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되고 싶으냐?  / 칠통 조규일

 


착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착한 행을 하면 착한 사람이 된다.
자기 자신이 착한 행을 하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모든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착한 행을 하면 착한 사람이라고 하니
착한 사람이 된다.


선업(善業)을 짓고 싶으면
착한 일을 하면 선업을 짓게 된다.


악업을 짓고 싶은 사람이야 없겠지만
자기 자신이 살겠다고 악한 행을 하면
악업을 짓게 된다


성인이 되고 싶으면
성인의 행을 하면 성인이 된다.
자기 자신이 성인의 행을 하는 사람을 성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모든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성인의 행을 하는 사람을 성인이라고 하니
성인의 행을 하면 성인이 된다.


이와 같이
부처가 되고 싶으면 부처의 행을 하라.
그러면 부처가 되리라.


부처의 행은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득만을 추구하거나
부처라는 말이나 글로는 부처가 되지 않는다.
부처는 행이 부처를 만든다.


부처가 되고 싶으면 부처의 행을 행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착한 사람 성인이라고 하는 것과 부처라 하리라.
부처는 말이나 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행에 있다.


보살 역시도 말이나 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에 있다.
보살의 행을 했을 때 또는 보살의 행을 보았을 때
행을 보고 행하는 그 사람을 보살이라 하듯이
부처 역시도 말이나 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에 있다.
부처의 행을 했을 때 또는 부처의 행을 보았을 때
행을 보고 행하는 그 사람을 부처라 할 것이다.
그런 만큼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부처의 행을 하라.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부처의 마음을 알아야 부처의 마음을 행할 것이며
부처의 언행을 알아야 부처의 언행을 행할 수 있는 만큼
부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고
부처의 언행은 어떤 언행이 부처의 언행이겠습니까?
살피고 살펴보소서
그리고 행하소서
그러면 그대는 부처가 되리요.


착한 사람이 되고자 하면서 착한 행을 하지 않는다면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며
성인이 되고자 하면서 성인의 행을 하지 않는다면

 성인이 되지 못하고
보살이 되고자 하면서 보살의 행을 하지 않는다면

 보살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부처가 되고자 하면서 부처의 행을 하지 않는다면

부처가 되지 못한다.
그런 만큼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부처의 언행을 하라.

 그러면 부처가 되리라.


2009. 03. 11. 14:44

 

 

 

펌 글입니다

출처 : 우담발화
글쓴이 : 우담바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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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일기 16: 파괴되지 않은 황금사원, 타시룬포 타시룬포 사원 전경. 사원의 주요 법당 지붕은 온통 황금지붕으로 되어 있다.   라싸에 조캉 사원이 있다면, 시가체에는 타시룬포 사원이 있다. 16세기까지 시가체가 티벳의 수도 노릇을 했을 때, 그 중심에 타시룬포가 있었다. 타시룬포는 겔룩파(달라이 라마가 속한 티벳불교의 한...
출처 : 구름과연어혹은우기의여인숙
글쓴이 : dall-le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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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의 빛나는 사원들: 티베트 정신의 성지

 


 

티베트에 간 이상 사원을 둘러보지 않고는 티베트를 느낄 수가 없다. 티베트에서 사원은 종교이기 이전에 모든 티베트인의 생활의 일부분이며, 정신의 구심점 노릇을 한다. 중국의 탄압과 지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티베트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은 바로 그들의 종교와 사원에 깃들어 있다.


1. 티베트의 심장-조캉사원

 


조캉사원 대법당의 황금지붕.

 

흔히 ‘티베트의 심장’이라 불리는 조캉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이자 최고의 성지로 티베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워 불상(석가모니)을 모신 곳이다. 조캉이란 이름도 ‘조워를 모신 라캉’이란 뜻에서 비롯되었다. 조캉은 당나라 문성공주와 인연이 깊은 절이다. 본래 조캉은 7세기 640여 년쯤 당시 토번 왕국의 송첸 감포 왕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당시 토번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당나라와 네팔에서 각각 공주를 왕비로 바칠 정도였다. 이 때 문성공주(당나라 현종의 딸)가 티베트로 가지고 온 불상이 바로 석가모니 불상이었다. 이 불상은 처음에 라모체 사원에 모셨으나, 송첸 감포 왕이 죽은 뒤 불상의 보호를 위해 조캉으로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릉빈가. 힌두교에서는 '가루다'로 불리는 이것은 얼굴은 사람이고, 다리와 꼬리는 새로 표현된다.

 

과거 ‘양의 거주지’란 뜻을 지니고 있던 라싸가 ‘신의 거주지’란 뜻을 지니게 된 것도 문성공주 시절 조캉의 건립과 무관하지 않다. 티베트에서 불교가 국교로 자리잡고 수많은 사원이 건설된 것이 바로 그 시절이다. 그러나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고 문화혁명 기간(1966~1976년 6259개의 티베트 사원 중 몇 개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원이 파괴되었으며, 수십만 명의 승려가 강제로 환속당했다)을 거치면서 조캉은 한때 폐허(중국은 티베트의 심장인 조캉을 한때 돼지우리로 사용하게 했다)가 되다시피했다. 이 때 포탈라궁과 노블링카궁은 물론이고, 간덴사원과 라모체 사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라싸 인근 사원도 파괴되었다. 조캉사원은 1980년 이후에야 조금씩 재건돼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하는 순례자들.

 

조캉사원은 늘 이른 아침부터 붐빈다. 포탈라궁이 주로 외국인과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면 순전히 이 곳은 티베트 각지에서 온 경건한 순례자들로 붐빈다. 순례자들은 코라(마니차를 들고 시계 방향으로 사원을 한 바퀴 도는 의식)를 돌거나 조캉의 문앞에서 염려스러울 정도로 심한 오체투지를 한다. 이들의 오체투지는 거의 필사적이다. 필사적으로 붓다에게 마음을 바친다. 열린 문틈으로는 끊임없이 버터기름 냄새와 신성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흔히 포탈라와 조캉을 다 둘러본 여행자들은 포탈라의 입장료는 아까워하지만, 조캉의 입장료는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만큼 티베트의 진면목을 조캉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캉사원 바코르 광장의 사람들과 뒤로 보이는 저녁의 조캉사원.

 

조캉에 들어가면 우선 내부 광장을 지나 대법당을 만나게 된다. 1층 대법당은 조워 석가모니를 모신 조캉의 핵심인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미륵불(Jampa), 왼쪽에 구루 링포체(Guru Rinpoche, 8세기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한 인도 현자, 제2의 부처로 여김)를 모시고 있다. 또한 이들 불상을 모신 1층 대법당을 중심으로 모두 18개의 크고 작은 법당들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2층을 거쳐 3층으로 올라가면, 조캉사원의 화려한 황금지붕탑을 만나게 된다. 또한 이 곳은 사원의 옥상 전망대 노릇을 하고 있어 조캉사원 앞 바코르(조캉사원의 순례길, 코라와 같은 의미)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정문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의 모습도 위에서 곧바로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멀리 포탈라궁은 물론 사방으로 펼쳐진 라싸 시내의 풍경까지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2. 세라사원-티베트 최대 불교대학

 


세라사원 법당 풍경.

 

라싸 북단에 위치한 세라사원은 티베트 최대의 불교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5개의 교육기관에 7000여 명의 승려가 거주했던 거대한 사원은 현재 3개 대학에 300여 명 정도의 승려만이 남았는데, 중국의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승려들의 숙소가 거의 파괴된 데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의 다람살라로 망명할 당시 상당수의 승려가 함께 길을 따라나섰기 때문이다. 세라사원은 1419년 쫑카파(1357~1419, 티베트불교의 중심세력인 겔룩파의 창시자) 제자인 사캬 예쉬가 세운 사원이다.

 

세라사원의 좁다란 골목(위)과 법당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아래).

 

사원 안에는 대법당(촉첸)을 비롯해 세라 메, 세라 응악파, 세라 제 대학과 13개의 캉첸(승려 숙소)이 들어서 있다. 시계방향으로 사원을 돌다 보면 세 번째로 만나는 대학이 세라 제인데, 이 곳은 티베트에서 가장 유명한 교리문답 토론장이기도 하다. ‘최라’(Chora)로 불리는 교리문답(또는 선문답) 토론은 보통 오후 3시 30분부터 약 1시간 정도(일요일은 열리지 않는다) 열리며, 세라 제 앞마당 정원이 토론장 노릇을 한다. 승려들의 교리문답은 보통 1:1로 한 승려가 경전과 깨우침에 대한 질문을 하면 곧바로 상대 승려가 그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때로 논쟁이 과격해서 이들이 토론하는 모양은 꼭 윽박지르고, 삿대질하고, 싸우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세라사원 코라 순례길에서 바라본 바위에 그린 불상 그림들.

