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을도 한결 무르익어 무겁게 느껴진다.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은 새벽의 강바람은 제법 차다..
가로등 불빛에 하늘 거리는 코스모스는 가을의 향수를 불러오고 이슬을 머금은 풀밭에선 풀벌레
울음 소리가 애잔하다..하얀 갈대꽃밭에 숨어우는 바람 소리가 마음을 슬프게 한다..
어둠이 서린 무심천 강물은 검은빛으로 유유히 세월따라서 그렇게 무심히 흘러간다.
그 먼 옛날 중국의 노학자 열자 께서는 우리네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 사람들은 모두 삶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삶 가운데 고통이 있어야 한다는것을 알지 못하며
늙어서 힘들게 된다는것은 알지만 늙으면 편안함이 온다는것을 알지 못하며
죽음에 대한 무서움만 알지 죽음이 휴식을 준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그 멀고 먼 옛날의 우리 선조님들의 삶도 어쩌면 오늘의 우리네 삶과 같았나보다.
하늘을 찌르는 권세를 가진 자나 수조원을 가진 재벌이나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미인이나
한끼의 끼니를 걱정하는 극빈자나 힘없는 소 시민이나 모두 죽음앞에서는 공평하다..
어쩌면 이것이 조물주가 인간에게 내려준 제일 공평한 혜택 인지도 모르겠다..
돈으로 생의 시간을 살수가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 하겠는가..
"사람은 나이가 들고 그리고 이 세상을 떠 납니다..운명 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 운명의 무게를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느끼면 무게에 짖눌려서 삶이 신음하고
도무지 느끼지 못하면 삶이 한 순간에 흩어져 뒤늦게 후회하게 됩니다.
운명에 속지도 운명을 속이지도 않기 위해서 제대로 나이먹고 근사하게 나이가 들려면
겸허한 자세로 공부하고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생이란 한조각 구름의 일어 남이요..(生也一片 浮雲起)
사란 한조각 뜬 구름의 스러짐 이라.(死也一片浮雲滅)
사람은 죽으면 지수화풍 (地 水 火 風) 으로 사라 진다고 한다..
살은 흙으로 돌아가고 피는 물로 돌아가고 심장은 불로 그리고 영혼은 바람으로 사라진다.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것. 나고 죽는것 또한 그러 할진데..
한 물건 있어 또렸하니 그건 고요해서 생사에 따르지 않네..
그한 물건은 육신의 사멸에도 상관없는 진아 (眞 我) 라는것..
생명의 근원적인 입장 에서는 생도 없고 사도 없다..
죽고 싶을만큼 절망해 본적이 없는 사람은 모른다.얼마나 작은 일에도 행복해 질수 있는지..
가난하고 외롭고 병들어 보면 오히려 더 행복을 느끼게 된다.
아주 작은 일에도 행복해 지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아프게 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플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연없는 불행이 있을까? 억울하지 않았던 슬픔이 있을까?
깨달 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민은 이해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곧 관심이다
지난주 일요일에 고향 산소에 아들 둘과 벌초를 다녀 왔다.
벌초를 하고 와서도 마음이 무겁고 개운 하지가 않다.
멀리 떨어져 있는 형님의 사위인 조카 사위에게 20여일전 미리 연락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않아 전화를 했드니 끝까지 받지를 않는다.
작년에도 큰 아들이 미리 벌초일자를 전화로 연락을 했는데 오지않아
연락을 했드니 깜빡 잊었다면서 바쁜일이 있어 못간다고 해서 금년에는 내가
직접 전화를 해서 꼭 오겠다고 하는 약속을 받았는데 전화조차 받지 않다니....
형님은 자식이 없어 딸을 입양하였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밖에서 낳아온 딸로
알고 있었는데 돌아 가시기 직전에서야 미혼모 에게서 입양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딸이 결혼해서 딸 아이 하나를 출산하고 아이가 고등학교 다닐때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위 사랑은 끔찍 하였고 모든걸 의지 하였다.
90세가 넘어서도 삶에대한 애착이 강해서 대장암 수술을 받고 2년이 지난후
94세에 암이 재발하여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로 15일을 버티다가 별세를 했다.
살아 생전에 다른 사람들의 유산 싸움에 빈정대고 비웃으면서 나는 저렇게 무책임하게
하지않고 유산은 깨끗하게 정리를 한다고 하고선 유언 한마디 남기지 않았다.
형수께서 마지막으로 할말 있으면 하라고 해도 묵묵 부답 이었다.
평소에 고향 친구 아들이 산소에가서 자기 아버지 산소만 성묘를 하고
바로 위에 떨어져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는 가지 않았다고 비웃으면서
매년 벌초하라고 주던 벌초비를 죽기 2년전부터 아까웠는지 주지를 않고
우리 묘는 벌초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드니 옛말 틀린것이 하나도 없는것 같다.
형님이 돌아 가시고 3년후에 형수도 집에서 넘어져 뇌진탕으로 응급실에서
혼수상태로 있다가 유언 한마디 못하고 3일만에 별세했다.
평소에도 돈에대한 집착과 욕심은 정말로 끔찍할 정도였다.
돈에대한 기미라도 보이면 아침부터 부부간에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공무원으로 재직 하면서 논도 3필지있고 시장에 가게도 2개있어 월세도 뱓느데
돈쓸일은 딸하나 전문대 겨우 졸업 시켜 놓고선 돈의 노예로 살아왔다.
시집에 조금이라도 해 주려고 하면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였다.
그래도 형님이 형제들에게 조금 주려고 약속을 하였다가 번번히 번복을 하여
결국 형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말꾼이 되었고 말 빚을 많이 지고갔다.
결국 모든 유산은 딸도없는 사위에게 몽땅 돌아갔다.
100세까지 살겠다고 몽땅 움켜쥐고 있다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사위는
횡재를 하고 벌초비가 아까워서 그래도 한때는 처삼촌과의 약속도 져버렸다.
돈에는 부자지간도 없다드니 그 말이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는다.
쑥대와 억새풀로 무성하게 뒤덮힌 초라한 두 무덤을 바라보니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지금 이 두 무덤에서 남은것은 무엇이 있는가?
추모와 그리움보다 미움과 원망이 앞서는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미운 마음이 앞서서 평소에 말한대로 벌초를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도 아들들은 마음이 착해서 어떻게 그냥 둘수가 있느냐고 하면서
둘이서 묵묵히 벌초를 하니 마음이 착찹하였다.
둘째는 수도권에서 먼 경상도까지 해마다 와주니 너무도 고맙다.
젊은시절 잘못으로 자식들에게 마음의 상처도 많이주고 노후대책도
미흡하지만 앞으로 벌초비용은 내가 부담을 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내가 좀더 경제활동을하고 기금을 만들겠다고 약속을 했다.
지나고보니 인생이 너무도 짧은 나무의 그림자 같은데 너무도
돈에 메달려 가치없이 보낸것이 아닌가 후회가 된다.
돈도 중요하고 필요 불가결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삶의 가치
인간으로서의 기본 양심과 도리가 우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후회없는 삶을 살아 가려면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수를 넓혀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건강한 마음이
함께할때 우리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처 : 숲속의 궁전(幸福安住)
메모 : 인생사 뜬구름같은것을 현실에집착하다보니 너나할것없이 지나고보니 다른길만 정신없이 달려왔군요. 이제 문앞에서서.되돌아보니. 또 한세상 헛솥장사가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