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국티벳센터
글쓴이 : 있는그대로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한국티벳센터
글쓴이 : 있는그대로 원글보기
메모 :
사진 출처

법흥사의 가을단풍은 정말 아름다웠다.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사자산 법흥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가 중국 종남산 운제사에 모셔져 있는 문수보살의 석상 앞에서 7일간의  정진기도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발우 등을 전수받아 사자산(연화봉)에 불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라 개창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인 불보사찰이다. '적멸보궁'이란 '온갖 번뇌 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이란 뜻이다.

현재 법흥사의 유적으로는  옛 흥녕선원의 위세를 짐작하게 하는  3개의 석탑과  1개의 수호석불좌상,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 적멸보궁, 사리탑(강원도 유형 문화재 73호), 흥녕사 징효대사 보인탑(보물 612호), 징효대사 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 72호), 흥녕선원지(강원도 지정 기념물 6호)가 있고  종이가 없던 시절  인도 영라수 잎에  범어로 기록한 패엽경 등의 소중한 삼보종재가 남아있으며  법흥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제242호인 까막딱다구리가 서식한다.

본래 사자산 법흥사의 지명 유래는 산세가 불교의 상징 동물인 사자형상의 허리와 같은 모든 지혈이 한 곳에 모이는 길지이며, 뒤의 산봉우리가 불교의 상징 꽃인 연꽃 같이 생긴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외는 있지만, 어느 절이든 절 뒤로 작은 길 하나씩은 몰래 품고 있다.
그 숲길은 관광객이나 등산객들의 눈에서 비켜나 있어서 걷기에 좋은 고즈넉한 길이다.
그 옛날 영월 법흥리 사람들이 횡성 안흥장을 보러 넘나들던 법흥사 숲길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주차장 극락전에서 중대를 지나 적멸보궁에 이르는 숲길은 불자들의 순례 길이자 일반인들의 관광길이기도 하다. 주변의 소나무 숲은 천연기념물인 까막딱따구리가 깃들 정도로 청정하고 울창하다.  소나무와 활엽수들이  눈 맛 좋게 어우러진  혼합림 숲길이  1㎞ 정도 이어져 있다. 사찰로 들어가는 오솔길의 소나무 숲이 장관이고, 사찰 앞에 줄줄이 이어진 아기자기한 아홉 개의 봉우리(구봉대) 역시 일품인 곳이다. 이 숲길은 가끔 스님들이 명상하러 나오기도 하고 주말이면 등산객들도 가끔 찾는다.

이 숲길은 단풍도 좋지만, 계곡을 끼고 있어서 '자연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음이온이 넘친다. 음이온은 알파파를 활성화해 명상을 도와주고 신경안정에 효과가 높다고 알려졌다. 가을 산책길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경승지 중 하나다.
















































































































출처 : chungmyungsan
글쓴이 : 우곡 김덕기 원글보기
메모 :

태종대에 가면 태종사라는 절이있다,조계종 종단이라고 되어있는데 스님은 외국사람이다.
그리고 스리랑카 분원이라고 되어있다.주지 스님은 한국사람이라 한다.외국 스님이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단다. 참고로 하단에 태종사 홈페지를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금강경을 올렸습니다. 불자님들은 따라 하셔도 될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삽바붓단뉴가-타』

  삽바빠-빳사 아까라낭,

  꾸살랏사 우빠삼빠다-  

  사�따빠리요-다빠낭,

   에-땅 붓다-나 사-사낭.

일체 악행 저지르지 않고 

 착한 공덕 힘써 행하며

 스스로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네.

 

 

 

 

알림마당
    [공지] 탁발법회 시간 변경 
    [공지]금요일 수행 법회 정기총... 
    [알림] 바자회가 열립니다. 
    [알림]금요 수행법회. 
    태종사 성지순례 안내 

자유게시판
    비구 수키또-로부터 
    태종사 풍경. [1]
    친구 [3]
    합장_ [7]
    [알림] 이번주 금요일 법회 

이주의법문
    위딱까(겨냥) 
    수행방법과 점검의 과정 
    마나시까-라(마음새김) 
    지-위띤드리야(생명력) 
    에-깍가따-(심경일성) 

앗탕기까막가 가∼타∼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에 관한 게송)

길로서는 팔정성도가 최상이요, 진리로서는 사성제가 가장 성스럽고 욕망을 다스리는데는 담마가 으뜸이며, 인간과 천상의 두발가진 생명 가운데 붓다야말로 최상의 성자이네.