 

이 때 승려들이 하는 특이한 행동이 하나 있다. 한손을 밑에 받치고 다른 한손을 높이 들어 힘껏 내리치는 손뼉치기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윗손이 천상을 상징하고, 아랫손이 지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진리와 교리의 충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재미있는 행동으로 인해 세라의 교리문답 시간은 오늘날 외국인에게 상당히 인기 있는 관광상품이 되었을 정도다. 이런 특이한 토론방식은 티베트 불교 특유의 학습방법으로, 항상 상대방보다 더 우월한 교리와 철학을 지니기 위한 수행방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토론에서는 지적 순발력과 함께 상대방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는 통찰논리도 필요했지만, 우습게도 상대방을 압도하는 목소리가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었다.


3. 드레풍사원-티베트 최대 사원

 


드레풍 사원의 한 비구니 스님이 물통을 지고 법당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세라사원이 라싸 시내에서 가까운 외곽에 자리한 반면, 드레풍사원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터를 잡고 있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드레풍사원은 1만여 명의 승려를 거느린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 중 한 곳이었다. 지금도 사원의 규모는 티베트에서 최고를 자랑하지만, 거주하는 승려의 수는 500여 명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드레풍사원은 1416년 쫑카파의 제자 잠양 초제(Jamyang Choje)가 설립했다고 전해온다. 포탈라궁이 완성되기 전까지 드레풍사원은 달라이 라마(2, 3, 4대)의 거처이자 실질적인 정치와 종교의 본당 노릇을 해온 중요한 곳이다.

 

드레풍 사원의 대법당(위)과 대법당 앞을 지나는 양떼들(아래).

 

사실 현재 남아 있는 드레풍 사원의 규모만 해도 사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소도시에 가깝다. 아침 일찍 사원에 들어간다 해도 저녁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구경이 끝날 정도이다. 이 곳의 길과 골목은 복잡한 미로처럼 얼켜 있어,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과거 교육기관 역할을 함께 수행했던 드레풍에는 간덴궁(달라이 라마가 거처하던 과거의 티베트 행정부)과 대법당 외에도 응악파(탄트라를 연구하는 대학), 로세링, 고망, 데양 등 4개의 승가대학이 자리해 있다. 사원 내 길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 첫 번째로 만나는 큰 건물이 간덴궁이고, 간덴궁 위쪽에 응악파 대학, 응악파 오른쪽에 대법당이 자리해 있다. 나머지 3개 대학은 대법당 아래쪽에 몰려 있다.

 

드레풍 사원에서 탑돌이를 하고 있는 노스님.

 

드레풍사원에서도 오후 3시가 되면 로세링 대학 최라에서 교리문답 토론의 장이 열린다. 세라사원의 최라보다 붐비지는 않지만, 토론의 열정만은 그에 못지 않다. 물론 이 곳의 최라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하고, 촬영을 하려면 70원, 비디오 촬영은 120원을 내야 한다. 만일 몰래 찍다가 걸릴 경우 물벼락을 맞고 �겨난다. 무엇보다 드레풍사원은 라싸 시내의 사원들과 달리 붐비지 않는다는 것이 매력이다. 대법당 앞마당은 때때로 관광객이 아닌 염소와 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미로형 골목에서도 길 잃은 양들을 만나는 것이 대수롭지 않다.

 

드레풍 사원의 교리문답 토론의 장. '최라'라고 불린다.

 

드레풍사원의 코라는 세라사원보다 훨씬 경사가 심하고, 그만큼 조망도 훌륭한 편이다. 암벽에 조각된 불상과 탕카를 걸어놓는 벽, 외떨어진 암자들도 코라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다. 라싸 시내에서 드레풍까지는 미니버스가 운행(시내에서 택시로 20분)하고 있지만, 사원까지 버스가 올라가지 않아 걸어서 30여 분이나 올라가야 한다. 당연히 내려오는 길도 대중교통이 없어 천상 걸어서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교통의 불편함은 드레풍사원을 라싸 시내의 사원들과 다른 적막한 분위기로 만들었고, 오히려 여행자들은 이런 점을 드레풍사원의 최고 매력으로 꼽고 있다.


4. 타시룬포 사원-파괴되지 않은 황금사원

 


타시룬포 사원에서 오체투지를 하기 위해 합장한 소녀.

 

라싸에 조캉사원이 있다면, 시가체에는 타시룬포 사원이 있다. 16세기까지 시가체가 티베트의 수도였을 때, 그 중심에는 언제나 타시룬포가 있었다. 타시룬포는 겔룩파의 창시자로 알려진 쫑카파의 제자인 제1대 달라이 라마 겐덴 드룹이 1447년에 세운 사원으로, 오늘날까지 판첸 라마 거주 사원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판첸 라마는 ‘위대한 학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달라이’는 ‘바다’라는 뜻의 몽골어이고, ‘라마’는 ‘스승’을 뜻하는 티베트어) 다음으로 영적인 권위를 지닌 종교 지도자이다.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찾거나 환생한 달라이 라마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도 판첸 라마의 역할이다. 반대로 판첸 라마가 입적하게 되면, 달라이 라마가 판첸 라마의 환생을 찾아 임명한다.

 

중국의 사원 파괴에서 살아남은 몇 개 사원 중 한 곳인 황금사원, 타시룬포.

 

현재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의 망명으로 판첸 라마가 실질적인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본래 티베트에서 옹립한 11대 판첸 라마(게둔 쵸키 니마 Gedhun Chokyi Nyima)는 어린 나이에 북경으로 끌려가 투옥되었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어린 정치범으로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 중국은 이 어린 판첸 라마를 대신해 중국에 우호적인 갼차인 노르부(Gyancain Norbu)를 11대 판첸 라마로 임명해 타시룬포에 두었으나, 대다수의 티베트인들은 중국에서 임명한 판첸 라마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티베트인의 마음에는 달라이 라마만이 유일한 지도자로 인식되고 있다.

 

타시룬포 사원의 황금 지붕.

 

드레풍과 더불어 티베트 최대 사원 중 한 곳으로 꼽히는 타시룬포는 중국의 문화혁명 기간에 벌어진 대대적인 티베트 사원 파괴에서 살아남은 몇 개의 사원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라싸의 드레풍을 최대 사원으로 꼽았으나, 사원 파괴를 겪으면서 온전하게 남은 건물로는 이제 타시룬포가 실질적인 티베트의 최대 사원이나 다름없다. 전성기에는 타시룬포에 무려 4700여 명의 승려들이 기거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약 800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고 있다. 타시룬포에는 제1대 달라이 라마의 유해와 역대 판첸 라마의 영탑을 모시고 있으며, 탄트라(인도에서 전해오는 경전)를 가르치는 응악파를 비롯해 불교철학을 가르치는 승가대학이 따로 들어서 있다.

 

타시룬포 대법당 뒤편에 자리한 40미터 높이의 탕카벽.

 

타시룬포는 멀리서 보아도 금빛으로 반짝이는 사원의 황금지붕이 유난히 눈에 띈다. 입구에서부터 왼쪽으로 올라가면 마니차와 쵸르텐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잠캉 첸모(세계에서 가장 큰 26m짜리 금동미륵불을 모신 법당)와 구동(판첸 라마의 궁전)을 지나 타시룬포에서 가장 큰 켈상라캉(대법당)이 이어진다. 두 곳의 승가대학은 켈상라캉에서 정문으로 내려오는 길에 만날 수 있으며, 대법당 위쪽 산자락에서는 40m 높이의 탕카벽을 볼 수 있다. 타시룬포의 중심인 켈상은 사원의 가장 오래된 초기 건물로써 안에는 판첸 라마가 사용하던 옥좌가 있고, 미륵불을 본존불로 모셔놓았으며, 역대 판첸 라마를 그린 탕카도 천장에 걸어놓았다. 대부분의 중요한 법회나 행사는 바로 이 곳에서 열린다. 사원을 한 바퀴 도는 코라는 약 3km 거리로, 한 시간 이상 걸리지만, 사원과 시가체를 한눈에 구경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므로 놓치면 안될 곳이다.


5. 간체 쿰붐-티베트 최고의 불탑

 


티베트 최고의 불탑으로 손꼽히는 간체 쿰붐.

 

간체의 팔코르 사원은 여행자들이 경탄해마지않는 티베트 최고의 불탑(스투파), 간체 쿰붐(Gyantse Kumbum)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십만탑’이란 뜻을 지닌 간체 쿰붐은 8층(기단 포함해 9층)에 그 높이가 35미터에 이르며, 층층이 이뤄진 법당이 무려 108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108개는 상징적인 숫자일 뿐, 실제로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거대한 만달라를 상징하는 쿰붐의 모양은 주요 법당이 자리한 5층까지는 8각형을 이루고, 위층은 원형으로 이뤄져 맨 꼭대기에는 거대한 황금첨탑을 얹어놓았다. 또한 쿰붐의 6층에는 간체와 중생을 굽어살피려는 듯 ‘보호의 눈’으로 불리는 부처의 눈을 사방에 그려 놓았다. 1427년 건축된 이 불탑은 네팔 양식에 따라 지은 것인데, 일반인에게는 6층까지 약 30여 개의 법당만 개방하고 있다.

 

간체 쿰붐이 있는 팔코르 최데 사원 전경과 간체 풍경(위). 코라 순례길에서 바라본 간체 쿰붐(아래).

