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략의 기둥을 세운 바닷속의 사냥꾼

 

1970년대에 촬영된 조지 워싱턴함(USS George Washington, SSBN-598)의 모습. (출처: US Navy)


개발의 역사

195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강대국 간의 핵 경쟁 체제가 시작되면서 핵 억지력은 각국의 국익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장거리 폭격기와 수상 폭격기를 핵 무기 투발(投發)용 자산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연구했으나,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운용한 이(伊)-400형 잠수함이 전략적 가치를 입증하고, 소련 또한 611 사업으로 디젤 추진 잠수함에 탄도 미사일을 장착해 운용하기 시작하자 미군 내에서도 잠수함의 전략무기화 주장에 힘이 붙었다. 이에 따라 미 해군은 디젤(Diesel) 방식 잠수함인 투니함(USS Tunny, SS-282) 및 바베로함(USS Barbero, SS-317), 그리고 수상함에 레굴루스 (Regulus) I 순항미사일을 장착하여 운용했으나, 1954년 9월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인 노틸러스함(USS Nautilus, SSN-571)이 건조를 마치고 실전 배치에 성공하자 잠수함을 활용한 핵 억지력 확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에 따라 1960년에 취역한 원자력 추진 유도미사일 잠수함인 할리벗함(USS Halibut, SSGN-587)에 레굴루스 I 미사일이 탑재된 뒤 투니함, 바베로함을 비롯한 '전략 잠수함대'에 추가됐다.

미국 최초의 전략원잠은 레굴루스 I 순항미사일을 운용하는 할리벗함이었다. (출처: US Navy/Public Domain)

하지만 레굴루스 미사일을 전략 억제 자산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순항 미사일이었으므로 비행 속도가 느려 발사 후 적 항공기가 요격해 버릴 가능성이 있었고, 사거리도 1,000km 미만이었기 때문에 사거리가 제한됐다. 뿐만 아니라 미사일 자체도 크기가 작지 않았으므로 가장 많이 탑재할 수 있는 잠수함에 잘해봐야 5발 정도 밖에는 탑재할 수 없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발사 후 전파 방식으로 미사일을 유도했으므로 잠수함은 수상에 부상한 뒤 미사일이 목표에 명중할 때까지 잠항 할 수 없었고, 이는 잠수함이 스스로 쏜 미사일을 명중시킬 때까지 무방비 상태로 위치를 노출하고 있어야 한다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결국 미 해군은 순항 미사일 탑재를 포기하고 탄도(彈道: Ballistic) 미사일 개발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미 해군은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투발할 수 있는 핵 추진 전략 잠수함을 1957년 12월 31일 자로 제네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사 산하의 일렉트릭 보트(Electric Boat, GDEB) 조선소에 주문했다.

스킵잭(Skipjack)급 선두 함인 스콜피온함(USS Scorpion, SSN-589)의 모습. 최초 건조 중이던 스콜피온함의 첫 선체는 조지 워싱턴함의 선체로 전용됐다. (출처: US Navy/Public Domain)

여기서 미 해군은 건조 일정을 대폭 당기기 위해 기존에 건조 중이던 스킵잭(Skipjack)급 잠수함인 스콜피온함(USS Scorpion, SSN-589)의 선체를 전용하여 신형 핵 추진 잠수함 용으로 써 달라고 일렉트릭 보트에 주문한 대신 두 스킵잭 급 잠수함인 스콜피온 함과 스컬핀 함(USS Sculpin, SSN-590)의 건조 일정을 미뤄주었다. 미 해군은 우선 총 세 척의 핵 추진 잠수함을 건조하기로 하면서 미 정부에 예산을 요청했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대통령은 1958년 12월 12일 자로 이 예산 요청안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건조 예산은 회계연도 1958년 예산안에 반영되었으며 잠수함의 건조는 1958년 2월 11일부터 시작됐다.

1959년 9월, 조선소에서 진수식을 준비 중인 패트릭 헨리함(USS Patrick Henry, SSBN-599). (출처: US Navy/ National Archive)

미 해군은 조선소를 한 곳으로 지정할 경우 건조 일정도 늘어나는 데다 업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일렉트릭 보트 외에 뉴포트 뉴스(Newport News) 조선소에 나누어 주문을 넣었고, 이후 양산 대수가 늘어나자 메어 아일랜드(Mare Island) 및 포츠머스(Portsmouth) 해군 조병창에도 나누어 주문을 넣었다. 선두 함에는 598이라는 제식 번호를 지정했으며 함정 분류에는 잠수함의 SS(Submarine), 탄도미사일의 B(Ballistic), 원자력 추진의 N(Nuclear)을 합쳐 "SSBN"으로 지정했다. 미 해군은 동급 잠수함 두 척을 추가하기로 하게 되자 1958년 7월 29일 자로 다른 해군 사업의 예산을 전용 해 배정했다. 이미 코네티컷 주 그로턴(Groton)의 일렉트릭 보트 조선소에서 1958년 11월 1일에 착수 공사에 들어가 건조가 진행 중이던 선두 함에는 미국의 국부(國父)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대통령의 이름이 헌정 되었으며, 1959년 6월 9일에 취역했다. 조지 워싱턴 급 잠수함은 항시 바다에 나가 있어야 하는 만큼 운항 인원을 두 팀으로 나누어 '블루(Blue)'와 '골드(Gold)'로 분류했으며, 블루 팀 함장은 제임스 오스본(James B. Osborn) 중령이, 골드 팀 함장은 존 프롬(John L. From) 중령이 선임됐다.

1960년 9월 22일,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네버럴에서 폴라리스 미사일 발사 시험 중 패트릭 헨리함에 승선하여 발사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알레이 버크(Arleigh A. Burke) 해군참모총장. (출처: US Navy)

한편 1955년에 신임 해군참모총장(CNO)으로 선임된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 1901~1996) 제독은 미 육군의 주피터(Jupiter)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해군용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지시하면서 윌리엄 라본(William F. Raborn, Jr., 1905~1990) 소장을 책임자로 선임했다. 하지만 이듬해 물리학자인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가 잠수함전 회의에서 1메가톤 핵탄두를 소형화 시켜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폴라리스(Polaris)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다고 발표하면서 미 해군은 주피터 전용 계획을 폐기하고 폴라리스 개발 쪽으로 모든 노력을 집중했으며, 미 해군은 라본 제독을 특수사업단장으로 임명하여 그간 잠수함 발사식 탄도 미사일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1960년까지 폴라리스 미사일을 완성했다.

조지 워싱턴함의 폴라리스 미사일 발사 장면 (출처: 유튜브 채널)

미 해군은 1958년부터 조지 워싱턴 급 잠수함을 실전 배치했으며, 각 잠수함은 항시 폴라리스 핵미사일을 16발 탑재한 상태로 112명의 승조원 두 팀이 약 100일 단위로 근무를 교대해 365일 24시간 전투준비 체제를 유지했다. 조지 워싱턴 급 잠수함은 미국의 삼대 핵 억지력 중 한 축을 담당했으며, 핵탄두를 장착한 잠수함 발사식 탄도 미사일(SLBM)을 운용했으므로 반대편 대륙에서 다수의 도시를 없애 버릴 파괴력을 갖춘 채 소련과 본격적인 핵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특징

선두 함인 조지 워싱턴 함(USS George Washington, SSBN-598)은 세계 최초의 핵 추진 탄도 미사일 잠수함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전 세계의 해양 판도를 바꿔 놓은 기념비적인 함정이다. 조지 워싱턴 함의 실전 배치와 함께 미국은 핵 무기를 탑재한 상태로 전 세계를 항해 범위로 삼으면서 탐지조차 어려운 핵 억지력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지 워싱턴함(USS George Washington, SSBN-598)의 내부도. 1960년 1월 미 해군 "올 핸즈(All Hands)" 지에 실렸던 그림이다. (출처: US Navy/Public Domain)

선두 함인 조지 워싱턴 함을 포함한 두 척은 헌터-킬러형 잠수함을 전용했으므로 선체의 항해 통제 구역과 원자로 칸 사이에 미사일 칸을 끼워 넣은 형태로 완성됐다. 실제 스콜피온 함의 동체가 조지 워싱턴 함의 동체로 전용될 당시 일렉트릭 보트 사는 스콜피온 동체를 두 동강 낸 후 약 40m 길이의 미사일 칸을 끼워 넣었으므로 전체 함정의 길이 또한 늘어났다.

폴라리스 A3 미사일을 발사 중인 패트릭 헨리함. (출처: US Navy)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은 폴라리스 A1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었으며, 1960년대 중반부터 폴라리스 A3로 교체하여 탑재했다.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에는 S5W 원자로가 장착되어 동력을 공급하며, 11,000kW 급의 2단 스팀 터빈 엔진이 추가로 장착됐다. 최고 속도는 수상 항해 시 약 30km/h, 잠항 시 41km/h를 자랑하며, 선원의 식량만 공급된다면 이론적으로는 해상에서 무한정으로 작전을 실시할 수 있다. 따라서 항속 거리도 전 세계를 아우른다는 점이 원자력 잠수함의 가장 큰 장점이다. 원자력 잠수함은 핵무기를 탑재한 후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 바다에 흩어져 있으며, 만약 적국이 미 본토에 핵 공격을 감행하는 상황이라도 즉각적으로 핵을 이용한 반격이 가능하다. 사실상 위치 포착이 불가능하므로 가장 확실한 반격의 카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전 세계에 흩어진 핵무기 탑재 잠수함을 제거하지 않는 한 미국에 핵 공격을 가한 국가도 무사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들 잠수함의 존재 자체가 2중으로 핵을 보유한 적들을 견제하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진수식 중인 시어도어 루스벨트(USS Theodore Roosevelt, SSBN-600). (출처: US Navy)

미 해군은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의 가치와 효용성이 입증되자 유사 등급으로 성능을 개량한 핵 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을 추가해 이단 엘런(Ethan Allen)급 잠수함 5척, 라파예트(Lafatette)급 잠수함 9척, 제임스 메디슨(James Madison)급 잠수함 10척,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급 잠수함 12척을 추가한 총 41척을 일컬어 “자유를 위한 41척(41 for Freedom)”이라 명명했다. 이후 미국이 소련과 전략무기제한협정(SALT)-I을 체결했을 때 잠수함 발사식 미사일 발사관을 656개로 제한했는데, 이는 이들 함대 탄도미사일(FBM: Fleet Ballistic Missile) 잠수함의 발사관 수를 기준으로 잡은 것이다.


운용 현황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은 사실상 잠수함을 활용한 2차 공격 능력(2nd Strike Capability) 전술의 시발점으로, 600킬로톤 급 핵탄두(히로시마 원폭의 40배 위력)를 최대 1,600km 떨어진 표적까지 투발할 수 있었다. 또한 원자력을 주 동력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항속 거리는 사실상 전 세계이므로 핵 전쟁이 발발할 경우 반격용 자산으로 운용하기에 적합했다. 예를 들자면 적국이 미 본토를 향해 핵 공격을 감행한다면, 적이 우선적으로 노리는 목표는 수도나 대도시보다는 반격 능력을 꺾어 놓을 목적으로 '기 식별된' 미국의 핵 무기 저장 시설부터 노릴 가능성이 큰데, 은밀성이 뛰어난 잠수함은 전 세계 바다 어디에 핵무기를 탑재하고 대기하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 다큐멘터리 (출처: 유튜브 채널)

조지 워싱턴 함은 1960년 11월 15일에 처음 전략 잠수함 임무를 부여받아 해상에 전개됐으며, 이듬해 1월 31일에는 패트릭 헨리 함이 전개됐다. 첫 실전 배치 된 조지 워싱턴 함은 6월 28일 자로 그로턴 조선소를 출발해 플로리다 주 케이프 커네버럴(Cape Canaveral)로 이동하여 UGM-27 폴라리스(Polaris) 고체 연료식 핵탄두 탑재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두 발을 장착했다. 조지 워싱턴 함에는 폴라리스 잠수함 개발사업단장이던 윌리엄 라본 소장(훗날 CIA 국장을 역임)이 동승하여 대서양 미사일 시험장으로 이동했으며, 1960년 7월 20일 12시 39분에 사상 최초로 잠수함에서 탄도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 조지 워싱턴 함의 함장은 폴라리스 미사일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폴라리스-바닷속 깊은 곳에서 발사되어 표적으로 발사. 완벽함>이라고 단문을 보냈으며, 두 시간 후 한 발을 더 발사해 2,000km 바깥 표적에 명중 시켰다.

