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로 가는길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다. 죽음이란 영혼이 육신의 속박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학대전’을 쓴 토마스 아퀴나스는 존재를 살아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을 혼(anima)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혼은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해 주는 기준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정신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단계가 높아지면서 영계, 즉 영혼은 어디에 가서 거처할까 하고 궁금해 한다. 불교에서는 그곳을 극락이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천당이라고 한다. 둘 다 같은 개념이다.

아미타경에 따르면 극락세계는 아미타불이 설법하고 관장하는 영역으로 10억 부처를 지나서 있다고 한다. 거기서 거듭 태어나는 자는 심신의 괴로움이 없고, 다만 즐거움만 있다고 전한다.

이처럼 공간적인 거리와 사람이 사후에 간다는 시간적인 거리는 물질적인 낙토관(樂土觀)을 담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거기에 중생구제 사상이 담겨져 있다는 점이다. 10억 부처 너머에 아미타부처가 있다면, 은하계로 말하면 10억개의 은하계 저 너머에 극락이 있다는 이야기일까 하고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관념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되었건 사람의 머리로는 영혼이 거처하는 곳을 이해하기 힘들다. 여기저기가 아니다. 영혼은 그냥 우주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공간을 생각하는 인간들의 상상일 뿐이다.

우주 본체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은 전혀 없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하여 만든 개념이다. 시간이란 원래 없는 것이다. 현재 이 순간이 태초이자, 과거 현재 미래이다. 지금은 무한히 계속되며 시작도 끝도 없다.

극락이나 천당이라는 것은 어떤 공간이라기보다는 그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마음 가운데 근심걱정을 완전히 벗어난 상태, 즉 해탈의 상태에서 마음이 안정되어 있을 때, 그런 상태를 극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이 완전히 안정된 상태에 진입한 영혼을 불교에서는 부처, 기독교에서는 성인(Saint)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천당을 공간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영계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영적 세계인 것이다.


 

춘목(春牧) 칼럼니스트

 

 

 

  

마음이 청정하며/명상음악

 

 

 

 

 

출처 : 행복 에너지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

윤회론은 심리학, 사회학, 물리학, 생명과학이다
 
20년 전 여름, 나는 지방의 어느 암자에서 귀한 손님을 만나게 되었다.
 
만난지 얼마 안되어 마음이 통한, 그러나 오래 전부터 그 분의 문학작품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한 원로시인의 주선에 따라 만난 손님은 주교 한 분과 대여섯 분의 신부 수녀들로서 신학대학교에서 교수를 겸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시작한 이런 저런 환담은 그 분들이 참여한 저녁예불에까지 계속되었으니 꽤 오랜 시간이다. 음주가 절집 안에서는 금기가 되어 있지만 그 때는 예외로 했다. 예수의 성찬의식의 전통에 따라 포도주를 신성히 여기고 즐겨 마시는 그 분들의 뜻을 존중해 마주앙 몇병도 준비했던 기억이 새롭다.
 
어쨌던 아름다운 산세와 한여름의 녹음이 우거진 산사의 청정한 분위기에서 가톨릭 신학자와 불교 승려가 마주앉아 공양을 같이 나누고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리 흔치않은 일일 것이다.
 
식사가 끝나고 차와 과일을 들면서는 본격적으로 대화가 이어졌는데, 어느 지방의 대학장을 맡고 있는 신부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개도 되고 소도 되고 또 짐승이 사람으로 환생한다는데 그 것을 윤회라고 한다지요?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의 표정을 보니 마주앙을 몇잔 마신데다가 약간 열이 올라 상기한 상태로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그 때만해도 나는 불교학이나 사회학문을 충분히 체득 못했던 터라 쉽게 설명을 못했으나, 내 기억으로는 당시 윤회설을 인간과 만물의 순환원리로 이해해야 된다고 말한 것 같다. 쉽게 말할 수 없는 형이상적 문제를 두고 한 이런 직접적인 질문을 직설로 바로 대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서 지금도 다만 원리나 간접적인 비유로 대답할 수 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 때 우리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모든 사람들이 침묵을 지켰으나 지인인 원로시인이 어색한 분위기를 조정하는 뜻에서 불교의 윤회설은 범신론으로 자연의 순환원리라고 본다며 나의 말에 공감을 표시하였다.
 
의외였다. 그 분의 젊은 시절, 한분의 문단 대표시인과 승려시인 셋의 지상토론에서 본 그 분의 견해인즉 범신론은 혹세무민의 미신이요 유일신 하나님만이 우주와 자연의 주체라고 하신 분이 어떻게 지금은 180도로 달라졌을까 하고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돌아가시기 몇해 전 그 분의 대표작품은 <하나의 물방울과 작은 시냇물이 모여서 흘러 흘러 강과 바다가 된다>는 범신론적인 작품을 남겼다. 생명 하나 하나가 신의 창조물이라 여기는 극히 단순한 논리의 기독교인에게는 이단같은 말이지만 모든 생명의 상생과 조화가 화엄의 세계, 즉 존재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범신론적 사유인 것이다.
 
<윤회는 모든 존재의 현실이다>
 
불교적 사후관인 윤회의 문제를 좀 더 쉽게 접근해 보자.
 
인간은 죽으면 끝이기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람, 인간과 생명은 단지 물질로 이뤄졌을 뿐 사후엔 영혼도 사라진다는 유물론적 이론이 있고, 영혼은 있으되 죽으면 신의 의지와 심판의 타력에 의해 천당과 지옥에 갈 뿐이라는 유일신적 흑백론.양극론 등의 유신론,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윤회한다는 윤회론이 있다.
 
동양의 가장 오래된 종교이자 정치철학인 유교에서 공자는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을 알지 못한다"라며 내세를 모르거나 부정했다. 그래서인지 불교국 고려를 쿠데타로 뒤엎고 조선왕조를 세운 성리학 이론가 정도전은 불씨잡변(佛氏雜辨)에서 "불교는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종교로서 부처의 기도나 윤회인과설은 혹세무민이다"라며 부녀자들의 사찰출입도 금지한 불교의 탄압을 합법화시킨, 500년 불교말살의 일등공신이자 사대주의적 유교를 국교로 한 조선의 일등개국공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피나는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이방원(태종)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으니 인과법칙과 윤회가 마냥 헛된 것은 아니었다.
 
하루 24시간 동안 우리 인간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집 앞 공원으로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심호흡을 해 본다. 그 시간만큼은 무념무상, 곧 뇌와 마음이 빈 상태로 가벼운 운동이나 산책 아니면 명상의 시간도 좋다.
 
그 때가 바로 천상이요 천국이 아닐까.(천국의 시간이 너무 많은 게 탈이다)
 
집에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뉴스와 신문을 보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정겹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바로 인간으로서 누리는 인간세상이다.
 
옷을 갈아입고 회사에 출근하거나 일을 위해서 문 밖을 나서면서부터는 많은 사물과 부딛히고 경쟁하며 가족들과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야말로 아수라같은 치열함과 사나움으로 세상과 대적하니 바로 아수라 세상이다.
 
순간의 판단이 잘못되어 범죄를 저지르고 평생의 위업인 재산을 탕진한다.
 
예컨데 사소한 말다툼으로, 또는 견물생심으로, 사람보다 돈이 더 탐나서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하게 된다. 매일같이 매순간 일어나는 짐승세계가 아닌가. 바로 축생세상이다.
 
경제대국이라는 한국에서 어떤 이는 배가 너무 불러서 태평천국을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너무 배가 고파서 고통스럽다. 밥을 굶은 사람이 날로 늘어가고(특히 배고픈 북한인), 상류층이나 비만환자는 살을 빼느라 고생하고 온통 다이어트 붐이다. 더 배를 채우고 새 곳간을 짓느라고 난리를 친다. 옛말에 만석꾼 부자가 한 섬을 채우기 위해 가난한 사람의 곳간을 넘본다는 말이 있고, 돈 많은 부자가 구멍가게의 푼돈을 보고 탐낸다.
 
(태산같은 산림과 자연, 관광객의 푼돈밖에 없는 불교재산을 엄청난 갑부인양 여긴다. 돈 많은 개신교는 불교가 부자거지라고 손가락질하고, 돈 많은 가톨릭은 불교가 알부자라고 한다. 어떤 것이 맞는가 물으면 이유도 모른다. 연관성이 떠올라 옆길로 갔다.)
 
무지하고 사납고 탐욕스러운 양육강식의 세계가 바로 아귀세상다.
 
매일같이 교통사고로, 불치병으로, 자살 타살로, 독재시절때는 인권탄압과 고문 지명수배로 사람들이 죽고 지독한 고통을 받으니 바로 지옥세상이다.
 
매시간마다 자신을 관찰해 보자.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국이 바로 자신의 삶 속에 자신의 마음 속에 시시각각으로 일어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육도윤회는 사후세계에서 찾지말고 바로 현재 여기에서 자신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윤회는 과거며 현재요 미래다>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억울하게 한을 품고 죽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전쟁, 병, 사고, 자살, 타살, 고문 등으로 죽은 생명들.... 특히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태아형의 죽음을 두고 <죽으면 끝>이라면.... 너무 허무한 유물론적 사고방식이 아닌가.
 