 

팔코르 사원은 9세기 팔코르첸의 집권 시기에 처음 지어졌지만, 15세기 들어 다양한 종파의 사원이 팔코르에 들어서면서 상당한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중국 점령 이후 남아 있는 사원 건물은 현재 두 곳(샤카파 사원과 샬루파 사원)에 불과하다. 매표소를 지나면 오른편에 대법당이 있고, 왼쪽에 거대한 간체 쿰붐이 자리해 있다. 간체 쿰붐을 돌아 대법당 뒤쪽으로 올라가면 샬루파 사원이 자리해 있는데, 지금은 건물의 뼈대만 남아 내부는 텅 비어 있다. 하지만 이 사원의 지붕에 올라가면 팔코르 사원과 간체 종, 간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최고의 전망대 노릇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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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시룬포 소녀의 오체투지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의 황금사원

타시룬포에서 내가 만난 가장 감동스러운 풍경은

대법당도, 코라도 아닌

오체투지하는 소녀였다.

티베트에 와서 숱하게 만난 게 오체투지였지만,

소녀의 오체투지는 너무나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뜨거운 한낮이었고, 쨍쨍한 고원의 뙤약볕을 머리 위에 두고

소녀는 1시간이 넘도록 쵸르텐(불탑)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30분 넘게 쪼그려 앉아 사진을 찍다가

내가 먼저 지쳤다.

그녀의 이마에는 어느 새 송글송글 땀이 맺혔고,

지친 나는 그늘에 들어가 쉬면서 소녀의 오체투지를

한참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오히려 바라보는 내가 목이 말라

나는 다시 사원 입구까지 내려가 얼음 생수를 사들고 올라왔다.

여전히 소녀는 오체투지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드디어 소녀가 오체투지를 끝내고 돌아설 때,

나는 조금 전에 사온 얼음 생수를 그녀에게 건네며

‘타시텔레’(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얼음 생수를 건네받으며

‘셰셰’하고 인사를 받았다.

아무래도 그녀는 나를 한족으로 생각했던 모양인지,

시선을 피해 곧바로 그늘로 들어가버렸다.

목이 말랐었는지 내가 건넨 생수를 단숨에

반병이나 들이켰다.

 


 

 

하릴없이 나는 사원 골목을 오래오래 떠돌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타시룬포를 빠져나왔다.

숙소로 가기 위해 사원 앞 재래시장을 걸어가는데,

한 소녀가 물동이를 등에 지고, 한 손에는 차주전자 같은 것을 들고

힘겹게 시장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디서 보았나 했더니,

타시룬포에서 오체투지를 하던 그 소녀였다.

소녀는 총총 전통구역 쪽으로 사라졌지만,

오래오래 내 눈에는 힘겨운 소녀의 뒷모습에 자꾸

경건한 오체투지가 오버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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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로 1년, 그는 왜 라싸로 가는가

 

쓰촨에서 오체투지로 4개월, 앞으로 8개월 정도 더 오체투지로 라싸까지 갈 예정이라는 런저 스님.

 

해발 4618m의 감마라산을 앞에 두고 쓰촨에서 왔다는 런저 스님(39)을 만났다. 그는 한낮의 뙤약볕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 오체투지로 뜨거운 아스팔트를 따라가고 있었다. 본래 오체투지(五體投地)란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을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부처에게 예를 올리는 것인데, 실제로는 배와 가슴, 허벅지까지 땅에 닿게 하여 전체투지 모양을 띤다.

 

뒤에서 식량을 싣고 따라오는 보급인력도 없이 스님은 혼자서 오체투지로 라싸까지 가고 있다.

 

‘오체투지’를 티베트 스님들은 ‘차체’라고 부른다. 보통 티베트의 스님들은 차체를 할 때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사실은 더 많은 오체투지를 하기 위해) 앞에는 야크 가죽으로 만든 앞치마를 걸치고, 손과 발, 팔꿈치에는 나무와 가죽으로 된 보호대를 착용한다. 런저 스님도 그런 모습으로 차체를 하며 아스팔트를 따라가고 있었다.

 

스님은 말한다. 오체투지로 라싸에 가는 것은 "일생의 불경을 다 읽는 것과 같다"고.

 

- 어디서 왔는가?

- 타궁에서 왔다.

- 어디로 가는가?

- 라싸로 간다.

- 라싸는 왜 가는가?

- 라마로서 한번은 가야만 하는 길이다.

- 그렇게 오체투지로 말인가?

- 그렇다. 다들 이렇게 간다.

- 이렇게 가면 라싸에 언제 도착하는가?

- 1년쯤 걸릴 것이다. 더 걸려도 상관없다.

 

티베트에서 오체투지는 몸으로 경전을 읽는 방식이다.

 

- 타궁에서 여기까지는 얼마나 걸렸나?

- 4개월 걸렸다.

- 혼자 가는가?

- 혼자 간다.

- 다른 스님들은 뒤에서 식량을 들고 따라오는 보급 도우미를 두지 않는가?

-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다.

- 밥은, 또 잠은, 어떻게 해결하는가?

- 저기 뒤로 보이는 마을에 짐수레가 있다. 거기에 내가 먹을 식량과 필요한 것들이 실려 있다. 마을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냥 길에서 잔다.

- 그럼 다시 저 마을로 되돌아가야 하는가, 1km를 다시?

- 그렇다. 내가 가고자 한 만큼 오체투지로 가서 올 때는 걸어서 수레까지 온다. 수레를 끌고 다시 여기까지 와야 하니까.

-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뭔가?

- 그걸 묻는 이유는 뭔가. 오체투지로 라싸에 가는 것은 일생의 불경을 다 읽는 것과 같다.

- 옴 마니 밧메 훔

- 옴 마니 밧메 훔

 

야크 가죽 앞치마에 나무로 된 손받침, 타이어 조각을 덧댄 신발. 이것들은 길 위에서 닳아 수없이 교체하고 수선해야 한다.

 

스님에게 나는 10위안짜리 지폐를 가죽치마에 찔러주고는 고개를 숙여 합장했다. 보통 오체투지를 하며 라싸까지 가는 스님들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공양하는 돈과 식량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간다. 다행히 티베트에서는 이렇게 오체투지하는 스님들에게 기꺼이 공양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가난하고 쪼들리는 사람들이지만, 자신이 해야 하는 오체투지를 ‘그’가 대신해 주고 있으므로 그에게 하는 공양은 곧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여긴다.

 

오체투지를 하고 가는 런저 스님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마에 혹처럼 보이는 것은 수없이 많은 오체투지를 하면서 생겨난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서 2~3일이면 나는 흔들리는 차에 실려 라싸에 가 있을 것이지만, 그는 여전히 몸으로 경전을 외우며 저 팍팍하고 뜨거운 길 위에 육체의 모든 끝을 비비며 갈 것이다. 사실 그가 라싸에 가려는 이유와 내가 라싸에 가려는 이유는 확연히 달랐다. 그가 생각하는 라싸까지의 물리적 거리와 내가 생각하는 물리적 거리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차를 타고 가는 나의 라싸보다 되레 오체투지로 가는 그의 라싸가 훨씬 가까워보였다. 그가 라싸를 멀게 느꼈다면 애당초 이런 무모한 모험을 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흔아홉 굽이 감마라 고갯길. 스님은 이제 이 엄청난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그에게는 이것이 모험도 여행도 아닌 수행이며 참선이고 독경인 것이다. 아마도 나는 평생을 가도 그가 만나려는 라싸를 만나지 못하리라. 라싸에 도착해서까지 나는 라싸에 가기 위해 내내 차를 타고 있어야 하리라. 그렇다면 라싸는 내게 얼마나 멀고 끝없는 곳인가. 런저 스님은 환하게 웃었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어쩐지 오체투지하는 그보다 차에 올라앉은 내가 더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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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름과연어혹은우기의여인숙
글쓴이 : dall-lee 원글보기
메모 :

 

 

1,이제염오(離諸染汚)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주변의 부조리와 환경에 물들지 않고
고고하게 자라서 아름답게 꽃피우는 사람을
연꽃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이제염오(離諸染汚)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2,불여악구(不與惡俱)

연꽃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
물이 연잎에 닿으면 그대로 굴러떨어질 뿐이다.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에 그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와 같아서 악과 거리가 먼 사람,
악이 있는 환경에서도 결코 악에 물들지 않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를 연꽃의
불여악구(不與惡俱)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3,계향충만(戒香充滿)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한사람의 인간애가 사회를 훈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고결한 인품은 그윽한 향을 품어서 사회를 정화한다.

한자락 촛불이 방의 어둠을 가시게 하듯 한송이 연꽃은
진흙탕의 연못을 향기로 채운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계향충만(戒香充滿)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 한다.


4,본체청정(本體淸淨)

연꽃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한다.
바닥에 오물이 즐비해도 그 오물에 뿌리를 내린
연꽃의 줄기와 잎은 청정함을 잃지 않는다.
이와 같아서 항상 청정한 몸과 마음을 간직한 사람은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본체청정(本體淸淨)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 한다.


5,면상희이(面相喜怡)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
얼굴이 원만하고 항상 웃음을 머금었으며
말은 부드럽고 인자한 사람은
옆에서 보아도 보는 이의 마음이 화평해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면상희이(面相喜怡)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고 한다.