1960년 8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과 미 해군 함대 탄도 미사일 사업단장인 윌리엄 라본(William F. Raborn, Jr.) 소장(맨 좌측)이 패트릭 헨리 함에 승선하여 대화 중인 모습. (출처: US Navy/US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1981년 4월 9일, 사세보(佐世保) 남서쪽 200km의 동중국 해 해상에서 조지 워싱턴 함과 일본 국적의 민간 화물선인 닛쇼마루(日章丸)호가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조지 워싱턴 함은 잠망경만 내놓고 항해하다가 2,390톤 급 화물선과 충돌했는데, 당시 안개가 짙은 날이었기 때문에 쌍방이 모두 서로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지 워싱턴 함은 충돌이 발생하자 즉시 부상하여 다른 피해가 없는지 살펴보았는데, 닛쇼마루 호 역시 피해가 크지 않았는지 정지하지 않고 계속 항해하여 안갯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조지 워싱턴 함 역시 괌으로 이동하여 수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두 배가 다른 방향으로 각자 떠난 지 불과 15분 후 닛쇼마루호가 침몰했다는 점이었다. 닛쇼마루 호 승무원 13명은 곧 해역에 급파된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 구축함 아키구모 함(秋雲, DD-120)과 아오구모(靑雲)함에 구조됐지만 두 명의 선원은 끝내 실종됐다. 이 사건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대통령과 일본의 스즈키 젠코(鈴木 善幸, 1911~2004) 총리 간의 정상회담 한 달을 앞두고 양국 관계를 경색 시켰다. 일본 측은 미국이 사고를 일본 당국 쪽에 24시간 후에야 알렸다는 사실을 맹 비난했으며, 조지 워싱턴 함이 당시에 왜 일본 영해에서 불과 37km 떨어진 위치에서 잠항 중이었는지 밝힐 것을 촉구했다. 이 사건은 결국 4월 11일 자로 레이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고에 대해 사과와 피해 보상 의사를 밝히면서 풀리기 시작했으며, 미 정부는 잠수함의 활동 목적은 밝힐 수 없으나 사고 해역에 방사능 누출이 없는지 분명하게 조사하여 통보하기로 약속했다. 당시 미국이 조지 워싱턴 함의 활동 이유를 밝힐 수 없던 것은 이 함정에 핵 미사일이 탑재되어 2차 공격 능력 유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 정부의 사과 후 미 해군 역시 사건 책임을 받아들이면서 당시 함장과 당직 장교를 보직 해임 조치했다.

1981년 괌에 정박한 조지 워싱턴함. 오른쪽에는 AS-19 프로테우스 잠수함 지원함이 다른 잠수함들과 정박중이다. (출처: US Navy/National Archive)

조지 워싱턴 급 잠수함은 1979년 말경 전략무기제한협정(SALT)-II에 따라 오하이오(Ohio)급 탄도 미사일 잠수함에 제약이 가해진 데다 원자로 연료 감소로 통상 6주 단위로 실시되던 순항 일수가 줄어들게 되자 우선 3, 5번 함인 시어도어 루즈벨트 함과 에이브러햄 링컨 함에서 탄도 미사일을 모두 하역한 후 미사일 구역을 제거했으며, 두 함정 모두 1982년까지 퇴역 처리됐다. 1983년부터는 조지 워싱턴 함, 패트릭 헨리 함, 로버트 리 함에서도 미사일을 제거한 뒤 이들 잠수함을 모두 단순한 ‘공격 잠수함(Attack Submarine)’으로 재분류해 진주 만에 일시 배치했으나 1985년부터 순차적으로 퇴역 시켰다. 이들 함은 모두 예비 함 상태로 보관되다가 1991년부터 잠수함 재활용 사업에 따라 로버트 리 함, 에이브러햄 링컨 함, 시어도어 루즈벨트 함, 패트릭 헨리 함, 조지 워싱턴 함 순으로 원자로를 제거한 후 분해 처분했다. 이후 조지 워싱턴 함의 이름은 1992년에 취역한 니미츠(Nimitz)급 항모인 CVN-73이 승계했고, 시어도어 루즈벨트 함명은 CVN-71이 승계했으며, 에이브러햄 링컨 함은 CVN-72함이 각각 승계했다.


자매함

SSBN-598 조지 워싱턴함: 조지 워싱턴급 선두 함으로, 미 해군 역사상 대륙군 총 사령관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이름이 헌정된 세 번째 함정이다. 제네럴 다이내믹스 일렉트릭 보트에서 제작했으며, 1957년 11월 1일부터 건조에 들어갔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하고 있던 로버트 앤더슨(Robert B. Anderson) 장관의 부인인 올리 메이 앤더슨(Ollie Mae Anderson) 여사가 스폰서를 맡았으며, 1958년 6월 9일에 진수한 후 같은 해 12월 30일부터 취역했다. 모항은 진주만(Pearl Harbor)에 두고 있었다. 1985년 1월 24일에 퇴역 후 1998년 워싱턴주 브레머튼(Bremerton)의 함정-잠수함 재활용 사업을 통해 폐기 처리했다.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 선두 함인 조지 워싱턴함(SSBN-598)의 모습. (출처: US Navy/National Archive)

SSBN-599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함: 미국의 독립지사이자 정치가이며, 제2차 버지니아 회의(1775) 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연설로 유명한 초대 버지니아 주지사인 패트릭 헨리(1736~1799)의 이름을 헌정했다. 제네럴 다이내믹스 일렉트릭 보트에서 건조했으며, 공화당 하원의원인 레슬리 아렌즈(Leslie C. Arends)의 부인인 베티 아렌즈(Betty Arends) 여사가 스폰서를 맡았다. 1958년 5월 27일부터 기공에 들어가 1959년 9월 22일에 진수했으며, 1960년 4월 11일에 취역해 홀리 로크(Holy Loch)를 모항으로 두었다. 1984년 5월 25일에 퇴역했으며 1997년 브레머튼에서 폐기됐다.

패트릭 헨리함은 1981년 공격원잠으로 임무를 전환하고 SSN-599로 재분류되었다. (출처: US Navy/National Archive)

SSBN-600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함: 캘리포니아주 벨라호(Vehhajo)의 메어 아일랜드(Mare Island) 해군 조선소에서 건조했다. 미 제26대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 대통령의 이름을 헌정했으며,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녀로 1905년 조선에도 방문한 앨리스 루스벨트 롱워스(Alice Roosevelt Longworth, 1884~1980) 여사가 스폰서를 맡았다. 1958년 5월 20일에 용골(龍骨) 거치 행사를 거쳐 1958년 10월 3일에 진수 했으며, 1961년 2월 13일에 취역해 괌(Guam)을 모항으로 삼았다. 1981년 2월 28일에 퇴역 후 1995년 브레머튼에서 폐기 처리했다. 함정 명은 이후 니미츠(Nimitz)급 항모인 CVN-71함에 승계됐다.

수상 위에서 항해 중인 시어도어 루스벨트(USS Theodore Roosevelt, SSBN-600). (출처: US Navy/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SSBN-601 로버트 E. 리(Robert E. Lee)함: 뉴포트 뉴스(Newport News) 조선소에서 건조했다. 남북전쟁 중 남부연합군 총사령관을 지낸 로버트 E. 리(1807~1870) 장군의 이름을 헌정했으며, 함정의 스폰서도 리 장군의 손녀인 앤 카터 엘리(Ann Carter Ely, 결혼 전 성이 Lee) 여사가 스폰서를 맡았다. 1958년 8월 25일에 기공에 들어가 1959년 12월 18일에 진수했으며, 1960년 9월 15일에 취역해 괌을 모항으로 삼았다. 1983년 12월 1일 자로 퇴역했으며 1991년 브레머튼에서 폐기 처리 했다.

1962년 5월, 시험 항해 중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부상하여 항해 중인 로버트 리함(USS Robert E. Lee, SSBN-601). (출처: US Navy/National Archive)

SSBN-602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함: 메인 주의 포츠머스(Portmouth) 해군 조선소에서 건조했으며, 미 제16대 대통령이자 남북전쟁 중 미 연방(북군)을 이끌었던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 대통령의 이름을 헌정했다. 링컨 대통령의 증손녀인 메리 벡위스(Mary L. Beckwith, 1898~1975) 여사가 스폰서를 맡았다. 1958년 11월 1일에 용골 거치식을 갖고 1960년 5월 14일에 진수했으며, 1961년 3월 8일 자로 취역해 괌을 모항으로 삼았다. 1981년 2월 28일에 퇴역해 1994년에 폐기 처리했다. 퇴역 후 함명은 니미츠급 항공모함인 CVN-72에 승계됐다.

1961년 2월, 시험 항해 중인 에이브러햄 링컨함(USS Abraham Lincoln, SSBN-602). (출처: US Navy/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제원

제조사: 제네럴 다이내믹스 일렉트릭 보트/뉴포트 뉴스/포츠머스 해군 조선소/메어 아일랜드 조선해군 조선소
용도: 탄도미사일 잠수함(SSBN)
탑승 인원: 112명(장교 12명, 부사관 및 수병 100명) x 2팀(블루팀/골드팀), 최대 120명
전장: 116.3m
흘수: 8.8m
전폭: 10m
중량: 5,959kg(수상)/6,709kg(잠항)
추진체계: S5W 원자로 x 1기/11,000kW 급 톱니식 터빈 엔진 x 2, 7엽 블레이드 스크류
잠항 심도: 210m(테스트 심도)/최대 270m 이상
수상 최고 속도: 16노트(30km/h)
수중 최고 속도: 22노트(41km/h)
항속 거리: 식량/식수 보급이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 무제한 거리
무장: - 폴라리스(Polaris) A1/A3 미사일 x 16
- 21인치(530mm) 어뢰발사관 x 6개(어뢰 12발)
- Mk.16, Mk.37, Mk.48 어뢰 장착 가능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cv-10 요크타운 항모

미 해군 승리의 견인차

 

1941년 6월말 항행중인 요크타운급 엔터프라이즈 항모의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운용의 역사

- 반격의 선봉장이 되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습격에 분노한 미국인들은 즉각 보복을 외쳤지만 정작 미군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엄밀히 말해 응징은커녕 일본의 다음 도발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암담한 상황이었다. 만일 이때 일본군이 하와이를 점령하면 미군은 그 넓은 태평양을 포기하고 본토까지 후퇴해서 전략적 방어선을 구축해야 했다. 그나마 태평양함대 소속 항공모함들이 자리를 비워 전력을 보존했다는 사실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진주만에 정박 중 일본의 급습을 받고 불타는 전함 BB-48 웨스트버지니아. 이런 와중에 미국의 항공모함들은 기적적으로 모두 자리를 비워 화를 면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처럼 전함이 전력에서 대거 이탈한 상황이었기에 향후 항공모함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막중했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당시에 미국은 총 8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중 훈련용 1척, 경항공모함 2척을 제외하면 (중)항공모함은 5척이었는데, 그중 3척이 요크타운급이었다. 반면 일본은 (중)항공모함 5척, 경항공모함 4척을 보유하고 있었고 추가로 경항공모함 5척이 추가 배치를 목전에 둔 상태였다.