유물론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인간과 모든 생명체가 일회용 소모품이요 시계의 부속품으로 생명의 가치와 고귀함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유신론, 무신론을 내세우면 신이 만물의 중심으로 삼는 중세시대와 마르크스 이론을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존재가 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은 단지 신을 믿는 신본주의시대의 개념으로서 근세 이전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인본주의시대를 지나 생명과학과 우주시대를 맞고 있지만 인간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뇌의 구조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 수구보수주의에 머물고 있다.
 
한국에 몇번 다녀간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베르(파피용 등)의 작품세계는 17세에 접한 티베트불교가 깊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개미, 뇌 등에서 인간의 업은 사라지지 않고 윤회하면서 기록된다고 한다. 뇌는 필름창고같이 무한한 시간, 즉 전세, 현세, 미래세를 기록하는 것으로 불성을 상징하며 작은 우주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인간의 운명 내지 삶은 어떤 절대자가 정해주는 숙명이 아니라 업에 의해 스스로 만들어 가는 창조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범신론의 만물평등, 유신론의 만물차별>
 
불교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연기, 인과, 공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왜곡될 수 있다.
 
선불교에서는 유심론을, 밀교에서는 범신론을, 화엄학은 우주론과 생명과학이 되고, 법화경에서는 세상의 구원사상, 금강경에서는 교만을 없애는 예지를, 능엄경은 우주의 기원을, 아함경에서는 도덕율이 핵심이다. 원각경은 인간이 부처가 되는 깨달음의 길을 제시하고, 용수, 마명, 원효는 인간과 세계가 어떻게 공존해서 평화를 이룰지 철저히 분석한 대승불교의 대사상가이며 따라서 대승불교는 인류공존의 원리를 밝히는 인류평화학이라 할 수 있다.
 
유식불교에서는 인간의 초심리학을 다루고, 인류역사의 오래된 윤회, 만물유전론은 일찌기 이집트,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인도 전역에 퍼졌던 학설이요 신앙이었으나 기독교의 유일신앙이 세계를 정복하면서부터 금기로 굳어진 것이다.
 
나는 윤회, 인과, 공사상, 범신론, 무아론을 체득하기까지 평생의 시간이 걸렸다.
 
동서양 철학서를 비롯한 각종 역사서, 사상서, 다윈, 뉴턴, 아인슈타인의 과학, 유불선의 서적과 스승을 찾았고, 그것도 모자라 인도, 티벳,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외 넓은 땅을 헤메면서 얻은 깨달음은 <문화인류학의 총체는 불교>라는 것이다.
 
윤회, 공사상은 심리학, 생명과학, 종교, 철학, 정신의학, 사회학, 천문학, 지리학같은 고도의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것을 단지 특정종교의 교리, 신앙차원에서 보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것으로 본질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불교(밀교)에서 윤회는 실상을 말한 것 뿐이다. 윤회가 목적이 아니다. 끝없이 죽고 태어나는 생사윤회의 삶을 벗어나 영원한 삶을 추구하고 얻으라고 하는 것이다. 번뇌와 고통, 상극과 대립, 허무의 불행한 삶에서 해탈과 열반(자유(해방), 평화, 행복)으로 인도하고저 한다.
 
도올 김용옥의 친형인 한국기독교과학협회장 김용준 박사는 몇해 전 신동아 인터뷰에서 인간과 벌레는 유전자가 98% 일치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인간과 짐승, 동물과 곤충은 전혀 다른 세계이며 차별적으로 보 지만, 생명과학에서는 불과 2% 차이라고 하니 충격적이 아닐까.
 
500만년 진화된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는 1%, 즉 99%의 유전자가 동일하다고 보면 인간은 원숭이와 사촌이다. 불교적으로 보면 억겁의 시간, 인간의 시간이 아닌 우주와 생명의 시간, 곧 윤회를 반복해서 오늘을 만든 것이니 그야말로 백천만겁난조우다.
 
신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만물을, 강자가 약자를, 동물이 식물을 지배한다는 만물지배론이나 약육강식론은 강자에게 축복을, 약자에게 저주와 죽음을 합리화시키는 권력도구였다.
 
반대로 풀을 먹는 동물과 약한 동물이 있기에 강한 동물이 있는 것이며, 육식보단 채식이 장려되고, 모든 동식물 때문에 인간의 삶이 유지된다는 상생화합의 겸손한 철학과 평화주의는 어떨까.
 
이미 서구의 육식성 정복주의는 스스로의 미망을 깨닫고 동양의 자연환경주의, 채식주의, 평화공존주의, 신과 인간의 이원론이 아닌 모든 생명체의 소중함을 말하는 범신론, 생명과학주의의 윤회, 인과, 무아, 공을 인식하고 폭넓게 실천하고 있다.
 
강을 건너는 뗏목이나 병을 고치는 약이 방편이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윤회론은 중요하다. 방편, 혹세무민으로 윤회를 보는 사람은 단순논리에 집착하거나 심안(心眼)이 열리지 못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윤회론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큰 '지구생명'이란 나무에서 나온 공존, 평등, 평화를 말하는 것이다.
 
윤소암 (시인·시사평론가)

출처 : 미스테리 그날이 오면?
글쓴이 : ♣영원한 기다림 원글보기
메모 :

영적인 능력이 생기게 만드는 요소들

영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야 별 관심대상이 아니지만 때때로 영적                   

 

능력이 생기게 만드는 요소들이 있다.

 

충격, 의문, 명상 이렇게 세 가지 길이 있다.

 

영 능력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세 가지 길에 서서 꾸준히 갈고 닦으면 반드시 영 능력이

 

생긴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이 세 가지 과정을 거치신 분이다.

 

 처음에 카피라 성문 밖을 돌아보고 중생들이 생노병사하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그들의 아픈 생활을 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어째서

 

나는 이렇게 왕자로서 편하게만 살아야 하는가 ?

 

이게 사는 것이란 말인가 ?

 

 영원히 사는 법이 과연 무엇일까 ? 여러모로 고민한다.

 

이 과정이 바로 의문을 가지고대드는 부분이다. 그리고 나서 성을 떠나 스승들을 구하다가 결국 스스로

 

 자기 혼이 스승임을 깨우치고 설산으로 향한다. 이 부분이 바로 명상이다.


충격 >  의문 > 명상 이 3단계는 누구나 수행자에게 반드시 요청되는 중요과정이다.


그럴듯한 직책 맡아서 위세나 부리고 힘주려 하는 이들은 평생 이 과정이 다가올 까닭도도 없을 것이며

 

큰 그릇으로 커지지도 않는다.


충격이란 문자 그대로 충격이다.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거나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아니면 인생길에서 큰 상처를 입고 도저히

 

일어서지 못할 상황에서 영능력이 생기는 일이 흔하다.


그 예로서 무당 들 중에서 애인에게 버림을 받고 그 날부터 울고불고  몇 십일 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방에

 

칩거하다가 신을 받았다고 하면서 뛰쳐나오는 경우가 바로 이런 현상이다. 내면을 살펴보면 신이 온 것

 

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하여 자기 영혼이 다시 재가동되기 시작한 일일 뿐이다. 쉽게 말해서

 

그 동안은 인간적으로 뇌에 의지하여 살다가 비로소 영혼의 존재가 충격으로 인하여 겉으로 드러나서

 

활동하기 시작한 일이다. 오직하면 , 경희대 명예교수님이신 서정범 교수님이 이런 내용의 말을 하셨겠는가.


“ 무당들은 정신적으로 무척 외로운 사람들이예요. 사랑을 받지 못한 애정결핍증환자들이 대다수입니다.

 

물론 실연의 고통을 겪은 이들이 많지요. 저는 신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들은 어떤 알 수 없는 기를 가지고

 

신이라고 말합니다.”우리나라 사람이 많거나 적은 신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이유도 이런 한 맺힌 과정이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병석에 누워서 죽을 날 만 기다리던 환자가 갑자기 일어나서

 

 병이 다 나았다고 외치며, 그날부터 영 능력이 생겨 타인 점을 보는 일도 있다. 그런 경우는 병고라고 하는

 

고통이 그에게 충격을 주어 “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하는 사생결단의 의지가 발동한다.


그 의지가 마음을 움직이고 드디어 살아 있는 영혼의 커튼이 서서히 열려 젖혀지는 일이 바로 영 능력의

 

 발현이다.그 다음 과정이 명상이다.불가에서는 이를 가리켜 참선이라고도 말한다


영 능력은 글자 그대로 자기 영혼의 능력이다.


영혼의 능력은 명상을 통하여 뇌기능을 쉬게 해야 나타나기 시작한다. 뇌라고 하는 신체부분은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통시적, 통관적인 감각을 무시하고 오로지 육신으로 전달된 정보만을

 

 가지고서 일하게 만든다. 그래서 개인 차이가 들어나는 경우에 머리가 좋으니 요령이 좋으니 통찰력이

 

있느니 어쩌니 하는 얄팍한 부분적인 능력 차이로 말을 하게 된다.


