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있는 자의 덕목
 
 말(言)
말을 많이 하면 필요 없는 말이 나온다
양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번 생각하고 열라

 

 책(讀書)
수입의 1%는 책을 사는데 투자하라
옷이 헤어지면 입을 수 없어 버리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그 위대한 진가를 품고 있다

 

 노점상
할머니 등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
깎지말라 그냥 돈을 주면 나태함을 키우지만
부르는대로 주고 사면 희망과 건강을 선물하는 것이다

 

 웃음(笑)
웃는 연습을 생활화 하라
웃음은 만병의 예방약이며 치료약이며
노인을 젊게하고 젊은이를 동자(童子)로 만든다

 

 TV(바보상자)
텔레비젼과 많은 시간 동거하지 말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 텔레비젼에 취하면
모든게 마비 된 바보가 된다

 

 성냄(禍)
화내는 사람이 언제나 손해를 본다
화내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며
아무도 가깝게 오지 않아서 늘 외롭고 쓸쓸하다

 

 기도(祈禱)
기도는 녹슨 쇳덩이도 녹이며
천년 암흑 동굴의 어둠을 없애는 한줄기 빛이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기도는 자성을 찾게하며 만생을 유익하게 하는 하나의 묘약이다

 

 이웃(隣)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 봐야 한다

 

 사랑(慈愛)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 낮춤이 선행된다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 말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온는데 칠십년 걸렸다.

 

 멈춤(止觀)
가끔은 칠흑같은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라
마음의 눈으로 마음의 가슴으로
주인공이 되어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나...
어디로 가나...
조급함이 사라지고
삶에 대한 여유로움이 생기나니...

 

부처자리와 중생자리|마음공부 생활수행

법상 | 조회 371 |추천 2 |2019.02.16. 12:49 http://cafe.daum.net/truenature/7qUb/338 


우리의 두 눈으로 모든 대상들이 끊임없이 보여집니다.

억지로 보려고 애쓰지 않더라도, 이 보는 작용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저절로, 있는 그대로 보이는 작용을 '보는 작용', 혹은 '보는 놈' 혹은 '첫 번째 자리에서 본다', 혹은 '있는 그대로 본다', '분별없이 본다', 정견(正見)한다', '중도로 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첫번째 자리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있는 그대로 보일 뿐! 이지만, 우리는 곧장 그 대상에 대해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이름을 붙이고 분별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분별해서 본다', '의식으로 본다', '안식으로 본다', 두 번째 자리에서 본다,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 왜곡해서 본다, 있는 그대로를 자기식대로 해석해서 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첫 번째 자리에서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작용이 곧 말로 하자면 불성의 작용이고, 자성이 보는 것이며, 부처로써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두 번째 자리에 떨어져서 대상을 해석하고 분별하고 좋거나 나쁘다고 나눈 뒤에, 좋은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을 버리려고 애쓰기 시작하는 등의 취사간택심이 시작되면서, 본래 부처였던 우리가 곧장 중생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온갖 문제가 생겨나고, 취해야 하고 버려야 할 일들이 생겨나고, 얻지 못해 괴롭고, 거부하지 못해 괴로운 등의 온갖 문제가 생겨납니다.

대상은 있는 그대로일 뿐이지만, 우리의 분별, 견해, 중생심이 대상을 좋거나 나쁜 것으로 분별하고 그것이 옳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중생이 중생인 이유입니다.

첫 번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때, 아무런 문제도 없고, 지금 이대로 모든 것은 본래 완전했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은 첫 번째 자리와 두 번째 자리 중 어디에 계십니까?
..........

2월 10일 금련사 일요법회 설법
https://youtu.be/FYyw6ArWpQc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개울가에 앉아 무심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때일 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세월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며 변한다. 인간사도 전 생애의 과정을 보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지나가는 한때의 감정이다. 이 세상에서 고정불변한 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이란 내 자신이 지금 당장 겪고 있을 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런 일도 지내 놓고 보면 그때 그곳에 그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이 세상일에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우리 스스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 다른 한편 이 다음에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다. 이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우리 모습은 결정 된다. - 법정스님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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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토지사랑모임카페
글쓴이 : 인제토지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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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 네 가지 소중한 지혜

