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것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생각을 먼저하고 행동을 나중에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언제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만 친절하고 즐겁고
동정적이고 관심을 가져주고
이해하는 삶을 살도록 하세요.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무슨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을
나무라지 마세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고
금방 잊어버리는 겁니다.
그래봐야 오늘 하루 뿐 인걸요.

누가 알아요.
그러다가 아주 좋은 날이 될지 가급적 약속을
하지 말되 일단 약속을 했다면 성실하게 지키세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말이죠.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그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믿게 하세요.
즐거워하세요.
당신이 하찮은 일로 아파하고 실망함으로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울해지지 않도록 하세요.

이 세상에 마음의 짐을 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존중하세요.
최선을 다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얻어지는 성공이 더욱 달콤한 법이죠.

지금 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쓸모 없는 날은 웃지 않는 날입니다.

믿음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의심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자신감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두려움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희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낙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항상 새롭게 항상 즐겁게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고

 

 

언제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UHD 4K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매서운

스승 노릇을 해야 한다.

 

우리가 일단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있는 물처럼

썩기 마련입니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다 나눌 것은 있습니다.

 

근원작인 마음을 나눌 때 불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 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나 자신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 수록

더 풍요로워집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함을 가저다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 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 라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찿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저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서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요

우주의 기운은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고 합니다.

 

 

- 법정 스님 -

 

 

대화의 문 (일산.호수공원)


(명상의말씀)이 세상에 내것은 하나도 없다(word of meditation)There is nothing mine in this world

 

날마다 새롭습니다.
우리의 나날은 늘 새로운 것입니다.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고
똑같은 날은 하나도 없습니다.

괴로워도 다른 괴로움이고
즐거워도 다른 즐거움이지

똑같은 괴로움
똑같은 즐거움이란 있을 수 없지요.

어제와 똑같은 호흡을 어찌
오늘도 들이고 내쉴 수 있겠어요.

같은 강물에서는 절대
두 번 목욕할 수 없다고 하듯 우리의 순간 순간은
새롭고 경이로운 것입니다.

세상을 살며 어느 한순간이라도
똑같은 순간을 경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같이 보려고 하고
똑같이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어제의 생각으로 오늘을 바라보며,
이전의 관념으로 지금을 판단하려 하고,
어제 만난 사람으로 오늘의 사람을 대하고,
이전의 사랑으로 지금의 사랑을 끼워
맞추려 하거든요.

이전에 들었던 가르침으로
오늘 듣고 있는 가르침을 가로막지 마세요.

어제 들었던 가르침을 다 놓아 버릴 수 있어야
오늘 전혀 새롭고 신비로운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다 아는 가르침이라고, 이미 경험했다고
전에 느껴 보았노라고 하지 마세요.

지금 느끼는 경험은 지금 듣고 있는 가르침은
오직 지금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것이니까요.

 

 

 

경이롭고 새로운 순간 법정스님4k

 


날마다 새롭습니다.
우리의 나날은 늘 새로운 것입니다.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고
똑같은 날은 하나도 없습니다.

괴로워도 다른 괴로움이고
즐거워도 다른 즐거움이지

똑같은 괴로움
똑같은 즐거움이란 있을 수 없지요.

어제와 똑같은 호흡을 어찌
오늘도 들이고 내쉴 수 있겠어요.

같은 강물에서는 절대
두 번 목욕할 수 없다고 하듯 우리의 순간 순간은
새롭고 경이로운 것입니다.

세상을 살며 어느 한순간이라도
똑같은 순간을 경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같이 보려고 하고
똑같이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어제의 생각으로 오늘을 바라보며,
이전의 관념으로 지금을 판단하려 하고,
어제 만난 사람으로 오늘의 사람을 대하고,
이전의 사랑으로 지금의 사랑을 끼워
맞추려 하거든요.

이전에 들었던 가르침으로
오늘 듣고 있는 가르침을 가로막지 마세요.

어제 들었던 가르침을 다 놓아 버릴 수 있어야
오늘 전혀 새롭고 신비로운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다 아는 가르침이라고, 이미 경험했다고
전에 느껴 보았노라고 하지 마세요.

지금 느끼는 경험은 지금 듣고 있는 가르침은
오직 지금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것이니까요.