명상은 충격을 받은 자가 그 의문을 깊이 새겨서 뇌의 기능을 쉬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명상을 통하여

 

어떤 사람은 부처님이 되기도 하지만, 최소한 자기의 영적 능력을 틔우는 정도는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일이

 

 불가하더라도 최소한 사람이 현명해지게 만드는 결정적 성과를 내어준다.


수행과정에서 아나함. 사다함. 아라한의 과정이란 이런 단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야식이니 말라 식이니 하는 용어도 뇌 의식 구분이 아니라 영혼의식의 구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충격을 받기 싫어하고 곱게 자란 사람들이 그저 쉽사리 영 능력을 얻겠다고 힘쓰는 일이다. 더구나

 

신을 받으면 그날부터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어리석음이란 정말 눈뜨고 못 볼 일이다.  그들이 신을 받아

 

보았댔자  소용이 없다. 신은 자기의 영혼을 통하여 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천시하는 무당들이 무당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쓰라린 신고를 겪었는지를 안다면 그런 가증스러운 말이

 

 안 나올 것이다.그래서“무당도 못 되는 것이 무슨 수행자냐 ?”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출처 : 비비디바비디부
글쓴이 : 리치본 Bizline 원글보기
메모 :

일본침몰 예언과 그 외 지역의 변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케이시는 1934년에 일본, 유럽, 극지방의 지각변동 등에 대해서도 중요한 예언을 했다.

① 일본의 침몰: “일본의 대부분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The greater portion of Japan must go into the sea.)

② 유럽 지역의 변화: “유럽의 북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될 것입니다.”

③ “북극과 남극지역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열대지역에서는 화산폭발이 있을 것입니다.”

④ 소련의 미래: “소련에서 공산주의가 붕괴한 후에
각자가 자기 민족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원칙
이 그 곳에서 탄생할 것입니다.”

⑤ 중국의 미래: “중국은 여러 계급과 교파를 통합하게 되고
이들은 민주주의의 길을 향해서 단합할 것입니다.”

 

일본 침몰에 대한 케이시의 리이딩은 그 표현이 매우 독특하다.

위의 영어 원문에서 볼 수 있듯이, 유독 일본에 관해서만은 일반 예언문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머스트(must)라는 강력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케이시는 일본열도가 운명적으로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

극이동에 의한 대변혁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에드가 케이시의 극이동에 대한 예언에서 중요한 것은, 천지의 대변화가 찾아오게 되는

우주 변화의 어떤 순환주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극이 이동합니다. 극의 이동이 생길 때 ‘새로운 사이클’이 생깁니다.

이는 곧 ‘재조정의 시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케이시가 말한 이 내용은 분명 지구 최대의 신비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지구의 극은 어떻게 이동하게 되는 것일까?

또한 극이동 후에는 지구의 사이클이 어떻게 변화되는 것일까?

즉, 그가 말한 새로운 사이클의 대진전이 어떻게 있을 것인가?

이러한 불가사의한 개벽의 핵심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시원스런 해답을 주고 있지 않으며,

다만 이 때에 일어나는 변화의 현상에 대해서만 약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케이시는 지구 기후의 현저한 역행을 가져올 극점 이동의 서곡으로

‘북극 및 남극지방의 대변동’과 열대지역의 화산 폭발에 대해서 말했다.

출처 : 이것이 개벽이다. 상 / 안경전 저/ 대원출판

----------------------------------------------------------

 

지구가 열(熱) 받고 있다
 
남극서 떨어져 나가는 빙산 급증

미국의 국가빙하센터(NIC)는 지난 11일 남극대륙을 덮고 있는

빙붕(氷棚)에서 거대한 빙산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고 발표했다.

C-19로 명명된 이 빙산의 크기는 길이 196.4㎞, 폭 30.6㎞에 이르러,

면적만 놓고 볼 때 5948.64㎢로 여의도 면적의 무려 710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올 들어 분리된 빙산은 모두 4건에 달하며, 현재까지 빙산 44개가

남극 대륙 근방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으로 추적되었다.

만일 남극 얼음이 다 녹을 경우 지구 해수면은 5m 가량이나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 (2002. 5.17 기사)

 

  가장 필요한 일 : 대개벽의 소식을 널리 전하는 것

 

제스 스턴이 말한 바와 같이 대격변의 시간표가 이미 예정되어 있어서 그 운명의 손을 피할 수 없다면,

경건주의자였던 케이시의 다음과 같은 도덕적인 진실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오늘날 이 땅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사람들에게 신의 찬란한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이제 일어나려고 하는 현상을 알게 해주는 것들입니다.

 

그는 인류의 새로운 미래는, 지구의 내부와 외부의 변화 요인 가운데에서

특히 ‘외부의 거대한 힘’에 의해 생기는 파괴가 지구에 밀어 닥치게 됨으로써 시작된다고 하였다.
에드가 케이시는 마지막에 일어날 변국의 종합적인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해 주고 있다.

 

전쟁, 지구 내부의 변동 및 극점을 연결하는 축(軸)의 변화에 의한 지구의 전이(轉移)입니다.

대적인 예언을 부정했던 그도 전쟁이나 대파괴의 시기에는

각 개인의 선택의 자유가 거의 없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아마 이는 그의 수준 높은 지성의 예지력으로 가슴 깊이 느꼈을 우주의 숙명이었으리라.

//

출처 : 미스테리 그날이 오면?
글쓴이 : 맒은 영혼소리 원글보기
메모 :

2012년 지구 대재앙’은 예언 아닌 과학
아포칼립스 2012/로렌스 E 조지프 지음, 강미경 옮김/황금나침반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6500만년 전, 10㎞ 너비의 혜성, 또는 소행성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져 직경 175㎞에 이르는 구멍을 만들었다. 그 충격으로 공룡을 비롯한 지구상에 있는 종의 70%가 절멸했다.

‘64만년 전,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대규모 화산이 폭발했다. 이때 100만㎥에 이르는 화산재가 공중으로 흩어졌고, 미국 대륙 전체가 최소 1m 두께의 재로 덮였다. 그 재가 흩날리는 바람에 곳곳에서 10년 넘게 햇볕을 구경하지 못했다.’

지구의 대재앙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주 거론되는 사례들이다. 과학과 종교와 역사를 근거로 2012년 지구에 엄청난 재앙이 닥친다는 신간 ‘아포칼립스 2012’도 이런 사례를 드는 것은 같지만, 최신 과학의 성과에 보다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책을 쓴 이는 제임스 러브록 등과 함께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정의한 ‘가이아 이론’을 처음 소개한 자연과학 저술가 로렌스 E 조지프.

책이 지구의 종말 날짜를 2012년 12월21일 24시로 보고 있는데는 유사종교의 예언을 보는 느낌이 없지 않다. 마야의 천문학자들이 몇 세기에 걸친 관측 결과와 장기 계산법으로, 2012년 동지인 12월21일을 기해 인간 역사의 새로운 시기가 열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마야의 학자들이 달과 금성의 궤도를 1000년 단위로 하루까지 정확하게 계산하고, 태음월의 길이를 29.53020일로 잡아 현재의 태음월인 29.53059일과 비교해 34초의 오차밖에 내지 않은 최고의 시간학자라 하더라도, 이런 유의 예측에는 신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날짜 예언에 ‘주역’과 힌두교 경전, 기독교의 ‘성경’까지 마음대로 해석해 동원한 것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책에서 지구 종말이 임박했다며 제시하는 과학적 근거는 훨씬 정교하고 설득력이 있다. 1940년대 이후, 그 중에서도 특히 2003년 이후 마지막 빙하기 이래로 1만1000년 만에 태양이 그 어느 때보다도 사납게 행동하고 있으며, 그것이 2012년 쯤에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 유해한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지구의 자기장에 큰 구멍이 생겨 북극과 남극의 자극 위치가 뒤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점, 태양계가 행성의 대기를 불안하게 만드는 성간 에너지 구름층에 진입했다는 점, 지구상에 6200만~6500만년 주기로 발생했던 대규모 멸종의 순환주기가 도래한 점, 60만년 주기로 폭발했던 옐로스톤 화산의 다음 폭발이 초읽기에 들어간 점 등이 그것이다.

이런 과학지식을 근거로 저자는, 마야문명의 흔적인 과테말라와 지구의 자기장을 관찰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헤르마누스 자기 관측소, 1963년 화산활동으로 탄생한 아이슬란드 쉬르트세이 섬 등지를 발로 누비며, 지구 종말의 징후들을 포착한다. 하지만 책은 종말론 숭배집단이 그렇듯이 머잖아 지구에 엄청난 재앙이 도래할 것이므로, 각자 살아남거나 죽음을 초월하기 위해 대비하라는 식의 주장은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대재앙이 있을 때마다 그랬듯이, 머잖아 인류가 겪을지도 모르는 재앙도 지구의 멸망을 향해 질주해온 인류의 위대한 각성이 이루어지거나, 보다 새롭고 차원 높은 문명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앞으로 지구에서 발생할 재앙을 단지 자연의 탓이 아닌 인류의 탓도 큰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한 인간의 노력을 강조한 것도 가이아 이론을 소개한 저술가의 책답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출처 : 미스테리 그날이 오면?
글쓴이 : 선심초심 원글보기
메모 :


        " 당신이 보고싶은 날.. " -이해인- 요즘엔 당신이 더욱 보고싶습니다 지척에 당신을 두고서도 보지 못한다는 것이 마음 한구석을 멍들게하고 있습니다 그리운 마음에 견딜 수 없을 때면 이런 상상을 합니다 당신이 꿈이었으면 당신이 꿈이었으면 꿈속에 들어가서 당신을 만날 수 있을텐데 하루 종일 꿈속에 있기 위해 영원히 잠속에 빠져들수도 있을텐데..
        당신은 지금 현실속에 있습니다 냉혹한 현실은 내 마음에 화살이 되고 저는 과녁이 됩니다 또 한번의 그리움의 고난이 끝나면 남겨지는 내 삶의 체취들 눈물들 그리움들 그리고 사무치는 고독들.. 조용히 생각하며 내 자신을 달랩니다. 당신이 꿈이었으면
        당신이 꿈이었으면..

