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략의 기둥을 세운 바닷속의 사냥꾼
1970년대에 촬영된 조지 워싱턴함(USS George Washington, SSBN-598)의 모습. (출처: US Navy)
개발의 역사
195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강대국 간의 핵 경쟁 체제가 시작되면서 핵 억지력은 각국의 국익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장거리 폭격기와 수상 폭격기를 핵 무기 투발(投發)용 자산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연구했으나,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운용한 이(伊)-400형 잠수함이 전략적 가치를 입증하고, 소련 또한 611 사업으로 디젤 추진 잠수함에 탄도 미사일을 장착해 운용하기 시작하자 미군 내에서도 잠수함의 전략무기화 주장에 힘이 붙었다. 이에 따라 미 해군은 디젤(Diesel) 방식 잠수함인 투니함(USS Tunny, SS-282) 및 바베로함(USS Barbero, SS-317), 그리고 수상함에 레굴루스 (Regulus) I 순항미사일을 장착하여 운용했으나, 1954년 9월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인 노틸러스함(USS Nautilus, SSN-571)이 건조를 마치고 실전 배치에 성공하자 잠수함을 활용한 핵 억지력 확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에 따라 1960년에 취역한 원자력 추진 유도미사일 잠수함인 할리벗함(USS Halibut, SSGN-587)에 레굴루스 I 미사일이 탑재된 뒤 투니함, 바베로함을 비롯한 '전략 잠수함대'에 추가됐다.
미국 최초의 전략원잠은 레굴루스 I 순항미사일을 운용하는 할리벗함이었다. (출처: US Navy/Public Domain)
하지만 레굴루스 미사일을 전략 억제 자산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순항 미사일이었으므로 비행 속도가 느려 발사 후 적 항공기가 요격해 버릴 가능성이 있었고, 사거리도 1,000km 미만이었기 때문에 사거리가 제한됐다. 뿐만 아니라 미사일 자체도 크기가 작지 않았으므로 가장 많이 탑재할 수 있는 잠수함에 잘해봐야 5발 정도 밖에는 탑재할 수 없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발사 후 전파 방식으로 미사일을 유도했으므로 잠수함은 수상에 부상한 뒤 미사일이 목표에 명중할 때까지 잠항 할 수 없었고, 이는 잠수함이 스스로 쏜 미사일을 명중시킬 때까지 무방비 상태로 위치를 노출하고 있어야 한다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결국 미 해군은 순항 미사일 탑재를 포기하고 탄도(彈道: Ballistic) 미사일 개발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미 해군은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투발할 수 있는 핵 추진 전략 잠수함을 1957년 12월 31일 자로 제네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사 산하의 일렉트릭 보트(Electric Boat, GDEB) 조선소에 주문했다.
스킵잭(Skipjack)급 선두 함인 스콜피온함(USS Scorpion, SSN-589)의 모습. 최초 건조 중이던 스콜피온함의 첫 선체는 조지 워싱턴함의 선체로 전용됐다. (출처: US Navy/Public Domain)
여기서 미 해군은 건조 일정을 대폭 당기기 위해 기존에 건조 중이던 스킵잭(Skipjack)급 잠수함인 스콜피온함(USS Scorpion, SSN-589)의 선체를 전용하여 신형 핵 추진 잠수함 용으로 써 달라고 일렉트릭 보트에 주문한 대신 두 스킵잭 급 잠수함인 스콜피온 함과 스컬핀 함(USS Sculpin, SSN-590)의 건조 일정을 미뤄주었다. 미 해군은 우선 총 세 척의 핵 추진 잠수함을 건조하기로 하면서 미 정부에 예산을 요청했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대통령은 1958년 12월 12일 자로 이 예산 요청안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건조 예산은 회계연도 1958년 예산안에 반영되었으며 잠수함의 건조는 1958년 2월 11일부터 시작됐다.
