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전쟁할까?

윤석준의_차밀 작성자: 윤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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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9-07 10:50:49

<윤석준 차밀, 2020년 9월 7일>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전쟁할까?

 

 


최근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 상공에서 갑자기(?) 대립하면서, 향후 미중 간 남중국해에서의 대규모 전투 또는 전쟁이 발생할 것이라는 기사들이 많이 보도되고 있다.

 

지난 8월 26일∼27일 미국 공군 U-2와 RC-135 정찰기가 중국군이 훈련을 위한 설정한 남중국해 비행금지구역에 진입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8월 27일 중국군 로켓사령부는 수발의 DF(東風)-21D와 DF-26B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을 남중국해 쪽으로 발사해 대응한 것이 발단이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8월 28일 중국 해군 진(晉)급 핵전략잠수함(SSBN)이 쥐량(巨良; JL-2A) 또는 신형 JL-3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남중국해에서 발사하였다”고 보도하였으며, 미 해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지스 머스틴 구축함을 남중국해에 급파하여 항행의 자유작전(FONOP)을 실시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중국 남부전구사령부 대변인은 “중국 해군 함정이 이를 퇴출(expell)시켰다”며 대응하였다고 선언하였다.

 

이와 같이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간 대결 도메인이 수중, 해상 그리고 공중으로 확대되고 있어, 국내외 매체들은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대립이 향후 대규모 전투 또는 전면전 양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것이었다.

 

심지어 일부 국내외 매체들은 11월 미국 대선을 둔 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 차단 실패와 홍콩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 등으로 외교적 고립에 직면한 시진핑 주석이 남중국해에서의 군사력 세(勢) 경합으로 국내외 현안을 해소시키려 한다며 향후 미중 간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충돌이 나타날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보도하였다.

 

하지만 호주 통합국방사관학교(ADFA) 명예교수 칼 테이어 박사와 디폴로멧(The Diplomat)의 안키트 판다 박사 등 해외 해양안보 전문가와 군사 전문가들은 이러한 전망과 달리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 간 대규모 군사적 충돌 또는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비교적 낮게 본다. 주된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남중국해 분쟁의 본질을 국제법 적용 문제로 보아야 하며, 여기서 파생된 문제인 미중 간 군사적 대결 국면은 과장되었다는 논지였다.

 

왜 이런 시각 차이가 있나?

 

일종의 저널리즘 시각의 우세이다. 대부분 매체들이 남중국해 분쟁을 주로 미중 간 “힘의 장(場)”으로 보며, 강대국 반열에 오른 중국에 대해 남중국해 해양영유권 분쟁을 갖고 있는 아세안 연안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그리고 대만이 군사적으로 맞서기 힘들어 하자, 미국이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군사적 대결을 불사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로버트 카플란 박사가 2011년 8월호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에 “남중국해는 미국과 중국 간 미래 대결의 장이다”의 기고문을 발표하고, 이어 2015년에 『아시아의 분쟁지역: 남중국해와 태평양 안전』 책자를 발간한 저널리스트적 논지가 여과없이 안보 전문가들에게 인용되면서 ‘기정 사실화’되었던 원인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힘의 정치(power politics) 이론에 심취한 국제정치학자들은 남중국해 대립을 “힘에 의한 강자 질서(rule of the strong)”의 대표적 사례로 들면서 남중국해 분쟁을 중국과 아세안 연안국 간 지리적 여건과 국제법 해석 및 적용에 대한 이견에 의한 국제법적인 문제임을 간과하고, 쇠퇴하는 강대국과 부상하는 강대국 간 힘의 전이(power transition) 논리가 남중국해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이는 남중국해 문제를 힘의 우위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는 강대국 결정론을 주장하는 미국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공세적 현실주의에 익숙한 국제정치 학자들에게 힘의 논리를 남중국해 분쟁 해결에 있어 불변의 진리로 인식한 연유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남중국해 분쟁을 유엔해양법협약 적용 상의 문제로 보는 해양안보 전문가와 군사력 운용에 대해 고민하는 군사 전문가는 과연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국제정치 논지 보다, 군사적 운용을 위한 교리와 군사작전적 측면을 고려하면서 국제정치학자와 안보 전문가들의 논리와 다른 신중한 접근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통상 군사력을 투입할 경우 지휘관은 항상 국제법적 당위성, 당사국들의 의견 그리고 사후 처리 등에 대한 법률적 자문을 받고 행동한다면서, 지금과 같이 미 해군 7함대와 중국군 남부전구사령부가 주도하는 정찰감시와 항행의 자유 작전 그리고 맞대응 작전이 극단의 힘의 우위 논리 증명을 위한 군사력 투입은 아니라면서 조심스런 전망을 내리고 있다.

 

실제 이는 한국군이 한국전쟁 당사국이지만, 한미 연합방위체계와 유엔사 정전위원회의 통제를 받아 비무장지대(DMZ)과 북한한계선(NLL)에서 북한의 도발행위에 맞대응함에 있어 군사력 운용 제한성을 받는 사례와 같이 남중국해도 비슷한 사례라는 주장에서 증명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의 성격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남중국해 분쟁은 국제법의 적용과 해석 문제에서 비롯된 당사국 간 양자 문제로 출발하였고, 국제법에 이어 국내법까지 적용되고 있는 복잡성을 띄게 되었다. 즉 국제법 적용에 대한 합의 없이 국내법을 마구잡이식으로 제정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이 단순한 지도를 근거로 역사적 기득권을 주장하고, 미국과의 강대국 경쟁 국면과 역내 이행당사국 호주, 일본 그리고 인도의 이해까지 겹치어 “새로운 분쟁 지역(new flash point)” 또는 ‘혼동의 장(cauldron)’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중국이 1974년, 1988년, 1998년에 이어 2013년부터 남중국해에서 대대적 인공섬을 조성하고, 이에 따라 자연적 섬의 지위를 부여받으려는 의도에 대해, 미국은 남중국해를 공해(High Sea 또는 Open Sea) 또는 국제해(international water)로 해석하여 항행의 자유작전(FONOP)을 실시함으로써 중국의 주장을 무력화시키려 하자, 미중 간 대결국면으로 확전되었고, 미국이 FONOP에 동맹국과 파트너십국이 참가해 주기를 요청하여 국제문제화(internationalization)로 되었다.

 

 

 

 

 

또한 남중국해에 대한 과도한 해로 폐쇄론과 해저 자원 매장량 주장 등이 남중국해 분쟁의 수준을 달리하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분쟁국들이 국제법적 합의 이전에 국내법으로 자국의 국가 해양관할권을 선포하여 당사국 간 해양경계획정, 어업권 그리고 소유권에 대한 분쟁이 분쟁국 국내정치에 영향을 주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나타낸 현상이었다. 특별히 이러한 현상은 국제법적 보다 역사성을 강조하는 중국에게 매우 심(深)하였다.

 

 

분쟁 당사국들은 어떤 해결방안을 원하나?

 

분쟁 당사국 중국과 아세안 연안국 모두는 국제법에 의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선호하며, 군사적 해결 방법에는 매우 부정적이다. 특히 이러한 추세는 중국과 비교시 열세인 아세안에게 강하며, 중국 역시 힘의 우위 하에 남중국해에 대한 역사적 권리를 국제법적으로 어떻게 합리화하는가에 역점을 두며, 가능한 군사적 수단 동원은 자제하면서 해양경찰(CCG)과 해상민병대(maritime militia)를 투입하여 남중국해 분쟁을 평시도 아닌 전시도 아닌 애매모호한 『회색지대(grey zone)』 상황으로 만들며 당사국과 지역 내 이해상관자들의 개입을 어렵게 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이러한 접근이 ‘살라미스 전략’, ‘양배추 전략’ 또는 ‘중국식 먼로주의 강요’ 등으로 보도화되어 중국에 부담이 되자, 아세안과 2002년 남중국해 행동원칙선언(DOC) 합의에 이어 2018년 단일화된 행동규범(COC) 초안에 합의해 제3자 개입을 사전에 차단하고 아세안 간 이견을 활용하는 지혜를 보였으며, 아세안은 DOC와 COC를 통해 중국이 남중국해에서의 일방적 현상유지 타파(revisionist) 행위를 자제해 주기를 기대하였다.

 

여기에 미국이 개입된 것은 아세안 문제도 한몫하였다. 아세안은 남중국해에서의 중국과 비교시 열세인 점을 극복하기 위해 제3자의 직접적 도움에 주저하며, 직접적 개입보다는 가능한 아세안 주도의 다자간 협의체에 의해 영향력을 발휘해 주기를 원하였다. 이는 ASEM회의, ARF+, ADMM+ 등의 아세안 주최 회의 진행에서 찾을 수 있었으며, 이에 한계를 느낀 미국이 FONOP라는 극단의 군사적 선택을 하기에 이르렸다. 즉 중국만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며, 여기에는 아세안의 실수도 한 몫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일방적 인공섬 조성과 건축물 구축에 대해 2013년 1월에 필리핀이 아세안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법률자문회사 도움을 받아 중국과의 남중국해 분쟁을 유엔해양법협약(UNCLOS) 부속서에 따른 국제중재를 요청함으로써 국제법 해결이 현실화되었다.

 

하지만 필리핀이 2016년 7월 12일에 국제상설중재원(PCA)으로부터 원칙적이며 유리한 중재판결을 받았으나,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과 민다나오섬 이슬람 반군작전을 지원하는 등의 매력 공세를 하자, 필리핀은 PCA 판결을 적극적으로 남중국해 문제에 활용하지 않고 오히려 친중(親中) 성향을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전임(前任) 오바마 대통령이 2015년에 남중국해에 대한 FONOP을 개시하였으며, 당시 주된 목표는 공해상 항행의 자유와 영해에서의 무해통항 권리를 행사하여 중국의 무리한 영유권 주장을 무효라는 것을 묵시적으로 보이며 이를 주기적으로 실시하여 관습적 국제법 적용사례로 남기겠다는 의도였으며, 아세안은 미국의 FONOP이 미중 간 강대국 국면의 또 다른 모습을 확산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다.

