차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이때가 되면 더덕더덕 붙었있던 삼독심三毒心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다음에 하는 염불은 관상염불觀象念佛입니다.

 마음이 한결 부드러위지여서 부처님의 원만하고 자비스러운 형상을 보고 염불합니다.

 

 아  “나무아미타불” 염불이 내면으로 파고들면서廻光返照

다겁생에 지은 죄업이 산과 같고 바다와 같은 줄 알고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합니다.

참회한 그 자리에 자비심慈悲心이 돋아나면서 하는 염불이 관상염불觀想念佛입니다.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나무아미타불" 어느 듯

부처님의 마음이 온 누리에 가득하고 나의 마음도 온 누리에 가득합니다.

 

다음하는 염불은 부처가 부처를 염하는 진여염불眞如念佛입니다.

극락세계도 놓아버리고 깨달음도 놓아버리고..

부처님과 함께 자고 부처님과 함께 일어나는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돌고 돌아서 고향에 돌아 왔습니다.

마음과 중생과 부처는 본래 하나입니다.

온전히 부처의 마음인 일체중생에 대한 애민심哀愍心만 가득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은 천상의 소리(만트라)입니다”

“ '나무아미타불'을 넘는 소리(만트라)는 없습니다."

 

청화스님 법문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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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거룩하신부처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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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머무는 산사/산사의 명상음악

 

 

 

* 진정한 참음 * 
               
참기 어려움을 참는 것이 진실한 참음이요
누구나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은
일상의 참음이다

자기보다 약한 이의 허물을 기꺼이 용서하고
부귀와 영화 속에서 겸손하고 절제하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수행의 덕이니

원망을 원망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성내는 사람 속에서 마음을 고요히 하여
남들이 모두 악행 한다고 가담하지 말라

강한 자 앞에서 참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고
자기와 같은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은

싸우기 싫어서이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이

진정한 참음이다

욕설과 헐뜯음을
못 참는 것은 어리석음이니
돌가루를 두 눈에 넣는 것 같고

욕설과 비방을
잘 참음은 지혜로움이니
코끼리 등 위를 화려하게 꾸밈과 같다

욕설과 비방으로
지혜로운 이를 어찌하지 못함은

큰 바위에 폭우가 쏟아져도

부서지지 않음과 같아

비방과 칭찬
괴로움과 즐거움을 만나도
지혜로운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이 그러해서 욕을 먹으면
그것이 사실이니 성낼 것 없고

사실이 아닌데도 욕을 먹으면
욕하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때나 분노하지 않는다.

 


- 잡보장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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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헤미안의 유토피아
글쓴이 : 月 明 居 士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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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일기 16: 파괴되지 않은 황금사원, 타시룬포 타시룬포 사원 전경. 사원의 주요 법당 지붕은 온통 황금지붕으로 되어 있다.   라싸에 조캉 사원이 있다면, 시가체에는 타시룬포 사원이 있다. 16세기까지 시가체가 티벳의 수도 노릇을 했을 때, 그 중심에 타시룬포가 있었다. 타시룬포는 겔룩파(달라이 라마가 속한 티벳불교의 한...
출처 : 구름과연어혹은우기의여인숙
글쓴이 : dall-le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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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의 빛나는 사원들: 티베트 정신의 성지

 


 

티베트에 간 이상 사원을 둘러보지 않고는 티베트를 느낄 수가 없다. 티베트에서 사원은 종교이기 이전에 모든 티베트인의 생활의 일부분이며, 정신의 구심점 노릇을 한다. 중국의 탄압과 지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티베트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은 바로 그들의 종교와 사원에 깃들어 있다.


1. 티베트의 심장-조캉사원

 


조캉사원 대법당의 황금지붕.

 

흔히 ‘티베트의 심장’이라 불리는 조캉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이자 최고의 성지로 티베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워 불상(석가모니)을 모신 곳이다. 조캉이란 이름도 ‘조워를 모신 라캉’이란 뜻에서 비롯되었다. 조캉은 당나라 문성공주와 인연이 깊은 절이다. 본래 조캉은 7세기 640여 년쯤 당시 토번 왕국의 송첸 감포 왕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당시 토번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당나라와 네팔에서 각각 공주를 왕비로 바칠 정도였다. 이 때 문성공주(당나라 현종의 딸)가 티베트로 가지고 온 불상이 바로 석가모니 불상이었다. 이 불상은 처음에 라모체 사원에 모셨으나, 송첸 감포 왕이 죽은 뒤 불상의 보호를 위해 조캉으로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릉빈가. 힌두교에서는 '가루다'로 불리는 이것은 얼굴은 사람이고, 다리와 꼬리는 새로 표현된다.

