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양(懷讓)은 도일(道一)의 그릇을 보시고는 물었다.
“대덕은 좌선(坐禪)하여 무엇을 하려 하시오?”
도일이 말했다.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회양은 벽돌을 하나 가져와 그의 옆에서 갈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도일이 물었다.
“벽돌을 갈아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 하오.”
“벽돌을 간다고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벽돌을 갈아 거울이 되지 못한다면, 그대는 좌선을 한다고 어찌 부처가 되겠습니까?”
이에 도일이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가 끄는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수레를 때려야 할까요? 아니면 소를 때려야 할까요?”
도일이 대답이 없자, 회양이 말했다.
“그대는 좌선을 배우려고 하십니까? 좌불(坐佛)을 배우려고 하십니까? 만약 좌선을 배우려고 한다면, 선은 앉거나 눕는 것이 아닙니다. 좌불을 배우고자 한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아닙니다. 머묾이 없는 법에서는 취하거나 버림이 없어야 합니다. 그대가 좌불을 따르고자 한다면 그것은 곧 부처를 죽이는 것입니다. 만약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이 이치에 통하지 못할 것입니다.”
도는 닦을 필요가 없다. 더럽히지만 말라. 분별심으로 조작하고 추구하는 것이 더럽히는 것이다.
도를 알려는가? 평상심이 도다. 평상심은 조작하지 않고, 옭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취하고 버리지 않는 것이다. 또한 단멸하거나 항상 하는 것도 아니고, 범부와 성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전에서는 이를 두고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것이 바로 보살의 행이다’라고 했다.
모든 것이 전부 마음이다. 온갖 것이 전부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니 마음이 만물의 근본이다. 진리를 떠나서는 설 곳이 없다. 서 있는 곳이 바로 진리요, 모든 것이 자신의 본바탕이다. 모든 것이 전부 불법이고 해탈이다.
그대들 각자 자신의 마음이 부처임을 믿으라.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
죄의 자성이 공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느 순간에도 죄는 없으니, 자성이란 본래 없기 때문이다. 삼계는 오직 마음일 뿐이며, 삼라만상은 이 마음의 흔적일 뿐이다.
선에 머물고 악을 제거하며, 공을 관하고 선정에 들어가는 것은 모두 조작하는 것일 뿐이다. 밖으로 치달려 구한다면 더욱 멀어질 뿐이다.
[마조어록]
✔ 도불용수 단막오염(道不用修 但莫汚染), ‘도는 닦을 필요가 없으니 더럽히지만 말라’는 초기 조사선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이를 남악회양(南岳懷讓) 선사는 좌선을 열심히 하고 앉아 있는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에게 벽돌을 가는 비유와 소가 끄는 수레의 비유를 통해 설하고 있다.
소가 끄는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지 수레를 때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마음을 닦고자 하는 이가 앉아 있는 몸의 모양을 통해 깨닫고자 한다면 그것은 수레를 때리는 것과 같다.
이 공부는 마음공부지 몸의 공부가 아니다. 마음공부는 애써 좌선만을 고집할 것도 없고, 염불이나 진언이나, 특정한 수행법만을 고집할 이유도 없다. 마음으로 하는 공부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방법이나, 앉는 방식, 수행법, 그런 수단과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아니니 특정한 모습을 오래 취한다고 해서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참된 이치를 모르고 오로지 앉아서 좌선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부처를 죽이는 것이다.
회양의 가르침 덕분에 깨달음을 얻고, 10년 동안 회양선사를 모시면서 마조의 깨달음은 더욱 깊어 갔다.
이후 마조는 도는 닦을 필요가 없으니 다만 더럽히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더럽힌다는 것은 곧 분별심으로 조작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조작과 추구가 끝나지 않는 이상 깨달음은 오지 않는다. 그 모든 추구와 조작이 완전히 쉬어질 때 문득 그것은 드러난다.
도는 거창하고 위대하고 신비로운 어떤 곳에 있지 않다. 평상심이 그대로 도다. 조작하지 않는 지금 이대로의 마음,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의 자연스러운 무분별의 상태, 취하고 버리지 않는 할 일 없는 무위의 상태다. 그 자리는 항상 하거나 끊어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범부와 성인이 따로 나뉘지도 않는 참된 불이법의 자리다. 범부와 성인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참된 보살이 아니다.
이것과 저것 중에 어느 하나 속에 마음,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 모든 것이 똑같은 하나의 마음이다. 마음이 곧 만물의 근원이다. 진리 아닌 곳은 어디에도 없다. 진리를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진리가 아닌 곳에는 단 한 시도 발을 내디딜 수조차 없다.
서 있는 바로 이 자리가 곧 바른 진리요 자신의 본바탕이다. 모든 것이 전부 똑같이 불이법으로써 둘이 아닌 불법이고 해탈이다. 이 자리에서는 어느 하나 소외되고 차별되는 것이 없다. 일체법이 그대로 불법이다.
출처 :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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