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 천년의 지혜 '직지사'

 

작성자녹림처사|작성시간23.05.27|조회수15목록댓글 0

♣ 절에가면 절을 하지요 ♣

 

오늘은 불기2567년(2023)년 석가탄신일 이지요

금년은 대체공휴일이 적용되어 3일 연휴가 되었어요

그런데 사찰을 왜 절이라 부를까요?

절은 스님을 비롯한 모든 불자들이 진리를 깨닫고자 수행하는 곳이며,

또한 수행자들이 많은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여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절을 한자로는 가람(伽藍)이라 하며, 사(寺)라고도 부르고 있어요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찰에가면 부처님께 절을 올리지요

그래서 사찰에가면 절을 올린다해서 "절"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이유는

경배의 대상으로 그 분에게 존경한다는 의미를 표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부처님께 절을 한다해서

중구난방(衆口難防)식으로 아무렇게나 하는것이 아니고

절을 하는 횟수와 그 나름의 뜻이 있다 하지요

 

우선 3배를 시작으로 53배가 있으며 다음으로는 108배가 있고

그 다음은 1000배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3000배가 있다 하지요

 

3배를 드리는 것은

삼보(三寶 : 불,법,승)에 귀의하여 탐심·진심·치심의 삼독심(三毒心)을 끊고

삼학(三學 :戒 定·慧)을 닦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고

53배는 참회 53불(佛)에 대한 경배이며

1천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겁(賢劫)의 1천 부처님께 1배씩

절을 올리는 것이라 하지요

그리고 3천배는 과거·현재·미래의 3대겁에

3천 부처님께 1배씩의 절을 올리는 예법이지요

 

그렇다면 108배는 무엇일까요?

절에 가면 많이들 108배를 하는데 왜 108배를 하는지 알아 보기로해요

우리 인간은 살아감에 있어서 많은 번뇌를 느끼고 있는데

이 번뇌의 수가 108가지라 하지요

그래서 중생의 근본번뇌을 108번뇌라 한다 하는군요

 

이 108번뇌를 자세히 설명하면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이 서로 만날 때

생겨나는 것인데 다시말해

눈[眼]· 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의 육근(六根)이

색깔[色]·소리[聲]·향기[香]·맛[味]·감촉[觸]·법[法]의 6진(六塵)을 만났을때

좋다[好]·나쁘다[惡]·좋지도 싫지도 않다[平等]는 세가지 인식작용을 일으킨다 하지요

 

그리고 다시 좋은것은 즐겁게 받아들이고[樂受]

나쁜 것은 괴롭게 받아들이며[苦受]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것에 대하여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게 방치하는[捨受] 것이지요

그러니까 6근과 6진이 하나하나가 부딪칠때 좋고[好]·나쁘고[惡]·평등하고[平等]

·괴롭고[苦]·즐겁고[樂]버리는[捨] 여섯 가지 감각이 나타나기 때문에

6x6=36 즉 서른여섯가지의 번뇌가 생겨나게 된다 하지요

 

이 36번뇌를 중생은 과거에도 했었고 현재에도 하고 있고 미래에도 할 것이기 때문에

6x6=36에 과거, 현재, 미래의 3을 곱하면 108번뇌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즉 6 x 6 x 3 = 108개가 되는 것이지요

 

108번뇌 !!

이것은 우리의 흩어진 마음을 뜻한다 하지요

하나로 모아진 마음이 아니라 바깥으로 흩어진 마음

근원을 돌아보는 마의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흘러 내려가는 유전(流轉)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중생들은 108번뇌와 깊이 관련이 있다 하네요

 

108번뇌는 108번의 절을 하는 동안 스스로 순화되어 삼매의 힘으로 변화되고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심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환멸(還滅)의

시간을 만들수 있다 했어요

그 마음이 번뇌를 따라 밖으로 밖으로 뿔뿔이 흩어질때는 무능에 빠지고

끝없는 생사의 유전 속으로 전락하고 말지만

번뇌 속으로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을때 삼매는 다시 되살아나고

원래의 무한 능력이 우리에게서 한번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옛말에

"108배로써 108번뇌를 끊는다"라고 했어요

그러나 번뇌는 끊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하나로 모을때 번뇌는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고