 

과거 ‘양의 거주지’란 뜻을 지니고 있던 라싸가 ‘신의 거주지’란 뜻을 지니게 된 것도 문성공주 시절 조캉의 건립과 무관하지 않다. 티베트에서 불교가 국교로 자리잡고 수많은 사원이 건설된 것이 바로 그 시절이다. 그러나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고 문화혁명 기간(1966~1976년 6259개의 티베트 사원 중 몇 개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원이 파괴되었으며, 수십만 명의 승려가 강제로 환속당했다)을 거치면서 조캉은 한때 폐허(중국은 티베트의 심장인 조캉을 한때 돼지우리로 사용하게 했다)가 되다시피했다. 이 때 포탈라궁과 노블링카궁은 물론이고, 간덴사원과 라모체 사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라싸 인근 사원도 파괴되었다. 조캉사원은 1980년 이후에야 조금씩 재건돼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하는 순례자들.

 

조캉사원은 늘 이른 아침부터 붐빈다. 포탈라궁이 주로 외국인과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면 순전히 이 곳은 티베트 각지에서 온 경건한 순례자들로 붐빈다. 순례자들은 코라(마니차를 들고 시계 방향으로 사원을 한 바퀴 도는 의식)를 돌거나 조캉의 문앞에서 염려스러울 정도로 심한 오체투지를 한다. 이들의 오체투지는 거의 필사적이다. 필사적으로 붓다에게 마음을 바친다. 열린 문틈으로는 끊임없이 버터기름 냄새와 신성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흔히 포탈라와 조캉을 다 둘러본 여행자들은 포탈라의 입장료는 아까워하지만, 조캉의 입장료는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만큼 티베트의 진면목을 조캉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캉사원 바코르 광장의 사람들과 뒤로 보이는 저녁의 조캉사원.

 

조캉에 들어가면 우선 내부 광장을 지나 대법당을 만나게 된다. 1층 대법당은 조워 석가모니를 모신 조캉의 핵심인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미륵불(Jampa), 왼쪽에 구루 링포체(Guru Rinpoche, 8세기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한 인도 현자, 제2의 부처로 여김)를 모시고 있다. 또한 이들 불상을 모신 1층 대법당을 중심으로 모두 18개의 크고 작은 법당들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2층을 거쳐 3층으로 올라가면, 조캉사원의 화려한 황금지붕탑을 만나게 된다. 또한 이 곳은 사원의 옥상 전망대 노릇을 하고 있어 조캉사원 앞 바코르(조캉사원의 순례길, 코라와 같은 의미)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정문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의 모습도 위에서 곧바로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멀리 포탈라궁은 물론 사방으로 펼쳐진 라싸 시내의 풍경까지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2. 세라사원-티베트 최대 불교대학

 


세라사원 법당 풍경.

 

라싸 북단에 위치한 세라사원은 티베트 최대의 불교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5개의 교육기관에 7000여 명의 승려가 거주했던 거대한 사원은 현재 3개 대학에 300여 명 정도의 승려만이 남았는데, 중국의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승려들의 숙소가 거의 파괴된 데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의 다람살라로 망명할 당시 상당수의 승려가 함께 길을 따라나섰기 때문이다. 세라사원은 1419년 쫑카파(1357~1419, 티베트불교의 중심세력인 겔룩파의 창시자) 제자인 사캬 예쉬가 세운 사원이다.

 

세라사원의 좁다란 골목(위)과 법당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아래).

 

사원 안에는 대법당(촉첸)을 비롯해 세라 메, 세라 응악파, 세라 제 대학과 13개의 캉첸(승려 숙소)이 들어서 있다. 시계방향으로 사원을 돌다 보면 세 번째로 만나는 대학이 세라 제인데, 이 곳은 티베트에서 가장 유명한 교리문답 토론장이기도 하다. ‘최라’(Chora)로 불리는 교리문답(또는 선문답) 토론은 보통 오후 3시 30분부터 약 1시간 정도(일요일은 열리지 않는다) 열리며, 세라 제 앞마당 정원이 토론장 노릇을 한다. 승려들의 교리문답은 보통 1:1로 한 승려가 경전과 깨우침에 대한 질문을 하면 곧바로 상대 승려가 그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때로 논쟁이 과격해서 이들이 토론하는 모양은 꼭 윽박지르고, 삿대질하고, 싸우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세라사원 코라 순례길에서 바라본 바위에 그린 불상 그림들.