      * 잠시 그리운 옛날을 회상하면서...


    //
    출처 : 이강산애
    글쓴이 : 잉카 원글보기
    메모 :

    첨부이미지

    중년에도 바람은 분다




    첨부이미지

    누가 사오십대를 꺼져가는 등불이라 했나 ?
    바람 앞에 등불처럼
    때로는 위태로운 나이지만..





    첨부이미지

    살아온 만큼 꿈도 많았고
    만난 만큼 그리움도 많은데..





    첨부이미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약해지는 가슴이지만
    아직도 해지는 저녁 무렵이면
    가슴에선 바람이 분다..





    첨부이미지

    이제는 날 무딘 칼날처럼
    어느 가슴 하나 벨 수 없지만
    바람소리 요란한 들판에 서면..





    첨부이미지

    알 수 없는 마음들이
    날카로운 갈퀴를 세우고
    어디론가 용감히 달려가기도 한다..





    첨부이미지

    세상 모든 그리움이 저 혼자이고
    마주하고 살아도 외로움 많던 시간들이
    때로는 별밤에 울려 퍼지는..





    첨부이미지

    첼로소리처럼 눈물겹지만
    붙잡지 않아도 떠날 수 있고
    기다리지 않아도 갈 수 있다..





    누가 사오십대를
    눈물겹게 저무는 노을이라 했나
    아직도 사랑 앞에 서면
    북소리처럼 둥둥 울리는 가슴인데 ...
    .
    .
    봅바람이 차가웁네요
    오늘도 그바람과함께
    즐건날 되십쇼~~~^^*


     

    출처 : 이강산애
    글쓴이 : 초롱2 원글보기
    메모 :
    • 불노장생 회춘의 묘약 "솔잎 사이다"

    ★재 료
    솔잎, 흑설탕, 물 ※ 물 500cc에 흑설탕 100g비율 ● 완숙꿀이라면 더 좋습니다 ● ★만드는법 ◆ 7∼8월경에 새로난 솔잎을 채취해 깨끗이 씻어 투명한 큰유리병에 채워놓고 끓여 식힌물을 약간 채운다음 흑설탕을 가하여 병마개를 막아 햇볕이 잘드는 곳에 둔다. ◆ 여름에는 일기가 좋으면 5∼6일이면 완전히 발효되어 솔잎은 회색으로 변해버린다. ◆ 봄 가을에는 2주일 가량 걸린다. ◆ 발효가 완전히 끝나면 다른용기에 즙을 옮기고 차로 마신다. ◆ 시원한 곳에 보관한다. ★주의사항 ◆ 솔잎은 적송(赤松)이든 흑송(黑松)이든 상관없으나 적송이 잎도 부드럽고 맛도 좋다. ◆ 태양열을 이용해 만들어야 한다. ◆ 그러므로 장마철이나 비가 올 때 담궈서는 안된다. ★참고사항 ◆ 차맛이 청량음료 같은 맛이 나서 일명 사이다 라한다. ◆ 마치 사이다와 같은 거품이 일기 때문에 "솔잎사이다"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혹자는 솔잎술'이라고도 하지만 알콜이 전혀 없으므로 술이 될 수 없다. ◆ 이 솔잎사이다는 옛부터 고혈압과 동맥경화증에 많이 마셔왔다.
    출처 : 사이고-성
    글쓴이 : 방 아 원글보기
    메모 :

    ●갑자기 심장마비가 왔을 때●






















    여주선생의 저승문답
    여주선생의 저승문답


    이 글은 1945년경 중국의 유명한 재판관인 여주선생이란 사람이
    실제 살아서 저승에 가서 명부 재판관을 지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입니다.

    우리가 간간이 들어왔던 저승에 대한 얘기를
    명부에서 벌어지는 재판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글들이 전부 사실이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저승세계에 대해 조금 더 접근해 갈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되돌아 보게 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원저 : 유명문답록(幽冥問答錄)


    구 술 : 여주선생
    수 록 : 임유양
    번 역 : 박금규(원광대학교 사범대 한문교육과 교수)




    번역자의 이끄는 말

    이 '저승문답'은 최근(1945) 중국의 제2의 포청천으로 명성을 드날렸던
    명판관 여주(黎澍)선생의 실제 저승 재판기록이다.

    여주선생은 다 아는 바대로 나이 많고 덕이 높고 또 명판관으로 법률계에 소문이 난 사람이다.

    그는 늘 평소에 자신이 저승의 재판관으로 다년간 있었고,
    수면중에 잠깐 명부(冥府)에 가서 그 옥안(獄案)들을 처리했노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때 중국군의 참모장 임유양은 그와 매우 절친한 사이로 그러한 저승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 바쁜 와중에도 어느 날 하루 짬을 내어 본격적으로 임참모장이 그간의 경위를 직접 묻고
    그에 대한 여주선생의 구술(口述)을 손수 수록하여 저승문답이란 한 권의 책이 이루어진 것이다.

    흔히들 요즘 신세대인들은
    자칭 소위 과학과 문화를 연연하여 저 신명세계 귀신이야기를 하면
    아주 질겁을 하고 무슨 벌레를 씹었거나 똥밟은 것처럼 몸서릴 치고 도망간다.
    그리고 아주 무지몽매한 미개인 취급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 신명세계를 부정하는 현대 문화인들이
    살인, 강도, 강간, 부정, 비리를 이처럼 서슴없이 자행하는 것일까?
    생혈을 빨고 인육을 뜯는 저 막가파나 지존파 등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이 '심령' '신명세계'에 중점을 두고 교화하는 것일텐데,
    이렇게 번창한 종교의 주장이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불교의 윤회설은 차치하고서라도 인류의 영원한 스승인 공자도 그 주역(周易) 계사편에서

    " 역은 위로는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 지리를 살피고 있다.
    그러므로 이승과 저승의 일을 알며, 사물의 시초를 미루어 사물의 종말을 알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이치를 알 수 있으니,
    정기(精氣)가 엉기어 모인 것이 생물이 되고, 변하여진 것이 영혼인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의 실체와 정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하였고, 또 중용(中庸)에서 말하기를,

    " 귀신의 덕됨이 왕성하기도 하구나.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지만 만물의 본체가 되어 있어 빠뜨릴 수가 없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위 사대부라고 하는 사람들이 귀신을 무시한다든지 귀신을 말하기를 꺼린다는 것은
    바로 공자를 무시한 것이며, 주역을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우주 자연의 섭리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모난 것이 있으면 둥근 것이 있는 것이다.

    이걸 미루어 생(生)과 멸(滅),음(陰)과 양(陽),유(幽)와 명(明),인(人)과 귀(鬼)가
    모두 상대적으로 넓혀져 존립하는 것이 사물의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두렵고 놀라서 무서워 떨면서 지나온 일들을 반성하고 다짐하였다.

    귀신을 믿고 안믿고간에 어쨌든 이 한편의 책은 권선징악의 공이 모두 갖추어 있어서
    세상인심을 바로 잡는 데에 유익된 바가 없지 않겠기에 여기에 번역하여 게재하는 바이다.


    선생이 지난날, 일찍이 저승의 재판관이 되었었다 하셨는데 정말 그랬습니까?
    그렇습니다. 세간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모두 괴이하게 여길 터이지만
    나로서 볼 것 같으면 그 일이 일상적인 일이어서 조금도 괴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어느 때의 일이었습니까?
    청나라말 광서(光緖) 경자(庚子, 1900)무렵의 일로써, 내 나이 열아홉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소임은 어떤 직무에 관계했으며 어느 부 밑에 속했습니까? 그리고 직원은 몇 명이 있었는지요?
    동악부(東嶽府) 아래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동악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건을 집행한 뒤에 공사를 가지고 보고를 올렸을 뿐입니다.
    나는 그때 분정(分庭)의 정장(庭長)을 책임 맡았었는데, 따로 배심원 네사람을 두었었고
    봉사한 귀졸(鬼卒)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저승재판관을 몇 년이나 맡았었습니까? 그리고 그 일은 매일 가서 처리했습니까?
    또 어느 지방을 관할했었습니까?
    전후 4~5년간을 했었고, 날마다 가서 했습니다.
    관할구역은 화북(華北)의 다섯 성을 맡았었습니다.