진주만 공습의 항공방어전. 제한적이나마 미군 항공기도 일본의 기습에 대항했으며, 이중에는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함재기도 있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태풍을 피하느라 진주만 입항이 하루 늦어지면서 참사를 피한 CV-6 엔터프라이즈는 일본의 재공습을 막기 위해 보급을 마치자마자 12월 9일 출항했고 다음날 초계 중이던 일본 잠수함 I-70을 잡았다. 이는 태평양전쟁에서 미 해군이 거둔 최초의 격침 전과로 요크타운급 신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위기에 처한 웨이크섬을 돕기 위해 갔으나 미국이 전략적으로 섬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회항했다.

전시 경제 체제로 전환한 미국은 엄청난 산업 능력을 가동해 각종 물자 생산에 나서고 대대적으로 징병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책 담당자들은 1943년이 되어야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고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때까지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한 기존 전력만으로 일본과 대결해야 했다. 따라서 미국이 전략적 우위에 설 때까지 최대한 현상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1939년 취역 직후의 CV-6 엔터프라이즈. 태평양전쟁 발발 이틀 후 일본의 잠수함을 격침시키면서 미 해군 최초의 전과를 올렸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처럼 어려운 입장이었지만 미군은 국민의 사기를 앙양하고 동남아로 세력을 넓혀가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어떻게든 항전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고심 끝에 육군항공대의 폭격기를 항공모함에 싣고 최대한 멀리 항진한 후 발진시켜서 일본 본토를 폭격하는 작전을 수립했다. 1회성 특공 작전이어서 전술적으로 의미는 없지만 성공하면 양국에 끼칠 심리적인 효과가 대단할 것은 확실했다.

- 항공모함 함대 간 대결이 시작되다

1942년 4월 2일, 요크타운급 2척을 주축으로 구성된 제18기동부대가 출항하면서 작전이 시작되었다. CV-8 호넷에는 16기의 B-25 폭격기가 탑재되었고 엔터프라이즈는 기동부대를 호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렇게 일본에서 약 1,200km 정도 떨어진 지점까지 다가간 호넷에서 발진한 폭격기들은 도쿄, 나고야, 요코하마에 폭탄을 투하하고 대부분 중국, 소련 등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호넷 항모에서 대기 중인 두리틀 부대의 B-25 폭격기들 < 출처 : Public Domain >

투하된 폭탄은 총 64발에 불과했지만 일본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일본은 진주만 공습에서 놓친 미국의 항공모함을 제거해야 후환이 없을 것이라 보았다. 그러려면 미국의 항공모함들과 대결해야 했는데 생각보다 그런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연결을 차단하기 위해 10,000톤 급 경항공모함 쇼호(祥鳳)가 주축인 소규모 함대의 호위를 받는 상륙군이 파푸아뉴기니의 포트모레스비를 점령할 예정이었다.

일본 본토를 폭격하기 위해 CV-8 호넷에서 이함 하는 육군항공대의 B-25 폭격기. 이들의 활약으로 바닥까지 떨어진 미국의 사기가 반등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를 막으려 미국은 산호해(Coral Sea)로 CV-5 요크타운과 CV-2 렉싱턴이 주축인 제17기동부대를 출동시켰다. 미국의 움직임을 파악한 일본은 이를 미국의 항공모함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말라야에서 작전을 마치고 본토로 한창 귀환 중이던 항공모함 쇼카쿠(翔鶴)와 주이카쿠(瑞鶴)가 이끄는 제4항모전단을 산호해로 가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해서 5월 4일부터 역사상 최초의 항공모함 함대 간 대결인 산호해 해전이 시작되었다.

산호해 해전에 참가한 요크타운. 항모에서 출격한 TBD-1 뇌격기에서 찍은 장면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5월 8일까지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은 쇼호가 태평양전쟁에서 최초로 격침된 항공모함이라는 불명예를 얻었지만 쇼카쿠, 주이카쿠는 약간의 보수만 하면 될 정도의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반면 미국은 분투를 펼쳤으나 렉싱턴을 상실하고 요크타운도 수개월 정도 수리를 요하는 커다란 피해를 당하고 패했다. 다만 일본군이 상륙을 포기하는 오판을 내리면서 미국은 전략적으로 일본의 팽창을 저지시키는 결과를 얻었다.

산호해 해전에서 일본의 집중타를 맞고 불타는 CV-2 렉싱턴. 결국 자침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미 해군 최초로 격침된 항공모함이 되었다. 이때 CV-5 요크타운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일본은 이제 태평양에서 미국이 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항공모함은 엔터프라이즈와 호넷만 남았다고 판단했다. 미국도 그렇게 생각했을 만큼 요크타운이 입은 피해는 상당했다. 일본은 미국의 잔존 항공모함을 모두 끌어들여 격멸시킬 커다란 작전을 구상했다. 이를 위해 4척의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하는 대규모 함대를 5월 26일 출동시켰다. 그들이 미군을 유인할 미끼로 선정한 장소는 하와이 서북쪽 1,600km에 위치한 작은 제도였다.

1942년 5월말 진주만의 제1번 드라이독에서 정비중인 요크타운 항모의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런데 감청을 통해 일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미국은 이를 전세를 바꿀 기회로 보고 정면 대결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항공모함 전력이 절대 열세였기에 산호해 전투에서 퇴각한 요크타운이 5월 27일, 진주만에 도착하자마자 수리에 들어가 불과 3일 만에 함재기 이착함 가능할 수준까지 응급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해서 요크타운까지 재출동하면서 3형제 모두가 역사적인 해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

- 여전히 계속된 주도권 다툼

이후 6월 4일부터 3일간 벌어진 항공모함 함대 간의 격돌이 바로 미드웨이 해전이다. 미국은 격렬한 힘겨루기 끝에 4척의 항공모함을 모두 잡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전함 같은 전투함 부분은 여전히 열세였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항공모함 전력이 극적으로 균형을 이루었다. 앞으로 3년을 더 싸워야 했지만 이처럼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의 폭주를 정지시킨 태평양전쟁의 전환점이 되었다.

응급 수리를 받고 서둘러 참전한 미드웨이 해전에서 적 함대를 격멸하는 무공을 세웠지만 요크타운이 적의 집중 공격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하지만 이를 위해 커다란 희생도 있었다. 만신창이임에도 긴급 수리를 받고 다시 전투에 뛰어든 요크타운이 많은 활약을 펼쳤지만 일본군의 집중타와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일본은 자신들이 잡은 항공모함이 산호해 해전에서 망가진 요크타운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이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요크타운의 참전은 미드웨이 해전의 승패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요크타운은 심각한 피해를 입은 후에도 버텨냈지만 결국 일본군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했지만 아직은 공세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다만 시간이 가면 불리해질 것을 잘 알기에 1942년 내에 결정적인 승리, 즉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을 잡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 초기처럼 공세로 나서기가 어려워 전략적 가치가 큰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과 그 주변 도서를 장악해 좋은 위치를 선점한 후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곧바로 일대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동부 솔로몬 해전 당시 전투공역으로 향하는 CV-7 와스프에서 촬영된 엔터프라이즈와 CV-3 새러토가 < 출처 : Public Domain >

8월 7일, 미국 해병대는 과달카날, 툴라기 등에 상륙하는 데 성공했으나 해군이 곧이어 시작된 사보섬(Savo Island) 해전에서 치욕스러운 패배를 당하면서 순식간 오지에 고립되어 버렸다. 이들을 구원하려고 엔터프라이즈, CV-3 새러토가, CV-7 와스프를 주축으로 구성된 제61기동부대가 출동했다. 그러자 미드웨이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일본은 쇼카쿠, 주이카쿠와 경항공모함 류조(龍驤)를 급파했다.

엔터프라이즈 항모의 비행갑판이 폭격으로 파괴되고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렇게 해서 8월 24일부터 이틀간 벌어진 세 번째 항공모함 함대 간 대결이 동부 솔로몬(Eastern Solomons) 해전이다. 새러토가에서 출격한 비행대가 류조를 격침시키는 등의 활약 끝에 미군은 일본군의 상륙을 저지하며 승리했으나 엔터프라이즈가 세 발의 폭탄을 직격당하며 몇 개월간의 수리를 요하는 중상을 입고 전선에서 이탈했다. 그렇게 요크타운급은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 승리를 이끌었다.

수리를 위해 전선에서 이탈하는 엔터프라이즈 항모 < 출처 : Public Domain >

이후 두 달 가까이 과달카날 일대에서 공방을 이어가던 일본은 미국의 항공모함을 잡기 위해 다시 한번 도박에 나섰다.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는 주미 일본대사관 무관을 역임했기에 일본에서 누구보다 미국의 능력을 잘 아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1943년 전에 반드시 결정적인 승리를 낚아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었다. 이번에는 쇼카쿠, 즈이카쿠 외에 경항공모함 준요(隼鷹), 즈이호(瑞鳳)가 투입되었다.

- 신화를 쓴 3형제

이에 맞서 미국은 호네트와 엔터프라이즈 형제가 출동했는데 엔터프라이즈는 미드웨이 해전 당시의 요크타운처럼 완전히 복구되지 못한 상태였다. 미국의 의지도 대단했지만 일본은 항공모함뿐만 아니라 여타 전투함도 미군보다 2배나 많이 투입했을 정도로 이번 해전에 거는 기대가 컸다. 마침내 10월 26일 산타크루즈 제도(Santa Cruz Islands) 일대에서 4번째 항공모함 함대 간 전투가 벌어졌다.

산타크루즈 해전 당시 일본군의 맹폭을 받는 호넷. 결국 자침으로 취역한 지 1년 만에 생을 마감했다. < Public Domain >

이번에는 일본이 먼저 미국 함대를 발견했다. 일본 함재기들이 정찰기가 타전한 공역에 도착했을 때 공교롭게도 엔터프라이즈는 소나기구름 아래로 진입한 상태였다. 결국 노출된 호넷이 집중타를 얻어맞았다. 그러는 사이에 미국의 함재기들도 쇼카쿠와 즈이호를 맹폭해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상황이 심각한 호넷은 자침이 결정되었고 결국 두 번째로 생을 마감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구름이 물러가면서 엔터프라이즈가 일본군에 노출되었고 또다시 집중 공격을 당했다. 고군분투했지만 미국은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10월 27일, 눈물을 머금고 전투 공역에서 퇴각하면서 격전은 막을 내렸다. 미국은 호넷을 잃고 엔터프라이즈가 또다시 대파되면서 태평양에서 당장 가동할 수 있는 항공모함이 없게 되었다.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일본이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일본이 입은 피해가 더 컸다. 쇼카쿠가 대파되면서 작전 투입이 가능한 (중)항공모함이 주이카쿠 한 척만 남았다. 아직은 경항공모함이 미국보다 많지만 문제는 머지않아 미국이 한창 건조 중이던 에식스(Essex)급 (중)항공모함들을 속속 데뷔시킬 예정이었던 반면 일본은 피해를 보충할 신조함 획득이 난망했다. 더구나 산타크루즈 해전을 끝으로 정예 조종사, 항공모함 운용 요원을 모두 상실해 버렸다.

