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 천년의 지혜 '직지사'

 

작성자녹림처사|작성시간23.05.27|조회수15목록댓글 0

♣ 절에가면 절을 하지요 ♣

 

오늘은 불기2567년(2023)년 석가탄신일 이지요

금년은 대체공휴일이 적용되어 3일 연휴가 되었어요

그런데 사찰을 왜 절이라 부를까요?

절은 스님을 비롯한 모든 불자들이 진리를 깨닫고자 수행하는 곳이며,

또한 수행자들이 많은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여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절을 한자로는 가람(伽藍)이라 하며, 사(寺)라고도 부르고 있어요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찰에가면 부처님께 절을 올리지요

그래서 사찰에가면 절을 올린다해서 "절"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이유는

경배의 대상으로 그 분에게 존경한다는 의미를 표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부처님께 절을 한다해서

중구난방(衆口難防)식으로 아무렇게나 하는것이 아니고

절을 하는 횟수와 그 나름의 뜻이 있다 하지요

 

우선 3배를 시작으로 53배가 있으며 다음으로는 108배가 있고

그 다음은 1000배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3000배가 있다 하지요

 

3배를 드리는 것은

삼보(三寶 : 불,법,승)에 귀의하여 탐심·진심·치심의 삼독심(三毒心)을 끊고

삼학(三學 :戒 定·慧)을 닦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고

53배는 참회 53불(佛)에 대한 경배이며

1천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겁(賢劫)의 1천 부처님께 1배씩

절을 올리는 것이라 하지요

그리고 3천배는 과거·현재·미래의 3대겁에

3천 부처님께 1배씩의 절을 올리는 예법이지요

 

그렇다면 108배는 무엇일까요?

절에 가면 많이들 108배를 하는데 왜 108배를 하는지 알아 보기로해요

우리 인간은 살아감에 있어서 많은 번뇌를 느끼고 있는데

이 번뇌의 수가 108가지라 하지요

그래서 중생의 근본번뇌을 108번뇌라 한다 하는군요

 

이 108번뇌를 자세히 설명하면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이 서로 만날 때

생겨나는 것인데 다시말해

눈[眼]· 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의 육근(六根)이

색깔[色]·소리[聲]·향기[香]·맛[味]·감촉[觸]·법[法]의 6진(六塵)을 만났을때

좋다[好]·나쁘다[惡]·좋지도 싫지도 않다[平等]는 세가지 인식작용을 일으킨다 하지요

 

그리고 다시 좋은것은 즐겁게 받아들이고[樂受]

나쁜 것은 괴롭게 받아들이며[苦受]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것에 대하여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게 방치하는[捨受] 것이지요

그러니까 6근과 6진이 하나하나가 부딪칠때 좋고[好]·나쁘고[惡]·평등하고[平等]

·괴롭고[苦]·즐겁고[樂]버리는[捨] 여섯 가지 감각이 나타나기 때문에

6x6=36 즉 서른여섯가지의 번뇌가 생겨나게 된다 하지요

 

이 36번뇌를 중생은 과거에도 했었고 현재에도 하고 있고 미래에도 할 것이기 때문에

6x6=36에 과거, 현재, 미래의 3을 곱하면 108번뇌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즉 6 x 6 x 3 = 108개가 되는 것이지요

 

108번뇌 !!

이것은 우리의 흩어진 마음을 뜻한다 하지요

하나로 모아진 마음이 아니라 바깥으로 흩어진 마음

근원을 돌아보는 마의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흘러 내려가는 유전(流轉)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중생들은 108번뇌와 깊이 관련이 있다 하네요

 

108번뇌는 108번의 절을 하는 동안 스스로 순화되어 삼매의 힘으로 변화되고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심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환멸(還滅)의

시간을 만들수 있다 했어요

그 마음이 번뇌를 따라 밖으로 밖으로 뿔뿔이 흩어질때는 무능에 빠지고

끝없는 생사의 유전 속으로 전락하고 말지만

번뇌 속으로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을때 삼매는 다시 되살아나고

원래의 무한 능력이 우리에게서 한번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옛말에

"108배로써 108번뇌를 끊는다"라고 했어요

그러나 번뇌는 끊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하나로 모을때 번뇌는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고