제행무상(諸行無常)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형태 있는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
나도 꼭 죽는다. 라고 인정하고 세상을 살아라.
죽음을 감지하는 속도는 나이별로 다르다고 한다.
청년에게 죽음을 설파한들 자기 일 아니라고 팔짱을 끼지만,
노인에게 죽음은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림과 같나니
종교, 부모, 남편, 아내, 누구도 그 길을 막을 수 없고,
대신 가지 못하며, 함께 가지 못한다.
하루 하루, 촌음(寸陰)을 아끼고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헤어짐이 세상사 법칙이요 진리이다.
사랑하는 사람, 일가친척, 남편, 부인, 자식, 명예, 부귀영화,
영원히 움켜쥐고 싶지만 하나 둘 모두 내 곁을 떠나간다.
인생살이는 쉼 없는 연속적인 흐름인 줄 알아야 한다.
매달리고, 집착하고, 놓고 싶지 않는 그 마음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며 만병의 시작이니,
마음을 새털같이 가볍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운 사람, 싫은 것, 바라지 않는 일, 반드시 만나게 된다.
원수, 가해자, 아픔을 준 사람, 꼴도 보기 싫은 사람도 만나게 되며,
가난, 불행, 병고, 이별, 죽음 등 내가 피하고 싶은 것들이

나를 찾아온다. 세상은 돈다.
빙글빙글 주기적 사이클로 나도 자연의 일부인 만큼

사이클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이를 '라이프사이클(life cycle)'이라한다.
현명하고 지혜롭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은 능히 헤쳐 나가지만
우둔하고 어리석고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은 그 파도에 휩쓸리나니
늘 마음을 비우고 베풀며 살아라.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고자, 얻고자, 성공하고자, 행복하고자,
하지만 세상살이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지면 고통도 없고 좋으련만
모든 것은 유한적인데 비해 사람 욕심은 무한대이므로
아무리 퍼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와 같다.
그러므로 욕심덩이 가득한 마음을 조금씩 덜어 비워가야 한다.
자꾸 덜어내고 가볍게 할 때, 만족감, 행복감,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마치 형체를 따르는 그림자와 같이……

☞《지혜의 향기》중에서 ☜







출처 : 화 목 한 사람들
글쓴이 : 안개꽃1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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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르막 길과 내리막 길 
 
우리 앞에는 항상 ...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놓여 있다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각자 삶의 양식에 따라서...
오르막길을 오르는 사람도 있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사람도 있다

 
오르막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 길은 인간의 길이고 꼭대기에 이르는 길이다 
내리막길은 쉽고 편리하지만...
그 길은 짐승의 길이고 구렁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만일 우리가...
평탄한 길만 걷는다고 생각해 보라
십 년 이십 년 한 생애를
늘 평탄한 길만 간다고 생각해 보라...
그 생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그것은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오르막길을 통해 ...
뭔가 뻐근한 삶의 저항 같은 것도 느끼고
창조의 의욕도 생겨나고
새로운 삶의 의지도 지닐 수 있다

  

오르막길을 통해...
우리는 거듭 태어날 수 있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는 거듭 태어날 수 없다. 

<법정 스님/산에는 꽃이 피네中>

향기로운 세상


 


출처 : 향기로운 세상
글쓴이 : 수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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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懷讓)은 도일(道一)의 그릇을 보시고는 물었다.


대덕은 좌선(坐禪)하여 무엇을 하려 하시오?”


도일이 말했다.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회양은 벽돌을 하나 가져와 그의 옆에서 갈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도일이 물었다.


벽돌을 갈아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 하오.”


벽돌을 간다고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벽돌을 갈아 거울이 되지 못한다면, 그대는 좌선을 한다고 어찌 부처가 되겠습니까?”


이에 도일이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가 끄는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수레를 때려야 할까요? 아니면 소를 때려야 할까요?”


도일이 대답이 없자, 회양이 말했다.


그대는 좌선을 배우려고 하십니까? 좌불(坐佛)을 배우려고 하십니까? 만약 좌선을 배우려고 한다면, 선은 앉거나 눕는 것이 아닙니다. 좌불을 배우고자 한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아닙니다. 머묾이 없는 법에서는 취하거나 버림이 없어야 합니다. 그대가 좌불을 따르고자 한다면 그것은 곧 부처를 죽이는 것입니다. 만약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이 이치에 통하지 못할 것입니다.”

  

도는 닦을 필요가 없다. 더럽히지만 말라. 분별심으로 조작하고 추구하는 것이 더럽히는 것이다.


도를 알려는가? 평상심이 도다. 평상심은 조작하지 않고, 옭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취하고 버리지 않는 것이다. 또한 단멸하거나 항상 하는 것도 아니고, 범부와 성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전에서는 이를 두고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것이 바로 보살의 행이다라고 했다.

 

모든 것이 전부 마음이다. 온갖 것이 전부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니 마음이 만물의 근본이다. 진리를 떠나서는 설 곳이 없다. 서 있는 곳이 바로 진리요, 모든 것이 자신의 본바탕이다. 모든 것이 전부 불법이고 해탈이다.

