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준사관 59차 임관 수료


                              입  교 : 2018년 6월11일(월)

                              수  료 : 2018년 7월 6일(금)

                              장  소 : 해군교육사 호국관

                              임  관 : 해군67명,해병10명

                              주  관 : 해군사관학교장

                   병 기 : 김태형(부122) 안병식(부132) 하현호(부139)

유 도 : 김성명(부138) 이성섭(부148) 추경희(부158)

해군준사관 임관을 축하합니다.




출처 : 해군병기사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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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6·25전쟁 전 19척 운용...해군 최초 관함식 주력 편성

<5> YMS급 소해정 (上)
2018. 05. 16   17:00 입력 | 2018. 05. 16   18:06 수정

<5> YMS급 소해정 (상)

 

1947년 6월 22일 8척 함정 투입, 마산 수로서 첫 편대훈련 ‘성공’

정부수립1주년 기념 훈련 '대한민국 최초 관함식' 함포사격 ‘큰 호응’

 

기사사진과 설명

YMS-501 강진정. 사진=해군본부


 

우리 해군 창설 초기, 주력 함정은 JMS(Japanese Minesweeping Ship)급 소해정과 YMS(Yard class Minesweeper)급 소해정이었다.

조선해안경비대는 1947년 미 해군으로부터 320톤급 YMS 17척을 순차적으로 인수했다. 이어 1948년 1월 14일 1척을 추가 인수했다.

 

소해가 주 임무, 대양 작전은 제한


이로써 우리 해군은 18척의 YMS를 보유하게 됐다. 그중 12척은 미 해군에서 운용하던 모델이고, 6척은 한때 영국 해군이 운용하던 모델을 미국을 거쳐 다시 넘겨받은 것이다.

1949년 10월 25일 교통부 대한해운공사에서 운용하던 운남호를 인수한 것까지 포함하면 6·25전쟁 이전 도입한 YMS는 모두 19척이다.

YMS는 미 해군의 YMS-1급 보조 소해정(Auxiliary Motor Minesweeper)이다. 해군기지 내부와 가까운 해역에서의 작전을 목적으로 건조한 함정이어서 대양에서의 작전은 제한됐다.

또 소해(掃海: 안전 항해를 위해 바다에 부설된 기뢰 등의 위험물을 제거하는 것)가 주 임무여서 연안과 근해라 할지라도 초계용으로 운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무장은 미 해군에서 운용할 당시 3인치 포 1문과 20㎜ 기관포 2문을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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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S-502 경주정. 사진=해군본부


 

우리 함정으로 해사 생도 첫 함정 실습


해군사관학교(해사) 1·2기 생도는 졸업 전 한 달 동안 미 구축함에서 함정 실습을 했다. 반면 3기 생도는 최초로 우리 해군 함정에서 함정 실습을 했다.

해사 3기 생도들은 1949년 4월 12일부터 5월 15일까지 경주정(YMS-502), 개성정(YMS-504), 강화정(YMS-508), 구월산정(YMS-512), 고성정(YMS-518)으로 구성된 훈련정대에 편승해 함정 실습을 했다.

함정 인수 증가는 조선해안경비대에 문젯거리를 안겨줬다. 승조원 교육훈련이었다. 짧은 기간 교육훈련을 받고 배치된 승조원들은 함정을 다루는 게 미숙했다.

함·정장들은 조함술이, 승조원들은 장구 취급이 미흡해 선체 파손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입·출항 때 가장 중요한 임무는 펜더(Fender: 방현재, 즉 뱃전에 장착한 완충물)를 민첩하게 다뤄 함정 손상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펜더를 잘 다루는 수병은 함정의 핵심 요원으로 관리됐을 정도였다.

진해특설기지에서는 갑판장구 취급 숙달을 위해 매듭 묶기, 홋줄 던지기 등을 종목으로 함정별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기사사진과 설명
YMS-504 김해정. 사진=해군본부

YMS-504 김해정. 사진=해군본부


 

손원일 총사령관 주도로 편대훈련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함정 승조원들은 임무 수행 능력 확보에 박차를 가했다. 손원일 총사령관은 승조원들의 함정 운용술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해 편대훈련을 하기로 했다.

조선해안경비대는 1947년 6월 22일 YMS 7척 등 총 8척의 함정을 투입해 마산 수로에서 첫 편대훈련을 했다. 훈련 함정들은 아무런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훈련을 마쳤다. 자신감을 얻은 조선해안경비대는 1947년 8월 17일 인천 해상에서 광복 2주년 기념 편대훈련을 했다.

이날은 금강산정(YMS-501), 경주정, 광주정(YMS-503), 개성정, 김해정(YMS-505), 강계정(YMS-506), 강릉정(YMS-507) 등 7척의 YMS를 포함해 총 11척의 함정이 훈련에 참가했다.