퇴역 후 뉴욕 해군 조선소에 보관 중인 엔터프라이즈는 미 해군의 자부심이었다. 이후 해체되었지만 함명은 최초의 핵추진항공모함 CV-65에 승계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결국 일본은 전력 보존을 위해 모든 항공모함을 본토로 철수시키고 항공모함 함대 간 대결을 회피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 진주만 급습 이후부터 미국을 거세게 몰아붙였던 일본 항공모함들이 더 이상 주인공으로 활약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태평양전쟁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왔다는 의미였다. 반면 1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대파된 엔터프라이즈는 곧바로 수리를 마치고 11월에 전선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이후 과달카날 해전, 필리핀해 해전, 레이테만 해전, 이오지마 전투, 오키나와 전투처럼 역사적 전투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활약했다. 1945년 5월 14일에 있었던 가미카제 공격으로 81명이 사상당하며 대대적인 수리를 요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종전 때까지 불침의 명성을 유지했다. 알아본 것처럼 요크타운급 3형제는 미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엄청난 활약을 펼쳤고 이는 신화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변형 및 파생형

CV-5 요크타운(Yorktown)

< 출처 : Public Domain >

기공 1934년 5월 21일
진수 1936년 4월 4일
취역 1937년 9월 30일
격침 1942년 6월 6일

 

CV-6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 출처 : Public Domain >

기공 1934년 7월 16일
진수 1936년 10월 3일
취역 1938년 5월 12일
퇴역 1947년 2월 17일

 

CV-8 호네트(Hornet)

< 출처 : Public Domain >

기공 1939년 9월 25일
진수 1940년 12월 14일
취역 1941년 10월 20일
격침 1942년 10월 26일


제원(CV-5 요크타운)

경하 배수량: 19,800톤
만재 배수량: 25,500톤
전장: 230m
선폭: 33.38m
흘수: 7.9m
추진기관: 밥콕 윌콕스 보일러 4축 파슨스 터빈(89MW)
속력: 32노트
무장: 8 × 5인치(38구경장) 함포
4 × 4연장 1.1인치(75구경장) 대공포
24 × M2 기관총
함재기: SDB, TBF 등 90기 탑재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上] 남도현

 

 

방위사업청이 지난해 2월 해군에 인도한 신형 호위함 대구함.

 

 

조현상 기자 = 약 3조 2천억 원이 투입되는 해군의 차기호위함 사업의 선도함인 대구함이 엔진 말썽으로 작전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대구함은 2018년 1월 해군의 인수 직후 시운전 과정에서부터 엔진(MT-30) 내 이물질 유입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대구함의 2019년부터 현재까지의 가동률이 2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MT-30엔진은 차기호위함 2단계 사업에서 전투함 최초로 탑재한 가스터빈+디젤전기 하이브리드 추진체계로 미국에서 지적재산 보호 방식으로 수입했다.

 

대구함의 인수 이후 주요 결함 현황 및 조치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8월 해군이 인수한 대구함은 2019년 1월 선저 접촉 사고로 238일, 약 8달 동안 좌ㆍ우현 프로펠러 등의 고장 원인 규명과 수리를 사유로 작전 운용이 불가했다. 더 큰 문제는 운용을 재개한 2019년 9월 23일 이후에 발생한 추진전동기 핵심부품의 오작동이다. 추진전동기 핵심부품의 결함으로 또다시 292일간 작전이 불가했다.

 

2020년 5월부터 집중적으로 나타난 추진전동기의 오작동으로 12회의 긴급정지와, 50회의 운용 중 전체 출력이 85% 이하로 내려가는 Slow Down 현상이 발생했다.

 

신호수집장치 DAU와 전원변환장치 PEM 작동상태 불량으로 발생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해당 부품을 원 제작사인 미국으로 보내야한다. 국외 구매 핵심부품의 경우 결함 발생 여부와 더불어 결함의 원인 규명과 교환 부품의 획득에도 상당 기간이 소요된다. DAU와 PEM 또한 원 제작사인 D사가 계약시 지적재산 보호 품목으로 지정한 품목으로 우리 군에서 개방해 수리하는 것이 불가하다.

 

 

대구함은 우리 해군의 노후 호위함과 초계함을 대체하는 차기 호위함의 선도함이다. 국외 정비 부품의 결함 규명 및 조치 기간을 고려하면 대구함의 운용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한 개선책이 후속함반영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당장 올해 12월 인수 예정인 2번함 경남함이 시작부터 결함을 떠안고 작전을 시작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홍영표 의원은 “한 대당 3천억 원이 넘는 국민세금을 투입한 차기호위함의 가동률이 20%도 채 달성하지 못하는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며 “국외 도입 핵심장비 중 추진체계와 연관된 부품의 경우 결함 발생이 곧 작전 공백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유념하여 별도의 관리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경남함에서 발생한 추진전동기 결함사항이 조속히 해소되어 후속함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모 요크타운

역사를 만들어낸 바다의 영웅들

 

3척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들은 그야말로 해전사의 전설들이다. 지금까지 이들 형제들보다 뛰어난 전공을 올린 항공모함은 없다.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현재 미 해군은 양적, 질적으로 미국 이외 모든 국가의 해군을 합친 것보다도 강력할 만큼 압도적인데 이는 제2차 대전의 유산이다. 미국은 사상 최대의 전쟁을 거치면서 불과 4년 만에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전력을 구축했다. 이후 시대 흐름에 발맞춰 여러 차례 감축이 이루어졌음에도 장기간 지속된 냉전과 패권에 대한 열망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절대 강자의 지위를 고수하고 있다.

일본의 급습 직전인 1941년 10월의 진주만. 당시에도 미국 해군은 세계 1위였지만 지금처럼 경쟁국들을 압도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 Public Domain >

제2차 대전 이전에도 미국은 세계 1위이기는 했지만 다자간 군축으로 인해 주력함 기준으로만 보면 전통의 해군 강국인 영국과 공동 선두였다. 그다음인 일본과는 5 : 3 정도로 앞섰으나 전력을 태평양과 대서양에 나누어 배치한 관계로 양국이 마주한 태평양만 놓고 보자면 우위를 장담할 형편은 아니었다. 이는 일본이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을 급습해서 태평양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해군력은 구축하는 데 비용은 차치하고 일단 시간이 많이 든다. 때문에 일본은 초전에 미국 태평양 함대를 궤멸 수준으로 타격하면 미국이 순순히 강화에 응할 것이라 낙관했다.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해군을 격멸시킨 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던 경험이 이런 결정을 내리도록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는 엄청난 착각이었지만 미국이 전쟁의 주도권을 잡기 이전인 1942년까지 벌어진 대결은 그야말로 일진일퇴의 연속이었다.

1941년 12월 초, 진주만을 급습하기 위해 은밀히 항진 중인 일본 항공모함 카가(좌)와 주이카쿠. 이처럼 태평양 전쟁은 항공모함에 의해 시작되었고 전쟁 내내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 Public Domain >

이때 바다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것이 항공모함이었다. 전쟁의 시작이었던 진주만 급습부터 종전 때까지 벌어진 수많은 격전들에서 미국과 일본의 항공모함들은 예외 없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함포의 사거리 밖에서 출격한 함재기들이 공격의 선봉에 서면서 오래된 해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그렇게 19세기 말부터 반세기가 넘게 해군 사상을 지배하며 전함, 순양함 등으로 상징되던 거함거포의 시대는 홀연히 사라져갔다.

이때를 전환점으로 바다의 제왕에 오른 항공모함은 오늘날 강대국을 상징하는 강력한 전략 무기가 되었다. 특히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은 2020년 현재 도전할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존재이며 미국이 개입한 전쟁, 분쟁, 위기 상황에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는 한다. 이처럼 더 이상 미국과 바다에서 싸울 상대가 없으니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항공모함을 앞세워 벌인 해전은 태평양전쟁이 마지막이다.

1942년 10월 26일, 산타크루즈 해전 당시에 일본군의 맹폭을 받는 CV-6 엔터프라이즈. 요크타운급 3형제 중 유일하게 종전 때까지 생존한 불사신이었다. < Public Domain >

당시 많은 항공모함들이 제작되어 활약을 펼쳤는데, 그중에서 3척의 요크타운급(Yorktown class)은 가히 신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흔적을 해전사에 남겼다. 바다를 중심으로 벌어진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전쟁의 물꼬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인류사에 있었던 수많은 해전 중에서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과를 남긴 특정 군함은 없었고 앞으로도 재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항공모함이 대단한 무기지만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등에서는 전쟁의 향방을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바다에서 미 해군을 상대로 해전을 할 수 없다 보니 벌어진 일종의 착시다. 해전은 전선을 형성해서 밀고 당기며 싸우는 것이 아니어서 아무리 전투 공역이 넓어도 상대의 핵심 전력을 잡으면 그것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특히 양측의 전력이 팽팽할 때 효과가 크다. 요크타운급이 바로 그런 역할을 담당했다.

유일하게 3형제가 모두 참전한 미드웨이 해전 첫날에 전투 공역을 향해 항진 중인 CV-5 요크타운. < Public Domain >

이들의 탄생은 제1차 대전 후 단행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과 관련이 많다. 각국의 주력함 보유가 제한을 받게 되면서 많은 전함, 순양함의 건조가 취소되었는데, 이때 이들 선체를 이용한 항공모함이 대거 등장했다. 여전히 거함거포를 맹신하던 시절이었지만 운용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자 1922년 실전 배치된 일본 해군의 호쇼(鳳翔)를 시작으로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설계되고 제작된 함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여타 국가처럼 기존 선체를 개량한 항공모함을 운용하고 있었던 미국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1940년대에 활약할 신예 항공모함 획득 계획을 수립했다. 그런데 당시 항공모함은 탄생한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낯선 무기여서 프로젝트를 시작한 1931년에도 모르는 것이 많았다. 미국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우선 기준 배수량 15,000톤의 경항공모함 제작에 나서 1934년 CV-4 레인저(Ranger)라는 이름으로 취역시켰다.

CV-4 레인저는 미국 최초로 항공모함으로 설계되고 건조된 항공모함이다. 이를 건조하면서 터득한 많은 기술과 노하우가 요크타운급에 적용되었다. < Public Domain >

레인저는 순양함을 기반으로 제작된 기존 렉싱턴(Lexington)급보다 크기가 작았지만 운용 효율은 오히려 뛰어났다. 하지만 여러 문제점도 함께 드러나면서 구조를 개선하고 좀 더 선체를 키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검토 끝에 3척의 신예 항공모함은 기준 배수량이 20,000톤은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 보유가 허용된 항공모함 총 톤수가 135,000톤이었는데 남은 여유는 55,000톤뿐이었다.

고심 끝에 미국은 2척은 20,000톤 급으로, 나머지 한 척은 15,000톤 규모의 경항공모함으로 획득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1934년 5월, 7월에 각각 건조에 착수해 1937년에 CV-5 요크타운이, 이듬해 CV-6 엔터프라이즈(Enterprise)가 순차적으로 취역했다. 이들이 바로 요크타운급이다. 그런데 요크타운급이 건조에 착수한 바로 그 해 일본이 군축 조약을 탈퇴하고 해군력 증강을 선언하면서 상황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1937년 2월 8일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 동시에 건조 중인 CV-5 요크타운(우)과 CV-6 엔터프라이즈. < Public Domain >

이에 따라 요크타운급을 축소한 형태로 설계가 완료되어 기공을 앞두고 있던 경항공모함 CV-7 와스프(Wasp)와는 별개로 요크타운급의 추가 발주가 이루어졌다. 1939년 9월 25일, 착공에 들어간 3번 함 CV-8 호넷(Hornet)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대전이 발발한 직후였기에 건조가 신속히 진행되었고 진주만을 급습 당하기 50여 일 전에 취역했다. 그렇게 미국은 최초 구상대로 3척의 요크타운급을 확보할 수 있었다.


