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 미사일 사거리를 800km로 제한한 미사일 지침을 폐기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독자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을 겨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만 보유할 수 있었다. 이제 그 한계를 벗어나 사거리 2000~3000km 대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본격 개발해 적극적으로 우리 안보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북한처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 무기도 개발할 수 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조선일보 데일리 팟캐스트 모닝라이브에 출연,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해 사거리 2000~3000km의 초강력 EMP탄(전자기 폭탄·Electromagnetic Pulse Bomb)을 개발하면 핵에 버금가는 한국형 전략무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EMP탄은 초강력 전자기파를 이용해서 폭탄이 투하되는 지역의 모든 전자 장비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 폭탄이 터지면 컴퓨터와 휴대폰, 통신장비, 전산설비 등 모든 전자 장비의 작동이 중단된다. 고도의 정보화 사회를 사실상 원시 시대로 되돌리고 경제·행정·군사 등 모든 국가 체계를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이다. EMP탄의 장점은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하지 않더라도 인명 살상을 최소화하면서 광범위한 지역에서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목표 지역 상공에서 EMP탄을 폭발시키면 해당 지역 전체가 마비된다. 정보화 수준이 떨어지는 북한조차도 핵과 미사일 등 핵심 군사 체계가 전자 장비로 작동되기 때문에 EMP탄이 터지면 미사일 공격 체계가 마비된다. 남한이나 미국을 공격하고 싶어도 공격할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신 센터장은 “중거리 초강력 EMP탄은 20년 내에 개발이 가능하다”며 “EMP탄을 보유하면 중국이나 북한, 러시아 등 주변 어느 나라도 우리를 함부로 공격하거나 위협하기 힘들어진다”고 했다. 북핵과 중국 등의 위협에 대응하는 전략 무기가 된다는 얘기다. 사거리 2000km대면 중국과 일본의 모든 주요 도시와 러시아의 극동 지역을 사정거리 안에 두게 된다. 중국으로선 이번 미사일 지침 폐지를 내심 상당히 껄끄럽게 여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우리로선 중국 등의 위협을 받더라도 언제든 대응해 꼼짝 못하게 할 안보 자산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협의체인 쿼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대만 해협의 평화와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도 언급했다. 특히 대만 해협 발언은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처음으로 나온 것이다. 중국은 곧바로 “내정 간섭”이라면서 “불장난하지 말라”고 했다. 향후 중국이 이에 대응해 경제보복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이 우리에게 쓸 수 있는 보복 카드는 여러가지다. 중국 현지에 있는 우리 기업에 대해 세무조사나 위생조사를 실시할 수 있고 통관절차를 까다롭게 할 수도 있다. 유학생이나 기업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미룰 수도 있다. 시진핑 주석 방한을 무기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대한(對韓) 압박 카드가 과거에 비해, 그리고 당초 우려보다 많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신 센터장은 “과거 사드 보복 때 한국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관광 중단을 비롯한 한한령(限韓令)이었다”면서 “그런데 중국은 이미 그 카드를 다 써먹어 버렸다”고 했다. 또 “어차피 코로나 상황이라 그런 조치로는 우리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힐 수가 없다”며 “실질적으로 한국 기업을 압박할 카드도 많지 않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지금은 중국이 미국의 집중 견제를 받으며 코너에 몰린 상황이라 한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기 가장 어려운 시기”라며 “한국의 기술·부품 협력이 오히려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지나치게 공중증(恐中症)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보복에 대해 우리가 쓸 수 있는 보복 카드도 있다. 한국이 반도체 등 핵심 부품 수출을 멈추면 중국은 당장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반도체가 우리의 카운터 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이 중국 눈치를 보지 않고 한미동맹을 강화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일 수 있다. 과거 사드 때처럼 안보주권인 ‘3불(不)’을 내주고 중국에 변명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신 센터장은 “지금 우리 정부가 중국을 달래기 위해 입장을 다시 바꾸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라며 “중국의 신뢰를 얻기 위해 방향 전환을 하면 미국의 신뢰마저 깨지면서 외톨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당당하게 우리 입장을 밝히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공군의 전략폭격기인 B-52 스트래토포트리스는 1956년 처음 도입됐다. 그런데, 2021년 현재도 날아다니고 있는 데다, 요즘 엔진과 항공전자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B-52를 2050년대까지 마르고 닳도록 쓰려는 게 미 공군의 속셈이다. 미국 방산회사인 록히드마틴의 전투기인 F-16도 B-52에 이어 센트리 클럽(도입 100년)을 노리고 있다.