 

 

 

일산 호수공원

 


오후의 입선(入禪)시간, 선실(禪室)에서 졸다가
대숲에 푸실푸실 싸락눈 내리는 소리를 듣고
혼침(昏沈)에서 깨어났다.
점심공양 뒤 등 너머에서 땔나무를 한 짐 지고
왔더니 고단했던 모양이다.
입춘이 지나간 지 언제인데 아직도 바람 끝은 차고
산골에는 이따금 눈발이 흩날린다.

아까 산길에서 비전(碑殿)에 사시는 성공(性空)
스님을 만났다.
80 이 가까운 노스님이 지게에 한짐 가득
땔감을 지고 가시는 걸 보고,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온유한 수행자의 모습에 숙연해졌다.
요즘은 밥짓는 공양주가 한 사람 들어와
다행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스님들
두 분이 손수 끓여 자시면서 지냈다.
정진 시간이 되면 거르지 않고 염불 소리가
뒤골에까지 메아리친다.
비전은 염불당(念佛堂)이기 때문이다.
성공 노스님은 한때 학인(學人)들에게
경전을 가르치는 강사(講師)로도 지낸 바 있지만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젊은 스님들한테도 또박또박 존대 말을 쓰면서
겸손을 지킨다.
이 땅에서 80년 가까이 살면 서도 아직 서울에
가보지 않았다는 흙 냄새 풍기는 인자하신 스님.
지난해 봄에는 상좌의 주선으로 제주도를
다녀오셨는데 어린애처럼 마냥 좋아라 하시면서
한라산을 오를 때는 그 걸음걸이가 젊은
상좌보다 앞서 펄펄 달리더란다.

큰절 임경당(臨鏡堂)에는 올해 여든 다섯 살이 되는
취봉(翠峰) 노스님이 계신다.
젊어서는 일본에 건너가 종립 대학에서
수학도 했고 몇 차례 주지 직도 맡아 지낸
노스님 인데, 근면과 단순과 청빈으로
후학들에게 몸소 모범을 보이는 대덕(大德)이시다.
스님은 사중(寺中) 물건과 개인의 소유에
대한 한계를 누구보다도 투철하게 몸에 익히고 있다.

한번은 감기 몸살로 앓아 누워 계실 때, 약을
달이느라 시중들던 스님이 생강을 한 뿌리 후원
원주실에서 가져다 썼다.
그걸 아시고 단박에 사다 갚으라고 하실 만큼,
공사(公私) 의 개념이 분명하시다.
주지로 계실 때에 사중 볼일로 출장시 사무실에서
주는 여비를 쓰고 나머지는 단돈 10원이 될지라도
반드시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요즘 사중 소임 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공중 물건을 가지고 마치 자기 개인 것이나
되는 듯이 함부로 사용하는 폐습이 있는데,
노스님의 그 같은 모범은 커다란 교훈이
아닐 수 없다.
90을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법당의 조석예불과
대중공양에 거르는 일이 결코 없다.
걸핏하면 예불을 거르고 후원에서 따로
상을 차려 먹기를 좋아하는 덜된 중들에게는
마땅히 배우고 따라야 할 승가의 청정한
생활규범이다.

이런 노스님들이 계시는 산중에서 함께
사는 것을 나는 참으로 고맙고 다행하게 생각한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생활규범에 의해 둘레에
한없는 빛과 거울의 기능을 하고 있다.
한결같은 겸손과 단순한 청빈으로 그들 스스로를
구원하고 다른 사람들을 감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노스님들은 참선이 어떻고 화두(話頭)가
어떻고 견성(見性)이 뭐라고 말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저 묵묵히 몸소 행동으로 보일 뿐이다.
대개의 경우 뭘 알았다고 자기 과시에 열을
올리는 스님들한테서는 수행자의 덕성인
그 겸손과 단순과 청빈과 온유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슬이 푸른 오만과 독선과 아집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진해서 자리를 같이 하게 되면
마음이 편치 않고 피곤하다.

선가(禪家)에 한고추(閑古錐)란 용어가 있는데,
닳아져서 무딘 송곳을 가리킨 말이다.
수행자의 경지가 원숙해져서 서슬이 밖에
드러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니 서슬이 푸른 것은
미숙함을 드러낸 것.

