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불 맹사성 묘소, 그리고 검은 소 무덤...

 

맹고불...

지난 여름 여름 휴가 길에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맹씨행단을 찾은 데 이어

초겨울, 그의 유택을 찾은 것을 보면 올해는 그와의 인연이 깊은가 보다.

(맹씨행단에 대해서는 내 블로그 분류 <역사기행-사진>의 2008년 10월 8일의 글에

상세히 소개해 놓았으니 참조하시면 될 것 같다.)

 

 

고불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직동에 있다.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설명이 없이 가기가 조금은 까다롭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그곳까지 가는 길을 상세하게 설명드린다.

광주시 태전동에서 시내를 끼고 계속 상류로 차를 몰고 올라오면 직동에 이른다.

광주시내에서 직동으로 오는 버스의 종점엔 조그만 정자가 있다.

옆에는 직리쉼터라는 표지석이 있고... 

 

그리고 맞은 편에 그럴 듯하게 지어진 한옥이 있는데 의령남씨의 사당이다..

 

고불묘소에 가기 위해서는 아래 사진의 하얀 싼타페가 있는 쪽으로 계속 올라가야 한다.

 

 

차가 갈 수 있는 길은 여기 까지이다. 

팻말에 0.3km이라고 적어 놓은 것이 실제로는 500미터 쯤 되는 것 같다.

 

아래 철망문 옆으로 빠져 올라가면... 

 

찔레의 열매도 만나고...

 

폐농가를 지나면...

 

삼거리에 이른다.

삼거리에서는 오른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개망초 꽃은 겨울이 되면 이런 모양이 되나보다.

 

쇠사슬로 차량들의 통행을 막은 이 곳을 지나 올라가면...

 

멀리 하얀 안내판이 보인다.

으레 고불의 묘소 안내판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엉뚱한 안내판이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그러나,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용되는 기우취적(騎牛吹笛 :소를 타고 피리를 불다)이 현실로 나타나는 안내판이다.

 

좀작살 나무의 열매...

 

안내판에서 오른 쪽으로 보이는 이 길의 위가 바로 고불의 묘소이다.

 

 

려말선초의 무덤의 특징인 사각의 기단석위에 올려진 봉분...

최영장군의 무덤의 형식은 그의 손녀사위인 고불 맹사성의 무덤까지는 이어져 온다.

 

 

 

 

 

 

 

 

 

세종대왕 때의 좌의정...

 

 

씁스레하게 만드는 안내판...

 

묘소 뒤에 있는 돌인데 최근에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누가 무슨 용도로 만든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불순한 시도는 아니었으면 한다.

 

그리고 흑기총 안내팻말에서 보이는 10 미터는  30미터는 족히 될 것 같다.

 

미물도 주인의 죽음이 섧어서 스스로 죽는 길을 택했다는데...

흑기-검은소를 말하는 것이니 아마 전통한우의 하나인 칡소를 말함이렷다...

 

펑퍼짐한 봉분, 비석이 이곳이 소의 무덤인 것을 알려준다.

 

참고로 지난 여름의 맹씨행단 사진을 서너 점 올린다.

 

맹씨고택...

 

은행나무...

 

 

 

사당, 세덕사...

 

출처 : 보헤미안의 유토피아
글쓴이 : 月 明 居 士 원글보기
메모 :
-나훈아 옛노래 디스코 연속듣기-

01) 불효자는 웁니다            
02) 울고 넘는 박달재            
03) 눈물 젖은 두만강            
04) 목포의 눈물            
05) 애수의 소야곡            
06) 홍도야 울지마라            
07) 하룻밤 풋사랑            

08) 번지없는 주막            
09) 머나먼 고향            
10) 나그네 설움            
11) 연안부두            
12) 구름 나그네            
13) 돌아가는 삼각지            
14) 갈대의 순정            

15) 안개낀 장충단 공원            
16) 사랑은 눈물의 씨앗            
17) 너무합니다            
18) 강촌에 살고 싶네            
19) 님 그리워            
20) 돌아와요 부산항에            
21) 사랑만은 않겠어요
출처 : 보헤미안의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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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이 글은 요가난다 자서전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요가난다님의 스승께서 마하사마디(대열반, 죽음)에 들고 난 후 예수님이나, 붓다, 달마대사처럼 다시 부활하여 영계의 실상을 인류에게 전파하는 내용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대우주는 물질우주, 영계, 근원계(또는 인과율계)라는 3개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불경에서는 욕계, 색계, 무색계라고 했습니다. 또한 소우주인 우리의 신체도 동일하게 육체, 영체, 근원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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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6월 19일, 오후 세 시경 봄베이 호텔의 내 방 침대 위에 앉아 있던 나는 갑자기 아름다운 빛에 의하여 명상 상태로부터 깨어나게 되었다. 놀란 내 눈앞에서 그 방 전체가 이상한 세계로 변하더니 햇빛도 천상의 광휘로 바뀌었다. 스리 유크테스와르의 피와 살을 대하게 된 나는 환희의 파도 속으로 잠겨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아들아!"
천사 같은 미소를 얼굴에 간직한 채, 스승께서는 부드럽게 나를 부르셨다.
생전 처음으로, 그의 발 밑에 엎드려 인사하는 것도 잊은 채 나는 그대로 스승을 끌어안았다. 순간의 순간! 지금 이처럼 무한히 쏟아지는 축복에 비하면 지난 몇 달간의 고뇌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구루지, 어찌하여 저를 떠나셨습니까?"
나는 너무도 커다란 기쁨에 몸조차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왜 저를 쿰브하 멜라에 가도록 그냥 내버려두셨습니까? 스승님 곁을 떠났던 데 대한 자책감이 너무도 쓰라립니다."
"순례지를 보려던 너의 행복한 기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내가 바바지 님을 만났던 장소가 아니었더냐. 나는 다만 잠시 동안 너를 떠난 데 불과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스승님, 지금도 바로 그 잔인한 백사장아래 제가 매장했던 그 육신을 갖고 계신 겁니까?"

"그렇다, 나의 아들아. 나는 그것과 같다. 이것은 피와 살이 있는 육신이다. 나는 그것을 에테르로 보지만 너의 눈에는 분명히 물질로 보일 것이다. 나는 네가 미망의 세계에서 푸리에 있는 미망의 백사장에 묻어둔 우주적 미망의 육신과 똑같은 것을 우주의 원자들로부터 창조해 낸 것이다. 나는 진실로 부활한 것이다. 지상이 아닌 영계에서 말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지상의 인류보다 훨씬 더 나의 이념과 이상을 훌륭하게 만족시켜줄 수 있다. 너와, 네가 사랑하는 높은 영혼들도 언젠가 거기서 나와 만나게 될 것이다."

"죽음을 넘어선 구루이시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스승께서는 잠시 유쾌한 미소를 지으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를 붙잡고 있는 그 팔을 좀 늦춰 줄 수 없겠느냐?"

나는 그때까지도 문어발처럼 스승을 꽉 껴안고 있었다. 과거에 스승의 육체가 가졌던 특징과 꼭 같은 가냘프고 향긋한 내음을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축복받은 시간을 회상할 때마다 내 팔과 손바닥의 주위에는, 그의 신성한 살을 만졌을 당시의 떨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선지자들이 인간을 도와서 업을 소진시켜 주도록 이 땅에 보내졌듯이, 나 역시 구원자로서 영계에서 일하도록 신에 의하여 지시를 받은 것이다." 스리 유크테스와르는 계속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히라냘로카Hiranyaioka, 즉 '깨달은 영계'라고 불린다. 나는 그 곳에서 진보된 존재들을 도와서 그들의 영적인 업이 소멸되고 따라서 영계의 윤회로부터 벗어나 해방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준다. 히라냘로카에 거주하고 있는 자들은 영적으로 볼 때 고도의 진보를 이룩하고 있다. 그들 모두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탄생 기간 동안 의식적으로 물리적 육체를 죽음에 내 맡길 수 있는 힘을 명상을 통하여 얻고 있다. 그 누구도 이 지상에서 사비칼파 사마디의 단계를 넘어서 니르비칼파 사마디(=궁극적인 삼매=멸진정)에 든 상태에서 죽지 않는다면 히라냘로카에 들어갈 수 없다.

히라냘로카에 거주하는 자들은 이미 일반적인 영계의 차원을 통과한 다음인데, 그 차원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존재들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지나온 영계에서 스스로 행한 온갖 행위들과 관련된 수많은 업의 씨들을 없애 버리게 된다. 진보된 수행자들만이 영계에서 그와 같은 상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서 이 지원자들은 영계에서의 모든 업의 자취들로부터 자신들의 영혼을 완전히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영계의 태양 혹은 천상이라 할 히라냘로카에 새로운 영적인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나는 그곳에서 그들을 돕기 위해 있다. 히라냘로카에는 또한 보다 높은 근원적 세계로부터 오는 거의 완전한 존재들도 있다."

이제 나의 마음은 구루의 마음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그림 같은 이런 설명도 일부는 말로, 일부는 생각의 전이로 전달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생각이 든 알약들을 즉석에서 받아먹을 수 있었다. 스승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너도 경전에서 읽었을 것이다. 신께서 인간의 영혼을 계속해서 세 종류의 몸, 사념상의 인과율적 신체causal body, 인간의 정신적, 감정적 본성이 자리한 민감한 영적인 신체astral body, 거친 물리적 신체physical body 속에 집어넣는다는 것을 말이다. 지구상의 인간은 육체적 감각을 갖추고 있으며 영적인 인간은 의식과 감정 그리고 생명자(生命子)로 이루어진 신체를 사용한다. 인과율적 인체를 가진 존재들은 기쁨 넘치는 사념의 세계에 남아있게 된다. 내가 하는 역할은 인과율적 세계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는 영계의 존재들에 관련된 것이다."

"존경하는 스승님, 영계에 대해 좀더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스리 유크테스와르의 부탁에 따라 팔을 약간 늦추기는 했지만 아직도 팔로 그를 감싸고 있었다. 보배중의 보배인 나의 구루가 죽음을 비웃으시며 내게 접근하신 것이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곳에는 영적인 존재들로 충만한 영계가 여럿 있다. 그곳의 주민들은 빛의 덩어리인 영계의 비행선을 타고 이쪽 영계에서 저쪽 영계로 전기나 방사선에너지보다도 빠르게 여행을 다닌다. 여러 가지 미묘한 빛과 색으로 이루어진 영계의 우주는 물리적 우주보다 수백 배나 크다. 모든 물리적 창조물을 합해도 그것은 영계라는 빛나는 커다란 풍선 밑에 매달린 딱딱한 작은 바구니와 같다. 물리적 세계의 많은 태양들과 별들이 우주공간을 이리저리 움직이듯이 영계에도 역시 무수한 태양과 별들의 체계가 있다. 그곳의 항성들은 물리적 세계의 해와 달보다 훨씬 아름다운 해와 달을 가지고 있다. 영계의 해와 달들은 북극광과 비슷한데 영계의 햇빛은 부드러운 달빛에 비하면 더 눈부시다. 또 영계의 낮과 밤은 지구에서보다 더 길다.

영계는 무한히 아름답고 깨끗하고 순결하며 정돈된 곳이지. 그곳에는 죽은 별이나 황폐한 땅도 없으며, 지구상의 오점들인 잡초나 박테리아나 해충이나 뱀들도 없다. 영계는 지구의 변덕스러운 기후나 계절과 달리 영원한 봄으로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때로 하얗게 빛나는 눈이 오거나 여러 가지 빛깔의 비가 내리기도 한다. 또 영계에는 오팔색 호수와 빛나는 바다, 무지개빛 강들이 많다.

보다 미묘한 영계의 천상인 히라냘로카를 제외한 일반적인 영계에는 비교적 지구에서 온 수백만의 영계인들이 살고 있으며, 또한 수천의 요정, 인어, 물고기, 동물, 요마, 귀신, 영령들도 각각 업보에 따른 자격에 맞춰 서로 다른 영계에 살고 있다. 여러 가지 둥근 집이나 진동하는 지역이 선과 영과 악령들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다. 선한 영들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지만 악한 영들은 제한된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은 땅위에서 살며 벌레는 땅속에서, 물고기는 물 속에서, 새는 하늘에서 산다. 이렇게 여러 등급의 영계존재들이 적당한 진동지역에 배당되는 것이다.

다른 세계로부터 추방된 타락한 검은 천사들 간에는 생명자 폭탄이나 정신적인 만트라 진동광선을 이용한 전쟁이 일어난다. 이들은 자신들이 악업을 갚으면서 더 낮은 영계의 어둠침침한 지역에서 살고 있다.

영계의 어두운 감옥 위에 넓은 지역들은 모두 밝고 아름답다. 영계는 지구보다, 신의 의지와 완성의 계획에 더 자연스럽게 조화된다. 영계의 모든 대상은 우선적으로 신의 의지에 따라 현현(顯現)되고, 다음에 부분적으로 영계인들이 요구하는 의지에 따른다. 그들은 주님이 이미 창조한 어떤 형태나 아름다움을 고쳐서 더 고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분은 영계에 있는 자녀들에게 의지대로 영계를 변화시키고 개선시킬 수 있는 자유와 특권을 주었다. 지구에서는 고체가 자연적인 혹은 화학적인 절차들을 통해서만 액체나 다른 형태로 변화하지만 영계의 고체는 단지 주민들의 의지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액체, 기체 혹은 에너지 등으로 바뀌는 것이다.

지구는 바다에서, 육지에서, 또 하늘에서 전쟁과 살인으로 검게 얼룩져 있지만, 영계는 행복한 조화와 평등을 지니고 있다. 영계의 존재들은 자신의 형태를 마음대로 나타나게 할 수도있고 또 없어지게 할 수도 있다. 꽃들과 물고기들, 짐승들이 잠시 영계의 인간의 모습으로 몸을 변형시킬 수도 있다. 영계의 모든 존재들은 어떤 형태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쉽게 사귈 수 있다. 이렇듯이 절대적이 아니며 유동적인 자연법칙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으므로, 예를 들어 영계의 어떤 나무는 요구에 따라 영계의 망고나 원하는 다른 과일 또는 꽃, 혹은 완전히 다른 물건이라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업보에 따른 제약이 있긴 하지만, 영계에서 여러 형태를 바랄 수 있다는 점에는 구별이 없다. 모든 것이 신의 창조의 빛으로 진동한다.

아무도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또한 영계인들은 우주의지의 도움으로 영적으로 응축된 특별한 형태의 자손들을 구현해낸다. 최근에 육체를 떠난 존재들은 비슷한 정신적, 영적 경향에 이끌린 영계의 한 가족에게로 초대된다.

영계의 신체는 추위나 더위, 혹은 다른 자연조건에 지배되지 않는다. 신체조직은 영적인 뇌, 즉 수천 개의 꽃잎을 가진 빛의 연꽃과 슈숨나에 있는 여섯 개의 각성 중심들, 즉 영적인 뇌척수 축으로 구성된다. 심장은 영적인 뇌로부터 우주에너지와 빛을 받아서, 영적인 신경과 신체세포 혹은 생명자로 펌프질해 보낸다. 영계인들은 생명자의 힘이나 선성한 만트라 진동에 의해서 그들의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영적인 신체는 예전의 물리적 신체와 똑같다. 영계인의 얼굴과 몸매는 지상에 체류했을 때의 젊은 시절 모습과 같다. 때로 어떤 사람은 나같이 노년의 모습을 지니겠다고 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며 바로 젊음의 정수를 나타내고 있는 스승은 즐겁게 껄껄 웃으셨다.
"오직 오감(五感)에 의해서만 지각하는, 공간적이고 3차원적인 물질세계와 달리 영계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육감, 즉 직관으로 볼 수 있는 세계이다. 모든 영계인들은 순전히 직관적인 감각으로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진다. 그들은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의 둘은 부분적으로 감겨져있다. 가장 중요한 영적 눈인 제3의 눈은 이마 위에 수직으로 놓여있고 열려있다.

영계인들도 외적인 감각기관, 즉 눈, 귀, 코, 혀, 피부 등을 모두 갖고 있지만 그들은 직관을 사용해서 신체 어떤 부위에 의해서든지 감각할 수 있다. 즉 그들은 귀를 통해서도 볼 수 있고, 코나 피부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또 눈이나 혀에 의해서도 들을 수 있으며 귀나 피부에 의해서도 맛을 볼 수 있다.

인간의 물리적 신체는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서, 쉽게 상처를 입거나 불구가 된다. 그러나 천상의 영적 신체는 때로 잘리거나 흠이 생기기는 해도 의지만으로 곧 치료된다."
"구루지, 영계인들은 아름답습니까?"

"영계에서의 아름다움은 외적인 형태가 아니라 영혼의 질에 있다. 그러므로 영계인들은 얼굴모습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대로 새롭고 다채롭게 영적으로 현현된 신체로 꾸밀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속세의 인간이 축제를 위해 새 옷을 입듯이 영계인들도 특별히 의도한 형태로 자신을 꾸며야 할 때가 있다.

한 인간이 영적인 진전을 얻음으로써 들어갈 준비가 되었을 때는, 히라냘로카같이 높은 영계에서 즐거운 영계의 축제가 벌어진다. 그런 경우에는 보이지 않는 천상 아버지와, 그 분과 합일된 성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기 몸을 현현시켜 축제에 같이 참가하게 된다. 주님은 당신께 귀의한 사랑스런 이가 원하는 영상을 취한다. 그 귀의자가 헌신을 통해서 경배했다면 그는 신을 성모의 형상으로 보게된다. 예수에게는, 무한자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다른 어떤 개념보다도 마음을 끄는 것이었다. 즉 창조주가 그의 피조물에게 준 개성에 따라 다양한 능력을 가진 주님께, 있을법한, 혹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요구를 모두 하는 것이다!"

스리 유크테스와르께서는 계속해서 플루트같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다른 생에서 사귀었던 친구들은 영계에서도 서로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은 우정의 영원함을 기뻐하면서 지상에서 슬픈 가짜 이별을 할 때 때로 의심했던 사랑의 불멸성을 깨닫게된다. 영계인의 직관은 장막을 꿰뚫고서 지상의 인간 행동들을 관찰한다. 그러나 인간은 육감이 어느 정도 발달하지 않는 한 영계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수천 명의 지구인들은 영계인이나 영계를 순간적으로나마 얼핏 볼 수 있었다.

히라냘로카에 있는 진보한 존재들은 대개 영계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랫동안 법열상태로 깨어 있으면서, 영계를 관리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도와주거나, 방탕한 아들들, 속세에 매인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한다. 한편 히라냘로카의 존재들이 잠 잘 때에는 때로 꿈같은 영계의 환시를 본다. 그들의 마음은 대개 최고의 단계인 니르비칼파의 기쁨을 의식하는 상태에 열중해 있다.

영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히라냘로카 같은 영계에 사는 높은 단계의 존재들은 예민한 마음으로 인해 행동이나 진리의 인식에 있어서 잘못이 있으면 날카로운 고통을 겪는다. 이 진보한 존재들은 모든 행동과 생각을 완전히 영적 법칙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영계의 주민들 간의 대화는 완전히 영적인 텔레파시와 초시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지상인들이 겪어야하는 글과 말의 혼동이나 오해는 없다. 영화 장면 속의 사람들이 일련의 광선 사진들을 통해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영계인들도 산소에서 힘을 얻을 필요 없이 지혜롭게 이끌어지고 종합되는 빛의 영상들처럼 걷고 일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고체, 액체, 기체, 에너지 등에 의존하지만 영계인은 주로 우주의 빛으로 산다."

"구루이시여, 영계인들도 음식을 먹습니까?"
나는 모든 감수성, 즉 정신, 마음, 영혼을 총동원해서 이 놀라운 설명을 흡수하고 있었다. 인식을 초월한 진리의 지각을 영원히 진실하며 변함없지만, 스쳐 가는 감각적 경험이나 인상은 일시적인 혹은 상대적인 진리일 뿐이라서 곧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게 된다. 구루의 말은 내 존재의 양피지 위에 너무 강력하게 기록되어서, 언제든지 내 마음을 초의식적 상태로 바꿈으로서 성스러운 경험을 명확히 다시 체험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빛나는 광선 같은 채소들이 영계에는 많다. 그래서 영계인들은 채소를 먹고, 찬란한 빛의 샘과 영계의 실개천이나 강에서 흘러나오는 감로수를 마시고 산다. 마치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영상이 창공을 뚫고 가서 테레비젼 수상기에 보이게 되고 나중에는 다시 공중으로 송신되듯이 신이 창조한 영계의 보이지 않는 채소와 식물들은 하늘에 떠 있다가 그곳의 주민이 원하면 영계로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무모한 공상에서 향기로운 꽃들이 있는 정원전체가 실현되고 나중에 다시 하늘로 보이지 않게 돌아간다. 그러나 히라냘로카와 같은 신성한 영계의 주민들은 먹는 욕구에서 거의 해방되어 있지만, (지복의 만나 만을 먹는)거의 완전하게 모든 조건을 벗어 던진 '인과율적 세계'(=무색계)의 영혼들이 더 높은 단계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지상에서 해방된 영계의 존재들은 시간에 따라 지상에서 여러 번 태어나는 동안 수많은 친척, 부모, 아내. 남편,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누구를 특별히 사랑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모두가 신의자녀이며 개별적 표상이라고 여기게 되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신성한 사랑을 베풀 줄 알게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외모가 그 영혼의 최근 생애에서 계발된 새로운 자질 때문에 다소 변했을지라도, 영계의 존재들은 실수하지 않는 직관으로 그들 모두가 한번은 다른 존재세계에서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이 새로운 영계의 집으로 온 것을 환영한다. 모든 원자는 창조될 때 어쩔 수 없이 개성을 부여받기 때문에 영계의 친구는 그가 무슨 옷을 입었든지 알아볼 수 있다. 지상에서 한 배우의 개성이 어떤 가면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계에서의 일생은 지상에서보다 훨씬 길다. 보통수준의 영계인이 갖는 평균 수명은 지상의 시간수준으로 쳐서 500-1000년 정도이다. 어떤 삼나무가 다른 나무들보다 수천 년이나 더 살고, 어떤 요기들이 60- 70세 경에 죽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수백 년이나 사는 것처럼, 어떤 영계인들은 다른 이들의 평균 수명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 영계의 방문자들은 그 육체적 업보의 과중에 따라 오래 혹은 짧게 산 후에, 업보에 따라 명시된 시간 안에 지상으로 다시 쫓겨간다.

영계인은 그 빛나는 몸을 벗을 때 고통스럽게 죽음과 겨루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영적인 형체를 벗고 미묘한 근원적 형체를 입으려는 생각에 약간 초조해 한다. 영계는 원하지 않는 죽음이나 병, 노화로부터 자유스럽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공포는 지상의 저주여서 인간은 존재하기 위해 항상 공기, 음식, 수면 등으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육체와 자신의 의식을 거의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된다.

육체적 죽음에는 숨이 멈추는 것과 신체세포의 분해가 동반된다. 영계의 죽음은 생명자. 즉 영계인의 생명을 이루는 명백한 에너지단위의 분산으로 이루어진다. 육체적으로 죽은 존재는 육체의 의식을 잃은 후 영계에 있는 자신의 미묘한 형태를 깨닫게 된다. 또 정해진 시간에 영계의 죽음을 겪음으로써 영계의 생과 사에 대한 의식으로 넘어간다.

영적인 현현과 육체적 현현의 계속적인 이런 순환은, 깨우치지 못한 인간들로서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다. 경전에 쓰인 천국과 지옥에 대한 정의들은 때로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 일련의 오랜 기간동안 즐거운 영계와 실망스런 지상에서 겪었던 경험들을 무의식보다도 더 깊은 기억 속에서 생각나게 한다."

내가 요청했다. "사랑하는 스승님, 지상에 재생하는 것과 영계나 인과율적 세계에 재생하는 것과의 차이를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개체화된 영혼으로서의 인간은 근본적으로 인과율적 신체를 지니고 있다.
구루께서는 이렇게 설명을 시작 하셨다.

"그 몸은 신이 근본적 사고력으로 요구하는 서른다섯가지 상념들의 총체인데, 신은 이것들 중에서 열아홉 개 요소로 예민한 영적인 신체를 만들고, 열여섯개 요소로 거친 물리적 신체를 만들었다.

영적인 신체를 이루는 열아홉 가지 요소들은 정신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 그리고 생명자에 관계된 것들이다. 이 열아홉 개의 성분들은 지성intelligence, 자아ego, 감정feeling, 정신mind과 '지식'의 다섯 가지 도구(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해당하는 예민한 도구), 그리고 '행위'의 다섯가지도구( 즉 출산하고, 배설하고, 말하고, 걷고, 수공기술을 발휘하는 일등에 해당하는 정신적 도구), 그리고 '생명력'의 다섯 가지 도구(즉 고정시키고, 동화시키고, 제거하고, 변형시키고, 순환시키는 신체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등이다. 이런 열아홉가지 요소를 지닌 예민한 영적 신체는, 거친 열여섯 가지의 화학적 성분들로 이루어진 물리적 신체가 죽은 후에도 살아 남는다.

신은 자신의 내부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내서 그것들을 꿈으로 투영해 낸다. 이렇게 우주적 꿈의 여신(女神)은 상대성이라는 끝없이 커다란 장식으로 꾸미고 나타나는 것이다.
신은 인과율적 신체의 서른다섯가지 사고 범주 속에서, 인간의 열아홉 가지 영적 요소와 열여섯 가지 물리적 요소로 이루어진 모든 복합체를 만들어 냈다.

즉 처음에는 예민했다가 나중에는 거칠어지는 진동력의 응축을 통해 신은 인간의 영적인 신체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극도의 단순성이 놀랄 만큼 복잡해지는 상대성의 법칙에 따라, 인과율적 우주나 신체는 영적인 우주나 영적인 신체와 다르고, 마찬가지로 물리적 우주나 물리적 신체는 다른 형태의 창조물과는 특징을 지닌다.

살로 된 육체는 창조주의 확실하고 구체적인 꿈들로 만들어진다. 지상에는 이중성이 항상 존재한다. 즉 질병과 건강, 고통과 기쁨, 잃음과 얻음 등이다. 인간은 3차원적인 것에서 한계와 저항이 심한 위협을 받으면 죽음이 다가와서 육신이라는 무거운 옷을 일시적으로 벗게된다. 그러나 영혼은 아직도 영적인 신체와 인과율적 신체 속에 들어있다. 세가지의 몸이 모두 함께 모일 수 있게 하는 결합력은 욕구이다. 인간은 모든 속박상태는 성취되지 않은 욕구에 기인한다.