비행 중인 F-16V 바이퍼. 록히드마틴 유튜브 계정 캡처
25일 미 공군에 따르면 록히드마틴과 함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의 F-16 생산 시설을 가동 중이다. 이 시설은 바레인,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대만,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국가 등 5개국으로부터 주문을 받은 128대의 F-16을 만들 계획이다.
이들 F-16은 빨라도 2026년부터 순차적으로 주문 국가에게 전달된다. 항공기의 사용 수명을 보통 40년으로 잡는다. 2060년대, 늦으면 2070년대까지 창공에서 F-16을 볼 수 있는 셈이다. F-16의 첫 시험 비행은 1974년에 이뤄졌다. 2070년대라면 100년을 날아다니게 된다.
물론 20세기의 F-16과 21세기 F-16은 다르다. 제조사는 제너럴다이내믹스에서 록히드마틴으로 바뀌었다. 그린빌에서 생산할 블록 70/72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게 개량됐다. 별명도 파이팅 팰콘(Fighting)이 아닌 바이퍼(Viper)로 불린다.
출격을 앞둔 F-16V 바이퍼. 미 공군
인도는 이와 별도로 최대 114대의 F-16을 구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도판 F-16은 F-21이라는 다른 제식명이 붙는다. 그레고리 얼머 록히드마틴 부사장은 “추가로 300대의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찰스 브라운 주니어 미 공군참모총장은 “F-16 신형을 600대 남짓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여차하면 F-16을 더 주문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F-16을 운용하고 있는 전 세계 25개국 중 한국을 비롯한 상당수가 F-16을 최신형으로 개조하고 있다.
문제는 F-16의 ‘무병장수’가 한국이 독자 개발한 KF-21 보라매의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KF-21의 개발 목표는 ‘F-16보다 더 나은 성능’이다. 그런데, F-16도 끊임없이 환골탈태를 하고 있어 KF-21과의 성능 차이가 좁혀지고 있다.
KF-21이 경제성을 가지려면 400대 이상을 팔아야 한다. 이미 실전에서 여러 차례 검증을 받은 F-16이 현역에서 계속 뛰면 뛸수록 KF-21의 입지는 좁아진다는 게 방산업계의 전망이다.
영국 잉글랜드 포츠머스 왕립 해군기지에서 최신예 항공모함인 퀸엘리자베스함(6만5000t급·오른쪽 사진)이 22일 바다로 떠나고 있다. 31억 파운드(약 4조8045억 원)를 들여 건조한 퀸엘리자베스함은 길이가 280m로 영국 국회의사당보다 길며 ‘바다 위의 군사기지’로 불린다. 퀸엘리자베스함을 비롯한 영국군의 구축함, 보급함 6척과 핵추진 잠수함 1척은 이날부터 28주 동안 한국 일본 인도 싱가포르를 포함한 40개국을 방문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퀸엘리자베스함 출항에 앞서 포츠머스 왕립 해군기지를 방문했다. 포츠머스=AP 뉴시스
지난주 미국과 일본,프랑스, 호주 4개국이 일본 근해 및 본토에서 중국을 겨냥해 실시한 연합 해상기동 및 상륙훈련이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미 국방부가 관련 영상들을 잇따라 공개했다. 이번 훈련은 프랑스 육군과 해군이 일본에서 연합훈련에 처음으로 참가한 것이어서 주목을 받아왔다.