108배의 절은 번뇌를 끊는 의식이 아니라

깊은 삼매(三昧)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라 하지요

 

그리고 1000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겁(賢劫)의 1천 부처님께

1배씩 절을 올리는 것이며

3000배는 과거, 현재, 미래의 3대겁에 출현하는 3천 부처님께

1배씩의 절을 올리는 예법이라 하네요

 

"절은 곧 하심(下心)이다" 라고 했지요

또한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라 했어요

그릇은 기울어져야 속에 찬것이 비워지는 것처럼

몸을 낮추어 겸손한 자세를 갖추면

야만심, 자존심, 이기심, 선입관념, 고정관념을 쏟아낼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불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참회의 구체적 행동이기도 하지요

 

연꽃이 더러운 진흙 속에서 아름답게 꽃을 피우듯

무지와 어둠에 쌓인 중생의 마음을 닦아 연꽃처럼 부처가 되는것

이것이 바로 깨닮음이요 불심(佛心)인 것이지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연꽃 모양의 '연등'을 만들어 사용한다 하지요

 

오늘이 부처님 오신날 이지요

이번 부처님 오신날에는

부디 불심(佛心)에서 이르는 자비의신심(信心)을 이루시고

부처님의 공덕(功德)을 많이 쌓으시기 바래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一松) *-

 

▲ 김천 황악산자락에 위치한 직지사(直指寺일주문

손가락 하나로 설계하여 지었다는 직지사.....

 

▲ 직지사 비로전 천불상 ...

▲ 직지사 명부전

명부전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부모님 영정과 위패도 모셔져 있어요

불교신자라 살아생전 자주 들리셨다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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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대사 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재 제49호)

 

 

회암사지 무학대사 부도(보물 제388호)

 

 

나옹대사의 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재 제50호)

 

 

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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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시 무봉산 봉림사

 

'비봉산 봉림사 飛鳳山 鳳林寺

 

경기도 화성시 남양면 무봉산(舞鳳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재위 647∼654) 고구려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기 위해 창건한 호국사찰이다.

 

당시 궁궐에서 기르던 새가 절 주위 숲에 날아와 춤을 추었으므로 봉림사라 하고,

산 이름도 무봉산으로 바꿨다고 한다.

 

1621년(광해군 13)에 법당과 종각·요사를 중수하였으며,

1708년(숙종 34)에도 중수한 바 있다.

 

1978년에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腹藏)에서 사리가 발굴되었고,

1979년 이 사리를 봉안한 탑을 세우면서 봉향각과 종각도 다시 지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봉향각·망양루·범종각·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탱화 여러 점이 전한다.

 

1978년 대웅전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 금색을 입힐 때 복장에서

불상의 유래를 전하는 기록과 각종 불경이 발견되었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불상은 1362년(고려 공민왕 11)에 만들어졌다고 하며,

배 부분에서 의상을 U자형으로 처리하고 옷의 주름을 3줄로 표현한 점 등에서

고려 후기의 불상 양식과 일치한다.

 

눈을 수정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1984년 4월 10일 보물 제980호로 지정되었다.

복장에서 나온 《감지은자화엄경(紺紙銀字華嚴經)》 등 10여 종의 유물은 ‘

좌상복장전적’이라는 명칭으로 1991년 9월 30일 보물 제1095호로 지정되었다.

 

이 중 《묘법연화경》 5종 13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용주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한편 후불탱화와 지장탱화 및 신중탱화는 1884년(고종 21)에 만든 것이고,

칠성탱화는 1888년(고종 25)에 만든 것이다.