육체적 욕구는 이기주의 와 감각적 즐거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감각적 경험의 충동이나 유혹이 영적인 애착이나 근원적 인식과 관련된 욕구보다 더 강하다

영적인 욕구는 진동에 의한 즐거움을 중심으로 한다. 영계인들은 영계의 천상의 음악을 즐기며, 변화하는 빛이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모든 피조물들의 모습을 보고 황홀해 한다.
또 영계인들은 빛을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영적인 욕구는 모든 대상과 경험들을 빛의 형태 혹은 응축된 생각이나 꿈으로 만들어버리는 영계인들의 능력과 관계가 있다.

인과율적 욕구는 오직 인식에 의해서만 성취된다. 오직 인과율적 신체만을 입고 있으며 거의 완전히 자유로운 이 존재들은 전 우주를 신의 생각과 꿈이 실현된 것이라고 본다. 그들은 어떤 것이든지 모두 순수한 생각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근원적 인간들은 물리적 감각이나 영적 기쁨의 즐거움을, 인간의 훌륭한 감성에 있어서는 천하고 답답한 것이라고 여긴다. 인과율적 인간들은 자신의 욕구를 즉각 실현시킴으로써 그 욕구를 해결한다. 자신이 얇은 베일 같은 인과율의 몸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존재들은 창조주와 같이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즉 모든 피조물은 우주적 꿈으로 짜여진 것이기 때문에 얇은 인과율적 신체만을 갖고 있는 영혼은 막강한 실현 능력을 갖는 것이다.

영혼은 본질상 볼 수 없는 것이므로 그것이 지니고 있는 신체에 의해서만 구별될 수 있다. 어떤 한 종류의 신체가 있다는 것은, 성취되지 않은 욕구들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영혼이 무지와 욕망이라는 마개로 단단히 밀봉된 하나, 둘, 혹은 세 개의 신체용기 속에 들어가 있는 한 그는 성령의 바다에 합일될 수 없다. 천한 물리적 그릇이 죽음이라는 망치로 깨어져도 다른 두 개의 그릇, 즉 영적인 그릇과 인과율적인 그릇은 그대로 남아, 영혼이 의식적으로 편재하는 삶과 결합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지혜로써 무욕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면 그 힘이 남아 있는 두 개의 그릇을 깨뜨릴 수 있다. 그러면 마침내 자그마한 인간의 영혼이 빠져 나와서 자유로워진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확대 될 수 있는 존재이다."

나는 성스러운 구루께 고귀하고 신비로운 근원적 세계에 대해 좀더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스승께서는 대답하셨다.

"인과율적 세계는 설명할 수 없을만큼 미묘한 곳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공대하며 마치 딱딱한 바구니를 매달은 빛나는 풍선같은 영계와 물리적 세계를 볼 수 있을 정도의 굉장한 집중력을 갖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초인적 집중력으로 아주 복잡한 그 두 세계를 순수한 사고(思考)로 변화 또는 환원시킬 수 있게 되면 그때는 인과율적 세계에 도달하여 정신과 물질이 용해되는 경계선에 서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는 창조된 물체, 고체, 기체, 액체, 전기, 에너지, 모든 존재들, 인간, 짐승, 식물, 박테리아, 들을 순수한 의식의 형태로 인식한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눈을 감았을 때 육체적 눈에는 그의 육체가 보이지 않고 단지 생각으로서만 존재하지만,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인과율적 존재는 인간이 공상 속에서 하는 일을 무엇이나 실제로 할 수 있다. 가장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인간의 지성은 오직 정신력으로 극단에서 극단에 이르는 생각을 전개할 수 있으며 또 정신력으로 한 항성에서 다른 항성으로 건너뛰거나 영원한 구렁으로 끝없이 빠져들 수 있으며, 로켓처럼 은하계를 날아 오를 수 있으며, 탐조등처럼 우유 빛 자국을 남기며 별이 총총 한 하늘에서 불꽃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과율적 세계의 존재들은 이보다 훨씬 큰 자유를 지니고 있어서 애쓰지 않고도 어떤 물질적. 영적 방해나 업보에 따른 한계를 받지않고 자신의 생각을 즉시 객관적인 대상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

인과율적 존재들은, 물리적 세계가 주로 전자로 구성된 것이 아니며 영계도 근본적으로 생명자로 구성된 것이 아님을 안다. 실제로 이 둘은, 피조물을 창조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방해하는 상대성의 법칙, 즉 마야에 의해 잘리고 나누어져서 아주 작은 부스러기가 된 신의 사고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인과율적 세계의 영혼들은 서로를 기쁨의 성령이 개체화된 각각의 점들이라고 생각한다. 사고만이 그들 주위에 있는 대상이다.
그들은 몸과 사고의 차이가 단지 관념임을 알고 있다. 인간이 눈을 감으면 눈부신 하얀빛이나 희미한 푸른색 아지랑이를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사고에 의해서만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질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우주 정신의 힘으로 어떤 것을 창조하거나 분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과율적 세계에서의 죽음과 재생은 생각 안에 있다. 인과율적 시체를 지닌 인간들은 오직 영원히 새로운 지혜의 음식으로 잔치를 즐긴다. 그들은 평화의 샘물에서 물을 마시며, 아무도 지나간 적이 없는 인식의 땅을 밟고 다니며, 끝없는 기쁨의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

보라! 그들의 빛나는 생각의 몸체가 성령이 창조한 수많은 항성을 지나고, 새로 생긴 세계들의 신선한 거품들과 지혜의 별들을 지나서, 무한한 하늘의 가슴에 그려진 황금빛 성운의 신기한 환상을 넘어 날아가는 광경을!

많은 존재들이 인과율의 세계에 수 천년 동안 남아있게 된다. 보다 심오한 법열의 경지에 의해 자유로워진 영혼은 이제 조그마한 신체로부터 자신을 끌어내서 우주의 광대함을 지니게된다.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 사랑, 의지, 기쁨, 평화, 직관, 평온, 자기통제, 집중력등의 물결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가 영원히 즐거운 지복의 바다로 함께 녹아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 영혼은 따로따로 흘러드는 의식의 물결로 기쁨을 느낄 필요가 없이 그 모든 물결들을 포용한 하나의 우주 대양으로 몰입된다. 영원한 웃음을 지닌 그 바다로!
한 영혼이 세 개의 몸으로 된 덮개에서 벗어나면, 그는 영원한 상대성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룩한 불멸의 존재가 된다.

별과 달과 해로 꾸며진 날개를 가진 나비 같은 편재의 전능자를 보라! 성령으로 발전된 그 영혼은 어두운 빛, 어둡지 않은 어둠, 생각이 아닌 생각이 존재하는 곳에 홀로 우주창조의 꿈속에 법열의 기쁨으로 젖어들어 있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여!"
나는 경외의 마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스승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한 영혼이 마침내 세 가지 신체적 미혹의 항아리들을 제거하면, 개성을 잃지 않고 무한자와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는 예수로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이 마지막 자유를 얻었다. 지상에서 겪은 죽음과 부활 사이의 사흘로 상징되는 과거의 세 단계들을 통해 그는 완전히 성령으로 승천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던 것이다.

발달하지 못한 인간은 자신의 세 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지상과 영계와 인과율계의 윤회를 겪어야만 한다. 이 궁극적 자유를 얻은 초인은 다른 인간들을 신께 돌아오도록 만들기 위해 예언자로 지상에 다시 돌아가겠다고 할 수도 있고, 나처럼 영계에 남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구원자는 지상에서 사람들의 업보의 짐을 얼마만큼 떠맡아서 영계에서 윤회의 순환을 마치고 영원히 인과율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곳의 존재들이 몸을 입고 있는 기간을 단축하고 그럼으로써 절대적 자유를 획득하도록 돕는다."

"부활한 자이시여, 영혼으로 하여금 다시 세 가지 세계로 돌아오도록 하는 업보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전능하신 선생님의 말씀에 영원히 귀기울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상에 계실 때는 결코 한번에 이처럼 많은 그 분의 지혜를 소화시킬 수는 없었다. 이제 처음으로, 생과 사라는 장기판 위에 있는 불가사의한 공간들에 대해서 명확하고 정확한 통찰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스승께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하셨다.
"인간이 영계에 계속 머루르려면 그 전에 물리적 업보 내지 욕망이 완전히 해결되어야만
한다. 영계에서는 두 종류의 존재들이 있다. 즉 아직 해결해야 할 지상의 업보를 갖고 있으므로 그 업보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 다시 천한 물리적 신체를 입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죽은 후에, 고정적인 거주자들과는 달리 일시적인 영계의 방문자로 분류된다.

지상의 업을 속죄하지 못한 사람들은 영계의 죽음 이후에 우주사고의 근원세계로 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열 여섯 가지의 거친 요소들로 이루어진 영적인 신체를 의식하면서 물리적 세계와 영계만을 왔다 갔다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지상에서 발달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매번 육체적 죽음을 당할 때마다 죽음의 혼수 상태에 빠져서 아름다운 영계의 모습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한 사람은 영계에서 머문 후 다시 교육받기 위해 물질세계로 돌아가는데, 이처럼 반복된 여행을 통해서 미묘한 영적 구조를 가진 그 세계에 점점 익숙해진다.

반면에 영계에 오래 거주하는 보통 거주자들은 모든 물질적 욕구로부터 영원히 해방되어서 더 이상 거칠게 진동하는 지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존재들은 영계의 업과 근원계의 업만이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영적으로 죽은 후에 무한히 섬세하고 정교한 근원계로 간다. 우주법칙에 의해 결정된 기간이 끝난 후에 이들 진보된 존재들은 히라냘로카나 비슷한 단계의 다른 영계에 돌아와서 아직 속죄하지 못한 영적 업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영적 몸으로 태어난다."

스리유크테스와르는 계속해서 말했다.
"내 아들아 이제 내가 신성한 신의 섭리에 의해서 지상으로부터 오는 자 들보다 특별히 근운계에서 다시 영계로 윤회해 오는 자들을 위해서 구원자역할을 하려고 부활했다는 것을 좀더 잘 이해하겠지. 지상에서 오는 자들이 아직도 물질적 업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면 히라냘로카같이 고귀한 영계로 오르지 못한다.

지상의 사람들이 대부분 명상으로 얻는 환시를 통하여 고상한 기쁨을 즐기고 영계생활의 이점을 상상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죽은 뒤에도 다시 제한되고 불완전한 지상의 즐거움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듯이 많은 영계인들도 자신의 영적인 몸이 분해되는 동안 인과율세계의 진보된 기쁨의 상태를 보지 못하고 조잡하고 저속한 영계의 행복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영계의 천국을 방문하기를 갈망한다. 그런 자들은 무거운 영적 업을 속죄해야만, 영적인 죽음을 겪은 후에 창조주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근원적 사고의 세계에 완전히 머물 수 있다.

눈에만 즐거운 영계의 경험을 더 원하지 않아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 때라야 비로소 근원계에 머무르게 된다. 근원계에서 모든 근원적 업과 과거 욕망의 씨앗들을 속죄하는 일이 끝나면, 갇혔던 그 영혼은 세 개의 무지의 마개 중에서 마지막 것을 던져버리고 근원적 신체라는 마지막 병에서 빠져 나와 영생의 신과 합일을 이룬다. 이제 이해하겠느냐?"

그때 스승의 미소가 얼마나 매혹적이었던지!
"네! 이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과연 어떠한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노래나 이야기에서도 이처럼 영적으로 깨우쳐 주는 지식을 얻은 적이 없었다. 힌두교 경전들이 인과율 세계와 영계 그리고 인간의 세 가지 신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그 글들은 부활하신 우리 스승님의 말씀에 나타난 따뜻한 확실성과 비교해서 얼마나 궁벽하고 의미없는 것들인가! 그 말씀에는 '어떤 여행자도 그곳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발견되지 않는 곳'이 정말로 전혀 없었다.

스승은 말씀을 계속 이어졌다.
"인간의 세 가지신체들이 침투해 있다는 것은 그의 3중적 성격을 통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난다. 인간이 지상에서 방심하지 않고 있을 때는 세 가지신체를 어느 정도 의식한다.
그가 감각적으로 맛보고, 냄새맡고, 만지고, 듣고, 보는 일에 열중할 때는 주로 물리적 신체를 통해서 일하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그려보거나 의지력을 행사하는 것은 주로 영적인 신체를 통해 일하는 것이다. 인간이 생각하거나 깊은 내성 내지 명상으로 빠져들 때는 근원적 신체가 표현되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자신의 근원적 신체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게는 우주적 사고정신이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 한 개인은 넓게 '물질적 인간' 이나 '에너지적 인간' 그리고 '지성적 인간'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인간은 매일 열여섯 시간 가량 자신이 물리적 신체와 같음을 확인한다.
그러다가 잠이 들어서 꿈을 꾸면, 영계인 들처럼 어려움 없이 어떤 대상을 창조할 수 있는 영적 신체로 있게된다. 그러나 잠이 깊이 들어서 꿈도 꾸지 않으면, 그는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의식 내지는 '나'라는 감각을 근원적 신체로 바꿀 수 있다. 이러한 잠을 원기를 돋우는 것이다. 꿈을 꾸면 그의 근원적 몸이 아니라 영적 몸과 접촉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잠은 완전히 유쾌한 것은 아니다."

스리유크테스와르가 놀라운 설명을 하는 동안 나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천사와 같은 스승님, 당신의 몸은 제가 푸리 암자에서 엎드려서 울던 그 때의 모습과 완전히 똑 같군요."

"그렇다, 새로운 내 몸은 노년의 내 모습과 완전히 같은 것이다. 나는 지상에서 그랬던 것보다 훨씬 자주, 언제든지 마음대로 이 모습을 형상화시키거나 없애거나 한다. 또 이제 재 빨리 몸의 형상을 분해함으로써 빛의 기차를 타고 한 항성에서 다른 항성으로 혹은 더 나아가서 영계에서 인과율의 세계나 물리 세계로 즉시 여행할 수 있다."

성스러운 나의 구루는 미소를 지으셨다.
"오 이제 보니 저는 스승님의 죽음에 대해 쓸데없는 슬픔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내가 죽었단 말이냐?"

스리 유크테스와를의 두 눈은 애정과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너는 지상에서 단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고, 지상에서 네가 보았던 내 몸도 꿈일 뿐이다. 너는 그 꿈의 영상을 매장한 것일 뿐이다. 이제 더 훌륭한 나의 육신이 신의 더 훌륭한 꿈의 세계에 부활한 것이다. 지금 네가 그것을 보고 있고 또 이렇게 꼭 껴안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언젠가는 이 훌륭한 환상의 육신과 환상의 세계도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들 모두가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환상의 거품들은 결국 꿈을 깨는 마지막 손길에 의해 꺼지고 만다. 나의 아들 요가난다야, 꿈과 현실을 구별해야 한다!"

<베다>에 나타나는, 부활에 대한 이런 생각 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나는 푸리에서 생명이 없는 그 육신을 보았을 때 연민을 느꼈던 것이 부끄러웠다. 마침내 나는, 구루가 항상 완전하게 신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지상에서의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지금의 부활까지도 모두 우주의 꿈속에 있는 신성한 생각들의 상대적인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을 이해하였다.

"요가난다여, 이제 너에게 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진실들을 모두 다 말해 주었다.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오히려 인간들의 지상세계로부터 또 다른 신의 꿈의 세계인 영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나의 부활 소식을 전해야 한다. 불행으로 고통받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가슴속에 새로운 희망이 스며들 것이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스승의 부활을 목격한 기쁨을 왜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 하지 않겠는가!

"지상에서 내가 제시한 기준들은 곤란할 정도로 높아서 대개 사람들의 성격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때로 내가 해야 할 정도보다 더 심하게 너를 꾸짖기도 했었다. 그러나 너는 나의 시험을 통과했다. 너의 사랑이 모든 꾸짖음의 구름을 뚫고 해처럼 빛났기 때문이다."
그는 부드럽게 덧 붙였다.

"오늘 또 이런 말을 하기 위해서 내가 왔다. 결코 다시 책망하는 무서운 눈초리로 너를 보지 않겠다. 이제는 더 이상 너를 꾸짖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스승의 꾸중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모든 꾸중들이 나를 보호해 주는 수호 천사였는데!
"다정하신 스승님! 천만번이라도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지금 당장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이제는 더 이상 꾸짖지 않겠다."
스승의 성스러운 목소리는 엄숙했지만 웃음을 깔고 있었다.

"우리의 두 형태가 신의 환상(마야) 속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한, 너와 나는 함께 미소 지을 것이다. 마침내 우리가 사랑하는 우주의 신과 합일되면 우리의 미소는 그 분의 미소가 될 것이며 합치된 기쁨의 노래는 영원히 진동하며 신과 조화를 이룬 영혼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스리 유크테스와르께서는 여기서는 밝힐 수 없는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도 암시를 해 주셨다. 봄베이 호텔 방에서 함께 보낸 두 시간 동안 스승께서는 나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1936년 6월의 그날에 그가 세상에 대해 예언했던 수많은 사실들이 이미 사실로 실현되어 지나갔다.

"사랑하는 이여, 이제 나는 너를 떠난다!"
이 말에 나는 껴안고 있는 내 팔에서 스승의 육신이 녹아버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목소리가 울리며 내 영혼의 하늘로 진동해 왔다.

"내 아들아, 네가 니르비칼파 사마디의 문을 들어서서 나를 부를 때마다 나는 오늘처럼 살과 피로 이루어진 몸으로 너에게 올 것이다."
이 거룩한 약속을 남기고 스리 유크테스와르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구름같은 목소리가 천둥의 음악이 되어 되풀이되었다.

"모두에게 말하라! 니르비칼파의 깨달음에 의해, 지상이 한갓 신의 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히라냘로카라는 정교한 꿈의 세계로 올 수 있으며, 그곳에서 지상의 육체와 똑같은 모습으로 부활한 나를 발견할 것이라는 사실을, 요가난다여.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라!"

이별의 슬픔은 사라졌다. 오랫동안 평온을 빼앗았던 스승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연민도 이제는 부끄러움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지복의 기쁨이 새로 열린 무한한 영혼의 숨구멍들을 통해 샘처럼 솟아났다. 과거에는 쓰지 않았던 막혔던 구멍들이 이제는 밀려오는 법열의 물결로 깨끗하게 넓혀 졌다. 내 전생들이 활동 사진의 장면들처럼 내면의 시야에 나타났다. 과거의 선한 업과 악한 업이 스승의 방문에 의해 내 주위를 비추는 우주의 빛으로 스러졌다.

내 자서전의 이 장에, 나는 구루의 명령을 따라 그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것이 호기심 없는 세대를 다시 한번 혼란에 빠뜨리게 될 지도 모르지만. 인간에게는 비굴함도 있고 절망도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들은 인간의 진정한 운명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모습에 불과하다. 인간이 의지력을 행사하는 날, 그는 자유로 이르는 노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정복되지 않는 영혼에게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만을 외치는 우울한 비관주의만을 너무 오랫동안 들어온 것이다.

***
출처 : 인도 명상
글쓴이 : 단다 원글보기
메모 :

  2002년 10월 14일(월) 서울 명동부근 로얄호텔 2층 에머랄드 실에서는 세계 최초로 물 빙결(氷結) 결정(結晶) 사진집 『물로부터의 메시지』 을 발간하여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일본의 파동 연구가 에모또 마사루(江本 勝) 박사의 내한(來韓)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에모또씨는 파동연구를 15년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물이 사람의 의식을 반영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그 결과 오늘의 물빙결 결정 사진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그의 연구의 결론은 말씀드리면 에너지란 진동(振動, vibration)으로 나타나게 되며 진동이 없어지면 생명력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생명(生命)이란 글자를 나누어 보면‘명’(命)이란 글자 안에는 두드릴 ‘고’(叩)자가 들어가 있는데두드린다는 것은 바로 진동을 의미하며 이는 다른 말로는 파동(波動)입니다.생명은 한마디로 파동이라고 설명하고 있죠 

  그리고, 그는 모든 에너지의 근본은 물[水]이며 물은 인간의 의식을 반영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에너지가 있는데, 이는 주는 쪽과 받는 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감사, 불↔물, 태양↔ 달, 산소↔수소’ 등입니다(바로 음양을 나타내죠)물의 결정사진은 물이 얼어서 결정이 되었다가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물로 돌아가기 직전의 어느 한 순간, -5°C에서 0°C사이에서 결정을 추출하여 사진을 찍습니다.

                   <보통의 물>
  물은 한문(漢文)의 水자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의 결정 사진 촬영시 어떤 물도 이와 같은 상태를 거쳐서 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한문 글자를 만든 우리 옛 성인들의 통찰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영국 런던 수돗물>
  건강한 물의 상징인 아름다운 6각형의 결정은 찾아 볼 수가 없네요. 한국의 수돗물이 이와 비슷하다고 하는 군요.

            <미국 뉴욕 수돗물>
 보통 불소를 첨가하고 오존으로 처리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내한 강연회 때 뉴욕 수돗물이 다른 도시와는 달리 삼나무 통에서 보존되다 각 가정으로 배수된다는 설명을 하며 그래서 6각형의 결정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벤쿠버 수돗물>
아마도 오염이 덜 된 원수(原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추측을 하네요 ^

사람의 마음은 소리에 즉각 반응한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면 부산해지고 불안해 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물은 음악을 듣고 어떻게 반응 할까요? 물은 음악에도 반응했습니다.

      <쇼팽의 Raindrops빗방울>
  물도 사람의 마음처럼 음악에 즉각 대응했습니다. 잘 보세요. 큰 결정 좌측 위로 또 하나의 작은 결정이 보이지요.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지 않으세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물의 결정이 마치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늘씬한 다리로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연상되지 않으세요?

  다음의 결정 사진은 누구나가 좋아하는 비발디의 사계를 들려주었을 때 물 결정 사진입니다. 사계’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대표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네편의 시에 의거해서 4계절의 분위기와 색채를 즐겁고도 섬세하게 표현해낸 표제음악의 걸작이죠. 비발디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과 그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묘사하려고 했답니다. 네 곡은 짧은 곡들이기는 하지만 내용 면에서 아주 뛰어나며 비발디의 아름다운 시정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봄>

                       <여름>
 분열하는 여름 이미지가 느껴지죠?

                    <가을>
 새로운 생명을 간직하는 듯이 6각형 결정 안에 또 하나의 작은 결정이 보입니다.

                    <겨울>
가만히 움츠려 성숙하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물은 이렇게 서로 다른 반응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물은 인간의 의식을 반영한다고 할까요, 아니면 물에도 의식이 있다고 할까요? 분명한 것은 ‘물은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말과 의식에도 반응을 할까요? 다음의 사진을 보면 그것을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물에 문자를 보여 주었을 때 물은 어떠할까요? 물에 여러 글을 보여준 후 결정사진을 찍은 사진입니다. 물은 신비하게도 문자에도 반응했습니다.  

<중국어 ‘감사합니다’(多謝)>

         <타갈로그어 ‘감사합니다’>

      <말레이시아어 ‘감사합니다’>

<권유형 ‘합시다’ >

  물은 아름다운 6각형의 결정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라는 우리말 속담이 있지요. 물도 그렇게 상대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명령형 ‘해라’>
  
6각형의 아름다운 결정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물이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 같군요. 같은 값이면 부드럽고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물은 말하고 있습니다.

      <'너를 죽이겠다’라는  글자>
보세요. 마치 복면을 쓴 어떤 사람이 좀 더 작은 다른 사람의 멱살을 잡고 죽이기라도 하듯 주먹질을 하는 것 같지 않나요? 물이 살기(殺氣)를 띄고 있다고 할까요? 이렇게 살기 받은 물을 마시면 상대방은 어떻게 될까요? 말은 그대로 에너지가 되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

          <'악마'라는 글자>

<'천사'라는 글자 >

 악마(惡魔)’라는 문자를 보여주었을 때 큰 대조를 보이고 있지요?   ‘천사’는 아름다운 보석의 모습이고 ‘악마’는 무언가 추한 모습이네요

기도는 물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물을 앞에 놓고 강력한 기도를 하면 그 물은 어떻게 바뀔까요? 상생의 마음으로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그 물에는 상생의 기운과 치유에너지가 충만해 집니다

물결정모양이 아주 선명하고 예쁘죠?

 

인간의 마음에 응답하는 물의 신비


인간의 인체(人體)는 70~8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물이 각종 소리, 문자, 생각에 반응하는 것을
밝혀준 책이 일본에서 발행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파동 연구가인 '에모또 마사루'가 물의 '동결결정사진'을 모아 발간한
『물로부터의 전언』이 그것이다.



에모또 마사루 지음
(1999년 6월 발행 파동출판사)

에모또의 물에 대한 연구는

미국의 물 연구가 Lee H.Lorenzen박사의 '육각수'
역시 Lee박사가 소개한 '공명자장분석기',
이 두가지를 접목시키는 데서 비롯한다.

에모또에 의하면 좋은 물, 나쁜 물,
즉 물에 대한 올바른 정보는 눈으로는 쉽게 알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그는 여러가지 물을 얼려서 결정사진을 잡는데 성공하여
가시화함으로써 '물의 얼굴'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한다.


에모또는

'결정사진을 볼 때는 6각형이 뚜렷한 결정구조
를 이루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촬영을 위해 결정체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몇천번이나 보아왔다.
그렇게 하다보니 신기하게도 물에
생명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본래 물은 '좋은 물이 되자! 좋은 물이 되고 싶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전하려고 하고 있다'

라고 말한다.

그는 단순히 물의 결정사진 뿐만 아니라,
물에다 음악을 들려주거나 기도를 보내거나 글자를 보여주는 등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물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고자 하였다.


水라고 하는 文字는…


물의 결정사진 촬영시에는 어떤물도
옆의 사진과 같은 상태를 일단 거쳐서 물로 돌아갑니다.

물이 얼어서 결정이 되었다가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물로 돌아가기 직전의 어느 한순간,

-5℃에서 0℃사이에 있어서,
'水'라는 한자와 똑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옛적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서 '水'라는 글자를 만들었을까요.



바하의 '골드베르그의 변주곡'을 들려 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이 곡은 바하가 신세졌던 골드베르그님을 위하여
감사의 뜻을 담아서 바친 곡이라고 합니다.

기본이 되는 정제수와 비교하면
6각형이 생기고 있는 모습을 선명히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성장을 촉진한다고 한다면
좀 철학적이지요.



쇼팽의 '이별곡'을 들려 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유명한 피아노 곡으로
멜로디를 들으면 누구나 다 알 만한 친숙한 곡입니다.

그리고 연구팀이 이 결정사진을 얻었을 때만큼
깜짝 놀란 적도 없었습니다.

'이별곡'이기 때문일까,
기본적인 6각의 결정체에서 멋지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잘게 쪼개어졌군요.
현미경의 배율은 같았는데도 말입니다.