미 국방부는 프랑스의 미스트랄급 강습상륙함 토네르함과 일본 휴가급 헬기항모 이세함 등 4개국 함정 11척이 참가한 해상기동 훈련 영상을 공개했다. 이번 해상 기동훈련에 는 일본에선 이세함과 아타고급·공고급 이지스 구축함, 오오스미급 상륙함, 아사히급 구축함, 4000t급 소류급 잠수함 등이, 프랑스에선 토네르함과 라파엣급 프리깃함 등이, 미국에선 뉴올리언스 상륙함(LPD)이, 호주에선 안작급 구축함 등이 참여했다. 영상에서 4개국 함대는 프랑스 토네르함과 일본 휴가급 헬기항모를 중심으로 대형을 구성해 함께 항진했다.
◇미,일,프랑스 지상군, 일 본토서 첫 연합훈련
이번 훈련에서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이례적으로 아시아까지 출동한 프랑스 미스트랄급 강습상륙함 토네르함이다. 토네르함은 만재 배수량이 2만1000t에 달해 경항모와 비슷한 대형 상륙함이다. 길이 199m, 폭 32m로 헬기 16~35대, 전차 40대를 탑재할 수 있다. 상륙부대원은 최대 900명을 수송한다.
2021년5월 프랑스 미스트랄급 상륙함과 일본 헬기항모 등 미,일,프랑스,호주 함정들이 일본 근해에서 연합 해상기동 훈련을 벌이고 있다. /미 국방부 영상 캡처
미스트랄급은 지난 2010년 러시아에 2척을 판매키로 계약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파기됐고 이집트가 대신 도입했다. 프랑스는 3척의 미스트랄급 상륙함을 보유하고 있다.
상륙함 등으로 구성된 프랑스 상륙준비단이 일본을 찾은 것은 2017년, 2019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11~16일 연합훈련 기간 동안 4개국 11척의 함정이 일본 근해에서 기동훈련을 벌였고, 미국·프랑스·일본 전력이 도서를 탈환하는 훈련을 했다. 도서탈환 훈련엔 미국 해병대와 일본의 수륙기동단(해병대), 프랑스의 해병보병대(육군 소속)가 참가했다. 일본 본토에서 3개국 지상군이 연합 훈련을 벌인 것은 처음이다.
◇프랑스, 영국 등 대중 견제 전선 참여 본격화
특히 15일엔 규슈(九州) 앞바다에 배치된 함정에서 미 해병대 MV-22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와 일본 육상자위대 CH-47 헬기로 3개국 병력을 실어 기리시마(霧島) 훈련장에 보내 시가지 전투에 투입하는 연합훈련이 실시됐다. 미 국방부는 미 해병대와 일본 수륙기동단이 침투로를 확보한 뒤 프랑스 해병보병대가 건물에 진입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일본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점령시 탈환을 상정한 훈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얘기다. 산케이 신문은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포함한 난세이(南西) 제도를 지키기 위해 미국·프랑스와 연대를 강화, 중국을 견제하는 목적으로 연합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해군과 육군의 이례적인 일본 지역 훈련 참가는 미국의 대중 견제 전선에 프랑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되고 있다. 오는 8~9월엔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이 처음으로 우리나라와 일본 등을 방문하고, 미·영·일 연합훈련에 참가할 예정이다. 프랑스·영국 등 유럽 강국들의 아시아 회귀 및 대중 견제 전선 참여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3월 말 서욱 국방장관 주재로 열린 제134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서 대형 공격헬기 2차 사업이 결정되자 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방추위에서 방위사업청은 대형 공격헬기 2차 사업을 해외 구매로 추진하는 사업 추진 기본 전략을 심의·의결했다. 헬기 기종이 구체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군 안팎에선 미국의 AH-64E 아파치 가디언 헬기가 선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지난 2012년부터 대형 공격헬기 1차 사업을 통해 약 1조9000억원의 예산으로 아파치 가디언 36대가 도입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백형선