 

 

 

주차장에서 본 봉림사 전경

 

1층은 '사천왕각'이라 되어 있고 2층은 '범종루'라고 되어 있다

봉림사 초입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건물로,

현재 봉림사의 범종루 겸 사천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은 이층 누각식 구조로 아래 화강석을 마감재로 세워진 사천왕문이 있고 그 위로 범종루가 있다.
천왕문 좌우로는 4구의 역사상과 사천왕상이 봉안되어 있어

아담한 가람구조 상 기능적인 건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범종루는 계자각 난간을 두른 누각형태로 내부에 풍혈이 기둥 사이에 조각되어 있으며,

대형 범종을 걸수 있게끔
사각형의 이중 지지대가 만들어져 있다.


이곳 범종루는 대웅전 정면에 자리하며,

비봉산을 남산으로 서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조망대로 유명하다.

 

 

사천왕상

 

올라와서 본 범종루. 아직 범종을 비롯한 사물이 없다.

 

극락전

 

극락전은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이다.
화강석을 가구식으로 짠 높은 축대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로 원형기둥을 두어 다포를 얹은 모습으로,

외면은 단청되어 있으며 포벽에 6구씩 화불이 그려져 있다.

 

건물 외부는 전면에 2ㆍ4분합의 교살창호를 두고 삼면에 심우도를 그려

아담함 건물의 장엄을 보여주고 있으며,
어칸에 편액과 주련 4기가 걸려 있다.


건물 내부는 우물마루 위로 ㄷ자형의 불탁을 두고 그 위로 닫집을 구성하여

전각의 이름처럼 극락정토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중앙에 보물 제 980호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좌우 석조관음ㆍ지장보살이 협시로 봉안되어 있다.

 

이외 불화로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뒤에 봉안된 1883년의 아미타후불탱과 지장시왕탱이 있으며,
근래 조성된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특히 지장시왕탱은 높이 162㎝, 폭 175.5㎝로 1883년에

경기도에서 활약한 금어 대허체훈(大虛體訓),수일(守一), 태삼(台三)이 그린 것이다.

 

화면의 구성은 중앙에 지장보살을 두고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리고 시왕상, 판관, 사자 등을 배치한 것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게 군중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또 채색에 있어서는 진한 홍색과 눈에 두드러지는 청색, 녹색이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어, 19세기 후반 경기도 불화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불구로는 높이 70㎝, 구경 40㎝의 범종과 합성수지로 조성된 원불좌상들이

영단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보물 제 980 호

 

봉향각

 

봉림사의 요사는 중정을 형성하는 봉향각을 비롯하여 그 뒤편 콘크리트 요사와 창고가 있다.
봉향각은 설법전 맞은편에 세워진 정면 6칸, 측면 3칸의 익공계 맞배지붕건물로,

1992년에 신축된 것이다.


건물은 2단으로 축조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두고

그 위로 원형기둥을 세워 공포 없이 서까래를 받친 모습으로,
요사채의 쓰임 답게 전면 1칸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봉림사의 사무를 보는 종무소 겸 주지실로 이용되고 있으며,

뒤편 요사는 공양간 겸 주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설법전

 

봉림사 중창 당시인 1708년에 세워진 ㄴ자형 건물을 헐고 신축한 것으로

현재 강당 겸 부전스님의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두고 그 위로 원형기둥을 세원 익공을 얹은 모습으로,

전면에 누마루를 설치하여 요사채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건물 내부에는 강당의 쓰임답게 불당이 모셔져 있는데,

불탁 위로는 높이 103㎝, 무릎 폭 85㎝의 목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불화로는 석가모니후불탱과 지장시왕탱,

그리고 1883년에 조성된 신중탱이 있다.

 

삼성각

 

극락전 뒤편인 좌측 언덕에 세워진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건물로,

1988년에 용상스님이 신축한 것이다.


건물은 자연스럽게 언덕 위에 콘크리트 기단을 얹어 세워졌으며,

원형초석 위로 원형기둥을 세워 익공을 받친 모습이다.


건물 외부는 전면에 6분합의 띠살문을 두고 삼면을 토벽으로 마감하였는데,

토벽에는 나한을 비롯하여 산수화가 단청되어 있다.