108배의 절은 번뇌를 끊는 의식이 아니라

깊은 삼매(三昧)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라 하지요

 

그리고 1000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겁(賢劫)의 1천 부처님께

1배씩 절을 올리는 것이며

3000배는 과거, 현재, 미래의 3대겁에 출현하는 3천 부처님께

1배씩의 절을 올리는 예법이라 하네요

 

"절은 곧 하심(下心)이다" 라고 했지요

또한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라 했어요

그릇은 기울어져야 속에 찬것이 비워지는 것처럼

몸을 낮추어 겸손한 자세를 갖추면

야만심, 자존심, 이기심, 선입관념, 고정관념을 쏟아낼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불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참회의 구체적 행동이기도 하지요

 

연꽃이 더러운 진흙 속에서 아름답게 꽃을 피우듯

무지와 어둠에 쌓인 중생의 마음을 닦아 연꽃처럼 부처가 되는것

이것이 바로 깨닮음이요 불심(佛心)인 것이지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연꽃 모양의 '연등'을 만들어 사용한다 하지요

 

오늘이 부처님 오신날 이지요

이번 부처님 오신날에는

부디 불심(佛心)에서 이르는 자비의신심(信心)을 이루시고

부처님의 공덕(功德)을 많이 쌓으시기 바래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一松) *-

 

▲ 김천 황악산자락에 위치한 직지사(直指寺일주문

손가락 하나로 설계하여 지었다는 직지사.....

 

▲ 직지사 비로전 천불상 ...

▲ 직지사 명부전

명부전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부모님 영정과 위패도 모셔져 있어요

불교신자라 살아생전 자주 들리셨다 하네요 ...

 

 

'인연과 정신세계 > 사찰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주 천보산 회암사 檜巖寺  (0) 2022.06.13
'비봉산 봉림사 飛鳳山 鳳林寺  (0) 2021.02.14
운주사  (0) 2021.01.14
불갑사 [상사화]  (0) 2020.11.18
천안 광덕 광덕사 가을  (0) 2020.11.05



하찮은 것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생각을 먼저하고 행동을 나중에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언제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만 친절하고 즐겁고
동정적이고 관심을 가져주고
이해하는 삶을 살도록 하세요.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무슨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을
나무라지 마세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고
금방 잊어버리는 겁니다.
그래봐야 오늘 하루 뿐 인걸요.

누가 알아요.
그러다가 아주 좋은 날이 될지 가급적 약속을
하지 말되 일단 약속을 했다면 성실하게 지키세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말이죠.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그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믿게 하세요.
즐거워하세요.
당신이 하찮은 일로 아파하고 실망함으로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울해지지 않도록 하세요.

이 세상에 마음의 짐을 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존중하세요.
최선을 다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얻어지는 성공이 더욱 달콤한 법이죠.

지금 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쓸모 없는 날은 웃지 않는 날입니다.

믿음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의심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자신감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두려움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희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낙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항상 새롭게 항상 즐겁게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고

 

 

언제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UHD 4K

 

#시낭송 '다 바람 같은거야' - 묵연 스님 -

 

다 바람 같은 거야
뭘 그렇게 고민하는가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순간이야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바람이야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야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돌지 다 바람이야

이 세상에 온 것도 바람처럼 온다고
이 육신을 버리는 것도
바람처럼 사라지는 거야


가을바람 불어
곱게 물든 잎을

떨어뜨리 듯 덧없는 바람불어
모든 사연을 공허하게 하지
어차피 바람뿐인 걸

굳이 무얼 아파하며 번민하나
결국 잡히지 않는 게 삶인걸
애써 무얼 집착하나 다
바람이야

그러나 바람자체는 늘 신선하지
상큼하고 새큼한 새벽바람 맞으며
바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바람처럼 살다가는 게 좋아...

