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당신이 진리와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있다.

당신이 얼마나 깊이 환상과 신기루 속을 헤매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실험이다.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이 클수록,
그래서 상대방을
내 생각에 끼워맞추려는 노력이 커질수록,
내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할수록,
내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할수록,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을수록,
내 방식을 끝까지 고수하려고 애쓸수록
당신은 헛된 환영과 신기루 속에
깊이 빠져 있다.

참된 진실과는 멀어지고 있다.

누구나 환상으로 자기 세상을 창조하고 스스로 창조한 환영같은 세계에 빠져 그것이 실체인 양 집착하고 있다.

그것만이 진짜이며 확실한 진실이라고 착각하면서.

출처 : 목탁소리
글쓴이 : 법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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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르막 길과 내리막 길 
 
우리 앞에는 항상 ...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놓여 있다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각자 삶의 양식에 따라서...
오르막길을 오르는 사람도 있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사람도 있다

 
오르막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 길은 인간의 길이고 꼭대기에 이르는 길이다 
내리막길은 쉽고 편리하지만...
그 길은 짐승의 길이고 구렁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만일 우리가...
평탄한 길만 걷는다고 생각해 보라
십 년 이십 년 한 생애를
늘 평탄한 길만 간다고 생각해 보라...
그 생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그것은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오르막길을 통해 ...
뭔가 뻐근한 삶의 저항 같은 것도 느끼고
창조의 의욕도 생겨나고
새로운 삶의 의지도 지닐 수 있다

  

오르막길을 통해...
우리는 거듭 태어날 수 있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는 거듭 태어날 수 없다. 

<법정 스님/산에는 꽃이 피네中>

향기로운 세상


 


출처 : 향기로운 세상
글쓴이 : 수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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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사(寶鏡寺)

 

 

 

 

 

 

 

 해탈문

 

팔상전(八相殿)

 

팔상전은 석가세존의 일대생애를 시기적으로 여덟가지로 나누어 팔폭화면에 그려모신 전각이다

이 팔상전에는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주존으로 모시고 왼쪽에 미륵보살,

바른쪽에 제화가라보살을 모시고 양주변에 팔상탱화를 배열하였다

이 전각은 조선 숙종 3년(1678)에 지총스님이 화주하여 세웠다.

 

 

산령각

산령각은 내연산 산신과 시방법계의 산신을봉안한 전각인데 산신은 보경사 경내를

수호하고 불법과 선행을 행하는 수호하는 산신이다

이 전각은 원래 여기서 북쪽으로 100m 산록에 있던것을 1914년에 현 장소로 이건하였다

 

 

원진각

이 전각은 창건주 지명법사의 영탱과 원진국사의 등상을 모시고  그 밖에 서산 사명대사와

보경사에서 수도와 교화를 하시다가 입적핫신 大德스님들의 진영을 모신 전각으로

숙종 3년에 학열스님이 창건하였다

 

 

 

 

 

 

 

 

 

 

 

 

 

 

 

 

  

 

 

  

 범종각

 

 

 

 

 적광전과 오층석탑

 

 

 

 

 

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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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토지사랑모임카페
글쓴이 : 걸 리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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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토지사랑모임카페
글쓴이 : 인제토지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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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懷讓)은 도일(道一)의 그릇을 보시고는 물었다.


대덕은 좌선(坐禪)하여 무엇을 하려 하시오?”


도일이 말했다.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회양은 벽돌을 하나 가져와 그의 옆에서 갈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도일이 물었다.


벽돌을 갈아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 하오.”


벽돌을 간다고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벽돌을 갈아 거울이 되지 못한다면, 그대는 좌선을 한다고 어찌 부처가 되겠습니까?”


이에 도일이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가 끄는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수레를 때려야 할까요? 아니면 소를 때려야 할까요?”


도일이 대답이 없자, 회양이 말했다.


그대는 좌선을 배우려고 하십니까? 좌불(坐佛)을 배우려고 하십니까? 만약 좌선을 배우려고 한다면, 선은 앉거나 눕는 것이 아닙니다. 좌불을 배우고자 한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아닙니다. 머묾이 없는 법에서는 취하거나 버림이 없어야 합니다. 그대가 좌불을 따르고자 한다면 그것은 곧 부처를 죽이는 것입니다. 만약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이 이치에 통하지 못할 것입니다.”

  

도는 닦을 필요가 없다. 더럽히지만 말라. 분별심으로 조작하고 추구하는 것이 더럽히는 것이다.