1959년 9월, 조선소에서 진수식을 준비 중인 패트릭 헨리함(USS Patrick Henry, SSBN-599). (출처: US Navy/ National Archive)
미 해군은 조선소를 한 곳으로 지정할 경우 건조 일정도 늘어나는 데다 업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일렉트릭 보트 외에 뉴포트 뉴스(Newport News) 조선소에 나누어 주문을 넣었고, 이후 양산 대수가 늘어나자 메어 아일랜드(Mare Island) 및 포츠머스(Portsmouth) 해군 조병창에도 나누어 주문을 넣었다. 선두 함에는 598이라는 제식 번호를 지정했으며 함정 분류에는 잠수함의 SS(Submarine), 탄도미사일의 B(Ballistic), 원자력 추진의 N(Nuclear)을 합쳐 "SSBN"으로 지정했다. 미 해군은 동급 잠수함 두 척을 추가하기로 하게 되자 1958년 7월 29일 자로 다른 해군 사업의 예산을 전용 해 배정했다. 이미 코네티컷 주 그로턴(Groton)의 일렉트릭 보트 조선소에서 1958년 11월 1일에 착수 공사에 들어가 건조가 진행 중이던 선두 함에는 미국의 국부(國父)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대통령의 이름이 헌정 되었으며, 1959년 6월 9일에 취역했다. 조지 워싱턴 급 잠수함은 항시 바다에 나가 있어야 하는 만큼 운항 인원을 두 팀으로 나누어 '블루(Blue)'와 '골드(Gold)'로 분류했으며, 블루 팀 함장은 제임스 오스본(James B. Osborn) 중령이, 골드 팀 함장은 존 프롬(John L. From) 중령이 선임됐다.
1960년 9월 22일,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네버럴에서 폴라리스 미사일 발사 시험 중 패트릭 헨리함에 승선하여 발사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알레이 버크(Arleigh A. Burke) 해군참모총장. (출처: US Navy)
한편 1955년에 신임 해군참모총장(CNO)으로 선임된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 1901~1996) 제독은 미 육군의 주피터(Jupiter)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해군용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지시하면서 윌리엄 라본(William F. Raborn, Jr., 1905~1990) 소장을 책임자로 선임했다. 하지만 이듬해 물리학자인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가 잠수함전 회의에서 1메가톤 핵탄두를 소형화 시켜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폴라리스(Polaris)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다고 발표하면서 미 해군은 주피터 전용 계획을 폐기하고 폴라리스 개발 쪽으로 모든 노력을 집중했으며, 미 해군은 라본 제독을 특수사업단장으로 임명하여 그간 잠수함 발사식 탄도 미사일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1960년까지 폴라리스 미사일을 완성했다.
조지 워싱턴함의 폴라리스 미사일 발사 장면 (출처: 유튜브 채널)
미 해군은 1958년부터 조지 워싱턴 급 잠수함을 실전 배치했으며, 각 잠수함은 항시 폴라리스 핵미사일을 16발 탑재한 상태로 112명의 승조원 두 팀이 약 100일 단위로 근무를 교대해 365일 24시간 전투준비 체제를 유지했다. 조지 워싱턴 급 잠수함은 미국의 삼대 핵 억지력 중 한 축을 담당했으며, 핵탄두를 장착한 잠수함 발사식 탄도 미사일(SLBM)을 운용했으므로 반대편 대륙에서 다수의 도시를 없애 버릴 파괴력을 갖춘 채 소련과 본격적인 핵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특징
선두 함인 조지 워싱턴 함(USS George Washington, SSBN-598)은 세계 최초의 핵 추진 탄도 미사일 잠수함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전 세계의 해양 판도를 바꿔 놓은 기념비적인 함정이다. 조지 워싱턴 함의 실전 배치와 함께 미국은 핵 무기를 탑재한 상태로 전 세계를 항해 범위로 삼으면서 탐지조차 어려운 핵 억지력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지 워싱턴함(USS George Washington, SSBN-598)의 내부도. 1960년 1월 미 해군 "올 핸즈(All Hands)" 지에 실렸던 그림이다. (출처: US Navy/Public Domain)
선두 함인 조지 워싱턴 함을 포함한 두 척은 헌터-킬러형 잠수함을 전용했으므로 선체의 항해 통제 구역과 원자로 칸 사이에 미사일 칸을 끼워 넣은 형태로 완성됐다. 실제 스콜피온 함의 동체가 조지 워싱턴 함의 동체로 전용될 당시 일렉트릭 보트 사는 스콜피온 동체를 두 동강 낸 후 약 40m 길이의 미사일 칸을 끼워 넣었으므로 전체 함정의 길이 또한 늘어났다.