 


- 좋은 글 중에서-

 

 

나이든 부모님을 버리고 오는 고려장 진짜 존재했을까?

 

바로 잡아야 할 역사, 고려장

 

작성자녹림처사|작성시간23.01.07|조회수9

 

 

고려장과 경노효친 사상 

 

옛날 고려시대때는 고려장(高麗葬)이란 장제(葬祭)가 있었다고 하지요

고려장(高麗葬)은 사람이 늙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산 채로 산이나 들에 내다 버리는 장제를 말하고 있어요

 

그러나 전설처럼 내려와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이 풍습은 

어떤 고려 문헌에서도 실재했다는 기록은 찾아볼수 없다고 하지요

다만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동기는 유래로 구전되고 있어요

 

옛날 몽골제국의 원나라때 고려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다하여

이를 시험하고자 원 황제가 친히 옥대(玉帶)를 하사하였는데

황제를 알현할때는 반드시 이 옥대를 허리에 차고 오라 했지요

 

그런데 이 옥대를 허리에 차려면 옥대속에 뚤린 구멍속으로 줄을

넣어야 하는데 1자(30cm)가 넘는 옥대의 구멍속이 일정치 않고

크게 구불구불하여 줄을 끼울수가 없었어요

실에다 풀을 먹여 빳빳하게 하여 끼워도 중간에서 꺽여버리고

가는 철사줄을 이용해서 끼우려해도 중간에서 구부러져 끼울수가 없었지요

머리좋기로 유명한 명재상들이 몇날몇일을 고민해도 도저히 방법이 없자

전국에 방(榜)을 붙였어요

 

"이 옥대 구멍속에 줄을 끼우는 자는 벼슬과 함께 큰 상을 내리겠노라"

그러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혜로운 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으나

모두들 실패하고 말았지요

 

 

그러던 어느날 백발이 성성한 노익장이 허리에 조롱박을 차고 나타나

대궐문을 두드리자 행색이 남루하여 쫏아 버렸는데

"할수없군!! 옥대에 줄을 끼워주러 왔더니 ..." 하면서 돌아 가는데

군졸이 쫏아나와 "지금 무어라 했소? 옥대에 줄을 끼울수 있단 말이오?" 하자

"글쎄 ~ 어렵긴해도 방법이 없지는 않지!!" 하는 거였지요

 

그래서 노익장을 대궐 안으로 모셨는데

옥대 한쪽 끝에다 꿀을 바르고 또 한쪽끝에는 허리에 가는 실을 맨 꿀벌을

구멍속으로 디밀자 벌이 꿀을 먹으려고 꿀을 바른쪽으로 기어가

결국에는 옥대에 실을 끼게 되었어요

 

벌에 맨 실은 아주 가는 실이었으나 그 실에다 조금 굵은 실을 매고

또 나중에는 단단한 줄을 매어 당기니 완벽한 줄을매게 되었지요

이 소식을 전해들은 고려왕은 친히 노익장에게 진수성찬을 베풀고

벼슬을 내리려 하자 극구 사양하고 홀연히 사라 졌어요

 

그런후 고려의 사신이 원나라 황제를 알현할때 그 옥대를 매고 나가니

"과연 고려는 지혜로운 나라로다!!" 하면서

이번에는 내가 3가지를 선물 할 터이니 궁굼한것 세가지를 알아오라 하였지요

 

첫째는 말 두필을 줄터이니 어떤말이 새끼이고 어떤말이 어미인지 알아오고

둘째는 말위에 실린 다섯자 남짓한 각진 나무토막의 어느쪽이 밑둥인지 알아 오고

셋째는 커다란 어미 코끼리 한마리를 줄터이니 그 코끼리 무게를 달아 오라 하였어요

사신은 황제의 명을 받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데 걱정이 태산같았지요

자신이 생각해도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이었어요

 

고려왕은 만조백관을 불러놓고 이 문제를 풀려고 각고(刻苦)의 노력을

경주(傾注) 하였으나 결국 문제를 푸는 사람이 없었어요

두마리 말을 세워놓고 아무리 보아도 똑 같은 암놈인데

어떤늠이 새끼인지 어떤늠이 어미인지 알 도리가 없었지요

또 다섯자 길이에 사각으로 잘 다듬어진 나무 토막의 위 아래를

도저히 알길이 없었어요

 

더욱이 산처럼 커다란 코끼리를 어떤 방법으로 무게를 달수 있단 말인가?