 

하지만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FONOP을 미중 간 강대국 국면의 수단으로 활용됨으로써 이는 아세안에게도 부담이 되는 형국으로 변질되었다. 예를 들면 2018년 미 해군 디카터 구축함에 대해 중국 해군 Type-052C형 란조우(蘭州)함이 고의적 충돌침로 접근하여 35야드 근거리에서 충돌을 모면한 사건이 대표적 사례였다. 즉 현장 지휘관들의 무리한 지휘권 행사가 나타난 것이었으며, 이는 남중국해 분쟁에 미중 간 강대국 대결국면에 겹치는 것을 원치 않는 아세안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이었다.

 

 


 

향후 미중 간 대규모 확전 또는 전면전이 나타날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확전을 기정 사실화하는 저널리즘적 언론 보도와 달리, 해양안보와 군사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전투와 전면전 발생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본다.

 

첫째, 미국과 중국 모두 군사력을 개입시킬 명분이 ‘없다’.

 

남중국해는 군사적 문제가 아닌 국제법 문제이다. 특히 당사국 간 해양경계 획정 합의가 되지 않아 해양경계선이 없어 영토 보존을 위한 군사력 운용이 애매모호하다. 특히 미국은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이 아니며, UNCLOS 회원국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국제법 문제에 발언권이 없다는 것은 아니나, 남중국해 분쟁에 물리적으로 개입할 명분은 없다. 중국 역시 평화적 해결 원칙을 선언하며 군사적 해결을 부인하고 있다. 이는 UNCLOS가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유일한 기준인 상황하에 미국과 중국 모두 남중국해에 군사력을 개입시킬 명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현재 미중 간 군사적 힘겨루기는 법률전(法戰: legal warfare)이다.

 

우선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해양경계선을 두고 대규모 해군력을 상시 배치하고 있지 않으며, 이는 남북한이 정전상태로 동서해 북방한계선을 두고 상시 해군력을 배치하여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면과는 성격이 다르다.

 

다음으로 현재의 행동-대-행동 대립(action for reaction cycle)은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FONOP를 실시하고, 중국이 맞대응하는 일종의 법률전(法戰: legal warfare)으로 이는 서로 자국에 유리한 국제법적 명분을 구축하려는 의도로서 군사적 대결국면은 아니다.

 

최근 미국은 FONOP 실시에 추가해 국제법 원칙 존중 입장을 보였다. 지난 7월 13일 마이클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그동안 남중국해에 대한 국제법 적용에 대해 중립을 지키던 입장에서 “중국의 역사적 영유권은 무효이자 불법이며, 2016년 PCA 판결을 존중한다”며 아세안 편에 섰다.

 

이후 해양안보 전문가들은 이를 미국이 FONOP 실시에 따른 중국의 역사적 영유권 무효화 시도에 추가하여 중국과 남중국해에 대한 법률전(legal warfare)을 개시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셋째, 우발사태 경험과 메카니즘을 갖고 있어 확전 가능성이 낮다.

 

우선 과거의 전력-대-전력 간 우발사태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예를 들면 2001년 미 해군 EP-3와 중국 해군 J-8 전투기 간 공중 조우는 밀고 당기는 힘의 과시이지 직접적 총격에 의한 전투는 아니었으며, 2018년 10월 2일 미 해군 디커터 이지스 구축함이 남중국해에서 FONOP을 실시할 때에 중국 해군 Type-052C형 란조우(蘭州)함(DDG-170)이 충돌침로로 접근하여 약 35야드 거리를 두고 충돌을 방지한 사건 역시 같은 사례로 모두 현장상황으로 마무리되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러한 우발사태를 현장 지휘관의 임무완수를 위한 압박과 책임 완수의 긴박성에 따른 현장에서의 “작은 우발적 충돌(skirmish)”로 보며 확전을 방지하는 교전규칙(RoE)이 있는 한 현장 지휘관의 책임으로 종결된다고 본다.

 

지난해 9월 중국 모(某)대학 해양법 세미나에 참가한 필자에게 중국 해양안보와 국제법 전문가는 “2018년 10월 2일 사건 이후 중국 해군은 각 함정에게 미 해군 FONP에 대한 과도한 대응을 자제하도록 지시되었으며, 당시 란조우(蘭州) 구축함장은 문책을 받았다”고 귀띔하였다. 당시 세미나에서 필자가 발표한 주제는 “국제해양법과 해군작전 간 조화”이었다.

 

따라서 미중 간 남중국해에서의 작은 우발적 충돌에 의해 대규모 전투 및 전면전으로 갈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본다. 특히 양국 간 전략적 메카니즘이 운용되고 있는 상황하에 미 해군 7함대사령부와 중국 남부전수사령부 간 모든 전력을 투입하는 결전(decisive battle)이 발생될 이유가 없으며, 단지 외교적 항의와 반박이 있을 뿐이다.

 

넷째, 미중 양국은 제2의 베트남 전쟁을 원치 않는다.

 

미국과 중국 모두는 베트남 전쟁 트라우마를 겪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중국과 전략적 제휴를 하였으며, 한국전쟁에 이어 베트남 전쟁과 같은 향후 직접적 군사 개입은 무리라는 교훈을 얻었다. 중국과 아세안 연안국 그리고 동아시아 이해상관자들이 복잡하게 억힌 님중국해에서 미국이 중국과의 전면전을 치르는 것은 제2 베트남 전쟁을 재현하는 것으로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중국은 1979년 중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인도차이나 반도에 대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베트남에 대해 군사적 교훈을 주었으나, 결과는 오히려 중국군의 열세와 전력과 작전의 노후성만 노출시키는 역효과가 나타나, 바로 전투를 마무리하고 베트남과 대화를 하였다. 이런 중국이 군사적으로 우세한 미국에 대해 남중국해에서 무리하게 군사력을 동원하여 대결할 이유는 없다.

 

다섯째, 아세안은 남중국해 분쟁에 미국의 개입을 원치 않는다.

 

아세안 국가들은 1974년 4월 남사군도에서 월남과 중국 간 무력충돌이 있었을 때 미 해군 7함대는 ‘못들은 척’ 했으며, 1988년 3월 다시 베트남과 중국 간 남사군도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하여 6개의 산호초를 중국이 점유하고 72명이 사망할 당시 캄란(Cam Ranh Bay)기지에 전개되었던 구소련 함정들은 “출항”조차 하지 않았던 사례에서 강대국은 아세안 ‘편’이 아니라고 본다.

 

당시 미국과 구소련은 남중국해에서 물리적 함대 결전이 일어나는 것은 제2 베트남 전쟁이라고 간주하여 미국과 구소련에 도움을 요청하는 베트남에게 중국과의 해양영유권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라고 권고하였다. 당시 이러한 강대국의 모습은 베트남을 크게 실망시켰고 1995년 베트남이 아세안에 가입한 이후 아세안 주도의 남중국해 문제 해결(ASEAN Centrality) 지향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아세안 주도의 해결이 가능한가?

 

상기 배경과 이유는 아세안에게 아세안이 단결하여 중국에 대응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주었으며, 군사적으로 우세한 중국에 대해 아세안은 미국과 유럽연합 카드를 대(對)중국 압박용으로 사용하는 유연성을 보이도록 하는 원인이 되었다.

 

특히 아세안은 우세한 중국의 해양위협과 압박에 직면하고 있으나, 미국과 협력하여 중국에 직접적으로 대응하지는 않는다. 이는 아세안 국가의 해군력이 미국 또는 중국과 군사협력할 능력과 여력이 없어 강대국 개입에 따른 부담을 덜어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 해군과 미 해군과의 훈련은 해적 등 비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수준이며, 이는 2019년 제18차 동남아시아 협력 훈련(SEACAT)와 2019년 9월에 최초로 실시한 미국-아세안 해양안보 훈련(AUMX) 훈련 양상에 증명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남중국해 개입에 정치외교적 대가를 아세안에게 항상 요구하였다. 지난 7월 23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닉슨 도서관 및 박물관 연설에서 “미국은 중국 공산당 독재에 대응하여 자유국가들과 단결하여 중국 공산당의 학정에서 중국 인민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이는 아세안에게 미중 간 강대국 경쟁에서 미국 쪽에 줄을 서라는 무언의 요청이었으며, 필리핀,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인도네시아 등은 자국 정치제도에 대한 경고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아세안 주도의 남중국해 문제 해결은 남중국해가 갖고 있는 지경학적 잠재력과 지정학적 가치가 소진하여 당사국 모두가 영유권 주장을 자제함으로써 국제법적으로 해결하는 시점까지 기다려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강대국 경쟁 국면이 대규모 군사적 전투 또는 전면전으로 갈 가능성이 낮다는 객관적 평가를 전제로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갖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향후 한국 해군이 확보할 경항모를 남중국해까지 보내 해상교통로(SLOC)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아직도 남중국해 분쟁을 너무 『힘의 대결』 국면으로만 보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작성자 윤석준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이자,

한국해로연구회 연구위원 및 육군발전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예비역 해군대령이다.

 

미라주 시리즈의 정점을 수놓은 베스트셀러

 

칠레 공군의 미라주 5BA 엘칸. 벨기에 공군에서 퇴역한 기체를 도입하여 개량했다.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프랑스 다쏘(Dassault)가 제작한 미라주(Mirage) 시리즈는 이스라엘 공군(IAF)이 6일전쟁 때 운용하며 아랍연맹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전과를 올림에 따라 그 우수성이 입증됐다. 하지만 전쟁을 치르면서 1950년대에 개발된 미라주 III의 성능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스라엘 공군은 다쏘 측에 몇 가지 개선 사항을 요청하였다. 이스라엘 공군이 요청했던 가장 우선적인 사항은 유지 정비 편의성을 올리고 기체 중량과 가격을 낮추기 위해 레이더를 비롯한 항전장비류 일부를 제거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통상 기상 상태가 좋은 데다 사막 지형이라 원거리까지 쉽게 한눈에 들어오는 중동 지역 지형 특성에 맞춘 요청이었다. 이스라엘 공군은 대신 기체 중량이 가벼워진 만큼 연료를 더 수납하도록 하여 공세 임무를 위한 항속거리를 증가하고자 했다. 이에 이스라엘 공군은 1966년 4월 9일 자로 총 50대의 ‘신형’ 미라주의 개발을 정식으로 다쏘에 의뢰했다. 이스라엘은 미라주 5를 “라암(Ra’am, 히브리어로 ‘천둥’이라는 뜻)”으로 국내 도입 명칭을 정했으며, 기본적으로 3차 중동 전쟁(6일 전쟁)에서 매우 잘 활용한 미라주 III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개발 단계에서 구매 약정을 걸어 전투기 50대와 훈련기 2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1967년 5월 19일에 계약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6일전쟁뿐 아니라 그 직후에 진행된 소모전(War of Attrition, 1967~1970) 기간 중에 상실한 미라주 IIICJ 60대의 손실 분을 고려한 도입 수량이었다.