알면서도 그 앎에 걸려 있지 않는 성숙한
지혜가 귀하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도로써 자만한다면
그는 결코 선지식(善知識)일 수 없다.
관념의 찌꺼기인 상(相)이 있으면 진짜
수행자가 아니라고 대승(大乘) 경전에서는
입이 닳도록 말하고 있지 않던가. 수행자에게
중요한 것은 학식이나 지식이 아니라 지혜롭고
자비스런 행동이다.
종교란 회색의 이론이 아니라 살아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자만을 가져오지만 사랑은
덕성을 길러준다.

투철한 안목과 번뜩이는 기량으로써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명안종사(明眼宗師)의 기능도 필요하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이름 없는 노스님처럼
수행자로서 한결같이 정직하고 겸허하고
꿋꿋하게 살아감으로써 후학들에게 끼치는
덕화는 보다 더 소중하다.
사람을 본질적으로 감화시키는 것은 그럴듯한
말에 있지 않고 몸소 움직여 보이는 행동에 있다.

좋은 말을 한다는 것과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 사람의 행위가 그 사람의 지식보다 뛰어날 때
그 지식은 유익하다.
그러나 그 지식이 그 사람의 행위보다 크게
드러날 때 그 지식은 무익한 것이다.
진짜 수행자는 그 어떤 종파를 막론하고 앞뒤가
툭 트인 단순성(單純性)에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이, 생각만 해도 숙연해지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그가 크리스마스 전 단식 기간을
어떤 은둔처에서 지내고 있을 때였다.
지나친 고행으로 만년의 그는 여러 가지
병고를 치른다.

올리브 기름이 건강에 해로워 돼지기름으로
요리한 음식을 조금 먹었다.
단식이 끝날 무렵 대중 앞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나를 성스러운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헌신적인 사랑으로 여기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단식 기간에 돼지기름으로
만든 음식을 먹었음을 여러분 앞에 고백합니다."

그는 하느님께 알려진 사실을 이웃들에게
감추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영성(靈性)에 자만심이나
번뇌의 유혹이 있을 때는 즉시 그의 형제들에게
감추는 일 없이 그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자기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머무는 은둔처나 어떤 곳에서라도
모든 사람이 나를 지켜볼 수 있도록
나는 살고 싶소.
그들이 나를 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성스러운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나는
위선자가 될 것이오."

수행자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을 그는 단호히 배격한 것이다.
세상에 빛과 거울이 될 이런 분들을 스승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구원이요
커다란 위로다.
이런 분들의 덕화가 미치고 있는 한 그 어떤
세상에서라도 인간은 절망하거나 멸하지
않을 것이다

 

 

 

일산 호수공원

 

사람이 하늘처럼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내 호박을 보았을때

친구한테 먼저따서

보내주고 싶은 생각이 들고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되어 있는 들꽃과

마주 쳤을때

그 아름다움의 설렘을 친구에게

먼저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렇게 메아리 오고가는 친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할 수 있어

좋은 벗이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장점을 세워주고

쓴소리도 나를 키워주는 친구는

큰 재산이라 할수 있다.

인생에서 좋은 친구가

가장 큰 보배다

물이 맑으면 달이 와서 쉬고

나무를 심으면 새가 날아와

둥지를 튼다.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은

그런 친구를 만날 것이다

그대가 마음에 살고있어

날마다 봄날입니다.

 

- 법정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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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 털털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며,

시냇물은 흐르고 바위는 서 있다.
꽃은 새소리에 피어나고,

골짜기는 나무꾼의 노래에 메아리친다.


온갖 자연은 이렇듯 스스로 고요한데,

사람의 마음만 공연히 소란스럽구나."

"소창청기(小窓淸記)"라는 옛 책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자연은 저마다 있을 자리에 있으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사람들은 제 자리를 지키지 않고

분수 밖의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고

그들이 몸담아 사는 세상 또한 소란스럽다.


돌이켜보면 행복의 조건은 여기저기 무수히 놓여 있다.
먹고사는 일상적인 일에 매달려 정신을 빼앗기고 지내느라고
참된 자기의 모습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우리가 이 풍진 세상을 무엇 때문에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내 몫의 삶인지를 망각한 채

하루 하루를 덧없이 흘려 보냈다.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것저것 챙기면서

거두어 들이는 일을 우선 멈추어야 한다.


지금 차지하고 있는 것과 지닌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소원했던 친구에게 이 가을날 편지를 쓴다든지 전화! 를 걸어 정다운
목소리로 안부를 묻는 일은 돈 드는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따지려는 각박한 세태이기 때문에,
돈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일이 행복해지는 비결이다.