편대훈련은 1949년에도 전개했다. 해군은 정부수립 1주년을 기념하고, 발전된 해군의 모습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1949년 8월 16일 인천에서 편대훈련을 했다.

이날 해군은 이희정(소장 예편·1976년 작고) 중령을 지휘관으로 가평정(YMS-509), 경주정, 김해정, 강계정, 강릉정, 강경정(YMS-510), 구월산정, 김천정(YMS-513), 공주정(YMS-516) 등 9척의 YMS급 함정으로 편대를 구성했다.

편대훈련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각료, 국회의원, 각계 인사, 인천 시민 등이 참관했다. 특히 YMS급 함정이 단종진으로 항진하면서 실시한 함포 사격은 큰 호응을 얻었다.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관함식으로 기록된 이날 행사는 해군이 국군의 구성원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기사사진과 설명

YMS-505 김해정. 사진=해군본부


 

해군 첫 번째 전력상실 ‘경산정’


조선해안경비대는 1947년 인수한 경산정(YMS-515)을 목포기지에 배치해 남·서해 경비 임무를 맡겼다. 경산정은 제주도 앞바다까지 출동해 일본 어선이 ‘맥아더 라인(MacArthur Line)’을 침범하는 것을 저지하는 임무도 병행했다.

경산정은 1948년 2월 20일 맥아더 라인 경비 임무를 수행하다 월선한 일본 어선 1척을 나포했다. 제주항으로 견인하던 중 일본 어선이 암초에 걸리자 다른 구조정을 찾으러 나섰는데, 그 사이 암초에서 벗어난 일본 어선이 도주했다.

어선 추적을 포기한 경산정은 비양도 묘박지에 투묘했고, 돌풍이 몰아친 다음날 새벽 2시30분쯤 제주도 서북방 비양도 근해에서 좌초됐다. 조선해안경비대는 3개월 동안 노력했지만 구조가 불가능해 현장에서 선체를 해체했다. 경산정의 좌초는 해군의 첫 번째 함정 사고이자 전력 상실이었다.

글=윤병노 기자

사진=해군본부

 

■ YMS급 소해정 제원

 

톤 수

전 장

전 폭

속 력

승조원

320(만재)

136피트(41.45m)

25피트(7.62m)

최대 15노트

(시속 27.8)

40

무 장

40(단열) 1, 20(단열) 2, Cal50 중기관총 2


 

YMS 소해정 목록

 

 

선체

번호

함 명

명명일

퇴역일

기존함정

비 고

1

501

금강산정

1947. 4.28.

1959. 6.15.

USS YMS-354

1950. 7. 16.  강진정  개칭

2

502

경주정

1947. 4.28.

1962. 5.10.

USS YMS-358

 

3

503

광주정

1947. 4.28.

1974. 1.21.

USS YMS-413

 

4

504

개성정

1947. 6. 2.

1955.10.15.

USS YMS-2005

 

5

505

김해정

1947. 6. 2.

1956. 3.15.

USS YMS-2006

 

6

506

강계정

1947. 6. 2.

1956. 3.15.

USS YMS-2003

 

7

507

강릉정

1947. 6.21.

1959.6.30.

USS YMS-463

 

8

508

강화정

1947.11.11.

1949. 5.11.

USS YMS-254

포항 항해 중 강제 월북

9

509

가평정

1947.11.11.

1950. 9.28.

USS YMS-310

구룡포 해상 기뢰 접촉

10

510

강경정

1947.11.11.

1963. 4.30.

USS YMS-330

 

11

511

가야산정

1947.11.11.

1949. 2.24.

USS YMS-423

거문도 근해 좌초 침몰

12

512

구월산정

1947.11.11.

1956. 3.15.

USS YMS-323

 

13

513

김천정

1947.11.11.

1969. 2.28.

USS YMS-258

 

14

514

길주정

1947. 9.21.

1956. 3.15

USS YMS-2225

 

15

515

경산정

1947. 9.21.

1948. 2.21.

USS YMS-351

비양도 근해  좌초침몰

 

515

고령정

1949.10.25.

1959. 5.30.

USS YMS-55

운남호 해운공사 인수

16

516

공주정

1947. 2.20.

1950.10.16.

USS YMS-2148

여도  소해 중  기뢰 접촉 

17

517

고원정

1947.11.11.

1948. 5.15.

USS YMS-2018

묵호 항해 중  강제 월북

18

518

용궁정

1948. 7.

1955.10.15.

USS YMS-196

후에 고성정으로 개칭.