미라주 5의 초도 비행 장면 (출처: Dassault Aviation)

하지만 1967년 중순에 접어들면서 프랑스 정부의 대(對) 중동 전략에 변화가 생겼다. 1962년 알제리 독립에 따라 북아프리카에서 완전히 축출당한 프랑스는 더 이상 중동~북아프리카의 발판이 없어졌으므로 아랍권에 친근한 자세를 취하는 한편 이스라엘에 강경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3차 중동전쟁이 끝나면서 사실상 아랍이냐, 이스라엘이냐의 양자택일(兩者擇一) 기로에 서게 되었다. 아랍권과 친밀한 태도를 취하면서 적대국인 이스라엘에 무기를 팔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프랑스의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 행정부는 중동 지역의 이권을 고려하여 1969년 1월부로 중동 지역 전체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단행했으나,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그간 무기를 공급해 온 이스라엘 뿐이었다. 이스라엘 정부와 다쏘는 모두 샤를 드골 정권이 끝나면 금수 조치가 해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가 우선 엠바고(embargo) 조치를 무시하고 1차 배치(batch) 분 금액을 모두 완납 했으며, 다쏘 역시 미라주 5의 선 주문 분 제작을 계속 진행했다. 하지만 같은 해 중순에 샤를 드골 대통령이 은퇴하고 조르쥬 퐁피두(Georges Pompidou, 1911~1974) 정권으로 바뀌었음에도 프랑스-이스라엘 관계는 개선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퐁피두 정권은 무기 금수 조치를 계속 연장했다. 결국 1969년 12월까지 프랑스에서 미라주 5 인수를 위해 비행 교육 중이던 이스라엘 공군 조종사들은 프랑스 본토에서 철수해 코르시카(Corsica)섬으로 이동했으며, 이스라엘 정부 역시 대금 완납 후 완성된 미라주 V를 모두 코르시카 섬으로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이스라엘의 표면적인 요청 이유는 겨울철에도 계속 교육 훈련을 실시해야 하므로 따뜻한 지중해 섬으로 옮기겠다는 것이었으나, 이때 이스라엘 정부가 별도로 장거리 비행을 위한 외장 연료 탱크를 따로 구매하고 있던 사실이 포착되면서 프랑스 정부는 이스라엘의 의도를 의심했다. 결국 미라주 5의 모든 도입 경로가 막힌 이스라엘은 항공기 인수를 포기하고 프랑스 측에서 제시한 환불 제안을 수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설에는 일부 기체가 부품 형태로 해체되어 이스라엘에 공급됐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며, 공식적으로도 무장, 전기 배선, 사출 좌석, 엔진만 장착되지 않은 빈 미라주 5의 동체 하나가 프랑스에서 이스라엘로 인도됐다. 한편 이스라엘이 끝내 인수하지 못한 50대의 미라주 5는 이스라엘 공군과의 계약이 취소됨에 따라 전량 미라주 5F 사양으로 개조하여 프랑스 공군이 대신 인수했다. 일각에서는 프랑스 공군이 이들 기체를 인수하는 형식으로 해 비밀리에 이스라엘 공군에 인도했다는 주장도 존재하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은 신형 미라주의 인수를 포기했으며 이스라엘 해외정보부(Mossad)가 별도의 경로로 입수한 미라주의 청사진과 설계도를 바탕으로 그간 미라주 III 정비 경험을 더해 “네셔(Nesher)” 전투기를 자체 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프랑스 공군 미라주 5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한편 미라주 5는 완성과 동시에 해외에서 주문이 폭증했다. 이에 따라 다쏘는 고객 별로 항전장비와 무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공급했으나, 기본적으로는 레이더를 장착하지 않은 주간 전투기이지만 신형 항전장비를 장착함으로써 공중전에 특화 되도록 했다. 특히 미라주 III가 등장했을 때보다 항전장비와 전자장비가 발달했으므로 작으면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는 장비류가 많아져 미라주 5의 능력 또한 미라주 III를 상회했다. 다쏘는 전투기 형상 외에 정찰기 형상을 따로 제작하면서 미라주 5R로 명명했고, 교육 훈련용 복좌식 형상을 만들면서 미라주 5D로 명명했다. 특히 미라주 5는 특유의 확장성과 다양한 개조가 가능한 유연성이 있었기 때문에 수십 가지 형상이 개발됐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 사랑 받았다.


특징

공식적으로 미라주 5는 1965년 7월 9일 자로 다쏘에서 미라주 IIIE를 기본으로 한 신형 전투기 개발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사업이 개시됐다. 사업 초반에 다쏘는 저고도 전술 지원 및 정찰 임무를 병행할 수 있는 항공기 개발을 목표로 했으나, 이스라엘 공군의 요구를 반영하면서 주간 공격기 성격으로 변경됐다. 다쏘는 1967년부터 본격적으로 미라주 5 개발에 착수하면서 미라주 IIIE형을 기본 설계로 삼았으나 더 단순화된 항전장비를 설치하고 내장 연료 탱크 또한 470리터의 연료가 더 들어가도록 크기를 늘렸다. 또한 전반적으로 탑재 공간이 늘어났기 때문에 무장 장착에서도 여유가 생겼다. 이스라엘 공군은 처음부터 미라주 V를 지상 표적 공격용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으므로 하드포인트도 최대한 늘려 총 6개의 하드포인트에 4,000kg까지 무장을 탑재하게 설계했으며, 동체 하부에도 한 개의 하드포인트를 추가하여 설치했다. 또한 공대공 임무를 위해서 두 발의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통합하면서 미제 AIM-9 사이드와인더(Sidewinder) 미사일이나 프랑스 마트라(Matra)제 R.550 매직(Magic) 공대공 유도 미사일 두 발을 통합할 수 있게 했다. 기본 무장 또한 미라주 III와 동일하게 DEFA(現 넥스터[Nexter] 시스템즈)에서 개발한 30mm 기관포를 두 정 장착했다.

미라주 5와 미라주 IIING의 실루엣 비교도 (출처: Greg Goebel/Public Domain)

잠정적으로 미라주 5로 명명한 이 신형 전투기는 1967년 5월 19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며, 사실상 외관은 미라주 III와 유사했으나 기수가 더 얇고 뾰족하게 바뀌어 III 형상에 비해 동체 길이가 약 0.5m 정도 늘어났다. 또한 기수 끝에 튀어나와 있던 속도 측정용 피토(pitot)관을 제거해 외관 상 미라주 III와 차이가 생겼다. 또한 파일런(pylon)도 미라주 III의 다섯 개에서 일곱 개로 늘렸으며, 폭장량 역시 4,000kg로 증가했다. 최초 개발 단계에서는 SEPR 로켓 엔진을 하나 장착하는 것도 고려했으나 최종 설계에서는 제외됐다. 그 결과 미라주 5는 항공기 가격이 낮아진 대신 연료량은 미라주 IIIC보다 크게 증가했고, 폭탄은 최대 14발까지 장착이 가능해졌다. 미라주 5는 1967년 5월 19일, 프랑스의 물롱-빌라로쉬(Melun-Villaroche)에서 시험 비행 조종사인 에르베 르프랭스-링게(Hervé Leprince-Ringuet)가 조종하여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미라주 50의 장착무장 <출처: 프랑스 공군>

미라주 5는 향후 수출을 염두에 두고 고객이 요청할 경우 고객이 원하는 대로 레이더, 관성 항법 장비 및 항전 장비를 장착할 수 있도록 여유 공간을 확보해 두었다. 고객 국가 요청에 따른 파생형에 따라 아가베(Agave) 다목적 레이더나 레이저 거리 측정기-표적 지시기와 아이다(Aida)-2 레이더를 조합해 설치한 경우도 있으며, 시라노(Cyrano) 레이더를 설치한 경우도 있다.

미라주 5의 조종석 (출처: Rama/Wikimedia Commons)

미라주 5는 단 한차례 면허 생산이 실시됐으며, 이는 이웃 국가인 벨기에에서 이루어졌다. 1968년, 벨기에 정부는 비에르세(Bierset) 공군 기지에 주둔 중인 제3 전투비행단의 항공기를 교체하면서 미라주 5를 도입하게 되었다. 당시 벨기에는 도입 조건으로 초도기 한 대를 제외한 나머지 기체 전량을 현지 업체인 SABCA가 면허 생산할 것을 걸었으며, 이에 따라 총 106대의 미라주 5 도입 계약이 체결되었다. SABCA는 브뤼셀 인근 하렌(Haren)에 구성품 및 하부 체계 생산 공장을 세웠고, 남부 샤를루아(Charleroi) 인근 고슬리(Gosselies) 공항에 조립 공장을 세웠다. 아타르 엔진 역시 현지 업체인 FN 모떼르(FN Moteurs)의 리에주(Liège) 공장에서 생산했다. SABCA는 지상 공격기인 미라주 5BA, 정찰기인 미라주 5BR, 그리고 훈련기 및 전술 교육 입문기(OCU)인 미라주 5BD 세 형상을 조립했다. 벨기에 정부는 1980년대 말에 미라주 5 중 20대에 대해 자체적인 업그레이드를 실시하고자 했으나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우선 엔진을 교체 하려던 계획은 사업비 문제로 취소됐고, 조종석과 사출 좌석 최신화, 카나드(Canard: 귀 날개) 설치 등을 계획했으나 사업 진행 중 벨기에 정권이 바뀌면서 미라주 5 업그레이드 기체 도입 계획을 취소해버렸다. 하지만 SABCA는 이미 사업을 진행 중인 데다 정부가 계약서를 파기하기 어려웠으므로 20대 분 기체 업그레이드는 끝까지 진행됐으며, 이들 기체는 전량 칠레에 판매됐다.