도를 알려는가? 평상심이 도다. 평상심은 조작하지 않고, 옭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취하고 버리지 않는 것이다. 또한 단멸하거나 항상 하는 것도 아니고, 범부와 성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전에서는 이를 두고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것이 바로 보살의 행이다라고 했다.

 

모든 것이 전부 마음이다. 온갖 것이 전부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니 마음이 만물의 근본이다. 진리를 떠나서는 설 곳이 없다. 서 있는 곳이 바로 진리요, 모든 것이 자신의 본바탕이다. 모든 것이 전부 불법이고 해탈이다.

 

그대들 각자 자신의 마음이 부처임을 믿으라.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

 

죄의 자성이 공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느 순간에도 죄는 없으니, 자성이란 본래 없기 때문이다. 삼계는 오직 마음일 뿐이며, 삼라만상은 이 마음의 흔적일 뿐이다.

 

선에 머물고 악을 제거하며, 공을 관하고 선정에 들어가는 것은 모두 조작하는 것일 뿐이다. 밖으로 치달려 구한다면 더욱 멀어질 뿐이다.


[마조어록]

 

도불용수 단막오염(道不用修 但莫汚染), ‘도는 닦을 필요가 없으니 더럽히지만 말라는 초기 조사선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이를 남악회양(南岳懷讓) 선사는 좌선을 열심히 하고 앉아 있는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에게 벽돌을 가는 비유와 소가 끄는 수레의 비유를 통해 설하고 있다.


소가 끄는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지 수레를 때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마음을 닦고자 하는 이가 앉아 있는 몸의 모양을 통해 깨닫고자 한다면 그것은 수레를 때리는 것과 같다.


이 공부는 마음공부지 몸의 공부가 아니다. 마음공부는 애써 좌선만을 고집할 것도 없고, 염불이나 진언이나, 특정한 수행법만을 고집할 이유도 없다. 마음으로 하는 공부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방법이나, 앉는 방식, 수행법, 그런 수단과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아니니 특정한 모습을 오래 취한다고 해서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참된 이치를 모르고 오로지 앉아서 좌선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부처를 죽이는 것이다.


회양의 가르침 덕분에 깨달음을 얻고, 10년 동안 회양선사를 모시면서 마조의 깨달음은 더욱 깊어 갔다.


이후 마조는 도는 닦을 필요가 없으니 다만 더럽히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더럽힌다는 것은 곧 분별심으로 조작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조작과 추구가 끝나지 않는 이상 깨달음은 오지 않는다. 그 모든 추구와 조작이 완전히 쉬어질 때 문득 그것은 드러난다.


도는 거창하고 위대하고 신비로운 어떤 곳에 있지 않다. 평상심이 그대로 도다. 조작하지 않는 지금 이대로의 마음,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의 자연스러운 무분별의 상태, 취하고 버리지 않는 할 일 없는 무위의 상태다. 그 자리는 항상 하거나 끊어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범부와 성인이 따로 나뉘지도 않는 참된 불이법의 자리다. 범부와 성인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참된 보살이 아니다.


이것과 저것 중에 어느 하나 속에 마음,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 모든 것이 똑같은 하나의 마음이다. 마음이 곧 만물의 근원이다. 진리 아닌 곳은 어디에도 없다. 진리를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진리가 아닌 곳에는 단 한 시도 발을 내디딜 수조차 없다.


서 있는 바로 이 자리가 곧 바른 진리요 자신의 본바탕이다. 모든 것이 전부 똑같이 불이법으로써 둘이 아닌 불법이고 해탈이다. 이 자리에서는 어느 하나 소외되고 차별되는 것이 없다. 일체법이 그대로 불법이다.


출처 : 목탁소리
글쓴이 : 법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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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돋는 천수관음무♡재미동영상♡(Full-Screen)


출처 : 화 목 한 사람들
글쓴이 : 北漢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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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명상을 한 사람들은 말한다. 명상은 비움의 습관을 길러주고 챙김이 아닌 나눔의 마음을 키워 자신이 가진 생각과 감정을 놓아버림으로써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볼 수 있게 한다고. 그럼으로써 사람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가슴으로 느낀다고 말이다.