 해상 충돌사고 파손  퇴역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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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필리핀에게 공여한 22척의 함정들




1. Conrado Yap급 고속정

1980년대 말부터 1993년까지 퇴역한 제비급 고속정을 1993년 6월 필리핀 해군에 총 12척을 척당 100달러에 공여를 하며 해군 정비창에서 보수 후 양도식이 체결되었습니다. 양도 된 고속정의 함명은 6.25 전쟁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명명해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12척 중 10척은 연안 경비정으로 운용되었으며 그 중 2척은 예비부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인수 후 필리핀 해군은 연안 경비정으로서의 경비 임무 범위가 한계가 있자 항해 범위를 넓히기 위해 후미 갑판에 연료통을 추가적으로 설치하였고 위성 통신 장치 및 전자 장비들을 설치하는 등 일부를 개량하며 애정을 보였습니다. 이후 2001년 6월부터 5척이 퇴역하면서 부품조달용으로 해체가 이루어졌고 2003년에 PG-849정이 퇴역했으며 2015년부터 2016년 각각 Sulpico Fernandez (PG-853) 함정과 Apollo Tiano (PG-851) 함정이 퇴역하면서 현재 2척이 현역에 남은 상태이지만 향후 모두 퇴역 할 예정입니다.


2. Tomas Batillo급 고속정

한국 해군이 1995년부터 퇴역을 시작한 참수리급 중형 고속정을 무상 원조로 필리핀 해군에 1995년도에 5척, 1998년도에 1척, 2006년도에 2척씩 나누어 증여하였습니다. 총 7척이 취역하지만 운이 없게도 한 척이 필리핀으로 수송도중 사고로 인하여 취역하지 못하고 부품 조달 용도로 쓰이게 됩니다. 초도함인 Tomas Batillo 함정도 비슷한 처지(?)인데 2003년도에 대형 태풍으로 인해 침몰합니다.

이후 필리핀 해군은 남은 고속정 5척의 성능개량을 위해 해군 공창서 무장 및 엔진교체 작업을 진행하는데 성능개량에 들어간 고속정은 1차분으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되었고 2차분은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성능개량 사업이 마무리 되어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3. 물개급 상륙정

지난 2014년 해군에서 퇴역 한 물개급 군수지원정 1차선분인 물개-78호정을 2015년 6월 필리핀 해군에 무상공여 방식으로 양해각서에 대한 체결이 이루어집니다. 상륙정의 운송비용은 필리핀 1,600만 페소(우리나라 돈으로 약 3억 7400만원 정도)를 부담했으며 필리핀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양도받은 물개-78호정을 군사작전 및 필리핀 자국에서 자연재해로 피해 받은 자국민들을 인도주의 지원 및 재난 구호 임무 작전에 투입합니다.

또한 대형 상륙함이 갈 수 없는 지역에 위치한 부대에 대해 물자공급도 원활하게 보급할 수 있어 크게 만족하는 눈치였습니다. 물개-78은 마산항에서 대형 화물선에 선적되어 필리핀 주요 해군기지의 하나인 카비테 해군 기지에 하역되었습니다. 필리핀 해군은 현지 조선소에서 상륙정을 재취역 시키기 위해 수리 작업이 예정이었지만 이후 취역을 포기한 상태로 폐선처리 된 것으로 보입니다.



4. 포항급 초계함

2014년 12월 30일 퇴역한 PCC 2차선 포항급 초계함 4번함인 목포함을 2015년 5월 30일 한국, 필리핀 해군 주요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해당 초계함 인수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합니다. 해군은 목포함의 함 자체는 무상공여로 체결되었지만 창정비에 들어가는 비용은 필리핀에서 부담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필리핀도 이에 동의합니다. 

목포함을 이렇게 인수 할 예정이었으나 노후화가 심각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필리핀은 인수자체를 거부하였고 2017년 4월 필리핀 정부에서 대잠전에 특화된 충주함을 획득하는 방안으로 변경하면서 국방부측에 서한을 보냅니다. 충주함은 PCC 3차선으로서 1986년 9월 말에 취역해 2016년 12월 27일에 퇴역한 전투함입니다. 

목포함 보다 해군 정비창에서 선체 및 골격 구조 강화를 위해 건선거에 접안되어 몇 개월간의 수리를 진행하게 되고 함 내부에서 거주하게 될 승조원들의 편의시설 그리고 여러 부분에서 개선 될 예정입니다. 충주함에서 기존으로 사용되던 전자전체계 일부 주요 장비들은 제거되고 함의 주요엔진과 무장도 변경 할 예정입니다.

이후 점검을 마치고 시운전 평가후 2017년 하반기에 필리핀 해군에 양도되어 실전배치 될 예정이었으나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 아직 확정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충주함이 필리핀에 배치된다면 필리핀으로서는 최초의 대잠전이 가능한 함정을 보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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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기 해군병 정모수여·수료식

해군교육사령부
2018. 05. 20   15:2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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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병648기 수료생들이 지난 18일 해군교육사령부 호국관에서 해군병 정모 수여 및 수료식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박미현 하사




6주간의 강도 높은 양성교육훈련을 이겨낸 648기 해군병 1210명이 해군 수병으로 다시 태어났다.