폴라리스 A3 미사일을 발사 중인 패트릭 헨리함. (출처: US Navy)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은 폴라리스 A1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었으며, 1960년대 중반부터 폴라리스 A3로 교체하여 탑재했다.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에는 S5W 원자로가 장착되어 동력을 공급하며, 11,000kW 급의 2단 스팀 터빈 엔진이 추가로 장착됐다. 최고 속도는 수상 항해 시 약 30km/h, 잠항 시 41km/h를 자랑하며, 선원의 식량만 공급된다면 이론적으로는 해상에서 무한정으로 작전을 실시할 수 있다. 따라서 항속 거리도 전 세계를 아우른다는 점이 원자력 잠수함의 가장 큰 장점이다. 원자력 잠수함은 핵무기를 탑재한 후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 바다에 흩어져 있으며, 만약 적국이 미 본토에 핵 공격을 감행하는 상황이라도 즉각적으로 핵을 이용한 반격이 가능하다. 사실상 위치 포착이 불가능하므로 가장 확실한 반격의 카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전 세계에 흩어진 핵무기 탑재 잠수함을 제거하지 않는 한 미국에 핵 공격을 가한 국가도 무사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들 잠수함의 존재 자체가 2중으로 핵을 보유한 적들을 견제하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진수식 중인 시어도어 루스벨트(USS Theodore Roosevelt, SSBN-600). (출처: US Navy)
미 해군은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의 가치와 효용성이 입증되자 유사 등급으로 성능을 개량한 핵 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을 추가해 이단 엘런(Ethan Allen)급 잠수함 5척, 라파예트(Lafatette)급 잠수함 9척, 제임스 메디슨(James Madison)급 잠수함 10척,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급 잠수함 12척을 추가한 총 41척을 일컬어 “자유를 위한 41척(41 for Freedom)”이라 명명했다. 이후 미국이 소련과 전략무기제한협정(SALT)-I을 체결했을 때 잠수함 발사식 미사일 발사관을 656개로 제한했는데, 이는 이들 함대 탄도미사일(FBM: Fleet Ballistic Missile) 잠수함의 발사관 수를 기준으로 잡은 것이다.
운용 현황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은 사실상 잠수함을 활용한 2차 공격 능력(2nd Strike Capability) 전술의 시발점으로, 600킬로톤 급 핵탄두(히로시마 원폭의 40배 위력)를 최대 1,600km 떨어진 표적까지 투발할 수 있었다. 또한 원자력을 주 동력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항속 거리는 사실상 전 세계이므로 핵 전쟁이 발발할 경우 반격용 자산으로 운용하기에 적합했다. 예를 들자면 적국이 미 본토를 향해 핵 공격을 감행한다면, 적이 우선적으로 노리는 목표는 수도나 대도시보다는 반격 능력을 꺾어 놓을 목적으로 '기 식별된' 미국의 핵 무기 저장 시설부터 노릴 가능성이 큰데, 은밀성이 뛰어난 잠수함은 전 세계 바다 어디에 핵무기를 탑재하고 대기하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 다큐멘터리 (출처: 유튜브 채널)
조지 워싱턴 함은 1960년 11월 15일에 처음 전략 잠수함 임무를 부여받아 해상에 전개됐으며, 이듬해 1월 31일에는 패트릭 헨리 함이 전개됐다. 첫 실전 배치 된 조지 워싱턴 함은 6월 28일 자로 그로턴 조선소를 출발해 플로리다 주 케이프 커네버럴(Cape Canaveral)로 이동하여 UGM-27 폴라리스(Polaris) 고체 연료식 핵탄두 탑재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두 발을 장착했다. 조지 워싱턴 함에는 폴라리스 잠수함 개발사업단장이던 윌리엄 라본 소장(훗날 CIA 국장을 역임)이 동승하여 대서양 미사일 시험장으로 이동했으며, 1960년 7월 20일 12시 39분에 사상 최초로 잠수함에서 탄도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 조지 워싱턴 함의 함장은 폴라리스 미사일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폴라리스-바닷속 깊은 곳에서 발사되어 표적으로 발사. 완벽함>이라고 단문을 보냈으며, 두 시간 후 한 발을 더 발사해 2,000km 바깥 표적에 명중 시켰다.