한국민요 '아리랑'을 들려 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아시다시피 한국의 민요입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 헤어져 가는 연인끼리의 이별가.

떠나는 남자를
뒤에서 전송하는 여인이
애절하게 가슴 앓이를 하고 있는 것과 흡사한 결정이지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려 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결정은 매우 아름답고
잘 균형잡힌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골든베르그'변주곡을 들려주었을 때
나타난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너는 나를 괴롭게 해. 죽여버리겠어'를 들려 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이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종종 사용하는 말들이다.

이러한 단어들에 물을 노출시키자 물은 이내
우리가 예상했던 그대로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정은 추하게 왜곡되어 이그러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명백하게 '너는 나를 괴롭게 해. 죽여버리겠어'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폭력적 언어들이 마구 횡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이제 우리 자신을 위하여 뭔가 해야하는 때가 다가왔다.



Healing음악, 'Hado'를 들려 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이 음악은 아픔을 진정시키고
몸의 면역기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사진은 특별한 기술을 구사하며 제작된
미국의 치유음악 CD를 들려준 결정체입니다.

가지 부분이 힘차게 쑥쑥 뻗어 있어 마치 영양가가 높은
식용 버섯처럼 아름다운 결정사진입니다.

실제로 이 곡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생리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Heavy Metal'의 곡을 들려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이 노래의 가사 내용은 노여움이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을 매도하고 있는 듯한 곡입니다.

기본적인 6각구조의 결정체가
보기 좋게 산산조각이 나 있습니다.
이 곡조에 대해서
물은 뚜렷이 부정적인 반응을 모이고 있습니다.

꼭 Heavy Metal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가사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500명의 사랑의 기운과 혼을 받아 응답하는 물


일본 전국에 있는 500명의 파동 Instructors
(내가 주최하는 파동학의 졸업생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1997년 2월 2일 오후 2시,
사무실의 나의 탁자 위에
동경 시나가와의 수돗물을 담은 컵을 얹어 놓았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여러분의 상념(想念)을 발신(發信)하여 주세요.

물론 이 물이 좋은 물이 될 수 있게
'물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소원을 담아서,
각지에서 동시적으로
'사랑의 기운과 혼(魂)을 보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전국 각지에서
'사랑의 기운과 혼'을 보내온 결과로 얻은 결정사진이 바로 이 사진입니다.
물론 물리적인 작용은 조금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훌륭한 결정을 얻게 된 것에 대해서,
촬영반 일동은 감동을 넘어서 눈물이 솟는 것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본래의 물(시나가와의 수돗물)-실험 전의 촬영

평범한 수돗물이 500명 사랑의 기운과 혼을 받아
위의 결정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물에 문자를 보여주다


물에 음악을 들려준 것에 대해
물은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물에게 문자를 보여준다면…'
이라고 하는 문제에 접근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손으로 쓴 글자가 아닌 워드프로세서로 친
일정한 문자를 병에 붙여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물은
문자에 대해서는 분명한 응답을 보여주었습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실험자에게 미리 사전정보를 주지 않고 실험하거나,
실험자를 바꿔보아도 같은 반응이 나왔습니다.


하루 밤 동안 병에 붙여두었던 '바보자식'이란 문자를 보고 있었던 물의 사진입니다.
'어떤 헤비메탈 곡'을 들려주었던 물의 사진과 매우 닮았습니다.

또 같은 뜻을 갖는 영어의 'You Fool'도 붙여 실험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같았습니다.



'사랑.감사'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물의 결정체


수없이 많은 결정사진을 촬영해 왔습니다만,
이 사진만큼 아름다운 결정을 본 적은 없습니다.

역시 이 세상에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능가하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만으로

몸의 둘레에 있는 물 또는 몸안에 있는 물
이와 같이 변화하여 준다면…….


물의 '동결결정사진'이란 얼린 물을 현미경에 놓고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초특수상황의 한 순간에 촬영하여 얻어진 6각구조의 사진이라고 한다.

물의 결정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시료용 물 한 방울을 실험용 접시에 떨어뜨린 후 냉동실에 2시간 동안 보관한다.
그 결빙상태에서 물 결정을 추출하여 현미경으로 200~500배의 배율로 촬영한다.

한번만 찍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조건에서 가능하면 많이 촬영한다.
찍을 때마다 물의 결정이 조금씩은 달라지지만,
시료에 따라 격자(grid) 또는 판상(laminar)결정구조 등의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밥은 향기가 좋다

과학부 기자

▲ 왼쪽:감사하다 / 오른쪽:망할자식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는 물 결정에 관한 실험 이후에 또 다른 실험을 하였다.
그 대상은 밥이었다. 밥을 똑같은 두 유리병 속에 넣었다.
그런 다음에 한 유리병에는 ‘감사하다’ 라는 글귀를 붙이고
다른 유리병에는 ‘망할 자식’ 이라는 글을 써서 붙여 놓았다.

날마다 두 초등학생에게 그 글귀를 각각 병에 대고 읽게 하였다.
‘감사하다’ 가 붙어있는 유리병을 향하여서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망할 자식’이 붙어 있는 병에 대하여는 망할 자식이라고 말하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 달을 지속하고 보니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밥은
발효되어 향기로운 누룩 냄새가 났다.
그러나 ‘망할 자식’ 이라는 말을 들은 밥은 부패해서
검은 색으로 변하였으며 악취를 풍겼다.

실험 보고서에서 “이번 실험을 통해서 단지 물만이 이런 정보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도 외부 정보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라고 하였다.
좋은 정보로 인하여 미생물이 사람에게 유익한 발효작용을 할 수 있고,
악의적인 정보는 사람에게 유해한 부패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유효미생물을 연구하는 일본의 히가 데루오는 말하기를,
“사실 미생물 세계에서 나쁜 균과 좋은 균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대부분의 균은 무해하고 기회주의적인 균이다.
이런 균은 나쁜 균과 좋은 균의 세력을 살피다가 강한 쪽으로 붙는다.” 라고 하였다.
이 사실은 외부의 정보에 따라 밥이 발효하는가
부패하는가를 결정한다는 마사루의 실험결과와 일치하고 있다.

글과 생각이 하나의 정보에너지로 작용하여 미생물에게 영향을 준다는 위 실험결과는
여러 가지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미생물이 그러하다면 다른 일반 세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수히 많은 세포로 구성되어있는 인간의 경우,
이들 각각의 세포가 외부 정보에너지에 이와 같이 반응한다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바로 건강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명월 기자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연단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우리출판사 발행    죽음을 준비 합시다 (현장스님 역) 


 


중음신(中陰身) 제도법(濟度法)


[불법을 알게 되면 태어남과 죽음을 저절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죽지 않는 오직 한 방법은 태어나지 않는 길이다.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무생(無生;나지 않음)의 경지를 깨달아야 한다. 무생만이 죽지 않는 길이니 영생을 구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죽음과 환생사이의 영혼을 제도하는 밀교와 정토의 가르침

      - [중음신(中陰身)제도법(濟度法)]



"중음신제도법"은 본디 밀종(密宗)에서 전하는 해탈 법 가운데 하나다.


정토종의 제도법과 밀종의 제도법은 그 뿌리가 같다. 다만 밀종에서는 중유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현교인 정토종에서는 중유의 세계는 말하지 않고 제도법만 다루고 있음이 다르다 하겠다.


그렇다면 두 가지 제도법 가운데 어떤 제도법이 이 말법시대에 적합한 제도법이 될 것인가? 밀법수행자는 지혜로운 근기가 있어야하고, 특별한 인연으로 깨우침을 얻은 금강상사(金剛上師)를 만나야 한다.


상사란 밀주(密呪)를 전하는 이를 말하는데 밀종에 귀의한 수행자는 상사가 전해준 이 주문을 날마다 염송해야 한다. 그러면 죽음을 맞을 때 밀주의 가지력(지켜주는힘)으로 중유에 빠지지 않는다. 혹 중유에 빠진다 해도 밀법의 힘으로 그 중유에서 빠져나와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참으로 깨우침을 얻은 금강상사는 봉황의 털보다 더 드물고 더구나 그런  금강상사를 만나는 일은 더 어렵다. 물론 상사 없이도 한 가지 밀주를 정해놓고 수행할 수는 있겠지만 말법시대에 홀로 밀주 수행을 이루기란 참으로 어렵다 하겠다. 거의 대다수의 중생이 죽을때 중유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이시대에 밀주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적기에 그 가지력 또한 약하다는 말이다.


 말법시대에 밀주를 수행하는 일이란 마치 도둑을 보고 입으로만 경찰을 부르는 것과 같다. 입으로만 경찰을 불러서는 도둑을 물리칠 수 없다. 도둑을 물리치려면 전화로 경찰을 불러야 한다.


지혜 있는 이가 밀주를 수행함이란 이와 같다.  정토종의 염불문에는 조건이 없다.  어떤 사람일지라도 바르게 염불만 하면 반드시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정토에 갈 수 있다. 이것이 가장 간편하고 정확한 해탈법이다.


 이 염불문 속에서는 지혜로운 이, 어리석은 이, 죄가 있는 이, 죄가 없는 이, 업이 가벼운 이, 업이 무거운 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중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염불하면 왕생하는데 어찌하여 이 책에서는 중유의 세계를 설명하는가?  염불수행을 하지 않는 불교인과 종교가 다른 사람에게 중유의 세계를 알려주고 그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일러주기 위함이다.

 

제1장 : 불교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구제법의 다른점

1. 다른 종교의 구제법


다른  종교란 불교 밖의 종교로, 신(神)을 섬기는 종교를 말한다.

신을 섬기는 종교에는 오직 하나의 신만 섬기는 일신교(一神敎)와 여러 신을 섬긴다는 다신교(多神敎)가 있다. 신을 섬기는 종교의 공통점은 자신이 섬기는 신이 아니면 모두   부정해 버린다는 점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믿는 신과 교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가르친다. 역사상 일어났던 수많은 종교 간의 분쟁과 전쟁이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자신의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는 사악 하다는,신을 섬기는 종교의 가르침은 중생을 구제하기에 앞서 파멸에 빠뜨리기 일쑤다.


이와 같이 신을 섬기는 종교는 그 가르침이 가진 한계 때문에 사람을 구하고 돕는다는 생각이 넓지 못하고 구제할 대상도 신을 맞는 이들로 한정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저들은 이러한 구제법이 "신의 뜻"이라 믿기에 "따르는 이는 살 것이요 따르지 않는 이는 죽을 것 이다"는 그릇된 가르침을 불멸의 진리라고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종교의 생명은 자비심이다. 자비심은 중생을 섬기고 보살피는 정신이다. 자신이 믿는 신을 섬기는 이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정신은 바로 그 종교가 갖는 자비의 폭이 좁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이다.


신을 섬기지 않거나 신을 모르는 사람, 또 지옥이나 짐승의 세계에서 괴로움을 받는 중생들은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자비심을 귀히 여기는 이라면 이같이 묻지 않을 수 없다.



2.불교의 구제법


불교는 신을 섬기는 종교가 아니다. 인과법을 소중하게 여기고 스스로 깨우치는  일을 삶속에서 이루어내는 길이요, 가르침이 불교다.


물론 불교에서도 신과 천국에 매달리지 않고 사는 것을 더 중요한 가르침으로 여긴다. 삶의 가치를 하나라고 고집할 때 삶을 이어주는 유기 관계는 어김없이 깨지고 그 본디 생명력이 시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신을 섬기든 섬기지 않 든 그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고집함이 없이 사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런 저런 신을 섬기는 이들이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 왔을 때 삶의 진실을 말씀 하셨을 뿐 섬기는 신에 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바른 가르침이란 주의(主義)가 아니라 삶의 진실에 눈을 뜨게 하는 일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바로 삶의 진실에 눈을 뜨는 일이다.


깨달음이란 덧없음과 무엇이, 무엇이 아님을 밝게 몸소 겪는 일이다. 선과 악, 참과 거짓, 신과 사람의 덧없음, 그것이 그것 아님을 밝게 알 때만 끝없는 자비심이 피어난다.

그래서 깨달은 이는 종교나 중생의 모습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행복과 기쁨을 공양(共養)하는 것이다.

 

악마까지도 행복한 존재가 되어야 나도 행복하겠다는 마음은 다른 종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불교의 독특한 정신이라 하겠다. 신을 섬기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과 악마는 선과 악이 맞섬을 상징한다. 그런 종교에서는 또 사람은 죄악에 물든 존재라 규정한다.

 

 신을 믿으면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악마를 따르면 영원히 타락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신을 내세우는 종교에는 인류의 시작부터 악마가 등장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류의 죄악을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전지전능한 신이 왜 완전한 사람을 창조하지 못했나 하는 점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악은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그것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죄악은 삶의 현상이요. 삶의 사건이다 현상과 사건은 참으로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예측 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다.


이 변화의 흐름을 결정짓는 힘을 업(業)이라 하는데 이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겪는 선악 갈등의 괴로움은 업기운 (業氣運)의 맑고  어두움 가볍고 무거움에 달린 것 이지 신이나 악마의 존재와는 관계가 없는 것 이다.


아무튼 크게 깨달은 이는 삶의 진실에 들어 맞게 살뿐 틀 지워진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깨달은 이, 곧 부처님이나 보살들은 꼭 착하고 좋은 모습만으로 악인을 구제 하지는 않는다.


악인의 모습으로 착한 사람을 제도하기도 한다. 불교는 조직으로 힘을 삼는 종교가 아니라 끝이 없는 자비심으로 힘을 삼는 종교다.  불교는 어떤 종교를 따르는 중생이든 어떤 모습을 한 중생이든 그들이  괴로움에 빠졌을 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나아가 나고 죽는 윤회의 흐름을 길이 쉴 수 있게 도와주는 가르침이다.


불교는 조직이나 단체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 삶의 진실에 눈을 뜨고 업의 기운을 바꾸는 일을 중히 여길 뿐 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배울 수 있고 또 마땅히 배워야 할 가르침이다 이것이 불법(佛法)이다.


우리가 불법을 가벼이 여기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괴로움은 더욱 커지고 길어질 것 이다.  그러므로 참된 불교인이라면 순간, 순간 중생의 괴로움을 잊지 말아야 하고 기회를 찾아 인연을 만들어 그들을 이끌면서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생은 업이 무거워 진실성과 조화성을  나 몰라라 하는 삶의 방식에 깊이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생을 바르게 제도 하려면 너나 가릴 것 없이 그 어떤 보상 조건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중생의 삶을 당장 바꾸어 줄 수 없더라도 바른 가르침이란 반드시 꽂을 피우기 마련인 죽지 않는 빛과 생명의 씨앗임을 확신해야 한다.


이것이 불교의 구제 정신이다. 특히  중음신 구제법은 의식이 아홉 배 맑아져 지난 일을 환히 기억할 수 있는 중유기에 든 중생을 위한 가르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 중요함과 뛰어난 공덕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제 2 장 : 죽음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1.왜 태어나는가?


죽음은 태어남에서 생긴다.

죽음과 태어남은 윤회하는 삶의 주된 특징으로, 어리석음(無明)의 힘을 알맹이로 삼는다.


참으로 우리들의 삶이란,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꿈속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무명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다. 이 같은 어리석음의 파동이 겹겹이 일어나서 업을 키워나가는 삶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리석음에서 일어난 업의 생은 컴퓨터의 기억장치처럼 삶의 모든 행동의 뿌리가 되어버린다. 어리석음에서 일어난 업력은 나와 ‘맞다’ 또는 ‘안 맞다’는 생각을 만들어내고 이 같은 생각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몸과 마음을 지어낸다. 그래서 힘살, 뼈, 피따위를 ‘나’ 라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앞뒤 안 가리고 이 나를 지키려는 경향을 띠게 된다.


그럼으로 해서 ‘나’ 라는 존재를 고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업력에 따라 좋고 나쁨, 아름다움과 미움 따위를 가린다. 그래서 저마다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업력이 같은 사람이 모이면 친근감이 생기고 업력이 다른 사람이 모이면 관계가 성글어 진다. 이른바 정신없이 어지러운 탁‘濁’이 생기는 것이다.


업력은 몸으로써 자기를 한껏 나타내려고 한다. 또 고집된 ‘나’ 로 하여금 이득이 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을 얻으려는 한 마음으로 차차 눈, 코, 귀, 혀, 촉각신경과 생각하는 기능 같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지어낸다.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형성되면 고집된 가짜 ‘나’ 가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활동은 먼저 바깥과의 접촉에서 시작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과 같이 모든 감각기관이 저마다 그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이 같은 바깥과의 접촉은 어머니 배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태교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접촉에 따라 여러 가지 느낌이 아주 민감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 에게 이득과 편안함을 주는 것이면 즐겁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싫어하고 맞선다.


그래서 사람의 성격이 바뀌면 좋아하지 않던 것을 좋아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떤 사물에 좋고 나쁜 특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물을 대하는 업력의 차이 때문이다. 무엇을 좋아하면 그것을 가지려는 행위로 이어진다. 그것이 소유욕이다.


가지려는 욕심도 소유욕이지만 갖지 않으려는 욕심도 소유욕이다. 중생은 이 같은 방식으로 ‘나’ 라는 몸뚱이를 끝까지 소유하고 싶어서 가지가지 억지를 부린다. 이것이 중생의 삶인데 죽음은 이런 저편에 있는 것으로 두려움과 괴로움을 던져준다.


2.왜 죽는가?


중생의 삶이란 무명의 업력이 일으킨 파장이다. 그렇다고 중생의 삶이 업력 하나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업력과 더불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조건들이 함께 해야 중생의 삶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의 태어남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경전에 “한 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천만겁을 헤맨다.”고 했다. 이 말을 새겨 보면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려움을, 한 번 사람 몸을 잃게 되면 길이 삼악도에 떨어져 헤매게 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마음 때문으로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누구를 죽이거나 삿된 음행, 거짓말, 도둑질을 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짐승이나 지옥처럼 만들어, 죽으면 바로 그 업의 힘에 따라 그런 곳에 태어나게 된다. 업력에 따라 받은 몸을 보신(報身)이라 하고 업력에 따라 받은 세계를 보토라고 한다.


태어난 뒤로도 많은 조건들에 따라 업력은 바뀌어 가고 삶을 지탱하는 조건들이 다 하게 되면 죽게 된다. 사람마다 업력이 다르기 때문에 목숨도 저마다 다르다, 목숨은 결코 신이 정해 준 것이 아니다. 목숨이 저마다 다른 것은 ‘원인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는 말씀처럼 아주 마땅한 이치이다.


중생은 결과만 보고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생의 원인이 내생의 결과 됨을 알지 못한다. 만약 삶의 진실을 깨달아 인과에 눈을 뜨지 않으면 윤회하는 삶의 괴로움은 태어날 때마다 이어질 것이다.


중생의 생명은 삼라만상과 마찬가지로 조건의 형성으로 태어나고 조건의 이어짐으로 살아가고 조건이 무너짐으로 시들어가고 조건의 없어짐으로 죽는다. 이것이 이른바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 生老病死의 변치않는 네 과정인 것이다.


좋은 조건을 태어나면 살아가기에 좋다. 그래서 좋은 인연을 만드는 일이 수행에 필요한 길이 된다. 불법을 알게 되면 태어남과 죽음을 저절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죽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태어나지 않는 길이다.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無生의 경지를 깨달아야 한다. 무생만이 죽지 않는 길이니 영생을 구하는 일은 환상일 뿐이다.


3 죽음이란 무엇인가?


중생은 저마다 업에 따라 몸과 세계를 받는다. 사람들은 업력과 환경이 비슷하기에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듣는다. 이 같은 삶의 조건들이 사라지면 업력도 바뀌고 보고 듣는 세계도 바뀐다.


이처럼 업이 다른 세계로 옮기는 것을 佛敎에서는 전류(轉琉)라 한다.

현대과학에 빗대어 말하면 업력은 전파와 같다.

같은 세계에 태어난 중생은 한 전파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삶의 조건이 사라지면 전파가 바뀌어 세계가 달라진다. 죽은 사람은 이제 더는 있었던 세계를 볼 수 없고 산 사람은 죽은 이의 세계를 볼 수 없다. 이것은 마치 TV 채널 1과 채널 2의 전파가 틀려서 채널에 따라 화면이 달라지는 현상과 같다. 중생은 지난 생의 업력에 따라 새로운 몸과 세계를 받는다. 이 같은 진실은 어떤 신의 이름을 불러도 바뀌지 않는다.


부처님은 “모든 존재는 자성(자기라고 고집할 만한 성품)이 없어서 저마다 허상일 뿐이다.”고 가르쳤다.

죽음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태어남과 죽음의 관계를 밝게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게 되면 죽음이란 결코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평화로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준비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왜 불교도들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이런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매우 어긋나는 말이다. 업력이 끝나지 않았다면 마땅히 과보를 받게 되어 있다. 과보를 받기 싫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오히려 나쁜 업을 짓게 되어 다음 생에 더 많은 괴로움을 받게 된다.


죽음을 맞는 준비란 무엇인가? 생명의 기원과 그 끝을 알아 모든 생명이 다 거쳐 가는 과정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날마다 염불하면 업력이 부처님의 감응을 받아, 죽을 때 윤회가 사라진 정토에서 태어날 수 있다. 염불수행을 정성스레 하면 스스로 죽을 날짜를 알 수 있고 병고가 없이 맑은 선정 속에서 극락왕생한다. 이것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다.


염불과 인연을 맺지 못한 불자나 다른 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이들이 죽음을 맞을 때 스스로 구제하는 자기 구제법을 다음 장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자기 구제법이란, 비록 나쁜 내생의 길이 나타나도 그 길에 들지 않고 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특별한 법이다.



제 3 장 : 네 요소(四大: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地水火風)가 흩어짐


1.죽음의 앞뒤


사람은 한 기간의 업보가 끝나면 저절로 죽음을 맞는다. 불법을 수행한 사람이라면 죽음을 맞는 방법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을 때 큰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재산 때문에,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설사 이 같은 문제가 없고 걱정 않는 사람일지라도 죽음 앞에서 큰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바르게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여러 가지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고, 어떤 종교를 믿었건 상관없이 스스로의 업력에 따라 가지가지 현상들을이 보인다.


살아서 十善을 베푼 이는 천상의 노래가 들리고 하늘사람이 이끌어 준다. 또 악을 행한 이는 지옥이나 아귀 모습이 나타나 끝없는 괴로움을 받는다.


이같이 악을 행한 이들은 심한 병고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때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그 사람들을 이끌어 주는 이가 없다면 그는 업력에 따라 삼악도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큰 선이나 큰 악을 행한 사람이 아니라면 죽을 때 며칠이나 몇 주 동안 앓기도 하고, 야차, 맹수, 원혼 같은 괴이한 현상을 보기도 한다. 이것 모두가 스스로의 업력이 불러온 것이다.

이때 너무나도 두려운 나머지 어떤 이는 눈을 감으려 하지 않고 어떤 이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려 하고 어떤 사람은 큰 소리로 욕하면서 눈앞의 괴물을 내쫓으려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네 가지 기운(四大)은 흩어지게 된다.


2. 네 기운이란 무엇인가?


네 기운이란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인 흙, 물, 불, 바람의 네 가지 기운을 말한다.

이 네 가지 요소는 우주법계에 없는 곳 없기에 크다(大)라고 부른다. 사람의 사대는 어머니 뱃속에 들면서부터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자라면서 네 기운은 강하고 생명력이 넘치게 된다.


이때 네 기운은 무엇을 판단하는 기능을 지닌 ‘나’가 된다.

사람이 죽으면 네 기운이 흩어지고 인식작용도 사라진다. 다만 업력에 따라 또 하나의 생명을 가진 네 기운을 이루어 그 업력의 기능을 수행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는 이 점을 명심해서 네 기운의 덧없는 모습에 속지 말아야 한다.


3. 네 기운(地, 水, 火, 風)이 흩어짐


네 기운으로 뭉친 몸이 흩어질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은 흙 기운이 물 기운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이때 죽음을 맞는 사람은 둘레의 압력이 아주 세게 몸을 짓눌러 오는 것을 느끼는데, 그 흙 기운은 몸의 모든 털구멍 속으로 스며들어 와 내장과 뼈를 짓누른다. 매우 심하게 숨이 막히고 큰 괴로움 속에서도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때 옆에 있는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의 몸이 떨리고 손발에 경련이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절대 만지거나 주물러서는 안 된다. 이 같은 행동은 죽음을 맞는 사람에게 더욱 더 심한 괴로움을 줄 뿐이다.


다음은 물 기운이 불기운으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몸은 찬 기운이 세게 느껴지고 뼈마디와 내장이 얼어붙는 듯한 괴로움이 하고 심해서 방 안에 난로가 있어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같은 괴로움은 알몸으로 얼음 속에 있는 것보다 더하고 얼굴빛이 잿빛으로 바뀌면서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다음으로 불기운이 바람기운으로 바뀌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때 죽는 사람은 몸의 기능이 다 되어 저항력이 사라지면서 더욱 심한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갑자기 온몸에 뜨거운 열기가 올라와 불에 타는 듯한 괴로움이 내장과 팔다리에 스며들고 힘살과 힘줄을 도려내는 듯한 괴로움으로 온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 버린다.


불에 타는 듯이 얼굴이 붉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마시는 숨보다 내쉬는 숨이 길어지다가 마침내 숨길이 멈춘다.


마지막으로 바람기운이 흩어진다. 갑자기 심한 바람기운이 죽는 이의 온몸을 몰아치며, 몸이 조각조각 먼지로 흩어지는 극심한 괴로움을 겪게 된다.


이쯤이면 네 기운이 흩어지고 힘살이 무너져 의학에서는 죽음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제8식이 아직 떠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죽음이라 하지 않는다. 이때 친척들은 절대로 죽는 이의 몸을 만져서는 안 된다. 몸을 만지면 죽는 이에게 극심한 괴로움을 주기 때문에 화를 나게 하여 죽는 이가 삼악도에 떨어질 수 있다.


죽음을 맞는 사람은 나쁜 신뿐만 아니라 선신이 나타나도 따라가지 말고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죽음을 맞기 앞서 넉 달이나 한 달, 3주나 이틀 동안이라도,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른 염불행자는 죽을 때 아래와 같은 상서로운 현상을 경험한다.


①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편안하다.


② 죽을 날짜를 뚜렷이 안다.


③ 온갖 끄달림이 사라진다.


④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⑤ 단정히 않아 합장한다.


⑥ 평화로운 빛이 온몸을 감싼다.


⑦ 염불하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는다.


⑧ 미묘한 향기가 밀려온다.


⑨ 하늘의 음악이 들려온다.


⑩ 지켜보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위의 상서 가운데 두 가지만 나타나도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특히 두 번째, 죽을 날짜를 알 수 있는 상서는 아주 중요하다.