해군교육사령부는 지난 18일 교육사 호국관에서 648기 해군병 정모 수여 및 수료식을 거행했다. 교육사는 ‘항재전장의 정신으로 무장된 불굴의 해전사 양성’이라는 교육목표 아래 기초체력단련, 전투수영 및 해상종합생존훈련, 야전교육훈련, IBS훈련, 시루봉 행군 등을 진행하며 강한 해군 수병을 양성해 왔다.

수료식에서는 노현우(잠수) 이병이 영예의 교육사령관상을, 배유준(갑판) 이병이 1군사교육단장상을 받았다.

이범림(중장) 교육사령관은 훈시에서 “여러분은 극한의 훈련에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이겨내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층 더 성숙한 군인으로 거듭났다”며 “훈련 과정에서 배운 인내심과 전우애를 바탕으로 동·서·남해에서 조국의 바다를 굳건히 지키는 강한 수병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수료한 해군병들은 제2군사교육단 예하 학교부대에서 전문 보수교육을 수료한 뒤 실무 부대에 배치돼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안승회 기자 < seu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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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4천t급 대형수송함 ‘마라도함’ 진수식

시운전 과정 거쳐 2020년 해군 인도
2018. 05. 14   11:1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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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의 두 번째 대형 수송함 ‘마라도함’(배수량 1만 4000t급)이 14일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진수식을 개최한다.방사청 제공



송영무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해군의 두번째 대형수송함인 ‘마라도함’(LPH-6112) 진수식이 14일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열린다.

진수식에는 송 장관과 엄현성 해군참모총장, 전진구 해병대사령관, 강은호 방사청 사업관리본부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등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진수식은 국민의례, 사업 경과보고, 함명 선포, 기념사, 유공자 포상, 축사, 진수줄 절단, 안전항해 기원의식 순으로 진행된다.

송 장관의 부인 구자정 여사가 새로 건조한 함정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로 태어난 아기의 탯줄을 끊듯 손도끼로 마라도함의 진수줄을 자를 예정이다.

한편 제2의 독도함인 마라도함은 배수량 1만4천통으로 길이 199m, 폭 31m 크기로 상륙군 1천여명과 헬기, 전차, 공기부양정 등을 탑재할 수 있다.

또 국산 무기체계인 탐색레이더와 대함유도탄 방어체계를 비롯해 프로펠러와 승강기 등의 장비도 국산화했다.

마라도함은 시운전 과정을 거쳐 2020년 말께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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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준비’로 완성된 100% 전투력

해군1함대 1000톤급 안동함
2018. 05. 08   17:03 입력 | 2018. 05. 08   18:01 수정

인명구조·장비 복구 실전적 훈련

집중 팀워크 훈련, 전비태세 향상

“동해 수호신으로 부끄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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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1함대 안동함 승조원들이 8일 전비태세 향상 훈련의 일환으로 함정 생존성 보장을 위한 화재 진압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강병천 중사

해군1함대 안동함 승조원들이 8일 전비태세 향상 훈련의 일환으로 함정 생존성 보장을 위한 화재 진압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강병천 중사


 

해군1함대 1000톤급 초계함(PCC) 안동함이 실전적 훈련으로 임무 수행 능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안동함은 8일 훈련전대 주관으로 전비태세 향상 훈련에 돌입했다. 오는 11일까지 전개하는 훈련은 최고도의 전투태세를 확립하고, 언제·어떠한 상황에서도 부여된 임무를 100% 완수할 수 있는 전투력을 갖추기 위해 추진됐다.

안동함 승조원들은 훈련에 앞서 함장을 중심으로 집중 팀워크 훈련을 진행해 작전 수행 능력을 끌어올렸다. 이어진 훈련에서 훈련전대 관찰관들은 함정 생존성을 보장하고, 승조원들이 위기관리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복합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위기 상황을 부여했다. 안동함 승조원들은 예측하지 못한 긴급 상황에서 인명 구조 훈련, 기관·장비 복구 훈련, 소화·방수 훈련, 화생방 훈련, 비상 이함 훈련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진희(중령) 안동함장은 “함대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훈련 시스템을 기반으로 전투력 향상에 필요한 분야를 중점 숙달하고 있다”며 “훈련을 성공적으로 종료해 동해 수호신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전비태세를 확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대는 예하 함정들이 전비태세 향상에 필요한 부분을 분석·판단하고, 부족한 분야를 집중 훈련할 수 있는 제반 여건 보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훈련전대는 함정별 전투체계·무장, 전투 수행 능력 특성에 따라 맞춤형 교육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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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상륙함 ‘일출봉함’ 해군 인도

해상·공중 동시에 전력 투사 ‘초수평선 상륙작전’ 수행능력 갖춰
2018. 04. 02   16:06 입력 | 2018. 04. 02   17: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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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해군에 인도된 차기상륙함(LST-Ⅱ) 3번함 일출봉함. 방사청 제공




해상과 공중으로 동시에 전력을 투사하는 ‘초수평선 상륙작전’ 수행능력을 갖춘 차기상륙함(LST-Ⅱ)이 해군에 인도됐다. 방위사업청은 2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차기상륙함 3번함 일출봉함을 해군에 인도했다”고 밝혔다.