    저승에서는 왜 선생을 재판관으로 삼았었는지요?
    나 또한 일찍이 같은 사건을 맡아서 조사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또 수전세(數前世)에서도 저승판관을 했었습니다.
    그 속세 인연의 끈으로 해서 다시 그 일을 맡았을 뿐입니다.

    저승에도 규정 법률이 있습니까? 있다면 선생은 그런 율법을 학습하지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재판에 착오가 없을 수 있을까요?
    내가 그 규정 법률이 있었던 것을 못 보았던 것 같은데,
    다만 그 제안을 판결하면 저절로 그 급소에 정확히 들어맞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선생이 맡아서 했던 일은 어떤 종류의 사건이었습니까?
    내가 맡았던 일은 사람이 죽은지 10개월 이내의 것으로,
    그 사람의 생전에 지은 선행과 악행의 사건을 맡아서 했습니다.
    기한을 넘긴 일을 따로 맡아서 처리하는 주무자가 있었습니다.

    선생은 그때에 염라대왕을 보았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의 생전에 하였던 선악의 행위를 귀신이 어떻게 다 알고 다 볼 수 있단 말입니까?
    빠뜨리지 않고 다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 귀신은 형체가 없는 것도 능히 다 볼 수 있고, 소리가 없는 것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인간 세계의 온갖 사상과 행위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귀신은 스스로 다 알고 다 알 수 있습니다.
    그 기록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귀신은 사람의 머리 위의 붉고, 누렇고, 희고, 검은 빛깔을 보고서
    그 사람의 행위와 생각의 선악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죄 지은 귀신도 또한 교활한 변명을 합니까?
    예. 극히 많습니다. 죄 지은 귀신은 그가 지은 죄악에 대해서 역시 교활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다가 그 죄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 그때에서야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일찍이 한 귀신을 심판하는데,
    그 사람이 생전에 겉으로는 위선적인 행위를 닦으면서 남 모르게 못된 짓을 다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악행 범죄의 사실에 대해서 극력 부인을 하는데,
    내가 보니까 그 사람의 죄악이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증거를 확실히 파헤쳐서 극형을 가하려 하는 찰라에,
    그 귀신이 뜻밖에 금강경(金剛經)을 외우고 있어요.
    그러니까 좌우 배심원들이 그 귀신의 머리 위에 붉은 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심판을 정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나는 그 배심원들이 그 귀신한테서 뇌물을 받고 사정에 끌려서 그러는가 하고
    이에 형을 더 무겁게 가하려 하니 그 귀신이 더욱 힘써 금강경을 외우는 것입니다.
    좌우 배심원들이 나더러 "빨리 일어나서 삼가 공손히 서 있어라"고 하더군요.

    내가 이르기를 ,
    " 나는 공판정의 우두머리인데 어찌하여 범죄자를 향하여 공손히 서 있어야 하느냐? "고 했더니,
    좌우 배심원들이 이르기를, "아닙니다. 이 귀신의 머리정수에 불광(佛光)이 이미 나타났는데,
    그런데도 그를 심판하면 부처님을 모독한 게 되니 심판을 정지한 것만 못합니다"라 해요.

    내가 그때 그들을 보니까 그들은 모두 일어서서 두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공경한지 극히 장엄해요.

    내가 그들에게 묻기를,"그러면 이 죄인을 어떻게 판별하여 처리하려 하는가?" 하고 따졌더니,
    그들이 이르기를, "그를 판결하기를 사람의 태에 보내기를 수차례하여 그로 하여금
    금강경을 기억하여 외울 수 없을 때를 기다려 그때에 가서 다시 그 죄를 다스리면 됩니다."그래요.

    내가 말하기를,
    "그를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면 그로 하여금 오히려 유익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또 그를 수차례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면, 그가 응보(應報)를 받게 되는 것은
    수백년 이후라야 되는데, 어찌 그리 더디게 하여 그르치려 하는가?" 고 했더니

    좌우에서 말하기를,
    "그로 하여금 잠깐 태어났다가 금방 태안에서 죽게 하면
    몇 년이 안 가서 이미 몇 대를 거친 것이 되니, 그가 지은 죄업은 죄업대로 과보를 받게 되고,
    금강경을 외운 것은 또한 금강경을 외운 공덕이 있게 되니,
    이 두 가지가 모두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훗날 그가 지은 죄업을 분별하여 응보를 받게 하면
    두 가지 일이 조금도 어그러지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마침내 그렇게 하도록 윤허를 하였습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 그 귀신의 뜻은 얼이 빠져 꿈속 같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맑고 성성하여 평상시와 같습니까?
    맑고 성성하여 살아 있을 때와 같습니다.

    저승에 들어갈 때는 매일 어느 때입니까? 그리고 그 안건을 심리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최초에는 매일 해질 무렵이지만, 그후로는 대낮에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오후에 갑니다.
    오고 갈 적에는 모두 간단한 상여를 타고 가는데, 달리는 발걸음이 매우 빠릅니다.
    그리고 안건을 심리하는 시간은 언제나 짧은 시간 내에 합니다.
    그러나 복잡한 안건을 만나면 역시 연장하여 여러 날이 걸리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안건은 극히 적습니다.

    저승에 들어갈 때에 그 사람의 신체는 현재 수면(睡眠)상태입니까?
    저승에 들어갈 때에는 몸은 평상 위에 누워 있고 모습은 깊이 잠이 든 것 같습니다.
    마시지도 않고 먹지 않아도 또한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어떤 때에는 친한 벗들이 갑자기 찾아와서 또 불편한 일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눈을 감은 채 건성건성 대답하는데, 모습이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람 같았습니다.
    어떤 객이 와서 묻고 하면 또한 그 물음에 따라 대답하는데,
    다만 말이 입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 객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승 갔다가 되살아 나오면 정신도 또한 피곤한 줄을 깨닫습니까?
    정신은 조금 피곤하고 모습은 마치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 같습니다.

    저승길에도 음식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음식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저승 재판관의 복장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또 그 공문의 격식은 어떻습니까?
    내가 저승판관으로 있을 때는 아직 청나라가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복장과 공문의 격식은 모두 만주국 청나라의 법식과 똑 같았습니다.
    다만 중화민국이 들어선 이후로는 고쳐져서 새 제도를 따랐습니다.

    저승판관도 역시 봉급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다만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도 쓸 곳이 없기 때문에 수령하지 않습니다.

    저승의 형벌의 종류는 얼마나 됩니까?
    저승의 형벌의 종류는 매우 많습니다.
    이 인간세상의 형벌에 비교하면 참혹하기가 백배나 됩니다.
    만약 지금 사람들이 그걸 본다면 참혹한 형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경력으로 보면, 인류가 차라리 인간 세상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절대로 저승 법정에서는 형벌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즉 이 세상에서는 형을 받으면 형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저승에서는 형이 끝난 뒤에도 또 다시 그 죄과에 따라 재형을 받습니다.

    비유하자면,
    이 세상에서는 열 사람을 죽였다면 그 죄는 한번 죽는 것으로 끝나지만,
    저승에서는 반드시 열 번의 형을 받습니다.

    형이 끝나면 다시 생을 바꿔 태어난 십대의 생까지 살인죄의 사형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톱으로 자르고, 맷돌로 갈고, 칼끝이 뾰쪽뾰쪽 세운 산 위를 맨발로 걸어서
    오르게 하고, 기름 가마솥에 넣고 수레로 사지를 찢고 하는 등의 형이 실제로 있습니다.
    죄의 응보는 참으로 두렵습니다. 이와 같으니까요.

    저승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어떤 종류의 덕행입니까?
    그리고 최악의 죄로는 어떤 종류의 죄업입니까?
    저승에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남자는 충과 효이고, 여자는 절개와 효도입니다.
    이 두 가지를 행한 사람은 비록 죄업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반드시 경감하여 줍니다.

    최악으로 여기는 것은 음탕과 살인죄 두 가지입니다.
    그리고 살인죄는 또 음탕에 비하여 더욱 무겁습니다.

    만약에 음탕으로 인하여 인명까지 살해한 자는
    두 가지 중죄를 함께 저질렀기 때문에 한결 죄를 덧씌운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만가지 악 가운데 음탕이 첫째요, 백가지 선 가운데 효도가 먼저다"라고
    한 말이 참으로 헛말이 아닙니다.