4. 죽을 때의 다른 징조들


사람이 죽을 때 스스로가 살아온 삶의 습기인 선과 악이 모두 눈앞에 나타난다. 착한 일을 많이 한 이는 아랫몸이 먼저 식고 나쁜 일을 많이 한 이는 윗몸이 먼저 식는다.


마지막으로 식는 곳이 얼굴인 사람은 하늘나라에, 심장이면 사람, 배면 굶주린 아귀, 무릎이면, 짐승으로 태어나고, 발이 마지막으로 식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나 윤회를 벗어난 사람은 온몸의 온도가 식어버리고 다만 머리 위에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다.


[지옥을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사나운 얼굴로 사람들을 쳐다보고,

사랑하는 사람한테도 무서운 얼굴을 한다.


l 공중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잡으려고 한다.


l 다른 사람이 좋은 말을 해도 듣지 못한다.


l 매우 슬프게 운다.


l 똥, 오줌을 못 가린다.


l 눈을 감고 뜰 생각을 못한다.


l 자주 얼굴과 머리를 가린다.


l 옆으로 누워서 가래를 삼킨다.


l 입과 온몸에서 나쁜 냄새를 풍긴다.


l 다리를 몹시 떤다.


l 코가 옆으로 기운다.


l 눈에 핏발이 선다.


l 엎드려 눕는다.


l 몸을 움츠리며 왼쪽으로 눕는다.



[아귀를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입술을 자주 핥는다.


l 몸이 뜨겁다.


l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 무언가 먹으려 한다.


l 눈을 뜨면 감을 줄을 모른다.


l 두 눈이 말라 버린다.


l 오줌을 안 누고 똥을 가리지 못한다.


l 오른쪽 무릎이 먼저 차가워진다.


l 오른손으로 자주 주먹을 쥔다.



[짐승을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 보고 싶어 한다.


l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츠리려 한다.


l 온몸에 땀이 흐른다.


l 목소리가 쉬어버린다.


l 입맛을 계속 다진다.



[사람을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편안하고 착한 생각이 든다.


l 몸이 아프지 않다.


l 말이 많지 않고 부모 생각을 한다.


l 배우자를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고 친척의 이름을 듣기 좋아한다.


l 선악을 가려내고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


l 마음이 진실 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l 친척과 가족을 알아본다.


l 친척들이 한일을 칭찬한다.


l 집안일을 부탁하고 재산을 터놓는다.



[천인을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연민심이 생긴다.


l 착한 생각이 든다.


l 기쁜 생각이 든다.


l 밝은 생각이 든다.


l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다.


l 코가 옆으로 기울지 않는다.


l 화내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l 재산과 가족에게 미련이 없다.


l 눈이 맑다.


l 웃는 얼굴을 한다.



제 4 장 : 중유기로 들어가는 앞뒤단계


 

1.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


임종중음(臨終中陰)


죽어 몸과 마음이 흩어져 버리면 신령한 의식인 영식靈識이 중음이 세계로 들어간다.

이때 생긴 신령스런 몸이 바로 中陰身이다.


중음신은 괴로움, 두려움, 허둥댐의 시기를 맞는다. 죽음에 바로 든 이가 해탈할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갖는다.


첫 번째 기회는 죽는 순간 첫 번째 빛이 나타날 때이고 두 번째 기회는 죽은 뒤 빛이 나타 날 때 이다. 중음신이 이때 나타나는 빛을 바르게 가릴 수 있다면 바로 해탈을 얻는다.


실상중음(實相中陰)


l 첫 번째 7회의 해탈기회와 위기


죽은 뒤 사흘 반부터 열흘 반까지를 이른다. 이 시기에 중음신은 해탈할 수 있는 기회를 일곱 번 갖는다. 그러나 육도에 윤회할 수 있는 위기도 7번 갖게 된다.


본문에서 말하는 가르침을 잘 알아두고 해탈의 빛을 잘 헤아려 알면 바로 해탈에 이른다.


l 두 번째 7회의 해탈기회와 위기


죽은 뒤 열흘 반부터 열이레 반까지 이른다. 이 시기에도 중음신은 해탈할 기회를 일곱 번, 육도 윤회할 위기도 일곱 번 맞는다.


본문에서 말하는 가르침을 잘 알아두고 해탈의 빛을 잘 헤아려 알면 바로 해탈에 이른다.


투생중음(投生中陰)


죽은 뒤 열이레 반부터 49일까지를 이른다.


중음신은 환경이 더 없이 나빠져 육도에 태어나 다시 생사윤회의 괴로움을 받게 될 시기이다. 이때 중음신은 냉정하게 이 책에서 일러준 가르침을 생각해 내어 스스로를 육도윤회에서 건져내야 한다.


중음신은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고 또 어떤 모습과 소리가 보이고 들리더라도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아미타부처님께서 정토로 이끌어 주시기까지 한결같이 아미타불을 염불해야 한다.


2.임종


몸을 구성하고 있던 네 요소가 흩어지고 제8식이 몸을 떠나면 中有기에 이르니 이때의 몸을 中有身이나 중음신(中陰身)이라 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방황기이다.


죽을 때 마지막 숨을 내뱉고 들이쉬지 않는다고 온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이때 둘레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울거나 만져서는 안 된다.


이렇듯 죽은 듯한 상태가 얼마나 이어지는 가는 죽은 이의 건강상태에 달렸다. 구멍에서 노란 액체가 나오면 죽었다고 할 수 있다.


죽은 이가 아미타불을 염불하게 되면 큰 빛을 볼 수 있다.

이런 빛은 두 번 나타난다. 영식이 몸을 떠나면 혼수상태에 빠지고 사나흘이 지나야 깨어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중음신이 되는 첫날이다. 그래서 중유기간인 49일은 죽은 그날이 아닌 사나흘이 지난 뒤부터 계산한다.


3.중음신의 일반상황


중음신은 일종의 미묘한 네 요소(사대)로 이루어진 몸으로, 생전의 아홉 배에 이르는 기억력을 지니고 있고 대부분이 스스로가 죽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

장례를 치르는 친척이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때서야 자신이 죽은 몸 곁으로 와 자신의 죽음을 확인한다.


어떤 중음신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없는 것을 보고 죽었다는 것을 알기도 한다. 이때 중음신은 무척 마음이 상하고, 마음이 상하자마자 큰 괴로움을 느낀다.


중음신은 생전의 몸을 잊지 못해 자주 죽은 몸 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때 마다 타는 듯한 괴로움을 느낄 뿐이다.


중음신은 이렇게 정처 없이 헤맨다. 잠시 쉬려고 하지만 중음신은 사람과 달리 목숨이 길지 못하다. 어떤 때는 살아있던 때의 몸이 그리워 집에 돌아가 보지만 몸은 이미 땅 속에 있거나 불에 태워져 사라져 버린 뒤다. 중음신의 괴로움은 더욱 커가고 끝내 중음신은 이 같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을 찾는다.


이때 중음신이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바로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중음신은 괴로움에 휩싸이게 되고 구원을 갈망하는 사이에 여섯 가지 빛을 보게 된다.


이 여섯 가지 빛은 육도윤회의 빛으로 자기와 감응이 깊은 세계의 빛이 강하게 느껴진다.


하늘세계는 흰색,

사람은 노란색,

아수라는 연초록색,

짐승은 연파랑 색,

아귀는 연붉은색,

지옥은 검은색 빛이다.


이 빛들은 약한 빛으로 큰 밝음이 없다.


만약 중음신이 이 여섯 가지 빛 가운데 어느 한 빛 속으로 빠져들면 윤회의 굴레를 쓰게 된다. 중음신은 이 빛들이 뜻하는 바를 모르기 때문에 오직 직감과 업력으로 빛을 선택한다.


이때 오방불계(五方佛界)에 계시는 부처님들이 윤회하는 삶들을 건지려고 다섯 가지 빛을 뿌린다. 매우 밝지만 찬란하지 않은 파란빛, 청정한 흰빛, 곱고 부드러운 노랑 빛, 고귀한 붉은 빛, 맑고 성스러운 풀빛이 그것이다.


중음신은 이 빛에 따르면 바로 정토에 태어난다.


그러나 중음신은 스스로의 업력 때문에 이 빛을 두려워하면

마계(魔界)의 빛으로 잘못 알아 윤회(輪廻)의 길로 빠지고 만다.


이 부처님의 빛은 함께 나타나지 않고 하나씩 나누어서 나타난다.


4.악업을 받는 낌새


짐승


중음신(中陰身)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기절하여 다시 깨어난다. 몹시 불안해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장례식에서 동물이나 집짐승을 죽여 만든 음식으로 대접하면 무서운 형상이 나타나 삼악도로 이끈다. 그러므로 반드시 채식으로 상을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자는 큰 괴로움을 당한다.


중음신의 몸은 아주 가벼운 깃털처럼 바람 따라 정처 없이 휘날리게 된다. 또 갑자기 맹렬한 빛과 함께 우렁찬 천둥소리가 터지고 손에 흉기를 든 무서운 야차가 끝없이 나타나고 무서운 맹수들이 쫓아오고 산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큰 불꽃이 쫓아온다.


중음신은 겁에 질려 도망친다. 횐 색, 검은색, 붉은색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 높은 낭떠러지에 이른다. 야차와 맹수들은 계속 쫓아온다. 그때 홀연히 동굴이 보여 너무 기쁜 나머지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동굴은 짐승의 세계다. 야차와 맹수와 소리와 불꽃은 생전에 지은 자신의 업력(業力)이 일으키는 환상(幻像)이다.


흰색, 검은색, 붉은색은 업의 세 요소인 세 가지 毒素이다.


중음신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흔들림 없이 아미타불을 염불해야한다.


아귀(餓鬼)


아귀의 욕심은 끝이 없다. 아귀의 삶은 ‘구해도 얻을 수 없음’으로 줄곧 이어진다.


중음신에게 이 같은 악업이 있다면 자신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나 동굴에 홀로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아귀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보통 복덕이 있는 아귀와 복덕이 없는 아귀로 나눈다.


복덕이 있는 아귀를 세력 귀라 부른다. 세상 사람들이 숭배하는 신 가운데는 이 세력 귀들이 끼어 있다. 야차, 산신, 토지신이 여기에 속한다. 생전에 보시를 하면서 가난한 이를 도왔으나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거나 남을 속여서 돈을 모은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복덕이 없는 귀신에는 소아귀, 다아귀, 전아귀의 세 종류가 있다.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남을 위해 베풀지도 않은 이는 소아귀로 태어난다. 소아귀는 얼굴이 검고 말랐고 남색이나 붉은색이다. 눈에 눈물이 흐르고 손발이 부서지고 머리카락이 기러 얼굴을 가리고 있다. 목마름이 심하나 자손이 제사지내는 음식이나 절에서 공양하는 음식만 먹을 수 있다.


다아귀도 소아귀와 비슷하나 소아귀보다 괴로움이 심하다.

전아귀는 완전히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입에서 불길이 나와 음식이 입에 닿자마자 타버린다.

거기다 배는 크고 목구멍은 바늘보다 가늘어 배고픔이 극심하다. 우란분회에서 공양하는 음식만 먹을 수 있다.


만약 중음신이 이런 아귀와 감응할 징조를 느끼면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해야한다.


지옥


중음신이 살아있을 때 아주 나쁜 업을 지었다면 아래와 같은 현상을 보게 된다.


슬픈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그 음악소리를 따라가면 검거나 횐 돌로 만든 집이나 동굴로 들어서게 되고 깜깜한 지하도를 건너게 된다. 이것은 지옥에 떨어질 징조이니 중음신은 한마음으로 염불해야한다.


또 어떤 중음신은 추운 비바람 속에서 갑자기 뜨거운 불을 보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불이 있는 곳으로 가면 불꽃지옥에 떨어진다. 거꾸로 뜨거운 바람 속에 있다가 시원한 바람을 마나 그 바람 곁으로 가면 얼음지옥에 떨어진다.


이럴 때도 중음신은 한마음을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아수라


아수라는 본디 좋은 세계에 들지만 자주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싸우는 것을 좋아하니 아주 좋은 세계라고 볼 수는 없다.


남자 아수라는 하늘사람들과 쉬지 않고 싸움을 하고 여자 아수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수행자의 수행을 방해 한다.

아수라는 비록 괴로움을 받지는 않지만 목숨이 다하면 삼악도에 떨어질 위험이 많다.


살아있을 때 이기는 것을 좋아하고 지나치게 선악을 가려 낸 중음신은 중유기에 아름다운 숲을 보게 된다.

또 두 개의 불 바퀴가 나란히 도는 것을 보고 좋아서 가까이 가면 아수라로 태어난다.


이럴 때 중음신(中陰身)은 반드시 염불을 해야 한다.


5.선업을 받는 낌새


사람 


『아함경』에 따르면 인간계에는 네 가지 세상, 사대부주(四大部州)가 있다. 동승부주,남섬부주,서우하주,북구로주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사람이 살고 있는 남섬부주 말고는 불법이 없다.


북구로주는 복과 목숨이 길고 향락에 빠지기 쉬운 곳으로 절대로 이곳에 태어나서는 안 된다. 동승신주를 감응한 중은신은 아름다운 기러기들이 살고 있는 큰 호수를 보게 된다. 이런 경치에 이끌리면 이곳에 태어난다.


남섬부주에 감응한 중음신은 심한 추위로 피할 곳을 찾게 되는데 업에 따라 큰 집이나 작은집을 만나게 된다. 만약 벽만 있는 집을 만나게 되면 가난한 이로 태어난다. 이럴 때 한마음으로 염불하면 모든 현상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서우하주에 감응한 중음신은 소가 풀을 뜯는 호수를 보게 될 것이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많고 오래 살 수 있으나 불법이 없는 곳이니 절대로 따라 들어가면 안 된다.

중음신은 사람으로 태어나기 앞서 남녀가 결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아버지와 가까이 하려는 생각을 일으키면 여자로, 어머니와 가까이 하려는 생각을 일으키면 남자로 태어난다.


중음신은 자유로워 시공에 걸립이 없으나 한 번 어머니 배 안에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남녀가 결합한 모습을 보게 된 중음신은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해야 된다.


하늘사람


살아 있을 때 착한 업을 쌓은 중음신(中陰身)은 중유기(中有期)에 부드럽고 흰 빛을 보게 되고 기분이 날아갈 듯 편안하다.

하늘세계와 하늘사람들을 보게 되고 마음이 기쁘다.


어떤 이는 죽을 때부터 하늘음악 소리를 듣게 되어 둘레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늘세계는 여섯 가지 종류가 있다. 저마다 각가지 즐거움이 넘치고 목숨이 길기지만 인연이 다하면 다시 윤회하는 길에 들게 되니,

 

 이 같은 하늘 세계에 끄달려서는 안 된다. 중음신은 하늘세계나 하늘 사람인 천사들을 보면 여기 끌리지 말고,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그래야 윤회에서 벗어난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제 5 장 : 사람이 죽어서 49동안에 겪는 일들과 자기구제법


임종중음(臨終中陰)...죽은 직후 영혼의 상태


죽음을 맞는 이의 숨길이 끊어진지 스무 시간이나 서른 시간이 되면 죽은 이의 심령(心靈)은 밝은 빛 속에 있으면서 잠깐이나마 더 없는 편안함과 만족을 느낀다.


가족들은 죽은 이의 이런 상태가 깨뜨려지지 않도록 잘 살펴주고 정토염불법을 닦는 벗들이나 스님들을 불러 염불로 중음신의 의식을 더욱 밝혀주어야 한다.


염불을 해주면 중음신은 의식이 어두워지지 않고 바로 눈부신 빛 속에서 해탈에 이를 수 있으니 이것이 중음신에 해탈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이다.


잠깐 동안 밝은 빛이 터졌다 사라지는 경계가 계속 이어지는데 이때 중음신은 스스로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살아 있을 때처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이들을 보고 그들이 나누는 말을 듣는다.

 

이때는 무서운 업력(業力)에서 나오는 갖가지 환영(幻影)이 나타나기 전으로 중음신은 아주 밝은 빛 속에 있다.


만약 중음신이 살아 있을 때 이 가르침을 보거나 들었다면 바른 생각을 일으켜 계속 터지는 빛 속으로 해탈할 수 있다.


그러나 친척이나 친구들이 부르거나 그밖에 무서운 모습들을 보게 되면 이는 중음신을 삼악도로 이끌려는 현상임을 알아야 한다.

또 아름다운 하늘여인이 맞이하려 해도 결코 마음이 흔들려 따라가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윤회하는 괴로움 바다에 빠지게 된다. 살았을 때 움켜쥐었던 그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려야 한다.

꿈같고 물거품 같은 그것들에 끄달리고 그것들을 잊지 못하는 것은 중음신에게 큰 괴로움을 줄 뿐이다.


다 놓아버리지 않으면 끝내 해탈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다시 육도윤회에 빠지게 된다.


모든 생각을 다 버리고 아미타부처님께서 정토로 이끌어 주시어 나고 죽는 괴로움에서 건져 주시기를 마음 다해 기원해야 한다.


2.실상중음(實相中陰)..본격적인 저승길에 들어선 영혼


살아 있을 때 바른 가르침이나 스승을 만나지 못한 중음신은 중유기(中有期)에 헤매고 괴로워한다.


죽은 뒤 사흘부터 다시 깨어난 중음신은 눈, 귀, 혀, 몸, 의식의 기능이 본디대로 살아나 중유기간인 49일 동안 활동한다. 장님이나 벙어리였던 중음신도 이 기간에는 걸림 없이 보고 말할 수 있다. 중음신의 몸과 의식은 지극히 섬세하고 맑아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다. 중음신은 가족과 벗들이 슬피 울고 외쳐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중음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중음신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가족과 벗들에게 마음이 상해 자리를 떠난다. 이 단계에서는 업력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환영들이 잠깐씩 나타나기도 한다.

중음신은 해탈의 기회를 7번, 육도윤회에 빠질 위기도 7번 맞이한다.


만약 중음신이 이 가르침을 잘 외우지 못하거나 아미타불을 염불할 수 없어 업력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가지 무서운 현상들에 휘몰려 정신없이 쫓겨 다닌다면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 가운데 떨어져 무서운 괴로움을 받게 될 것이다.

 

중음신은 앞장에서 말한 일반현상 말고도 날마다 여러 가지 현상들을 경험하게 된다. 이 같은 현상에 휘말려 들지 않으려면 그 낱낱 현상들을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러면 반드시 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희락부제존(喜樂部諸尊)자기제도법


[죽은 뒤 첫이레 동안 자비로운 모습으로 나투는 여러 불보살을 만남]


첫째 날 : 중음신은 마치 맑고 푸른 가을 하늘처럼 보이는 온통 파란색의 세계를 본다.


그 파란색의 한가운데서 비로자나부처님이 사자좌에 앉아 가슴으로 부터는 눈이 부신 파란빛을 중음신에게 내린다. 이 때 부드럽고 옅은 흰빛도 함께 온다.

중음신은  이 흰빛이 아니라 반드시 파란빛으로 들어 가야한다.


둘째 날 : 물 기운의 맑고 깨끗한 흰빛이 중음신을 향해 쏟아진다.


이는 금강부의 부처님이 상황보좌를 타고 중음신을 이끌려고 내리는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이 있다. 이때 안개와 같은 검은 빛이 함께 오는데 이빛은 지옥의 빛이니 결코 들어가서는 안 된다.


셋째 날 : 흙 기운의 눈이 부신 황금빛이 중음신에게 내려온다.


이는 보생여래(寶生如來)가 보마보좌(寶馬寶座)를 타고 중음신을 건지려고 내린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허공장보살과 지장보살과 보현보살이 있다. 이때 옅은 노란색에 파란색을 띤 빛이 함께 내려온다. 이 빛은 사람세계로 이끄는 빛이다. 해탈을 바라는 중음신은 눈부신 황금빛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넷째날 : 불기운에 붉은 보배광명이 중음신에게 내려 온다.


이는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부처님이 공작왕(孔雀王)보좌를 타고 중음신을 건지려고 내린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있다.


이 때 아귀세계로 이끄는 연 붉은 빛도 함께 내려온다.

결코 붉은 보배광명을 피하면 안 된다. 아귀세계에 빛은 부드럽지만 욕심이라는 업의 기운에서 나오는 빛이다.


다섯째 날 : 바람기운의 맑고 깨끗한 초록빛이 중음신에게 내려온다.


이는 불공성취불(佛空成就佛)이 인신조체수왕(人身鳥體獸王)보좌를 타고 중음신을 건져내려고 내린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금강수 보살과 제개장보살이 있다. 이때 아수라 세계로 이끄는  어두운 초록빛도 함께 내려온다.


어두운 초록빛은 성내고 탐내는 나쁜 업의 기운에서 나타난 것이니 절대 이빛속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여섯째 날 : 이날에는 아직 방황하고 있는 무거운 업의 중음신을 향해 앞에 나타난 다섯 부처님들의 빛이 함께 내려온다.

이 빛은 본디 맑고 깨끗한 스스로의 깨달음의 빛인 참고향이니 중음신은 이 가운데 한 빛을 따라가게 된다. 이때 자신의 업력에 빛인 옅은 빛도 함께 나타난다.

하늘나라는 옅은 흰빛, 사람은 옅은 노란빛, 아수라는 옅은 초록빛, 짐승은 어두운 파란빛, 아귀는 옅은 피 빛, 지옥은 뽀얀 검은빛이다.


이 같은 빛들은 깨달음의 빛 속에 섞여 내려온다.

결코 맑고 눈부신 빛을 피해 약하고 부드럽고 어두운 빛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살았을 때 신을 숭배하고 하늘나라에 태어나기를 소망했던 중음신들은 그런 소망을 비워야 한다. 만약 비우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는 흰빛을 따르면 나고 죽는 윤회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일곱째 날 : 엿새 동안에 기회를 다 놓친 중음신은 다시 7일을 맞이하게 된다. 이 날은 오부존자(五部尊者)가 동, 서, 남, 북, 중앙에서 오른손으로는 항복수인(降伏手印)을 지으면서 보배 칼을 높이 들고 왼손에는 피가 담긴 해골을 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중음신에게 빛을 내린다.


이 때 짐승에 길로 이끄는 파란빛이 내려온다. 존자가 내려 주는 빛 속에는 천배로 증폭된 천둥소리가 들린다. 중음신을 결코 두려워 면서 짙은 파란빛으로 들어서서는 안 된다.


존자들에 내려주는 지혜에 빛은 본래 스스로의 본디 광명에서 오는 것이고 축생도의 빛은 어리석은 업력(業力)에서 나온 것이다.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정토(淨土)에서 태어난다.




분노부제존(忿怒部諸尊)의 자기구제법…살아생전에 화를 낸 업력이 나타남


죽은 뒤 둘째 7일 동안에 성낸 모습 짓는 불보살을 만나게 된다.


자비의 모습으로 인도받지 못한 중음신은 분노의 모습을 통해 이끌림을 받게 된다.


악업을 지은 중음신은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친근감이 일어나 고향에 돌아 온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불보살은 중생의 악한 성품을 잘 알고 있기에 가지가지 성내는 모습을 나투어 그 중생을 제도한다. 이것은 중생을 괴로움에서 건지려는 불보살의 자비이자 스스로의 깨달음의 성품이 스스로를 회복하려는 자연스런 움직임이다. 이때 중음신은 이런 현상이 불보살의 자비이고 스스로의 의식이 지어낸 현상임을 알아 겁내거나 달아나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제도법을 한번 보게 되면 의식이 아홉 배나 맑아진 중유기에서 바르고 두려움 없이 윤회를 벗어 날 수 있다.


이것은 중유기에서 자기를 제도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이니 종교와 상관없이 다른 방법으로 자기를 구할 수 없다.


여드렛 날 : 피를 빨아 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홍갈색의 몸을 하고 얼굴 셋에 손이 여섯이고, 발은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색, 왼쪽얼굴은 붉은색, 가운데 얼굴은 흙 갈색으로 온 몸이 불꽃에 휩싸여 있고 아홉 개의 눈으로 빛을 쏘아 내고 있다.


날카로운 이빨과 눈썹에서는 번개 같은 빛을 내고 산이 무너지는 큰소리로 ‘아라하, 하하!’하고 소리친다. 이는 비로자나부처님께서 중음신을 건져주려고 나타낸 모습이다. 절대 겁내지 말고 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아흐렛 날 : 금강부의 피를 빨아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파란색으로 얼굴 셋에 팔은 여섯 개, 발은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빛, 왼쪽얼굴은 붉은빛, 가운데 얼굴은 파란빛이다.


이는 자신의 업식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금강보살의 화현으로 귀의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열흘 날 : 보부(寶部)의 피를 빨아 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황색으로 얼굴 셋에, 팔이 여섯, 발이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빛 ,왼쪽 얼굴은 붉은빛, 가운데 얼굴은 노란빛이다.


이는 업식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보생여래(寶生如來)의 화신(化身)으로 귀의(歸依)하면 정토(淨土)에 태어난다.


열 하룻날 : 연화부의 피를 빨아 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녹색으로 얼굴 셋, 팔 여섯, 발은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빛, 왼쪽 얼굴은 파란빛, 가운데 얼굴은 붉은빛이다. 이는 자신의 업력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귀의 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열 이튿날 : 갈마부의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녹색의 얼굴 셋, 팔이 여섯에, 발이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색, 왼쪽얼굴은 파란빛, 가운데 얼굴은 풀빛이다.


이 또한 자신의 업력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불공성취불(佛空成就佛)의 화신(化身)으로 귀의(歸依)하면 정토(淨土)에 태어난다.


열 사흗날 : 이때는 중음신의 업력에서 나오는 집착으로 허깨비와 같은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주 위험하다. 이때는 동서남북 그리고 그 사이와 위, 아래 팔방에서 무서운 얼굴을 한 분노존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중음신의 업력에서 일어난 환상(幻像)이니 절대 겁먹거나 달아나지 말고 한마음으로 귀의 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열 나흗날 : 이날에 중음신 스스로의 업에서 나타난 화내는 존자와 이십팔여신이류존자(二十八女神異類尊者)들이 보인다. 그 모습은 다음과 같다.


1.동쪽 


l 짙은 붉은색의 소머리와 방패, 해골을 들고 있다.


l 황홍색의 뱀머리와 연꽃을 들고 있다.


l 검은 초록색의 표범머리와 삼지창을 들고 있다.


l 검은 원숭이 머리와 굴레를 들고 있다.


l 붉은 곰머리와 짧은 창을 들고 있다.


l 흰곰 머리와 쇠줄을 들고 있다.