일출봉함은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고준봉급보다 기동속력과 탑재능력, 장거리 수송지원 능력이 더 뛰어나다. 4500톤급 규모인 일출봉함은 최고속력 23노트로 항해할 수 있다. 130여 명의 승조원이 탑승하는 일출봉함은 함내에 국산 전투체계와 지휘통제체계를 갖춘 상륙작전지휘소를 갖추고 있어 상륙전 지휘관의 효과적인 작전지휘가 가능하다. 함내에는 상륙군 300여 명, 상륙주정 3척, 전차 2대, 상륙돌격장갑차 8대를 동시에 탑재할 수 있다. 또 함미 갑판에서 상륙기동헬기 2대가 이착륙할 수 있어 원거리 상륙지점에 대한 공중 강습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일출봉함은 앞으로 4개월 동안 해군의 승조원 숙달훈련 등의 과정을 거쳐 올해 하반기 임무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제동(해군대령) 방사청 상륙함사업팀장은 “일출봉함이 전력화되면 강화된 탑재능력을 바탕으로 이미 전력화된 차기상륙함들과 함께 주력 상륙함으로 활약할 것”이라며 “평시에는 국지도발 신속 대응, 도서기지 물자수송, 재난구조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평화유지활동(PKO)을 통한 국위선양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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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군병기사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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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원수도 출입 못하는 항모 최고 기밀 장소




원자력 항공모함 항행용의 연료는 필요 없기 때문에 남는 공간을 함재기용 연료와 호위함용 연료의 저장고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원자력 기관의 장점은 대량의 증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발함에 사용하는 증기 캐터펄트에 안정된 양의 증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과 발전량이 많아서 함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이 첨단 기술이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원자력 엔진은 통상 동력기관과 달리 유지하는데 엄격한 유지 및 관리가 필요합니다. 작업자는 특별한 기술 자격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작은 사고로도 커다란 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작전 중에 여기서 사고가 일어나면 더이상 항모는 항모 본연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가 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원자력 엔진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비상시를 상정한 훈련을 하는 등 통상 동력 함정과는 다른 운용법과 훈련이 필요하며 기밀성이 높아 타 군의 국가 원수는 물론이고 해당 항공모함을 총괄하는 함장도 원자력 관련 시설에는 출입증을 발급 받아야 출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반 승무원들은 출입을 절대 금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원자로를 담당하는 승무원은 엄격한 기밀 유지 의무를 지닙니다. 이는 미국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도 적용되는 사항인데, 프랑스의 원자력 항공모함도 자국제 K-15 원자로를 2대 운용합니다. 이 항공모함도 원자로나 원자로 작업 상황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원자력 엔진은 나라의 중요한 지적 재산이기 때문에 기밀을 철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원자로는 웨스팅하우스로 대형 원자로 2대를 설치합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핵연료 우라늄 235의 농축도는 2~4%이지만 원자력 항공모함의 원자로는 소형이기 때문에 20% 이상으로 농축한 연료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농축도가 커지면 수명도 늘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핵연료는 약 20년마다 한 번씩 교환하는데, 이때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미국 버지니아 주 뉴포트 뉴스 조선소로 가서 드라이 독에서 선체를 절단하고 핵 연료를 교환합니다. 섬세한 작업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작업은 꼭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역시 핵연료를 교환하는 작업도 기밀 사항이라 공개되지 않고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도 일부 사람들에게만 작업 권한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http://militarycostume.tistory.com/839?category=929566 [이색적인 블로그]





향기로운세상 군대 이야기 방

 

 

 


출처 : 향기로운 세상
글쓴이 : 수정고드름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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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해군의 드레드노트 노급함(弩級艦)

드레드노트는 20세기에 널리 제작된 전함의 형태로, 노급함(弩級艦)이라고도 한다.

1906년에 건조된 혁명적인 HMS 드레드노트를 따라 설계된 '드레드노트' 전함들은 거포만을 실어 이전의 전함과는 구별되었다.

HMS 드레드노트가 진수된 수 년 내에, 각국 해군은 그 설계에 영향을 받은 배를 제작하였다. 영국의 기술 우위와 재키 피셔 제독의 의지로 탄생한 '드레드노트' 전함들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거포만 장착한 배는 수 년간 사용되고 있었고, 일본은 1904년에 거포만 장착된 전함을 제작하였다. 드레드노트의 등장은 새로운 군비 경쟁을 촉발시켰고, 특히, 영국과 독일간에 그러했다. 새로운 종류의 전함은 세계에 퍼져, 국력의 결정적인 상징이 되었다.