    저승에는 이미 문장으로 이루어진 성문법률(成文法律)이 없는데,
    그 죄의 가볍고 무거운 것을 어떻게 저울질합니까?
    여기에서 그 범죄의 동기와 발생의 결과를 보고 그 정황을 살피고 사리를 참작하여서
    그 경중을 결정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절도죄를 한 것을 가지고 비유한다면,
    그 절도질을 한 사람이 본래 생계에 압박되어 한 것이고,
    망녕되어 다른 나쁜 데에다가 쓰려고 한 짓이 아니라면,
    그리고 도둑맞은 사람이 부자인 한 사람에만 관계되었고, 그 액수도 크지 않으며,
    또 그 부자의 생계에 별 영향도 없고 그 부자가 그 도둑맞은 것에 대해 또한 크게 애석하게
    여기지도 않는다던가, 또 그 도둑맞은 것이 장차 그걸 가지고 가서 음탕한 짓이나, 도박을 하거나,
    담배, 술등 정당하지 못한 부정한 곳에 용도로 쓰려고 한 것이라면, 그 죄는 되려 가볍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도둑맞은 부자가 그것을 하인들에게 의심을 두고 심하게 꾸중을 하여,
    그 책망을 받은 하인이 억울하고 분이 나서 자살을 하게 되었다면,
    또 가난한 사람의 쌀 사고 약 살 돈이라면,
    그리고 도둑맞은 것으로 인하여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데까지 이르렀다면,
    또는 압박을 받아 스스로 몸을 빼어 싸움에 뛰어들어 인명을 살상하는 데 이르렀다면
    그 정황을 살필 때 매우 무겁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에는 보통의 절도죄만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저승의 법정에서 죄를 심판할 때도 간혹 착오가 있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저승법정에서는 범인의 죄상에 대해서 모두 일찍이 정밀히 조사해 두었고,
    또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그 심판은 지극히 공정합니다.
    따라서 착오된 일이란 절대로 없습니다.

    우리 범인은 하룻사이 또는 일생동안에 한 생각 일어났다가 한 생각 없어지는 것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또 선행을 한 것, 악행을 저지른 것을 바로 자기도 다 기억을 못합니다.
    그러나 저승 법정에서는 사람들의 공과 죄를 아주 미세한 것까지도 죄다 기록되었다면
    또 어찌 그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것이 이와 같음을 꺼리지 않을까요?
    사람의 사상이란 게 마치 한 생각 일어났다가 한 생각 사라지고
    갑자기 해놓고선 이내 잊어버리곤 하여 저 공중의 새 발자국 같고 물위에 뜬 거품 같아서
    저승에서도 역시 다 기재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한 마음을 오로지 쏟아서 그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떠나지 않으면
    비록 나타나지 않은 행위일지라도 또한 공과 죄가 있으면 기록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생각이 행위로 이뤄진다면 그 공과 죄는 더욱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크게 수행한 사람도 죽은 뒤에 역시 저승에 가서 재판을 받습니까?
    저승 법정에서 관리하는 것은 모두 업(業)안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용록(庸碌)한 사람도 평범한 사람들로서 큰 선행도 없고 큰 악행도 없는 사람들을 관리합니다.

    만약에 크게 수행한 사람은
    죽은 뒤에 곧바로 극락,천당(天界)에 올라가기 때문에 저승을 거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저승명부에 이름이 없기 때문에 저승에서 심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중 혹시 천당에 오르는 것이 조금 늦는 사람은 어쩌다가 저승을 거쳐가기도 하는
    데, 이런 사람이 저승에 오면, 저승판관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려서서 그를 맞이합니다.
    그러면 그 혼백은 걸을 때 마다 점점 높아져서 마치 구름사다리를 걷는 것 같습니다.
    그가 저승법정에 가까이 오면 그 높이가 법정지붕의 용마루와 나란히 섭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름점고가 끝나는 즉시 곧바로 천당에 오르기 때문에 잡아매어 둘 수가 없습니다.

    저승법정에서도 서양인을 잡아옵니까? 만약에 서양인이 오면 피차에 언어는 어떻게 회통합니까?
    만약에 양인이 없다면 양인이 죽은 뒤에는 어디에 가서 심판을 받습니까?
    내가 저승판관이 되었을 때가 마침 경자년(庚子,1900)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공격한 지
    55일만에 항복한 뒤이기 때문에 국내외의 군대와 민간인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승에도 다소의 서양사람들이 법정에 들어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승에서는 저절로 그들의 말이 통해(通解)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난리에 죽은 한 제독(提督)과 또 충성으로 나라를 보위하다가 의분이 복받쳐
    슬퍼하고 한탄하다가 몸을 버린 자가 심리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나는 친히 그들이 똑같이 곧바로 천계(天界)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한번도 그들의 심리를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중국의 저승 재판소가 이 한 곳만이 아니고,
    또 구미(歐美)의 각 나라도 또한 따로 저승 재판소가 있어서 각기 그 정황에 따라 처리합니다.

    저승에서는 어떻게 이승 사람을 써서 저승으로 데려갑니까?
    부유하고 고귀한 사람들은 그 저택에는 항상 많은 신들이 수호하고 있고,
    그 사람의 좌우에서 심부름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날쌔고 힘이 장사이어서
    양기(陽氣)가 왕성하기 때문에, 저승사자가 그 사람 병상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비유하면 장군이 병영 안에서 병들어 죽으면 그 4주동안은 경위가 삼엄하고 창과 대포가
    죽 늘어서 있으며, 영내의 병사들은 또 모두 소년들이어서 양기가 펄펄 끓고 있어서
    저승사자 귀신이 그 앞에 가까이 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산 사람의 혼을 써서 그를 끌어갑니다. 그래서야 심리할 안건이 도달합니다.

    칼로 목이 잘려 죽거나 기타 참혹하게 죽은 귀신들은 그 몸뚱이와 머리가 온전치 못한데,
    그 영혼들은 보통 병들어 죽은 귀신들과 구분이 있습니까?
    그 영혼만은 모두 온전하여 보통귀신과 다름이 없습니다.
    오직 그 얼굴 모습만이 조금 모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상처에 핏자국이 남아 있고, 용모가 참척하여 고통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귀신도 또한 소멸의 기한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내가 본 옛 귀신은 멀리는 송나라, 원나라 때까지에만 이르고,
    당나라 이상의 귀신은 절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선불(仙佛)이 된 분을 제외하고는 만고에 길이 생존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에 이르는 동안에 용모가 점점 변하여 가는데,
    귀신의 용모도 또한 나이에 따라 노쇠해집니까?
    귀신의 용모는 그 병들어 죽을 때까지는 똑 같습니다.
    해가 오래 지났다고 해서 노쇠해지지 않습니다.

    저승에도 낮과 밤이 있고, 해와 달, 별들이 있습니까?
    저승에도 역시 낮과 밤이 있어 이승과 똑 같습니다.
    그러나 오직 해와 달, 별들은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 정확한 모습은 마치 사천(四川)에 큰 안개가 낀 것 같고
    화북(華北)에 뿌연 황사 덮인 날씨와 같아서 이승의 밝은 세계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귀신들은 따스한 8시 이후부터 11시까지에 이르러서야 그칩니다.
    그리하여 귀신들은 양기가 터지기 시작하면 모두 어둡고 그늘진 곳으로 피하여 숨습니다.
    오후에 그늘이 점점 많아지면 외출합니다.

    저승에도 역시 춥고 덥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다만 여름에는 이승같은 무더위가 없고 겨울에도 이승같은 매서운 추위에 비해 덜 춥습니다.

    저승에도 역시 음식점이 있습니까?
    그리고 이승 사람이 만든 종이돈을 저승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까?
    예, 음식점이 있지요. 거기에는 나물 음식종류가 많습니다.
    이승 사람이 만든 지전(紙錢)을 저들도 또한 사용하여서 물건을 살수가 있습니다.

    저승에서도 매일 세끼 밥을 먹습니까?
    거기에서는 매일 한끼만 먹어도 여러 날 배부를 수 있어서 날마다 꼭 세끼를 먹지 않습니다.

    저승에서도 잠을 잡니까?
    예, 거기에도 역시 침상과 잠자리, 요, 이불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잠자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겨우 가다가 잠깐 벽에 기대든지, 눈을 감고 조금 쉬든지 하면 곧 수면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승사람들처럼 매양 잠잘 때 꼭 7~8시간씩 자는 것은 아닙니다.

    저승에도 시가지가 있고, 상점이 있습니까?
    예, 있지요. 그러나 규모가 매우 작아서 여기 인간 세상의 작은 점포와 다름이 없습니다.
    거기서 파는 것은 음식과 잡용품들이 많고, 다만 웅장하고 화려하고 넓고 큰 인간세계의
    큰 공사(公司)라든지 양행(洋行)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승에서 만든 음식을 귀신들도 먹습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그 기(氣)만을 흠향할 뿐이요, 진짜로 먹지는 않습니다.

    만약 여름철에 식품이 두 그릇이 있어서
    한 그릇은 귀신에게 제공을 했고, 다른 한 그릇은 제공하지 않았다면
    이 제공한 음식은 제공하지 않은 음식과 비교하여 반드시 먼저 부패합니다.
    그것은 귀신이 이미 그 음식의 기를 섭취하였기 때문입니다.