추가로 36대가 도입될 2차 사업은 내년부터 2028년까지 약 3조1700억원이 투입된다. 군 일각에서 이번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대형 공격헬기 2차 사업이 송영무 국방장관 시절 평양을 조기 점령하는 ‘신(新)작전 수행 개념’에 맞춰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 장관이 바뀐 뒤 새 작전 개념이 유야무야되면서, 사업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 있었다. 북한 기계화부대 위협 등에 대비한 공격헬기 전력이 이미 충분하다는 평가도 이런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세계 최강의 공격헬기로 꼽히는 아파치는 한국군 외에 주한미군도 2개 대대(48대)를 보유 중이다. 군 당국은 이와 별개로 기존 코브라, 500MD 등 노후 공격헬기를 대체하기 위해 국산 LAH(소형 무장헬기)를 개발 중이다. 대전차(對戰車)미사일 등으로 무장한 LAH는 내년부터 총 200여 대가 도입된다. 이 사업에는 개발비와 양산비를 합쳐 5조원이 훨씬 넘는 돈이 들어간다. 한·미 양국 군은 공격용 헬기 외에도 다양한 ‘북 전차 킬러’들을 보유하고 있다.
군 안팎에선 육·해·공군 모두 자군(自軍) 이기주의에 따라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각종 전력 증강 사업들을 한꺼번에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어, 일종의 내폭(內爆)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육군에선 대형 공격헬기 2차 사업 외에 차륜형 대공포 ‘비호’ 등 지나치게 다양한 단거리 대공(對空) 무기들, 과도하게 많은 일부 탄약 등이 그런 경우로 알려져 있다.
해군에선 최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한국형 경항공모함 사업이 중요 사례로 꼽힌다. 우리 대전략과 작전 개념하에서 경항모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심층 분석 없이 통수권자와 일부 군 수뇌부의 의지에 의해 추진되다 보니 정치적 논란거리로 비화했다는 지적이다. 경항모 논란에 비해선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지만 합동화력함의 경우도 실효성에 대해 강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합동화력함은 우리 지상 미사일 기지가 북한의 선제공격에 의해 무력화할 경우에 대비해 80발의 현무-2 등 각종 탄도·순항 미사일을 탑재하는 ‘미사일 포함’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총 3척 건조 및 탑재 미사일 비용으로 2조원 가까운 돈이 들 것으로 예상돼 지상 미사일 기지에 비해 가성비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군의 경우 F-15K 전투기와 E-737 조기경보기 성능 개량에 각각 4조600억원, 1조5000억원의 엄청난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게 논란거리다. F-15K는 도입가의 절반, E-737은 도입가와 같은 수준의 성능 개량 비용이 드는 셈이다. 해외 대형 방산업체 고위 관계자는 “F-15K 성능 개량 비용은 2조원 수준이 합리적이라고 본다”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항모에 탑재할 F-35B 스텔스 수직 이착륙기 20대 도입 비용도 문제가 될 전망이다. 총 3조~4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공군은 자신들의 예산으로 해군용 F-35B를 도입하기를 원치 않는다. 반면 해군은 해군대로 공군 예산으로 도입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군 당국은 이 같은 대형 무기사업들이 여러 해에 걸쳐 분산돼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러할까? 전문가들은 군 당국이 보통 국회 동의 등을 받기 위해 처음엔 적은 예산을 배정했다가 나중에 많은 돈이 들어가도록 해왔기 때문에 2020년대 중반 이후 육·해·공 각군 주요 사업들이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는 해당 사업들뿐 아니라 다른 측면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우선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첨단 미래전 기술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 힘들게 한다는 점이다.