2.남쪽


l 노란색의 박쥐머리와 칼을 들고 있다.


l 붉은 사자머리와 향로를 들고 있다.


l 붉은 전갈머리와 연꽃을 들고 있다.


l 흰독수리 머리와 방패를 들고 있다.


l 검은녹색의 여우머리와 곤봉을 들고 있다.


l 검은 황색의 호랑이 머리와 해골그릇을 들고 있다.




3.서쪽


l 검은 녹색에 독수리 머리와 짧은 곤봉을 들고 있다.


l 붉은색 말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송장을 들고 있다.


l 흰독수리 머리와 곤봉을 들고 있다.


l 노란개머리와 방패, 칼을 들고 있다.


l 붉고 목이 길면서 부리가 굽은 새머리와 활을 들고 있다.


l 녹색 사슴머리와 보배 솥을 들고 있다.


4.북쪽


l 파란색의 늑대머리와 작은 깃발을 들고 있다.


l 불고 굽은 뿔을 한 산양머리와 앞이 날카로운 곤봉을 들고 있다.


l 검은 멧돼지 머리와 이빨로 이어진 고리를 들고 있다.


l 붉은 까마귀 머리와 아이의 송장을 들고 있다.


l 검녹색의 코기리 머리와 송장, 해골을 들고 있다.


l 파란색 뱀머리와 긴 줄을 들고 있다.


5.바깥쪽에 있는 네 문


l 동문 : 검은 꾀꼬리 머리와 쇠고리를 들고 있다.


l 남문 : 노란 산양머리와 밧줄을 들고 있다.


l 서문 : 붉은 사자머리와 쇠줄을 들고 있다.


l 북문 : 녹색의 뱀머리와 종을 들고 있다.


이 같은 진노존자(嗔怒尊者)들은 모두 자비심에서 태어난 모습이니 겁내지 말고 잘 가려내어 한마음으로 염불하면 바로 정토에 태어날 것이다.


만약 중음신이 49일 동안에도 정토에 태어나지 못하고 헤매게 되면 온갖 마왕들이 흉악하고 난폭한 모습으로 중음신을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이럴 때도 중음신은 절대로 겁내지 말고, 염불발원(念佛發願)하면 정토(淨土)에 태어난다.


3.투생중음(投生中陰)


투생중음과 심판


투생중음이란 다시 태어나는 중음신을 말한다.


중음신이 만약이 지은 악업에 걸려 두렵고 무서움의 괴로움을 받으면서 죽은 지 17일반이 지나도록 정토에 태어나지 못하면 처참하고 더욱 괴롭고 무서운 경계를 만나게 된다.


악업을 지은 중음신은 무섭게 불어 대는 악업의 바람에 날리고 끝없는 암흑 속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죽여라! 죽여라!”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산목숨을 즐겨 죽인 중음신은 나찰에게 잡아먹히거나 무서운 맹수들에게 쫒기거나 추위, 뜨거움, 큰물, 눈 조각, 암흑, 거친 바람, 무너지는 산, 하늘까지 타오르는 불길, 살을 에이는 칼바람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만난다.


중음신은 줄 곳 무섭고 두려움에 쫓겨 스스로의 욕심, 성냄,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붉은빛, 흰빛, 검은빛의 낭떠러지를 만나게 된다.


이때 중음신이 받는 괴로움은 말로 다할 수 없고 그 처참하기가 그 보다 더할 수 없다. 생각은 재처럼 죽고 뜻은 얼음처럼 차가워져서 춥지 않은데도 심하게 떤다.


이에 중음신은 자신이 머물던 몸을 찾지만 몸은 이미 죽어 얼었거나 썩었거나 아니면 화장이 되었거나 땅에 묻혀 있는 것을 보고는 큰 바위틈에 짓눌리는 것 같이 말할 수 없는 큰 괴로움을 받는다. 이때 육도로 이끄는 빛이 중음신을 비추는데 만약 중음신이 몸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스스로 지은 업에 따라 여러 갈래 빛 가운데 어느 한 빛 속으로 들어가 끝없는 육도윤회의 괴로움을 받게 된다.


이때 중음신은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사나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칠 흙 같은 어두운 안개 속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의 무리들이 하늘 가득 타오르는 불꽃을 보기도 하고 큰 산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또 성난 바다가 덮쳐오는 듯한 소리를 듣기도 하고 귀를 막는 희고 붉고 검은 세계의 큰 낭떠러지를 만나기도 한다. 중음신이 두려워 거나 놀라서 숨을 곳을 찾으면 가지가지 짐승의 몸으로 태어나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저 두렵고 무서운 중음의 상황들이란 실재하지 않는 허깨비로, 놀라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 마음을 기울여 아미타불을 부르면 한 생각 사이 금빛 몸의 아미타불께서 백호로 눈부신 빛을 비추시며 바로 눈앞에 나타나 정토로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이다.


중음신은 가지가지 험한 모습을 한 귀왕들에게 심판을 받고 온갖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중음신은 이 모든 현상이 스스로가 지은 나쁜 업에서 흘러나온 현실임을 알고 『반야심경』에서의 가르침인 “모양이 비어 있음이고 비어 있음이 곧 모양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가르침이나 『금강경』말씀인 “모든 모습을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如來)를 보리라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의 진실한 뜻을 잘 관조해야 한다.


그러면 중음신은 살아있을 때보다 아홉 배 맑은 영성으로 쉽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만약 그래도 진실한 뜻이 밝혀지지 않으면 모든 두려운 모습들에 눈을 팔지 말고, 다만 아미타불만을 지극하게 부르면 험한 중음계를 벗어나 정토에 태어난다.


만약 중음신이 남녀가 음행하는 모습을 보거든 냉정함을 잃지 말고, 절대로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샘내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만에 하나 이런 마음을 내면 바로 윤회하는 아기집 속에 들어가 짐승의 몸을 받아도 본인의 의식은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이럴 때 중음신은 결코 탐애, 성냄, 교만, 시기심을 일으켜서는 안 되고 평정을 잃지 말고 오직 염불하는 마음만을 이어가야 한다.


만약 이 같은 노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모든 경계가 실재가 아님을 깨닫기 어려우면 음행하는 남녀를 관세음보살의 화현으로 보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한마음 한뜻으로 예배하면 모든 욕심이 사라져 아기집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또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거룩한 모습의 아미타부처님께서 눈앞에 나타나 어느새 정토로 이끌어 주신다.


윤회하는 아기집에 들어가지 않는 길


희락부의 오방부처님의 빛과 분노제존의 빛은 중음신 스스로의 본디 생명이 빛이다.


그 빛을 받고도 지어놓은 나쁜 업력에 이끌려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또 바른 생각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지 않아 해탈의 길로 나아갈 수 없다면 중음신은 더더욱 험하고 위험한 투생중음의 단계로 접어든다.


투생중음기의 중음신은 스스로의 선악업력의 감응에 따라 자신의 존재가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떨어지거나 옆으로 옮아가는 느낌이 든다. 뒤이어 폭풍, 찬바람, 우박, 진눈깨비, 암흑이 펼쳐지는 상황을 만나거나 누군가 뒤쫓아 오는 느낌을 받는다.


좋은 업을 쌓지 못한 중음신은 괴로운 경계를 피해 도망 다니기 바쁘고 좋은 업을 쌓은 중음신은 아주 편안한 느낌을 갖는다.


중음신은 스스로의 업력에 따라 다시 태어날 몸을 받는데 이때 중음신을 이끄는 빛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중음신이 한번 이 빛 가운데 들어서면 다시 윤회하는 삶인 육도의 아기집속에 빠져들게 된다.


투생중음기에 모든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참되고 맑은 생각을 일으키면 바로 육도윤회의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만약 음행하는 남녀를 보면 흔들림이 없도록 해야 되고 결코 마음이 움직여 탐애심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자신의 생명의 어머니인 관세음보살이 화현하신 모습이라 여기고 절하고 예배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아기집의 문이 저절로 닫힌다.


만약 중음신이 아주 무거운 업력 때문에 위에서 말한 방법으로도 여전히 아기집의 문이 닫히지 않아 이미 아기집 속에 들어갔음을 알게 되었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다시 아기집을 벗어 날 수 있다.


아기집에 들어갈 때 스스로의 경계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허깨비임을 관찰하고 거짓을 참으로 삼는 집착을 깨뜨리고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아기집을 벗어나 해탈에 이른다. 중음신은 앞에 펼쳐지는 현상들을 이렇게 밝게 보아야 한다.


“아! 부모여, 함께 몸을 섞는 모습이여, 검은 빗줄기여, 거친 바람이여, 간장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리여, 울부짖는 귀신의 외마디여, 모두가 덧없어 참으로 있는 것이 없구나.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그것이 어떤 소리든 그것은 마치 물거품처럼, 거울 속의 그림자처럼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것은 다만 나의 업식에서 일어난 모습과 소리인 것을…이제 다시 내가 그것들과 함께 어우러진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나의 업식도 본디 덧없는 것인데 하물며 그것이 지어낸 모습과 소리가 실재일 수 있는가!


이 같은 진실을 모르고, 거짓을 참으로 삼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여겨 끝없는 윤회의 강물에 휩쓸려 지금에 이르렀으니 아! 윤회여, 이제는 사라지거라, 물거품 같은 윤회여.”


이렇게 관조하면 어느 새 큰 평화로움이 밀려오고 중음신은 태어남이 없는 고요함 속에 더없이 말고 밝아져 윤회하는 아기집을 영원히 떠나게 된다.


거듭 말하지만 중음기에는 살아 있을 때보다 영성의 힘이 아홉 배나 밝으니, 이 힘을 한껏 활용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투생중음신은 난생, 태생, 습생, 화생 가운데 어느 하나로 태어나게 된다.

정자와 난자가 서로 만나는 순간 중음신은 큰 쾌락을 느끼며 이 쾌락 속에서 의식을 잃고 알이나 태속에서 몸을 받고 태어나 두 눈을 뜬 뒤에야 자신이 돼지, 소, 개, 염소 또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또는 육도에 윤회하는 몸을 받아 갖가지 괴로움을 받게 된다.


거꾸로, 지금 살아서 닦는 수행은 중음기보다 아홉 배나 어려운 수행이라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이생에 닦는 수행이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중음기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큰 것이다.


만약 근기가 낮고 업장이 무거운 데다 한량없는 옛 생부터 지어온 나쁜 버릇으로 모든 해탈법문이 도움이 되지 않는 중음신은 제4장에서 밝힌, 투생중음이 맞는 여섯 가지 세계를 잘 가리고 나아갈 길을 바르게 잡아 마지막 해탈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제 6 장 : 제 8 식과 중음신(中陰身)-마지막 의식구조


1.식(識)의 감응


중유기에 경험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전능한 신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가장 깊은 의식 구조인 제 8식(아뢰야식)이 지어낸 현상들이다. 어찌 중유기의 현상들 뿐 이겠는가.


태어남, 죽음, 윤회, 괴로움, 즐거움 같은 삶의 현상들도 다 마찬가지다.


제 8식은 주관과 객관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 삶의 마당인데 갈무리한 삶의 모든 내용과


그 기능이라는 쪽에서 아뢰야식 이라고 한다.


아주 강력한 탐욕의 기운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생의 아뢰야식은 끝없는 망상 속에서 자기를 본떠 만들어서 몸과 환경을 지어 가는데 그 과정이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뢰야식의 특징은 놀라운 갈무리 능력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고, 저지르는 모든 삶의 경험들을 컴퓨터와 같이 고스란히 갈무리한다.


이렇게 갈무리한 낱낱의 삶의 경험들을 종자, 곧 씨앗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때 말하는 씨앗의 개념은 수행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꾸어질 수 있다.


그리고 아뢰야식(제8식)은 이러한 씨앗과 씨앗 사이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유기적 생명활동이라는 점에서 콩씨, 팥씨나 컴퓨터의 기억내용과는 다르다.


중생이 수많은 삶을 살면서 얻은 삶의 경향은 모두가 욕심, 성냄, 어리석음, 잘난 체함. 삿된 의심 같은 번뇌에서 온 것이다. 번뇌가 없다면 윤회의 괴로움도 없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삶을 윤회로 이끄는 뒤바뀐 삶의 경향을 업(業)이란 한다.


중생은 이 같은 업으로 스스로의 삶의 마당인 제8식을 삼고 있는 것이다.


8식은 새로운 생명활동을 결정짓는 힘이다. 죽을 때는 마지막으로 떠나고 다시 태어날 때는


먼저 들어가 생명형성의 조건을 결정짓는 힘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지어놓은 8식에서 터져 나오는 삶의 현상들을 실재하는 것으로 인식할 때 삶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 빠져든다.


중유기에도 마찬가지이다.


8식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환상들을 바르게 읽지 못하면 윤회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창조신을 숭배하고 삶과 죽음까지도 창조신의 조화로 여기는 행위도 자신이 지어놓은 깊은 의식인 8식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처럼 중유기에 든 중생이 8식의 감응을 바르게 아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8식에서 일으키는 선악의 생각에 따라 중음신은 천당이나 지옥 같은 가지가지 세계를 지어낸다. 그러나 이렇게 지어낸 세계는 좋든 싫든 영원한 것은 없다. 지어낸 세계에 따라 그 기간이 길거나 짧은 차이는 있지만 이것은 모두 8식의 조건에 따라 나타나는 과보로, 8식의 조건이 바뀌면 세계고 바뀌기 마련이다. 신을 섬기면 신의 세계가 나타나고 욕심을 섬기면 욕심의 세계가 나타난다.


중생의 어리석음은 이같이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8식의 현상들을 진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있다.


제8식 아뢰야식이 무엇인지 바르게 아는 일이야 말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여실관(如實觀)이고 어리석음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2.염불법문(念佛法文)의 감응




불법(佛法)을 믿지 않는 이들은 염불법문의 오묘함을 알지 못한다.


중생은 시작이 없는 옛적부터 스스로의 삶을 굴려온 허깨비 같은 8식의 힘을 한꺼번에 없애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끝없는 자비원력을 일으켜 중생들로 하여금 건너기 힘든 윤회의 강을 쉽게 뛰어 넘게 하신다.


아미타불의 자비원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8식의 본디 모습인 아미타불의 세계를 청정한 마음으로 불러 정토에 태어나게 한 뒤 그 근기에 따라 저도 모르게 8식에 녹아 있는 삼독번뇌를 남김없이 없애주는 위없는 방편을 말한다.


이것은 중생이 윤회하는 삶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힘 있는 실천법이다.


사람이건 앵무새건 원숭이건 지극한 한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그는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 윤회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나무아미타불’은 신비한 암호와도 같아서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괴로움일지라도 쉽게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업장이 무거운 중생일수록 염불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 종파가 있고 종파에 따른 독특한 가르침이 있다.


가르침은 저마다 뛰어나고 훌륭하다. 그러나 염불법문 밖의 가르침들은 그것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려면 많은 생을 두고 닦은 숙세(宿世)의 근기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중생의 성품이 흐리고 생활이 복잡한 시대에는 섣불리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수행법이나 실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오직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왕생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아미타경』을 비롯해 『무량수경』.『관무량수경』.『법화경』.『화엄경』.『능엄경』.『대집경』.『대운경』 『반주경』같은 많은 경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문수보살,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도 염불을 발원했고, 마명스님, 용수스님, 혜원스님, 천태스님, 원효스님, 서산스님, 감산스님, 같은, 불문이 수많은 용상대덕(龍象大德)들이 염불법문을 수행했다.


염불법문은 불법의 큰 줄기다. 선종(禪宗)에는 돈(頓),점(漸)두 파가 있는데 돈파(頓波)에서는 근기(根機)에 따라 문득 깨달아 불법의 모든 것을 이루게 하고 점파(漸派)에서는 점차로 수행을 닦아 본성을 되찾게 하는 가르침을 편다.


염불법문은 돈, 점의 수행공덕을 함께 이루어 준다.


또 꾸준히 염불하면 스스로 죽을 날을 알게 되어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죽음을 맞는 법을 몸으로 가르치고 보여 주어서 그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공부를 하게 하는 큰 공덕을 지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죽음에 거의 다다라 좋은 스승을 만나서 염불수행을 하다 바로 정토에 태어나기도 하니, 이것은 돈파(頓波)에서 말하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참선수행은 마념(魔念)의 침해를 쉽게 받지만 정토수행(淨土修行)에는 그럴 위험이 거의 없다.


밀종(密宗)의 수행은 만트라를 수지하는 수행법이지만 밀법수행도 숙세의 근기가 있어야 한다. 끈기 있게 애써 수지한다면 이룰 수도 있지만 죽음을 잘 맞을 수도 있다는 보장이 없다.


죽을 때 무거운 업장 때문에 자칫 정념(正念)을 잃어 만트라를 수지하지 못한다면 다시 윤회 속에 빠지고 만다.


염불법문은 말법시대에 가장 맞는 수행법이다. ‘아미타불’,이 염불은 만트라 가운데 만트라로서 한 번 불러도 왕생하고 열 번 불러도 왕생한다.


그래서 목련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염불법문처럼 쉽고 간단한 법문을 수행하지 않고 다른 수행법을 실천하는 것은 마치 장님이나 귀머거리 같다.”


염불법문은 너무나 간단하다. 그저 딴 생각 없는 간절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수행하면 아미타불의 큰 원력을 믿게 되고 윤회하는 괴로움을 절실히 느껴 해탈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수행하면 시작 없는 옛날부터 지어온 업장을 참회하고 참된 귀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이렇게 수행하면 덧없는 나고 죽음의 절박함을 알게 되어 결코 게으르지 않게 된다.


‘아미타불’을 부르는 진리의 힘을 8식의 내용이 바뀌면서 본디의 자기 모습인 끝없이 밝은 佛性이 환히 드러나니 이것이 바로 ‘자성미타(自性彌陀)’이다. 자성미타는 생명의 참 모습이자 부처님의 염통이다.


중생은 삼독번뇌로 육도의 업보를 받게 되고 깨달음으로 정토에 태어난다. 날마다, 날마다 아미타불을 부르면 8식이 부처님의 세계로 피어나고, 그릇된 업으로 살면 8식이 삼악도를 지어낸다.


또한 염불도 입과 마음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해야지 입만 염불하고 마음으로는 나쁜 생각을 한다면 무슨 공덕이 있겠는가. 오히려 악한 사람일지라도 참마음으로 염불하면 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3.부모불(父母佛)의 감응


머무름이 없는 열반인 무주열반에 드신 부천님은 인연중생을 건져 주시려고 가지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중음신의 윤회는 비록 업력 때문에 이루어지지만 중음신은 윤회할 생명으로 아기집 속에 들어가기 앞서 부모가 결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음행의 업에 물든 중생은 쉽게 생각이 뒤집혀 버린다. 이 일을 잠깐 뉘우쳐 보지만 그것은 이미 아기집 속에 든 뒤의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같은 중생을 제도하시려고 남녀가 끌어안고 있는 쌍신불의 모습을 나투신다.


부모불의 모습에 이끌려 들어와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바른 귀의를 이룬 중음신은 정토에 태어나게 된다. 이 같은 부모불의 모습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은 중유기에 들어간 중음신이 이 같은 모습을 보면 곧 다가가 정토에 왕생하라는 뜻이다.


부모불의 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부모불에 사악한 느낌을 갖기 쉽다. 하지만 부모불이 사악하다고 한다면, 사람을 창조해 놓고 지어낸 사람이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나쁜 짓을 저지를 때 사정없이 벌을 내리는 창조신은 어떠한가.


부모불의 모습까지 나투며 끝까지 어린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부처님의 자비심은 참으로 끝이 없다 하겠다.


 

제7장 : 죽는 법과 죽는 이 보살펴 주기


1.죽기에 앞서  주의할 일들


l)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정신이 아직 맑을 때 스님을 모셔온다. 그래서 정토에 대한 믿음과 반드시 그 곳에 태어나겠다는 원을 일으켜 주고 기쁜 마음으로 염불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제지보살이 크나큰 빛살을 타고 오시어 정토로 이끌어 주시는 것 말고는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흔들림이 없도록 잘 일러주어야 한다.




2) 죽을 사람이 염불하기를 싫어하거나 괴로워 발버둥치거나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업장이 드러난 것으로 정토에 태어나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


이럴 때일수록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참회하거나 왕생주(往生呪)를 108번 지송하거나 『지장경』을 읽고 그 공덕을 죽는 사람의 마음상태에 따라서 함께 염불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3)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더는 목숨을 이어가기가 어렵다고 판단될 때는 바로 가족들과 상의해서 빨리 병에서 집으로 데려간다.


죽은 사람이 조용하고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염불하도록 해야 한다.



4) 죽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고 혹시나 당부할 일이 있는지 물어서 죽은 사람이 죽은 뒤의 일을 걱정하거나 매달리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당부하거나 정리할 일을 다 말하게 한 뒤로는 모든 세상인연을 다 놓아버리고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 육도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5) 가족들은 죽는 사람의 곁에 모여 함께 염불한다. 불보살님께서 자비를 드리워 죽는 사람이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길 정성스런 마음으로 기원해 주어야 한다.



6) 가족들이나 벗들은 절대로 죽는 사람의 마음이 약해질 만큼 지나치게 부드럽고 사랑스런 말을 건네거나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죽는 사람이 가족에 끄달려서 바른 생각을 잃고 나쁜 길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목숨을 거둔 뒤에 주의할 일들



죽는 사람의 의식은 숨을 거둔 뒤에도 몸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으면서 여전히 지각활동을 하고 있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12시간쯤 지나 죽는 사람의 온몸이 차갑게 식고 의식이 몸을 떠난 뒤에 비로소 죽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 12시간 안에는 모든 행동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여 죽은 이가 동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1) 좋은 방편으로는 죽은 이를 편한케 하여 바른 믿음을 내게 해준다.

스님이나 함께 염불할 수 있는 벗들을 불러 죽은 이의 상황에 따라 정토로 이끌어 준다.

염불할 때는 실제 상황에 따라 때에 맞게 이끌어 주고 왕생에 대한 믿음과 바람을 일깨워 준다.




2) 번갈아 가면서 염불한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경건하게 염불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죽은 이의 신식(神識)이 염불하도록 이끌어 주고 아울러 염불 공덕을 죽은 이에게 돌려준다.



3)결코 죽은 이의 몸을 만지거나 흔들어서는 안 된다.


죽은 이의 몸을 바삐 씻거나 옷을 입히거나 영양제 주사바늘 같은 것을 뽑거나 하는 것은 죽은 이에게 말할 수 없이 큰 괴로움을 주는 행동이다.


만일 어쩔 수 없이 죽은 이를 옮겨야 할 때는 반드시 큰 소리로 염불해야 한다.


끊임없이 주의해야 할 것은 모기, 파리, 개미 같은 벌레가 죽은 이의 얼굴이나 몸에 붙거나 기어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4) 소리 내어 울거나 죽은 이의 몸에 눈물을 떨러 트려서는 안 된다.


울음을 참을 수가 없거든 다른 곳에 가서 울고 가라앉으면 다시 돌아와 염불해준다.




5)시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


염불하는 곳에서 기침이나 하품, 재채기를 하거나 전화소리, 가족들이 의논하는 소리를 내서 염불하는 망자의 의식을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된다.




6) 세상 풍습에 따라 죽은 이에게 종이돈을 올리는 등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죽은 이에게 끄달리는 마음을 일으켜 정토에 태어나는 일을 방해  해서는 안 된다.


또 염불하는 방안의 공기를 더렵혀서 염불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7) 병원에서 목숨을 마친 이의 몸을 냉동처리 하거나 방부 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


냉동처리 하면 죽은 이에게 얼음 지옥에 빠진 것과 같은 괴로움을 준다.


송장이 썩을 까봐 걱정되면 좋은 향을 피우거나 얼음을 방안에 놓아두되 절대로 얼음을 송장위에 놓거나 너무 가까운 곳에 두어서는 안 된다.



8) 송장이 차갑게 식은 뒤에 두어 시간 지난 뒤에 목욕을 시켜주고 옷을 입힌다.


절대로 마음대로 행동하지 말고 잘 아는 이나 경험 있는 이를 불러서 처리해야 한다.


만약 이런 사람이 없거든 가족들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뼈마디가 굳었을 때에는 더운물에 적신 수건을 덮어 주면 저절로 펴진다.




9) 화장은 7일 뒤에 하는 것이 원칙이다.


만에 하나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크게 다치거나 병을 앓다 죽은 경우에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3.왜 염불해 주어야 하는가?




죽은 이가 정토에 태어나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서이다.


염불해주는 이는 왕생정토에 대한 도리와 방법을 분명히 알아야 죽은 이를 도울 수 있다.


죽은 이에 따라 신식(神識)의 모습이 저마다 다르다. 숨길이 끊어져 죽으면 살아온 삶의 경향이 낱낱이 그림자처럼 나타나고 이것이 본성에 달라붙어 바깥 경계를 향해 설쳐댄다.


이때에는 완전히 업이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는데 힘이 큰 업일수록 곧바로 들어난다.


악업(惡業)을 많이 지은이는 악종자(惡種子)의 힘이 커서 이 씨앗의 기운이 들어나면 삼악도에 떨어진다. 선업(善業)을 많이 지은이는 善種子가 하늘 세계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살아 있을 때 염불공부를 한 이라면 염불 씨앗이 있기 마련이다.


이 염불 씨앗의 힘이 아주 커서 다른 씨보다 먼저 나타나면 불보살의 힘이 아주 커서 다른 씨보다 먼저 나타나면 불보살의 자비광명을 따라 정토에 태어난다.


그러나 염불씨앗의 힘이 적어서 잘 나타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이 곁에서 염불을 도와주면 죽은 이의 염불씨앗이 쉽게 나타나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살아 있을 때 경전을 독송한 이, 만트라 수행을 한 이 가릴 것 없이 죽음에 다다르면 오직 ‘아미타불’이 염불씨앗이 나타나야 힘이 되고 빛이 되어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4. 어떻게 죽는 이를 도울 수 있는가?


『지장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어떤 이가 죽은 날에는 산목숨을 죽이는 일 같은 나쁜 인연을 짓거나 신에게 기대는 행동을 하지 말라.


왜 그런가? 이 같은 행위가 털끝만큼도 죽은 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쁜 인연만을 크고 깊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 이런 말씀도 있다.


“만약 죽은 지 49일 안에 널리 착한 일을 지어 모든 중생들이 나쁜 세계를 여위게 하고 하늘이나 사람으로 태어나 뛰어나고 묘한 기쁨을 얻게 해준다면 그 공덕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죽은 이를 위해 49일 안에 복을 닦는 일이야 말로 죽은 이나 살아 있는 이에게 가장 뛰어난 공덕이요 이익 된다 하겠다.


아래 사항들은 49일 동안 지킬 일들이다.




1) 장례음식은 필히 나물을 써야 한다.


짐승을 죽여 재물로 쓰면 죽은 이에게 죄업을 더해 고통을 줄 뿐이다.