가을밤이면 별빛이 영롱하다.
도시에서는 별 볼 일이 없을 테니 방안에 별빛을 초대하면 어떨까 싶다.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 아무나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주거공간에서
혼자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이라면, 시끄러운 텔레비전
스위치를 잠시 끄고 전등불도 좀 쉬게 하고,


안전한 장소에 촛불이나 등잔불을 켜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한때나마 촛불이나 등잔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주 고요하고 그윽해질 것이다.

 

 

 

그 누구라도 설령 부처라 해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줄 수는 없다.
깨달음은 우리 안에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과일에 씨앗이 박혀 있듯이
우리 마음속에 깨달음의 빛이 들어 있다.
우리 자신이 그것을 찾지 않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것은
깨달음의 씨앗을 키우는 일,
움트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갑자기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많은 인내를 갖고
긴 시간 동안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언젠가는
씨앗이 싹을 틔우게 된다.

커다란 침묵과 하나가 될 때
내가 사라진다.
내가 어디 있는가.

"나"라는 것은 아무 실체가 없다.
나는 없다.
가공적인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자유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자기 마음속에 지고 있는
갈등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갈등은 "나"라는 생각이 만들어 낸다.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자유롭다.

샤워를 하든 요리를 하든 청소를 하든
아무 잡념 없이 그 순간에 순수하게 몰입할 때
그것이 삶을 최대한으로 사는 일이다.

마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 앞에 서있는 것이다.

우리가 불행하다는 것
걱정 근심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살고 있다.
과거나 미래에 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살고 있다.
과거는 이미 강물처럼 흘러가 버렸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미래나 과거에 한눈을 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된다.

현실을 회피한다고 해서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현실
자신의 현재를 냉엄하게 들여다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자신을 묻고 들여다보는 침묵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빛이 있다.

자유로워졌을 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드러난다.
개체인 자기에서 전체적인 자기로의
변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 사람의 나로부터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속성
모든 이익과 얽혀 있는 나로 변신되는 것이다.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자기를 비우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되면 대립이 사라진다.
전체를 이루려면 개체가 무로 돌아가야 한다.

자기 자신을 등불 삼고
자신에게 의지해야 한다.
자기로부터 시작해 이웃과 세상에 도달해야 한다.

2022.01.19.

(009-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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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蘭), 그 여백의 아름다움

 

 

전통적인 우리네 옛 서화에서는 흔히

여백의 미를 들고 있다.

 

이 여백의 미는

비록 서화에서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끼리 어울리는

인간관계에도 해당될 것이다.

 

무엇이든지 넘치도록 가득가득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여백의 미가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두루 헤아려 보라

좀 모자라고 아쉬운 이런 여백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삶에 숨통이 트일 수 있지 않겠는가.

 

친구를 만나더라도 종일 치대고 나면

만남의 신선한 기분은

어디론지 새어나가고 서로에게

피곤과 시들함만 남게 될 것이다.

 

전화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우정의 밀도가 소멸된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바쁜 상대방을 붙들고 미주알 고주알

아까운 시간과 기운을 부질없이

탕진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고 자신의 삶을

무가치하게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한 인간관계에는

그립고 아쉬움이 받쳐 주어야 한다.

 

덜 채워진 그 여백으로 인해 보다

살뜰해질 수 있고 그 관계는 항상

생동감이 감돌아 오랜 세월을

두고 지속될 수 있다.

 

- 법정 스님 글 중에서 -

 

 

여백의 아름다움

마음을 멈추고 다만 바라보라

 

마음은 다만 마음이지

마음은 나가 아니랍니다

마음을 멈추고 다만 나를 바라보라.

 

무서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미워 죽겠다

죽겠다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지 나가 아니랍니다.

 

날개가 달린 비둘기가

네발 달린 고양이에게 물려 죽습니다.

 

비둘기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만 얼어붙어서 꼼짝을 하지 못합니다.

 

비둘기를 죽게 하는건

무서워서 꼼짝 할 수 없어라는 그 마음입니다.

 

비둘기가 마음을 두고 나를 바라본다면

날아서 도망을 갈 수도 있을 텐데도 말이죠.

 

그런 비둘기가 된 자살 인구들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 보다 많아진 시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마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한 때입니다.

 

멋지고 용기있고 패기있고 아름다운...

나를 보는 연습을 해봅시다.

 

- 틱낫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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