6,유연불삽(柔軟不澁)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다.
그래서 좀처럼 바람이나 충격에 부러지지 않는다.
이와같이 생활이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으면서도
자기를 지키고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유연불삽(柔軟不澁)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고 한다.




7,견자개길(見者皆吉)

연꽃을 꿈에 보면 길하다고 한다.
하물며 연꽃을 보거나 지니고 다니면
좋은 일이 아니 생기겠는가?

많은 사람에게 길한 일을 주고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견자개길(見者皆吉)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고 한다.

8,개부구족(開敷具足)

연꽃은 피면 필히 열매를 맺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꽃피운 만큼의 선행은 꼭 그만큼의 결과를 맺는다.
연꽃 열매처럼 좋은 씨앗을 맺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개부구족(開敷具足)의특성을 닮은 사람이라 한다.

 

9,성숙청정(成熟淸淨)

연꽃은 만개했을 때의 색깔이 곱기로 유명하다.
활짝핀 연꽃을 보면 마음과 몸이 맑아지고 포근해짐을 느낀다.
사람도 연꽃처럼 활짝 핀 듯한
성숙감을 느낄 수 있는 인품의 소유자가 있다.
이런 분들과 대하면 은연중에 눈이 열리고 마음이 맑아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성숙청정(成熟淸淨)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 한다




10,생이유상(生已有想)

연꽃은 날 때부터 다르다.
넓은 잎에 긴 대,굳이 꽃이 피어야
연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연꽃은 싹부터 다른 꽃과 구별된다.
장미와 찔레는 꽃이 피어봐야 구별된다.
백합과 나리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사람 중에
어느 누가 보아도 존경스럽고 기품있는 사람이 있다.

옷을 남루하게 입고 있어도 그의 인격은 남루한 옷을 통해 보여진다.
이런 사람을 연꽃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생이유상(生已有想)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고 한다.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화엄중생 원글보기
메모 :

한산의 종소리 (한산종성寒山鐘聲)

 

 

나무청량산금색계,대지문수사리보살

南無淸凉山金色界,大智文殊師利菩薩

청량산(오대산) 금빛세계에 계시는 대지 문수사리보살님께 귀의하옵니다.

 

나무아미산은색계,대행보현원왕보살

南無峨嵋山銀色界,大行普賢願王菩薩

아미산 은빛세계에 계시는 대행 보현왕보살님께 귀의하옵니다.

 

나무보타산류리계,대비관세음보살

南無普陀山琉璃界,大悲觀世音菩薩

보타산 유리세계에 계시는 대비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옵니다.

 

나무구화산유명계,대원지장왕보살

南無九華山幽冥界,大願地藏王菩薩

구화산 유명세계에 계시는 대원 지장왕보살님께 귀의하옵니다.

 

  

대지문수사리보살

 

대행보현왕보살

 

대비관세음보살

 

대원지장왕보살

 

 

 

 

음악서지사항

寒山钟声:旋律柔和优美。曲词:「南无清凉山金色界,大智文殊师利菩萨。南无峨嵋山银色界,大行普贤愿王菩萨。南无普陀山琉璃界,大悲观世音菩萨。南无九华山幽冥界,大愿地藏王菩萨。」光碟上注,是台湾欢乐唱片录音带出版社发行,南星唱片录音带有限公司代理,杨李荣监制,杨耿明制作,南星佛教制作组策划,自在梵呗组录音,释能超与释今妙法师为顾问。光碟没注版权,故应能流通

 



출처 : 보헤미안의 유토피아
글쓴이 : 月 明 居 士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우리출판사 발행    죽음을 준비 합시다 (현장스님 역) 


 


중음신(中陰身) 제도법(濟度法)


[불법을 알게 되면 태어남과 죽음을 저절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죽지 않는 오직 한 방법은 태어나지 않는 길이다.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무생(無生;나지 않음)의 경지를 깨달아야 한다. 무생만이 죽지 않는 길이니 영생을 구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죽음과 환생사이의 영혼을 제도하는 밀교와 정토의 가르침

      - [중음신(中陰身)제도법(濟度法)]



"중음신제도법"은 본디 밀종(密宗)에서 전하는 해탈 법 가운데 하나다.


정토종의 제도법과 밀종의 제도법은 그 뿌리가 같다. 다만 밀종에서는 중유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현교인 정토종에서는 중유의 세계는 말하지 않고 제도법만 다루고 있음이 다르다 하겠다.


그렇다면 두 가지 제도법 가운데 어떤 제도법이 이 말법시대에 적합한 제도법이 될 것인가? 밀법수행자는 지혜로운 근기가 있어야하고, 특별한 인연으로 깨우침을 얻은 금강상사(金剛上師)를 만나야 한다.


상사란 밀주(密呪)를 전하는 이를 말하는데 밀종에 귀의한 수행자는 상사가 전해준 이 주문을 날마다 염송해야 한다. 그러면 죽음을 맞을 때 밀주의 가지력(지켜주는힘)으로 중유에 빠지지 않는다. 혹 중유에 빠진다 해도 밀법의 힘으로 그 중유에서 빠져나와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참으로 깨우침을 얻은 금강상사는 봉황의 털보다 더 드물고 더구나 그런  금강상사를 만나는 일은 더 어렵다. 물론 상사 없이도 한 가지 밀주를 정해놓고 수행할 수는 있겠지만 말법시대에 홀로 밀주 수행을 이루기란 참으로 어렵다 하겠다. 거의 대다수의 중생이 죽을때 중유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이시대에 밀주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적기에 그 가지력 또한 약하다는 말이다.


 말법시대에 밀주를 수행하는 일이란 마치 도둑을 보고 입으로만 경찰을 부르는 것과 같다. 입으로만 경찰을 불러서는 도둑을 물리칠 수 없다. 도둑을 물리치려면 전화로 경찰을 불러야 한다.


지혜 있는 이가 밀주를 수행함이란 이와 같다.  정토종의 염불문에는 조건이 없다.  어떤 사람일지라도 바르게 염불만 하면 반드시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정토에 갈 수 있다. 이것이 가장 간편하고 정확한 해탈법이다.


 이 염불문 속에서는 지혜로운 이, 어리석은 이, 죄가 있는 이, 죄가 없는 이, 업이 가벼운 이, 업이 무거운 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중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염불하면 왕생하는데 어찌하여 이 책에서는 중유의 세계를 설명하는가?  염불수행을 하지 않는 불교인과 종교가 다른 사람에게 중유의 세계를 알려주고 그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일러주기 위함이다.

 

제1장 : 불교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구제법의 다른점

1. 다른 종교의 구제법


다른  종교란 불교 밖의 종교로, 신(神)을 섬기는 종교를 말한다.

신을 섬기는 종교에는 오직 하나의 신만 섬기는 일신교(一神敎)와 여러 신을 섬긴다는 다신교(多神敎)가 있다. 신을 섬기는 종교의 공통점은 자신이 섬기는 신이 아니면 모두   부정해 버린다는 점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믿는 신과 교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가르친다. 역사상 일어났던 수많은 종교 간의 분쟁과 전쟁이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자신의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는 사악 하다는,신을 섬기는 종교의 가르침은 중생을 구제하기에 앞서 파멸에 빠뜨리기 일쑤다.


이와 같이 신을 섬기는 종교는 그 가르침이 가진 한계 때문에 사람을 구하고 돕는다는 생각이 넓지 못하고 구제할 대상도 신을 맞는 이들로 한정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저들은 이러한 구제법이 "신의 뜻"이라 믿기에 "따르는 이는 살 것이요 따르지 않는 이는 죽을 것 이다"는 그릇된 가르침을 불멸의 진리라고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종교의 생명은 자비심이다. 자비심은 중생을 섬기고 보살피는 정신이다. 자신이 믿는 신을 섬기는 이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정신은 바로 그 종교가 갖는 자비의 폭이 좁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이다.


신을 섬기지 않거나 신을 모르는 사람, 또 지옥이나 짐승의 세계에서 괴로움을 받는 중생들은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자비심을 귀히 여기는 이라면 이같이 묻지 않을 수 없다.



2.불교의 구제법


불교는 신을 섬기는 종교가 아니다. 인과법을 소중하게 여기고 스스로 깨우치는  일을 삶속에서 이루어내는 길이요, 가르침이 불교다.


물론 불교에서도 신과 천국에 매달리지 않고 사는 것을 더 중요한 가르침으로 여긴다. 삶의 가치를 하나라고 고집할 때 삶을 이어주는 유기 관계는 어김없이 깨지고 그 본디 생명력이 시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신을 섬기든 섬기지 않 든 그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고집함이 없이 사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런 저런 신을 섬기는 이들이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 왔을 때 삶의 진실을 말씀 하셨을 뿐 섬기는 신에 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바른 가르침이란 주의(主義)가 아니라 삶의 진실에 눈을 뜨게 하는 일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바로 삶의 진실에 눈을 뜨는 일이다.