비단 그뿐일까. 명상을 하면 우리의 뇌파는 안정된 알파파로 전환된다. 이때 뇌 속에서는 세로토닌과 같이 기분 좋고 편안해지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면서 혈압, 맥박 등 심혈관계 기능과 호흡이 안정된다. 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혈중 농도가 감소하면서 몸의 면역력이 증진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명상을 통해 기억력, 집중력 등 인지 기능도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상은 외부로 분산돼 있던 주의력을 내부로 집중시킴으로써 의식이 맑게 깨어나게 한다. 우리의 의식은 대부분 외부로 향해 있고 그 때문에 긴장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내부 신호에 제때 반응하지 못하고, 몸의 신호를 계속 무시하다 보면 인체의 균형이 깨지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명상은 외부로 향한 의식을 내부로 돌리는 것, 그럼으로써 과도한 긴장을 풀고 내면의 신호에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을 깨우는 것이다. 아직도 명상이라고 하면 결연한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도를 닦는 수행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명상은 누구나 체험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감각이다. 청소할 때, 길을 걸을 때, 음식을 만들 때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중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명상의 순간이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명상에는 정해진 틀이나 규칙이 없다. 순간에 집중하는 감각을 깨우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좋은 명상법이다.


청소하기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다 보면 마음속까지 개운한 기분이 든다. 청소하기는 버리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명상이요, 모든 마음 수행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고역스러운 노동일 뿐이지만, 공간을 구석구석 살피며 쓸고 닦는 동작에 집중하면 생각까지 정돈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훌륭한 명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청소를 통해 깨끗하게 잘 정리된 공간은 마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


깊은 숨쉬기

눈을 감은 채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쉬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편안하고 깊은 호흡만으로도 몸과 뇌의 감각이 깨어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감정은 생각으로 바꾸기 어렵다. 불안할 때, 화날 때, 머리가 복잡할 때 자신을 스스로 돕는 가장 빠른 방법은 깊게 숨을 쉬는 것이다.


멍 때리기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앉아 있다가 갑자기 중요한 생각이 떠올라 메모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고 멍한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외부로 향해 긴장돼 있던 의식이 이완되면서 순간적으로 뇌 속에 있던 정보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일어난 것이다.

멍 때리기는 온갖 정보로 가득한 머리를 식히고, 새로운 정보처리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효과가 있다.


걷기, 등산하기

틱낫한 스님은 ‘걷는 게 명상’이라고 했고 《걸음아 날 살려라, 장생보법》의 저자 이승헌 총장(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은 ‘걷다 보면 불필요한 생각은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누군가에게 답을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답을 알게 된다’고 했다.

걷기는 몸과 뇌를 안정되게 활성화하는 가장 좋은 동작이다. 걷는 방법에 관한 다양한 가이드가 나와 있지만 걸을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자신의 몸에 집중하는 것이다.

걷는 자세와 속도를 느끼면서 활기차게 걷다 보면 차츰 잡념이 사라지고 자신에게 몰입하게 된다. 그런 몰입의 순간, 번쩍하고 창조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차 마시기

소설가 한승원은 《차 한 잔의 깨달음》에서 ‘흔들리면 차를 마신다’고 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때 차를 마시면 생각이 분명해진다고 한다.

그가 마시는 차는 간편하게 후닥닥 한 잔 하는 디지털식 차 마시기가 아니다. 정성 들여 차를 우려내 목 넘김, 맛과 향, 온도 등을 느끼며 천천히 즐기는 아날로그식 차 마시기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는 순간을 제공한다.


달리는 버스에서 창밖 바라보기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창밖을 바라보노라면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에 대해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면서 이리저리 재고 따질 수가 없다. 풍경이 시야에서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판단하고 분석할 틈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 이는 뇌가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글쓰기

아무런 목적을 두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내려가 본다. 생각나는 대로 단순하게 단어를 나열하는 것도 좋고, 그때그때 드는 자신의 감정이나 꿈을 적는 것도 좋으며, 다른 사람을 욕하는 글도 괜찮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잡념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릿속에 어느덧 내부 의식으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 그 길을 따라 한발 한발 내딛다 보면 내면의 자신과 조우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훌륭한 명상이다.


좋은 향기에 취하기

향초도 좋고 은은한 차 냄새도 좋다. 나무, 물, 바람, 돌, 흙냄새 같은 자연의 향도 좋다. 좋은 향을 맡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호흡이 길고 깊어진다. 마치 숲 속에 있을 때 자연스럽게 심호흡을 하는 것처럼.

