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를 거처간 남정네
황진이를 거처간 남정네 첫 번째 옆집 總角(총각)입니다. 황진이를 짝사랑하여 상사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두 번째 남자는 개성 유수 송공입니다. 대부인 연회석에 황진이를 초대하였는데 그때 여러 사람들이 황진이의 빼어난 모습을 보고 반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 남자는 선전관 이사종입니다. 사신으로 송도를 지나가다 천사원 냇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아주 출중하였다고 합니다.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 밤을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이사종의 집에 3년 동안 먹고 살 돈을 가져가서 살고 3년 후 이사종을 자신의 집으로 대려와 살았으며 6년이 지난 후에는 깨끗이 헤어졌다고 합니다. 네 번째 남자는 양곡 소세양입니다. 그 남자는 "남자가 여색에 혹함은 남자가아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내가 황진이와 30일을 지내고 깨끗이 끝내겠다. 라고 큰소리 쳤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 남자는 왕족 벽계수입니다. 벽계수는 황진이가 명사가 아니면 만나주질 않아 고민하다가 친구인 이달에게 물어 꾀를 내어 황진이 집근처 정자에서 노래 한곡을 크게 부르고 황진이가 따라와서 돌아보지 말고 앞만보고 갔다고 합니다. 여섯 번째 남자는 이생입니다. 황진이가 말년에 금강산 유랑을 하고 싶어 하여 동행을 청해서 함께 금강산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황진이가 몸을 팔아 음식을 얻었다고 합니다. 일곱 번째 남자는 지족선사입니다. 그는 면벽수련 30년으로 유명했는데요, 30년을 깨고 파계승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는 황진이는 서경덕의 학문이 높음을 듣고 서경덕에게 가서 유혹하였으나 넘어오질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고 함께 오랜 시절을 보냈으나 서경덕은 의연하였다고 합니다. 오랜 시절을 지냈으나 끝까지 나에게 이르지 않았으니 진정 성인이다."라고 말하고 서경덕에게 제자로 받아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황진이는 남성위주의 시대를 외려 휘저었고 섹스는 언제나 본인이 선택하고 선도했으나 헤프지 않았으며 시화에 능하고 풍류를 알아 서양 및 중국의 미녀가 단순히 미모로 권력자 에게 몸을 맡기고 이름을 날린 것과는 차원이 다른 女人이었습니다.
시인이자 시대를 풍미한 명기(名妓)이며,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삼절로 불리었다.
유명한 지족선사(萬錫禪師), 대학자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종실(宗室) 벽계수(碧溪水), 판서(判書) 소세양(蘇世讓), 선전관(宣傳官) 이사종(李士宗), 재상의 아들 이생(李生) 등이 있으며 남사당패와도 오래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짐승과 벌레가 먹게 하여 타의 경계로 삼도록 하세요" 라는 유언을 남기고 명을 달리했다. |
'건강.취미.운동.기타 > 아름다운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을때 (0) | 2019.12.17 |
---|---|
바람은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0) | 2019.12.02 |
추억의 우물 (0) | 2019.11.19 |
모든 길은 처음부터 닦인 길이 아닙니다 (0) | 2019.11.12 |
꿈이 있는 한 나이는 없다 (0) | 2019.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