 

이 때 승려들이 하는 특이한 행동이 하나 있다. 한손을 밑에 받치고 다른 한손을 높이 들어 힘껏 내리치는 손뼉치기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윗손이 천상을 상징하고, 아랫손이 지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진리와 교리의 충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재미있는 행동으로 인해 세라의 교리문답 시간은 오늘날 외국인에게 상당히 인기 있는 관광상품이 되었을 정도다. 이런 특이한 토론방식은 티베트 불교 특유의 학습방법으로, 항상 상대방보다 더 우월한 교리와 철학을 지니기 위한 수행방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토론에서는 지적 순발력과 함께 상대방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는 통찰논리도 필요했지만, 우습게도 상대방을 압도하는 목소리가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었다.


3. 드레풍사원-티베트 최대 사원

 


드레풍 사원의 한 비구니 스님이 물통을 지고 법당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세라사원이 라싸 시내에서 가까운 외곽에 자리한 반면, 드레풍사원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터를 잡고 있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드레풍사원은 1만여 명의 승려를 거느린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 중 한 곳이었다. 지금도 사원의 규모는 티베트에서 최고를 자랑하지만, 거주하는 승려의 수는 500여 명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드레풍사원은 1416년 쫑카파의 제자 잠양 초제(Jamyang Choje)가 설립했다고 전해온다. 포탈라궁이 완성되기 전까지 드레풍사원은 달라이 라마(2, 3, 4대)의 거처이자 실질적인 정치와 종교의 본당 노릇을 해온 중요한 곳이다.

 

드레풍 사원의 대법당(위)과 대법당 앞을 지나는 양떼들(아래).

 

사실 현재 남아 있는 드레풍 사원의 규모만 해도 사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소도시에 가깝다. 아침 일찍 사원에 들어간다 해도 저녁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구경이 끝날 정도이다. 이 곳의 길과 골목은 복잡한 미로처럼 얼켜 있어,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과거 교육기관 역할을 함께 수행했던 드레풍에는 간덴궁(달라이 라마가 거처하던 과거의 티베트 행정부)과 대법당 외에도 응악파(탄트라를 연구하는 대학), 로세링, 고망, 데양 등 4개의 승가대학이 자리해 있다. 사원 내 길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 첫 번째로 만나는 큰 건물이 간덴궁이고, 간덴궁 위쪽에 응악파 대학, 응악파 오른쪽에 대법당이 자리해 있다. 나머지 3개 대학은 대법당 아래쪽에 몰려 있다.

 

드레풍 사원에서 탑돌이를 하고 있는 노스님.

 

드레풍사원에서도 오후 3시가 되면 로세링 대학 최라에서 교리문답 토론의 장이 열린다. 세라사원의 최라보다 붐비지는 않지만, 토론의 열정만은 그에 못지 않다. 물론 이 곳의 최라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하고, 촬영을 하려면 70원, 비디오 촬영은 120원을 내야 한다. 만일 몰래 찍다가 걸릴 경우 물벼락을 맞고 �겨난다. 무엇보다 드레풍사원은 라싸 시내의 사원들과 달리 붐비지 않는다는 것이 매력이다. 대법당 앞마당은 때때로 관광객이 아닌 염소와 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미로형 골목에서도 길 잃은 양들을 만나는 것이 대수롭지 않다.

 

드레풍 사원의 교리문답 토론의 장. '최라'라고 불린다.

 

드레풍사원의 코라는 세라사원보다 훨씬 경사가 심하고, 그만큼 조망도 훌륭한 편이다. 암벽에 조각된 불상과 탕카를 걸어놓는 벽, 외떨어진 암자들도 코라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다. 라싸 시내에서 드레풍까지는 미니버스가 운행(시내에서 택시로 20분)하고 있지만, 사원까지 버스가 올라가지 않아 걸어서 30여 분이나 올라가야 한다. 당연히 내려오는 길도 대중교통이 없어 천상 걸어서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교통의 불편함은 드레풍사원을 라싸 시내의 사원들과 다른 적막한 분위기로 만들었고, 오히려 여행자들은 이런 점을 드레풍사원의 최고 매력으로 꼽고 있다.