 

그대들 각자 자신의 마음이 부처임을 믿으라.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

 

죄의 자성이 공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느 순간에도 죄는 없으니, 자성이란 본래 없기 때문이다. 삼계는 오직 마음일 뿐이며, 삼라만상은 이 마음의 흔적일 뿐이다.

 

선에 머물고 악을 제거하며, 공을 관하고 선정에 들어가는 것은 모두 조작하는 것일 뿐이다. 밖으로 치달려 구한다면 더욱 멀어질 뿐이다.


[마조어록]

 

도불용수 단막오염(道不用修 但莫汚染), ‘도는 닦을 필요가 없으니 더럽히지만 말라는 초기 조사선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이를 남악회양(南岳懷讓) 선사는 좌선을 열심히 하고 앉아 있는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에게 벽돌을 가는 비유와 소가 끄는 수레의 비유를 통해 설하고 있다.


소가 끄는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지 수레를 때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마음을 닦고자 하는 이가 앉아 있는 몸의 모양을 통해 깨닫고자 한다면 그것은 수레를 때리는 것과 같다.


이 공부는 마음공부지 몸의 공부가 아니다. 마음공부는 애써 좌선만을 고집할 것도 없고, 염불이나 진언이나, 특정한 수행법만을 고집할 이유도 없다. 마음으로 하는 공부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방법이나, 앉는 방식, 수행법, 그런 수단과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아니니 특정한 모습을 오래 취한다고 해서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참된 이치를 모르고 오로지 앉아서 좌선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부처를 죽이는 것이다.


회양의 가르침 덕분에 깨달음을 얻고, 10년 동안 회양선사를 모시면서 마조의 깨달음은 더욱 깊어 갔다.


이후 마조는 도는 닦을 필요가 없으니 다만 더럽히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더럽힌다는 것은 곧 분별심으로 조작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조작과 추구가 끝나지 않는 이상 깨달음은 오지 않는다. 그 모든 추구와 조작이 완전히 쉬어질 때 문득 그것은 드러난다.


도는 거창하고 위대하고 신비로운 어떤 곳에 있지 않다. 평상심이 그대로 도다. 조작하지 않는 지금 이대로의 마음,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의 자연스러운 무분별의 상태, 취하고 버리지 않는 할 일 없는 무위의 상태다. 그 자리는 항상 하거나 끊어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범부와 성인이 따로 나뉘지도 않는 참된 불이법의 자리다. 범부와 성인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참된 보살이 아니다.


이것과 저것 중에 어느 하나 속에 마음,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 모든 것이 똑같은 하나의 마음이다. 마음이 곧 만물의 근원이다. 진리 아닌 곳은 어디에도 없다. 진리를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진리가 아닌 곳에는 단 한 시도 발을 내디딜 수조차 없다.


서 있는 바로 이 자리가 곧 바른 진리요 자신의 본바탕이다. 모든 것이 전부 똑같이 불이법으로써 둘이 아닌 불법이고 해탈이다. 이 자리에서는 어느 하나 소외되고 차별되는 것이 없다. 일체법이 그대로 불법이다.


출처 : 목탁소리
글쓴이 : 법상 원글보기
메모 :

낯선 여행지에서
문득
나라는 사람이
낯설게 느껴진 적은 없는가.

과거의 삶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채,
지금 여기에는
나도 알 수 없는
전혀 낯선 누군가가 서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런 '모름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순간이며
성스러운 순간이다.

바로 그 모르는 순간 속에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문득 문득
알 수 없는 낯선
모름의 순간으로 떠나 보라.

불현듯,
과거에 만들어 놓은
모든 나의 정체성을 떠나보내고
알수없는 모르는 자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너는 누구냐'

“오직 모를 뿐!”

출처 : 목탁소리
글쓴이 : 법상 원글보기
메모 :

불교 공부하지 말라


도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만약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불법을 모두 다 공부하지 말라.

오직 본래로 구할 것 없고 집착할 것이 없음을 배우라.


學道人  若欲得成佛  一切佛法總不學  唯學無求無着

학도인    약욕득성불    일체불법총불학   유학무구무착


- 황벽(黃蘗)선사 『전심법요(傳心法要)』

 

 

                        일러스트=박상훈  ps@chosun.com


   사람들은 불교를 믿고 공부하고 수행하는 목적을 저마다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혹자는 성불(成佛)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중생들을 교화하는 보살행이라고도 한다. 또는 죽음을 면하는 생사해탈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보살행이든 생사해탈이든 성불을 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불이 목적이라고 하는 편이 정답에 가깝다.