벨기에 공군의 미라주 5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다쏘는 미라주 5의 엔진을 보다 출력이 커진 신형 아타르(Atar) 09K-50 엔진으로 교체하면서 미라주 50으로 명명했다. 미라주 50은 미라주 III나 미라주 5와 동일한 동체를 사용했으나 엔진 출력이 7,300kg로 향상됐다. 미라주 50은 제공권 장악용으로 제작한 다목적 전투기이며, 방공 임무나 지상 표적 공격 임무도 함께 수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무장은 미라주 III 및 미라주 5에 통합된 모든 종류의 무장을 운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기본적으로는 레이더를 장착하지 않았으나 아가베 레이더나 시라노 IV 레이더와 관성 조준/항법 체계를 설치할 수 있다. 미라주 50은 미라주 III나 5에 비해 엔진 출력이 커져 이륙 거리가 짧아졌으며, 연료 및 무장 탑재 능력이 높아졌고, 상승률과 가속력, 기동 특성도 모두 향상됐다. 특히 내장 연료량만 3,475 리터에 달하며, 외부에는 외장 연료 탱크를 각각 동체 하부와 주익 하부에 총 3개를 장착해 4,700리터를 추가할 수 있다.


운용 현황

프랑스 공군은 총 50대의 미라주 5F를 도입했으며, 기존에 도입한 전 형상의 미라주 III(IIIC, IIIB, B1, B2, BE, R, RD, IIIE)까지 망라하면 총 457대의 미라주 시리즈를 도입했다.

미라주 50 01번기 (출처: Dassault Aviation)

미라주 5는 최초 이스라엘 공군의 요청에 따라 미라주 III를 중동 지역에서 운용하는 데 목적을 두고 개선점을 잡았다. 하지만 정작 실전에서 파악된 미라주 III의 단점을 개선해 주기를 바랐던 이스라엘 공군은 미라주 5를 손에 넣지 못했는데, 이는 중동 정세와 관련된 프랑스의 급작스러운 정치적 입지 변화 때문이었다. 특히 프랑스가 아랍계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기 시작할 무렵에 발생한 이스라엘 국적기 엘 알(El Al) 항공 테러 사건, 그리고 이를 응징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단행한 ‘기프트(Gift)’ 작전이 프랑스-이스라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최초 1968년 12월 26일, 팔레스타인 해방 민중 전선(PFLP: 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이 뉴욕 발 이스라엘 행 엘 알 항공 253편기에 테러를 저질러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었으며, 이에 이스라엘 방위군(IDF: Israel Defense Forces)은 팔레스타인 해방 민중 전선을 응징할 목적으로 특수부대 ‘사예렛 마트칼(Sayeret Matkal)’을 투입해 베이루트 국제공항에 보복 공격을 단행했다. 사예렛 마트칼은 응징 작전을 통해 중동 항공(Middle East Airline), 레바논 국제 항공(Lebanese International Airways), 범 지중해 항공(Trans Mediterranean Airways) 소속 민항기 13대를 파괴했으나 인명 피해는 야기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미라주 5의 도입에 실패하자 유사한 성능의 네셔 전투기를 개발했다. <출처: IDF photo archives>

프랑스 정부는 이 사건이 터지자 이스라엘 관련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 1969년 1월부로 엠바고 수위를 높이면서 이미 선 계약금까지 치러 놓은 상태였던 미라주 5의 인도를 중단 시켰다.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꼬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동시에 우회 경로로 다쏘에서 완성한 미라주 5를 국내로 몰래 들여올 방안들도 여러 가지로 검토했으나 실행하기가 간단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미라주 5의 인수를 포기하고 대금을 돌려받았다. 이에 이스라엘은 기존에 도입한 미라주 IIICJ의 유지 관리 및 창정비를 하면서 쌓인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미라주 III를 역설계하여 자체 전투기 개발에 착수했으며,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 주도로 네셔(Nesher) 전투기를 개발했다. “네셔”를 미라주 5의 파생형으로 봐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으나, 사실상 동일한 동체 설계를 바탕으로 한데다 목표 성능도 유사했기 때문에 ‘파생형’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집트 공군의 미라주 5를 살펴보고 있는 미군 병사들의 모습. 1985년 이집트 카이로-웨스트(Cairo-West) 공군 기지에서 실시한 "브라이트 스타(Bright Star)" 연습 간 전시된 항공기였다. (출처: US Department of Defense)

미라주 5는 1984년 2월 기준으로 지상공격/정찰기, 훈련기 형상을 망라해 440대가 총 12개국에서 운용 중이었다. 파생형인 미라주 50은 시제기는 1979년 봄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며, 주로 남미 지역 국가에서 주문해 칠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에서 주문했다. 미라주 5는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의 아부다비, 벨기에, 콜롬비아, 이집트, 가봉, 리비아, 파키스탄, 페루, 베네수엘라, 자이르에서 도입했으며, 모든 형상이 고객 주문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었다. 예를 들어 벨기에 공군의 경우 대부분 미제 항전장비를 장착한 반면, 이집트 공군은 다쏘-도르니어(Dassault-Dornier)의 ‘알파 젯(Alpha Jet)’ 항공기에 장착했던 MS2 공격 항전 체계 장착을 주문했다.

페루 공군의 미라주 5 (출처: Aeroprints.com)

칠레 공군은 자체적으로 미라주 5의 업그레이드를 현지 업체 주도로 실시하면서 “미라주 엘칸(Elkan)”이라 명명해 운용했다. 남미 시장에는 미라주 5의 엔진을 아타르 9K-50으로 교체한 “미라주 50”도 활발하게 수출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칠레가 가장 두드러지게 많은 미라주 시리즈를 도입했다. 칠레는 현지 업체인 에나에르(ENAER) 주도로 수명 주기가 도래한 미라주 시리즈를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과 기술 제휴 형태로 개조했으며, IAI가 미라주 시리즈 설계에 기반하여 자체 제작한 크피르(Kfir) 기술을 적용해 카나드를 설치하고, 최신형 항전 장비로 교체하면서 동체 역학 설계도 일부 개선해 “판테라(Pantera)”라 명명했다. 판테라는 외관상으로 미라주 5와 유사하나 카나드가 장착되고 항전 장비 탑재를 위해 기수 부분이 더 길어졌다. 한편 원 제작사인 다쏘가 공식적으로 실시한 미라주 5의 마지막 업그레이드는 베네수엘라에 판매된 미라주 IIIE와 미라주 5를 미라주 50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한 미라주 50M 형상이다.

파키스탄 공군의 미라주 ROSE I 전투기 (출처: Tech. Sgt. Wolfram M. Stumpf, US Air Force)

파키스탄은 1980년대부터 미라주 5의 중고 기체를 도입하여 개조하는 다소 특이한 방식으로 미라주 5를 도입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1982년 안와르 샤밈(Anwar Shamim, 1931~2013) 공군총장 시절 프랑스로부터 수명 주기가 도래한 미라주 5를 도입했으며, 해군 항공대를 별도 창설하여 이들 기체를 해군에 배치하고 해군 비행교육학교를 설치했다. 파키스탄은 1990년 미라주 전량에 대해 중기 수명연장사업(MLU: Mid-life Update)을 실시하면서 “로즈(ROSE: Retrofit of Strike Element)” 프로젝트라 명명했으며, 보유 중인 미라주 III와 미라주 5를 대상으로 하여 이탈리아-프랑스-파키스탄 업체가 공동 개발한 신형 항전 장비 교체를 진행했다. 파키스탄은 다쏘로부터 미라주 III와 5의 청사진을 구입해 파키스탄 항공역학연구소 주도로 재 설계를 진행했다. ROSE 사업 1단계를 위해 파키스탄 정부는 33대의 퇴역 미라주 III를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으로부터 도입해 “ROSE I”으로 명명했으며, 1990년대 말에는 프랑스 공군이 퇴역시킨 미라주 5F 약 20대를 도입하여 “ROSE II”로 명명했다. 이들 기체는 조종석을 교체하고, 항법장비, 공격용 전자 장비, 방어지원체계를 교체했으며, 항공기 기수 하부에는 FLIR(Forward-Looking Infra-red) 센서를 장착했다.

파키스탄 공군은 프랑스로부터 미라주 5F를 2차례 나눠 도입하여 ROSE II와 ROSE III로 명명했다. <출처: 파키스탄 공군>

파키스탄은 ROSE 프로젝트가 성공적이라고 판단함에 따라 프랑스로부터 추가로 미라주 5F 14대를 도입해 유사한 신형 항전 체계로 교체하면서 ROSE III로 명명했다. 특히 미라주 5는 원래 주간 전투기 성격으로 개발된 기체였으나 FLIR 센서가 장착되면서 야간 공격 임무도 수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파키스탄 공군은 1995년 부로 미라주 5 전량을 파키스탄 해군에 이관했다. 하지만 이 ROSE 프로젝트는 현재에도 진행 중인데, 2020년 8월 21자 언론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 공군이 업그레이드형 미라주 5를 이집트로부터 도입하기 위해 계약을 추진하여 성사 직전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은 총 38대의 미라주 5의 도입을 희망하고 있으며, 해당 “업그레이드” 형상에는 헬멧 고정식 디스플레이(HMD: Head-mounted Display), 임무 포드(Mission Pod), 야간 공격 능력이 확보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은 특히 2020년 2월 인도 공군이 파키스탄 영내인 발라콧(Balakot) 지역의 테러 단체 시설을 격파하기 위해 무단으로 미라주 2000을 진입시켜 폭격을 실시함에 따라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삼각익 항공기의 도입을 추진 중이다.

칠레 공군의 미라주 5M “엘칸(Elkan)”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미라주 5는 현재까지도 일부 국가에서 현역으로 운용하고 있으며, 1967년 이래 현재까지 총 517 대가 제작되어 11개국으로 수출됐다. 미라주 5는 다쏘가 개발한 전투기 중 현재까지 가장 많이 판매한 베스트셀러 전투기이다.


파생형

미라주 5 (레이더 미장착 단좌형 지상공격용 전투기)

- 미라주 5AD: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수출용 형상. 총 12대가 제작됐다.

UAE 공군의 미라주 5AD <출처: Public Domain>

- 미라주 5EAD: 레이더를 장착한 단좌식 전폭기 형상. 아부다비 수출용으로 14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BA: 벨기에 수출용 단좌식 형상. 주로 미제 항전장비를 장착했다. 63대가 제작됐으며 62대는 SABCA에서 면허 생산으로 제작했다.

벨기에 공군의 미라주 5 BA <출처: Rob Schleiffert / Wikipedia>

- 미라주 5COA: 콜롬비아 수출용 형상. 14대가 제작됐으며 이스라엘 IAI사에서 개조해 카나드와 신형 항전장비를 장착했다.