건물 내부는 ㄱ자형 불탁 위로 1887년에 조성된 칠성탱과 1984년에 조성된 산신탱,

1991년에 조성된 독성탱을 봉안하였다.

 

특히 칠성탱은 19세기 경기도 지역에서 이름을 날린

대화원 혜산당 축연과 보암당 긍법의 작품이다.


작품은 삼각형의 구도 속에 중앙에 치성광여래를 두고 좌우로

월광ㆍ일광보살, 칠원성군을 배치하였는데,
전체적으로 홍색과 청색이 대조를 이루며

19세기 후반 경기도 불화양식의 특징을 보인다.

 

봉림사 전경

 

 

 

샘터

 

삼층석탑

 

 

 

 

 

 

 

 

 

 

 

 

 

 

 

 

 

종 목 명 칭분 류수량/면적지정(등록)일소 재 지시 대소유자(소유단체)관리자(관리단체)

보물 제980호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華城 鳳林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유물 / 불교조각/ 목조/ 불상
1구
1989.04.10
경기 화성시 남양면 북양리 642 봉림사
고려시대
봉림사
봉림사

봉림사 법당에 모셔져 있는 목불좌상으로

1978년 불상 몸에 다시 금칠을 할 때 발견된 기록을 통해

고려 공민왕 11년(1362)을 하한으로 아미타불상이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얼굴은 단아하고 엄숙한 표정이며 무게있는 몸은 단정하고 앞으로 약간 숙여져 있다.

 

양 어깨를 감싸 흘러내린 옷은 가슴에서 매는 띠매듭이 사라지고,

3줄의 옷주름이 묘사되어 특징적이다.

전체적으로 고려 후기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작품이다

 

 

 

봉림사 목아미타불좌상복장전적일괄
 

경기도 화성시 남양면(南陽面) 북양리(北陽里) 봉림사에 있는 아미타불좌상을

1978년 8월 개금(改金)할 때 그 복장에서 발견된 전적.


보물 제1095호. 8종 17점. 그 내용은

1339년(충숙왕 복위 8)에 목판으로 인쇄한 수진본(袖珍本)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1권 1첩, 고려 말의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권48) 필사본 1권 1축

,

여말선초의 《백지묵서묘법연화경(白紙墨書妙法蓮華經)》(권2) 필사본 1권 1첩,

 

조선 전기의 《백지묵서범망경(白紙墨書梵網經)》 필사본 1권 1첩, 명(明)나라 초의 《과주묘법연화경(科注妙法蓮華經)》 목판본 7권 1첩,

 

1228년(고종 15)의 《소자금강반야바라밀경(小字金剛般若波羅蜜經)》 목판본 4장,

 

1228년의 《소자범총지집일부(小字梵摠持集一部)》 목판본 5장,

 

고려 고종(高宗)연간의 《소자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小字佛頂心觀世音菩薩大陀羅尼經)》

(권상 ·중 ·하) 목판본 3장이다.

 

 

 

 

 

화성 봉림사 목아미타불좌상

경기 화성시 남양면(南陽面) 북양리(北陽里) 봉림사에 있는

고려 말의 목제 불상.

보물 제980호. 전체 높이 88.5cm, 머리 높이 31cm,

무릎 너비 78cm.

원래 경기 유형문화재 제99호였던 봉림사목조여래좌상이었으며,

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978년의 개금(改金) 때 발견된

조성(造成) 개금기(改金記)에 의하여 그 하한연대가 1362년(공민왕 11)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불상의 얼굴은

14세기 전반에 제작된 장곡사(長谷寺)·문수사(文殊寺)의 불상에 비해

단아하고 엄숙하며 표정도 더욱 침잠해졌다.

 

체구는 단정하면서도 장대하며, 몸을 앞으로 숙였고 양 무릎이 직각으로 처리되어

중량감을 더해준다.

 

U자형으로 처리된 가슴에는 젖가슴을 Ω형으로 표현하였으며,

통견(通肩)의 착의법은 문수사 불상과 똑같으나 그 형태는 한결 복잡하다.