급속도의 기술적인 발전은 드레드노트 시대를 통해 계속되었으며, 무장, 장갑, 탄약이 단계적으로 변하였는데, 이는 드레드노트의 취역 이후 10년 후에는 더욱 강력한 배들이 건조되고 있음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더욱 강력한 배는 수퍼 드레드노트(초노급함)로 알려졌다.

드레드노트 함대간의 유일한 전투는 유틀란트 해전으로, 영국의 계속되는 전략적 점유를 반영한 결말이 나지 않은 충돌이었다. 대부분의 드레드노트 전함은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에 폐기되거나 침몰되었고, 가장 발전된 수퍼 드레드노트 전함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 활동하였다.

"드레드노트"는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이후의 모든 전함은 드레드노트의 일부 특성을 갖고 있다.

 

 

영국 전함 HMS 드레드노트, 1906년

배경

드레드노트의 구별되는 특징인 거포로만 탑재된 설계는 각국의 해군에서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1904년 일본제국 해군은 12문의 12인치 대포가 장착된 '사츠마'의 건조를 결정하였으며, 1905년 5월에 건조되었다. 영국 해군은 1905년 HMS '드레드노트'의 설계를 시작하였고, 1905년 10월에 건조되었다. 미합중국 해군은 1905년 3월, 8문의 12인치 대포가 장착된 USS '미시건'호의 건조를 결정하였으며, 1906년 5월에 건조되었다. 어쨌거나, 이러한 배들의 개발에 대한 정확한 배경은 해군 역사가들 간에 이견이 있다.

 

전 거포 탑재(All-Big-Gun) 설계

1890년대의 전함 설계는 전노급 전함(Pre-Dreadnought)으로 알려진 형태로 고정되었다.

대부분의 전노급 전함들은 주로 전형적인 4문의 대포 - 전형적으로 12인치 구경의 대포가 1쌍으로 된 포탑 - 가 전후에 탑재되었다. 이들은 2차 무장으로 4.7 ~ 7.5인치(12 ~ 19cm)의 6문 ~ 18문의 대포와 추가로 일정 범위의 소화기를 보유했다. 전노급 전함들은 3단팽창식의 증기 기관으로 동력이 공급되었고, 18 ~ 19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다.

전노급 전함은 흘수선에, 장갑 갑판, 석탄 창고에 두꺼운 장갑띠가 부력과 무기고를 보호하도록 조합되어 있었다.

1902년 이후로, 다수의 거포를 탑재하는 설계가 미국,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제안, 연구되었다. 영국 해군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있었으며, '킹 에드워드 7세'급 전함이 1903년 이후로 진수되었는데, 이들은 4문의 9.2인치(234mm)포, 4문의 12인치포와 함께 10문의 6인치포를 탑재하고 있었다. 1904년 ~ 1905년, '넬슨 급(Lord Nelson class)' 전함에서는, 길이와 선폭의 제한으로 배 중앙부의 9.2인치 포탑이 2문에서 1문으로 변경되어, 4문의 12인치포, 10문의 9.2인치포가 장착되었고, 6인치포는 설치할 수 없게 되어 설계를 담당한 J.H.나베스(Narbeth)는 대안으로 12문의 12인치포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장사정포

전노급 전함(Pre-dreadnought)은 선박 파괴용의 거포와 적선의 무장이 약한 부분을 파괴하기 위한 보조 무장을 갖추고 있었으며, 1890년대의 해전에서 유효하게 사용되었다.

1900년대 초, 영국과 미국의 제독은 장래의 전함은 1890년보다는 먼 거리에서 전투를 벌일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1900년, 영국 해군의 지중해 함대를 지휘하던 존 피셔는 6인치포로 6천 야드(약 5,500미터)에서 포술을 실습하였다.

단거리에서 경포(輕砲)는 명중률이 좋았고, 발사 속도도 매우 빨랐다. 하지만 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경포의 명중률은 대구경포보다 급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무장으로 여러 구경의 대포가 섞인 배를 건조하기도 하였다.

 

첫 드레드노트 전함의 건조

미국의 첫 드레드노트함  '사우스 캐롤라이나'호 

1905년 1월, 피셔(Fisher)에 의해 영국 해군 설계 위원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범위내의 설계, 특히 포탑의 배열에 관한 고찰을 거친 후, 위원회는 10문의 12인치포를 주포로 하고 보조 화력으로 27문의 3인치(76 mm)를 탑재한 설계로 결정하였다. 영국 해군은 혁신적인 화력에 만족하지 않고, 대형 전함에는 사용된 적이 없었던 증기 터빈 추진을 도입하였다.