1960년 8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과 미 해군 함대 탄도 미사일 사업단장인 윌리엄 라본(William F. Raborn, Jr.) 소장(맨 좌측)이 패트릭 헨리 함에 승선하여 대화 중인 모습. (출처: US Navy/US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1981년 4월 9일, 사세보(佐世保) 남서쪽 200km의 동중국 해 해상에서 조지 워싱턴 함과 일본 국적의 민간 화물선인 닛쇼마루(日章丸)호가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조지 워싱턴 함은 잠망경만 내놓고 항해하다가 2,390톤 급 화물선과 충돌했는데, 당시 안개가 짙은 날이었기 때문에 쌍방이 모두 서로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지 워싱턴 함은 충돌이 발생하자 즉시 부상하여 다른 피해가 없는지 살펴보았는데, 닛쇼마루 호 역시 피해가 크지 않았는지 정지하지 않고 계속 항해하여 안갯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조지 워싱턴 함 역시 괌으로 이동하여 수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두 배가 다른 방향으로 각자 떠난 지 불과 15분 후 닛쇼마루호가 침몰했다는 점이었다. 닛쇼마루 호 승무원 13명은 곧 해역에 급파된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 구축함 아키구모 함(秋雲, DD-120)과 아오구모(靑雲)함에 구조됐지만 두 명의 선원은 끝내 실종됐다. 이 사건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대통령과 일본의 스즈키 젠코(鈴木 善幸, 1911~2004) 총리 간의 정상회담 한 달을 앞두고 양국 관계를 경색 시켰다. 일본 측은 미국이 사고를 일본 당국 쪽에 24시간 후에야 알렸다는 사실을 맹 비난했으며, 조지 워싱턴 함이 당시에 왜 일본 영해에서 불과 37km 떨어진 위치에서 잠항 중이었는지 밝힐 것을 촉구했다. 이 사건은 결국 4월 11일 자로 레이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고에 대해 사과와 피해 보상 의사를 밝히면서 풀리기 시작했으며, 미 정부는 잠수함의 활동 목적은 밝힐 수 없으나 사고 해역에 방사능 누출이 없는지 분명하게 조사하여 통보하기로 약속했다. 당시 미국이 조지 워싱턴 함의 활동 이유를 밝힐 수 없던 것은 이 함정에 핵 미사일이 탑재되어 2차 공격 능력 유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 정부의 사과 후 미 해군 역시 사건 책임을 받아들이면서 당시 함장과 당직 장교를 보직 해임 조치했다.
1981년 괌에 정박한 조지 워싱턴함. 오른쪽에는 AS-19 프로테우스 잠수함 지원함이 다른 잠수함들과 정박중이다. (출처: US Navy/National Archive)
조지 워싱턴 급 잠수함은 1979년 말경 전략무기제한협정(SALT)-II에 따라 오하이오(Ohio)급 탄도 미사일 잠수함에 제약이 가해진 데다 원자로 연료 감소로 통상 6주 단위로 실시되던 순항 일수가 줄어들게 되자 우선 3, 5번 함인 시어도어 루즈벨트 함과 에이브러햄 링컨 함에서 탄도 미사일을 모두 하역한 후 미사일 구역을 제거했으며, 두 함정 모두 1982년까지 퇴역 처리됐다. 1983년부터는 조지 워싱턴 함, 패트릭 헨리 함, 로버트 리 함에서도 미사일을 제거한 뒤 이들 잠수함을 모두 단순한 ‘공격 잠수함(Attack Submarine)’으로 재분류해 진주 만에 일시 배치했으나 1985년부터 순차적으로 퇴역 시켰다. 이들 함은 모두 예비 함 상태로 보관되다가 1991년부터 잠수함 재활용 사업에 따라 로버트 리 함, 에이브러햄 링컨 함, 시어도어 루즈벨트 함, 패트릭 헨리 함, 조지 워싱턴 함 순으로 원자로를 제거한 후 분해 처분했다. 이후 조지 워싱턴 함의 이름은 1992년에 취역한 니미츠(Nimitz)급 항모인 CVN-73이 승계했고, 시어도어 루즈벨트 함명은 CVN-71이 승계했으며, 에이브러햄 링컨 함은 CVN-72함이 각각 승계했다.
자매함
SSBN-598 조지 워싱턴함: 조지 워싱턴급 선두 함으로, 미 해군 역사상 대륙군 총 사령관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이름이 헌정된 세 번째 함정이다. 제네럴 다이내믹스 일렉트릭 보트에서 제작했으며, 1957년 11월 1일부터 건조에 들어갔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하고 있던 로버트 앤더슨(Robert B. Anderson) 장관의 부인인 올리 메이 앤더슨(Ollie Mae Anderson) 여사가 스폰서를 맡았으며, 1958년 6월 9일에 진수한 후 같은 해 12월 30일부터 취역했다. 모항은 진주만(Pearl Harbor)에 두고 있었다. 1985년 1월 24일에 퇴역 후 1998년 워싱턴주 브레머튼(Bremerton)의 함정-잠수함 재활용 사업을 통해 폐기 처리했다.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 선두 함인 조지 워싱턴함(SSBN-598)의 모습. (출처: US Navy/National Archive)
SSBN-599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함: 미국의 독립지사이자 정치가이며, 제2차 버지니아 회의(1775) 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연설로 유명한 초대 버지니아 주지사인 패트릭 헨리(1736~1799)의 이름을 헌정했다. 제네럴 다이내믹스 일렉트릭 보트에서 건조했으며, 공화당 하원의원인 레슬리 아렌즈(Leslie C. Arends)의 부인인 베티 아렌즈(Betty Arends) 여사가 스폰서를 맡았다. 1958년 5월 27일부터 기공에 들어가 1959년 9월 22일에 진수했으며, 1960년 4월 11일에 취역해 홀리 로크(Holy Loch)를 모항으로 두었다. 1984년 5월 25일에 퇴역했으며 1997년 브레머튼에서 폐기됐다.
