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 방법
<염처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그리고 더 나아가,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걷고 있을 때는 다음과 같이 의식해야 한다. - ‘나는 걷고 있다’ - 또는 수행자가 서 있거나, 앉거나, 누워 있을 때는 그는 그것들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2) 그리고 더 나아가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바라보거나, 눈길을 돌리거나, 그의 팔다리를 구부리거나 펴거나, 옷을 입거나 벗거나, 그릇을 씻거나 또는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 또는 화장실에 가 있을 때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가고, 서고, 앉고, 잠자고, 보고, 말하고, 침묵을 지킬 때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그리고 더 나아가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이 몸에 대해서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엇으로 구성(즉, 4대요소) 되었는지에 대해서 관찰해야 한다. 4) 오,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즐거운 기분을 느낄 때는 그것을 의식하고 ‘나는 즐거운 기분을 느끼고 있다’고 관찰한다. 마찬가지로 그가 고통스러운 느낌을 받을 때도 그것을 의식한다. 오,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만약 탐욕스러운 마음이 생기면 이것을 의식해야 하며, 또는 탐욕에서 자유로우면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5) 오,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감각적 욕망이 생기면 그것을 의식하고 있어야 하며, ‘나는 감각적 욕망을 갖고 있다’고 관찰해야 한다.
1. 배가 나오고 들어가는 움직임
배가 나오고 들어가는 움직임을 명상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매우 일치한다. 이러한 배의 나옴과 들어감은 공기요소의 압력에 의해 야기되는 물질적인 과정이다.
* 이러한 부처님의 가름침을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배가 나오는 동안에는 ‘나옴’, 배가 들어가는 동안에는 ‘들어감’, 팔다리를 구부리는 동안에는 ‘구부림’, 팔다리를 펴는 동안에는 ‘폄’, 마음이 산란할 때는 ‘산란함’, 생각, 관찰 또는 앎에 전념하고 있을 때는 ‘생각함, 관찰함’ 또는 ‘알고 있음’, 딱딱함, 더움 또는 고통을 느낄 때는 각각에 그 느낌을 알고 있으며, 또한 ‘걷고, 서고, 앉음’ 각각의 자세에 대해서도 그 상태를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팔리 경전에서 ‘내적인 공기의 요소의 움직임을 알아차려서 팔다리의 움직임을 뚜렷이 의식한다’ 대신에 걷고 있음 등등의 평범한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공기 요소는 다섯가지 물질의 모임인 오온(skandh)에, 12처(ayatana)의 촉각의 대상에, 18 요소(dhatu)의 몸의 느낌에, 4 사대(maha-bhuta)의 바람의 요소에, 사성제의 괴로움의 진리에 포함되어 있다. 물질적 모임, 접촉의 대상, 몸의 느낌, 괴로움의 진리들은 확실히 통찰명상의 대상이다. 분명히 그것들은 서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배가 나오고 들어가는 움직임은 매우 적절한 명상의 대상이며, 그렇게 명상하는 동안 이것은 단지 공기요소의 움직임이며, 무상, 괴로움, 무아의 법칙에 지배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이와 같이 배의 나오고 들어가는 움직임의 명상은 위에서 설명한 것과 일치하고, 또한 염처경에서 여러 가지 요소들을 관찰하는 것과 일치한다. 다시 배의 움직임과 압력을 야기시키고 육체의 모임에 구성되어 있는 공기의 요소는 괴로움의 진리에 속한다.
1) 비구들이여, 그대의 마음을 철저하게 몸에 주시하면서 그것의 진실한 본성을 무상함으로 보도록 하라. 2)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무상한 그의 몸을 무상함으로 볼 때, 그의 이러한 견해는 올바른 견해이다. 3) 오,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물질적인 형상이다. 이것은 그것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그것의 사라짐이다.’ 4) 비구들이여, 그대의 마음을 접촉의 대상에 철저히 주시하라. 그리고 그것들의 진실한 본성을 무상함으로 보도록 하라. 5)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접촉의 대상을 무상함으로 본다면 그의 이러한 견해는 올바른 견해이다. 6) 그러나 접촉의 대상을 완전히 알며, 이해하며,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고 그것을 떨쳐 버리면서 수행자는 고통을 소멸시킬 수 있다. 7) 접촉의 대상을 무상한 것으로 알고 보는 자에게 무지는 사라지고, 지혜가 일어난다. 8) 오,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접촉의 감각기관을 알고 있어야 한다. 9) 움직임의 내적인 요소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리고 움직임의 외적인 요소가 무엇이든지 간에, 이것들은 단지 움직임의 요소들일 뿐이다. 완전한 직관적 지혜에 의하여, 이것은 사실 그대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10) 그리고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진리는 무엇인가? 말하자면 괴로움은 다섯가지 물질의 모임(오온)이다. 비구들이여, 그럼으로 괴로움은 완전히 이해되어야 한다.
2. 처음은 유형의 물질을 갖고 시작한다.