2)가족들은 49일 동안 최소한 나물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찾아온 손님들도 그렇게 맞아야 죽은 이에게 도움이 된다.



3)『관경』에 말씀하시길 “한 번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팔십억 겁의 악업이 사라진다.”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죽은 이를 위해 가족들이 날마다 염불해 주는 일이야 말로 가장 절실하고 큰 공덕이며 저세상이나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4) 사람이 죽은 지 49일 안에는 부부일지라도 잠자리를 해서는 안 되며 5계를 잘 지켜야 한다.



5)죽은 이가 모은 재산은 좋은 일에 잘 쓰고 그 공덕을 죽은 이 에게 돌려준다.



6) 스님이 죽은 이를 천도 해줄 때는 가족과 벗들을 불러 바른 생각을 세워 부지런히 수행할 수 있는 인연을 심어 주고 그 공덕을 죽은 이에게 돌려준다.



7) 가족들은 49일 동안 절에 가서 죽은 이를 천도해준다.

천도는 정성이 중요하지 천도재에 드리는 재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5. 장례지내는 법



1)스님이나 불교장례를 잘 아는 이를 불러서 할일들을 잘 처리 한다.


2) 장례는 간소하면서 엄숙하게 치루고 가족의 체면 때문에 돈을 허투루 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삼보(三寶)께 공양을 올리고 경전을 보시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갇힌 생명들을 놓아 주는 일을 해서 죽은 이게도 참된 도움이 되고 가족들에도 큰 복이 되게 해야 한다.


3) 화장을 하면 절이나 납골당에 잘 모신다.




6. 정토에 태어나는데 걸림돌이 되는 나쁜 습관들


염불수행자가 죽을 때 바른 생각이 뚜렷하다면 이는 정토에 태어나는 길을 얻은 셈이지만 살생하는 습관과 음행한 습관이 있다면 이는 왕생정토에 태어나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죽이는 습관


경전 말씀에 “고기를 먹으면 좋은 공덕을 구해도 이룰 수 없고 모든 하늘신이 가까이 하지 않고 만나는 중생들이 무서워한다. 죽으면 나쁜 곳에 떨어져 큰 괴로움을 받는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따르면 고기를 즐겨 먹는 이는 원한을 품고 죽은 중생들의 기운 때문에 하는 일이 뜻과 같이 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집안이 편안하고 몸이 건강하고 사업이 잘 풀리고 아이들이 효순하고 서로 화목하기를 아무리 바란들 이 같은 바람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고 온갖 번뇌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속에서 길이 헤매게 된다.


염불수행자가 5계도 지키지 못하고 죽은 중생의 몸을 부끄럼도 없이 아귀처럼 먹는 다면 이미 자비심이 죽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름만 염불수행자요, 불교인으로써 짓는 일마다 마업(魔業)을 이루니 염불수행자는 참으로 이를 삼가 해야 한다.


고기를 먹어 생기는 좋지 않는 재앙은 죽을 때 낱낱이 나타난다.


원한을 품은 중생들이 끝없이 나타나 죽음을 맞는 염불행자에게 바른 생각을 잃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여 정토에 태어나지 못하고 삼악도에 떨어지게 한다.


삼악도에 떨어지면 부끄러움 없이 삼켰던 고기 한 점 한 점에 깃든 아픔과 원한을 다 갚아야 한다.


또 삼악도를 벗어나 사람으로 태어나도 목숨이 짧고 병이 많은 과보를 받게 되니, 세 치 혀끝으로 맛을 탐해 저지른 끝없는 재앙이 끝내 정토에 나는 일을 이룰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지혜 있는 이라면 고기 먹는 나쁜 습관을 결정 코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짐승의 알과 오신채는 염불수행자가 먹어서는 안 될 먹거리로, 마땅히 멀리해야 한다.


『현식론(顯識論)』에 이런 말이 있다.


“생명의 형태는 태(胎),란(卵),습(濕),화(化)네 가지가 있다. 알은 이 가운데 두 번째의 생명형태다. 알에는 미묘한 목숨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중생의 목숨이란 그 신령스럽고 묘하기가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에 따르면 알 하나를 먹는 일은 목숨 하나를 죽이는 일과 같다.


『능엄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삼매를 이루고자 하는 중생은 세상 사람들이 즐겨 먹는 오신채를 입에 대지도 말아야 한다. 오신채는 익혀 먹으면 음욕이 일어나고 날로 먹으면 성내는 기운이 커진다.”


이 말씀에 비춰보면 오신채에 들어 있는 정갈하지 못하고 탁한 기운은 사람의 욕심을 길러주고 오신채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는 사람의 성내는 마음을 키워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경에 말씀하시기를 “오신채를 먹는 이는 비록 경전을 막힘없이 말하더라도 시방세계 모든 하늘 신들이 그 냄새를 싫어해 다 멀리 떠나버린다.” 하셨다.


이와 같이 오신채가 주는 허물과 화는 음심과 화내는 마음을 키우는 일 말고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켜주는 호법 신장들이 멀리 떠나버리게 하여 날로 복덕이 줄어들고 깨달음을 이룰 수 없게 된다.




음행에 대한 생각과 음행습관




오늘날의 세상풍조를 보면 남녀가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 절제할 줄을 모르고 한 몸뚱이의 즐거움만을 탐내 뱃속아이를 지우는 살생 업을 되풀이하고 자기 살붙이를 무참히 죽이고 있다.


호랑이나 독사도 자기 새끼는 죽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람은 이렇듯 멋대로 자기자식을 죽이니 죽은 아이들이 원한을 품지 않겠는가?


이 같은 나쁜 업과 그 인과를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이 같은 짓을 저지르고도 집안이 평안하고 식구가 화목하고 몸이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풀리고 아들딸이 효순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모든 선은 효도를 으뜸으로 삼고 모든 악은 음욕을 머리로 삼는다.”는 말이 있다. 염불수행자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부부 사이라도 법도가 없이 애욕을 탐해서는 아니 되는데 삿된 음행이야 더구나 안 될 일이다. 음욕을 탐하거나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짓으로 그 과보가 빠르고도 무서워 화가 자손에까지 미친다.


『원각경』말씀에 “저 모든 세계 모든 중생의 모습인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은 다 음욕으로 몸과 마음을 받는다.”고 하셨고


『능엄경』말씀에 “저 모든 세계 육도중생이 마음에 음욕이 없으면 생사윤회를 따르지 않는다. 너희가 닦는 삼매는 본디 욕심과 번뇌를 벗어난 세계이니 음욕을 없애지 않으면 번뇌를 벗어날 길이 없다.”하셨다.


그러므로 생사윤회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음욕과 음행 짓는 습관을 끊어 없애고 맑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음행하는 업과 음행하는 습관은 우리의 신식(神識)을 속박해서 해탈할 수 없게 하는 크나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음욕과 그것에 대한 생각을 말끔히 없애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 중음에 태어나 남녀가 음행하는 모습이 눈앞에 나타날 때 염불하는 바른 생각을 잃어 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음행하는 경지에 들어가 순식간에 사생육도를 맴도는 중생의 몸을 받아 윤회의 온갖 괴로움을 받게 된다.


다시 정리해 보자.


목숨을 죽이는 일과 음행하는 일은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이다.


그것은 살아서 과보도 무섭거니와 죽어서는 정토에 태어나는 일을 가로막는 무거운 업장이 된다.


죽을 때 염불하는 바른 생각이 또렷하도록 하려면, 죽이고 음행하는 나쁜 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죽여서 그 고기를 먹고 음행하고 사음하는 악업을 하루라도 빨리 끊어버리고


스스로의 삶과 죽음의 세계를 바르게 지켜보아야 한다.


계율을 잘 지키고 채소 음식을 먹으면 결정코 한때 쾌락에 눈이 멀어 끝없는 괴로움의 세계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제 8장 : 한 번 보고 한 번 들어도 정토에 태어난다.


1.정토에 태어나게 하는 기회



(1)늘 공경히 염불수행을 닦는 이는 죽을 때 스스로 죽을 시간을 알 수 있고 마음이 뒤집히는 일이 없이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잠깐 사이에 정토에 태어난다.

이들은 중음의 단계를 거치는 일 없이 바로 해탈세계에 이른다.


 다른 수행법으로 공부를 이룬 이나 스스로를 제도하는 법인 이 책을 익혀 공부한 이도 중음의 세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른다.


(2)수행한 공력이 (1)만 못해도 이 책을 익혀 공부한 이는 죽어 나타나는 빛을 바르게 인식하는 힘으로 바로 위없는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간다.

또 아미타불을 놓치지 않고 부르는 바른 생각의 힘으로 정토에 태어나 해탈한다.


 (3)비록 공부가 보잘것없는 이라도 죽은 뒤 열나흘 동안 이 책에서 말하는 가르침을 보고 들어서 거룩한 빛을 잘 가려내어 그 속에 들어가거나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바로 해탈한다.


(4)착한 인연도 보잘것없고 업장이 깊고 무거워 한두 번 방황하다 나쁜 길에 들어선 중음신이라도 이 책에서 말한 가르침을 보고,  기억하고, 생각하여 가르침에 따라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부처님의 자비원력의 힘으로 극락정토에 태어나 바로 해탈한다.


(5)죽어 두렵고 무서움에 시달리는 이라도 이 책의 가르침을 보거나 듣고 아미타불을 부르면 바로 해탈한다. 또 이 책에서 가르치는, 아기집에 들어가지 않는 법과 아기집을 잘 가리는 법에 따르면 원하는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다.


(6)어리석기 말할 수 없는 이라도 아미타불의 큰 원과 가피의 힘을 믿고 따르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원만한 사람으로 태어나고 바른 스승과 가르침을 만나 앞으로 완전한 해탈에 이를 수 있다.



2.어떻게 이 가르침을 보고 듣고 해탈하는가?


(1) 죽으면 아는 힘이 살아있을 때보다 아홉 배가 밝아진다.


그래서 여러 가지 빛이 나타나거나 모습이 나타날 때 이 가르침을 기억하거나 보고 듣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거나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아미타부처님이 정토로 이끌어 주시어 육도윤회의 나고 죽는 괴롬바다를 벗어난다.


(2) 죽은 이가 중음신이 되면 거칠고 걸림이 많던 몸이 사라져 모든 것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런 감수성에서 한마음으로 지극하게 아미타불을 부르면 정토에 태어나 해탈할 수 있다.


(3) 거센 업의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중음신은 뛰어난 감각과 아는 힘이 있다.


그래서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걸림이 없어진다. 이 가르침을 일러주는 이의 부름을 한번만 들어도 곧바로 그곳에 가서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 한번 가르침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마음이 열리고 뜻이 밝아져 마음 다해 아미타불을 부르게 되고, 그러면 정토에 태어나 해탈을 얻는다.


3.육도윤회를 벗어나는 법


 스스로 벗어나는 법


살았을 때 늘 이 책을 읽고 죽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마음에 새겨두자.


그러면 죽은 뒤에 무섭고 두려운 현상이 나타났을 때 살았을 때보다 아홉 배 뛰어난 기억력과 영상으로 가지가지 현상을 바르게 알아차릴 수 있다.

또 두려움 없이 한마음으로 염불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죽음의 길을 끊어버린다.


다른 이의 해탈을 도와주는 법


이 책에 나와 있는 중음세계의 여러 가지 단계를 잘 이해한 뒤에 죽은 이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을 베풀어 준다. 또 죽은 이가 가장 크게 매달리는 것, 큰 걱정거리에 대해 그것이 덧없고 이익이 없는 것들임을 가장 간단하고 알기 쉽게 차근차근 일러준다. 그리고 죽은 이가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고 둘레상황에 대해 알려고 할 것 없이 청정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게 한다.


죽은 이는 이렇게 해서 눈부신 빛의 몸, 끝없는 빛의 몸인 아미타부처님을 따라 극락정토에 태어나 참된 해탈을 얻게 된다.



다른 이의 해탈을 도와주는 보기


 먼저 청정한 마음으로 정성을 기울여 아미타불을 108번 부른 뒤 죽은 이에게 아미타부처님의 가피가 내리길 기원한다.


"ㅇㅇㅇ영가시여, 허둥대거나 방황하거나 두려워 하지마소서.ㅇㅇㅇ영가시여, 아미타불을 부르는 염불 소리와 지금 내가 영가에게 드리는 말에 크게 귀를 여소서. 영가는 이제 죽음에 이르러 떠도는 중음세계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직 불보살님만이 영가를 도울 수 있으니 영가는 의심하지 말고 깊고 맑은 믿음을 일으키소서.


불꽃이 휘날리고 얼음바람이 휘몰아쳐도 한마음 한뜻으로 한결같이 아미타불만을 부르소서.


이렇게 하면 두려움과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이렇게 하면 악업에서 일어나는 두려운 현상들이 맑게 개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미타부처님께서 영가를 품에 안아 정토에 태어나게 하십니다.


영가시여, 세상 그 어떤 것도 본디 덧없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과거. 현제. 미래. 그 어떤 일도 놓아버리고 한 순간 한 순간 아미타불을 부르소서. 누구도 영가를 도울 수 없습니다. 오직 아미타불만이 영가의 빛이 되고 길이 될 수 있으니 맑은 맘 다 기울여 우리와 함께 아미타불을 부릅시다."


염불은 많이 할수록 좋다. 짧아도 108번 하고 그 공덕을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해 주면 영가는 반드시 극락정토에 태어날 것이다.  



제 9 장 :  염불은 한 생각에 해탈 하는 길


1.어떤 중생이라도 염불하면 해탈한다.


인광(印光:1862-1940.중국 정토종 13조)조사께서 쓰신 극락도<極樂圖>머리글 가운데는 정토법문을 높이 기리는 이런 말씀이 있다


"정토법문은 이 마음이 부처되고 이 마음이 부처임을 가르치는 법문이다. 선종에서 말하는 '바로 마음을 가리킴도,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룬다는 정토의 가르침만 못하다.


 깨달음을 이룬 모든 수행자들은 모두 이 드높은 가르침을 드날렸으니 정토법문은 위. 아래. 가운데 중에 모든 근기의 중생들을 함께 끌어안고 율종. 선종. 같은 여러 종파들을 다 아우르는 법문이다.


정토법문은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때맞춰 내리는 단비와 같고 모든 강물을 다 받아들이는 큰 바다와 같다.


변(邊),원(圓),돈(頓)점(漸)의 모든 가르침이다 이 법문 가운데서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 없고, 삼승(三乘)과 오성(五性)을 한데 아울러 모두 참 진리를 얻게 하고 성인과 범부를 함께 이끌어 정토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구계(九界)가 모드 귀의하고 시방세계가 함께 찬탄하고 경전마다 이 가르침을 밝히고 논장마다 이 가르침을 펴니, 이는 가르침의 가르침이고 위없는 일승의 큰 빛이라 이를만하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말법시대 중생들에게 이 정토법문에 귀의해 해탈 하라고 가르치셨다.


관음, 세지, 문수, 보현, 같은 모든 위대한 보살들도 정토법문을 수행하고 아미타불을 염불해서 극락정토에 태어나 물러섬이 없는 땅에 이르러 온전한 깨달음을 이루라고 권하셨다.


2.염불법문에는 어떻게 한 생각에 부처를 이루는 힘이 있는가?


이런 힘의 뿌리는 아미타불의 48원의 알맹이인 "결정코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하겠다(決定正覺願)".는 원력과 "열 번 아미타불을 부르면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게 하겠다(十念往生願)". 는 원력에 있다.


"결정코 바른 깨달음을 얻게 하겠다."는 원력이란 무엇인가?


극락정토에 태어난 이는 이미 지은 업장의 무겁고 가벼움에 가릴 것이 없이 한결같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하겠다는 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토에 갈수 있는가?


아미타불을 부르면 그렇게 된다. "열 번 아미타불을 부르면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게 하겠다."는 원력이란 무엇인가?


아미타부처님은 과거 원력 보살로 수행할 때 "내가 만약 성불하면 시방중생이 나의 국토에 태어나기를 소원하고 내 이름을 열 번만 부르면 정토에 태어나게 하리라. 만약 한 중생이라도 정토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깨달음을 이루지 않으리라,"는 원을 세우셨다.


시방중생이란 사람뿐만이 아니다. 중음세계의 중생이든 나아가 짐승, 아귀, 지옥중생 할 것 없이 신령하고 밝은 깨달음의 성품은 그대로이니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부처님을 생각하면 반드시 부처님의 손에 이끌려 정토에 태어나 성불하고 만다.


더욱이 중음세계의 중생은 그 영성이 생전보다 아홉 배가 밝으니 이 같은 영성으로 지극하게 아미타불을 부르면 아미타불의 원력을 타고 한 생각 사이에 정토에 태어나 깨달음을 이룬다.



3.중음세계가 아무리 험해도 아미타불만을 부르면 벗어날 수 있는가?



성불하기에 가장 쉽고 빠른 길은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아미타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중음신에게 보이는 온갖 밝은 빛, 기쁨과 성냄의 모습을 나투는 여러 성상과 나찰, 맹수, 우박 같은 현상은 모두 스스로의 의식이 바뀌어 나타난 모습이다.


살아 있을 때 중음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죽어서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경계를 만나면 그런 경계들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해 자성불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구제할 기회를 놓쳐 윤회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만다.


이와 같이 참으로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만약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고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간절히 구하면 문득 허망 된 의식의 흐름이 끊어지고 변화해 나타난 허망한 경계들이 사라진다.


아미타불은 결코 스스로 세우신 서원을 저버리시는 법이 없다. 부르는 소리를 따라 바로 오시고 이끌어 정토에 태어나게 하신다. 부르는 중생이 비록 삼천 대천 세계의 큰 불로 가득 찬 곳에 있다 하더라도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이 활활 타는 불꽃 바다를 뛰어넘어 정토에 태어나 바로 깨달음을 이룬다.



4.죄업이 깊고 무거운 중생도 아미타불을 부르면 구제될 수 있는가?


그것은 스스로에게 달렸다. 그대로 믿고 정토에 태어나기만을 바라고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틀림없이 구제될 수 있다.


<관무량수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어떤 중생이 오계. 팔계. 구족계. 같은 청정한 계율을 깨뜨리고 살면서도 참회하는 마음이 없다면 죽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죽어 지옥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때 대부분은 "이제는 영영 지옥을 피할 길이 없겠구나"하고 체념해 버린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런 때라도 좋은 스승을 만나 광명이 끝없는 아미타불의 공덕과 서원을 찬탄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염불하면 팔십억 겁의 죄업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


무서운 지옥불은 맑고 서늘한 바람이 되어 가지가지 하늘 꽃을 흔들고 그 꽃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부르는 중생을 맞아 주시니 한 생각에 극락정토의 연꽃 속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죄업이 무겁고 깊어 지옥, 아귀, 축생, 같은 삼악도에 떨어져 끝없는 괴로움을 받을 이라도 염불하는 한 생각 속에 팔십억 겁의 죄업을 없앨 수 있다.


그리하여 아미타불의 원력을 타고 극락정토에 태어나, 길이 윤회의 바다를 건너 바로 깨달음을 이룬다.


그러니 지옥에 떨어질 중생이라도 죽어 지옥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때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한 생각에 깨달음을 이루게 됨이 결코 허망한 말이 아님을 뚜렷이 알아야 한다.


부처님은 인과에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질 이가 어떻게 아미타불을 부르는 한 생각으로 무서운 인과의 그물을 벗어날 수 있는가?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부르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거나 뜻밖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인연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의 씨앗이 무르익어야 피어난다. 지옥불 앞에서 아미타불을 염불 하는 마음이야말로 무르익은 인연이요. 공덕의 끝이 아닌가. 그래서 부처님과 조사님들은 한결같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염불하는 공덕은 금강을 먹는 것과 같아서 그 기운과 힘이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팔만 겁 전에 길을 가던 나그네가 큰 호랑이를 만났다. 나그네는  너무 바쁜 나머지 "나무불(南無佛)"하고 외쳤다. 이한마디 염불 공덕으로 나그네는 팔만 겁이 지난 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아라한과를 이루었다.


염불수행자는 결코 염불공덕을 의심 하지 말고 나고 죽음을 생각하는 참 마음으로 용맹염불 해야 한다.


염불이야말로 금강식(金剛識)인 것이다.


5. 염불문은 늙은이에게나 맞는, 낮은 수행법이 아닌가?


정토법문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것은 지혜 있고 공덕을 짓는 이의 말이 아니다.


왜 그런가.


정토법문을 믿고 수행할 수 있는 이는 수많은 생을 통해 수행 공덕을 쌓는 큰 지혜 인으로 낮은 근기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량수경>에 "이미 복과 지혜를 닦지 않은 이는 이 정토 법문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다." 하셨고 또 "어떤 선남자 선 여인이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기쁜 마음을 일으켜 우러러 아미타불께 귀의하고 염불수행 한다면 이런 이는 작은 근기가 아님이라. 그런 사람은 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제자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참으로 정토법문을 듣고 맑은 믿음으로 받들어 실천하는 이는 헤아릴 수없이 많은 지난 생에 수없이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고 수행한 복덕과 지혜가 크고 깊은 이들로써 으뜸가는 부처님 제자인 것이다. 부처님조차도 찬탄하신 이 법문을 얕잡아 보는 일은 참으로 삼가고 삼가 할 일이다.


염불법문의 수승한 공덕은 <화엄경>이나 <법화경>에서도 잘 밝혀주고 있다. 더 깊이 공부해보려는 이는 <정토오부경>을 보면 된다.


<무량수경> 에서 극락세계와 아미타불의 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고 <아미타경>에서는 근기가 서로 다른 중생들이 염불수행으로 빠짐없이 구제를 받는 불가사의한 경계를 알 수 있다.


또<대세지보살염불원통장>과 <화엄경><보현보살행원품> 에서는 시방세계의 모든 큰 보살들이 깨달음의 과위에 올라서야 염불법문의 뛰어남을 알고 한마음으로 염불하고 부처를 이루어 모든 중생들에게 염불해서 극락정토에 태어나길 가르치심을 알 수 있다.


아. 우리가 지금 이같이 수승한 염불법문을 만나게 된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이생에 이같이 으뜸가는 법문을 만났으니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간절한 원을 세우고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정토에 태어나길 희망하자.


이생에 만난 이 귀중한 인연을 헛되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6. 이 시대에는 어떤 수행을 닦는 것이 가장 좋을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대집경>  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법 시대에는 수없이 많은 이들이 수행하나 깨달음을 이룬 이는 참으로 드물다. 염불수행만이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말법시대에는 가르침도 많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가르침과 사람의 근기가 서로 맞지 않아서 깨달음을 얻은 이가 드물다.


염불법문을 수행하는 이만이 나고 죽음의 괴롬바다를 뛰어넘고 육도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부처님의 이름을 부를 것인가?


빛 가운데 빛이시고 부처님 가운데 부처님이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앞서 말법중생들에게 해탈과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정토법문을 남겨 주셨다. 불자라면 부처님이 일러주신 이 정토법문을 기쁘게 받아 지녀야 할 것이다.



7. 마(魔)는 수행하는데 커다란 걸림돌인데, 염불법문을 수행하면 마(魔)가 없을까?



<수능엄경 오십음마장)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다.


"여러 귀신의 무리들과 함께하는 말법시대에 이르면 천마(天魔),외도, 귀신, 요정 같은 기운들이 불길처럼 일어나 모든 수행자들을 괴롭힌다.


참선이나 밀법을 닦는 이가 계율을 지키지 않고 바른 견해가 없으면 바로 마군의 그물에 걸리고 만다. 그러나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고 염불법문을 받아 지닌 이는 삿된 마군의 괴롭힘에 걸려들지 않는다."


왜 그런가?


<십왕생경>말씀을 보자.

"어떤 중생이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정토에 나기를 원하면 아미타불께서 스물다섯분의 큰 보살을 보내어 수행자를 보살펴. 가거나 앉거나 머물거나 눕거나 밤이거나 낮이거나 어떤 때 어떤 곳을 가림 없이 악귀나 악신이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


또<아미타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경>을 받아 지니거나 여러 부처님의 이름을 들으면 이 선남자 선여인들은 모두 부처님들께서 보살펴 주시나니, 모두 물러섬이 없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렇듯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는 수행자는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들이 보살펴 주시사 언제나 40리에 뻗치는 밝은 빛 속에 있어 어떤 마(魔)도 가까이 할 수 없다.


염불법문이야말로 이 말법시대 중생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가장  근기에 맞는 수행법이자 생사해탈을 가장 완전하고 빠르게 이루어주는 성불의 문이다.


8.염불 수행자는 꼭 채식을 해야 하나?


<수능엄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육도에 윤회하는 중생이라도 마음에 죽이는 기운이 사라지면 더 이상 태어남과 죽음의 윤회를 따르지   않는다. 삼매를 닦아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죽이는 마음을 없애지 않고는 이룰 수 없다."


고기가 맛이 있고 그래서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은 죽이는 마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이는 마음을 없애려면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어떤 수행법으로 수행을 하든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은 태어남과 죽음의 윤회에서 해탈할 수 없다.


목숨을 죽이거나 그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이 죽음에 이르면 빚을 진 생명들이 나타나 바른 생각을 잃게 하여 정토에 태어나는 길에 큰 걸림돌이 된다.


염불 수행자는 언제 어디서나 혼자 몸이 아니라 보이고 들리는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겠다는 큰 자비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비심이야말로 염불수행자의 생명이다. 그래서 염불수행자는 채식을 해야 하고 알이나 오신채도 먹어서는 안 된다.


왜 그런가?

<관무량수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맑은 업을 닦아 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중생은 마땅히 다음과 같은 복덕을 쌓아야 한다.


첫 번째는 부모께 효도하고 스승께 헌신하고 자비심으로 목숨을 사랑하면서 열 가지 착한 업을 닦는 일이다. 두 번째는 삼보께 귀의하고 맑은 계율을 받아 지녀 자비행자의 위의를 잃지 않는 일이다. 이와 같이 맑은 업은 삼세 모든 부처님들이 깨달음을 이룬 씨앗이니 정토행자는 염불과 정업을 닦는 일을 치우침 없이 함께 닦아 나가야 한다.


<지장경>말씀에 "깊고 큰 업력은 해탈의 길을 막는 수미산과 같고 바다와 같다"고 하셨다. 비록 아미타부처님의 서원과 자비심이 끝이 없기는 하지만 죽음에 이르러 집착을 놓아 버리지 못하고 맑고 바른 생각으로 염불하지 못하는 중생은 제도해 줄 수 없다.


