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돌 속의 머슴부처 하나 장승처럼 서서 바람으로 눈이 덮인 산길을 쓸고 있다 전생에 무슨 업보로 염병할 천연두라도 앓았던 것일까 왕 곰보의 보기 흉하게 얽은 얼굴에는 눈물이 살을 파고들어 진 고름이 질질 흘러내린다 열반에 드는 일도 저와 같은 고역일 것인데 이중 삼중 고행을 하고 있는 머슴 부처, 사람의 손때 묻은 가사자락에 몹쓸 담뱃불에 덴 흔적이 흉터처럼 남아 있다 부처들도 일하는 부처, 노는 부처, 공부하는 부처 따로 따로 어울리는지 외따로이 떨어진 외로운 산비탈에서 서서 눈길만 쓸고 있는 머슴 부처, 팔이 달아난 줄도 모르고 싹싹 빗질하는 아릿한 소리 눈이 덮인 산길 어느새 피가 배여 나와 황톳물이 질척거린다
운주사에 대한 역사는 정확한 기록은 없고, 신라 52대 효공왕 때 영암구림(靈岩鳩林) 출신인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 온다. 도선국사는 높은 도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대선사인데, 당(唐) 나라에 가서 풍수지리설을 들여와 처음으로 신라에 전파한 스님이며 후세의 한국 풍수지리설에 큰 영향을 준 인물. 운주사의 설화는 대부분이 이 도선국사와 연관되고, 전남 화순군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설화를 간결하게 옮겨보면 이렇다.
"우리의 산세(山勢) 를 관찰한 도선국사가, 높은 탑을 많이 세워 돛대를 삼고 짐(불상)을 많이 실어 놓으면 배가 균형을 잃지 않을 것이며, 이렇게 천불은 사공이 되어, 바다(고해) 향해 항해하면 풍파가 없으리라고 여긴다.
이렇게 도선국사는 동자승 하나를 데리고 와서 운주사의 절터를 다듬어 놓고, 도력으로 천상의 석공들을 불러 그 날 닭이 울기 전까지 흙과 돌을 뭉쳐 천불천탑을 만든 다음 닭이 울면 즉각 천상으로 돌아가도록 부탁한다.
그리고 혹시나 시간이 모잘라 일을 다 마치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절의 서편에 있는 일괘봉(日掛峯) 에다 해를 잡아 매놓는다. 이때 석공들이 열심히 탑과 부처를 만드는 곳으로 심부름을 하던 동자승이 지겨운 일에 짜증이 나서 그만 아무도 몰래 해를 풀어 주고 만다."
결말이 조금 다른 설화의 내용은 이렇다. 도선국사가 동자승을 데리고 와서 절터를 닦고 도력으로 부른 석공들의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데(어서 날이 새기 전에 와불의 마지막 손질을 위해서 바삐 일한다.) 그만 동자승이 닭 우는 소리를 '꼬끼오' 하고 지르고 만다.
그리하여 닭소리에 놀라 석공들이 일제히 일손을 멈추고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그렇게 석공들이 천상으로 올라가버린 뒤에 살펴보니 탑과 부처가 각각 천개에서 하나씩 모자랐다고 한다. 그 모자라는 부처가 '와불'이라고도 전한다.
운주사의 돌불상은 미륵불(미래불)이다. 56억 7천만 년 후에 이 세상에 당도한다는 미륵불이 도처에 서 있는 운주사. 그리고 무거운 지구를 등에 지고 있는 것 같은 식물인간처럼 일어서지 못하는 와불님 앞에 절로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하게 된다.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이 운주사의 와불님이 일어서는 날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극락정토와 같이 가난한 민중들이 아무런 근심없이 살아가는 세상이 도래한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시인들은 운주사의 천탑천불을 시의 소재로 많이 선택하는지 모르겠다.
운주사에 오면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자신 모르게 차가웠던 피가 불을 지피는 듯 뜨거워진다. 마음이 울적할 때나 괴로울 때 찾아오게 되는 전라도 화순땅의 운주사. 그 운주사는 우리 민중의 꿈과 희망이 기다리고 있는 땅이 아닐 수 없다.
천탑천불이 있는 운주사는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여느 절과 달리 외갓집 나들이처럼 찾게 되는 편안한 절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넉넉해져서 돌아오는 절이기도 하다.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서.'말이다.
불갑사는 백제 무왕때(600~640) 행은 스님이 세웠다는 설과 백제 침류왕 원년 384년 인도 스님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제일 처음 지은 불법도량 이라 하여 "부처 불" "첫째 갑" 자를 따라 불갑사라 하였다.