 

즉, 왼쪽어깨에서 흘러내린 대의(大衣) 깃이 4가닥,

그리고 어깨에서 시작하여 팔로 걸쳐진 주름은 7가닥으로

팔꿈치의 Ω형을 좀더 복잡하게 하였으며, 직각의 무릎 앞면에도 5줄의 주름을 묘사하고 있다.

 

승각기[下裙] 띠매듭이 사라지고,

띠매듭 대신 그 부분에 3줄의 옷주름이 묘사되어 있는 것이 가장 특징적이다.

이와 같은 특징들로 미루어 이 불상은

14세기 전반기 불상에서 다소 진전된 고려 말 불상을 대표할 만한 뛰어난 작품이다.

 

 

卍 ▶…경기 화성시 무봉산 봉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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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일주문

 

화순 운주사,

 

운주사,
돌 속의 머슴부처 하나 장승처럼 서서
바람으로 눈이 덮인 산길을 쓸고 있다
전생에 무슨 업보로 염병할 천연두라도 앓았던 것일까
왕 곰보의 보기 흉하게 얽은 얼굴에는
눈물이 살을 파고들어 진 고름이 질질 흘러내린다
열반에 드는 일도 저와 같은 고역일 것인데
이중 삼중 고행을 하고 있는 머슴 부처,
사람의 손때 묻은 가사자락에
몹쓸 담뱃불에 덴 흔적이 흉터처럼 남아 있다
부처들도 일하는 부처,
노는 부처, 공부하는 부처
따로 따로 어울리는지
외따로이 떨어진 외로운 산비탈에서 서서
눈길만 쓸고 있는 머슴 부처,
팔이 달아난 줄도 모르고
싹싹 빗질하는 아릿한 소리
눈이 덮인 산길 어느새
피가 배여 나와 황톳물이 질척거린다

<운주사 머슴부처>-'송유미'

 

https://youtu.be/VN-9DyhMj_g

 

운주사에 대한 역사는 정확한 기록은 없고, 신라 52대 효공왕 때 영암구림(靈岩鳩林) 출신인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 온다. 도선국사는 높은 도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대선사인데, 당(唐) 나라에 가서 풍수지리설을 들여와 처음으로 신라에 전파한 스님이며 후세의 한국 풍수지리설에 큰 영향을 준 인물. 운주사의 설화는 대부분이 이 도선국사와 연관되고, 전남 화순군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설화를 간결하게 옮겨보면 이렇다.

 

"우리의 산세(山勢) 를 관찰한 도선국사가, 높은 탑을 많이 세워 돛대를 삼고 짐(불상)을 많이 실어 놓으면 배가 균형을 잃지 않을 것이며, 이렇게 천불은 사공이 되어, 바다(고해) 향해 항해하면 풍파가 없으리라고 여긴다.

 

이렇게 도선국사는 동자승 하나를 데리고 와서 운주사의 절터를 다듬어 놓고, 도력으로 천상의 석공들을 불러 그 날 닭이 울기 전까지 흙과 돌을 뭉쳐 천불천탑을 만든 다음 닭이 울면 즉각 천상으로 돌아가도록 부탁한다.

 

그리고 혹시나 시간이 모잘라 일을 다 마치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절의 서편에 있는 일괘봉(日掛峯) 에다 해를 잡아 매놓는다. 이때 석공들이 열심히 탑과 부처를 만드는 곳으로 심부름을 하던 동자승이 지겨운 일에 짜증이 나서 그만 아무도 몰래 해를 풀어 주고 만다."

 

결말이 조금 다른 설화의 내용은 이렇다. 도선국사가 동자승을 데리고 와서 절터를 닦고 도력으로 부른 석공들의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데(어서 날이 새기 전에 와불의 마지막 손질을 위해서 바삐 일한다.) 그만 동자승이 닭 우는 소리를 '꼬끼오' 하고 지르고 만다.