깨달음이란 덧없음과 무엇이, 무엇이 아님을 밝게 몸소 겪는 일이다. 선과 악, 참과 거짓, 신과 사람의 덧없음, 그것이 그것 아님을 밝게 알 때만 끝없는 자비심이 피어난다.

그래서 깨달은 이는 종교나 중생의 모습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행복과 기쁨을 공양(共養)하는 것이다.

 

악마까지도 행복한 존재가 되어야 나도 행복하겠다는 마음은 다른 종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불교의 독특한 정신이라 하겠다. 신을 섬기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과 악마는 선과 악이 맞섬을 상징한다. 그런 종교에서는 또 사람은 죄악에 물든 존재라 규정한다.

 

 신을 믿으면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악마를 따르면 영원히 타락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신을 내세우는 종교에는 인류의 시작부터 악마가 등장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류의 죄악을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전지전능한 신이 왜 완전한 사람을 창조하지 못했나 하는 점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악은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그것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죄악은 삶의 현상이요. 삶의 사건이다 현상과 사건은 참으로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예측 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다.


이 변화의 흐름을 결정짓는 힘을 업(業)이라 하는데 이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겪는 선악 갈등의 괴로움은 업기운 (業氣運)의 맑고  어두움 가볍고 무거움에 달린 것 이지 신이나 악마의 존재와는 관계가 없는 것 이다.


아무튼 크게 깨달은 이는 삶의 진실에 들어 맞게 살뿐 틀 지워진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깨달은 이, 곧 부처님이나 보살들은 꼭 착하고 좋은 모습만으로 악인을 구제 하지는 않는다.


악인의 모습으로 착한 사람을 제도하기도 한다. 불교는 조직으로 힘을 삼는 종교가 아니라 끝이 없는 자비심으로 힘을 삼는 종교다.  불교는 어떤 종교를 따르는 중생이든 어떤 모습을 한 중생이든 그들이  괴로움에 빠졌을 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나아가 나고 죽는 윤회의 흐름을 길이 쉴 수 있게 도와주는 가르침이다.


불교는 조직이나 단체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 삶의 진실에 눈을 뜨고 업의 기운을 바꾸는 일을 중히 여길 뿐 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배울 수 있고 또 마땅히 배워야 할 가르침이다 이것이 불법(佛法)이다.


우리가 불법을 가벼이 여기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괴로움은 더욱 커지고 길어질 것 이다.  그러므로 참된 불교인이라면 순간, 순간 중생의 괴로움을 잊지 말아야 하고 기회를 찾아 인연을 만들어 그들을 이끌면서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생은 업이 무거워 진실성과 조화성을  나 몰라라 하는 삶의 방식에 깊이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생을 바르게 제도 하려면 너나 가릴 것 없이 그 어떤 보상 조건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중생의 삶을 당장 바꾸어 줄 수 없더라도 바른 가르침이란 반드시 꽂을 피우기 마련인 죽지 않는 빛과 생명의 씨앗임을 확신해야 한다.


이것이 불교의 구제 정신이다. 특히  중음신 구제법은 의식이 아홉 배 맑아져 지난 일을 환히 기억할 수 있는 중유기에 든 중생을 위한 가르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 중요함과 뛰어난 공덕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제 2 장 : 죽음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1.왜 태어나는가?


죽음은 태어남에서 생긴다.

죽음과 태어남은 윤회하는 삶의 주된 특징으로, 어리석음(無明)의 힘을 알맹이로 삼는다.


참으로 우리들의 삶이란,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꿈속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무명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다. 이 같은 어리석음의 파동이 겹겹이 일어나서 업을 키워나가는 삶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리석음에서 일어난 업의 생은 컴퓨터의 기억장치처럼 삶의 모든 행동의 뿌리가 되어버린다. 어리석음에서 일어난 업력은 나와 ‘맞다’ 또는 ‘안 맞다’는 생각을 만들어내고 이 같은 생각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몸과 마음을 지어낸다. 그래서 힘살, 뼈, 피따위를 ‘나’ 라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앞뒤 안 가리고 이 나를 지키려는 경향을 띠게 된다.


그럼으로 해서 ‘나’ 라는 존재를 고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업력에 따라 좋고 나쁨, 아름다움과 미움 따위를 가린다. 그래서 저마다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업력이 같은 사람이 모이면 친근감이 생기고 업력이 다른 사람이 모이면 관계가 성글어 진다. 이른바 정신없이 어지러운 탁‘濁’이 생기는 것이다.


업력은 몸으로써 자기를 한껏 나타내려고 한다. 또 고집된 ‘나’ 로 하여금 이득이 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을 얻으려는 한 마음으로 차차 눈, 코, 귀, 혀, 촉각신경과 생각하는 기능 같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지어낸다.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형성되면 고집된 가짜 ‘나’ 가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활동은 먼저 바깥과의 접촉에서 시작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과 같이 모든 감각기관이 저마다 그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이 같은 바깥과의 접촉은 어머니 배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태교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접촉에 따라 여러 가지 느낌이 아주 민감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 에게 이득과 편안함을 주는 것이면 즐겁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싫어하고 맞선다.


그래서 사람의 성격이 바뀌면 좋아하지 않던 것을 좋아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떤 사물에 좋고 나쁜 특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물을 대하는 업력의 차이 때문이다. 무엇을 좋아하면 그것을 가지려는 행위로 이어진다. 그것이 소유욕이다.


가지려는 욕심도 소유욕이지만 갖지 않으려는 욕심도 소유욕이다. 중생은 이 같은 방식으로 ‘나’ 라는 몸뚱이를 끝까지 소유하고 싶어서 가지가지 억지를 부린다. 이것이 중생의 삶인데 죽음은 이런 저편에 있는 것으로 두려움과 괴로움을 던져준다.


2.왜 죽는가?


중생의 삶이란 무명의 업력이 일으킨 파장이다. 그렇다고 중생의 삶이 업력 하나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업력과 더불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조건들이 함께 해야 중생의 삶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의 태어남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경전에 “한 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천만겁을 헤맨다.”고 했다. 이 말을 새겨 보면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려움을, 한 번 사람 몸을 잃게 되면 길이 삼악도에 떨어져 헤매게 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마음 때문으로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누구를 죽이거나 삿된 음행, 거짓말, 도둑질을 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짐승이나 지옥처럼 만들어, 죽으면 바로 그 업의 힘에 따라 그런 곳에 태어나게 된다. 업력에 따라 받은 몸을 보신(報身)이라 하고 업력에 따라 받은 세계를 보토라고 한다.


태어난 뒤로도 많은 조건들에 따라 업력은 바뀌어 가고 삶을 지탱하는 조건들이 다 하게 되면 죽게 된다. 사람마다 업력이 다르기 때문에 목숨도 저마다 다르다, 목숨은 결코 신이 정해 준 것이 아니다. 목숨이 저마다 다른 것은 ‘원인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는 말씀처럼 아주 마땅한 이치이다.


중생은 결과만 보고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생의 원인이 내생의 결과 됨을 알지 못한다. 만약 삶의 진실을 깨달아 인과에 눈을 뜨지 않으면 윤회하는 삶의 괴로움은 태어날 때마다 이어질 것이다.


중생의 생명은 삼라만상과 마찬가지로 조건의 형성으로 태어나고 조건의 이어짐으로 살아가고 조건이 무너짐으로 시들어가고 조건의 없어짐으로 죽는다. 이것이 이른바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 生老病死의 변치않는 네 과정인 것이다.


좋은 조건을 태어나면 살아가기에 좋다. 그래서 좋은 인연을 만드는 일이 수행에 필요한 길이 된다. 불법을 알게 되면 태어남과 죽음을 저절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죽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태어나지 않는 길이다.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無生의 경지를 깨달아야 한다. 무생만이 죽지 않는 길이니 영생을 구하는 일은 환상일 뿐이다.


3 죽음이란 무엇인가?


중생은 저마다 업에 따라 몸과 세계를 받는다. 사람들은 업력과 환경이 비슷하기에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듣는다. 이 같은 삶의 조건들이 사라지면 업력도 바뀌고 보고 듣는 세계도 바뀐다.


이처럼 업이 다른 세계로 옮기는 것을 佛敎에서는 전류(轉琉)라 한다.

현대과학에 빗대어 말하면 업력은 전파와 같다.

같은 세계에 태어난 중생은 한 전파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삶의 조건이 사라지면 전파가 바뀌어 세계가 달라진다. 죽은 사람은 이제 더는 있었던 세계를 볼 수 없고 산 사람은 죽은 이의 세계를 볼 수 없다. 이것은 마치 TV 채널 1과 채널 2의 전파가 틀려서 채널에 따라 화면이 달라지는 현상과 같다. 중생은 지난 생의 업력에 따라 새로운 몸과 세계를 받는다. 이 같은 진실은 어떤 신의 이름을 불러도 바뀌지 않는다.


부처님은 “모든 존재는 자성(자기라고 고집할 만한 성품)이 없어서 저마다 허상일 뿐이다.”고 가르쳤다.

죽음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태어남과 죽음의 관계를 밝게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게 되면 죽음이란 결코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평화로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준비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왜 불교도들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이런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매우 어긋나는 말이다. 업력이 끝나지 않았다면 마땅히 과보를 받게 되어 있다. 과보를 받기 싫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오히려 나쁜 업을 짓게 되어 다음 생에 더 많은 괴로움을 받게 된다.