고민(苦悶)하고 고민하였지만 모두가 허사(虛事)였어요

할수없이 이번에도 전국에 방(榜)을 붙이고 지혜로운 자를 찾았지요

그러나 자칭 제갈공명이라는 자들이 구름처럼 몰려 왔으나 모두다 허사였어요

그러자 지난번에 옥대에 줄을 끼운 노익장을 찾아오라는 지엄하신 왕명이

내려졌으나 그 노익장의 행방이 묘연(杳然)하여 찾을길이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착하고 어진 한 선비가 찾아와 그 문제를 풀었어요

첫 번째 문제는 말 두마리를 3일 동안 굶겼다가 먹이를 주면 먼저 먹는 말이 새끼이고

두 번째 문제인 나무토막은 잔잔한 물에 띄우면 조금이라도 물속으로 잠기는 쪽이 밑둥이며

 

세 번째 문제는 코끼리를 커다란 배에 실어 강물에 띄우면 코끼리 무게가 있어 배가 물에 많이 잠기는데

그때 물이 닻은곳을 표시한후 코끼리를 내리게 한후 다시 머리통만한 돌을 표시한곳까지 채운 다음

그 돌을 달면 코끼리의 무게를 알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과연 명쾌한 답이 었어요

"오!! 지혜롭도다~ 총명한 인재를 찾았도다!! " 하며

임금이 국난을 물리친 선비에게 큰 상을 내리며 벼슬을 내리려 하자

선비가 갑자기 왕앞에 부복하며 사죄를 청하였어요

 

사실인즉 저희 모친이 늙어 고려장을 해야만 했지만 차마 노모를 버릴수 없어

고려장을 한다는 소문만 낸후 몰래 집안 뒤방에 숨기고 모셨는데

모친이 적적 하실까봐 자주 들어가 세상돌아가는 일들을 말씀드렸더니

어머님이 그 문제의 .답을 알려 주셨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니까 문제를 푼것은 젊은 선비의 지혜가 아니라 

연로하신 모친의 지혜였던 것이지요

 

"상감마마!! 국법을 어긴 이 죄인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국왕은 잠시 생각에 잠긴듯 하다가

"아니다!! 그간 과인이 어리석었도다

만조백관은 들으라!!

지금 이 시각 이후 부터는 고려장을 폐지(閉止)하노라

만 백성은 모두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세세토록 영위(營爲)케 하라!!"

그러면서 이 선비의 효심을 본 받으라 했어요

 

그래서 고려장이 없어 졌다는 유래가 전설이 되었다 하지요

이때부터 노인들을 존중하는 풍조가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노인들의 오랜 경륜에서 나오는 지혜는 그 누구도 따를자가 없어요

그 뒤부터 효친사상과 경로사상이 뿌리 내리기 시작 하였다 하네요

 

효친(孝親)이란 ‘제 어버이를 공경하고 떠받드는 것’을 말하고

경로(敬老)란 ‘효친의 마음을 이웃 어른이나 노인들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효친이나 경로는 그 공경하는 대상만 다를 뿐 공경하는 태도와 생활은 같은 것이지요

 

넓은 의미로 ‘모든 어른들을 공경하고 그분들에게 효(孝)를 행하라’는 뜻이지요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 유교사상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으므로

경로효친 사상은 꽃을 피우게 되었어요

유교에서는 효를 "만가지 덕(萬德)의 근원이요 백가지 행실(百行)의 원천"이라 했지요

모든 행동의 근본이 효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논어에서도 어버이를 잘 섬긴 다음이라야 유교의 중심사상인 '인(仁)'을 이룰수 있다고 했어요