- 미라주 5D: 리비아 수출용 단좌식 지상공격기 형상. 53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DE: 리비아 수출용으로 제작한 레이더 장착형 전폭기.

- 미라주 5F: 프랑스 공군용으로 제작한 단좌식 지상공격기 형상. 50대는 이스라엘 공군용으로 제작하던 미라주 5J였으며, 8대는 이후 칠레 공군용으로 개조하면서 미라주 50으로 명명되었고 이후 대체용 8대가 추가로 제작됐다.

프랑스 공군의 미라주 5F. 50대는 최초 이스라엘 공군용으로 제작하던 미라주 5J였으나 엠바고로 인해 수출이 불가하게 되자 5F 사양으로 개조하여 프랑스 공군이 인수했다. (출처: Rob Schleiffert)

- 미라주 5G: 가봉 수출용으로 제작한 형상. 3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G-2: 가봉 수출 형상을 업그레이드한 기체. 4대가 업그레이드됐으며 2대는 가봉에 수출한 5G였고, 2대는 자이르에서 주문했으나 인도하지 못한 미라주 5M을 업그레이드했다.

- 미라주 5J: 이스라엘 수출용으로 제작한 형상. 50대를 주문했으나 프랑스 정부의 엠바고로 인해 인도되지 못했으며, 향후 전량 프랑스 공군용 미라주 5F로 개조됐다.

- 미라주 5M: 자이르 수출용 형상. 14대가 제작됐으나 예산 문제로 8대만 인도됐다.

- 미라주 5MA 엘칸(Elkan): 칠레에 판매된 미라주 5BA의 업그레이드 형상.

벨기에 SABCA가 업그레이드한 기체를 칠레가 인수한 미라주 5MA "엘칸" 형상 (출처: Chris Lofting/Public Domain)

- 미라주 5P: 페루 수출용으로 제작한 수출용 형상. 22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P 마라(Mara): 아르헨티나 공군용으로 미라주 5P를 업그레이드한 형상.

- 미라주 5P3: 페루 공군용으로 업그레이드한 형상. 10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P4: 페루 공군용으로 업그레이드한 형상. 이전 업그레이드 기체를 다시 개선했다.

- 미라주 5PA: 파키스탄 공군용으로 제작한 레이더 없는 단좌식 형상. 28대가 제작됐다.

아르헨티나 공군의 미라주 5PA MARA (출처: Chris Lofting / Wikimedia Commons)

- 미라주 5PA2: 파키스탄 공군용으로 레이더를 장착한 기체. 시라노(Cyrano) IV 레이더를 장착했다. 총 28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PA3: 레이더를 장착한 대함(對艦)용 미라주. 파키스탄에서 주문했으며, 엑소세(Exocet) 대함미사일 운용을 위해 연동한 아가베(Agave) 레이더가 장착되었다.

이집트 공군의 미라주 5SDE <출처: Public Domain>

- 미라주 5SDE: 이집트 공군용으로 레이더를 장착한 단좌식 전폭기 형상. 미라주 IIIE와 동일 사양으로, 총 54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E2: 이집트 공군용으로 업그레이드한 레이더 없는 공격기 형상. 16대가 제작됐다.

이집트 공군의 미라주 5E2 <출처: Dassault Aviation>

- 미라주 5V: 베네수엘라 공군용으로 제작한 단좌식 지상공격기 형상. 6대가 제작되었으며, 이후 50EV 스탠더드 형상으로 개조했다.

미라주 5R (단좌식 정찰기 형상)

- 미라주 5BR: 벨기에 수출용으로 제작한 정찰용 형상. 총 27대가 제작됐다.

벨기에 공군의 정찰용 형상인 미라주 5BR, 기체 번호 319번기. (출처: Ssgt David E. Shaffer/US Air Force)

- 미라주 5COR: 콜롬비아 수출용으로 제작한 미라주 5R 형상. 2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DR: 리비아 수출용으로 제작한 형상. 10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RAD: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수출용으로 제작한 형상. 3대가 제작됐다.

UAE 공군의 미라주 5RAD <출처: Public Domain>

- 미라주 5SDR: 이집트 수출용으로 제작한 형상. 6대가 제작됐다.

미라주 5D (복좌식 훈련기 형상)

- 미라주 5BD: 벨기에 수출용으로 제작한 복좌식 5BA 형상. 16대가 제작됐으며, 15대는 면허 생산으로 현지에서 제작했다.

벨기에 공군의 미라주 5BD <출처: Mike Freer / Touchdown-aviation>

- 미라주 5COD: 콜롬비아 수출용으로 제작한 복좌식 훈련기. 2대가 제작됐으며 이후 업그레이드를 실시하면서 카나드와 항전장비를 교체했다.

- 미라주 5DAD: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수출용으로 제작한 복좌식 훈련기. 3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DD: 리비아 수출용으로 제작한 복좌식 훈련기. 15대가 제작됐다.

리비아 공군의 미라주 5DD <출처: Public Domain>

- 미라주 5DG: 가봉 수출용으로 제작한 복좌식 훈련기. 4대가 제작되었으며 2대는 1978년, 2대는 1984년에 인도됐다.

- 미라주 5DM: 자이르 수출용으로 제작한 복좌식 훈련기. 3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DP: 페루 수출용 복좌식 훈련기. 4대가 제작됐다.

미라주 5DP <출처: AviationsMilitaires.net>

- 미라주 5DP3: 페루 수출 형상의 업그레이드형. 5DP 4대가 개조되었으며 2대가 신규로 제작됐다.

- 미라주 5DPA2: 파키스탄용 복좌식 훈련기 형상. 2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MD 엘칸(Elkan): 칠레에 수출한 미라주 5BD의 업그레이드 형상.

미라주 5SDD <출처: Public Domain>

- 미라주 5SDD: 이집트에 수출한 복좌식 훈련기 형상. 6대가 제작됐다.

미라주 50 (단좌식 다목적 전폭기 겸 지상공격기)
: 출력이 더 큰 11,055파운드 급 아타르 9K-50 엔진이 장착됐으며, 레이더는 설치되지 않았다.

- 미라주 50C: 레이더를 장착한 칠레 수출용 형상. 6대가 제작됐다.

- 미라주 50FC: 칠레에 수출한 미라주 5F 8대를 미라주 50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한 기체.

- 미라주 50DC: 칠레 수출용으로 제작한 복좌형. 3대가 제작됐으며 그중 두 대는 출력이 낮은 아타르 9C-3 엔진을 장착했다.

미라주 50CN 판테라 <출처: Public Domain>

- 미라주 50CN “판테라(Pantera)”: 미라주 50C와 50FC를 칠레 에나에르(ENAER)사와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사가 합작으로 업그레이드한 형상. 카나드를 설치하고 크피르(Kfir) 기수와 항전장비를 장착했으며, 50C형과 FC형 13대, 그리고 두 대의 50DC형 훈련기를 개조했다.

- 미라주 50DV: 베네수엘라의 5DV 형상을 업그레이드한 기종으로, 50EV와 사양이 유사하다. 2대가 업그레이드되고 한 대가 새로 제작됐다. 동일 사양을 에콰도르 공군도 도입했다.

미라주 50DV <출처: Rob Schleiffert / Wikipedia>

- 미라주 ROSE 프로젝트: 파키스탄 공군을 위해 개조한 형상. 1980년대 파키스탄 공군의 전투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작된 것이 ROSE 사업이며, 구형 미라주 동체에 항전장비, 조종석, 동체, 무장을 교체 혹은 업그레이드했다. 최종 형상인 미라주 ROSE 3에는 공중 급유 능력이 추가되었으며, 핵무기 투발이 가능한 라아드(Ra’ad) 공대지 순항미사일을 통합했다.

IAI 네셔(Nesher):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에서 미라주 III를 역설계하여 완성한 자체 제작 항공기이나, 처음부터 미라주 5가 이스라엘 측의 요구도를 반영하여 미라주 III를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에 성능은 네셔와 미라주 5가 유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체 제작 엔진이 장착되어 있으나 스네크마의 아타르 9C 엔진을 역설계했으므로 출력도 유사하나, 기체 조종성은 좋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으며 대부분의 기체 수명도 길지 못했다.

이스라엘 하체림 공군기지의 박물관에 전시된 전투기들. 좌로부터 크피르, 네셔, 미라주 IIICJ이다. <출처: RHackl / Wikipedia>

 


제원(미라주 5F 기준)

제조사: 다쏘(assault Aviation/당시 아비옹 마르셀 다쏘[Avions Marcel Dassault])
용도: 전투기
승무원: 1명
전장: 15.55m
전고: 4.5m
날개 길이: 8.22m
날개 면적: 35㎡
자체 중량: 7,150kg
최대 이륙 중량: 13,700kg
출력체계: 9,440 파운드 급 스네크마(SNECMA) 아타르(Atar) 9C 애프터버너 터보 제트 엔진 X 1
최고 속도: 2,350km/h(고도 12,000m)
순항 속도: 956km/h
항속 거리: 1,250km(400kg 폭탄 x 2 장착, 최대 외장 연료 장착 시)
페리 비행 범위: 4,000km
실용 상승 한도: 18,000m,
주익 하중: 186kg/㎡
기본 무장: 30mm DEFA 552 기관포 x 2(기총 1기당 125발)
장착 무장: - 마트라(Matra) JL-100 외장 연료 탱크/로켓 팩 x 2(SNEB 68mm 로켓 x 18/250L 연료)
- AIM-9 사이드와인더(Sidewinder) 공대공미사일 x 2
- 마트라 R550 매직(Magic)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x 2
- 4,000kg 폭탄 x 5 및 각종 폭탄류와 정찰용 포드, 증가 연료 탱크 장착 가능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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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주간 입력 2020-09-07 03:00수정 2020-09-07 03:00

 

‘文 결사옹위’ 결국 대통령에 害 될 것… 靑 울산시장 개입 의혹 묻힐 수 없어
권력 옹위하면 영전, 엇나가면 좌천… 비정상 일상화에 사회도 무덤덤
너무 당당하게 正義 외쳐 시민 현혹

박제균 논설주간

사흘 뒤인 10일이 무슨 날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3년 4개월, 즉 40개월째 되는 날이다. 5년 임기의 3분의 2를 꽉 채우고 남은 3분의 1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날인 셈. 역대 대통령은 이맘때쯤 레임덕 내리막의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으나 문 대통령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아니, 취임 초보다 되레 서슬이 퍼렇다고 해야 하나. 하필 이즈음 문 대통령을 제왕으로 빗댄 ‘시무 7조’니 ‘영남만인소’ 같은 풍자 글이 화제가 되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한때 ‘경청의 달인’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말하기보다 듣기에 능했던 문 대통령. 허나 요즘의 언행에는 거침이 없다. 최근 구설을 빚은 ‘의사 간호사 편 가르기’ 발언도 그렇다. 대통령쯤 되는 분이 일부러 의사와 간호사를 이간질하려 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다만 ‘쓰러진 의료진 대부분이 간호사’ 등의 사려 깊지 못한 표현들을 서슴없이 인터넷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좋게 말하면 자신감의 표현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만함의 발로(發露)다.