오직 하나의 길, 이길뿐이요, 그어디에도 청정한 눈을 갖게하는 다른 길은 없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이 길을 따르라, 그러면 마(魔)라도 어리둥절하여 너의 자취를 찾지 못하리.

너희는 마땅히 이길을 따르라, 그러면 모든 둑카의 끝을 보게 되리라.

나(붓다)도 이 길로써 번뇌의 가시밭길을 벗어날 수 있었기에, 너희에게 이 길을 보여주는 것이니라. 너희 스스로 힘써 노력하라, 여래는 다만 길을 보여줄 뿐. 누구든지 마음집중과 내적 관찰을 수행하면, 마라의 묶임에서 벗어나리라.

[ 법회안내 ]

 

법회 시간

내  용

사시 예불

매일 오전 10시 30분

사시 불공

아침 예불

매일 오전 5시

예불, 수행

저녁 예불

매일 오후 6시

예불, 수행

 

 

법회 시간

내  용

초하루 법회

매월 음력 초하루

법문, 방생

화요 요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30분

요가

금요 위빳사나수행 법회

매주 금요일 오후 5시

자율정진, 법회

일요 탁발 법회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법문, 예불


 



      
  
출처 : 흙에서흙으로
글쓴이 : 흙으로 원글보기
메모 :

양주 회암사지(檜岩寺址)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회암사지는 고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이다. 조선 전기 이색이 지은『천보산회암사수조기』에 의하면, 고려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 나옹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번성한다”는 말을 믿고 절을 크게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고,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다.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는데 1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 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전국 제일의 사찰이 되었다가, 문정왕후가 죽은 뒤에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졌다.










회암사지 가상 복원도









2007년 8월 27일에 찾았을 때는 발굴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가 마무리 된 현재의 모습









발굴 공사 중이던 2007년 8월 27일 모습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된 현재의 모습









당간지주-4주였을 것이나 3주만 발견되었다. 간을 끼우는 간구나 간공은 시공되어 있지 않아 두 지주에 다른 고정장치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짝만 남아있는 괘불지주

























































































관솔 등을 태워 불을 밝히던 정료대(庭燎臺)



















중앙이 주불전인 보광전(普光殿) 자리이다.

















































회암사지부도탑-상·중·하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윗받침돌과 둥근 탑신의 몸돌사이에는 별도의 돌로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은 경사가 급하고, 처마는 느린 U자형을 이룬다.









기단의 윗받침돌은 8부신장(八部神將)과 덩굴무늬로 장식하였다.









기단의 아래받침돌에는 구름에 휩싸인 말을 생동감 있게 조각하였다.









기단의 받침돌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회암사지에서 500여 m 올라가면 천보산 자락에 새로 지은 회암사가 있다.





























회암사지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 - 비문의 글은 이색이 짓고, 글씨는 권중화가 쓴 것으로, 나옹화상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1997년 보호각이 불에 타 비의 몸돌이 파손되어 원형을 본따 만든 비가 세워져 있다. 뒤에 불타지 않고 남아있는 비 받침돌인 귀부가 있다.










무학대사비 - 높직한 4각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간결한 모습이다. 비문에는 대사의 일생이 적혀 있는데 특히 원나라에 들어가 지공선사와 나옹선사를 만나 그들의 제자가 된 일, 한양천도에 큰 역할을 한 일, 회암사에 두 스승의 묘탑을 세운 일 등이 잘 나타나 있다. 태종 10년(1410)에 왕명을 받들어, 변계량이 비문을 짓고 공부의 글씨로 하여 비문을 새겨두었다 하나, 순조 21년1821)에 파괴되었고, 순조 28년(1828)에 다시 비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회암사무학대사홍융탑(보물 제 388호)과 쌍사자석등(보물 제 389호) - 부도의 형태는 구름무늬를 조각한 8각의 바닥돌 위에 받침부분인 기단(基壇)이 놓이고 탑신(塔身)과 머리장식부분이 포개져 있는 모습이다. 쌍사자석등은 기본형이 4각인 형태로 삼국시대이래 고유의 8각 석등형태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주목된다. 










지공선사비문 - 지공선사는 인도 마갈제국에서 태어나 원나라 순제 때 고승으로 이름을 높였고, 충령왕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회암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지공선사 부도와 석등









나옹선사 부도 - 나옹선사는 고려말의 승려로 본명은 혜근이고 오대산 상두암에 머물렀으며, 공민왕에게 설법을 하였다고 한다. 회암사의 주지가 되어 절을 중창하는 작업을 하던 중 완공을 보지 못하고 고려 우왕 2년(1376)에 입적하였다고 한다.