 

 

 

또 유가의 주요 경전인 십삼경(十三經)의 하나인 효경(孝經)에서도

“효는 백가지 행실의 근본이다”라고 했고

공자(孔子)는 “불효보다 더 큰 죄는 없다”고 했지요
우리의 조상들은 ‘효(孝)는 지상의 가장 자랑스러운 덕목’으로 보았어요

그래서 ‘경로 효친’은 인간이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며

우리의 자랑스런 미풍양속(美風良俗)이고, 전승시켜 나가야 할 값진 유산이지요

 

그러나 근대 이후 한국이 서양 문물을 접하게 되고,

특히 8·15 광복 이후 자유·평등을 기치로 하는 민주주의적 사고 방식이 지배함에 따라

재래의 전통적 윤리 규범은 전근대적 봉건 도덕이라 하여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시작 했으며

삼강오륜(三綱五倫) 가운데 특히 부자·군신의 관계를 규정하는 덕목인 ‘효(孝)’와 ‘충(忠)’은

민주주의 정신에 반하는 가부장적 봉건 도덕(家父長的封建道德)으로

타파의 대상이 되다시피 했어요

 

더욱이 IMF가 오면서 노인들이 퇴출 대상이 되면서 경로효친 사상은 땅에 떨저지고 말았지요

이때부터 우리 사회는 경노효친(敬老孝親) 사상은 사라지고

노인은 그저 편견(偏見)과 아집(我執)만 있을뿐

이 사회의 골치거리로 치부(恥部)되고 말았어요

 

그렇지만 부모없는 자식은 없는 것이며 젊음 또한 쉽게 늙게 마련이지요

세대간에 격차란 윗사람을 존경하지 않는것에서 부터 출발하지요

할아버지의 말씀 아버님의 말씀에 귀 기우리지 않으면 이는 불효한 자식이지요

어느 조부(祖父)나 부모(父母)가 자식을 나쁘게 가르치겠어요

그래서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 했지요

 

늙음은 병(病)이 아니지요

다만 세월이 야속(野俗)할 따름이지요

세월앞에 장사 없듯 젊음도 길지 않아요

그러나 늙었다 하여 모든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오랜 경륜에서 오는 풍부한 지혜는 

노인들만이 가질수 있는 자랑 일수도 있어요

 

 

 

옛 고사성어 중에 예의염치(禮義廉恥)란 말이 있지요
예절과 의리와 청렴과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를 말하는 것인데

예의 염치의 근본은 부모를 공경하는데서 부터 시작 하고 있어요
예의(禮義)는 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과 의리를 이르는 말이고
염치(廉恥)는 체면을 차릴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이르는 것이지요

이를 다시 풀어보면
예(禮)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道理)이고
의(義)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하여야 할 바른 의리(義理)이며
염(廉)은 청렴, 결백, 검소, 곧고 바름을 말하고
치(恥)는 부끄러움과 창피함, 욕된 것을 아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네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어떤일이 벌어지는지를 아주 절묘하게 설파하고 있지요

4대 덕목인 ‘예의염치(禮義廉恥)’ 중에서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게 되고

둘이 없으며 위태롭게 되며

셋이 없으면 뒤집어지고

 

모두 없으면 그 나라는 파멸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했어요
이로서 예의염치(禮義廉恥)만치 중요한 덕목이 없다 했지요
이처럼 예의염치는 우리 인간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아니할수 없어요

 

어느나라 어느사회이건

노인을 경시(輕視)하는 풍조가 만연(漫然)하면

그 나라는 반드시 쇠락(衰落)의 길을 걷고 말았지요

그래서 충효사상(忠孝思想)과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은 예의염치와 함께

그 나라의 존폐(存廢)와도 관련있는 중요한 덕목(德目)인 것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하지요

하루빨리 경로효친 사상이 되살아 났으면 좋겠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一松) *-

 

 

 

 

 

소중한 인연이기에 서로를 그리며 사랑을 합니다 동행 최성수

일산 호수공원 (대화의 문)

  

인간은 우연히

태어나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인연 또한

우연히 찿아 오는 게 아니랍니다.