여론이 불리해지니까 ‘대통령이 직접 쓴 게 아니다’라고 연막을 피우는 사람들까지 나오는 걸 보면 더 가관이다. 민주 국가의 대통령을 ‘무오류의 제왕’으로 떠받들려는 기도(企圖)야말로 왕조시대 간신의 행태를 연상시킨다. 그렇지 않아도 총선 압승에 코로나19 사태로 지도자에 힘이 쏠리는 분위기를 업고 문 대통령이 더욱 권위적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공권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줘라’ ‘공권력의 엄정함을 세우겠다’는 등 사회질서를 마구 유린한 민노총에는 한번도 쓰지 않던 ‘공권력’이란 용어를 연달아 소환하더니,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놓고 대놓고 꾸짖는 듯한 태도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이야 권력자니까 권위적으로 변하는 것도, 때로 권력에 취하는 것도 일견 이해는 된다. 하지만 대통령의 측근들이, 혹은 소위 ‘문파’라는 사람들이 문재인의 털끝만 건드려도 우 하고 일어나서 결사 옹위하는 듯한 모습은 시계를 권위주의 시대로 되돌리는 행태다. 그런 시대착오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것인지, 문 대통령부터 성찰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알다시피 ‘문재인의 30년 친구’라는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선을 위해 2018년 시장 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개입한 혐의를 받는 사건이다. 이 수사팀은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인사로 사실상 분해됐다. 그렇다고 이 사건이 묻힐까.

 

문 대통령 임기 중엔 어려울지 몰라도 대통령의 연루 소지가 있는, 이미 윤곽이 드러난 사건이 완전히 묻히는 일은 없다. 시간이 얼마 걸리든 간에. 그게 한국 정치다. 문 대통령의 딸과 관련된 구설 등 주변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지만, 우리 사회의 입은 그렇게 다물어지는 법이 없다. 문 대통령에게 신발을 투척한 사람을 기어코 구속시키고야 마는 등 대통령 주변에 철옹성을 쌓는 이들이야말로 결국 대통령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전 두 대통령의 실패 사례를 보라.

 

비단 대통령 주변뿐이 아니다. 조국 윤미향 사태와 추미애 장관 아들 의혹에서 보듯, 블랙홀 주변에서 빛이 굴절되듯이 권력 근처만 가면 진실이 꺾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권력을 옹위하는 사람들은 영전하고 금배지 달고, 엇나가는 소리를 낸 사람들은 좌천되고 옷을 벗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일들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어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도 점점 무덤덤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댓글조작 혐의 재판의 2심 선고가 11월에 나온다고 한다. 아무리 김 지사가 권력 실세라고 해도 대통령 선거 관련 사건의 2심 선고가 대선 3년 반 뒤에야 나오는 걸 어떻게 봐야 하나. 3심까지 가면 지사 임기를 거의 다 채우는 것 아닌가. 그 와중에 한 부장검사는 이 사건 특검에 참여해 권력의 속살을 건드린 뒤 한직을 떠돌다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이런 일들이 벌어져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사회…. 그래도 이 정권 사람들은 당당하게 정의(正義)를 외친다. 너무 당당해서 지지자들, 아니 보통의 시민들까지도 현혹될 지경이다. 명백한 불의(不義)가 권력 근처만 가면 어느새 정의(正義)로 둔갑하는 이 나라, 과연 정상인가.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2~3주 안에 입찰 여부 결정할듯
현대로템 "K2 흑표전차로 출사표…입찰 긍정적 검토"

▲ 현대로템 K2 흑표전차. (사진=현대로템)

 

 

[더구루=길소연 기자] 한국과 독일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노르웨이 전차사업이 내년쯤 결판날 예정이다.

 

노르웨이 당국은 우선 2~3주 안에 해당 사업을 경쟁사 입찰로 진행할지, 공급업체 한곳과 전략적 협의로 프로젝트를 수행할지 여부부터 결정해 프로젝트 전략화를 추진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로템 K2 흑표전차와 독일 레오파드 2A7V 전차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노르웨이 육군의 기존 레오파드(Leopard) 전차 교체사업 관련 프로젝트가 내년 노르웨이 국회에 제출된다. 사업 금액은 120억~150억 크로네(약 1조4600억원~1조8200억원) 규모에 달한다.

톤 스코겐 노르웨이 외무부 장관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프로젝트는 내년 조달을 명확히 할 것"이라며 "우선 이르면 2~3주 안에 입찰 경쟁을 진행할지, 공급업체를 상대로 전략적 협의를 이끌어 낼지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탱크와 ​​장거리 정밀 무기는 육군의 화력과 보호력을 크게 향상 시킬 것"이라며 "주로 공통 영역 내에서 플랫폼과 고가의 목표물과의 전투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르웨이 전차 사업은 2015년부터 대두됐다. 당시 필요성을 느끼고 전차교체에 대한 장기계획을 수립했지만, 전차 문제는 매듭짓지 못했다.

 

노르웨이는 현재 40년 이상된 52대의 레오파드 2A4NO 탱크가 있다. 보유 전차가 노후돼 전차 업그레이드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 이유다.

 

노르웨이가 내년쯤 전차 사업을 전략화하면 한국은 현대로템 K2 흑표전차로, 독일은 Leopard 2A7V로 입찰전에 참여한다.

k2흑표전차

 

현대로템의 K2 흑표전차는 미래무기체계를 선도하는 현대로템의 방위산업 부문에서 자체적인 연구개발 및 생산 체계 구축을 통해 탄생한 전차다. 능동방어체계와 반응장갑, 한국형 120mm 55구경장 주포, 대전차 미사일, 로켓탄 방호용 레이더, 120mm 포탄 자동장전 장치 등 최신 기술이 대거 집약된 차세대 전차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또한 소프트킬(유도 교란형) 능동 방호장치가 적용되어 전차에 접근하는 대전차 유도미사일을 감지해 대응 연막탄을 발사하거나 회피 기동하는 등 전차의 생존력이 한층 강화됐다.

 

독일은 주력전차 레오파드 2A7V로 등판한다. 레오파드 전차시리즈중 가장 진보된 사양으로 최신형 철갑탄을 발사할 수 있다.

 

한국은 그동안 해당 사업 수주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왕정홍 방사청장이 지난해 6월 노르웨이 국방부의 모튼 틸러(Morten Tiller) 병기총국장과 만나 "노르웨이 육군의 기존 '레오파드(Leopard) 전차' 교체사업에서 한국의 K2전차가 노르웨이 육군 전력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한바 있다. 양국간 방산협력 증진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사업 수주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해당 사업은 아직 공식 입찰 전으로, 노르웨이군 전략화사업이 시작되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 10호 태풍 하이선(HAISHEN) 경로 /사진=기상청

 

뉴스1 입력 2020-09-06 09:31  수정 2020-09-06 09:32

 

제10호 태풍 ‘하이선’이 6일 현재 일본 규슈 지방을 향해 북상 중이다. (NHK캡처)

 

북상 중인 제10호 태풍 ‘하이선’이 일본 규슈(九州) 지방에 접근 중이다.

NHK에 따르면 일본 기상청은 6일 “가고시마(鹿兒島)현 아마미(奄美) 지방이 10호 태풍의 영향권에 접어들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하이선’은 이날 오전 8시 현재 아마미오(奄美大)섬으로부터 남동쪽으로 약 160㎞ 떨어진 해상에서 시속 20㎞ 속도로 북상 중이다.


‘하이선’의 중심 기압은 925헥토파스칼(h㎩)이며 중심부근 최대 풍속은 초속 50m, 최대 순간풍속은 70m로 관측되고 있다.

 

일본기상청은" 10호 태풍이 7일쯤 규슈 서쪽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며 “기록적인 폭풍과 폭우가 예상되는 만큼 피해 예방대책을 철저히 해줄 것”을 현지 주민들에게 당부했다.

 

(서울=뉴스1)

 

 

 

 

2차대전 종전 기념 좌담회서 밝혀

조선.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입력 2020.09.05 00:00

4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이날 열린 중국 서비스 무역 교역회(CIFTIS)의 개막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했다./로이터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중국 인민은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왜곡하고, 공산당과 중국 국민을 분리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의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중국 공산당과 중국민을 분리 대응하려는 미국에 경고하며, 자국민들에게는 지지를 호소한 것이다.

중국 관영매체에 따르면 시 주석은 3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의당에서 열린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전쟁(2차대전) 승리 75주년 기념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중국 국민은 5가지 도전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 공산당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업적을 부정하려는 시도, 중국 공산당과 인민을 갈라놓는 시도, 중국의 진로를 바꾸려는 시도, 중국과 다른 국가의 교류를 파괴하려는 시도 등이다. 이날 간담회는 시 주석을 비롯해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전원 참석했다.

시 주석은 이날 미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날 ‘어떤 세력’이라고 언급한 것은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7월 미 닉슨도서관 연설에서 시 주석을 “파산한 전체주의 신봉자”라고 규정하고 “중국 공산당의 행동을 바꾸는 것은 중국인만의 임무일 수 없다”며 각국에 반중 전선 동참을 촉구했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최고 지도자가 미국의 신냉전 시도에 대해 총체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이 항일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미국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쏟아낸 것을 놓고 미국과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중국인들의 애국심에 호소했다는 해석도 있다. 중국 공산당 이론 잡지인 추스(求是)는 최근 “오늘날의 중국은 강대국으로 발전하는 결정적 단계에 있지만 일부 세력이 중국이 발전하고 강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이를 막고 음해하고 있다”며 “중국을 침략했던 일본 군국주의처럼 결국에서는 쓰디쓴 실패를 삼키게 될 것”이라는 평론을 싣기도 했다.