특징

석탄 운반선을 개조해서 만든 미국 최초의 항공모함 CV-1 랭글리(Langley). 요크타운급도 처음에는 이 같은 평갑판 구조로 예정되었었다. < Public Domain >

초창기 항공모함은 이전에 없던 함종이고 기존 군함이나 상선의 선체를 개조해서 만들다 보니 그야말로 모양과 구조가 중구난방이었다. 최초의 항공모함 중 하나인 영국의 퓨리어스(HMS Furious)는 선체 중앙에 함교가 있고 선수와 선미에 각각 비행갑판을 설치했을 정도였다. 미국의 개발팀은 이런 식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나하나 알게 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요크타운급을 설계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평갑판으로 예정했으나 이런 방식을 채택한 항공모함들이 보일러의 배기가스 배출과 함재기 통제에 애로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져 함교가 도입되었다. 순양전함을 개조한 렉싱턴급의 밀폐식 격납고와 달리 실험용으로 건조한 레인저의 개방식 격납고가 효과적이라고 보고 이를 채택했다. 때문에 실전에서 유폭 에너지를 밖으로 빼내지 못해 낭패를 본 렉싱턴급과 달리 요크타운급은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요크타운급은 비행갑판 하부의 격납고 측면이 외부에 개방된 형태여서 전투나 사고로 유폭이 벌어질 경우 외부로 폭발 에너지를 즉시 방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 Public Domain >

승강기는 비행갑판 중앙을 따라 3개가 설치되었다. 당연히 함재기 이동 시 이함이나 착함이 어려웠다. 같은 시기에 건조된 와스프가 초보적이고 효율적인 구조는 아니지만 선체 측면에 승강기를 설치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속한 에섹스(Essex)급, 미드웨이(Midway)급도 취역 당시에 이런 방식을 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초창기 측면 승강기의 설치 및 운용이 생각보다는 어려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영국의 커레지어스(Courageous)급이나 일본의 카가(加賀), 아카기(赤城) 같은 초기 항공모함 중 일부는 이함과 착함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다층 구조 갑판을 갖추었다. 운용해 본 결과 효과가 나빠서 이후 단일 갑판으로 개조되기는 했으나 이런 영향 때문이었는지 요크타운급도 처음에 격납고에서 함재기가 곧바로 이함 할 수 있도록 선수 부분에도 사출기를 설치했다. 하지만 효과가 너무 떨어지고 공간만 차지해 얼마 지나지 않아 제거되었다.

1945년 5월 21일, 가미카제의 자살 공격을 받은 CV-6 엔터프라이즈. 요크타운급은 배수량을 맞추기 위해 장갑의 많은 부분을 포기했지만 생각보다 방어력이 좋았다. < Public Domain >

요크타운급은 기준 배수량 19,800톤에 만재 배수량 25,500톤으로 제작되었다. 사실 해군은 27,000톤 정도가 되어야 원하는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워싱턴 군축 조약을 준수하다 보니 축소하고 포기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무게를 상당 부분 차지하는 장갑이 그랬는데, 대표적으로 어뢰의 공격을 버티는 방뢰 능력은 그저 형식적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실전에서 양호한 방어력을 발휘했다.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퀸 에리자베스 항모

작성자: 붉은악마

조회: 1862 추천: 0  작성일: 2020-10-07 00:15:33

 

영국해군의 항모 스트라이커 그룹 사진.

 

항모 '퀸 엘리자베스'와 다른 8척의 함정들이 같이 항해하는 사진.

 



 

 


윤석준의_차밀 작성자: 윤석준

조회: 7339 추천: 0   작성일: 2020-10-05 10:20:27

<윤석준 차밀, 2020년 10월 5일>

 


중국 항모가 무용지물인 이유

 

 

 

 

 

미 해군과 중국 해군의 항모타격단(CSG)와 航母戰鬪群에 있어 구성 전력 규모는 거의 비슷하나, 고정익 공중조기경보통제(AEWC) 탑재 여부는 항모 생존성과 전투력 발휘 수준과 왜 항모를 보유하였는지를 결정하는 핵심요인이며, 이는 중국 해군 航母戰鬪群의 『무용론(無用論)』을 대변한다.

 

그동안 중국 해군은 航母戰鬪群 운용에 필요한 AEWC 능력을 갖추고자 노력하였으며, 지난 8월 31일 서방 군사 매체들은 “중국 해군이 항모용 KJ(空警)-600 고정익 AEW&C 시험비행에 성공하였다”라고 보도하였다.

 

그동안 중국 해군 항모는 접착식 판널형 대공레이더를 탑재한 러시아 K-31 헬기를 航母戰鬪群 공중조기경보통제 전력으로 투입하였으나, 탐지거리, 작전시간, 표적 처리 능력 그리고 전술 네트워크 체계 등에 있어 미 해군 고정익 E-2D AEWC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군사 전문가들은 지난 8월 31일 중국 해군이 항모 탑재용 KJ-600 AEWC 시험을 자연스런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과연 잘 될까”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유는 KJ-600 AEWC 전력만이 아닌, 어떠한 성능을 갖춘 대공레이더를 탑재하고, 획득된 전술정보를 함재기와 호위전력에 탑재된 무기 및 장비와 어떻게 네트워크화하는가의 기술적 문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항모타격단과 고정익 AEWC

 

통상 항모는 상대국 연안에 접근하여 군사력 투사, 원해 전구공중통제권 장악, 강습상륙작전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이를 위해 항모에 3∼4대의 고정익 AEWC를 탑재하여 24시간 조기공중경보 및 통제 임무를 실시한다.

 

이는 미 해군 제널드 포드 항모(CVN-78)가 노스롭 그루만사가 무려 E-2A형부터 D형에 이르기까지 무려 24회에 걸쳐 개량한 최신형 E-2D AEWC를 탑재하고 구형 E-2C를 운용하는 프랑스 해군이 올해 신형 E-2D를 도입하여 교체를 서두르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 자존심이 큰 프랑스 해군이 샤를 드골 항모타격단 구성 전력을 모두 프랑스제로 하면서 AEWC만은 미 해군용 E-2D 개량형으로 도입하는 주된 이유는 E-2D 없이 항모의 생존성과 작전 완전성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실제 E-2D는 함재기를 단순한 항모 타격단의 근접항공지원(CSA)이 아닌, 원해 전구공중통제권 장악, 연안으로부터의 군사력 투사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며 항모와 호위전력에 탑재된 대공레이더만으로는 탐지범위가 어려운 적 항공기와 미사일 공격을 550㎞의 원거리에서 탐지해 조기에 대응이 가능하여 항모 생존성과 항모작전 완전성을 보장한다.

 

이를 위해 원통형 대공레이더 AN/APY-9를 탑재하고 포드급 항모에 탑재된 X-밴드 AN/SPY-3와 2번 포드급 항모에 탑재된 S-밴드 AN/APY-6 레이더가 탐지하지 못하는 거리 밖 550㎞까지의 공중표적 약 2,000개를 동시에 탐지한다.

 

x벤드 레이다망

그 중 적성이 식별된 약 40개의 적 항공기 및 미사일 정보를 인접 함재기와 호위 순양함과 구축함에게 실시간으로 전파해 함재기와 호위전력의 함-대-공 미사일로 타격하도록 하는 합동교전능력(CEC)을 발휘하며, 이를 통해 항모에 탑승한 항공전술지휘관의 공역통제 권한을 지원한다.

 

또한 강습상륙작전시 원정타격단(ESG)가 연안에 상륙할 수 있도록 적 내륙 지상기지로부터의 항공기와 미사일을 조기에 탐지하여 함재기와 호위수상함이 공-대-공 또는 함-대-공 미사일로 대응하도록 하여 강습상륙작전 공역통제 및 지원 임무를 지원하며, 이를 통해 대형 강습상륙함(LHA)에 탑재된 F-35B 수직이착륙기의 제한점을 보강해 준다.

 

이는 강습상륙작전 지휘관을 해군제독으로 임명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해병대가 상륙작전 범위를 연안 접안작전만이 아닌, 내륙의 지상작전으로 넓혀 상륙군 지휘관이 상륙작전을 지휘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는 AEWC를 통한 공역통제와 화력 운용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주장이다.

 

실제 E-2D는 약 10,600m 상공에서 2,700㎞ 항속거리를 갖고 약 6∼8시간을 체공하면서 탑재된 회전형 AN/APY-9 대공레이더, IFF, 인공위성 전술 네트워크 체계에 의해 약 6백만 평방마일 범위 내 100개의 적성표적을 일시에 처리하며 이를 함재기와 호위수상함이 동시에 교전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공중급유구를 갖추고 있어 작전시간을 12시간까지 늘릴 수 있어 2대 운용으로 24시간 AEWC 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한다. 통상 미 해군 항모는 E-2D 4대를 탑재해 2대 투입, 1대 갑판 대기 및 1대 정비 주기로 운용한다.

 

 

중국 항모용 KJ-600 문제점

 

 

미 해군 따라가기를 지향하는 중국 해군이 항모를 건조하면서 이러한 고정익 AEWC 중요성을 간과할 리가 없으며, 그동안 중국 군사잡지들은 중국 해군이 이를 1990년대 초반부터 준비하였다고 보도하였다.

 

현재 중국 해군은 미 해군 항모타격단과 거의 비슷한 航母戰鬪群을 억지로(?) 갖추고 있으나, 항모용 고정익 AEWC는 아직까지 없고 이를 운용할 전술 합동네트워크 체계도 구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Type 001과 Type 002형 항모는 스키점프식으로 고정익 AEWC를 이륙시킬 수도 없었고, 이들 항모 목적이 주로 함재기 조종사 양성단계와 항모전투군 교리 발전이어서 고정익 AEWC가 없어도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上海江南造船所에서 건조 중인 8만5천톤 Type 003형 항모가 스팀이륙장치(CATOBAR) 또는 전자기 이륙장치(EMALS)를 갖춘 대머리형 항모으로 결정되자, 고정익 AEWC 탑재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이에 중국 해군과 각 해군 연구소들은 Type 003형 항모의 해군 시기인 2023년∼2024년과 맞추어 고정익 AEWC 개발을 추진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랴오닝(遼寧)과 산둥(山東) 항모는 상대국 연안에 접근하여 군사력을 투사하고, 원해에서 전구공중통제권을 장악하며, 강습상륙작전을 지원하는 항모는 아니었으며, 함재기 조종사 양성용으로서 가끔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의 군사력 시위를 위해 무리하게(?) 투입되었다. 이 과정에 회전익 프랑스 Aerospatiale SA-321 Super Frelon, 중국 AVIC 昌河飛機工業集團公司 Z-18 그리고 러시아 E-801M OKO 팬널형 대공레이더를 탑재한 Ka-31을 AEWC 임무에 투입하였으나, 제한이 많았다. 예를 들면 공중 150㎞와 해상 100∼200㎞ 범위 내의 30∼40개 표적만을 처리하고 작전시간이 2시간 반인 문제점이었다.

 

이 와중에 서방 군사잡지들은 중국 해군이 Type 003형 항모 완성 약 12∼18개월 이전 시기까지 항모 탑재용 고정익 AEWC를 개발하는 계획을 추진하였다면서 지난 8월 31일에 상용위성사진 판독을 통해 KJ-600의 시험비행 사실을 보도하였다.