죽음을 맞는 준비란 무엇인가? 생명의 기원과 그 끝을 알아 모든 생명이 다 거쳐 가는 과정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날마다 염불하면 업력이 부처님의 감응을 받아, 죽을 때 윤회가 사라진 정토에서 태어날 수 있다. 염불수행을 정성스레 하면 스스로 죽을 날짜를 알 수 있고 병고가 없이 맑은 선정 속에서 극락왕생한다. 이것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다.


염불과 인연을 맺지 못한 불자나 다른 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이들이 죽음을 맞을 때 스스로 구제하는 자기 구제법을 다음 장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자기 구제법이란, 비록 나쁜 내생의 길이 나타나도 그 길에 들지 않고 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특별한 법이다.



제 3 장 : 네 요소(四大: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地水火風)가 흩어짐


1.죽음의 앞뒤


사람은 한 기간의 업보가 끝나면 저절로 죽음을 맞는다. 불법을 수행한 사람이라면 죽음을 맞는 방법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을 때 큰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재산 때문에,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설사 이 같은 문제가 없고 걱정 않는 사람일지라도 죽음 앞에서 큰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바르게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여러 가지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고, 어떤 종교를 믿었건 상관없이 스스로의 업력에 따라 가지가지 현상들을이 보인다.


살아서 十善을 베푼 이는 천상의 노래가 들리고 하늘사람이 이끌어 준다. 또 악을 행한 이는 지옥이나 아귀 모습이 나타나 끝없는 괴로움을 받는다.


이같이 악을 행한 이들은 심한 병고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때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그 사람들을 이끌어 주는 이가 없다면 그는 업력에 따라 삼악도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큰 선이나 큰 악을 행한 사람이 아니라면 죽을 때 며칠이나 몇 주 동안 앓기도 하고, 야차, 맹수, 원혼 같은 괴이한 현상을 보기도 한다. 이것 모두가 스스로의 업력이 불러온 것이다.

이때 너무나도 두려운 나머지 어떤 이는 눈을 감으려 하지 않고 어떤 이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려 하고 어떤 사람은 큰 소리로 욕하면서 눈앞의 괴물을 내쫓으려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네 가지 기운(四大)은 흩어지게 된다.


2. 네 기운이란 무엇인가?


네 기운이란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인 흙, 물, 불, 바람의 네 가지 기운을 말한다.

이 네 가지 요소는 우주법계에 없는 곳 없기에 크다(大)라고 부른다. 사람의 사대는 어머니 뱃속에 들면서부터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자라면서 네 기운은 강하고 생명력이 넘치게 된다.


이때 네 기운은 무엇을 판단하는 기능을 지닌 ‘나’가 된다.

사람이 죽으면 네 기운이 흩어지고 인식작용도 사라진다. 다만 업력에 따라 또 하나의 생명을 가진 네 기운을 이루어 그 업력의 기능을 수행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는 이 점을 명심해서 네 기운의 덧없는 모습에 속지 말아야 한다.


3. 네 기운(地, 水, 火, 風)이 흩어짐


네 기운으로 뭉친 몸이 흩어질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은 흙 기운이 물 기운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이때 죽음을 맞는 사람은 둘레의 압력이 아주 세게 몸을 짓눌러 오는 것을 느끼는데, 그 흙 기운은 몸의 모든 털구멍 속으로 스며들어 와 내장과 뼈를 짓누른다. 매우 심하게 숨이 막히고 큰 괴로움 속에서도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때 옆에 있는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의 몸이 떨리고 손발에 경련이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절대 만지거나 주물러서는 안 된다. 이 같은 행동은 죽음을 맞는 사람에게 더욱 더 심한 괴로움을 줄 뿐이다.


다음은 물 기운이 불기운으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몸은 찬 기운이 세게 느껴지고 뼈마디와 내장이 얼어붙는 듯한 괴로움이 하고 심해서 방 안에 난로가 있어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같은 괴로움은 알몸으로 얼음 속에 있는 것보다 더하고 얼굴빛이 잿빛으로 바뀌면서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다음으로 불기운이 바람기운으로 바뀌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때 죽는 사람은 몸의 기능이 다 되어 저항력이 사라지면서 더욱 심한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갑자기 온몸에 뜨거운 열기가 올라와 불에 타는 듯한 괴로움이 내장과 팔다리에 스며들고 힘살과 힘줄을 도려내는 듯한 괴로움으로 온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 버린다.


불에 타는 듯이 얼굴이 붉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마시는 숨보다 내쉬는 숨이 길어지다가 마침내 숨길이 멈춘다.


마지막으로 바람기운이 흩어진다. 갑자기 심한 바람기운이 죽는 이의 온몸을 몰아치며, 몸이 조각조각 먼지로 흩어지는 극심한 괴로움을 겪게 된다.


이쯤이면 네 기운이 흩어지고 힘살이 무너져 의학에서는 죽음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제8식이 아직 떠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죽음이라 하지 않는다. 이때 친척들은 절대로 죽는 이의 몸을 만져서는 안 된다. 몸을 만지면 죽는 이에게 극심한 괴로움을 주기 때문에 화를 나게 하여 죽는 이가 삼악도에 떨어질 수 있다.


죽음을 맞는 사람은 나쁜 신뿐만 아니라 선신이 나타나도 따라가지 말고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죽음을 맞기 앞서 넉 달이나 한 달, 3주나 이틀 동안이라도,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른 염불행자는 죽을 때 아래와 같은 상서로운 현상을 경험한다.


①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편안하다.


② 죽을 날짜를 뚜렷이 안다.


③ 온갖 끄달림이 사라진다.


④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⑤ 단정히 않아 합장한다.


⑥ 평화로운 빛이 온몸을 감싼다.


⑦ 염불하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는다.


⑧ 미묘한 향기가 밀려온다.


⑨ 하늘의 음악이 들려온다.


⑩ 지켜보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위의 상서 가운데 두 가지만 나타나도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특히 두 번째, 죽을 날짜를 알 수 있는 상서는 아주 중요하다.



4. 죽을 때의 다른 징조들


사람이 죽을 때 스스로가 살아온 삶의 습기인 선과 악이 모두 눈앞에 나타난다. 착한 일을 많이 한 이는 아랫몸이 먼저 식고 나쁜 일을 많이 한 이는 윗몸이 먼저 식는다.


마지막으로 식는 곳이 얼굴인 사람은 하늘나라에, 심장이면 사람, 배면 굶주린 아귀, 무릎이면, 짐승으로 태어나고, 발이 마지막으로 식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나 윤회를 벗어난 사람은 온몸의 온도가 식어버리고 다만 머리 위에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다.


[지옥을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사나운 얼굴로 사람들을 쳐다보고,

사랑하는 사람한테도 무서운 얼굴을 한다.


l 공중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잡으려고 한다.


l 다른 사람이 좋은 말을 해도 듣지 못한다.


l 매우 슬프게 운다.


l 똥, 오줌을 못 가린다.


l 눈을 감고 뜰 생각을 못한다.


l 자주 얼굴과 머리를 가린다.


l 옆으로 누워서 가래를 삼킨다.


l 입과 온몸에서 나쁜 냄새를 풍긴다.


l 다리를 몹시 떤다.


l 코가 옆으로 기운다.


l 눈에 핏발이 선다.


l 엎드려 눕는다.


l 몸을 움츠리며 왼쪽으로 눕는다.



[아귀를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입술을 자주 핥는다.


l 몸이 뜨겁다.


l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 무언가 먹으려 한다.


l 눈을 뜨면 감을 줄을 모른다.


l 두 눈이 말라 버린다.


l 오줌을 안 누고 똥을 가리지 못한다.


l 오른쪽 무릎이 먼저 차가워진다.


l 오른손으로 자주 주먹을 쥔다.



[짐승을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 보고 싶어 한다.


l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츠리려 한다.


l 온몸에 땀이 흐른다.


l 목소리가 쉬어버린다.


l 입맛을 계속 다진다.



[사람을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편안하고 착한 생각이 든다.


l 몸이 아프지 않다.


l 말이 많지 않고 부모 생각을 한다.


l 배우자를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고 친척의 이름을 듣기 좋아한다.


l 선악을 가려내고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


l 마음이 진실 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l 친척과 가족을 알아본다.


l 친척들이 한일을 칭찬한다.


l 집안일을 부탁하고 재산을 터놓는다.



[천인을 감응할 때 나타나는 증상]


l 연민심이 생긴다.


l 착한 생각이 든다.


l 기쁜 생각이 든다.


l 밝은 생각이 든다.


l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다.


l 코가 옆으로 기울지 않는다.


l 화내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l 재산과 가족에게 미련이 없다.


l 눈이 맑다.


l 웃는 얼굴을 한다.



제 4 장 : 중유기로 들어가는 앞뒤단계


 

1.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


임종중음(臨終中陰)


죽어 몸과 마음이 흩어져 버리면 신령한 의식인 영식靈識이 중음이 세계로 들어간다.