4. 타시룬포 사원-파괴되지 않은 황금사원

 


타시룬포 사원에서 오체투지를 하기 위해 합장한 소녀.

 

라싸에 조캉사원이 있다면, 시가체에는 타시룬포 사원이 있다. 16세기까지 시가체가 티베트의 수도였을 때, 그 중심에는 언제나 타시룬포가 있었다. 타시룬포는 겔룩파의 창시자로 알려진 쫑카파의 제자인 제1대 달라이 라마 겐덴 드룹이 1447년에 세운 사원으로, 오늘날까지 판첸 라마 거주 사원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판첸 라마는 ‘위대한 학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달라이’는 ‘바다’라는 뜻의 몽골어이고, ‘라마’는 ‘스승’을 뜻하는 티베트어) 다음으로 영적인 권위를 지닌 종교 지도자이다.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찾거나 환생한 달라이 라마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도 판첸 라마의 역할이다. 반대로 판첸 라마가 입적하게 되면, 달라이 라마가 판첸 라마의 환생을 찾아 임명한다.

 

중국의 사원 파괴에서 살아남은 몇 개 사원 중 한 곳인 황금사원, 타시룬포.

 

현재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의 망명으로 판첸 라마가 실질적인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본래 티베트에서 옹립한 11대 판첸 라마(게둔 쵸키 니마 Gedhun Chokyi Nyima)는 어린 나이에 북경으로 끌려가 투옥되었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어린 정치범으로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 중국은 이 어린 판첸 라마를 대신해 중국에 우호적인 갼차인 노르부(Gyancain Norbu)를 11대 판첸 라마로 임명해 타시룬포에 두었으나, 대다수의 티베트인들은 중국에서 임명한 판첸 라마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티베트인의 마음에는 달라이 라마만이 유일한 지도자로 인식되고 있다.

 

타시룬포 사원의 황금 지붕.

 

드레풍과 더불어 티베트 최대 사원 중 한 곳으로 꼽히는 타시룬포는 중국의 문화혁명 기간에 벌어진 대대적인 티베트 사원 파괴에서 살아남은 몇 개의 사원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라싸의 드레풍을 최대 사원으로 꼽았으나, 사원 파괴를 겪으면서 온전하게 남은 건물로는 이제 타시룬포가 실질적인 티베트의 최대 사원이나 다름없다. 전성기에는 타시룬포에 무려 4700여 명의 승려들이 기거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약 800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고 있다. 타시룬포에는 제1대 달라이 라마의 유해와 역대 판첸 라마의 영탑을 모시고 있으며, 탄트라(인도에서 전해오는 경전)를 가르치는 응악파를 비롯해 불교철학을 가르치는 승가대학이 따로 들어서 있다.

 

타시룬포 대법당 뒤편에 자리한 40미터 높이의 탕카벽.

 

타시룬포는 멀리서 보아도 금빛으로 반짝이는 사원의 황금지붕이 유난히 눈에 띈다. 입구에서부터 왼쪽으로 올라가면 마니차와 쵸르텐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잠캉 첸모(세계에서 가장 큰 26m짜리 금동미륵불을 모신 법당)와 구동(판첸 라마의 궁전)을 지나 타시룬포에서 가장 큰 켈상라캉(대법당)이 이어진다. 두 곳의 승가대학은 켈상라캉에서 정문으로 내려오는 길에 만날 수 있으며, 대법당 위쪽 산자락에서는 40m 높이의 탕카벽을 볼 수 있다. 타시룬포의 중심인 켈상은 사원의 가장 오래된 초기 건물로써 안에는 판첸 라마가 사용하던 옥좌가 있고, 미륵불을 본존불로 모셔놓았으며, 역대 판첸 라마를 그린 탕카도 천장에 걸어놓았다. 대부분의 중요한 법회나 행사는 바로 이 곳에서 열린다. 사원을 한 바퀴 도는 코라는 약 3km 거리로, 한 시간 이상 걸리지만, 사원과 시가체를 한눈에 구경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므로 놓치면 안될 곳이다.