한편으로는 염불하고 한편으로는 죽이고 즐겨 고기를 먹다가 죽음에 이르러서 바른 생각을 잃어 버리면 길이 삼악도에 떨어지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이것은 스스로 지여 스스로 받는 과보이지 부처님의 자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고기가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다. 그래도 염불 수행이 아주 잘 된다 나는 채식에 집착 하지 않는다. " 이 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말이다. 생각해 보라. 생명을 죽이는 기운이 살아있는 입으로 어떻게 염불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말은 자비심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아는 이가 하는 말이 아니다.


사바세계의 모습과 소리와 맛과 냄새와 느낌과 생각에서 해탈하여 저 맑은 나라인 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수행자라면 어떻게 사바의 어두운 고기 씹는 버릇에 집착 하겠는가?


연지대사는 말했다


 "죽이고 그 고기를 즐겨 먹는 마음이여!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흉악하고 슬프고 독한 마음이 또 어디 있으리."


자비심은 모든 불보살의 생명이다. 자비의 세계인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어떻게 고기 먹는 나쁜 업을 즐겨 쌓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고기를 즐겨 먹으면 오래 살지 못하고 병치레를 많이 하는 과보를 받게 된다. 병에 걸려 괴로울 때 바른 생각으로 염불 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은 "사람 몸을 잃어버리는 중생은 땅과 같은데 사람 몸을 잃지 않는 중생은 손톱 밑에 흙과 같다"고 말씀 하셨다.


슬프다. 맛에 집착하지 않는다며 즐겨 고기를 먹다가 사람 몸을 잃어버리고 삼악도에 떨어져 헤매는 중생이 수미산과도 같음이여!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능엄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생명을 죽이면 그 생명을 갚아 주어야 한다. 중생은 이 같은 인연의 고리 속에서 길이 나고 죽는다."


정토에 태어나길 발원하는 염불행자는 반드시 나고 죽음의 흐름을 끊어 버려야 한다. 목숨을 죽이고 그 고기를 먹어. 나고 죽음의 씨앗을 만드는 일은 염불행자가 할일이 아니다.


"보살은 그 씨앗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그 열매를 두려워한다"하셨다. 태어남과 죽음의 고리 속에서 벗어나려고 수행하는 수행자는 태어남과 죽음의 씨앗을 두려워해야 한다. 삶의 씨앗이 바르지 못하면 바른 삶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하련(夏蓮)거사는 이렇게 노래했다.


"슬프구나. 흐르는 과보의 물결이여. 흘러흘러 윤회의 바다에 넘치네. 아. 어디에서 왔는가. 하늘에 가득한 괴로움의 불길이여. 목숨을 죽이는 한 생각에서 왔네."


염불행자는 채식을 해야 하는가?이것은 따지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이는 염불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바른 길이요.기쁜 길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다른 중생들도 싫어한다. 염불행자는 언제나 스스로의 삶을 비춰보고 잘 다스려 나가야 한다. 




 제10장 :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빈틈없는 해탈공부




어렵고 어려운 일은

죽음뿐

모든 것이 사라 질 때

죽음이 올 때

그대여,

죽음을 죽음이라고 알아서

그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가?

나고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그대는 공부를

해 두었는가?


『화엄경』<보현행원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 모든 감각은 다 흩어져버리고 가족도 이웃도 다 떠나버린다. 명예도 위엄도 재물도 다 사라진다. 따르던 이들도 헐뜯던 이들도 함께 갈 수 없는 죽음의 길에 오직 함께하는 것은 정토를 그리던 이 마음뿐. 자나 깨나 아미타불을 그리던 마음의 빛이 죽음의 길을 환하게 비추어 한 순간에 정토에 태어나게 하리라.


정토에 태어나면 아미타불,문수보살,보현보살,관세음보살,미륵보살 같은 수많은 보살님께 에워싸여 연꽃 속에 태어나며 부처님께 수기를 받으리라.


죽으면 가장 아끼던 몸이며, 눈, 귀, 코, 혀, 같은 모든 감각기관이 한꺼번에 허물어져 다시는 쓸 수 없게 된다. 그뿐인가.

사랑하던 가족과 이웃들도 영영 헤어지게 되고 피땀 흘려 모은 재산도 아무런 힘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부리던 이라도 숨길 한번 끊어지면 한 사람도 뜻대로 부릴 수 없다. 이 같은 죽음을 맞이하여 창자를 끊는 듯한 괴로움 속에 몸부림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중음의 세계는 친척도 없고, 벗도 없고 기댈 사람도 없다. 시커먼 어둠의 두려움 속에는 살려달라고 부를 이름도 모습도 없어 지은 업대로 곤두박질치며 온갖 괴로움을 받는다.


살아 있을 때 가족이나 이웃이 이런 괴로움 속에 몸부림치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슨 힘이 될 수 있을까.나아가 우리는 스스로 이 같은 중음의 고통 속에 빠져있을 때를 대비해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나고 죽음만을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깔끔히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삶의 순간순간 속에서 삶의 온갖 현상은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갯불 같음을 깨달아 욕심과 애착을 놓아버려야 한다.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아미타불을 그리는 마음을 키워나가고 보현보살의 열 가지 큰 원을 닦으면서 정토에 태어나기를 소원해야 한다.


이렇게 힘써 수행한 이는 죽음에 이르러 한꺼번에 온갖 세상 인연들이 사라질 때 불보살님의 가피의 빛살이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정토로 이끌어 주신다.


그리하여 한 순간에 극락정토의 연화 속에 태어나 아미타불님의 수기를 받고 자기가 성불할 때와 나라와 이름을 밝게 알 수 있다.


이 얼마나 뛰어나고 시원한 일인가! 이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이는 죽음을 뛰어넘어 번뇌의 굴레를 벗어나서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아가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들까지도 인연 따라 구제하게 될 것이니 어찌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을 윤회의 깊은 강에서 건지지 못할까 걱정할 것인가.


죽은 사람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도 이 정토의 맑은 가르침을 따른 다면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해 보기가 어려운 모든 근심과 집착을 놓아 버리게 된다.


또 정토의 부신 빛살에 눈이 뜨여 한마음 한뜻으로 정토에 태어나길 소원하게 되나니, 다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게 되더라도 끝내 정토를 향한 큰 소망을 남김없이 어느 생엔가는 이루게 된다.


사람 몸을 받고서도 정토의 길 안 닦으면

보배산에 들어가서 빈손으로 나옴과 같도다.   




제11장 : 돌고 도는 생명의 수레바퀴


-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 -


1. 육도 중생을 위한 기도


티벳 불자들은 새해 초에 오체투지의 성지순례를 한다. 온몸을 땅 위에 던지면서 그 사람들이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는 자기의 소원이나 집안의 행복이 아니다. 조국 티벳의 독립도 아니다


티벳 불자들은 여섯 갈래의 존재계에 윤회하는 중생들이 모두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기를 축원한다. 그 사람들은 윤회하는 세계 속에서 얻는 행복과 권력과 재산 같은 것은 모두 참된 것이 아니고 괴로움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삶의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은 삼보에 귀의하여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공덕을 쌓고 깨달음을 얻는 데 있다고 본다.



2. 마음속의 세 마리 짐승, 세 가지 독


티벳의 절 어귀마다 그려놓은 벽화가 있는데.


“생명의 수레바퀴”라고 일컫는 이 그림은 욕심, 성냄, 어리석음 의 세 가지 독으로 선업과 악업을 쌓고 그 결과 끝없이 여섯 갈래를 윤회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맨 가운데 동그라미를 보면 세 마리 짐승이 서로 꼬리를 물고 시계바늘 가는 쪽으로 돌고 있다.


수탉은 뽐내기를 좋아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중생의 탐냄과 애욕을 나타내고, 독뱀은 미움과 샘냄처럼 다른 이를 해치려고 하는 원한과 분노를, 돼지는 고통의 원인과 소멸에 이르는 법(사성제)과 삼세인(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같은 진리를 모르고 망상과 모든 번뇌의 뿌리인 어리석음을 뜻한다.


바로 이 세 마리 짐승이 사람의 마음속에 살면서 여섯 갈래를 떠돌아 괴로움을 겪게 하는 뿌리가 된다. 그러니 괴로움과 두려움이 끝이 없는 윤회를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다시 태어나게 하는 원인을 없애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 세 마리 짐승을(탐심, 화내는 마음, 어리석음의 삼독) 원수처럼 여기고 잘 다스려야 한다. 두 번째 동그라미 오른쪽은 세 마리 짐승의 힘에 끌려 다니면서 어둠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림인데 이 세계는 나쁜 업과 나쁜 인연으로 맺어진 검은 업의 세계다.


동그라미 왼쪽 그림은 선지식을 만나 육도윤회의 괴로움을 깨닫고 아미타불의 원력과 가피력으로 윤회세계에서 벗어나 극락정토에 태어나는 내용이다.


그림 오른쪽 위 그림은 석가모니께서, 괴로움을 겪는 중생들이 해탈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나도록, 오른쪽을 들어 해탈의 바른 길을 가르치고 계시는 내용이다.


왼쪽 윗 그림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이다.


죽을 때 바른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아미타불의 은빛광명의 길을 타고 곧바로 극락정토에 태어남을 보여 준다.


3. 여섯 갈래의 중생세계, 육도윤회


그림 가운데 있는 여섯 개 그림은 여섯 갈래의 윤회 세계를 뜻한다.

위쪽에는 계율을 지키고 공덕을 쌓아 태어나는 천상세계가 있고, 그 오른쪽에는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사람 세계가 있다. 그 아래에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욕심을 부리다가 떨어지는 굶은 아귀의 비참한 세계가 있다.


맨 아래 가장 큰 그림은 지옥세계의 여러 가지 괴로운 모습이다.


지옥 왼쪽에는 네 발 달린 짐승과 물고기, 새 같은 축생들의 세계가 있고, 그 위에는 질투와 싸움의 업보로 태어나는 아수라 세계가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뿐 아니라 우주법계의 모든 생명들은 스스로 지은 선악의 업보에 따라 여섯 갈래의 세계에 끝없이 태어나게 된다.


이러한 육도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데는 두 가지 큰 길이 있다.


첫째는 자기 수행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는 원인을 없애 열반에 이르는 성도해탈문(成道解脫門) 자력(自力)수행이고


둘째는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지하여 육도윤회에서 바로 벗어나는 왕생정토문(往生淨土門) 이다.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착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윤회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윤회하는 중생들을 구해주는 일을 으뜸으로 한다.


꿈속에서 착한 일을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꿈을 깨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직 해탈하지 못한 중생이 꿈에서 깨어나는 12가지 법칙이 있는데 이것을 12연기(緣起)라 한다. 12 인연법을 또렷이 깨달아야 자기만 알고 자기만 고집하는 그릇됨에서 벗어나 나만을 내세우지 않고(무아) 자기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무소유) 해탈 세계에 이르러 고해를 벗어 날 수 있다.



4. 열두 가지 인연법칙(12연기)


육도윤회의 여섯 개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열두 개의 그림은 12 연기법을 그린 것이다


시계바늘 도는 쪽으로 첫 번째 그림은 어리석음인 ‘무명(無明)을 뜻한다. 눈 먼 늙은이 그림은 빛이 없는 어둠의 상태, 삼세인과와 사성제 같은 진리의 가르침에 어두워 사물의 도리를 알지 못하는 처음의 한 생각을 나타낸다.


두 번째 그림은 행위를 뜻하는 ‘행(行)’을 나타낸다.


짐을 나르는 사람 그림은 업보가 만들어짐, 곧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집착하는 대상을 실제화 하는 현선작용이다.


세 번째 그림은 분별작용인 ‘식(識)’을 나타낸다. 나무 위의 원숭이 그림은 개체가 만들어지면 자기를 가운데 두고 분별작용을 계속하는 인식이 생겨남을 뜻한다.


네 번째 그림은 정신과 물질이 하나로 맞붙는 ‘명색(名色)을 나타낸다.


나룻배에 두 사람이 타고 있는 그림은 정신적인 명(名)과 물질적인 색(色)이 결합하는 것을 뜻하는데, 명색(名色)은 식(識)을 인연으로 생긴다.


다섯 번째 그림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입(六入)’을 나타낸다.


창문이 여섯 개 달린 집 그림은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뜻하는데 위의 名과 색(色)이 결합하면 이 감각기관이 생긴다.


여섯 번째 그림은 감촉기관인 촉(觸)을 나타낸다.


다정한 여자와 남자 그림은 감각기관이 경계를 만나 느끼는 감촉작용을 상징한다.


일곱 번째 그림은 느낌작용인 ‘수(受)’를 나타낸다. 눈에 화살 맞는 사람 그림은 느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즐거움과 괴로움 등 모든 느낌을 뜻한다.


여덟 번째 그림은 이성을 그리는 감정인 ‘애(愛)를 나타낸다.


술 취한 사람을 여자가 시중들고 있는 그림은 즐거운 느낌에 따라 즐거움의 대상을 끝없이 갈구하는 눈 먼 욕망을 상징한다.


아홉 번째 그림은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인 ‘취(取)’를 나타낸다.


과일 따는 사람 그림은 욕망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바라는 대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마음의 작용을 뜻한다.


열 번째 와 열한 번째 그림은 나고 죽음을 되풀이 하는 존재가 만들어 지는 ‘유(有)’로 말미암아 생명이 탄생함을 나타낸다.


열두 번째 그림은 삶의 여러 가지 괴로움, 노사우비고뇌(老死優悲苦惱)’이다


송장 나르는 사람 그림은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삶의 갖가지 괴로움과 슬픔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12연기법은 모든 현상이 서로 관련되어 존재하고 인연 따라 일어난다는 인연(因緣生起)의 가르침이다.


그것은 모든 사물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아사상을 뒷받침해 주는 이론이다.


12연기설은, 중생들이 업력에 따라 삼세에 걸쳐 끝없이 나고 죽음을 되풀이 하는 과정을 사실에 뿌리를 두고 12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 관찰하는 법이다.


모든 괴로움과 불행의 원인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12 연기의 가르침이다.


불행한 사람은 어리석은 값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대품반야경』에 

“사람의 큰 죄는 어리석음이다. 불행과 괴로움은 어리석음의 갚음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여 진리의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참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모든죄업 참회하고 나쁜습관 바꾸어서

이몸이제 맑고맑은 보살의길 닦으리라

아침이슬 우리인생 모든슬픔 사라져라

사람의삶 뜻이없다 어느누가 말했던가

비우고또 맑히는일 우리행복 아니던가


      南  無  阿  彌  陀  佛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향련 원글보기
메모 :
◈임종시 염불의 중요성과 천도◈



살생의 업을 많이 지은 사람,
파계를 한 사람, 병으로 신음하며 죽어 가는 사람,
원한 맺힌 귀신에 시달리는 사람 등등,

업보 때문에 불행한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나무아미타불을 염하게 되면 능히 평안을 얻고
아미타불의 영접을 받으며 극락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럼 평소에 염불정진을 잘 한 사람과
임종시에만 염불한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임종의 순간에만 염불하는 사람은
구품연화대 중 가장 못한 하품하생의 연화대 속에 태어나
12대겁 동안 더 도를 닦아야 하는 것이
평소에 염불하며 도를 닦은 이의 왕생과 다른 점입니다.

곧 평소에 염불정진을 꾸준히 한 사람은
무려 12대겁이라는 시간을 단축하여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임종할 때의 십념염불 공덕으로 태어나는
이 하품 하생의 연화대 또한 극락세계입니다.

여기에만 태어나도 더 이상의 퇴보도 타락도 불행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께서 설하시는 참회법문을 듣고
차츰 깨달음을 이루어 상품상생의 연화대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임종 때의 염불은 꼭 행하여야 합니다

이제 다시 한번 정리해 봅시다.
어떻게 단 십념만으로 극락왕생이 가능할 수 있는가?
그 까닭은 크게 두 가지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덕을 갖춘 아미타부처님의 근본서원력 때문입니다.
무량한 빛과 무량한 수명 그 자체인
아미타불께서 스스로 대자비의 서원을 발하여
그 서원의 힘으로 임종 전에
십념염불을 행하는 중생을 극락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임종직전의 중생이 스스로 갖게 되는 전심 회향의 덕분입니다.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마지막 온 마음을 기울여 극락으로 돌아가고자 하면,
숨이 다한 후의 영혼은 마지막 결심을 따라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녕 아미타불의 근본서원력과 "나"의 전심회향이 일치하게 되면
틀림없이 극락왕생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온 마음을 다 쏟는 전심회향염불이 되지 못하면
업을 따라 극락이 아닌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집안에서는 임종 전의 사람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울 것을 권하고,
숨이 끊어진 뒤에도 남은 사람들이 계속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주고 있습니다.

이때의 염불은 발원이요 축원입니다.
다시 태어나되 극락에 태어나겠다는 발원이요,
떠나되 행복의 나라인 극락으로 가라는.축원입니다.

이제 우리 불자들 이 세상을 하직하는 이를 앞에 두고 구체적으로 행하여야 할
염불천도의식에 대해 함께 살펴 보도록 합시다.



◈ 왕생과 천도 ◈



세상을 하직하는 이를 위한 천도의식은 망인으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 행복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의식입니다.
그러나 저 세상으로 떠나야 할 사람이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이 지나치거나,
보내는 사람이 이별의 슬픔에 빠져 망령되이 행동 하게 되면
올바른 천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발원과 축원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제 떠나는 사람을 가장 좋은 세상인 극락세계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로부터 불교집안에서 행하였던 방법을 종합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기에서는 죽음에 다다른 사람을 떠나는 이,
옆에서 임종을 지켜보는 가족 등을 "보내는 이"로 통일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 떠나는 이의 방에
아미타삼존불 또는 아미타불의 그림이나 사진 등을 서쪽 벽에 모시고
그 앞에 향을 피웁니다.
만약 그림이나 사진을 구할 수 없으면 크게
"나무아미타불" 글씨를 써서 모셔도 좋고,
그것마저 할 수 없으면 그냥 서쪽을 향해 염불을 하면 됩니다.

◈ 떠나는 이는 모름지기 염불에만 몰두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못다한 일이나 집안 일에 대한 생각을 모두 놓아버리고,
오직 극락왕생만을 발원하며 일심으로 염불해야 합니다.
중병에 시달리고 있을지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무아미타불"을 염하십시오.

이 법계에 가득한 모든 존재는 생명의 기운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죽음의 기운으로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도 생명의 한 흐름일 뿐입니다.

새로운 생명력을 얻기 위한 한 과정으로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더욱이 염불은 생명의 기운을 충족시켜 주는 최상의 방편입니다.
아미타부처님과 함께 하면

그 죽음은 어둠이 아니라 무한한 생명력과 빛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정성을 다해 염불을 하면 됩니다.

정성껏 염불을 하다가 떠나게 되면 반드시 극락왕생할 것이요,
죽을 때가 이르지 않았으면 업장이 소멸되어 오히려 병이 나을 것입니다.
그냥 모든 것을 아미타불께 맡기고 온 마음을 기울여 염불을 하게 되면,
살아남으나 죽으나 행복과 광명 속에 있게 됩니다.

◈ 떠나는 이의 염불할 때의 몸가짐은 몸의 상태에 따라 하면 됩니다.
마지막 기운이 동하여 앉아서 아미타불의 영접을 받기를 원하는 분은
서쪽을 향해 앉아도 좋고, 기력이 미치지 못하면 누운 채 염불을 하면 됩니다.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를 기력조차 없다면
아미타불의 모습을 떠올리는 관상만 하여도 됩니다.

◈ 떠나는 이를 보내는 가족 , 친족 등은
떠나는 이가 편안히 마음을 잘 모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 대한 미련, 인간적인 애착에 휩싸이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만약 떠날 때 한을 지녀 잘 떠나지 못하면
그야말로 떠돌아다니는 외로운 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보내는 이들은 애정에 못이겨 슬픈 기색 을 보이거나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하고,
세속의 잡된 일을 논하여서도 안됩니다.
떠나는 이가 오로지 정념속에 있을 수 있도록,

"뒷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정성껏
“나무아미타불"을 외울 것을 권하고,
나무아미타불을 함께 불러주거나 염불 테이프 등을 들려주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주의할 것은 떠나는 이의 의식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통곡을 하거나 손발을 거두거나 자리를 움직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한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 가량 그대로 모셔두고 염불을 해 드려야 합니다.

이는 신식(神識)이 완전히 몸을 빠져나가
몸이 차가워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각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바로 이 때 보내는 이가 떠나는 이의 뒤를 이어 정성껏 염불을 하면서 명복을 빌면,
부처님의 근본서원력으로 망인 극락세계로 직행을 할 수 있습니다.

정녕 사후에 거창한 재를 지내면서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임종의 순간에 잘 하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슬픔에 빠지거나 당황하지 말고 잘 처신하시기 바랍니다.

◈ 또 한가지,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것 말고
임종의 순간에 외우면 좋은 것으로 광명진언이 있습니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29글자로 이루어진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지혜의 힘으로
새로운 태어남을 얻게 하는 신령스러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깊은 죄업과 짙은 어두움 이 마음을 덮고 있을지라도.
부처님의 광명 속으로 들어가면 저절로 맑아지고 깨어나게 된다는 것이
이 진언을 외워 영험을 얻는 원리입니다

신라의 원효스님께서는 앞에서 잠간 살펴본
《유심안락도》를 통하여 이 진언의 공덕을 크게 강조하셨습니다.

만일 중생이 이 진언을 두 번이나 세 번,
또는 일곱 번을 귀로 듣기만 하여도
모든 죄업이 없어지게 된다.

또 중생이 십악과 오역죄와 사중죄를 지어 죽은 다음 악도에 떨어지더라도
이 진언을 외우면 능히 해탈을 얻을 수 있다.
부처님의 광명이 망인에게 이르러 모든 죄업을 소멸시켜 줄뿐만 아니라
서방극락세계의 연화대로 인도하여 주신다.

나는 불치의 암 등에 걸려 고통 속에서 떠나게 된 이의 유족들에게
임종시에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거나
광명진언을 외울 것을 자주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족들로부터 하나같이 떠나는 이가
고통 없이 편안하고 안온한 모습으로 가셨다는 말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들었습니다.
부처님은 결코 거짓을 모르시니, 믿음을 가지고 행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 망인이 떠난 후 상례를 치를 때에도
가족들은 나무아미타불 또는 광명진언을 염하며 지내야 합니다.
스님의 독경이나 염불에만 의존하지 말고,
마음속으로라도 망인이 아미타불의 자비광명 속에서
극락에 왕생하는 모습을 그리며 지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례를 치를 때 절대로 주의할 점은 생명,
특히 가축 등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득이 조문객에게 육류를 대접하는 경우에도 가게에서 사서 써야지,
집 또는 집 주위에서 소, 돼지, 닭 등을 잡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가축들의 원한에 찬 혼이 망인의 혼에 달라붙어
갈 길을 가로막는 경우가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실로 망인만 잘 천도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 가축의 원한에 찬 혼까지 천도시키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실제로 어느 큰스님께서도 모친상을 당했을 때
이러한 경우를 겪어 모친을 천도시키는데 무진 애를 먹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 같은 범부는 더하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도시와는 달리 시골의 경우에는 상을 당했을 때
가축을 잡는 일이 많습니다.
제발 상을 당했을 때만이라도 가축을 잡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 상례를 치른 후 불자가족들은 49재를 지내줍니다.
재를 지내는 49일 동안,
망인이 살아생전의 업에 대한 심판을 받아 새로운 몸을 받게 된다고 하여
7일 마다 한번씩 사찰을 찾아가서 일곱 번의 재를 지내주는 것입니다.

재를 지낼 때
유족들은 망인의 이름으로 능력껏 기꺼이 보시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삼보전에 공양을 올리는 재물보시는 물론이요,
불서를 나누어주는 법보시, 불쌍한 이를 돕는 보시에도 적극 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공덕이 그대로 망인과 "나"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형편 이상으로 지나쳐서도 안되겠지만,
아끼고 탐하는 마음으로 보시를 망설여서는 안됩니다.
스님과 상의하여 여법(如法) 하게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49재 기간동안,
유족은 집에서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하여
"나무아미타불"을 3천 번 또는 만 번씩 외우거나,
광명진언을 천 번씩 외우며 망인을 천도해 주어야 합니다.
(이때는 1,080개의 알을 꿰어 만든 염주를 돌리면서 외우는 것이 좋음)

염불이나 진언을 외울 때는 그냥 입으로만 외우지 말고
마음속으로 망인이 극락회상에서
아미타불의 광명을 받으며 설법을 듣고 있는 모습을
관(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천도의 기도를 하고,
마지막 49일째 되는 날 사찰에서 재를 지내며 탈상을 하면,
떠나가신 님은 극락의 새로운 생을 누릴 수 있고
남아 있는 이는 큰복을 이루게 됩니다.

더욱이 《시방정토경》이나
《지장보살본원경》에서는 망인을 위해 복을 닦으면
그 복의 칠 분의 일은 망인이 얻고
칠 분의 육은 산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까지 하였으니......

실로 불가에서는 상식을 넘어선 불가사의가 자주 일어납니다.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능력을 믿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꼭 믿고 실천해 보십시오.
망인의 은혜를 갚는다는 자세로 천도의 의식을 행하여 보십시오.
망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틀림없이 큰 공덕이 미칠 것입니다.



◈발원하고 회향하라



아미타불.석가모니불.약사여래.관세음보살.지장보살 등
어떠한 불보살을 원불(願佛)로 모시고 신행생활 을 하든,
염불.참선.경전공부.주력 등 그 어떠한 공부를 하든,
아미타경. 법화경.금강경.반야심경 등 어떠한 경전을 독송하든,
꼭 발원(發願)을 하고 회향(廻向)을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와 공부는 발원을 함으로써 시작되고 회향으로 결실을 맺습니다.
발원이 씨를 심는 것이라면 회향은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발원이 없으면 어떠한 기도도 공부도 나아갈 바를 잃고 맙니다.
염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미타불을 염한다고 하여 꼭 극락에 왕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극락왕생을 발원하지 않는 이는 극락왕생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생에서의 행복을 발원하며
극락교주인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면,
관세음보살을 외워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을 이루는 것과
똑같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어떻게 발원하느냐?
어떠한 씨를 심느냐에 따라 거두어들이는 결과가 다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미타불이 아닌 관세음 보살이나 지장보살을 외우며
극락왕생의 발원을 하면 극락에 태어날 수 있게 되고,
법화경.금강경을 외우면서 극락왕생을 발원하면 능히 극락에 태어납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그 어떤 공부를 하더라도 발원에 따라 성취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현재 한 가지 수행이라도 올바로 하고 있으면
다른 이들이 "좋다"고 권하는 것을 굳이 하려 하거나 지조를 바꾸려 하지 말고
현재의 공부를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히려 공부방법을 자꾸 바꾸게 되면 힘이 모이지 않아
좋은 결실을 보기가 힘듭니다.
정녕 원을 잘 세워
그 원을 핵으로 삼고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차츰 힘이 모이게 되고,

힘이 모여 삼매(三昧)를 이루게 되면
능히 그 자체만으로도 신통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고
다른 모든 것을 응용할 수 있게 되며 깨달음을 이를 수 있게 됩니다.
부디 원을 잘 세우고 지조있게 공부하십시오. 결과는 자연성취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무심(無心)을 강조해서인지,
염불을 하는 이들 중에는 흔히 말하는 무심염불(無心念佛)을
“아무런 생각 없이 행하는 염불”로 풀이하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무심■은 번뇌가 없다 는 뜻이지,
발원도 부처님에 대한 생각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를 잘 명심하고 염불을 하거나
참선.경전공부.주력 등을 할 때 꼭 발원을 하십시오.