 

그 인연을 통해 사랑을 하고

나눔을 통해 정이 드는거라고 합니다.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지켜보고 있기에

마음속 깊이 그 사랑을 품으면

기쁨이 두배로 차 오르고..

 

그리움으로 물 들이는 향기 조차

온 통 즐거움으로 가득 찰 테니까요

 

긴 기다림을 통해 맺어진

한 사람과의 인연이

시도 때도 없이 아론거리는 건

 

서로가 간절함으로

한 곳을

바라보게 하는 사랑의 힘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걸 통 째로 사로 잡혀도

하나도 슬프지 않을 밤 깊은 시간

 

혼자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채

그 사랑 앞에 잠이 들수 있는 건

 

수 많은 사람 중에 찿아든

소중한 인연이기에

서로를 그리며 사랑을 하기 떼문입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인연과 정신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은 다 바람 같은 거야  (0) 2023.03.15
고려장과 경노효친 ~~  (1) 2023.01.08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  (0) 2022.11.29
좋은 친구는 마음의 그림자처럼  (0) 2022.05.25
불변의 세가지 진리  (0) 2022.04.17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매서운

스승 노릇을 해야 한다.

 

우리가 일단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있는 물처럼

썩기 마련입니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다 나눌 것은 있습니다.

 

근원작인 마음을 나눌 때 불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 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나 자신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 수록

더 풍요로워집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함을 가저다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 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 라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찿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저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서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요

우주의 기운은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고 합니다.

 

 

- 법정 스님 -

 

 

 

이 영상을 보고나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게 됩니다 | 셀프메이드

 


사람이든 식물이든 물건이든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위치와 각도가 있습니다.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추하게 보이기도 하며
날카롭거나 부드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무 한 그루도
보기에 좋은 위치와 각도를 잡아 심는데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그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을 텐데
그것은 찾아보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방향
시각으로만 바라보면서 미워하거나 무시합니다.

사람은 그가 누구냐 인 것 보다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중요도와 의미가 크게 달라집니다.

오늘은 그를 어제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사람마다 다른 성격과
습관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새롭고 놀라운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 행복한 동행 중에서 -

 

대화의 문 (일산.호수공원)


(명상의말씀)이 세상에 내것은 하나도 없다(word of meditation)There is nothing mine in this world

 

날마다 새롭습니다.
우리의 나날은 늘 새로운 것입니다.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고
똑같은 날은 하나도 없습니다.

괴로워도 다른 괴로움이고
즐거워도 다른 즐거움이지

똑같은 괴로움
똑같은 즐거움이란 있을 수 없지요.

어제와 똑같은 호흡을 어찌
오늘도 들이고 내쉴 수 있겠어요.

같은 강물에서는 절대
두 번 목욕할 수 없다고 하듯 우리의 순간 순간은
새롭고 경이로운 것입니다.

세상을 살며 어느 한순간이라도
똑같은 순간을 경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같이 보려고 하고
똑같이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어제의 생각으로 오늘을 바라보며,
이전의 관념으로 지금을 판단하려 하고,
어제 만난 사람으로 오늘의 사람을 대하고,
이전의 사랑으로 지금의 사랑을 끼워
맞추려 하거든요.

이전에 들었던 가르침으로
오늘 듣고 있는 가르침을 가로막지 마세요.

어제 들었던 가르침을 다 놓아 버릴 수 있어야
오늘 전혀 새롭고 신비로운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다 아는 가르침이라고, 이미 경험했다고
전에 느껴 보았노라고 하지 마세요.

지금 느끼는 경험은 지금 듣고 있는 가르침은
오직 지금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것이니까요.

 

 

 

경이롭고 새로운 순간 법정스님4k

 


날마다 새롭습니다.
우리의 나날은 늘 새로운 것입니다.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고
똑같은 날은 하나도 없습니다.

괴로워도 다른 괴로움이고
즐거워도 다른 즐거움이지

똑같은 괴로움
똑같은 즐거움이란 있을 수 없지요.