특히 향초를 켜고 초가 타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의 온갖 애증과 근심 걱정이 촛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좋은 향기를 맡으면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이는 냄새 자극에 의해 뇌에서 기분을 좋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도리도리 뇌파진동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도리도리 뇌파진동은 흙탕물 같던 뇌가 말갛게 정화되는 느낌을 선사한다. 단순하고 규칙적인 리듬의 동작을 반복함에 따라 생각과 감정의 작용이 멈추고, 머릿속이 고요해지는 것이다.

거기서 더 들어가면 고요한 가운데 잠재의식이 깨어나고, 생명의 리듬이 살아나 인체의 자연 치유력도 강화된다.


상상의 캡슐 쓰기

우연히 냉동차에 갇힌 한 남자가 얼어 죽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그 냉동차는 고장이 나서 내부 온도가 13℃였고, 문도 잠기지 않아 안에서 열 수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냉동차니까 당연히 내부의 온도가 영하일 것이라고 믿은 이 남자는 결국 자신의 의식에 갇혀 얼어 죽은 셈이다.

우리 몸은 뇌가 상상하는 것에도 현실처럼 영향을 받는다. 사람이 많은 출퇴근길에 부대끼는 것이 고통스럽다면, 눈을 감고 상상으로 자신에게 캡슐 보호막을 씌워보라.

그 투명한 보호막 속에서 자신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느껴본다면 차츰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것이다.


잠자리에서 암시하기

우리 몸이 잠들었을 때도 뇌는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한다. 잠자리에 들 때 자신의 소망을 떠올리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으면 이것이 뇌에 긍정적인 암시로 작용한다.

몸에 대한 감각을 닫고 뇌가 자신만의 정보처리에 집중하는 취침 시간에 긍정의 에너지가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잠들기 전에 자신의 뇌에 스스로 메시지를 전해줌으로써 그것이 잠자는 동안 무의식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인데, 이는 내면의 힘을 키우는 보이지 않는 위력을 발휘한다.


사람 많은 곳에 홀로 있기

집에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이 많은 곳에 혼자 있을 때 집중이 더 잘 되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집에 있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긴장을 다 풀어버려 잠이 오거나 늘어지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카페 같은 곳에 혼자 있는 경우에는 외부에 대해 긴장하면서도 누군가 자신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외부에 노출돼 있어도 자기만의 공간이 확보돼 집중을 잘할 수 있다. 마치 교실에서 시험을 볼 때처럼 여러 사람 가운데 홀로 있으면서 집중하는 시간은 매우 높은 생산성을 낸다.


그냥 웃기


웃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웃을 일이 없어도 그냥 웃으면 우리 뇌는 웃겨서 웃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아지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어깨에 힘을 빼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아이처럼 웃으면 된다. 처음에는 좀 어색하겠지만 계속 웃다 보면 얼굴뿐 아니라 몸통과 손가락, 발가락까지 웃음의 파장으로 진동한다. 마음껏 웃으면 머리가 시원하고 기분이 가벼워진다. 또 자신의 긍정적인 면이 더 잘 보이게 된다. 


글ㆍ정소현 nalda98@brainmedia.com
도움 받은 책ㆍ《생활 속의 명상》, 《원하는 것을 이루는 뇌의 비밀, 뇌파진동》, 《걸음아 날 살려라, 장생보법》
도움말, 자료ㆍ단월드
www.dahnworld.com, 1577-1785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메모 :

 

 





영 가(靈  魂)  

영가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말한다.
우리는 육신이 있는 영혼이고
영가란 육신이 없는 영혼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게 끝인 줄 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죽으면 육신은 지,수,화,풍으로
훝어지고 영혼만이 남는다.

 육신만 떨어졌지 식은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살았을때 힘들고 어렵고
섭섭했던 일등 그런것들이 마음공부가
되지 않으면 환상처럼 더 크게부각 되어
자기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살았을때 보다 죽었을 때가 더
힘든다는 것이다.

영가란 살았을때 육신이 있었던 탓으로
죽어서도 육신이 있는 줄로 안다.

그래서 배고프다
좋은곳으로 보내달라고 하면서
산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불교에선 흔히들 죽으면 헌옷을 벗고
새옷으로 갈아 입는다고 한다.

하지만
죽어서 다시 사람몸 받기가 얼마나
힘드는지 모른다.

삼백년이 걸릴지 오백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또 다시 사람몸 받을수 있을지
아니면 축생의 몸이라도 받으면
이 일을 또 어찌하겠는가?

우리는 살았을때 마음공부를 해서
우주법계 진리 나툼을 알고
내새끼 네새끼 모든 집착을 버리고
훌쩍 떠날수 있어야 한다.