5. 간체 쿰붐-티베트 최고의 불탑

 


티베트 최고의 불탑으로 손꼽히는 간체 쿰붐.

 

간체의 팔코르 사원은 여행자들이 경탄해마지않는 티베트 최고의 불탑(스투파), 간체 쿰붐(Gyantse Kumbum)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십만탑’이란 뜻을 지닌 간체 쿰붐은 8층(기단 포함해 9층)에 그 높이가 35미터에 이르며, 층층이 이뤄진 법당이 무려 108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108개는 상징적인 숫자일 뿐, 실제로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거대한 만달라를 상징하는 쿰붐의 모양은 주요 법당이 자리한 5층까지는 8각형을 이루고, 위층은 원형으로 이뤄져 맨 꼭대기에는 거대한 황금첨탑을 얹어놓았다. 또한 쿰붐의 6층에는 간체와 중생을 굽어살피려는 듯 ‘보호의 눈’으로 불리는 부처의 눈을 사방에 그려 놓았다. 1427년 건축된 이 불탑은 네팔 양식에 따라 지은 것인데, 일반인에게는 6층까지 약 30여 개의 법당만 개방하고 있다.

 

간체 쿰붐이 있는 팔코르 최데 사원 전경과 간체 풍경(위). 코라 순례길에서 바라본 간체 쿰붐(아래).

 

팔코르 사원은 9세기 팔코르첸의 집권 시기에 처음 지어졌지만, 15세기 들어 다양한 종파의 사원이 팔코르에 들어서면서 상당한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중국 점령 이후 남아 있는 사원 건물은 현재 두 곳(샤카파 사원과 샬루파 사원)에 불과하다. 매표소를 지나면 오른편에 대법당이 있고, 왼쪽에 거대한 간체 쿰붐이 자리해 있다. 간체 쿰붐을 돌아 대법당 뒤쪽으로 올라가면 샬루파 사원이 자리해 있는데, 지금은 건물의 뼈대만 남아 내부는 텅 비어 있다. 하지만 이 사원의 지붕에 올라가면 팔코르 사원과 간체 종, 간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최고의 전망대 노릇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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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시룬포 소녀의 오체투지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의 황금사원

타시룬포에서 내가 만난 가장 감동스러운 풍경은

대법당도, 코라도 아닌

오체투지하는 소녀였다.

티베트에 와서 숱하게 만난 게 오체투지였지만,

소녀의 오체투지는 너무나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뜨거운 한낮이었고, 쨍쨍한 고원의 뙤약볕을 머리 위에 두고

소녀는 1시간이 넘도록 쵸르텐(불탑)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30분 넘게 쪼그려 앉아 사진을 찍다가

내가 먼저 지쳤다.

그녀의 이마에는 어느 새 송글송글 땀이 맺혔고,

지친 나는 그늘에 들어가 쉬면서 소녀의 오체투지를

한참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오히려 바라보는 내가 목이 말라

나는 다시 사원 입구까지 내려가 얼음 생수를 사들고 올라왔다.

여전히 소녀는 오체투지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드디어 소녀가 오체투지를 끝내고 돌아설 때,

나는 조금 전에 사온 얼음 생수를 그녀에게 건네며

‘타시텔레’(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얼음 생수를 건네받으며

‘셰셰’하고 인사를 받았다.

아무래도 그녀는 나를 한족으로 생각했던 모양인지,

시선을 피해 곧바로 그늘로 들어가버렸다.

목이 말랐었는지 내가 건넨 생수를 단숨에

반병이나 들이켰다.

 


 

 

하릴없이 나는 사원 골목을 오래오래 떠돌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타시룬포를 빠져나왔다.

숙소로 가기 위해 사원 앞 재래시장을 걸어가는데,

한 소녀가 물동이를 등에 지고, 한 손에는 차주전자 같은 것을 들고

힘겹게 시장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디서 보았나 했더니,

타시룬포에서 오체투지를 하던 그 소녀였다.

소녀는 총총 전통구역 쪽으로 사라졌지만,

오래오래 내 눈에는 힘겨운 소녀의 뒷모습에 자꾸

경건한 오체투지가 오버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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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경전 읽고가는 소리, 타르쵸

 


티베트의 신성한 언덕에서 어김없이 만나는 타르쵸. 이 타르쵸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를 일컬어 티베트에서는 '바람이 경전을 읽고 가는 소리'라고 말한다.