이 발원은 곧 회향합니다.
회향은 공덕을 돌려서 어느 곳으로 향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곳으로 향하게 하는가?

물론 나의 행복과 성불,
중생의 행복과 성불을 위해 공덕을 들리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회향을 지극히 중요한 것으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모든 의식 뒤에는 다음과 같은 회향축원문을 곁들입니다.

원컨대 이 공덕이 일체에 두루 미쳐
우리 모든 중생들이 극락세계 태어나
무량수불 친견하고 함께 성불할지어다

"나"만의 행복과 성불이 아니라
모든 중생의 행복 과 성불을 바라는 한 마디의 회향축원이
우리가 머물 어 있는 자리를 극락으로 바꾸고
우리를 무한한 생명력과 빛의 몸으로 바꾸어 준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게으름 없이 잘 정진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
나무무량수불 !
나무무량광불 !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향훈 원글보기
메모 :
암을 이기는 한국인의 음식 54 가지



01. 주식을 바꿔라 - 현미 콩밥


02. 선조가 즐겨먹던 오곡밥의 비밀 - 잡곡


03. 유방암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 미강


04. 결장암에 탁월한 항암효과 - 율무


05. 하루 반 개로 대장암과 폐암을 예방하는 - 고구마


06. 유방암과 전립선암에 좋은 -


07. 성인 남자 간암에 효과가 큰 - 작두콩


08. 암을 이기는 탁월한 효과 - 청국장


09. 콩의 발효과정에서 더욱 높아지는 항암효과 - 된장


10. DHA로 암을 예방하고 장수한다 - 등푸른 생선


11. 면역력을 증강시켜 암을 예방한다 - 새우젓


12. 녹색밥상을 차려라 - 녹황색채소


13. 녹즙으로 즐겨 먹는 항암식품 - 케일


14. 유방암, 대장암에 효과 큰 설포라판 풍부 - 브로콜리


15. 어리지만 효능 뛰어난 - 새싹 채소


16. 식이섬유 풍부한 십자화과 채소 - 배추와 콜리플라워


17. 위, 대장, 직장암 등에 좋은 - 양배추


18. 항암 음식의 총체 - 김치


19. 흡연자의 항산화 효과 높이는 - 신선초


20. 손상된 DNA 복구할 암 예방성분 풍부 - 시금치


21. 끓는 소금물에 데치면 효과가 2배 - 미나리


22. 저공해 산나물의 힘 - 곰취


23. 일본에서 먼저 주목한 - 가지


24. 암세포의 소멸을 돕는다 - 도라지


25. 폐암과 유방암을 억제하는 - 당근


26. 위암을 억제하는 - 고추


27. 미 국립암연구소가 선정한 으뜸 항암식품 - 마늘


28. 매운 맛이 항암 효과의 핵심 - 생강


29. 껍질 부분에 항암 물질이 풍부한 - 양파


30. 주황색 식물의 대표 주자 - 호박


31. 부추가 들어가면 항암효과가 두배 - 부추


32. 양지바른 언덕에 항암 효과 가득한 -


33. 경제적인 암예방 식습관 - 버섯


34. 초기 위암, 폐암, 후두암에 효과 높은 - 차가버섯


35. 가공식품에 항암효과가 풍부한 - 토마토


36.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막는 - 알로에


37. 바다에서 나는 최고의 야채 - 다시마


38. 풍부한 섬유질이 발암물질 배출 - 미역


39. 해조류 중에 암예방 효과 최고 -


40. 포도껍질과 씨에 풍부한 레스베라트롤 - 포도


41. 발암물질의 배출을 돕는다 -


42. 구강암, 식도암 등을 예방하는 - 딸기류


43. 일반 포도보다 10배 뛰어난 항암효과 - 머루


44. 암 없는 장수 비결 - 요구르트


45. 대장암 예방에 확실한 효과 - 유산균


46. 한국인이 많이 먹는 항암식품 - 들깨


47. 생산량이 적어 더욱 귀하다 - 아마씨


48. 지중해에서 온 기적 - 올리브 오일


49. 세계적으로 발돋움한 항암식품 - 인삼


50. 가까이 있으면서 몰랐던 항암 효과 - 홍삼


51. 전립선암과 유방암에 예방 효과 - 감초


52. 하루 2잔만으로 암예방 효과 보는 - 녹차


53. 카레의 색소 성분으로 암을 예방하자 - 커큐민


54. 최근 가장 주목받는 항암 물질 - 셀레늄


출처 : 竹馬故友
글쓴이 : 오인의 벗 원글보기
메모 :

肝(간) 청소법(Liver Cleaning)

** 만드는 법* 준비물

1. 올리브유(대형 슈퍼마켓에서 판매함)

2. 오랜지 쥬스(고급 100%) 3. 구운 소금이나 죽염

 

* 혼합액 제조법

1. 맥주컵(180cc)에 오랜지쥬스(90cc)를 붓습니다. 그리고 올리브유(90cc)를 가득채워 한컵을 만든 다음 잘 저어 골고루 섞어 둡니다.

2. 생수병(1.8리터)에 구운 소금이나 죽염을

3스푼(밥먹는 스푼)을 넣어 서 소금물을 만듭니다. 소금물에 자몽 1/2개를 즙을 짜서 섞습니다. 자몽을 구하기 힘드시면 매실 쥬스를 30cc정도 섞어도 됩니다.

 

** 먹는 법

1. 간의 청소는 2일이 소요되므로 토요일을 택하는것이 좋습니다.

2. 청소를 하는 중에는 일체의 약을 중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3. 시작하는 날은 아침, 점심은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고 육식이나 기름 진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4. 당일 오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것이 좋습니다.(물이나 쥬스는 먹어도 됩니다.) 오후 8시~10시까지는 완전 금식합니다.

 

** 실시 요령 오후 10시 혼합액(올리브유+오랜지쥬스)을 마신다음 곧바로 반드시 편 안하게 누워 주무셔야 합니다.(30분간은 움직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간 청소에 실패 하실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혼합액을 드시기 전에는 화장실에 다녀오도록 하십시오.다음날 아침 1. AM 6시에 깨어나시면 혼합액을 또 새로 만들어 한번 더 드시고 곧 바로 반드시 누워 30분간 움직이지 않고 있은 다음, 1.8리터들이 생수 병에 만들어 놓은 소금물을 맥주컵으로 2컵 연속적으로 마십니다. 이후로 5~10분 간격으로 나머지 소금물을 다 마셔야 합니다.

 

2. 곧바로 화장실에 가게 되거나 설사를 여러 차례 보게 됩니다. 설사를 하고 나서 변기속을 들여다보면 초록색과 황갈색의 크고 작은 덩어리들이 발견 될 것입니다. 이것들이 간장에서 빠져나온 간석, 담 석, 콜레스테롤 입니다. ※ 위와 같은 방법으로 환자들은 2~3주 간격으로 해 주시면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고 치료약의 효과도 배가 됩니다. 건강하신 분들도 최초 2주 간격으로 2번정도 해주시고 6개월에 한 번씩 생활화 하시면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주의 사항 천연 재료로 직접 만들어 드시기 때문에 부작용이 일체 없으나 간혹 간

기능이 저하된 분이나 여성분들은 혼합액을 드시면 속이 매스껍고 구역질 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되도록이면 참고 껌을 준비하였다가 씹으 시면 구역질이 진정 될 겁니다.

 

왜 간 크니닉이 그렇게 중요한가. 반복적인 이야기지만 사소한 알러지부터 암이나 에이즈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질병의 치료를 위하여 취해야 할

첫 번째 단계가 우리 몸을 독소들로부터 정화하는 것이다.

바로 인체는 간에서 독소들을 해독하는데 간의 해독작용을 방해하는 첫 번째 요인이 간의 담관을 막고 있는 담석이다. 그러므로 치료와 건강을 위하여 간 크리닉을 통하여 담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 사람들은 간청소를 생활화하고 있다.

 

간 청소 필요성--간 속의 독소가 질병의 근원

 

간 청소는 미국에서 세계적인 암 전문 의사인 레게클락 박사가 암을 치료하기 전에 먼저 간을 해독하여 면 연력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한 다음 암을 치료하였다.

이때 간청소를 하는 방법을 공개하여 병원이 아닌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처방을 공개하여 양심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처방을 가지고 몇 개의 회사에서 손쉽게 간청소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암, 에이즈, 당뇨, 중풍, 간 질환, 신장질환, 내분비질환, 순환기질환, 알레르기 등의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데 첫 번째로 직면하는 문제가 환자의 몸에 쌓인 수많은 독소를 어떻게 제거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1) 현대의 대부분의 난치성(疑難病) 질환들은 환자의 몸에 무언가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화학제품들, 중금속 등의 다양한 독소 들이나 인체의 대사산물들인 다양한 독소들을 체내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하 지 못해서 다양한 질병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질병을 치료하는데 중요한 개념은 어떤 물질을 투여하여 치료하려고 하는 것보다 몸 안에서 질병을 일으키고 회복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몸 밖으로 빼내는 것이 중요하 다. 즉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2) 병의 치료는 한가지로 귀결된다.

그것은 환자의 면역능력을 어떻게 강 모든 질화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면역능력을 약화시키는 가장 주된 원인이 인체내의 수많은 독소들이다. 때문에 독소제거는 결코 면역능력 제고에 큰 도움을 줌으로 질병치료에서 빠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단계이다.

 

3) 우리 인체에서 해독 작용을 수행하는 기관은 간과 신장

이 두 가지 기관이 깨끗하게 되면 인체는 스스로 우리 몸에 축적되여 있거나 새로 유입되는 독소들을 배출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간 청소는 인체의 해독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4) 간은 수많은 독소들과 어혈을 인체의 내부에서 십이지장 즉 인체의 몸 밖으로 내 보낸다. 예를 들면 술을 마시면 알콜이 간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간에서는 즉시 알콜을 膽管으로 내 보내서 인체 속의 알콜을 제거한다.

 

5) 인체의 담관은 많은 경우 담석으로 막혀있다.

그 결과 몸 안의 독소를 원활히 제거하지 못하고 독이 내부에 쌓여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면 담관이 담석으로 막혀 담즙이 흐르지 못하고 간으로 다시 유입되어 간 조직을 경화시킨다. 이것이 담즙성간경화 이다.

또한 이들 담석은 담도암 이나 간암, 당뇨 등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 다.

그러므로 담관에서 담석을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 방법이 바로 간 청소 요법 이다. 한번의 간 청소에서 배출되는 담석은 약 2,000- 3,000개 정도이다.

※담석이란? 음식속에 돌이 모여서 생긴 것이 아니고 간에서 만들어진 담 즙의 구성성분이 膽道의 어느 부분에서 굳어져 뭉쳐진 덩어리이다.

 

담석은 누구에게 있는가 ?

 인체의 모든 혈액은 3분에 한번씩을 세포에서 생긴 노폐물을 실어다 간에서 내려놓고 순환을 계속하고, 간은 그 노폐물을 산과 합성을 시켜서 담즙을 만들어 담낭으로 보냅니다.

이때에 콜레스테롤과 일부의 작은 칼슘덩어리들은 담즙으로 분해가 되지 않으므로 간에서 생성된 담즙액에 쓸려서 장으로 배출됩니다.

그런데 그 중의 일부는 중간에 이미 걸려있던 기생충이나 다른 콜레스테롤 덩어리와 뭉쳐서 차츰 커지고 이렇게 커진 것들도 대개는 담즙 배출시에 쓸려서 배출이 되지만 일부는 간의 깊은 혈관(가느다란 담관)내에 걸려서 남아있는 것이 제법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과정으로 간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생성된 담즙의 운반관 및 배출관의 내부에 차츰 걸려서 남는게 많아지고, 점점 더 축적된 덩어리가 커지고 많아지면 담즙의 배출이 훨씬 줄어 듭니다. 

 

담석은 콜레스테롤과 칼슘등의 덩어리가 모인 것이므로 대체로 일부의 오래되어 아주 크고 단단해진 경우가

아니면 X-Ray 나 초음파검사로 쉽게 발견이 되질 않습니다. 

                                               간청소 후 나온 담석


출처 : 竹馬故友
글쓴이 : 오인의 벗 원글보기
메모 :
◈ 회춘 10訓 ◈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시고 건강하세요
 


자연의 봄은 순환해서 계절따라 돌아오지만
인생의 청춘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자연의 순리임이 틀림없지요.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건강법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回春 10 訓"을 제시해서 화제랍니다.


패션. 뷰티,건강,푸드등 각 분야의 스타일리스트와
문화센터 강사등 전문가 150 명이 종합한
"10년 젊어지기 회춘 10訓"을 들여다 보니


실천하면 좋을것 같기에 -



1. 하루 10분 명상을

"생각의 근육"을 단련 하라는 것으로
편안한 음악과 함께하는 하루 10분 정도의 명상은
두뇌를 젊게 유지하는 특효약이란 설명이다.


2. 자주 빨리 걸어라.

빨리 걷기는 가장 경제적이면서 효과적인 유산소 운동으로
짧고 빠른 발걸음을 하루 30분 이상 일주일에 5회 이상 실천하면
젊음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3. 물 제대로 마셔라.
하루에 30분 동안 3컵 3번 마시는 물은 보약과 다름없다며
"물을 제대로 마시라."고 주문했다.
"3033법칙"이란다.

-- 순환계통에 큰 효과 있으니 적극 권장합니다 -- ..cch


4. 맘껏 웃어라.

웃음은 행복 바이러스로 건강증진의 첩경이란
점은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5.수수 하게 입어라


스포티하고 심풀한 패션이 젊고 돋보이게 하는 뜻이란다.


 

6. 자외선을 피하라.

자외선이 피부 노화에 치명적이란 점에서
젊고 건강을 유지 하기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추천했다.

 


7. 피부는 촉촉하게.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피부 건강을 유지하는 화장품 2가지는
바로"자외선 차단제"와 "모이스처라이저"다.


8. 리모컨은 자녀에게.

자녀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트랜스 지수를 높이자는 뜻을 담고 있다.


9. 대중 문화를 즐겨라.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을 이해하겠다고 억지로 노력하느니
자기 취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을 주문하는 대목이다.


10. 디지털을 배워라.

디지털을 두려워마라.
컴퓨터, 디카폰.뮤직 써치폰.게임폰.MP3 등 각종 첨단 전자제품의
사용법은 사실 요리보다 쉬우니 적극 배우라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출처 : 竹馬故友
글쓴이 : 오인의 벗 원글보기
메모 :


다람쥐

 
1. 과식은 절대 금물이다
 
노인의 위장은 소화 기능이 떨어지므로
과식하면 윗배까지 차오른다.
 
이때 횡경막이 올라가 심장의 정상적인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음식을 소화 시킬 때 대량의 혈액이 위장에 집중하므로
뇌와 심장에는 상대적으로 혈액이 줄어들어
심근경색이나 중풍을 일으키기 쉽다.


 

2.짠 음식을 많이 먹으면 안된다.

 

노인이 음식을 짜게 먹을 경우 염분 섭취량이 많아져서

순환하는 혈액의 양이 많아진다.

 

게다가 노인의 신장은 염분 배설기능이 떨어지므로

염분이 축적되고 혈관이 수축되어

혈압이 올라가 심장의 부담이 커진다.
 

 

 

3.노인은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수면 시간이 너무 적으면 건강에 해롭다.

 

잠을 잘때 인체는 휴식을 취하고 피로를 회복하며

에너지를 재 충전 한다.

노인은 생리기능이 떨어지고 피로회복도 느리므로

잠을 ! 충분히 자야 한다.

 

들꽃사랑마을로이동합니다

 

4.노인이라고 채식만 하면 안 된다.

 

콜레스테롤을 무서워하여 고기는 삼가하고,

 채식만하면 신체에 해롭다.

 

인체가 쇠약해지는 증세, 즉 두발의 탈색 치아와 뼈의 약화

그리고 심혈관의 질병등은

모두 망간(M! n)의 부족과 관련이 있다.

망간은 골격의 발육에 없어서는 안 되는데 부족할 경우

전신에 통증을 유발하고 등을 굽게하고 감각을 둔하게 한다.

식물성 음식에 들어있는 망간은 체내에서 흡수하기 어려우나,

육류에 함유된 망간은 흡수되기 쉽다.

그러므로 육식을 삼가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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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노인에게 슬픈 소식을 전하면 안 된다.

 

노인은 생리적 기능이 쇠약하다. 노인에게 슬푼소식을 알리면

노인은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느라

편안히 있지 못하고 잠도 편히 자지 못한다.

 

그리하여 신체 감각기관의  기능이 균형을 잃고

혈압에 이상이 생긴다.

이러한 감정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람쥐 

 

6.노인은 푹신한 의자에 앉으면 안 된다.

 

노인중에서도 특히 장시간 앉아 있는 노인은

푹신한 의자에 앉으면 안 된다.

 

이는 골반의 혈액순환에 영향을 끼쳐서

둔부에 질환을 유발한다.
 

다람쥐

 

7.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면 안 된다.

 

노인은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면

뇌 속의 혈액이 상대적으로 감소하여

일시적인 빈혈이 생긴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침침해져서 쓰러지기 쉽다.


다람쥐

 

8.갑자기 고개를 돌리면 안 된다.

 

노인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면 척추동맥이

목의 이동에 따라 압박을 받아 가늘어진다.

만약 척추동맥에 이상이 있다면 더욱 가늘어진다.

그리고 목의 교감신경이 자극을 받아서 뇌 혈관이 마비된다.

 

이로 인하여 뇌에 공급되는 혈액의 양이 감소되고

뇌혈관의 혈액순환도 떨어진다.

가벼운 경우에는 뇌의 혈액이 일시적으로 부족해서 생기는

현기증 구역질 구토 착시 귀울림

그리고 팔다리의 국부적인 마비등의 증상을 보인다.

혈전이 생긴쪽은 조절기능을 상실하여

얼굴의 감각이 없어지거나 반신불수가 되기도 한다.


다람쥐

 

9.먹으면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

 

노인은 대뇌와 중추신경 계통의 기능이 떨어져서

감각과 운동신경이 둔하고 동작이 자유롭지 못하다.

 

또 구강과 인후부의 점막이 위축 되거나

비대해져 있기 때문에

먹으면서 이야기하면사레가 들리기 쉽고

식도에 대추씨 생선가시 닭뼈 등이 박힐 수 있다.


다람쥐 

 

10.해바라기씨를 많이 먹으면 안 된다.

 

해바라기씨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노인이 이것을 많이 먹으면

체내의 콜린이 소모되어 지방대사가 균형을 잃고

그에 따라 과다한 지방이 간에 축적되어 간에 이상이 온다.

심하면 간이 썩거나 간경화증이 생긴다.

 

다람쥐

 

11.너무 자주 씻으면 안된다.

 

노인의 피부는 얇고 주름져 있다.

 

또 피부의 지방조직이 위축되어 있으므로

목욕을 너무 자주하면

오히려 피로해지기 쉽고 피부가 건조해진다.

만약 피부를 자극하는 혹은 산성 비누를 사용하여

피부에 가려움증이나 균열이 생기면 세균에 감염될 수 있다.


다람쥐 

 

12.똑바로 누우면 안 된다.

 

노인이 똑바로 누워서 자면 설근(혀를 움직이는 근육)과

인후부의 조직이 이완되어 호흡기를 막음으로써

호흡곤란으로 인한  산소 결핍을 초래한다.

 

산소 결핍 상태가 오래 되면 동맥 내벽의 삼투성이 높아져서

혈관내에 지방질이 축적 된다.

이는 동맥경화를 촉진하여

고혈압 관상동맥경화증 등의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

뇌조직에 산소가 부족하면

뇌동맥의 수축기능이 떨어져서 뇌의 기능이 저하된다.

 

다람쥐

 

13.과다한 당분의 섭취를 삼가해야 한다.

 

노인은 활동량이 적고 췌장의 기능이 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당분을 너무 만히 섭취하면

간장의 지방질 합성이 촉진되어 혈액속의 중성지방이

증가되고 이에 따라 혈관의 경화가 가속 된다.

또 당분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뚱뚱해지기 쉽고 당뇨병이 발병할 가는성이 커진다.

그리고 당분은 산성이므로 당분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체질이 중성 혹은 약산성으로 변하여

체내의 알카리성 물질인 칼슘이 소모 된다.

칼슘이 부족해지면 뼈가 약해진다.


들꽃사랑마을로이동합니다

 

14.고단백질 음식을 삼가해야 된다.

 

고단백질 음식은 체내의 칼슘 배출량을 증가 시킨다.

 

노인의 체내에서 칼슘 배출량이 많아지면 뼈가 약해져서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에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노인은 신장의 기능이 저하되어 있으므로

단백질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신장의 부담이 커져서

신장 장애가 샹길 수 있다.


들꽃사랑마을로이동합니다

 

15.식사후에 TV를 보면 안 된다.

 

노인은 식사 한  후 바로 TV를 보면 안된다. 왜냐하면

이때는 소화기관에 혈액이 공급되어 소화를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TV를 보면 대뇌의 활동에도 혈액이 필요하므로

소화기관이 공급 받는 혈액의 양이 상대? 岵막?감소하여

음식물을 소화하는데 지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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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항생제를 남용하면 안 된다.

 

항생제는 신경계통과 조혈계통 그리고 간장 신장 심장 등에

모두 해롭다.

 

간과 신장의 기능이 좋지 않은 노인에게는 그 해가 특히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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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바둑에 몰입하면 안 된다.

 

노인의 심리상태는 승패에 따라 변화가 심하여

바둑에 몰입하게 되면 대뇌의 활동과 반사능력이 떨어지고

자율신경의 기능도 장애를 일으켜서 질병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오래 앉아 있으면

위장의 연동운동이 느려져서 변비? ?치질에 걸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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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이가 빠지면 의치를 꼭 끼워 넣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치아의 상태도 안 좋아진다.

 

치아는 발음과 얼굴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소화기능에도 영향을 주어 위의 부담을 증가 시킬 수 있다.

이가 빠지면 관자놀이 관절의 기능이 떨어지고

남아 있는 치조골이 계속 위축 된다.

 

얼굴의 1/3이 수축 되거나 근육도 정상적인 힘을 잃는다.

주름도 많아지고 아귀가 아래로 쳐져서 한층 늙어 보인다.

또 아래턱의 위치가 이상해지고 그 기능도 떨어진다.

이의 빈자리를 방치 해 두면 턱뼈가 뒤로 물러나서

이명 현기증의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에우스타키관(Eustachi관 : 중이에서 인후로 통하는 기관)이

막히고 청각도 영향을 받으므로 제때에 치아를 해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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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격렬한 시합이나 아슬아슬한 장면을 보면 안 된다.

 

이전에 심장병을 앓았던 노인이 긴장되는 시합 등을 보면

뜻밖의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극도의 긴장 또는 흥분은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아드레날린과 부신의분비량을 증가시키고

심장 박동을 ! 빠르게 하며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이 올라 간다.

동맥경화 환자는 이때 뇌혈관이 파열되어 중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관상동맥경화 환자는

심근에 혈액이 부조과여 협심증 또는 심근경색을 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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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과거에 너무 젖어 있으면 안 된다.

 

노인은 추억에 잠겨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탄식과 감상은

적막감과 고독감 우울증 등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러한 소극적인 심리상태는 대뇌의 부담을

가중시켜 정신적으로 피곤해지기 쉽다.

또한 대뇌와 신경계통의 기능이 떨어져서

초조함 우울함 자기비하 등의 감정이 나타나고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 한다.

각종 질병은 이때를 틈타 발병한다.

고혈압 관상동맥경화증 천식 당뇨병 동맥경화 암

심지어 노인성 치매가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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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노인은 식사 직후에 분주하게 걸으면 

안된다.

 

음식을 소화시키려면 복부의 혈관이 확장 충혈되는데,

이때 뇌에 공급되는 혈액의 양은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그래서 식사 후에는 졸음이 오는 것이다.

 

노인은 심장의 기능과 혈아 조절기능이 떨어지고

혈관도 좁아져 있으므로 식사를 하면 혈압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식사 후 분주하게 움직이면

저혈압으로 인해 혼절하거나 실족할 수 있다.

 

다람쥐

 

22.식후의 낮잠을 삼가야 한다.

 

식사 후에는 혈액이 위장으로 몰리기 때문에

대뇌의 혈액이 줄어들어서 혈압이 떨어지고 산소의 양도 줄어든다.

 

대뇌의 혈액 부족으로 인해 중풍을 일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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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크게 화를 내면 안 된다.

 

노인이 일단 화를 내면 체내의 혈관을 지배하는 교감신경이

흥분하여

전신의 소화혈관이 수축한다.

 

이에 따라 혈압이 올라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심근에서 소모되는 산소의 양이 많아져 심장의 부담이 커진다.

원래 질환이 있던 노인은 병세가 더 심해지고

뇌출혈 급성심근경색 심장파열 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심박동의 리듬이 깨져서 사망할 수도 있다.


다람쥐

 

24.치료를 마음대로 중단하면 안 된다.

 

노인은 감각이나 신경의 반응이 느리기 때문에

자신의 감각에 따라 병세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노인의 질병의 대부분은 만성적으로 진행 되는 것이다.

체계적이고 꾸준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병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확실한 진찰! 을 받은 후 의사의 처방을 따라야지,

자신의 느낌에 따라 앞으로의 치료나 약물의 복용 여부를 결정하여

병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몰고 가서는 안 된다.

 

 

25.뚱뚱한 노인은 달리기 운동을 하면

안 된다.

 

비교적 뚱뚱한 노인이 달리기 운동을 하면

골격이 푸석푸석해지고 인대가 딱딱해질 수 있다.

 

또 근육 아킬러스건 인대 등에손상을 입힐 수 있다.

그러므로 60세 이상의 남성과 50세 이상의 여성 중

뚱뚱한 사람은 달리기 운동을 하면 안된다.

 

※출처 : 건강한 생활을 위한 생활속의 금기.

 
출처 : 竹馬故友
글쓴이 : 오인의 벗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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