이때 생긴 신령스런 몸이 바로 中陰身이다.


중음신은 괴로움, 두려움, 허둥댐의 시기를 맞는다. 죽음에 바로 든 이가 해탈할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갖는다.


첫 번째 기회는 죽는 순간 첫 번째 빛이 나타날 때이고 두 번째 기회는 죽은 뒤 빛이 나타 날 때 이다. 중음신이 이때 나타나는 빛을 바르게 가릴 수 있다면 바로 해탈을 얻는다.


실상중음(實相中陰)


l 첫 번째 7회의 해탈기회와 위기


죽은 뒤 사흘 반부터 열흘 반까지를 이른다. 이 시기에 중음신은 해탈할 수 있는 기회를 일곱 번 갖는다. 그러나 육도에 윤회할 수 있는 위기도 7번 갖게 된다.


본문에서 말하는 가르침을 잘 알아두고 해탈의 빛을 잘 헤아려 알면 바로 해탈에 이른다.


l 두 번째 7회의 해탈기회와 위기


죽은 뒤 열흘 반부터 열이레 반까지 이른다. 이 시기에도 중음신은 해탈할 기회를 일곱 번, 육도 윤회할 위기도 일곱 번 맞는다.


본문에서 말하는 가르침을 잘 알아두고 해탈의 빛을 잘 헤아려 알면 바로 해탈에 이른다.


투생중음(投生中陰)


죽은 뒤 열이레 반부터 49일까지를 이른다.


중음신은 환경이 더 없이 나빠져 육도에 태어나 다시 생사윤회의 괴로움을 받게 될 시기이다. 이때 중음신은 냉정하게 이 책에서 일러준 가르침을 생각해 내어 스스로를 육도윤회에서 건져내야 한다.


중음신은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고 또 어떤 모습과 소리가 보이고 들리더라도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아미타부처님께서 정토로 이끌어 주시기까지 한결같이 아미타불을 염불해야 한다.


2.임종


몸을 구성하고 있던 네 요소가 흩어지고 제8식이 몸을 떠나면 中有기에 이르니 이때의 몸을 中有身이나 중음신(中陰身)이라 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방황기이다.


죽을 때 마지막 숨을 내뱉고 들이쉬지 않는다고 온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이때 둘레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울거나 만져서는 안 된다.


이렇듯 죽은 듯한 상태가 얼마나 이어지는 가는 죽은 이의 건강상태에 달렸다. 구멍에서 노란 액체가 나오면 죽었다고 할 수 있다.


죽은 이가 아미타불을 염불하게 되면 큰 빛을 볼 수 있다.

이런 빛은 두 번 나타난다. 영식이 몸을 떠나면 혼수상태에 빠지고 사나흘이 지나야 깨어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중음신이 되는 첫날이다. 그래서 중유기간인 49일은 죽은 그날이 아닌 사나흘이 지난 뒤부터 계산한다.


3.중음신의 일반상황


중음신은 일종의 미묘한 네 요소(사대)로 이루어진 몸으로, 생전의 아홉 배에 이르는 기억력을 지니고 있고 대부분이 스스로가 죽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

장례를 치르는 친척이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때서야 자신이 죽은 몸 곁으로 와 자신의 죽음을 확인한다.


어떤 중음신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없는 것을 보고 죽었다는 것을 알기도 한다. 이때 중음신은 무척 마음이 상하고, 마음이 상하자마자 큰 괴로움을 느낀다.


중음신은 생전의 몸을 잊지 못해 자주 죽은 몸 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때 마다 타는 듯한 괴로움을 느낄 뿐이다.


중음신은 이렇게 정처 없이 헤맨다. 잠시 쉬려고 하지만 중음신은 사람과 달리 목숨이 길지 못하다. 어떤 때는 살아있던 때의 몸이 그리워 집에 돌아가 보지만 몸은 이미 땅 속에 있거나 불에 태워져 사라져 버린 뒤다. 중음신의 괴로움은 더욱 커가고 끝내 중음신은 이 같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을 찾는다.


이때 중음신이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바로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중음신은 괴로움에 휩싸이게 되고 구원을 갈망하는 사이에 여섯 가지 빛을 보게 된다.


이 여섯 가지 빛은 육도윤회의 빛으로 자기와 감응이 깊은 세계의 빛이 강하게 느껴진다.


하늘세계는 흰색,

사람은 노란색,

아수라는 연초록색,

짐승은 연파랑 색,

아귀는 연붉은색,

지옥은 검은색 빛이다.


이 빛들은 약한 빛으로 큰 밝음이 없다.


만약 중음신이 이 여섯 가지 빛 가운데 어느 한 빛 속으로 빠져들면 윤회의 굴레를 쓰게 된다. 중음신은 이 빛들이 뜻하는 바를 모르기 때문에 오직 직감과 업력으로 빛을 선택한다.


이때 오방불계(五方佛界)에 계시는 부처님들이 윤회하는 삶들을 건지려고 다섯 가지 빛을 뿌린다. 매우 밝지만 찬란하지 않은 파란빛, 청정한 흰빛, 곱고 부드러운 노랑 빛, 고귀한 붉은 빛, 맑고 성스러운 풀빛이 그것이다.


중음신은 이 빛에 따르면 바로 정토에 태어난다.


그러나 중음신은 스스로의 업력 때문에 이 빛을 두려워하면

마계(魔界)의 빛으로 잘못 알아 윤회(輪廻)의 길로 빠지고 만다.


이 부처님의 빛은 함께 나타나지 않고 하나씩 나누어서 나타난다.


4.악업을 받는 낌새


짐승


중음신(中陰身)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기절하여 다시 깨어난다. 몹시 불안해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장례식에서 동물이나 집짐승을 죽여 만든 음식으로 대접하면 무서운 형상이 나타나 삼악도로 이끈다. 그러므로 반드시 채식으로 상을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자는 큰 괴로움을 당한다.


중음신의 몸은 아주 가벼운 깃털처럼 바람 따라 정처 없이 휘날리게 된다. 또 갑자기 맹렬한 빛과 함께 우렁찬 천둥소리가 터지고 손에 흉기를 든 무서운 야차가 끝없이 나타나고 무서운 맹수들이 쫓아오고 산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큰 불꽃이 쫓아온다.


중음신은 겁에 질려 도망친다. 횐 색, 검은색, 붉은색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 높은 낭떠러지에 이른다. 야차와 맹수들은 계속 쫓아온다. 그때 홀연히 동굴이 보여 너무 기쁜 나머지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동굴은 짐승의 세계다. 야차와 맹수와 소리와 불꽃은 생전에 지은 자신의 업력(業力)이 일으키는 환상(幻像)이다.


흰색, 검은색, 붉은색은 업의 세 요소인 세 가지 毒素이다.


중음신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흔들림 없이 아미타불을 염불해야한다.


아귀(餓鬼)


아귀의 욕심은 끝이 없다. 아귀의 삶은 ‘구해도 얻을 수 없음’으로 줄곧 이어진다.


중음신에게 이 같은 악업이 있다면 자신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나 동굴에 홀로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아귀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보통 복덕이 있는 아귀와 복덕이 없는 아귀로 나눈다.


복덕이 있는 아귀를 세력 귀라 부른다. 세상 사람들이 숭배하는 신 가운데는 이 세력 귀들이 끼어 있다. 야차, 산신, 토지신이 여기에 속한다. 생전에 보시를 하면서 가난한 이를 도왔으나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거나 남을 속여서 돈을 모은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복덕이 없는 귀신에는 소아귀, 다아귀, 전아귀의 세 종류가 있다.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남을 위해 베풀지도 않은 이는 소아귀로 태어난다. 소아귀는 얼굴이 검고 말랐고 남색이나 붉은색이다. 눈에 눈물이 흐르고 손발이 부서지고 머리카락이 기러 얼굴을 가리고 있다. 목마름이 심하나 자손이 제사지내는 음식이나 절에서 공양하는 음식만 먹을 수 있다.


다아귀도 소아귀와 비슷하나 소아귀보다 괴로움이 심하다.

전아귀는 완전히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입에서 불길이 나와 음식이 입에 닿자마자 타버린다.

거기다 배는 크고 목구멍은 바늘보다 가늘어 배고픔이 극심하다. 우란분회에서 공양하는 음식만 먹을 수 있다.


만약 중음신이 이런 아귀와 감응할 징조를 느끼면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해야한다.


지옥


중음신이 살아있을 때 아주 나쁜 업을 지었다면 아래와 같은 현상을 보게 된다.


슬픈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그 음악소리를 따라가면 검거나 횐 돌로 만든 집이나 동굴로 들어서게 되고 깜깜한 지하도를 건너게 된다. 이것은 지옥에 떨어질 징조이니 중음신은 한마음으로 염불해야한다.


또 어떤 중음신은 추운 비바람 속에서 갑자기 뜨거운 불을 보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불이 있는 곳으로 가면 불꽃지옥에 떨어진다. 거꾸로 뜨거운 바람 속에 있다가 시원한 바람을 마나 그 바람 곁으로 가면 얼음지옥에 떨어진다.