 

2018년 『現代艦船(Modern Ship)』 11月號는 朱海항공전시회에서 中國電子科技集團有限公司 소속 南京電子技術硏究所가 미 해군 E-2D와 유사한 KJ-600 모형을 『새로운 실크로드 AEWC(New Silk Road AEWC)』이라고 전시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2019년 2월 12일 『Global Security』와 지난 8월 31일 『Popular Mechanics』과 9월 8일 『The National Interest』는 중국 해군이 中國空警(Air Police) 600인 러시아 Antonov An-24 모방형 Xian(西安) Y-7 동체에 E-2C/D용 AN/APY-9 원통형 레이더와 유사하도록 지상용 능동선배열형 JY-26 대공레이더를 개량하여 탑재한 KJ-600을 개발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군사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KJ-600이 전력화되기 위해서는 ‘아직’이라고 평가한다.

 

우선 탑재 레이더 성능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명칭이 공개되지 않은(unknow) KJ-600 대공레이더가 독자형 중국제로서 지난 30년간 러시아 MR-710 Fregat를 모방한 Type 382형 3차원 대공레이더와 Type 052D형 구축함에 탑재한 가로세로 4미터 접착식 함정용 능동선배열형(SAPAR) Type 346형 대공레이더 개발에서 나타난 탐지 범위 제한, 이중적 밴드 선택 논쟁, 전자파발사기 및 수신기(T/R) 처리 능력, 탐지 및 추적 셀과 미사일 통제 셀 간 부조합 등의 문제를 그대로 갖고 있을 것으로 본다.

 

반면, 지난 30년간 개선과 개량을 거친 미 해군 E-2D의 AN/APY-9은 UHF 장거리 탐지펄스, 미사일 통제를 위한 밴드 분리, 고출력 T/R 체계 및 표적 처리속도 가속화 등의 분야에서 최첨단 성능을 갖추고 있으며, 동체가 가볍다.

 

다음으로 KJ-600와 HHQ-9 등의 타격체 간 연동이다. 미 해군은 우주기반의 프로세싱(STAP)인 QL-698/ASQ 전술 네트워크 체계를 주축으로 한 CEC를 갖추어 표적정보와 수상함 SM계열 대공(對空) 및 대탄도(對彈道) 미사일을 실시간 연동시키어, 이를 NIFC-CA 체계로 발전시키면서 중국 DF-21D와 26B 공격에 대응하고 있다. 반면, 군사 전문가들은 Type 052D 구축함에 탑재된 Type 346 위상배열레이더(APAR)와 HHQ-9 미사일과 간 연동문제가 탐지거리와 미사일 사거리 중복, 탐지와 미사일 통제 밴드 간 적용 혼재 등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아마도 KJ-600 전술통제 네트워크와 HHQ-9 간 연동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난 9월 1일 중국 『Global Times』는 “KJ-600과 航母戰鬪群 간 연동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라고 보도하였다.

 

더욱 가장 심각한 문제는 E-2D의 AN/APY-9의 UHF 중복펄스를 사용하고 회전방식을 사용하여 작은 표적과 스텔스기도 탐지가 가능한 반면, KJ-600는 KJ-500와 같이 90⁰를 탐지하는 물고기 등뼈형(dorsal) 능동전자주사식위상배열(AESA) 레이더 3개를 원통으로 탑재하여 무겁고 탐지거리가 제한된다. Type 002형 항모의 Type 382 레이더는 250㎞이고 Type 052D형과 Type 055형에 탑재된 Type 346 위상배열 레이더는 200∼250㎞이어서 이보다는 길것이나 탐지거리 확장에 무리가 있을 것이다.

 

 

중국 해군이 문제점을 잘 해결할까?

 

군사 전문가들은 항모를 공격용 해군력의 상징이라고 본다. 하지만 고정익 AEWC가 없는 중국 해군 航母戰鬪群은 공격용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상대방의 대함 미사일과 어뢰 등의 공격에 무력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공세적 임무를 수행하기가 힘든 航母戰鬪群을 호위하기 위해 많은 Type 052D형과 Type 055형 구축함이 투입되는 것 자체도 무리가 있다고 본다.

 

특히 航母戰鬪群 보호를 위한 Type 346 위상배열레이더가 약 20개의 모듈형 장비를 요구하여 중량이라서 결국 Type 052D형 구축함에 이어 1만톤 규모의 Type 055형 구축함이 요구되었다는 논리도 제기된다. 물론 약 100개의 수직발사대를 갖추기 위한 톤이었을 것이나, Type 346형 대공레이더도 갈수록 무거워지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미 해군 AN/SPY-3/6 위상배열레이더는 더욱 작아지고 가벼워지고 있다. 아마도 KJ-600도 중량일 것이며, 이는 왜 Type 003형에 EMALS 탑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중국 해군이 航母戰鬪群을 원해상 전구공중통제권 장악과 연안으로부터의 군사력 투사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고정익 AEWC를 탑재하는 것이 필수일 것이나, 아직 KJ-600이 미국과 프랑스 해군 E-2D AEWC과 유사한 성능을 발휘하고 航母戰鬪群 무장과 연동되기에는 기술적 문제가 많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아직 Type 003형 항모가 작전에 투입되기까지 약 5년의 기간이 있어 중국 해군이 앞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개선할 여지는 충분히 있으나, 미 해군이 지난 30년간 해결한 문제들을 중국 해군이 단 5년만에 일시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마도 중국 해군이 많은 기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이나, 문제는 미 해군 이외는 항모용 AEWC를 생산하는 국가가 없으며, 핵심기술을 제공하는 러시아도 매우 제한적 기술만 갖고 있어 첨단 군사과학기술을 지원해 주는 동맹국 또는 지원국가가 없다는 것이다. 즉 중국 해군이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앞의 Type 382와 Type 346 대공레이더 개발 사례에서 식별된 사례와 같이 KJ-600 대공레이더 개선과 전술 네트워크 체계 구축에 있어 대두되는 기술적 문제들을 쉽게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혹자는 J-15를 전자전기(J-15D)로 개선하고 무인기 등을 활용하여 AEWC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함재기가 표적 정보 획득을 위해 자체 능동형 레이더를 작동하면 적에게 노출되어 오히려 航母戰鬪群 약점을 노출시켜 생존성이 취약해진다.

 

아울러 표적정보-타격수단 간을 연동시키는 AEWC의 전술 네트워크 기능이 없으며, 호위전력별로 각자 별도의 타격수단이 작동해 중복타격, 표적 방기, 항모 방어 허점 노출 등의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만일 KJ-600에 탑재된 대공레이더의 탐지거리가 미 해군 E-2D AN/APY-9의 550㎞보다 짧으면 별 의미가 없다.

 

2018년에 現代艦船雜誌社가 『現代艦船』 合丁本 형식으로 발행한 『中國航母編隊解析』과 『中國海軍的弱點』 책자는 고정익 AEWC 확보를 航母戰鬪群의 핵심이라고 평가하였다. 하물며 중국 내 민간 군사잡지가 이 정도인데, 중국 해군은 어떤 심정이겠는가?

 

여하튼 중국 해군이 Type 003형 항모의 진수를 약 18개월 앞둔 현시점에 어렵게 미 해군 E-2D와 유사한 KJ-600을 개발하였으나, 중국 『兵工科技(Ordance Industry Science Technology)』 8月號가 중국 내 군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지적하듯이 AEWC 확보는 의욕과 투자가 아니라 기술 수준이며, 시간이 필요한 전력이라는 것이다.

 

현재 중국 해군 KJ-600 개발에 많은 연구소가 연구기금을 받기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중국 해군은 일부 정치적 의도도 포함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후 중국해군, 中國航空工業集團公司(AVIC), 南京電子技術硏究所의 제14 연구소, 中國科工科技集團有限公司의 제23 연구소가 이를 어떻게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해결하지 지켜볼 일이다. 그래서 중국 해군 航母戰鬪群은 ‘아직까지’ 무용지물이다.

 

 


작성자 윤석준은 한국군사문제연구원(KIMA) 객원연구위원이자,

한국해로연구회 연구위원과 육군발전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예비역 해군대령이다.

 

master    2020.09.24 05:53

조회 수 1 추천 수 0 댓글 0

 

 

Russia builds world's longest submarine. K-329 Belgorod

 

 

조현상 기자 = 러시아가 초대형 핵추진 잠수함을 언론에 공개했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은 지난 2019년 4월 23일(현지시간) 신형 잠수함 ‘벨고로드(K-329 Belgorod)’의 진수식을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북부도시 세브로트빈스크에서 ‘벨고로드’가 진수되는 모습을 상페테르부르크 소재 세베르냐조선소에서 영상으로 지켜봤다.

 

이날 타스통신은 “러시아군은 2020년 말 또는 2021년 초 벨고로드를 실전 배치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다수의 러시아 언론은 ‘벨고로드’ 잠수함이 단순히 군사적 용도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 무인잠수정 등을 활용해 심해구조에 나설 수도 있는 다목적 잠수함이라고 전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벨고로드는 길이 184m, 배수량 2만4000t의 초대형 핵추진 잠수함이다. 러시아는 1992년부터 구형 ‘타이푼’급 핵추진 잠수함 대신 벨고로드를 건조하려 했지만, 재정문제로 여러 차례 연기했다. 그러다 푸틴이 정권을 잡으면서 구소련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 건조를 시작했다.

 

벨고로드의 등장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 나라는 미국이다. 벨고로드의 건조 목적 때문이다. 이 잠수함은 ‘포세이돈’으로 알려진 무인잠수함 6기를 탑재할 수 있다. 포세이돈에는 초대형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 포세이돈이 미국 대도시를 노린 무기라고 공공연히 언급했다.

 

 

벨고로드에 탑재될 포세이돈은 6~7년 전부터 서방언론에 회자됐다. 당시 언론은 “러시아가 ‘프로젝트 09852’라는 암호명으로 신형 무인잠수함을 만들고 있다”면서 “오바마 정부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RFE "포세이돈 실전배치는 2027년 돼야 가능"

 

러시아 국방부가 2019년 2월 20일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무인 원자력잠수정 ‘포세이돈’의 시험발사 장면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포세이돈을 장착한 잠수함을 올 봄에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은 이 무인잠수함이 수십 메가톤급 이상의 핵탄두를 장착한 채로 평소에는 대양의 심해를 떠돌거나 숨어 있다가 본국의 명령을 받으면 적국의 항구를 초토화시키는 무기라는 설명에 경악했다. 속도 또한 일반 잠수함이나 어뢰보다 훨씬 빨라 요격도 불가능하다.

 

이후 세계 안보전문매체들은 러시아의 ‘프로젝트 09852’가 실존하느냐 아니냐를 두고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2015년에는 러시아 국영방송이 실수로 ‘프로젝트 09852’의 도면 스케치를 보도했다. 게다가 여기에는 “적의 경제적 역량에 치명타를 가하기 위한 해안지역 공격에 사용하는 전략무기”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러시아 당국은 “방송국의 오보”라며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서방언론은 러시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 2018년 3월 푸틴 대통령은 앞으로 미국을 압도할 무기 가운데 하나로 이 무인잠수함을 소개했다. 포세이돈의 등장이었다. '프로젝트 09852'는 사실 이 포세이돈을 탑재할 초대형 잠수함 벨고로드의 계획명이었다. 러시아는 포세이돈을 32기 생산해 주요 함대에 배치할 계획이다.