 

자연에 가까워질수록 신에게 가까워진다고 했던가.

자연에 가까워질수록 자연스럽게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내 앞에는 온통 신들의 산, 신들의 언덕, 신들의 계곡, 신들의 길이 펼쳐져 있었다.

높고 험한 산을 넘어가는 고갯마루에는 장엄한 하늘 풍경을 배경 삼아

어김없이 타르쵸가 휘날렸다.

 


해발 5008미터 둥다라 산 가는 길에 만난 타르쵸.

 

타르쵸(경전을 적은 오색 깃발)!

티베트의 높은 언덕이나 중요한 길목에는 언제나 이 타르쵸가 날린다.

타르쵸는 돌무더기를 쌓은 라체(돌서낭탑)를 중심으로 걸려 있는데,

거센 바람이 불 때마다 파르르 파르르,

말 우는 소리를 낸다.

 


남쵸의 길목, 라겐라 언덕에 휘날리는 타르쵸.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과 기원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 

 

이 타르쵸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를 일러

티베트 사람들은 바람이 경전을 읽고 가는 소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타르쵸가 날리는 곳에서는 누구나

바람이 읽어주는 경전 소리를 듣는다.

 


라마링 사원에서 만난 타르쵸 재봉사. 하루종일 앉아서 타르쵸를 깁는다.

 

보통 타르쵸의 색깔은 우주의 5원소,

즉 파란색-하늘, 노란색-땅, 빨간색-불, 흰색-구름, 초록색-바다를 상징한다.

그것은 우주의 모든 것을 상징하며,

모든 생명의 근원과 신성을 상징한다.

그것은 가장 높고 가장 신성한 곳에서 어김없이 휘날린다.

 


가장 신성한 하늘 호수 남쵸의 하늘에 만국기처럼 펄럭이는 타르쵸.

 

사람들은 타르쵸가 날리는 고갯마루에 오르면

향을 피우거나 라체에 하닥(흰색 천)을 걸며

소망과 무사태평과 환생을 빈다.

더러 타르쵸의 깃발은 바람과 세월에 찢겨지고 헤져 쓸모를 다하지만,

고개를 넘는 사람들은 그곳에 새로운 깃발을 내건다.

 

남쵸 호수에 자리한 룽다와 타르쵸.

 

그러므로 타르쵸는 늘 그 자리에서

수백년 수천년을 견디고도 여전히 건재하고,

여전히 신성하다.

무수한 사람들이 빌고 빌어온 소망과 염원이 그곳에 깃들어 있다.

 


인간의 기원과 소망을 담아 하늘에 뿌리는 이 색종이 또한 룽다이다. 룽다 종이조각에는 룽다의 의미인 '달리는 말'이 그려져 있다.

 

더러 사람들은 타르쵸가 날리는 언덕에서

경전의 문구를 적은 오색의 종이조각을 뿌리며, 한번 더 소망을 빈다.

꽃가루처럼 생긴 이 오색의 종이를 티베트에서는 룽다(룽타)라고 하며,

깃대를 꽂아 매단 깃발을 뜻하는 룽다와

같은 이름 같은 의미를 지닌다.

 


티베트의 심장, 조캉사원 바코르의 룽다.

 

때때로 사람들은 룽다를 날리며

“라 쏘로! 치치쏘소!”라고 외치는데,

이는 신에게 외치는 주문의 말로

“신이여, 우리를 보살피소서!”라는 기원의 뜻을 담고 있다.

 


라싸 외곽 드레풍 사원 대법당 앞의 룽다.

 

룽다는 종종 타르쵸와 혼용돼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엄격히 구분하자면 룽다는

하늘 높이 세우는 깃대와 그 깃대에 매다는 깃발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타르쵸는 수평, 룽다는 수직의 모양을 나타낸다.

타르쵸가 우리의 서낭당이거나 서낭당에 거는 금줄이라면,

룽다는 우리의 솟대에 해당한다.

 

간체 팔코르 사원 앞의 룽다. 생의 간격을 두고 걸어가는 아이와 할머니.

 

‘룽다’라는 말은 티베트어로

‘바람의 말(馬)’(룽은 바람, 다는 말을 뜻한다),

혹은 ‘달리는 말’을 뜻한다.

깃대에 걸린 깃발이 바람에 날리는 모양이

‘달리는 말’을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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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름과연어혹은우기의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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