터빈은 21노트(시속 39km)를 보장하였는데, 전형적인 전노급 전함과 다른 주력함보다 2 ~ 3노트(시속 4 ~ 6km) 앞서게 되었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강점이었다.

건조는 주목할 만한 속도로 진행되었다. 용골이 1905년 10월 2일 놓였으며, 1906년 2월 10일 진수, 1906년 10월 3일 완성되었다. 새로운 함선은 '드레드노트'라 명명되었다.

미국의 첫 드레드노트함은 8문의 12인치포가 설치된 '사우스 캐롤라이나급 전함'이다. 1905년에 계획되었으나 천천히 진행되어 1906년 12월 2척의 배가 건조되었다.

 

설계

무장

 

첨부파일 Animated_gun_turret.gif

드레드노트를 정의하는 특징은 '전 거포 탑재'(all-big-gun) 무장이다.

다수의 거포를 탑재하며, 주포의 숫자와 크기는 변경될 수 있다.

HMS 드레드노트도 10문의 12인치포를 탑재하였다.

12인치포는 전노급 전함의 표준으로, 제1세대 드레드노트 전함에도 이어졌다.

다만, 독일 해군은 11.1인치포를 당분간 사용하기도 하였다. 주포의 위력은 시간에 따라 증대되었다.

주포의 위치는 전함에 따라 달랐다.

'드레드노트'와 뒤이은 영국의 전함들은 5기의 포탑을 장착하였는데, 중앙으로는 정면에 1기, 후미에 2기, 상부구조물의 양옆(wing)에 2기가 놓였다. 이러한 배치는 4기의 포탑(8문의 대포)으로 현측 사격을 가능하게 하였다.

양옆에 포탑을 배치하면 앞면과 뒷면의 포탑처럼 각도상으로 사격에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중량과 공간을 낭비한다는 단점이 있다. 양쪽이 중복된다는 것이다.

최초의 독일 드레드노트함은 1기의 포탑이 앞과 뒤, 2기의 포탑이 상부구조물의 양편에 각각 놓인 '6각형' 배치를 채택하였다.

이는 더 많은 수의 대포가 탑재될 수 있음을 의미했으며, 동시에 양쪽으로는 4기의 포탑만이 사격이 가능함을 의미했다.

1900년대 초기의 해군의 전술은 전선(戰線)을 이용하였으며, 측면에 대한 비중은 전투함의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였다.

최소의 대포로 최대의 측면 화력을 얻기 위한 일련의 노력으로 다양한 형태로 대포가 배치된 전함들이 제작되었다.

무장의 배치와 편리성으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포탑에 3문 또는 4문의 대포가 장착된 킹 조지 5세콜로라도였다.

대포의 구경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의 초노급함에서 증가되었다.

영국 해군은, 1910년 건조된 '오리온'급 전함에 10문의 13.5인치포를 중앙선에 배치하였고, 1913년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에는 8문의 15인치포를 사용하였다.

모든 나라의 해군에서 대포의 구경은 증가되었고, 대신 포의 숫자는 대체로 감소되었다. 적은 수의 대포를 필요로 했다는 것은, 이들의 배치에 대한 중요성이 덜해졌음을 의미하며, 대포가 중앙에 놓이는 것이 전체적인 표준이 되었다.

세계대전 말에는 1917년 일본 해군 '나가토'의 16인치포, 영국 해군 'N2'급 전함의 18인치포가 등장한다. 이들 대포의 구경은 대형 전함의 건조를 금지한 워싱턴 협정, 제2차 런던 해군협정에 의해 제한되었다.

 

장갑

드레드노트는 가장 중요한 영역에 두꺼운 철장갑을 둘러 보호하였다. 전함같은 장갑한 군함은 총력전에서만 유용했는데, 전함은 수 차례의 예상가능한 가장 공격을 버티고 반격이 가능해야 했다. 보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곳은 엔진, 주포와 탄약고였다. 탄약고에는 한 발만 명중하더라도 배 전체가 폭발할 수 있고, 엔진이 손상을 입으면 전함이 움직일 수 없어 전술적으로 쓸모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드레드노트의 설계에 있어서의 문제점은 배의 속도를 늦추지 않도록 가급적 가벼운 장갑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어를 하는 것이었다.

드레드노트는 기존 전함의 4~5천 미터에 비해 원거리에서의 전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으나, 초기 드레드노트급들이 상정한 9천 미터 이하의 거리에서 대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매우 평탄한 탄도를 가진다. 이 때문에, 초기 드레드노트의 장갑은 흘수선(吃水線)을 둘러싼 두터운 띠에 집중되었다. 드레드노트함의 경우, 그 두께는 11인치에 달하였다. 띠 뒷편으로는 기관의 공간을 보호하기 위해 배의 석탄창고가 놓여 있었다. 상부구조물에 명중하여 폭발하는 포탄의 파편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그보다 얇은 장갑판이 배의 갑판에 사용되었다. 드레드노트는 두 갑판의 장갑은 2.5인치였다.