공부가 되지 않으니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 몸에
들어가 사람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것이다.

살아서 업짓고 죽어서 업짓고
귀신짓 해서야 되겠는가.

죽은 다음 세상은 많다.
온갖 복락을 누리는 천상세계도 있고,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세계도 있다.

이생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일 많이하고
복 농사 많이 지어서 다음생엔 다들
극락정토에 태어나소서...!

이글을 읽으신분은 주위에 계신
지인 3명이상 법보시를 하신다면
공덕이 무량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자연의 소리

향기로운 세상


출처 : 향기로운 세상
글쓴이 : 삼성산바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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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 하늘은 푸르르고, 몽실몽실 떠가는 구름은 선명하며, 고개 들어 산을 바라보면 초록빛 울울창창함이 성스럽기까지 하다.

때때로 삶은 하루하루가 여행이며 만행이고, 모든 걸음걸음이 히말라야이며, 매 순간 순간이 휴가이자 휴식이라고 느껴지곤 한다. 시선 가는 곳마다 고요하며 신비롭고도 경이로운 아니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되지 않는 특별한 빈 공간이 꽉 차게 느껴진다.

휴가나 여행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쉼, 설렘, 떠남,평안 등의 일상적이지 않은 아주 특별한 상황을 의미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휴가나 여행은 어떤 몸이 떠나있는 상태를 의미하기 보다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매일 우리는 잠시의 멈춤으로써 휴가와 여행을 경험해 볼 수도 있다. 길을 걷고 길 위의 모든 존재에 눈빛을 보내며 따뜻한 사랑을 보내며 묵연히 걷기만 할 때 이 모든 존재와 하나 됨을 경험한다.

아무리 해야 할 일로 번거롭다 할지라도 잠시 호흡에 마음을 모으고 맑은 공기를 깊숙이까지 품어 안았다가 내보내는데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나는 어느덧 2,500년 전 붓다의 회상에 앉아있는 그 성스러운 제자들 중 한 사람이 되어 있곤 하는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다가도 잠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이 곳은 익숙한 일터이거나 생존경쟁의 장이 아닌 호젓한 여행자가 머무는 인도의 시골마을 고즈넉한 게스트하우스가 된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처해 있는 바로 그 자리를 휴식으로, 쉼으로, 여행으로, 휴가로 바꿀 수 있다. 아니 본래부터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언제나 휴식이고, 여행이며, 휴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구름을 묵연하게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돌려 길 가에 앙상하게 피어난 겨울 나뭇가지를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책을 보다가도, 신문을 읽다가도 잠시 보고 읽는 것을 멈추고 호흡의 들고 남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애써 한 시간, 두 시간 이상을 억지로 시간을 내서, 바쁜 가운데 짬을 내서, 절이나 선방에 찾아 가서 가부좌 트는 법을 배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아주 잠깐,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참선을, 명상을 배울 수 있다. 아니 이것을 참선이나 명상이라고 애써 이름 짓지 않아도 된다.

명상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다만 매 순간 순간 일상에서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자주 자주 멈춤과 바라봄의 때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아주 간단하고도 쉽다. 아주 쉽지만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질 것이다.

사실은 ‘지금 여기’라는 곳이야말로 모든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실은 나라는 존재야말로 완전하고도 충만하고 꽉 찬 더 이상 얻어야 할 또 다른 힘을 필요치 않는 무한한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만 특별한 곳에서 명상을 할 것이 아니라,어렵게 시간을 내어 여름 휴가 때만 여행을 떠날 것이 아니라, 잠시 모든 의식과 생각을 멈추고 묵연히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곧장 휴식을 즐기고, 쉴 수 있을 것이다.

네팔 여행 중 만난 어느 밭둑길...

출처 : 목탁소리
글쓴이 : 법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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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지에서
문득
나라는 사람이
낯설게 느껴진 적은 없는가.

과거의 삶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채,
지금 여기에는
나도 알 수 없는
전혀 낯선 누군가가 서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런 '모름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순간이며
성스러운 순간이다.

바로 그 모르는 순간 속에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문득 문득
알 수 없는 낯선
모름의 순간으로 떠나 보라.

불현듯,
과거에 만들어 놓은
모든 나의 정체성을 떠나보내고
알수없는 모르는 자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너는 누구냐'

“오직 모를 뿐!”

출처 : 목탁소리
글쓴이 : 법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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