어제와 똑같은 호흡을 어찌
오늘도 들이고 내쉴 수 있겠어요.

같은 강물에서는 절대
두 번 목욕할 수 없다고 하듯 우리의 순간 순간은
새롭고 경이로운 것입니다.

세상을 살며 어느 한순간이라도
똑같은 순간을 경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같이 보려고 하고
똑같이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어제의 생각으로 오늘을 바라보며,
이전의 관념으로 지금을 판단하려 하고,
어제 만난 사람으로 오늘의 사람을 대하고,
이전의 사랑으로 지금의 사랑을 끼워
맞추려 하거든요.

이전에 들었던 가르침으로
오늘 듣고 있는 가르침을 가로막지 마세요.

어제 들었던 가르침을 다 놓아 버릴 수 있어야
오늘 전혀 새롭고 신비로운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다 아는 가르침이라고, 이미 경험했다고
전에 느껴 보았노라고 하지 마세요.

지금 느끼는 경험은 지금 듣고 있는 가르침은
오직 지금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것이니까요.

 

 

 

일산 호수공원

 


오후의 입선(入禪)시간, 선실(禪室)에서 졸다가
대숲에 푸실푸실 싸락눈 내리는 소리를 듣고
혼침(昏沈)에서 깨어났다.
점심공양 뒤 등 너머에서 땔나무를 한 짐 지고
왔더니 고단했던 모양이다.
입춘이 지나간 지 언제인데 아직도 바람 끝은 차고
산골에는 이따금 눈발이 흩날린다.

아까 산길에서 비전(碑殿)에 사시는 성공(性空)
스님을 만났다.
80 이 가까운 노스님이 지게에 한짐 가득
땔감을 지고 가시는 걸 보고,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온유한 수행자의 모습에 숙연해졌다.
요즘은 밥짓는 공양주가 한 사람 들어와
다행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스님들
두 분이 손수 끓여 자시면서 지냈다.
정진 시간이 되면 거르지 않고 염불 소리가
뒤골에까지 메아리친다.
비전은 염불당(念佛堂)이기 때문이다.
성공 노스님은 한때 학인(學人)들에게
경전을 가르치는 강사(講師)로도 지낸 바 있지만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젊은 스님들한테도 또박또박 존대 말을 쓰면서
겸손을 지킨다.
이 땅에서 80년 가까이 살면 서도 아직 서울에
가보지 않았다는 흙 냄새 풍기는 인자하신 스님.
지난해 봄에는 상좌의 주선으로 제주도를
다녀오셨는데 어린애처럼 마냥 좋아라 하시면서
한라산을 오를 때는 그 걸음걸이가 젊은
상좌보다 앞서 펄펄 달리더란다.

큰절 임경당(臨鏡堂)에는 올해 여든 다섯 살이 되는
취봉(翠峰) 노스님이 계신다.
젊어서는 일본에 건너가 종립 대학에서
수학도 했고 몇 차례 주지 직도 맡아 지낸
노스님 인데, 근면과 단순과 청빈으로
후학들에게 몸소 모범을 보이는 대덕(大德)이시다.
스님은 사중(寺中) 물건과 개인의 소유에
대한 한계를 누구보다도 투철하게 몸에 익히고 있다.

한번은 감기 몸살로 앓아 누워 계실 때, 약을
달이느라 시중들던 스님이 생강을 한 뿌리 후원
원주실에서 가져다 썼다.
그걸 아시고 단박에 사다 갚으라고 하실 만큼,
공사(公私) 의 개념이 분명하시다.
주지로 계실 때에 사중 볼일로 출장시 사무실에서
주는 여비를 쓰고 나머지는 단돈 10원이 될지라도
반드시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요즘 사중 소임 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공중 물건을 가지고 마치 자기 개인 것이나
되는 듯이 함부로 사용하는 폐습이 있는데,
노스님의 그 같은 모범은 커다란 교훈이
아닐 수 없다.
90을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법당의 조석예불과
대중공양에 거르는 일이 결코 없다.
걸핏하면 예불을 거르고 후원에서 따로
상을 차려 먹기를 좋아하는 덜된 중들에게는
마땅히 배우고 따라야 할 승가의 청정한
생활규범이다.