 

동아  김유림 기자 입력 2020.09.05. 08:01 댓글 30

 

사병 통화 논란부터 검찰 조서 누락 의혹까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8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동아DB]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모 씨가 군복무 시절 특혜성 휴가를 누렸다는 의혹과 관련해 여야 공방이 뜨겁다. 관련 의혹은 지난해 12월 추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 때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서씨와 관련한 공익제보를 공개하면서 불거졌고 최근 국민의힘 김도읍, 신원식 의원이 사건 제보자 영상과 통화 녹취록 등을 공개하며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인사청문회 당시 자유한국당은 해당 의혹과 관련해 추 장관을 검찰에 고발했고 사건은 서울동부지방검찰청(동부지검)에 배당됐다.

서씨는 2016년 11월부터 21개월간 육군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연가 28일, 특별휴가 11일, 병가 19일 등 모두 58일의 휴가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의혹이 제기된 것은 2017년 6월 5~14일 1차 병가, 같은 달 14~23일 2차 병가, 24~27일 연가 등이다. '서씨가 휴가 기간이 끝났음에도 무단으로 복귀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해 서씨 측도 공개 해명과 반박에 나섰다.

김도읍 의원실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2017년 6월 25일 당직 사병이던 A씨는 "서씨가 복귀 날짜(2017년 6월 23일)보다 이틀이 늦은 날(2017년 6월 25일)에도 복귀하지 않아 전화를 걸었더니 집이라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이어 A씨는 "서씨와 통화를 마치고 얼마 안 돼 한 대위가 당직실로 찾아와 자신이 서씨 휴가를 연장했으니 서씨를 휴가자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A씨는 이 같은 내용을 올해 6월 검찰에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가서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 1. 서씨와 당직 병사의 통화 여부하지만 서씨 측은 9월 2일 변호인을 통해 "A씨가 말하는 모든 상황은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에 따르면 서씨는 입대 전부터 양쪽 무릎이 좋지 않아 통증을 느꼈다. 2015년 4월쯤에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왼쪽 무릎 수술을 받았음에도 입대를 결심했고 2016년 11월 카투사에 배속됐다고 한다.

이후 서씨는 오른쪽 무릎도 통증이 심해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2017년 6월 5일부터 14일까지 10일간 1차 병가를 받아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또 수술 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같은 해 6월 15일부터 23일까지 9일간 2차 병가를 받았고 21일 실밥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서씨는 2018년 8월 27일 만기 전역했다.

서씨 측 변호인은 A씨를 겨냥해 "근거 없이 떠도는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만들어 옮기는 'n차 정보원'의 전형"이라며 "서씨가 원래 복귀해야 하는 날짜는 6월 23일인데 이날 당직 사병은 A씨가 아닌 제3자였고, 서씨는 제3자와 통화했으며, A씨와는 통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씨 주장은 다르다. 본인이 서씨의 미복귀를 인지한 건 6월 25일이 맞고, 그날 오후 9시 19분쯤 자신이 페이스북 메시지로 동료 병사들에게 '나 특이사항 없습니다 보고 끝내고 ◯◯(점호 병사)이한테 전화 받고 소름 돋았다. 추미애 씨 집이 서울이라 정말 다행이다. 야식장부로 해서 스무스하게 복귀한 걸로 해야지'라고 썼다는 것.

의혹 2. 휴가 관련 서류 누락 여부물론 A씨가 윗선에서 휴가를 연장한 사실을 모르고 서씨에게 전화를 걸었을 수도 있다. 서씨의 병가 행정절차를 살펴보면 객관적 자료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신원식 의원에 따르면 병원 진단서나 군의관 심의 같은 근거를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9월 1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출신인 신 의원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휴가 기록도 없고, 군의관 소견서도 없고, (병가의) 근거가 없다"며 "(지휘관인) 중령의 구두 승인만으로 집에서 지낸 게 적법한가"라고 질의했다.

앞서 신 의원은 사전 배포한 국방위원회 질의자료를 통해 "당시 (휴가) 승인권자인 B씨는 '1·2차 병가 관련 기록이 누락된 것을 인정한다'면서 '다만 당시 1100명 내외의 병력을 행정 관리하다 보니 누락된 것이다. 휴가 명령권자는 나 자신이므로 내가 승인하면 그게 명령이다. 병가를 위한 당사자 면담 관련 기록은 연대통합행정시스템에 입력돼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정경두 장관은 "서류상에 (절차가) 안 남겨져 행정절차상 오류는 있을 수 있다"면서도 "절차에 따라 병가와 휴가가 진행된 것으로 안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서씨가 무릎 통증을 호소했기에 관례대로 우선 병가를 구두로 승인한 것이라는 의미다. 이어 정 장관은 "(지휘관의) 면담일지나 상담일지에는 (서씨의 병가 근거가) 기록이 돼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추가적인 행정 부분들조차 완벽하게 해야 했는데, 일부 안 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단순한 행정 오류라고 하면 군 관계자만 징계를 받아야겠지만,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기록되지 않거나 삭제됐다면 공용서류 손상 및 은닉, 증거인멸, 직권남용 등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며 "만약 해당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공정과 정의를 다루는 추 장관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가운데)이 9월 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병가 연장과 관련해 군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다. [동아 DB]

의혹3. 추미애 보좌관의 통화 여부신 의원은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다음 날인 9월 2일, 당시 추 장관 보좌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군 관계자의 증언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앞서 추 장관은 보좌관이 군부대와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인물은 서씨의 휴가 관련 행정책임자인 지원장교 C대위와 지역대장 D중령이다. 먼저 C대위는 "추 의원 보좌관으로부터 서 일병의 병가가 연장되는지 문의하는 전화가 왔다"며 "보좌관 역할 자체는 국회의원 업무를 보좌하는 건데, 왜 보좌관이 굳이 이걸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또 C대위는 "서 일병의 병가가 곧 종료된다. 통원과 입원이 아닌 집에서 쉬면서 회복하려 하는데 병가 처리(연장)가 안 되느냐"는 전화 문의에 규정 확인 절차를 거쳐 "집에서 쉬는 것은 병가 처리가 안 된다"고 보좌관이라는 사람에게 다시 전화로 알려줬다고 한다.

녹취록에서 D중령도 "(C대위가 추 의원 보좌관으로부터) 병가를 연장할 수 없느냐, 그런 전화를 받은 거 같고 C대위가 안 된다고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서씨의 군부대로 전화를 걸었다는 의혹을 받는 추 장관 보좌관 중 한 명은 현재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야당은 "추 장관이 당대표 시절 수석보좌관을 지낸 E씨가 최근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고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 중"이라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E씨는 2011년부터 2017년 말까지 추미애 의원실 보좌관으로 근무했으며 '군부대 전화'가 있었던 2017년 6월 당시 추 의원 관련 각종 업무를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씨의 휴가와 관련해서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당시 다른 보좌관인 F씨는 추미애 당대표실에서 국회 업무를 주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F씨는 2018년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 광진구 지역 시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했다. F씨가 후보로 공천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추 장관이었고, F씨가 출마한 선거구 역시 추 장관이 5선 의원을 지낸 광진을이었다. F씨는 최근 언론을 통해 "서씨 휴가와 관련해 군부대에 전화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서씨 측 변호인단은 다른 의혹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하면서도 "보좌관이 전화를 걸었다"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아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의혹 4. 군인들의 진술, 검찰 누락 여부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서씨의 군부대 미복귀 의혹 수사는 야당이 고발한 지 8개월여가 됐지만 검찰은 기소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서씨와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당직 사병 A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6월에서야 진행됐다. 보좌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C대위도 검찰에서 똑같은 내용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동부지검은 이 내용을 참고인 신문조서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동부지검은 관련 진술이 누락됐다는 보도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야당은 '특임검사' 임명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인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추 장관이 현직 장관이라 검찰이 공정수사를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며 "그래서 특임검사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법무부 장관이 권력을 남용해 자신과 관련된 수사에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국가의 명운이 달린 심각한 범죄'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은 추미애 장관이 보좌관의 전화 진술을 은폐하는 데 관여했는지 여부를 즉각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확산하자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용진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공정과 정의를 다루는 우리 (법무부) 장관이 이런 논란에 휩싸인 것 자체가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며 "교육과 병역의 문제야말로 우리 국민에게 역린의 문제이고, 공정과 정의의 중요한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박 의원은 "추 장관 아들도 '억울하다'는 입장인 만큼 빨리 정리해 억울함을 드러내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의심을 받는 상황인 데다 의혹이 증폭된 만큼 서씨 관련 수사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 한 인사는 "최근 동부지검이 해당 사건에 수사 인력을 긴급 투입하는 등 빠르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조만간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추 장관이 검찰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검찰 출신인 김영종 변호사는 "처음부터 검찰이 빠르게 수사를 진행했으면 됐을 것을, 이제 와 아무리 빨리 사건을 종결짓는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얼마나 공정할지는 의문"이라며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중앙선데이] 입력 2020.09.05 00:30

이훈범 기자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피호봉호(避狐逢虎)’란 사자성어가 있다. 문자 그대로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는 뜻이다. 나쁜 일을 피하려다 오히려 더 큰 일을 당한다는 말인데, 살 만큼 산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일이다. ‘전호후랑(前虎後狼)’은 좀 더 극한에 몰린 경우다. 호랑이와 이리의 앞뒤 순서를 바꾸면 더욱 들어맞는다. 이리가 덤벼들어 전력으로 앞문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뒷문으로 호랑이가 들어오니 살아날 길이 없는 형국이다.

여우 피하니 호랑이 만난 격.    법무장관 정의는 정권 안보.   대통령까지 국민 갈라치나.   국민 화나면 가죽도 못 남겨.

요즘 이처럼 궁지에 몰린 느낌을 받는 사람이 나만이 아닐 성싶어 하는 얘기다. 우선 우리의 법무장관 덕분이다. ‘단군 이래 최고의 위선자’라는 조국 여우를 간신히 몰아냈더니, 추미애라는 호랑이가 들어와서 거침없이 혼을 빼놓는다. 여우는 그나마 변명이라도 했다. (사실은 변명만 했다. 그리고 지금도 변명만 하고 있다. 며칠 전 아내인 정경심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는 증언 거부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148조만 300번 외쳤다고 한다.)