AI(인공지능), 드론·로봇, 레이저, 사이버, 초소형 위성 등 우주전, 극초음속 무기 등은 미래 한국군의 운명을 좌우할 무기다. 올해 방위비 개선비 16조9964억원 중 4차 산업혁명 관련 예산은 1조5299억원으로 방위력 개선비의 9% 수준이었다. 지금과 같은 추세면 4차 산업혁명 관련 국방예산 비율이 크게 높아지기 어렵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장병 급식비 등 후생복지 예산이나 동원(예비군) 예산을 크게 개선하기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올 병사 순수 급식예산은 1조1900억원으로 전체 국방비 52조8401억원의 2.3%였다. 대규모 병력 감축에 따라 예비군의 중요성은 훨씬 커졌지만 올해 동원 예산은 2444억원으로 전체 국방비의 1%도 안 된다. 군 전력 증강 전문가인 정홍용 전 국방과학연구소장은 “군사력 건설 결정 과정에서 각군의 집단 이기주의 등이 작동하게 되면 국방예산의 효율적 사용은 요원해진다”고 강조한다.
‘타키투스의 함정’이란 말이 있다. 정부나 조직이 신뢰를 잃으면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모두 거짓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육·해·공 각군이 군 전력 증강 등에서 지금과 같은 행태를 지속한다면 국민은 군이 뭐라 해도 믿지 않는 타키투스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군 수뇌부와 육·해·공 각군의 각성을 촉구한다.
소련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이 신예기를 배치하면 곧바로 대항마를 선보이면서 하늘에서의 주도권 다툼에서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전통의 공중전 방식인 독파이팅이 아니라 미사일과 레이더를 앞세워 눈으로 보이지 않는 먼 거리에서 교전을 펼치는 제3세대 전투기 시대부터 점차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자충수 덕분에 그럭저럭 F-4에 대항할 수 있었지만 전투기의 성능이 열세임은 확실했다.
러시아 공군 곡예비행대 소속의 Su-27과 MiG-29 편대. TsAGI의 연구를 바탕으로 체급을 달리해 개발되었기에 외형이 유사하다. < 출처 : (cc) Aleksandr Markin at Wikimedia.org >
서둘러 MiG-23을 개발해서 배치에 나섰으나 그때 미국은 성능이 더욱 향상된 레이더, 항전장비, 플라이 바이 와이어 등을 이용하는 제4세대 전투기 시대의 개막을 목전에 두고 있던 상태였다. 이에 MiG-23의 본격 양산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TsAGI(중앙 유체 역학 연구소)의 개념 연구를 시작으로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착수했다. 여기서 격차가 더 벌어지면 상당히 곤란하다고 보았기에 상당히 조급했다.
그러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해 1982년부터 실전 배치된 전투기가 흔히 F-16의 대항마로 알려진 MiG-29다. 소련의 제4세대 전투기 시대를 개막한 역작으로 지상 기지의 관제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전작들과 달리 독자적으로도 다목적 임무에 투입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1988년 영국 판보로(Farnborough) 에어쇼에 존재를 드러내 서방에 위용을 자랑했을 정도로 회심의 역작이었다.
폴란드 공군의 MiG-29. 원래 동독군이 운용하던 것이었으나 통일 후 전력 유지가 불필요하다고 결정한 독일로부터 거저 얻다시피 했다. < 출처 : (cc) Łukasz Golowanow at Wikimedia.org >
그런데 서방에 공포를 선사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소련 내부에서는 고민이 많았다. 여전히 해당 분야의 기술력이 떨어져서 가장 중요한 레이더와 항전장비 등의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을 감추고 일단 배치부터 시작했을 만큼 당시 소련은 초조했다. 냉전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결국 1990년 독일이 통일된 후 동독군이 운용하던 MiG-29를 서방이 획득하면서 그동안 감춰 온 문제점이 드러났다.