 

그리하여 닭소리에 놀라 석공들이 일제히 일손을 멈추고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그렇게 석공들이 천상으로 올라가버린 뒤에 살펴보니 탑과 부처가 각각 천개에서 하나씩 모자랐다고 한다. 그 모자라는 부처가 '와불'이라고도 전한다.

 

 

youtu.be/mOsN3J1SEAY

 

운주사의 돌불상은 미륵불(미래불)이다. 56억 7천만 년 후에 이 세상에 당도한다는 미륵불이 도처에 서 있는 운주사. 그리고 무거운 지구를 등에 지고 있는 것 같은 식물인간처럼 일어서지 못하는 와불님 앞에 절로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하게 된다.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이 운주사의 와불님이 일어서는 날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극락정토와 같이 가난한 민중들이 아무런 근심없이 살아가는 세상이 도래한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시인들은 운주사의 천탑천불을 시의 소재로 많이 선택하는지 모르겠다.

 

운주사에 오면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자신 모르게 차가웠던 피가 불을 지피는 듯 뜨거워진다. 마음이 울적할 때나 괴로울 때 찾아오게 되는 전라도 화순땅의 운주사. 그 운주사는 우리 민중의 꿈과 희망이 기다리고 있는 땅이 아닐 수 없다.

 

천탑천불이 있는 운주사는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여느 절과 달리 외갓집 나들이처럼 찾게 되는 편안한 절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넉넉해져서 돌아오는 절이기도 하다.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서.'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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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와불 / 권정우

 

 

 

천 개의 부처가

뿔뿔이 흩어져버린 뒤에도

나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테지만…

당신 곁에

또 다시 천년을 누워있어도

손 한 번 잡아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천 개의 석탑이

다시 바위로 들어가 버린 뒤에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겠지만…

내가 당신 곁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도 모르는 당신은

다시 천년이 지나도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테지만…

 

운주사 와불 / 권정우

유서깊은 고찰 불갑사

유서깊은 고찰 불갑사

 

 

 

불갑사는 백제 무왕때(600~640) 행은 스님이 세웠다는 설과 백제 침류왕 원년 384년 인도 스님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제일 처음 지은 불법도량 이라 하여 "부처 불" "첫째 갑" 자를 따라 불갑사라 하였다.

보물 제 830호로 지정된 불갑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의 팔작지붕 건물로 연화문 국화문, 보상화문, 보리수 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보물 제 1470호인 불갑사 불복장전적이 있다.

 

 

 

사천왕상(지방문화재 제159호)

 

불갑사 사천왕상은 고창 연기사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서, 연기사가 폐사된 후 1870년(고종7년)설두대사에 의해 불갑사로 옮겨졌으며 조선중기에 조성되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목조로서는 국내에서 제일 큰 거상으로 균형미가 뛰어나고 섬세하며, 화려한 조각솜씨를 보여준다.

참식나무(천연기념물 제112호)

 

참식나무는 잎 뒤에 하얀 솜털이 많아서 백담호(白淡毫)라고도 한다. 인도공주가 인도에 유학왔던 신라 경운스님에게 내세의 인연을 기약하는 정표로 전해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만세루는 1644년에 중건되었으며 정면5칸, 측면4칸의 중층형 문루건물로서, 법회 장소 및 스님들의 여름철 강학(講學)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이 건물은 주심포와 익공식의 혼합된 양식을 보여주며 가구에 기교를 부리지 않은 웅건한 미를 간직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대법고

 

불갑사 대법고는 174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길이 240㎝, 울림판 직경 200㎝, 높이 220㎝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큰북이다. 이것은 오래된 법고 가운데에서는 가장 크다고 한다.