이런 노스님들이 계시는 산중에서 함께
사는 것을 나는 참으로 고맙고 다행하게 생각한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생활규범에 의해 둘레에
한없는 빛과 거울의 기능을 하고 있다.
한결같은 겸손과 단순한 청빈으로 그들 스스로를
구원하고 다른 사람들을 감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노스님들은 참선이 어떻고 화두(話頭)가
어떻고 견성(見性)이 뭐라고 말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저 묵묵히 몸소 행동으로 보일 뿐이다.
대개의 경우 뭘 알았다고 자기 과시에 열을
올리는 스님들한테서는 수행자의 덕성인
그 겸손과 단순과 청빈과 온유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슬이 푸른 오만과 독선과 아집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진해서 자리를 같이 하게 되면
마음이 편치 않고 피곤하다.

선가(禪家)에 한고추(閑古錐)란 용어가 있는데,
닳아져서 무딘 송곳을 가리킨 말이다.
수행자의 경지가 원숙해져서 서슬이 밖에
드러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니 서슬이 푸른 것은
미숙함을 드러낸 것.

알면서도 그 앎에 걸려 있지 않는 성숙한
지혜가 귀하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도로써 자만한다면
그는 결코 선지식(善知識)일 수 없다.
관념의 찌꺼기인 상(相)이 있으면 진짜
수행자가 아니라고 대승(大乘) 경전에서는
입이 닳도록 말하고 있지 않던가. 수행자에게
중요한 것은 학식이나 지식이 아니라 지혜롭고
자비스런 행동이다.
종교란 회색의 이론이 아니라 살아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자만을 가져오지만 사랑은
덕성을 길러준다.

투철한 안목과 번뜩이는 기량으로써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명안종사(明眼宗師)의 기능도 필요하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이름 없는 노스님처럼
수행자로서 한결같이 정직하고 겸허하고
꿋꿋하게 살아감으로써 후학들에게 끼치는
덕화는 보다 더 소중하다.
사람을 본질적으로 감화시키는 것은 그럴듯한
말에 있지 않고 몸소 움직여 보이는 행동에 있다.

좋은 말을 한다는 것과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 사람의 행위가 그 사람의 지식보다 뛰어날 때
그 지식은 유익하다.
그러나 그 지식이 그 사람의 행위보다 크게
드러날 때 그 지식은 무익한 것이다.
진짜 수행자는 그 어떤 종파를 막론하고 앞뒤가
툭 트인 단순성(單純性)에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이, 생각만 해도 숙연해지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그가 크리스마스 전 단식 기간을
어떤 은둔처에서 지내고 있을 때였다.
지나친 고행으로 만년의 그는 여러 가지
병고를 치른다.

올리브 기름이 건강에 해로워 돼지기름으로
요리한 음식을 조금 먹었다.
단식이 끝날 무렵 대중 앞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나를 성스러운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헌신적인 사랑으로 여기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단식 기간에 돼지기름으로
만든 음식을 먹었음을 여러분 앞에 고백합니다."

그는 하느님께 알려진 사실을 이웃들에게
감추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영성(靈性)에 자만심이나
번뇌의 유혹이 있을 때는 즉시 그의 형제들에게
감추는 일 없이 그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자기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머무는 은둔처나 어떤 곳에서라도
모든 사람이 나를 지켜볼 수 있도록
나는 살고 싶소.
그들이 나를 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성스러운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나는
위선자가 될 것이오."

수행자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을 그는 단호히 배격한 것이다.
세상에 빛과 거울이 될 이런 분들을 스승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구원이요
커다란 위로다.
이런 분들의 덕화가 미치고 있는 한 그 어떤
세상에서라도 인간은 절망하거나 멸하지
않을 것이다

 

 

 

일산 호수공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