근접전 능력은 소문대로 뛰어나지만 단지 그뿐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었다. 물론 소련도 처음부터 개량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사실 선 배치 후 개량은 이전부터 소련이 사용해 온 전력 확충 기법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오히려 1991년에 체제가 붕괴되는 엄청난 사건까지 벌어졌다. 순식간 수많은 무기 제조 업체들이 각자도생에 나서야 했다. 미그 설계국(MiG Design Bureau, 이하 미그)도 마찬가지였다.
MiG-33은 MiG-29M의 대외 판매용 이름이다. 이를 기반으로 MiG-35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 출처 : (cc) Alex Beltyukov at Wikimedia.org >
그 와중에 소련의 대부분을 승계한 러시아가 국방비 절감을 위해 Su-27로 주력기를 단일화하기로 결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걸프전쟁,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에서 드러난 MiG-29의 실전 기록은 실망스러웠다. 더구나 1999년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전쟁 중 벌어진 공중전에서 Su-27에 격추당하기도 했다. 이에 미그는 개량형인 MiG-29M을 MiG-33이라고 재명명해서 판매에 나섰으나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어려웠다.
당장 대안이 없던 미그는 소련 시절에 확보했던 해외 시장마저 잃을 상황이 되자 MiG-33의 대대적인 전면 재설계에 착수했다. 그러한 개발 과정을 거쳐 2007년에 초도 비행에 성공한 신예기가 MiG-35다. 나토에서 MiG-29의 개량형을 의미하는 펄크럼(Fulcrum)-F로 명명했듯이 외형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MiG-35는 항속 거리, 레이더의 성능, 무장 능력이 대폭 향상된 21세기형 전투기로 제4.5세대로도 구분된다.
미그를 살리기 위한 러시아 당국의 결정으로 간신히 양산이 시작되었으나 향후 전망은 불분명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미그는 일단 기존 MiG-29 사용국의 대체 수요를 잡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내심 내수 탈환도 염원했다. 그러나 대대적인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해외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러시아에서는 Su-35에 밀리면서 양산 여부마저 불투명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2017년에 생산 인프라로써 미그의 전략적인 위상을 고려한 러시아 공군에서 24기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2020년 현재까지 시제기 포함해 총 14기가 제작되었다.
종종 1970년대 개발된 MiG-29가 기반이므로 MiG-35의 성능을 폄훼하는 의견도 있으나 이는 오해다. 비단 MiG-33뿐 아니라 현재 활약 중인 제4세대 전투기들의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 공군의 F-15K나 향후 미 공군이 배치할 예정인 F-15EX의 기반도 1970년대 개발된 F-15다. 이렇게 많은 전투기들이 40년 넘게 주력기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 발달에 힘입어 꾸준히 성능을 개량해 왔기 때문이다.
MiG-35는 미그의 노력이 결집된 전투기이나 여러 이유로 말미암아 크게 돋보이지 않는 신세가 되었다. < 출처 : (cc) Vitaly V. Kuzmin at Wikimedia.org >
따라서 MiG-35는 성능 때문이 아니라 냉전 종식과 이로 인한 군비 감축의 시대상으로 인해 양산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오히려 성능은 적극적으로 대외 판매를 시도한 덕분에 충분히 검증된 상황이므로 만일 냉전 당시였다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MiG-35는 과거의 위상을 지키려는 전통의 명가가 자신만만하게 선보였으나 시대를 잘 못 타고난 역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징
MiG-35는 외형상으로 MiG-29와 기본적 형태가 같다. 굳이 차이라면 주익, 보조익, 수평 미익의 크기가 커진 것과 고받음각 비행에 유리하기 위해 스트레이크부 앞전을 첨예하게 만든 점 등을 들 수 있다. 기동력이 향상되었으나 사실 MiG-29도 근접전의 최강자라는 소리를 들었기에 크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최신 전투기일수록 기동력보다 레이더, 항전장비, 무장의 성능이 중요하다.