 

'자유유럽방송(RFE)'의 같은 날 보도에 따르면, 미 정보기관들은 포세이돈 무인잠수함의 개발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실전배치 시기는 2027년은 돼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방위산업전략포럼

윤석준의_차밀 작성자: 윤석준

조회: 1198 추천: 0    작성일: 2020-09-28 10:46:04

<윤석준 차밀, 2020년 9월 28일>

 


중국 해군의 海權 추진 딜레마

 

 


최근 중국 해군이 깊은 딜레마에 빠져 있으며, 이는 『해양통제(중국명:海權, 영어명: Command at Sea)』 개념을 어떻게 중국에 적용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 해군은 절대로 미 해군과 같이 세계 해양을 대상으로 군사작전을 실시할 수 없고, 오히려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그리고 한반도 서해에 대해 확실한 해양통제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런데 중국 해군은 중국의 마한(Mahan) 류화칭(劉華淸) 제독이 『회고록(438쪽)』에서 유언한 근해(near sea) 또는 제1도련 범위(1st Island-Chain)를 넘어 2008년 이래 아덴만과 인도양에 상시 수상함과 잠수함을 전개하고, 매월 오키나와와 대만 사이 해협을 거쳐 태평양 원해에서 기동훈련을 실시하면서 기회 있을 때 마다 해군기동부대가 지중해, 대서양, 아프리카 근해, 흑해와 발트해로 진출하여 쓸데없는 ‘오해’를 받고 있다.

 

 

 

 

 

실제 이러한 중국 해군의 해군기동부대 구성은 공세적 항모전투군(航母戰鬪群) 규모가 아닌, 2척의 수상 전투함, 1척의 군수지원함 그리고 해병대 일부 병력 수준으로서, 주로 관련국 해군과의 친선방문, 인적 교류 그리고 기회훈련(passex: 주로 신호숙달, 통신확인과 상호충돌방지를 위한 기동 정도의 훈련을 의미함)을 실시하는 정도이어서 이를 군사적 위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최근 일부 공세적 해상기동 훈련이 주로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그리고 서해에서 실시되고 있으며, 최근엔 일본 오키나와와 미야코 섬 사이를 지나 태평양에서도 실시하고 있다.

 

근데 이러한 중국 해군의 근해를 넘는 세계 주요 해양진출이 미국에 의해 미 해군의 해양통제 능력과 위상에 대한 도전과 위협으로 평가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난 8월호 『미 해군연구소 프로시딩스(USNI Proceedings)』가 중국 해군이 2009년 인도양의 해적퇴치작전, 2014년 3월 리비아 내전과 2015년 4월 예맨 사태시 자국민 철수작전 등의 비군사적 양상에서 점차 대서양에서의 유럽연합 국가 해군과 합동훈련, 2014-2018년 간 서태평양 림팩훈련 참가, 2019년 러시아와 남아프리카 해군과 케이프 타운 근해에서 연합훈련 등 주요 해상교통로 길목(chokepoint)이 있는 세계 주요 해양에 대한 海權를 장악하려 한다고 평가한 사례였다.

 

또한 미 국방성, 연구기관 그리고 중국 군사 문제 전문가들이 이를 두고 미 해군력의 우세가 점차 쇠퇴하는 가운데 중국 해군이 그 공백(gaps)을 메우기 위한 해군력 과시(naval presence)라고 보면서 동시에 중국의 해외이익을 증대하기 위한 영향력을 향상하려는 의도라고 평가한 것이었다. 실제 이는 금년 1월 미 국방정보본부의 『중국군 보고서』, 9월 1일 국방성의 『연례 중국군 평가보고서』와 의회연구원의 『중국 해군 평가 보고서』 등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가운데 2000년 초반부터 중국 해군 내에서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海權에 대해 재정의 또는 재논의가 나타나고 있었으며, 이는 미중 간 강대국 경쟁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중국은 海權 언급에 대해 매우 민감해 했다. 특히 19세기 중반 서방 열강들의 중국 침략이 해군과 해병대를 앞세운 海權 장악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당시 중국 해군은 무기력하여 국가멸망을 맞이하였다. 이에 중국에게 海權 개념은 제국주의 패권으로 인식되었으며, 중국 내 각종 역사서, 교과서와 중국식 국제정치 이론에서 제국주의를 대변하는 핵심이론으로 기술하였다.

 

하지만 2000년 초반부터 중국은 海權 개념을 해양경제, 문화, 환경, 과학기술 등을 포함하는 범주로 해석하였으며, 이는 2007년 10월 5일의 제17차 공산당 중앙 당대회의 정치공작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國家海洋局이 海軍出版社에서 『中國海洋發展報告』 공개본을 발간함으로써 공개되었다. 당시 중국은 중국 근해 해양가치를 평가하면서 海權 개념을 국가발전을 위해 조치해야 할 필요불가피한 조건으로 정의하였다.

 

특히 2007년 이후부터 海權은 중국에게 국가발전, 강대국론 그리고 중국굴기와 연계되면서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예를 들면 2008년 石家澤 박사의 『海權與中國』으로 시작하여 2012년 崔京生 박사의 『海洋志』를 시작으로 2014년 楊文鶴과 陳伯鏞 박사의 『海洋與近代中國』에서 중국과 海權을 연계시켰으며, 이어 미국 마한 제독의 저술들이 번역되어 나옴과 동시에 2014년과 2015년 각각 張文木 박사의 『論中國海權』과 2015년 『中國地綠政治論』 등으로 이어지면서 肖天亮 국방대학 교수의 『戰略學』으로 연결되는 발전을 보였다. 특히 미국 마한의 저술과 미 해군의 함포외교(gunboat diplomacy) 이론을 번역한 熊嶪華 교수의 『大國: 由海權崛起』이 출판되면서 海權은 중국의 강대국 및 중국굴기와 연계된 사례였다.

 

 

 

 

 

이러한 중국굴기에 따른 海權 수용의 필가피론은 2017년 제19차 당대회 이후부터 군사적 의미의 海權으로 확대되었다. 즉 중국은 海權 개념을 과거 서방 열강과 같이 패권(hegemony)을 지향하지는 않으나, 해외이익 보호를 위해서는 군사적 海權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논리였으며, 이는 중국 國防白書인 『2015년 中國軍事戰略』과 『2019년 新時代中國海洋定策』에서 간접적으로 제시되었다.

 

즉 중국의 해외 국가이익이 영향을 받는다면 중국 해군도 海權 개념을 과거 서방 열강과 미 해군과 같이 연안으로부터 내륙 자국민과 투자시설 보호 등을 위해 취해야 할 불가피한 것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재해석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해군 總司令 沈金龍 上將이 2017년 12월 13일에 내부용 『人民海軍(Pleople’s Navy)』에서 海權 개념을 중국 해군이 해외로부터 에너지와 자원을 확보하고 중국식 규범을 강조하기 위한 외교적 영향력 발휘가 필요한 주요 해상교통로 확보를 위한 조치라며 이는 패권(hegemony) 지향이 아니라서 가능한다고 강조한 사례와 2018년 4월 남중국해 해상에서 거행된 중국 해군 관함식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강력한 중국 해군의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지금처럼 시급한 적이 없었다 하면서 중국 해군도 미 해군과 같이 세계 일류 해군으로 발전하여 세계 전역에 대한 海權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사례에서 증명되었다.

 

이러한 海權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었다. 첫째, 세계 모든 해양에 가보겠다는 “全球輻射(global reach)”이다. 한번 가보겠다는 것인데 이는 순수한 중국 해군 작전영역 확대를 의미한다. 하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즉 아직 덜 성숙된 “강대국 열정(global aspiration)”만으로 세계 해양을 겨냥하고 있으며, 지금이 미 해군과 같이 나중에 막대한 전력소요, 예산과 인력 소요 등의 큰 부담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둘째, 중국이 수입하는 에너지와 자원을 수입하고 중국식 규범을 강요할 수 있는 국가들과 연결되는 주요 해상교통로 길목에 대한 海權 필요성이다. 이는 중국 해군이 말라카 해협 서편 길목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인접국 미얀마와 항구사용 비밀계약을 체결하여 인도를 견제하는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이들 해상교통로 길목은 미 해군 기동함대가 포진하여 이미 미 해군의 통제하에 있어 이를 중국 해군이 어떻게 전환시킬지는 의문이며, 자유로운 항행의 권리의 수혜자인 중국 해군이 어떤 명분으로 이를 강행할지도 의문이다라고 우려한다.

 

셋째, 중국 해군력 현대화 發展速度이다. 예를 들면 불과 6년 만에 2척의 구형 항모를 건조하고, 2023년 정식 항모가 건조될 예정이며, Type 052형의 개량급 Type 052D 중국형 이지스 구축함과 1만톤 규모의 Type 055형 구축함을 연이어 건조하고 있고, Type 071형 대형 상륙함에 이어 미 해군 아메리카급 대형 강습상륙함과 유사한 Type 075형 대형 강습상륙함을 건조하는 가운데 갑자기 개량형이자 더 큰 Type 076형 대형 강습상륙함 건조를 발표하는 등의 건조 속도이다. 이는 건조비 증가와 과학기술 개발 지연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팬더믹 사태로 건조가 지체되고 있는 미국과 대조적이었다.

 

이에 군사 전문가들은 이를 중국 해군의 아버지 류화칭(劉華淸) 제독이 중국 해군에게 근해 또는 제1도련까지만 海權을 행사하라고 유언을 남겼으나, 이제 중국 해군에게 지리적 경계선인 도련 개념은 더 이상 의미가 더 의미가 없으며, 오직 해외이익이 적용되는 세계 모든 해양에 있을 뿐이라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중국 해군이 海權을 어느 수준과 범위로 하는가와 어떤 개념으로 확보해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가 나타났다.

 

 

 

 

 

첫째, 함정 소요가 급증하였다. 중국 해군이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 막대한 양적 규모의 척수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갈수록 함정과 해외기지 소요는 늘어날 것이며, 이는 중국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3번째 항모에 이어 Type 055형과 052D형 소요가 급격히 늘어나 부실하게 건조할 가능성이 크다. 통상 3척을 batch 단위로 건조하여 순차적으로 개량 또는 옵그레이트한 무기와 장비를 탑재하나, 중국 해군은 무려 10척 이상을 기본설계와 제원대로 건조하여 소요를 맞추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기존의 3개 해역함대사령부 이외 제4기동함대사령부(4th Fleet) 창설로 해외작전 소요를 충당할 것으로 전망하나, 그 수준은 미 해군의 1980년대 수준으로 보고 있다.