그런데 호랑이는 변명이고 뭐고 막무가내다. 두 차례 검찰 인사로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족을 다 자르고 정권 수사를 맡은 검사들을 모조리 좌천시키는 강한 이빨과 발톱을 과시하고도, 태연히 “정의를 구하는 인사”라 뇌까릴 수 있는 두꺼운 가죽을 가졌다.

‘드루킹 특검’ 수사 검사, ‘신라젠·라임’ 수사검사, ‘채널A 사건’ 감찰 검사 모두 사표를 내게 만든 걸 보면 그가 구하려는 정의가 무엇인 줄 알겠다. 아낌없이 몸을 날려 충성을 표시한 검사는 영전시켜 자꾸만 기어오르는 검찰 조직에 ‘줄 잘 서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는 걸 보면 더욱 명백하다. ‘정권 안보’가 그가 구하려는 정의인 것이다. 멀리서 보면 그렇다.

호랑이의 강한 이빨은 독설에서 더욱 빛난다. 호랑이는 적과 대화하지 않는다. 그저 싸울 뿐이다. 청문회장이건 상임위 회의실이건 우리의 법무장관이 성의 있게 답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전설적인 육두문자는 빼더라도 “번지수가 틀렸다” “소설을 쓰시네” “새삼 지휘랍시고” “언론의 관음증세”처럼 싸움을 거는 듯한 화법이 그의 주특기다.

선데이칼럼 9/5

그래도 여우보다는 나은 구석이 있겠거니 했는데, 결국은 같은 부류였다. 아들의 ‘황제 탈영’ 소설은 정작 본인이 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보좌관이 뭐하러 사적인 지시를 받느냐”는, 만 하루도 못 버틸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했다. 사랑하는 아들, 결국은 자신을 구하는 게 우리 법무장관의 정의였던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그렇다.

그의 눈에는 오직 한 가지만 보이는 것 같다. 자신의 ‘다음 자리’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거지만, 그것은 서울시청을 거쳐 청와대에 이르는 것일 터다. 그렇지 않으면 부동산 해법에까지 오지랖을 펼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처럼 친문 권리당원들의 눈에 들으려 독기를 품고 무리를 할 까닭이 없다. 노무현 탄핵에 한표를 던졌던 전력 탓에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그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체급을 키워 청와대로 사무실을 옮기는 건 상상하기도 싫다. 그곳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피호봉호, 전호후랑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지 않나 말이다. 전 정권의 국정 농단에 지친 촛불 민심 덕분에 일어선 정권이 호랑이가 돼 국민과 싸움을 벌인다.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이 외치던 ‘죽창가’를 우리는 기억한다. “중요한 건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이냐다”라던 그의 말에 한일관계 정상화를 바라는 국민은 모두 ‘토착 왜구’가 됐다.

선무당 국토장관이 아파트를 서민과 청년층에게 접근 불가의 영역으로 만들어 놓고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임대인과 임차인의 싸움판을 벌여놓았다. 급기야 이제는 대통령까지 나서 ‘갈라치기’ 신공을 몸소 시전한다. 개신교 대 비개신교, 의사와 간호사 사이까지 갈라놓는다.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건지 두렵다. 자기들 말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라는데 좌충우돌 불안해 멀미가 날 지경이다. 오죽하면 “나라가 니꺼냐” 구호가 나오고, “백성과 싸우지 마소서” 상소가 올라오겠나.

그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호랑이는 결코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두 명에게 해코지할 순 있으나, 결국은 죽어서 가죽만 남게 되는 게 세상 이치다. 루쉰(魯迅)이 그걸 말해준다.


“만일 호랑이와 만나면 나무에 기어 올라갔다가 호랑이가 배가 고파서 사라져 버린 다음 내려옵니다. 만약 호랑이가 언제까지나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나무에서 굶어 죽어야겠지만 그 전에 자기를 나무에 동여매 놓아 시체라도 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때는 별도리 없이 먹혀버릴 수밖에 없겠지만 이쪽에서도 한 번쯤 깨물어 줍니다.” (『양지서(兩地書)』)

지금까지 그래왔던 게 이 나라 백성들이다. 작고 무딘 그들의 이빨이 가소로울지 모르나 입이 여럿이면 다르다. 호랑이도 치명상을 피하지 못한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가죽은 걸레로도 못 쓴다. 더는 국민을 궁지로 몰지 말라. 가죽도 못 남기는 호랑이가 되지 않으려거든. 다시 말해 최악의 실패 정권으로 역사에 남지 않으려거든 말이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중앙일보] 입력 2020.09.05 10:47 수정 2020.09.05 11:04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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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0월 공개한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 3호 시험발사 사진. 연합뉴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준비를 암시하는 활동이 인공위성으로 포착됐다고 4일(현지시간)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CSIS는 홈페이지에 게재한 북한 신포 조선소 위성사진에서 여러 척의 선박이 포착됐다며, 이 가운데 하나가 기존의 SLBM 시험발사용 바지선을 끌어낼 때 사용됐던 선박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CSIS는 “이러한 움직임이 수중 시험대 바지선에서 발사된 북극성 3호의 시험발사를 위한 준비작업이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면서도 “다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외부 위협을 억제하고 자위권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신형 SLBM인 북극성 3호를 성공적으로 시험 발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당시 SLBM 시험 발사가 북한이 지난 2018년 핵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을 놓고 미국과 대화에 나선 이후 가장 도발적인 움직임으로 풀이했다.

북한은 지난 2017년부터 장거리 미사일과 핵실험을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재선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경우 전례 없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동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진전이 없었다는 점이 크게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풀이했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미 CSIS "北 신포서 SLBM 시험발사 준비 인공위성 포착"

윤창수 입력 2020.09.05. 09:56 댓글 1

자동요약

새 일본 총리를 결정하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당선이 유력한 스가 요시히데(71) 관방장관이 최소 69% 이상 자당 국회의원 표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병을 이유로 지난달 28일 사임을 발표한 아베 신조 총리의 후임을 선출하는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오는 14일 양원 총회에서 소속 중·참의원 394명과 전국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당원을 대표하는 141명이 한 표씩 투표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아베 후임 선출 자민당 총재 선거는 오는 14일 열려

[서울신문]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AP 연합뉴스

새 일본 총리를 결정하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당선이 유력한 스가 요시히데(71) 관방장관이 최소 69% 이상 자당 국회의원 표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병을 이유로 지난달 28일 사임을 발표한 아베 신조 총리의 후임을 선출하는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오는 14일 양원 총회에서 소속 중·참의원 394명과 전국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당원을 대표하는 141명이 한 표씩 투표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전체 535표 중 과반인 268표 이상을 얻는 사람이 새 총재에 취임해 16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지명 선출된다.

요미우리신문이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394명)의 지지 동향을 조사해 5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스가 후보는 의원 표의 약 70%를 확보해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63)과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을 크게 앞서고 있다.

요미우리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중·참의원 의장을 제외한 자민당 소속 의원 394명 중 96%인 378명의 의사를 확인한 결과 4일 밤까지 스가 후보 지지를 명확히 밝힌 의원이 69%인 271명에 달했다.

이는 스가 후보가 지방 당원 표를 한 표도 얻지 못하더라도 의원 표로만 전체의 과반 지지를 확보해 차기 총리 자리를 예약해 놓았다는 의미다.

차기 일본 총리 유력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약력

이번 조사에서 당내 주요 7개 파벌 중 스가 후보 지지를 선언한 호소다(98명), 아소(54명), 다케시타(54명), 니카이(47명), 이시하라(11명) 등 5개 파벌 소속 의원(264명) 대부분이 지도부 방침에서 이탈하지 않고 스가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특히 무파벌로 분류되는 의원(64명) 중에서도 64%인 41명이 스가 지지를 표명했다.

스가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로는 ‘지도력이 있다’라거나 ‘정책을 기대할 만하다’라는 응답이 많았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한 중견 의원은 스가 후보 지지 이유에 대해 “코로나19 대책을 중단 없이 추진하는 데는 아베 총리의 안방마님 역할을 해온 관방장관이 뒤를 잇는 것이 원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8일 오전 후보 등록을 받고 오후에 세 후보의 소견 발표 연설회와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등의 선거 일정을 확정했다.

선관위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과거 총재 선거 때마다 추진했던 전국 주요 도시에서의 당 주최 거리 연설회는 열지 않기로 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흙수저’ 스가[횡설수설/서영아]

서영아 논설위원 입력 2020-09-05 03:00수정 2020-09-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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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재임한 지난 7년 8개월간, 매일 오전 정례 기자회견을 주재하던 그에게서는 볼 수 없던 표정이다. 늘 피로에 찌들고 뭔가 포기한 듯한 굳은 얼굴이었고, 뻔한 답변을 영혼 없이 되풀이하는 듯 보이곤 했다. 그도 최장수 아베 총리와 함께하면서 최장수 관방장관 기록을 세웠다.

▷관방(官房)장관은 흔히 ‘총리의 마누라’라 불린다. 총리를 도와 주요 정책의 기획·조정, 정보 수집 등을 총괄한다. 정부 대변인과 총리비서실장도 겸하지만 무대 뒤 스태프 역할이다. 실제 그는 매일 TV에 등장했지만 개성도 존재감도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1일 새 연호 ‘레이와’를 발표하면서 ‘레이와 아저씨’라는 별명이 붙었고 ‘정치인 스가’로 조명받는 기회가 늘었다.

▷일본 정가에서 보기 드문 ‘흙수저’ 출신. 아키타의 농가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뒤 상경해 고학으로 호세이대 야간 법학부를 졸업했다. 요코하마 시의원 등을 거쳐 48세 때인 1996년에야 초선 배지를 달았다. 지역 기반의 세습 정치인들이 선대로부터 ‘지반(지연) 간반(간판) 가반(가방·자금)’의 ‘3반’을 물려받아 20대부터 정치에 입문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늦깎이인 셈이다.

 


▷아베 총리와 정치 노선을 같이했지만 아베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등 ‘뼛속까지 우파’는 아니라는 평도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들어 “리더가 좋은 사람이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설파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을 이룬 배경에는 언제나 뒤에서 지켜준 이복동생 히데나가가 있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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