MiG-35 기수에 장착된 주크 AESA 레이더. < 출처 : (cc) Allocer at Wikimedia.org >
미그는 MiG-35에 주크(Zhuk)라고 불리는 AESA 레이더를 탑재했다. 옵션에 따라 구매자가 선택을 달리할 수 있는데 고급형의 경우는 탐지 거리가 250km에 이른다. 컴퓨터와 연동되어 30기의 적기를 동시에 추적해 6기와 교전이 가능하고 지상의 목표도 동시에 2곳을 타격할 수 있다. 주익의 하드포인트도 각 4개소로 증가해 더 많은 무장의 탑재가 가능하다. 한마디로 눈과 주먹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늘린 것이다.
MiG-35에 장착된 RD-33MK 터보팬 엔진은 전작보다 10퍼센트 정도 추력이 향상되었고 가동 수명도 늘어났다. < 출처 : (cc) Vitaly V. Kuzmin at Wikimedia.org >
MiG-35는 전방 동체를 연장시켜 내부 연료 탑재량이 늘리고 보조 탱크도 3개까지 장착할 수 있어 작전 반경이 MiG-29보다 30퍼센트 이상 증가되었다. 엔진도 10퍼센트 정도 추력이 향상되었고 가동 시간이 늘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여러 경쟁작들과 비교했을 때 앞서는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자국 내에서조차 Su-35에 밀린다. 경전투기라는 체급 차이로 말미암아 여전히 어중간하다는 평가를 듣는 편이다.
운용 현황
MiG-35는 앞서 언급처럼 시제기 포함해서 현재까지 러시아 공군이 도입한 14기만 제작되었다. 현재 러시아 공군이 배치 중인 주력기가 Su-35이고 이를 후속해서 향후 도입이 예정된 Su-57이 이런저런 이유로 양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정도도 감지덕지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만일 당국이 미그를 구제할 의지가 없었다면 MiG-35는 그냥 사장되었을 것이다.
대외 판매에 연이어 실패하면서 현재 러시아만 소량 운용 중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전통의 소련 전투기 사용국이던 인도, 이집트에 판매를 시도했으나 모두 좌절되었다. 특히 이집트는 계약 성사 단계까지 갔지만 최종적으로 MiG-29M이 낙찰되었다. 그러나 미그는 아르헨티나, 페루,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미얀마 시장을 꾸준히 노크하고 러시아 해군에 Su-33 대체를 위한 해군형을 제한하면서 MiG-35에 대한 미련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MiG-35의 앞날은 상당히 불투명하다.
MiG-35의 이집트 판매는 계약성사 직전단계까지 갔으나 실패했다. 영상은 이집트공군 도장의 MiG-35이다. < 출처 : 유튜브 >
변형 및 파생형
MiG-35: 양산전 1인승 단좌기
MiG-35 단좌시제기인 "961"번 기체 < 출처 : airforce.ru >
MiG-35D: 양산전 2인승 복좌기
시범 비행 중인 MiG-35D. 제4.5세대로도 구분되는 최신예기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MiG-35S: 러시아 공군용 단좌기
MiG-35S < 출처 : Public Domain >
MiG-35UB: 러시아 공군용 복좌기
MiG-35UB < 출처 : RussianPlanes.NET >
제원
형식: 쌍발 터보팬 다목적 전투기 전폭: 12m 전장: 17.3m 전고: 4.73m 주익 면적: 41㎡ 최대 이륙 중량: 24,500kg 엔진: RD-33MK 터보팬(19,900파운드) × 2 최고 속도: 마하 2.25 실용 상승 한도: 16,000m 전투 행동반경: 1,000km 무장: 30mm Gsh-301 기관포 × 1 R-73, R-77 공대공미사일 Kh-25MAE, Kh-29L/TE, Kh-38ME 공대지미사일 S-8, S-13, S-24, S-25 로켓 하드포인트 9개소에 최대 6,500kg 탑재 가능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