   장구한 불교 역사의 산맥에서 황벽(黃蘗, ?~850) 선사는 그 높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대단히 높은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임제(臨濟, ?~867) 선사와 같은 희대의 인물을 길러낸 사람이기도 하다. 불교사상이 발전과 진보를 거듭했다지만 아직은 황벽 선사와 임제 선사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황벽선사는 『전심법요』에서 불교의 지상 목표인 성불에 대해 매우 명쾌하고도 정곡을 찌르는 가르침을 준다.    


   ‘도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도(道)는 불교의 최종 목적인 성불이며 해탈이며 열반이며 불도(佛道)며 깨달음이다. 황벽 선사는 그러한 도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만약 부처가 되고 싶다면 일체의 불법을 공부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불교의 거의 모든 가르침은 성불을 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방편에는 사성제·팔정도·십이인연·육바라밀·참선·기도·간경·염불·주력 등 많은 것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방법을 통해 수행해야만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황벽 선사의 말은 어떻게 되는가? 도대체 부처는 무엇인가? 황벽 선사의 가르침대로 간단히 표현하면 부처란 사람들의 본래 모습이다. 아무 것도 더 보탤 것이 없는 이미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가 완전무결한 부처님인 것이다. 현재의 인간 그대로가 완전한 부처이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뭔가 새롭고 다른 모습의 부처를 상상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이해를 하든 못 하든 사람은 그 자체로 원래부터 부처이다. 고려청자를 알아보고 국보 지정하여 박물관에 진열을 해 두든, 아니면 그 가치를 몰라보고 시골구석에서 개 밥 그릇으로 사용하든 고려청자는 언제나 고려청자이듯이.


   예컨대 갓 태어난 어린아이도 사람이며 80, 90된 노인도 사람이다. 눈이 하나 없어도 사람이며 다리가 하나 없어도 사람이다. 지극히 선한 사람이나 극악무도한 악한 사람이나 건강하거나 몹쓸 병에 걸렸거나 어떤 외적인 차이가 있어도 모두 사람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동일하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든 부처라는 점에서 모두 똑 같다. 계를 지키거나 파계를 하거나 불교를 알거나 모르거나 아니면 불교를 사탄이라고 비방하는 사람까지도 모두가 부처님이다. 수행의 덕화가 매우 높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도 실은 똑같은 부처님이다. 모든 사람들이 본래로 이미 다 갖추고 있는 무한의 생명과 공덕과 복덕을 생각하면 석가와 일반인의 차이도 있으나 마나 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황벽 선사는 “성불하고자 하거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서 더 이상 공부하지 말라. 누구든 자신이 아닌 밖의 것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이미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완전무결한 부처님이다.”라고 한 것이다. 인간 개개인이 이미 갖추고 있는 부처의 존엄성을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는 길만이 세계평화의 열쇠이며 인간불교(人間佛敎) 시대의 대안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너럭바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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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不是風動  不是幡動  仁者心動

불시풍동   불시번동    인자심동


『육조단경』

 

 


   6조 혜능(慧能) 대사가 인종 법사(印宗法師, 627~713)의 회상에 찾아갔을 때, 두 스님이 바람과 깃발[幡]을 보고 다투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깃발[幡]이 움직인다.’고 하였다. 이에 6조가 말하였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그러자 두 스님이 깜짝 놀랐다.


   이것은 불교 역사상 드높은 산봉우리를 이루며 빛을 발하고 있는 6조 혜능의 이야기다. 중국 신주(新州)의 한 촌락에 노(盧)씨 성을 가진 젊은 나무꾼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땔나무를 여관집에다 팔고 돌아서는 길에 경전을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당히 마음을 어디에 머물지 말라[應無所住而生其心]”는 말이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혜능은 자신도 모르게 온 세상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을 느꼈다.


   혜능은 경을 읽은 스님을 찾아 인사하고 비로소 세상에 불교가 존재하는 것을 알았다. 혜능은 그 스님의 주선으로 5조 홍인(弘忍) 스님에게로 출가를 하였고 그곳에서 법맥을 전수받았다. 이후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냥꾼들 속에서 숨어 살다가 당나라 고종(高宗, 649년 즉위~34년 재위) 때 비로소 광주의 법성사(法性寺)를 찾아갔다.


   그 때 마침 인종 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두 스님이 각자의 불교적 안목으로 다투는 일이 있었다. 혜능은 이 다툼에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깃발이 있고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그 곳에 있던 사람이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이다. 사람은 마음을 가진 존재다. 만약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깃발도 한 원인이며 바람도 한 원인이며 사람이 그곳에 있어서 마음으로 보고 느낀 것도 한 원인이다.


   혜능 스님이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라고 한 것도 당시의 불교적 소양으로서는 대단히 신기한 말일지 모르나 참으로 꼭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적지 않다. 모두가 각자의 몫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출처 :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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