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ㅡ 모윤숙

 

 

호국영령들께 바치는 노래 - 비목(碑木)비목 - 작시 한명희 / 작곡 장일남 /노래 신영옥

 

https://youtu.be/ew0G09K1Ix4

비목(碑木)의 유래

 

매년 6월이 되면 생각나는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의 “비목(碑木)”은 우리 가곡이다.

"비목"은 1969년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한명희는 군 복무시절 강원도 화천 백암산 부근에서 십자 나무만 세워져 있는

무명용사의 돌무덤의 비목을 보고, 조국을 위해 죽어간 젊은이들을

기리는 내용의 시를 지었고, 장일남이 곡을 붙인 우리 가곡이다.

 

6.25전쟁 휴전 후 7년이 되는 1960년에 현제의 평화의 댐에서

북쪽으로 12km 떨어진 백암산(1179m) 계곡 휴전선 비무장지대에 배속 되여

군 복무중이였던 소대장 육군 소위 한명희(당시 25세)는

막사 주변의 빈터에 호박이나 야채를 심을 요량으로 조금만 삽질을 하면

여기저기서 뼈와 해골이 나왔으며 땔감을 위해서 나무에 톱질을 하면

간간히 톱날이 나무에 박힌 총알과 파편 때문에 망가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순찰 삼아 돌아보는 계곡이며 능선에는

군데군데 망가진 화이버며 탄띠 조각이며 녹슨 철모나 무기가 뒹굴고 있었다고 한다. 6.25전쟁시 1951년 7월의 우리 국군과 중공군의 '백암산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이다.

 

 

 

그 후 어느 날 한소위는 순찰중 그 격전의 능선에서 개머리판은 거의 썩어가고

총열만 생생한 카빈총 한 자루를 주워왔다. 그러고는 깨끗이 손질하여 옆에 두곤

곧잘 그 주인공에 대해서 공상을 이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전쟁 당시 M1 소총이 아닌 카빈총의 주인공이라면 물론 소대장에 계급은 소위였다.

그렇다면 영락없이 나 같은 20대 한창 나이의 초급장교가 산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당시의 격전지에서 젊은 비애를 앓아가던 어느 날,

초가을의 따스한 석양이 산록의 붉은 단풍의 물결에 부서지고

찌르르 산새 소리가 산간의 정적을 깨는 어느 한적한 해질녘 무렵,

한소위는 잡초 우거진 양지바른 산모퉁이를 지나자 칙칙한

푸른 이끼에 덮인 돌무더기 하나를 발견한다.

오랜 세월 동안 풀 넝쿨에 휘 감겨 썩어가는 십자형 비목을 보고

그것은 결코 예사로운 돌무더기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그것은 결코 절로 쌓인 돌이 아니라 뜨거운 전우애가 감싸준

무명용사의 무덤이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그 카빈총의 주인공,

자랑스러운 육군 소위의 계급장이 번쩍이던 그 꿈 많던 젊은 장교의

무덤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바로 병사들과 함께 무덤을 손질하고 십자가 비목을 다시 새우고

비목에 철모를 얹고 명복을 빌어 주었다.

 

 

 

 

* 군 복무를 마치고 TBC(동양방송) 음악부 PD로 근무하던 어느 날,

그때 방송일로 자주 만나는 작곡가 장일남으로 부터 신작 가곡을 위한

가사 몇 편을 의뢰 받았다고 한다. 바로 그때 제일 먼저 머리속을 스치고 간 영상이

다름 아닌 그 첩첩 산 골짝이에 뒹굴고 있던 녹슨 철모와 이끼 덮인 돌무덤,

 

무덤 머리에 꽂혀있는 십자가 비목과 그 옆을 지켜 섰던 새하얀 산 목련이 떠올랐고

이내 화약 냄새가 쓸고 간 그 깊은 계곡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면서

이름 모를 돌무덤의 주인이 자기 또래의 젊은이가 포연에 산화한 무명용사로,

그리고 비바람 긴 세월 동안 한결 같이 그 무덤가를 지켜주고 있는 그 새하얀 산 목련을 주인공 따라 순절한 연인으로 상정하고 순찰 중에 대원들이 길에서

잡아온 수놈의 궁노루(사향노루)의 짝 잃은 암놈이 달빛이 쏟아지는

매일 밤마다 낭군을 생각하며 애처롭게 울부짖는 소리가

고요한 깊은 산속을 메아리치면 대원들도 잡아 온 것을 후회하면서

함께 울고 온 산천이 오열한 일들의 생각이 떠올라서

노래 가사를 작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노래는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넋을 기리는 노래로

온 국민이 애창하게 되었고 특히 6월이 되면 생각나는 우리 가곡이다.

* 강원도 화천군에서는 백암산이 가까운 평화의 댐에 우리나라의 대표적 가곡인

"비목"을 기념하기 위하여 1995년에 ‘비목공원’을 조성하고 비목탑과 비목 노래비를 세웠다. 그리고 이 비목공원에서 1996년부터 매년 호국 보훈의 달 6월에

6.25 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젊은 나이에 순국하신 호국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평화의 댐에서 '비목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 행사에

비목 작곡가인 장일남 선생도 참석했다고 한다.

 

 

*작사가 한명희 선생은 1939년 생으로 올해 82세. 제대 후에

TBC PD로 근무하다가 1975년 방송국을 사직하고 몇 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작사 활동을 하였고 19년간 교수로 재임했던 서울시립대학에서는

2004년 정년퇴임했고. 그 후 국립국악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 한편, 장일남 선생은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6.25 때 격전지 철원에서

전투경찰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한명희 PD가 만든 ‘비목‘의 가사를 보니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즉석에서 멜로디를 붙였다고 한다.

장일남 선생은 한양대학교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오페라를 만들어

공연을 하였으며 알츠하이머 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2006년 9월에 74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https://youtu.be/_oJPCVzQ_TM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모 윤 숙

-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이다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 위와 가시숲을
이순신같이, 나폴레온같이, 시이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 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코바 크레믈린 탑까지
밀어 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날으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 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날으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리 숨 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나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고.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아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 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 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서백리아 먼 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 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는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 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 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 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시집 {풍랑}, 1951)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산 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youtu.be/esoVLmqmD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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