    저승의 음식을 이승의 것과 비교하여 어떤 게 더 좋습니까?
    아마 이승의 것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귀신도 그 분묘에 가서 살고 쉬고 하는 곳으로 삼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이 처음 죽을 때 영혼이 육체를 떠날 적에 역시 고통이 있습니까?
    사람이 죽을 때는 모두 질병이 있고,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는 마치 방문을 열고 외출하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곤란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아프고 괴로운 고통을 되돌아보면 도리어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가 처자식들을 불쌍히 여기고 또는 두고 온 재산에 미련을 두어 마음속에 간직하고
    숨이 떨어지지 못하면 영혼이 쉽게 육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때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만약이 사람이 타고난 성품이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고,
    처자식과 재산에 대해서 또한 미련과 끌리는 욕심이 없다면,
    영혼이 육체를 떠날 적에 곧바로 옷을 벗듯이 훌훌 떠나가는데,
    조금도 힘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스님들이 경을 외워 죽은 혼령을 천도하면 망인에게 결국 이익이 있습니까?
    스님이 경을 외우면 망인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특별히 일괄적으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비유하자면 그 사람이 생전에 큰 선행을 하였으면 죽은 뒤에 곧바로 극락,천계에 오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본래 경 읽은 공덕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생전에 크나큰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죽은 뒤에 즉시 지옥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 역시 쉽게 이 경 읽은 공덕을 받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보통 사람에게 이르러서는 생전에 큰 선행도 악행도 없는 사람은 경을 읽어서
    천도를 얻으면 어두운 지옥세계가 환하게 밝아져서 죄업이 경감되고 이익이 특별히 커집니다.
    그리고 경을 외우는 사람의 도의 행적이 높고 낮음에 따라서 또한 막대한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경을 외우는 사람이 도가 높은 고승이고 효자 현손과 관계가 있으면,
    그 경 한권을 외우는 것이 보통 중이 외우는 것보다 열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어떤 보통 평범한 스님이라도 경을 지극 정성으로 외우면 또한 상당한 이익이 있습니다.

    만약에 행이 없는 막행막작의 스님이고 또 마음이 전일치 못하여 건성건성 외운다면
    이익도 적을 뿐 아니라, 어떤 때는 터럭 끝만큼도 이익 되는 게 없습니다.
    더구나 망인의 과보에는 효과에 이르지 못합니다.

    또 송경의 가장 좋은 효과는 망인의 7일,49일 이내가 좋고,
    이 기간을 지나면 망인이 지은 업에 따라 이미 다른 데에 생을 바꿔 태어나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공덕이 돌아가서 죽은 자는 바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귀신과 사람의 수효가 어느 것이 더 많고 어느 편이 더 적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귀신을 무서워하는데, 귀신도 사람을 무서워합니까?
    귀신세계의 귀신의 수효는 인간세계의 사람들의 수효에 비해 그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오고 가고 가고 오고 울타리에 맞대고 담벼락에 붙어 있어 가는 곳마다 모두 다 귀신들입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도, 귀신들은 길 한 가운데보다는 도로 양편 곁으로 많이 걸어 다닙니다.
    사람들은 밝은 곳을 따라 다니는데, 귀신들은 어두컴컴한 곳을 따라 다닙니다.

    그런데 사람도 귀신을 무서워 하지만 귀신도 또한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그리하여 귀신도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또한 반드시 피하여 달아나 버립니다.
    정직한 사람과 군자는 귀신도 반드시 공경하지만 그 귀신들이 업신여기고 농락하는 자는
    모두 심성이 바르지 못하거나 시운이 쇠미해진 사람일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오후부터 해질 무렵 저녁 늦은 시간까지는 길을 걸어갈 때에
    절대로 길 양편 가장자리나 어두컴컴한 그림자 진 곳은 걷지를 말아야 합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 문밖에 나설 때에는 반드시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걷되
    가끔씩 기침소리를 내어서 그들로 하여금 피해 달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뜻밖에 나오면 귀신과 대질러서 그 충격으로 거꾸러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사람 몸도 역시 오싹 한기가 끼치고 겁내어 떨리게 되는데,
    이것은 음과 양이 서로 상충되어 피차가 모두 불편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걸어 다니는 것과 산사람이 걷는 것과 구분이 있습니까?
    귀신의 발 부위는 분명치 못하여 마치 안개 속을 걸어 다니는 것 같고
    걸음걸이가 매우 빨라서 사람의 느린 걸음과는 같지 않습니다.

    귀신이 닭울음소리를 무서워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햇빛이 밝아오면 영혼이 불안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햇빛을 피하여 달아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불이 달궈진 큰 기계의 용광로 열기를 무서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몸가짐이 품행있는 귀신은 역시 닭울음소리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선생의 전세에서부터 쌓은 그 근기가 이와 같고 또 보통사람보다 훨씬 뛰어나셨으니,
    아마 내세에도 역시 윤회생사(輪回生死)를 면제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윤회생사를 뛰어 넘는다는 게 어찌 그리 용이할 수 있습니까?
    즉 나의 내생에도 역시 면할 수 없습니다.
    일찍이 같은 종사자에게 부탁하여 이에 대하여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이르기를,
    나의 내세에는 응당 반드시 하남과 남양일대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단 수십년 이내에 세상의 물정과 세태인사(世態人事)가 변천하여
    아마 저승의 기록도 고쳐질 수도 있을겁니다.

    저승의 관리들도 역시 인간세상을 바꿔 생을 받아 태어납니까?
    그렇습니다. 비유하자면 현재 공무원으로 있는 사람은 특히 높이 취직하는 것이
    무직자인 보통사람에 비해 쉬운 것과 같습니다.

    귀신이 인태(人胎)에 들어가는 것은 수태(受胎)시에 즉시 들어 갑니까?
    아니면 출산시에 들어갑니까?
    두 가지 다 있습니다.

    여러 귀신들이 우글우글 왕성한 것은 오랜동안 저승에 떨어져 있어서
    어찌하여 일찍이 빠져 나오지 않는 것입니까?
    사람은 적고 귀신은 많기 때문에 그에 배당하여 분배할 수 없어서입니다.
    그리고 또 태어나는 집도 그 귀신과 원래 인연이 있어야지 바야흐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생전에 교제가 넓어서 서로 아는 사이가 많다 보면
    바로 그 사람 집에서 투태 되기가 자연 쉬워집니다.

    만약에 빈궁한 사람이 늙어 죽을 때까지 동구 밖까지도 나가보지 못해서
    평소 사람들과의 교제가 극히 적으면 그 사람은 죽은 뒤에 귀신무리에 젖어들어
    생을 받는 어떤 기회의 인연으로 나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오랫동안 기다려야 됩니다.
    그리하여 인연이 있는 자를 만나면 이에 곧 생을 받아 투태하게 됩니다.

    불교를 배운 사람은 죽은 뒤에 극락세계에 태어나고 도교를 배운 사람은 통천복지에 태어나지만
    유교를 배운 사람들은 죽은 뒤에 어디에 가서 태어납니까?
    역시 하늘나라 천계(天界)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선생은 그 뒤에 어찌하여 저승판관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원하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고,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휴직하기를 빌었지만 번번이 모두 허락을 받지 못했었는데
    그 뒤에 동사자들이 금강경(金剛經)을 많이 외우도록 가르쳐 주어서 그 법대로 시행했더니
    그 공덕이 쌓여 2천번 이상이 찼기 때문에 드디어 다시는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선생은 평소에도 늘 귀신을 볼 수 있습니까?
    내가 저승판관으로 있을 때에는 귀신을 호출했을 때나 안했을 때를 막론하고 늘 귀신을
    볼 수 있었지만 중화민국(中華民國)초 이후부터는 귀신을 보는 것이 점점 적어지더니,
    중화민국 10년 이후에는 완전히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맨 처음 저승판관으로 들어오라는 것을 어떻게 통지 받았습니까?
    어느 날 밤에 꿈속에서 옛 의관을 단정히 갖춘 한 사람이 찾아와서
    내 방으로 들어서서 이르기를 "중대한 일이 있어서 정성스레 받들어 모시려하니
    수고스럽겠지만 바쁜 일을 도와주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합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가 어떤 일을 위임하려는 지는 모르나, 다만 내 힘이 모자랄까 두렵다"고 하였더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선생께서 제발 윤허만 해준다면 할 수없는 것은 아닙니다." 라고 하기에,
    나는 그가 본 뜻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오직 그의 예의바른 용모가 단정하고 공경하며,
    그 태도가 지극정성 간절하여 정의상 차마 물리칠 수가 없어 마침내 묵묵히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면서 서로 약속한 수일 뒤에 곧 모시러 오겠노라고
    다짐하고 드디어 이별하였습니다. 깨고 보니 꿈이었습니다.

    내 자신 속으로 한낮 꿈이라 여기고 특별히 마음에 두지 않았었는데 드디어 4~5일이 지난뒤에,
    꿈속의 그 사람이 또 와서는 내게 일러 말하기를 "지난번의 승낙해주신 은혜를 받잡고
    특별히 가마를 준비하여 정성스레 받들어 모시려고 왔습니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내가 보니까 말 한 필의 수레가 문밖에 메어 있어서 드디어 함께 수레에 올랐더니,
    얼마 안가서 어떤 관아(官衙)에 이르렀습니다.

    수레에서 내려서 그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 사람이 나를 인도하여 한 행랑방에 이르러 자리에 앉은지 조금 후에 바로
    대청마루에 올라 안건을 심리하도록 청하였는데, 한 범죄인을 끌어다가 놓고
    좌우배심원들이 원안을 진술하여 주면서 나에게 판결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본래 이의 설정을 모르는데 어찌 감히 망령되이 판결할 수 있단 말인가?"하고 거절을 하니,
    좌우 배심원이 이르기를, "그대가 성심으로 미루어 헤아려 보면 그 의사가 어떠한지를
    곧 법에 비추어 징벌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기에 내가 잠깐 자세히 생각해보고 이르기를
    "이러 이러한 것이냐"고 했더니, 좌우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곧 나에게 판결문에 서명하도록 하고 죄범을 끌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마차로 나를 돌려 보내주었습니다.