비파사나(통찰) 명상을 수련하는 자는 유형의 물질로 시작해야 하는데, 이것은 정신적인 것보다 훨씬 쉽게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에서 말한 주석서와 주해서에 의존해서 명상자에게 명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배가 나오고 들어가는 움직임을 관찰하는데서 시작하고 가르쳤다. 그렇지만 집중이 발전되었을 때, 명상은 여섯 개의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에 대한 효과는 이미 명상자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가르쳐준대로 명상자는 명상을 매우 잘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로지 배가 나오고 들어가는 움직임을 명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 통찰명상을 하는 자는 4가지 요소 - 지, 수, 화, 풍 -를 구별한다. 2) 명상은 명상자가 명백하고 쉽게 구별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3) 통찰명상은 구별할 수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명상은 구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쉽게 구별될 수 없는 것도 나중에는 어떻게든지 구별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3. 여섯 개의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것을 명상하라.
여섯 개의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명상을 해야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어떻다는 생각을 내어서는 안된다.
*배가 나옴과 들어감을 명상할 때 그 움직임을 아는 자는 대상에 대해 아무런 번뇌의 일어남을 느끼지 않고, 주의깊고 분명한 관찰로 감각(번뇌)을 극복할 수 있다.
1) 그는 보는 대상에 대하여 아무런 번뇌의 씨앗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주의깊고 분명한 관찰로 감각(번뇌)을 극복할 수 있다. 평온한 마음으로, 집착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2) 그는 듣고, 냄새맡고, 맛보는 대상에 대하여 또는 접촉의 대상에 대하여 아무런 번뇌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주의깊고 명료한 관찰로 감각(번뇌)을 극복할 수 있다. 평온한 마음으로 집착에 매달리지 않는다. 3)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완전히 알아야 한다.
*위의 구절에서 ‘완전한 앎’은 여섯 개의 감각기관에서 물질적, 정신적인 일어남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배의 나옴과 들어감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은 ‘유형의 것을 완전히 알아야 한다’에 포함된다. 그러면 완전히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무엇인가? 눈, 시각적 대상을 완전히 알아야 하며, 눈의 접촉을 완전히 알아야 하며, 눈의 접촉 때문에 일어나는 행복, 슬픔, 중립적인 상태를 또한 완전히 알아야 한다. 눈을 완전히 알아야 하고, 소리를 완전히 알아야 하고, 코, 냄새, 혀, 맛, 몸을 완전히 알아야 하고, 유형의 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고, 마음을 완전히 알아야 하고, 마음의 상태를 완전히 알아야 한다.
4) 비구들이여, 눈을 이해하여야 하며, 시각적 대상이 이해되어야 하며, 몸이 이해되어야 하며, 유형의 것을 이해하여야 하며, 마음을 이해하여야 하며, 마음의 상태를 이해하여야 한다.
4. 이전에 선정의 경험이 없는 자의 통찰명상
이전에 定(Jhana)의 경험이 없이 통찰(비파사나) 명상을 직접적으로 시작하는 것은 가능하다.
*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전에 완전한 집중을 얻기 위해 수련해본 경험이 없이도 통찰명상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수련방법이 통찰명상인 사람은 사대(지, 수, 화, 풍)을 구별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또한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염처경의 21개 부분이 숨쉬는 것을 다루는 것을 제외하고 모두 육체가 혐오감 그리고 9개의 공동묘지에 대한 명상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통찰명상이 그것들에 의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주석서들은 이 부분들이 근접 집중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근접 집중은 몸의 자세와 기타 등등에 대해서 명상하는 동안 다섯가지 장애를 극복하고 마음의 순수함을 얻었을 때 발전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숟디막가(청정도론)는 통찰명상과 연관된 물질적 요소의 관찰을 다루고 있는데, ‘요소의 구별’이라 불리는 주제에서 사대를 명상하는 동안에 장애가 극복되고 집중의 접근이 얻어지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처럼 사대나 또는 사대 중 하나, 둘, 셋을 명상하는 동안에 근접 집중이 발전될 수 있고 장애가 극복될 수 있으며 마음의 순수가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고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것은 명상을 부지런히 수련하는 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다.
1)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이전에 선정을 닦지 않고 오온의 집착을 무상함 등으로 명상하였다. 이러한 명상은 통찰명상이다. 2) 다섯가지 모임(오온)은 존경스러운 수행자가 무상, 고통, 아픔, 병듬, 일시적인, 비어있는, 무아의 방법으로 곰곰히 생각해야 하는 조건들이다. 예류과에 있는 자도 집착의 다섯모음을 이와 같이 명상한다. 한번 돌아오는 자(一來者)도 그렇게 명상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不還者)도 그렇게 생각한다. 과연 비구니들이여, 존경스러운 수행자가 이같은 방법으로 다섯가지 모임(오온)을 명상하면 예류과를 깨달을 수 있다. 예류자가 일래과를 깨달을 수 있다. 일래자가 불환과를 깨달을 수 있다. 불환자가 아라한과를 깨달을 수 있다.
* 이러한 과정은 고결한 자는 다섯가지 집착의 모임을 잘 명상할 수 있으며, 그렇게 명상하면서 깨닫고 실제적으로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그리고 아라한과를 얻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배의 나옴과 들어감의 움직임은 유형들의 모임(육체)에 포함된 공기의 요소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분명히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배의 나옴과 들어감의 움직임에 근거를 든 명상방법과 여섯 개의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다섯 개의 집착의 모임(오온)에 대한 명상은 정확하고 올바르게 아라한과의 실현으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신체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물질의 본성을 명상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며 또한 몸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공기요소를 명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