 

 

 

<출처;blog.chosun.com/mjkcos >

 

 

 

 

출처 : 운각방
글쓴이 : 운각 원글보기
메모 :

 

韓國의 名刹 

적상산 안국사
 
출처 : 보헤미안의 유토피아
글쓴이 : 月 明 居 士 원글보기
메모 :

♨ 小白山 救 仁 寺 ♨

小白山 救 仁 寺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상월원각 대조사가

흥법 호국과 구세제중의 염원을 펴기 위해해방되던 해인

45년에 소백산 연화지에 사찰을 창건하고

억조창생 구제중생 구인사(億兆蒼生 救濟衆生 救仁寺)라 명명한 것이 구인사의 시초라고 한다.

대한불교 천태종 총본산 구인사는 누구든지 소원을 빌면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 하여 유명하다

구인사에 상주하는 스님만 수백 명이고 동시에 5000명이 숙박할 수 있다 한다.

小白山 救 仁 寺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상월원각 대조사가 흥법 호국과 구세제중의 염원을 펴기 위해

해방되던 해인 45년에 소백산 연화지에

사찰을 창건하고

억조창생 구제중생 구인사

(億兆蒼生 救濟衆生 救仁寺)라

명명한 것이 구인사의 시초라고 한다.

대한불교 천태종 총본산 구인사

누구든지 소원을 빌면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 하여 유명하다

구인사에 상주하는 스님만 수백 명이고

동시에 5000명이 숙박할 수 있다 한다.

 

 

 

 

 

 

 

 

 

 

 

 

 

 

 

 

 

 

 

 

 

 

 

 

 

 

 

 

 

 

 

 

 

 

 

 

 

 

 

 

 

 

 

 

 

출처 : 보헤미안의 유토피아
글쓴이 : 月 明 居 士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보헤미안의 유토피아
글쓴이 : 月 明 居 士 원글보기
메모 :

'인연과 정신세계 > 사찰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적상산 안국사  (0) 2009.06.12
[스크랩] 小白山 救 仁 寺  (0) 2009.06.12
[스크랩] 여인의 유혹  (0) 2009.06.04
[스크랩] 마곡사  (0) 2009.05.29
[스크랩] 영주 부석사의 5월 풍경  (0) 2009.05.29

경기도 소요산의 원효폭포와 자재암

 




 

여인의 유혹

 

이토록 깊은 밤, 폭풍우 속에 여자가 찾아올 리가 없지.

 

거센 비바람 속에서 얼핏 여자의 음성을 들었던 원효스님은

 

자신의 공부를 탓하며 다시 마음을 굳게 다졌다.

 

"아직도 여인에 대한 동경이 나를 유혹하는구나.

 

이루기 전에는 결코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

 

자세를 고쳐 점차 선정에 든 원효스님은 휘몰아치는

 

바람과 거센 빗소리를 분명이 듣는가 하면 자신의

 

존재마저 아득함을 느꼈다.

 

"마음, 마음이란 무엇일까?"

 

원효스님은 둘이 아닌 분명한 본래모습을 찾기 위해

 

무서운 내면의 갈등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지직 하고 등잔불이 기름을 튕기며 탓다.

 

순간 원효스님은 눈을 번쩍 떴다.

 

비바람이 토굴 안으로 왈칵 밀려들었다.

 

밀려오는 폭풍우 소리에 섞여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원효스님은 귀를 기울였다.

 

"원효스님, 원효스님, 문 좀 열어주세요."

 

스님은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망설였다.

 

여인은 황급히 문을 두드리며 스님을 불렀다.

 

스님은 문을 열었다. 왈칵 비바람이 방안으로

 

밀려들면서 방안의 등잔불이 꺼졌다.

 

"스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 찾아와서...."

 

칠흑같은 어둠 속에 비를 맞고 서 있은 여인을

 

보고도 스님은 선뜻 들어오란 말이 나오질 않았다.

 

"스님, 하룻밤만 지내고 가게 해주세요."

 

여인의 간곡한 애원에 스님은 문 한쪽으로 비켜섰다.

 

여인이 토굴속으로 들어왔다.

 

『스님, 불 좀 켜 주세요. 너무 컴컴해요.


스님은 묵묵히 화롯불을 찾아 등잔에 불을 옮겼다.


방 안이 밝아지자 비에 젖은 여인의 육체가 눈에 들어왔다.