보물 제 830호로 지정된 불갑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의 팔작지붕 건물로 연화문 국화문, 보상화문, 보리수 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보물 제 1470호인 불갑사 불복장전적이 있다.
사천왕상(지방문화재 제159호)
불갑사 사천왕상은 고창 연기사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서, 연기사가 폐사된 후 1870년(고종7년)설두대사에 의해 불갑사로 옮겨졌으며 조선중기에 조성되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목조로서는 국내에서 제일 큰 거상으로 균형미가 뛰어나고 섬세하며, 화려한 조각솜씨를 보여준다.
참식나무(천연기념물 제112호)
참식나무는 잎 뒤에 하얀 솜털이 많아서 백담호(白淡毫)라고도 한다. 인도공주가 인도에 유학왔던 신라 경운스님에게 내세의 인연을 기약하는 정표로 전해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만세루는 1644년에 중건되었으며 정면5칸, 측면4칸의 중층형 문루건물로서, 법회 장소 및 스님들의 여름철 강학(講學)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이 건물은 주심포와 익공식의 혼합된 양식을 보여주며 가구에 기교를 부리지 않은 웅건한 미를 간직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대법고
불갑사 대법고는 174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길이 240㎝, 울림판 직경 200㎝, 높이 220㎝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큰북이다. 이것은 오래된 법고 가운데에서는 가장 크다고 한다.
만세루
만세루(문화재자료 제166호)
만세루는 1644년에 중건되었으며 정면5칸, 측면4칸의 중층형 문루건물로서, 법회 장소 및 스님들의 여름철 강학(講學)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이 건물은 주심포와 익공식의 혼합된 양식을 보여주며 가구에 기교를 부리지 않은 웅건한 미를 간직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대웅전(보물 제830호)
백제 침류왕원년(384년)인도승 마라난타존자께서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법성포를 거쳐 이곳에 최초로 창건한 사찰로 정유재란 때 소실된 후 다시 중건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매우 화려한 양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살은 삼분합 소슬 빗살문으로 연꽃, 국화꽃, 보리수나무 무늬를 섬세하게 조각하여 우리 조상들의 예술성이 표현된 건축물이다.
불갑사의 중심 불전은 대웅전이며 북방불교의 목조불전 건축양식과 남방불교의 불단 배치방식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독특한 구조와 양식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 삼존불상과 천왕문의 사천왕상, 명부전의 지장시왕상, 만세루 등이 중요 문화재이며 성보 박물관에는 귀중본 불경 전적 문화재와 불화, 불교 조각존상 및 불교공예 문화재 등 다수가 소장되어 있다.
또한 대웅전 지붕의 용마루 한가운데에 설치된 보탑은 점토로 구워낸 기와지붕 장엄으로 양쪽의 용두 조각위에 탑형의 탑신과 사각 모임조부의 보게, 복발, 보주 등으로 이루어져 점토로 구워낸 기와지붕 장엄이다. 우리나라는 불갑사와 통도사에 이런 보탑이 설치되어 있다.
불교에서 “장엄(莊嚴)”이란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에게 올려 장식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대웅전에 모신 삼존불상의 시선의 방향이 특이하게도 스님들의 출입문 방향을 향해 보고 계시다는 것이 다른 사찰과 다르다는 것이고, 국내 사찰 중 공주 마곡사, 부석사 무량수전이 이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 무독귀왕, 사왕과 판관, 녹사, 수문장 등을 봉안한 건물이다. 본래 위치는 대웅전 좌측이었으나, 1936년 만암스님에 의하여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대웅전 우측의 일광당은 정유재란 때 소실된 후 1620년에 중건된 건물로서 본래 선당(禪堂)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승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구부러진 목재들을 꾸밈없이 다듬어 세움으로써 자연미를 살려 낸 훌륭한 건축물이다.
칠성각은 대웅전의 뒤쪽 높은 단 위에 위치해 있으며, 정면3칸, 측면1칸인 맞배지붕의 익공식에 간결한 3량으로 서향을 하고 있는 아담한 건물이다. 이 칠성각은 조선시대 말기(1896년경)에 건축되었다.
팔상전은 1822년 3중창된 건물로서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여기에는 석가모니불주존을 중심으로 16나한을 봉안하고 있다.
향로전은 정면 5칸, 측면2칸의 전후퇴로 되어 있으며 팔작지붕의 주심포양식에 익공식이 가미된 건물이다. 1765년에 제 6창 중수된 건물로서, 고려말 각진국사 이후 불갑사의 대덕스님이 주석하던 곳이다.
각진국사는 고려말 충정왕, 공민왕대의 왕사였으며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한 분으로서, 만년에 불갑사에 주석하여 불갑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이 각진국사 자운탑은 1355년에 조성된 고려 후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