초기 드레드노트의 방호 설계의 최후의 요소는 흘수선 아래의 배를 여러 개의 방수 구획으로 분할하는 것이었다. 선체가 포격, 기뢰, 어뢰, 또는 충돌로 구멍이 났을 때, 이론적으로는 한 구역만 물이 차고 배는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러한 예방조치가 효과를 얻기 위해서, 여러 드레드노트함들은 수면하의 구획들 사이에 해치(hatch)가 없었다. 그렇더라도, 침수가 해면하의 구획으로 퍼진 예는 몇 건 있었다.

드레드노트함이 발달하는 동안, 장거리 사격에서 낙하하는 포탄, 항공기로부터 투하되는 폭탄, 어뢰와 기뢰 등의 증대하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장갑의 설계는 변화되었다.

장거리 포격과 폭탄 투하의 위협은 장갑 갑판이 더욱 두꺼워져야 함을 의미했으며, 갑판의 방호는 장갑띠보다도 빠르게 증가하였다. 예를 들면, 일본의 전함 야마토는 장갑띠의 두께가 드레드노트함의 11인치에 비해 16.5인치였는데, 갑판은 드레드노트함의 2인치에 비해 9인치였다. 장갑띠는 낮은 각도에서의 포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안쪽으로 경사지게 되어 있었다..

드레드노트 방어의 또 다른 발전은 어뢰 벌지와 어뢰 벨트였다. 이들은 기뢰나 어뢰에 의한 해수면 아래의 손상을 막기 위한 시도였다.

 

추진력

드레드노트함은 2개 또는 4개의 스크루 추진기에 의해 추진된다.

HMS 드레드노트와 영국의 드레드노트 함들은 증기 터빈으로 구동되는 스크루축이 있었다.

어쨌든, 터빈은 매우 실험적인 기술이었기에, 다른 나라에서 제조된 1세대 드레드노트들은 전노급 전함의 표준이었던 더 느린 3단 팽창식의 증기 엔진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수 년 내에 터빈은 새로운 전함 제조의 표준이 되었다.

터빈은 이전의 증기 엔진보다 힘이 좋았고, 신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터빈은 저속이나 순항속도에서 연료 효율이 좋지 않았다.

그 해결을 위해, 일부에서는 증기 터빈이 전력을 생산하여 프로펠러를 구동하는 방식의 터보-전기 구동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고속에서 높은 효율을 얻기 위해 기계적인 방법을 이용한 전동(기어) 터빈을 사용하기도 했다.

초기 드레드노트는 터빈에 증기를 공급하는 보일러를 데우기 위해 석탄을 사용하였다.

석탄은 초기의 증기 전함 때부터 사용해 왔으나, 여러 단점이 있었다. 배의 석탄 창고에 석탄을 채워 넣고 보일러에 공급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고, 보일러는 재로 막혔다. 석탄은 두터운 검은 연기를 만들어 내어 함대의 위치를 알렸다. 게다가, 석탄은 부피를 많이 차지하고 열효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해군은 지구 곳곳의 전략적인 지점에 석탄 공급 기지를 두어야 했다. 이에 대한 통제는 해상 전투를 불러일으켰다. 이를 대체한 석유는 조선 기사와 해군 장교 모두에게 바다에서의 많은 잇점을 제공하였다.

석유는 연기가 적었고, 배가 공격당할 가능성을 줄였다. 석유는 보일러에 자동적으로 공급될 수 있었고, 연료 효율이 높았으며, 석탄보다 적은 공간을 차지했다. 같은 부피에서는 더 많은 연료를 실을 수 있었고, 이는 순항거리를 눈에 띄게 늘어나게 했다. 유일한 문제는,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석유를 수입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석유의 장점은 단점과는 비교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전함은 석유를 사용하게 되었다.

 

건조

1897년 영국 해군은 62대의 전함이 취역 중이었거나 건조 중이었고, 프랑스에 26대, 독일에 50대 정도 앞서있었다.

1906년 11월, '드레드노트'에는 어느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다. 새로운 함급은 심각한 전략적 경제적 중요성과 함께 새로운 군비경쟁을 촉발시켰다. 주요 해상 세력들은 스스로의 드레드노트를 제작하여 영국을 따라잡으려 하였다. 현대화된 전함을 소유하는 것은 단지 해군력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며, 오늘날의 핵무기와 같이 국가의 세계에서의 위상을 나타내었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미국은 모두 드레드노트를 계획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음 등급의 터키,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도 영국과 미국의 작업장에 드레드노트의 제작을 위임하였다.

 

HMS 드레드노트의 상세도

 

출처 ; 위키백과

출처 : 해군 병기사 모임
글쓴이 : 송상교(하128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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