와들와들 떨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스님,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제 몸 좀 비벼 주세요.


여인의 아름다움에 잠시 취해 있던 스님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공연히 들여놨나 싶어 후회했다.


떨며 신음하는 여인을 안 보려고 스님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비에 젖어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것.


내 마음에 색심이 없다면 이 여인이 목석과 다를 바 있으랴.


스님은 부지중에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여인을 안아


침상에 눕히고는 언 몸을 주물러 녹여 주기 시작했다.


풍만한 여체를 대하자 스님은 묘한 느낌이 일기 시작했다


스님은 순간 여인을 안아 침상에 눕히고는


언 몸을 주물러 녹여 주기 시작했다.


스님은 순간 여인을 침상에서 밀어냈다.

 

「나의 오랜 수도를 하룻밤 사이에 허물 수야 없지.


이미 해골 물을 달게 마시고 「일체유심조」의 도리를


깨달은 스님은 다시 자기 정리를 시작했다.


"해골은 물그릇으로 알았을 때는 그 물이 맛있더니,


해골을 해골로 볼 때는 그 물이 더럽고


구역질이 나지 않았던가.


일체만물이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였으니

 

내 어찌 더 이상 속으랴."


이 여인을 목석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여인으로 보면서도 마음속에 색심이


일지 않으면 자신의 공부는 온전하다고 생각했다.

스님은 다시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여인의


몸을 비비면서 염불을 했다. 여인의 풍만한 육체는


여인의 육체가 아니라 한 생명일 뿐이었다.


스님은 여인의 혈맥을 찾아 한 생명에게 힘을 부어주고 있었다.


남을 돕는 것은 기쁜 일. 더욱이 남과 나를 가리지 않고


자비로써 도울 때 그것은 이미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이 되는 것이다.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구별이 없을 때


사람은 경건 해진다 여인과 자기의 분별을 떠나


한 생명을 위해 움직이는 원효 스님은 마치


자기 마음을 찾듯 준엄했다. 여인의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여인은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스님 앞에 일어나 앉았다. 여인과 자신의


경계를 느낀 스님은 순간 밖으로 뛰쳐나왔다.


폭풍우가 지난 후의 아침 해는 더욱 찬란하고 장엄했다.


간밤의 폭우로 물이 많아진 옥류폭포의 물기둥이


폭음을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스님은 훨훨 옷을 벗고 옥류천 맑은 물에 몸을 담 그었다.


뼛속까지 시원한 물속에서 무한한 희열을 느끼는데


여인이 다가왔다.

『스님, 저도 목욕 좀 해야겠어요.


여인은 옷을 벗어 던지고는 물속으로 들어와


스님 곁으로 다가왔다. 아침 햇살을 받은 영인의


몸매는 눈이 부셨다.


스님은 생명체 이상으로


보이는 그 느낌을 자제하고 항거했다.


결국 스님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너는 나를 유혹해서 어쩌자는 거냐?


『호호호, 스님도. 어디 제가 스님을 유혹합니까?


스님이 저를 색안으로 보시면서.

큰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 순간 스님의 머리는


무한한 혼돈이 일었다.


「색안으로 보는 원효의 마음」이란


여인의 목소리가 계속 스님의 귓전을 때렸다.


거센 폭포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속하여 여인의 음성이 혼돈으로


가득 찬 머리속을 후비고 들어올 뿐.


「색안으로 보는 원효의 마음」을 거듭거듭 뇌이면서


원효스님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폭포소리가


들렸고 캄캄했던 눈앞의 사물이 제 빛을 찾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의식되는 눈앞의 경계를 놓치지 않고 원효


스님은 갑자기 눈을 떴다.

원효스님은 처음으로 빛을 발견한 듯 모든 것을


명료하게 보았다.


「옳거니, 바로 그 거로구나. 모든 것이 그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는 그 도리!


스님은 물을 차고 일어섰다. 그의 발가벗은 몸을 여인 앞에


아랑곳없이 드러내며 유유히 걸어 나왔다.


주변의 산과 물, 여인과 나무 등 일체의 모습이


생동하고 있었다.

여인은 어느새 금빛 찬란한 후광을 띤 보살이 되어


폭포를 거슬러 사라졌다. 원효 스님은 그곳에 암자를 세웠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뜻대로 한 곳이라 하여 절 이름을


자재암」이라 했다.

 

 

 

지금도 동두천에서 멀지 않은 단풍으로 유명한


소요산 골짜기에는 보살이 목욕했다는 옥류 폭포가


있고 그 앞에는 스님들이 자재의 도리를


공부하는 자재암이 있다.