패트릭 헨리함은 1981년 공격원잠으로 임무를 전환하고 SSN-599로 재분류되었다. (출처: US Navy/National Archive)
SSBN-600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함: 캘리포니아주 벨라호(Vehhajo)의 메어 아일랜드(Mare Island) 해군 조선소에서 건조했다. 미 제26대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 대통령의 이름을 헌정했으며,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녀로 1905년 조선에도 방문한 앨리스 루스벨트 롱워스(Alice Roosevelt Longworth, 1884~1980) 여사가 스폰서를 맡았다. 1958년 5월 20일에 용골(龍骨) 거치 행사를 거쳐 1958년 10월 3일에 진수 했으며, 1961년 2월 13일에 취역해 괌(Guam)을 모항으로 삼았다. 1981년 2월 28일에 퇴역 후 1995년 브레머튼에서 폐기 처리했다. 함정 명은 이후 니미츠(Nimitz)급 항모인 CVN-71함에 승계됐다.
수상 위에서 항해 중인 시어도어 루스벨트(USS Theodore Roosevelt, SSBN-600). (출처: US Navy/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SSBN-601 로버트 E. 리(Robert E. Lee)함: 뉴포트 뉴스(Newport News) 조선소에서 건조했다. 남북전쟁 중 남부연합군 총사령관을 지낸 로버트 E. 리(1807~1870) 장군의 이름을 헌정했으며, 함정의 스폰서도 리 장군의 손녀인 앤 카터 엘리(Ann Carter Ely, 결혼 전 성이 Lee) 여사가 스폰서를 맡았다. 1958년 8월 25일에 기공에 들어가 1959년 12월 18일에 진수했으며, 1960년 9월 15일에 취역해 괌을 모항으로 삼았다. 1983년 12월 1일 자로 퇴역했으며 1991년 브레머튼에서 폐기 처리 했다.
1962년 5월, 시험 항해 중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부상하여 항해 중인 로버트 리함(USS Robert E. Lee, SSBN-601). (출처: US Navy/National Archive)
SSBN-602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함: 메인 주의 포츠머스(Portmouth) 해군 조선소에서 건조했으며, 미 제16대 대통령이자 남북전쟁 중 미 연방(북군)을 이끌었던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 대통령의 이름을 헌정했다. 링컨 대통령의 증손녀인 메리 벡위스(Mary L. Beckwith, 1898~1975) 여사가 스폰서를 맡았다. 1958년 11월 1일에 용골 거치식을 갖고 1960년 5월 14일에 진수했으며, 1961년 3월 8일 자로 취역해 괌을 모항으로 삼았다. 1981년 2월 28일에 퇴역해 1994년에 폐기 처리했다. 퇴역 후 함명은 니미츠급 항공모함인 CVN-72에 승계됐다.
1961년 2월, 시험 항해 중인 에이브러햄 링컨함(USS Abraham Lincoln, SSBN-602). (출처: US Navy/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제원
제조사: 제네럴 다이내믹스 일렉트릭 보트/뉴포트 뉴스/포츠머스 해군 조선소/메어 아일랜드 조선해군 조선소
용도: 탄도미사일 잠수함(SSBN)
탑승 인원: 112명(장교 12명, 부사관 및 수병 100명) x 2팀(블루팀/골드팀), 최대 120명
전장: 116.3m
흘수: 8.8m
전폭: 10m
중량: 5,959kg(수상)/6,709kg(잠항)
추진체계: S5W 원자로 x 1기/11,000kW 급 톱니식 터빈 엔진 x 2, 7엽 블레이드 스크류
잠항 심도: 210m(테스트 심도)/최대 270m 이상
수상 최고 속도: 16노트(30km/h)
수중 최고 속도: 22노트(41km/h)
항속 거리: 식량/식수 보급이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 무제한 거리
무장: - 폴라리스(Polaris) A1/A3 미사일 x 16
- 21인치(530mm) 어뢰발사관 x 6개(어뢰 12발)
- Mk.16, Mk.37, Mk.48 어뢰 장착 가능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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