 

 

 

만세루

 

만세루(문화재자료 제166호)

 

만세루는 1644년에 중건되었으며 정면5칸, 측면4칸의 중층형 문루건물로서, 법회 장소 및 스님들의 여름철 강학(講學)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이 건물은 주심포와 익공식의 혼합된 양식을 보여주며 가구에 기교를 부리지 않은 웅건한 미를 간직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대웅전(보물 제830호)

 

백제 침류왕원년(384년)인도승 마라난타존자께서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법성포를 거쳐 이곳에 최초로 창건한 사찰로 정유재란 때 소실된 후 다시 중건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매우 화려한 양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살은 삼분합 소슬 빗살문으로 연꽃, 국화꽃, 보리수나무 무늬를 섬세하게 조각하여 우리 조상들의 예술성이 표현된 건축물이다.

 

 

 

 

 

불갑사의 중심 불전은 대웅전이며 북방불교의 목조불전 건축양식과 남방불교의 불단 배치방식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독특한 구조와 양식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 삼존불상과 천왕문의 사천왕상, 명부전의 지장시왕상, 만세루 등이 중요 문화재이며 성보 박물관에는 귀중본 불경 전적 문화재와 불화, 불교 조각존상 및 불교공예 문화재 등 다수가 소장되어 있다.

또한 대웅전 지붕의 용마루 한가운데에 설치된 보탑은 점토로 구워낸 기와지붕 장엄으로 양쪽의 용두 조각위에 탑형의 탑신과 사각 모임조부의 보게, 복발, 보주 등으로 이루어져 점토로 구워낸 기와지붕 장엄이다. 우리나라는 불갑사와 통도사에 이런 보탑이 설치되어 있다.

불교에서 “장엄(莊嚴)”이란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에게 올려 장식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대웅전에 모신 삼존불상의 시선의 방향이 특이하게도 스님들의 출입문 방향을 향해 보고 계시다는 것이 다른 사찰과 다르다는 것이고, 국내 사찰 중 공주 마곡사, 부석사 무량수전이 이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 무독귀왕, 사왕과 판관, 녹사, 수문장 등을 봉안한 건물이다. 본래 위치는 대웅전 좌측이었으나, 1936년 만암스님에 의하여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대웅전 우측의 일광당은 정유재란 때 소실된 후 1620년에 중건된 건물로서 본래 선당(禪堂)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승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구부러진 목재들을 꾸밈없이 다듬어 세움으로써 자연미를 살려 낸 훌륭한 건축물이다.

 

 

 

칠성각은 대웅전의 뒤쪽 높은 단 위에 위치해 있으며, 정면3칸, 측면1칸인 맞배지붕의 익공식에 간결한 3량으로 서향을 하고 있는 아담한 건물이다. 이 칠성각은 조선시대 말기(1896년경)에 건축되었다.

 

 

 

팔상전은 1822년 3중창된 건물로서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여기에는 석가모니불주존을 중심으로 16나한을 봉안하고 있다.

 

 

향로전은 정면 5칸, 측면2칸의 전후퇴로 되어 있으며 팔작지붕의 주심포양식에 익공식이 가미된 건물이다. 1765년에 제 6창 중수된 건물로서, 고려말 각진국사 이후 불갑사의 대덕스님이 주석하던 곳이다.

 

각진국사는 고려말 충정왕, 공민왕대의 왕사였으며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한 분으로서, 만년에 불갑사에 주석하여 불갑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이 각진국사 자운탑은 1355년에 조성된 고려 후기 작품이다.

 

 

 

 

불갑사 꽃무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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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2020. 11. 4.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광덕산 광덕사(廣德寺) 호두나무

천안 광덕 광덕사는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공주 마곡사에서 30분 거리인 천안 광덕사는 10년 만에 찾는 곳이다.

사찰을 자주 찾는 이유는 고즈넉하고 조용하고 주위 풍경이 아름답고 사찰 앞에는 먹을거리가 많아서 절을 찾는다.