 

 

출처 : 보헤미안의 유토피아
글쓴이 : 月 明 居 士 원글보기
메모 :

    충남 공주시 寺谷面 雲岩里, 泰華山 동쪽 산허리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本寺이다.
    “마곡사 事蹟立案”의 기록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慈藏이 창건하였으며, 고려 明宗 때 1172년 普照國師가 중수하고, 梵日이 재건하였으며, 다시 道詵國師가 중수하고, 淳覺이 보수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려 ‘靈山殿’이라고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는데,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801)·大光寶殿:보물 802·영산전(보물 800)·사천왕문·解脫門 등이 있을 뿐이다. 이 밖에 寺寶로는 5층 석탑(보물 799)·梵鐘:지방유형문화재 62, 掛佛 1폭,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輦), 청동 향로(지방유형문화재 20)가 있고,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보물 270) 및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269)이 있다. [백과사전 에서]

                   

                   

                   

                   

                   

                   

                   

                   

                   

                   

                   

                   

                   

                  이 절의 이름은 신라 보철화상이 설법 전도할 때 모인 신도가 삼밭의 삼대 같다고 하여
                             마곡사라 지은 것이라 한다.
                             절에서 내려오는 얘기로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2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하여 고려 보
                             조국사가 재건하였다 하나,  그 처음 연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고 전하는 연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선덕여왕 12년은 백제 멸망이전 백제 의자왕 2년에 해당한다.
                             만일 642년 창건이 사실이라면, 의자왕 2년으로 전해져야 하는데 적대관계의 신라 연대
                             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금물이나 은물로 베껴 쓴 필사 불경들이 지금도 여러 점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려후
                             기 불교문화의 대표적 유산이기도 하다.
                             이 절과 관련해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일대가 조선조 십승지지, 즉 전란기에 위험
                             을 피할 수 있는 특별한 지역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마곡사는 임진왜란의 전란을 피하였으며, 한국전쟁 때도 병화
                             를 입지 않았던 것으로 전한다.

                             * 주요문화재
                              마곡사5층석탑(보물 799호), 마곡사영산전(보물 800호)
                              마곡사대웅보전(보물 801호), 대광보전(보물 802호)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1(보물 269호),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6(보물 270호),
                              천왕문(문화재자료 62호), 응진전(문화재자료 65호)
                              명부전(문화재자료 64호), 동제은입향로(문화재자료 20호)
                              해탈문(문화재자료 66호), 동종(문화재자료 71호)
                              심검당 및 고방(문화재자료 135호), 국사당(문화재자료 63호)
                              세조대왕가마(문화재자료 14호), 괘불(문화재자료 345호)

                  등산코스 : 영은암 - 대원암 - 토굴암 - 백련암 - 부용암 - 북가섭암

                  입 장 료 : 개인 - 어른 2,000원 / 청소년 1,500원 / 어린이 1,000원
                             단체 - 어른 1,600원 / 청소년 1,200원 / 어린이   800원

                  주차요금 : 대형 - 4,000원 / 소형 - 2,000원

                  도로안내 : * 서울
                               서울 IC - 천안 JCT 톨게이트 -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 진입 - 정안 톨게이트부터
                               마곡사 표지판따라서 - 604번 지방도이용(18km 지점)
                             * 대전
                               대전 유성IC - 32번 국도 타고 공주 도착 (30분 소요)
                             * 공주
                               공주에서 예산(아산)방면으로 32번 국도 이용 직진해서 10km 정도 가다가 사곡면 소
                               재지에서 우회전 마곡사 입구까지 진입가능, 거리는 20km로 30분~1시간 소요됨.
                             * 천안 남부지역
                               광덕사 지나 곡두터널 - 동해리 - 마곡사.
                             * 천안
                               천안에서 공주로 오는  국도 23호선 중 차령고개를 넘어 바로 나타나는 공주시 정안
                               면 소재지(광정)에서 오른쪽 길(604번 지방도)로 들어가는 길.

                  현지교통 : 공주버스터미널에서 마곡사까지 7번 시내버스 종점하차 (06:10∼20:30, 40분소요)

                  주변숙박지 : 공주지역의 호텔이나 여관, 민박 이용가능

                  * 백범 김구선생이 마곡사에서 잠시 은거한 곳으로도 널리 알려짐.

                출처 : 보헤미안의 유토피아
                글쓴이 : 月 明 居 士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