    선생의 부모님도 이 실정을 아셨습니까?
    내가 저승판관이 된 최초에는 그 비밀을 잘 보전하려고 감히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었는데,
    그 뒤에 부모님이 내가 빈방에 혼자 있으면서도 간간이 사람과 말하는 소리를 들으시고는
    차차 그 실정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대개 내가 저승판관이 된 뒤부터는
    항상 저승친구들의 왕래가 있었는데 오직 나만이 볼 수 있고 나만이 들을 수 있었지,
    다른 사람은 모두 듣지도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오직 나의 말만을 들었었지요.

    저승친구들이 올 때에는 역시 음식을 많이 장만하고 초대합니까?
    아닙니다. 다만 맑은 차 한 잔이면 이미 그 정을 다하는 데 족합니다.

    저승에서도 역시 해마다 그 명절과 휴가가 있습니까?
    예. 이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음력 설날과 청명, 한식, 단오, 추석, 동짓날 등을 만나면 역시 반드시 며칠을 쉽니다.
    그러나 단 아직 일, 월, 화, 수, 목, 금, 토 등의 주일은 없었습니다.

    귀신은 어떻게 그 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까?
    모든 귀신들은 모두 마음대로 변환(變幻)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저승 법정의 허가를 얻어야 됩니다.

    선생은 일찍이 무슨 무슨 중요한 안건을 심판하였습니까?
    일체의 모든 안건이 모두 다 매우 평범한 안건으로서
    절대로 인정과 사리의 밖의 것은 없었습니다.
    또 그 죄상도 환히 밝아서 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에,
    복잡 다단하여 밝히기 어려운 정황은 없었습니다.

    일찍이 각처를 유람한 경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소의 머리를 하고 말 얼굴을 한 귀신이 정말 있습니까?
    모두 가면의 도구를 쓰고 흉폭한 혼령들을 공포케 하려고 한 것입니다.
    만약 어질고 착한 혼령들에게는 이런 흉칙한 모습은 절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새, 짐승의 혼령은 역시 새, 짐승의 형상을 하였습니까?
    이것은 따로 한 부에서 맡아서 관할한 바로써 나에게는 관계치 않았기 때문에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승에서도 염불하면서 수행하는 자가 있습니까?
    염불을 하고 송경(誦經)을 한 사람은 이미 이런 공덕이 있는데, 저승의 모든 귀신들이 어찌
    빨리 염불 송경을 하여 지옥에서 벗어나서 극락,천당으로 오르기를 구하지 않습니까?
    만약에 염불을 할 줄을 모른다면 어찌 다른 사람의 염불하는 것을 따라서 본받지 않는지요?
    한 번 저승에 도착하면
    바로 그의 업력(業力)에 가로 막혀서 자연 그 염불하고 송경할 줄을 모릅니다.
    즉 우리가 염불하고 송경을 하면 저들도 보고들은 바가 없기 때문에
    수행은 마땅히 이 한 입기운이 끊어지기 전에 해야지 한번 숨이 끊어지면 힘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귀신은 이미 형체가 없는 것(無形)을 볼수가 있고 소리가 없는 것을 들을 수가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우리들의 염불 수행하는 것은 도리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것입니까?
    자기의 업력에 가리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험삼아 비교하여 봅시다.
    세간의 어떤 사람이 본래 신앙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굶주리고 추위에 핍박되어서
    우리들의 염불수행에 대하면 역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곧 그로 하여금 우연히 보고 듣게 하면
    그러나 그 사람의 욕심에 끌리고 얽매여서 그 신심(信心)이 일어나지 않고,
    또 신심이 견고하지 않아서 마침내 수행하지도 않고 염불하지도 않습니다.
    저 귀신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귀신의 말소리와 우리 인간의 말소리와 어떻게 다릅니까?
    귀신의 말소리는 날카롭고 짧고도 급합니다.

    이 세상을 귀신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과 귀신이 함께 섞이어 사는 게 되고,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승과 저승이 둘로 동떨어진 것인게 결국 그 경계는 어떻게 구분합니까?
    그 나눠진 경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분계가 없는 것 같기도 하여
    이런 정황은 참으로 뚜렷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산 사람의 혼과 죽은 사람의 귀신이 그 형상과 그 얼굴빛이 차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는 그 때 거기에 대해서는 마음에 두지 않았었는데, 당연히 조금은 분별이 있지요?

    귀신도 역시 어떤 감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 그들도 역시 감각이 있어 심히 괴로워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몹시 슬픈 것이 많습니다.

    귀신이 사람의 태에 들어갈 때(入胎)에 저승에서는 무슨 교훈(敎訓)이 없습니까?
    가령 그들로 하여금 악을 돌이켜 선으로 향하라는 말 따위 말입니다.
    없습니다. 오직 새나 짐승의 태에 던져질 때에는 귀신으로 하여금 그 정황을 모르게 하고,
    또 남자 여자를 바꿔 만들 때에는 반드시 어떤 누각에서 좋은 경치를 구경케 한다든지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속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갖게 합니다.

    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해와 달이 밝게 비치고 있는데,
    어찌 저 저승(幽界)에는 비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어떤 물건이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만일 이승과 저승이 다른 지역이라면 어떻게 사람과 귀신이 함께 길을 갈 수가 있습니까?
    항상 구름과 안개가 막아 가리웠기 때문에, 저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을 보지 못합니다.
    다만 귀신들은 밝은 데서 어둡고 그늘진 곳으로만 갈 수 있고 더욱이
    그 밤사이에 활동하기 때문에 사람과 귀신이 동행할 수 있습니다.

    저승에서는 어떤 책력을 씁니까? 음력입니까? 양력입니까?
    그리고 모든 공문서에 역시 년, 월, 일을 씁니까?
    예, 만청(滿淸)시대에는 만청시대의 책력을 썼고,
    공문서에서 쓰는 년, 월, 일도 이승과 똑 같습니다.

    저승에도 또한 비,바람,눈,서리가 있습니까?
    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이승의 비, 바람, 눈 서리를 만날 때 저승의 모든 귀신들이 역시
    그 추위에 덜덜 떨면서 괴로워하고 또 잔뜩 웅크리고 오그라들어 편치 못한 상태를 보입니다.

    귀신들도 또한 서로 응수(應酬)하고,애경사에 경축하고 조문하는 예절이 있습니까?
    예, 이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향촉(香燭)은 어디에 쓰입니까?
    촛불은 그 광명(光明)을 취하고, 향은 그들을 불러오게 하는 데 쓰입니다.

    폭죽은 어디에 쓰입니까?
    귀신들은 폭죽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므로 적의하게 쓰일 데가 없는것 같습니다.

    그 염불송경이 그렇게 큰 공덕이 있다면, 유가의 경서를 읽는 것도 또한 공덕이 있습니까?
    예, 공덕이 있습니다.

    불교의 호법신(護法神)은 위다요,도교의 호법신은 왕영관(靈官)인데
    유교도 또한 호법신이 있습니까?
    모릅니다. 유교는 신도(神道)로써 설교하지 않기 때문에 호법신의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경전, 서적은 귀신의 가호를 받는 것은 역시 의심할 의의가 없습니다.

    저승의 봉급은 어디에서 마련하여 옵니까?
    이것 역시 금전, 양곡, 세금의 항목으로 거두어들인 것입니까?
    일찍이 이것에 대해서 그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들은 나에게 묻지 말라고 부탁합디다.
    그래서 잘 모릅니다.

    사람의 머리 위의 빛깔은 무슨 색으로써 선과 악을 삼습니까?
    붉고, 희고, 누런 색을 좋게 여기고, 검은 색을 나쁘게 여깁니다.

    귀신이 사람으로 변하고, 사람이 귀신으로 태어난다면
    결국 이 세간에는 사람이 먼저입니까, 귀신이 먼저입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마땅히 두 방면으로 나누어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먼 상고시절 이전에 혼돈이 처음 열리고 순박(醇朴)한 기운이 흩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먼저 인간이 있은 뒤로부터 뒤에 귀신이 있었고, 그 후세에는 귀신이 먼저 있은 뒤로부터
    사람이 있게 되었습니다.

    귀신들도 역시 생각이 있어서 이승의 아내와 여자아이들을 그리워합니까?
    예, 귀신들도 역시 매우 그리워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일이 오래가면 자연 담백해집니다.

    염불인은 저승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평소 나무아미타불 염불신행자는 저승문서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극락정토의 보배 연꽃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며
    염불인이 임종시에는 아미타부처님과 괸세음보살 대세지보살등
    여러 불,보살님이 마중오시어 환희심과 광명중에
    삼계와 생사윤회(천상은 복이 다하면 타락하여 다시 생사윤회에 빠짐)를
    영원히 초월한 극락정토로 인도하십니다

    출처 : 염불로 가는 극락세계
    글쓴이 : 佳山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