광덕사 호두나무(천연기념물 제398호):우리나라 최초 호두나무

일주문 앞

우리나라 최초 호두나무(천연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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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ds live
in a beautiful palace

 

 

 

















































































































 

 

강형욱 추천 0 조회 33 20.06.13 14:46 댓글 0

 

 

 

함소아 추천 0 조회 22 20.06.06 08:51 댓글 0

 

 

방장산 대원사,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공간

 

장독대로 유명한 비구니 절집 대원사          

이해성 | 조회 46 |추천 1 |2020.02.26. 09:43                          

장독대로 유명한 비구니 절집 대원사

  

지리산 대원사를 들린건 종친회에서 산청구형왕릉을 참배하고 남는 시간에 지리산을 구비구비 돌아서 였습니다. 단풍이 한창이라 붉게물든 지리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대원사로 들어가는 길은 완만한 계곡과 금강송(강송, 춘양목)이라 불리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선계에 이르기 위한 길목으로 착각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대원사 입구에는 최근에 세운 웅장한 일주문이 있고 여기에 방장산대원사(方丈山大源寺) 편액이 걸려 있지요. 일주문의 기둥은 다른 곳은 두 개인데 여기는 보조기둥이 있군요.

 

 

탑에서 각각 나온 서광(瑞光)이 허공에서 만나 오색무지개 빛을 비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해서 세운 비인 듯 싶습니다.

 

 

봉상루를 가기 바로 전에 부도와 방광비가 있습니다.부도가 네 개인데 하나는 사진에 안났습니다.

 

 

밖에서 본 봉상루입니다. 현판에는 방장산대원사라 씌어 있지요.

 

 

대웅전입니다.

 

 

대웅전 앞에서 본 봉상루입니다.

 

 

범종각은 봉상루 바로 옆에 있지요

 

 

석등인데 원래의 윗 부분은 없어진 것 같네요. 안에 등잔이 귀엽군요.

 

 

원통전 현판은  전서체로 씌워져 있지요.

 

 

법당의 문입니다.  무늬도 아름답네요.

 

 

원통보전을 끼고 뒤로 돌아가면 다시 아담한 계단이 있는데 계단 중간에 장독들이 정연히 서 있지요. 이 장독대는 우리나라 사찰의 전형성을 띠고 있어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자자하답니다.

 

 

특히 장독의 형태가 어깨선이 떡 벌어진 우람하고 장중한 경상도 장독이므로 보는 이로 하여금 장골의 기개를 느끼게 한답니다. 장독대 위쪽으로는 산왕각(山王閣)이 있지요.

 

 

명부전입니다.

 

 

이 탑은 사리전 앞에 있는데 일반인들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스님께 간절히 부탁을해서 들어 갈 수가 있었습니다. 646년(선덕여왕 15) 자장 율사가 중국에서 이운해 온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속에 탑신이 기울고 하여 조선시대에 중건되었고, 최근에는 1972년에 보수되었 답니다. 현재 보물 제1112호로 지정되어 있구요. 

 

 

탑의 양식은 이중기단 위에 옥개석이 8개 놓여 있고, 상층 기단 네 면에 풍탁(風鐸)이 달려 있습니다. 상륜부에는 복발과 찰주가 있고, 전제 높이 660㎝입니다. 조선시대에 1724년(경종 4) 태흠 선사가, 그리고 1784년(정조 8) 옥인 선사가 각각 수리하면서 사리 72과를 얻었는데,

 

 

 

큰 것은 녹두알만 하고 작은 것은 기장알만 한데 오색이 영롱하다고 합니다. 근래에 탑을 다시 정돈하면서 3층, 5층, 7층에 나누어 봉안하였고 합니다.『조선불교통사』「불조유골동래설」에 지리산에 3대탑이 있으니,

 

 

대원사 탑이 동탑이요, 법계사 탑이 중탑이며, 구례 화엄사 삼층석탑이 서탑인데 1년에 두 차례씩 세 탑에서 각각 나온 서광(瑞光)이 허공에서 만나 오색무지개 빛을 비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곧 불사리가 한 몸이라는 동근일체(同根一體)요, 지리산 전체가 불신(佛身)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후 4시가 되니 산중은 벌써 해 그림자 드리우고 갈 길이 멀어 더 머물지 못하고 바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곳에가면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내려오면서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 봐야만 했지요.   - 

白仁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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