 

둘째, 미국의 추적이다. 미 해군은 질적 우세에서 이제는 양적 우세를 보이려 2045년까지 355척 해군력을 유지하려 하며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여 함정 건조 속도를 증가시키고 있다. 특히 제4차산업혁명 과학기술을 접목한 무인기, 무인수상함 그리고 무인 잠수함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유령함대(Panthom Fleet)』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숫자화된 미 해군 기동함대는 이미 전 세계 주요 해양에 포진하고 있으며, 튼튼한 해외기지와 동맹국과 파트너십국 해군과 협력하고 있다. 최근엔 러시아의 해군력 팽창과 북극해 안보를 우려하여 제2함대를 재창설하고 나토 해군과의 노폭에 합동군사령부(Joint Force Command-Norfolk)를 구축하였다. 현재 중국 해군이 미중 간 경쟁 틈새인 남태평양, 남대서양, 중남미 해역을 공략하여 해군력을 보내 영향력을 보이려 하나,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셋째, 중국 해군 스스로의 고립이다. 미국과 서방은 중국을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파괴국가 또는 현상유지 타파 국가 그리고 권위주의 중국식 규범을 강요하는 침략국가로 비난하고 있으며, COVID-19 원인 제공, 홍콩 인권유린 사태, 신장 자치구 탄압, 각종 유학생과 주재원을 동원한 정보 훔치기 행위 등을 들어 중국을 고립시키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 중국 해군이 세계 주요 해양에 나아가 인접 연안국과의 기본적 해상훈련과 연습을 실시하는 모습이 중국 군사위협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이제는 중국 해군 함정의 우호친선 방문조차 수용하는 것이 부담으로 나타나는 상황이 되었으며, 비록 중국 해군이 COVID-19 무결점을 자랑하지만, 여전히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

 

넷째, 미래 중국 해군력의 무리한 정의이다. 제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명확한 로드맵 없이 2035년에 중국군 현대화를 마무리하고 2049년에 세계 일류급 군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Made-in-China 2025”와 “군민융합(CMI)” 등의 방위산업 육성 계획을 선포하였으며, 중국 해군력의 경우 이를 global navy 또는 world-class navy 그리고 blue water navy 등으로 과대포장되면서 중국 해군은 원하든 원치 않든 세계 해양으로 나가야 한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를 ‘不自量力(overreach)’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시도는 시진핑 주석이 전(前)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시한 『신형 강대국 관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의해 미중 간 강대국 경쟁으로 변화되면서 미국과 서방의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의 명분이 되고 있다. 더욱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역사적 영유권 주장, COVID-19 진원 공방, 홍콩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 신장 자치구 위그르 민족에 대한 인권탄압, 일대일로 사업에 의한 해당국 경제 압박, 대만과의 갈등 등이 중국 공산당 주도의 군사위협으로 확대되고 있어 중국 해군의 세계 진출을 군사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후유증이 나타날 것이다. 우선 앞에서 전제했듯이 중국 해군은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과 한반도 주변해역에 대한 海權을 원한다. 하지만 무리하게 세계 진출만을 위한 해군력 운용에 집중하면 그동안 중국 해군이 남중국해, 동중국해 그리고 대만해협에 적용한 반접근/지역거부전략(A2/AD)이 무력해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A2/AD 전략은 230톤 Type 22형 Houbei급 미사일 탑재 고속함, 1,500톤 Type 056형 Jiangdao급 콜벳트함 그리고 DF-21D와 26B 순항 미사일이 주력이나, 미 해군 항모타격단에 의해 일시에 무력화될 수 있으며, DF-21D와 26B도 미 해군 2D와 합동교전능력(CEC)와 대공통합사격통제(NIFC-CA)에 의해 무력화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즉 대양만 보다가 근해에 대한 海權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의 대만카드 활용이다. 예를 들면 미 해군대학 중국해양정책연구소 리안 마틴슨(Ryan Martinson) 박사는 미국이 해군력 우세에도 불구하고 중국에게 대만을 활용하는 대만카드를 강하게 적용하고 있어 중국군이 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미 위생부 차관이 대만을 방문한 지난 주에 중국 공군이 대규모 공군전력들 동원하여 공중작전을 전례없이 3일간 실시하고, H-6 전략폭격기가 공대지 순항 미사일을 발사해 괌 앤더슨 공군기지를 공격하는 온라인 동영상을 올린 것이었다.

 

실제 이는 미 해군 항모 함재기 작전반경이 약 500km이고 탑재된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의 사거리가 약 200km인 것을 고려시 H-6가 괌기지를 목표로 순항 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한 거리까지 오는 것도 문제지만 도달 이전에 이미 함재기의 공대공 미사일 표적이 된다는 것을 고려시 너무 무리한 시나리오이자, 군사적 근거 없는 동영상이었다. 즉 미중 간 군사적 강-대-강 대립이 최대화되는 상황하에 중국군이 행한 일종의 “선동전(propaganda warfare)”이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 해군이 세계 해양진출을 너무 무리하게 서둘렸다면서, 특히 시진핑 주석이 중국 해군력 현대화가 외형적 성과를 보이다 보니, 너무 무리하게 덜 성숙된 중국 해군의 힘과 영향력을 세계 해양에 과시하는 애매모호한 海權을 선언하여, 그동안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등의 계승전략인 『도광양회(韜光陽晦)』 정신을 위배하여 고립만 당하는 깊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평가하였다. 향후 중국 해군이 海權 딜레마와 후유증을 어떻게 무리 없이 해결할지가 의문이다.

 

 

 

작성자 윤석준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이자,

한국해로연구회 연구위원 및 육군발전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예비역 해군대령이다.

 

미래 성장동력 리튬이온전지, 국내 최초 잠수함 탑재 / 방사청 제공

작성자: 운영자

조회: 5798 추천: 2  작성일: 2020-09-24 10:05:25

 

 

미래 성장동력 리튬이온전지, 국내 최초 잠수함 탑재

 


- 국내 3,600톤급 잠수함, 리튬이온전지 국산화로 성능향상 및 안전성 강화 -

 

 


 방위사업청(청장 왕정홍)은 올해 10월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장보고-Ⅲ Batch-Ⅱ 잠수함 탑재를 위한 리튬이온 전지 성능 입증시험용 시제품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 장보고-III Batch-II 잠수함(3,600톤급)은 핵심 성능인 잠항 시간을 늘리기 위해 리튬이온 전지를 최초로 적용하여 2026년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 배치(Batch)는 동형(급) 함정을 건조하는 묶음 단위로,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거나 전력화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함정에 적용하는 용어다.

 

 개발 중인 리튬이온 전지는 기존 납축전지보다 수중 지속 항해 및 고속 기동 시간이 크게 향상되고 수명은 2배 이상 연장되며, 유지보수 등 편의성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어 잠수함의 전투능력을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 우리나라는 전기자동차 및 에너지 저장장치용 대용량 리튬이온 전지 분야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Batch-Ⅱ 리튬이온 전지가 아직 개발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들로부터 공동개발 및 기술협력 문의가 오는 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 Batch-Ⅱ 리튬이온 전지는 수중에서의 밀폐된 공간이라는 잠수함의 특성을 고려하여 ‘비용 대비 효과’보다는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최우선에 두고 연구개발을 수행 중이다.

 

 잠수함에 적용하는 리튬이온 전지는 민수용보다 안전성을 강화하여 설계하였다. 하드웨어는 고전압 절연 강화 설계를 반영하였고, 단락 시 사고전류를 빠르게 차단하는 장치를 추가 도입하였다. 소프트웨어는 절연 감시 및 사고전류를 감지ㆍ차단하기 위한 설계를 강화하였다.

 

 탐색개발 중 잠수함 내부 화재 및 침수상황에서도 폭발하지 않도록 리튬이온 전지에 대한 화염시험(800°C), 해수 침수 시험(1시간) 등 가혹한 시험환경을 설정하였고, 국제공인 규격에 따라 리튬전지 모듈의 성능 입증시험을 거쳐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였다.

 

 또한 리튬이온 전지를 잠수함에 탑재하기 전에는 잠수함과 유사한 육상시험장에서 성능과 안전성을 추가적으로 검증한 후 탑재할 예정이다.

 

 방위사업청 조동진(해군 준장) 한국형잠수함사업단장은 “잠수함용 리튬이온 전지를 성공적으로 개발함으로써 ‘잠수함 성능 및 수중 전투능력을 한층 강화’함과 동시에 ‘대용량 리튬이온 전지 기술 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으며, 우리나라 리튬이온 전지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감안하면 향후 잠수함 수출에도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끝>

 

홍창식의_세계_군사재판

영국 해군 대위, 견시업무 소홀로 벌금형 선고받아

홍창식의_세계_군사재판 작성자: 홍창식

조회: 1465 추천: 0    작성일: 2020-09-23 14:08:25

 

 

 

 

 

영국 해군 대위, 견시업무 소홀로 벌금형 선고받아

 


야간 견시업무 중 커튼 치고 다른 업무수행하여, 호위함 북해에서 어선과 충돌할 뻔

 

 

Portsmouth News, BBC, Daily Mail 2020. 9. 16. 보도

 

 

 

영국 Wiltshire 소재 Bulford 군사법원은 다른 업무를 이유로 견시업무를 소홀히 하여 군함이 어선과 충돌하게 할 위험에 빠뜨린 책임을 물어 이 업무를 맡았던 해군대위에게 벌금 4,000파운드(한화 600만원 상당)를 선고했다.

 

피고인 Rebecca Stanley 대위(31세)는 작년 6월 1일 북해 상에서 영국 해군 호위함 Sutherland호(frigate, type 23)에서 새벽 1시부터 4시까지 야간 견시임무를 부여받았다. 스탠리 대위는 다음날 있을 군함의 기동계획을 작성할 것을 낮에 지시 받았으나, 실제 이 계획은 24시간 연기되었다. 그러나 피고인은 이를 알지 못했고, 처음 해보는 계획작성에 대해 걱정과 긴장이 되어 사관실에서 등화관제 커튼을 치고 이 작업을 하였다.

 

 

 

 


스탠리 대위가 계획 작성을 위해 사관실로 들어가기 직전 군함으로부터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어선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호위함은 4,000톤급인 반면, 어선은 길이 36미터의 네덜란드 국적이었다. 스탠리 대위가 실내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함교에서는 항해장교가 근처에 어떤 선박이 있는지 육안에 의한 정확한 정보가 제한되는 가운데 군함을 운항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함정과 선박은 500미터까지 접근하였고, 어선이 뒤늦게 군함을 회피함으로써 충돌은 방지되었다.

 

군검사 Solomon Hartley 대위는 “Stanley 대위의 잘못된 판단으로 도버 해협으로 향하던 영국 군함과 어선이 거의 충돌할 뻔 한 위험에 빠졌다. 피고인은 야간 견시업무를 할 시간에 다음날 기동계획을 세웠다. 이는 불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무지한 처사였다. 피고인은 실내에서도 견시업무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등화관제 커튼을 쳐서 밖을 전혀 볼 수 없었고 실제 통제할 수 없었다. 레이더에 의해 군함 주변의 선박상황을 파악은 할 수 있지만 정확한 파악은 할 수 없었다. 특히 어선들의 항해는 예측할 수 없어서 더욱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며 피고인의 과실을 강조했다.

 

 

 

 


변호인 Kay Chadwick 중령은 스탠리 대위가 “견시업무 시간에 잠을 자거나 휴대폰을 하는 등과 같은 행위는 없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피고인은 “나의 행동이 잘못되었고 어리석었다. 나의 잘못으로 인해 동료와 어선이 침몰할 뻔 했다. 말로 미안하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 없다”며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했다.

 

군판사는 명령된 견시업무가 우선이며, 피고인의 행위로 군함을 위험에 빠뜨렸고 이는 엄중히 다뤄야한다며 벌금 4,000파운드를 선고했다.

 

# 2017. 6. 10. 미국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와 필리핀 선적의 컨테이너선 'ACX크리스털’이 도교 앞바다에서 충돌했다. 당시 군이 견시임무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군함이 운항에 있어서 첨단장비의 도움을 받지만, 최종적으로 사람의 육안 관찰이 중요함을 시사 하는 사건이었다.

 

# 초급 장교들에게는 동시에 여러 임무가 부여되었을 때에는 임무의 중요성을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사건도 임무의 우선순위를 분별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 또한 계획이 연기되었다는 것을 정확히 통보되지 않은 점도 문제점이다.

 

#군형법 제71조는 ‘함선을 충돌 또는 좌초, 복몰, 손괴’한 경우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73조는 과실로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도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처럼 과실은 있으나 실제 충돌, 손괴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직무태만으로 징계처분만 할 수 있다.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변호사 홍창식 (전,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