이럴 때도 중음신은 한마음을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아수라


아수라는 본디 좋은 세계에 들지만 자주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싸우는 것을 좋아하니 아주 좋은 세계라고 볼 수는 없다.


남자 아수라는 하늘사람들과 쉬지 않고 싸움을 하고 여자 아수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수행자의 수행을 방해 한다.

아수라는 비록 괴로움을 받지는 않지만 목숨이 다하면 삼악도에 떨어질 위험이 많다.


살아있을 때 이기는 것을 좋아하고 지나치게 선악을 가려 낸 중음신은 중유기에 아름다운 숲을 보게 된다.

또 두 개의 불 바퀴가 나란히 도는 것을 보고 좋아서 가까이 가면 아수라로 태어난다.


이럴 때 중음신(中陰身)은 반드시 염불을 해야 한다.


5.선업을 받는 낌새


사람 


『아함경』에 따르면 인간계에는 네 가지 세상, 사대부주(四大部州)가 있다. 동승부주,남섬부주,서우하주,북구로주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사람이 살고 있는 남섬부주 말고는 불법이 없다.


북구로주는 복과 목숨이 길고 향락에 빠지기 쉬운 곳으로 절대로 이곳에 태어나서는 안 된다. 동승신주를 감응한 중은신은 아름다운 기러기들이 살고 있는 큰 호수를 보게 된다. 이런 경치에 이끌리면 이곳에 태어난다.


남섬부주에 감응한 중음신은 심한 추위로 피할 곳을 찾게 되는데 업에 따라 큰 집이나 작은집을 만나게 된다. 만약 벽만 있는 집을 만나게 되면 가난한 이로 태어난다. 이럴 때 한마음으로 염불하면 모든 현상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서우하주에 감응한 중음신은 소가 풀을 뜯는 호수를 보게 될 것이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많고 오래 살 수 있으나 불법이 없는 곳이니 절대로 따라 들어가면 안 된다.

중음신은 사람으로 태어나기 앞서 남녀가 결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아버지와 가까이 하려는 생각을 일으키면 여자로, 어머니와 가까이 하려는 생각을 일으키면 남자로 태어난다.


중음신은 자유로워 시공에 걸립이 없으나 한 번 어머니 배 안에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남녀가 결합한 모습을 보게 된 중음신은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해야 된다.


하늘사람


살아 있을 때 착한 업을 쌓은 중음신(中陰身)은 중유기(中有期)에 부드럽고 흰 빛을 보게 되고 기분이 날아갈 듯 편안하다.

하늘세계와 하늘사람들을 보게 되고 마음이 기쁘다.


어떤 이는 죽을 때부터 하늘음악 소리를 듣게 되어 둘레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늘세계는 여섯 가지 종류가 있다. 저마다 각가지 즐거움이 넘치고 목숨이 길기지만 인연이 다하면 다시 윤회하는 길에 들게 되니,

 

 이 같은 하늘 세계에 끄달려서는 안 된다. 중음신은 하늘세계나 하늘 사람인 천사들을 보면 여기 끌리지 말고,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그래야 윤회에서 벗어난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제 5 장 : 사람이 죽어서 49동안에 겪는 일들과 자기구제법


임종중음(臨終中陰)...죽은 직후 영혼의 상태


죽음을 맞는 이의 숨길이 끊어진지 스무 시간이나 서른 시간이 되면 죽은 이의 심령(心靈)은 밝은 빛 속에 있으면서 잠깐이나마 더 없는 편안함과 만족을 느낀다.


가족들은 죽은 이의 이런 상태가 깨뜨려지지 않도록 잘 살펴주고 정토염불법을 닦는 벗들이나 스님들을 불러 염불로 중음신의 의식을 더욱 밝혀주어야 한다.


염불을 해주면 중음신은 의식이 어두워지지 않고 바로 눈부신 빛 속에서 해탈에 이를 수 있으니 이것이 중음신에 해탈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이다.


잠깐 동안 밝은 빛이 터졌다 사라지는 경계가 계속 이어지는데 이때 중음신은 스스로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살아 있을 때처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이들을 보고 그들이 나누는 말을 듣는다.

 

이때는 무서운 업력(業力)에서 나오는 갖가지 환영(幻影)이 나타나기 전으로 중음신은 아주 밝은 빛 속에 있다.


만약 중음신이 살아 있을 때 이 가르침을 보거나 들었다면 바른 생각을 일으켜 계속 터지는 빛 속으로 해탈할 수 있다.


그러나 친척이나 친구들이 부르거나 그밖에 무서운 모습들을 보게 되면 이는 중음신을 삼악도로 이끌려는 현상임을 알아야 한다.

또 아름다운 하늘여인이 맞이하려 해도 결코 마음이 흔들려 따라가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윤회하는 괴로움 바다에 빠지게 된다. 살았을 때 움켜쥐었던 그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려야 한다.

꿈같고 물거품 같은 그것들에 끄달리고 그것들을 잊지 못하는 것은 중음신에게 큰 괴로움을 줄 뿐이다.


다 놓아버리지 않으면 끝내 해탈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다시 육도윤회에 빠지게 된다.


모든 생각을 다 버리고 아미타부처님께서 정토로 이끌어 주시어 나고 죽는 괴로움에서 건져 주시기를 마음 다해 기원해야 한다.


2.실상중음(實相中陰)..본격적인 저승길에 들어선 영혼


살아 있을 때 바른 가르침이나 스승을 만나지 못한 중음신은 중유기(中有期)에 헤매고 괴로워한다.


죽은 뒤 사흘부터 다시 깨어난 중음신은 눈, 귀, 혀, 몸, 의식의 기능이 본디대로 살아나 중유기간인 49일 동안 활동한다. 장님이나 벙어리였던 중음신도 이 기간에는 걸림 없이 보고 말할 수 있다. 중음신의 몸과 의식은 지극히 섬세하고 맑아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다. 중음신은 가족과 벗들이 슬피 울고 외쳐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중음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중음신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가족과 벗들에게 마음이 상해 자리를 떠난다. 이 단계에서는 업력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환영들이 잠깐씩 나타나기도 한다.

중음신은 해탈의 기회를 7번, 육도윤회에 빠질 위기도 7번 맞이한다.


만약 중음신이 이 가르침을 잘 외우지 못하거나 아미타불을 염불할 수 없어 업력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가지 무서운 현상들에 휘몰려 정신없이 쫓겨 다닌다면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 가운데 떨어져 무서운 괴로움을 받게 될 것이다.

 

중음신은 앞장에서 말한 일반현상 말고도 날마다 여러 가지 현상들을 경험하게 된다. 이 같은 현상에 휘말려 들지 않으려면 그 낱낱 현상들을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러면 반드시 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희락부제존(喜樂部諸尊)자기제도법


[죽은 뒤 첫이레 동안 자비로운 모습으로 나투는 여러 불보살을 만남]


첫째 날 : 중음신은 마치 맑고 푸른 가을 하늘처럼 보이는 온통 파란색의 세계를 본다.


그 파란색의 한가운데서 비로자나부처님이 사자좌에 앉아 가슴으로 부터는 눈이 부신 파란빛을 중음신에게 내린다. 이 때 부드럽고 옅은 흰빛도 함께 온다.

중음신은  이 흰빛이 아니라 반드시 파란빛으로 들어 가야한다.


둘째 날 : 물 기운의 맑고 깨끗한 흰빛이 중음신을 향해 쏟아진다.


이는 금강부의 부처님이 상황보좌를 타고 중음신을 이끌려고 내리는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이 있다. 이때 안개와 같은 검은 빛이 함께 오는데 이빛은 지옥의 빛이니 결코 들어가서는 안 된다.


셋째 날 : 흙 기운의 눈이 부신 황금빛이 중음신에게 내려온다.


이는 보생여래(寶生如來)가 보마보좌(寶馬寶座)를 타고 중음신을 건지려고 내린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허공장보살과 지장보살과 보현보살이 있다. 이때 옅은 노란색에 파란색을 띤 빛이 함께 내려온다. 이 빛은 사람세계로 이끄는 빛이다. 해탈을 바라는 중음신은 눈부신 황금빛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넷째날 : 불기운에 붉은 보배광명이 중음신에게 내려 온다.


이는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부처님이 공작왕(孔雀王)보좌를 타고 중음신을 건지려고 내린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있다.


이 때 아귀세계로 이끄는 연 붉은 빛도 함께 내려온다.

결코 붉은 보배광명을 피하면 안 된다. 아귀세계에 빛은 부드럽지만 욕심이라는 업의 기운에서 나오는 빛이다.


다섯째 날 : 바람기운의 맑고 깨끗한 초록빛이 중음신에게 내려온다.


이는 불공성취불(佛空成就佛)이 인신조체수왕(人身鳥體獸王)보좌를 타고 중음신을 건져내려고 내린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금강수 보살과 제개장보살이 있다. 이때 아수라 세계로 이끄는  어두운 초록빛도 함께 내려온다.


어두운 초록빛은 성내고 탐내는 나쁜 업의 기운에서 나타난 것이니 절대 이빛속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여섯째 날 : 이날에는 아직 방황하고 있는 무거운 업의 중음신을 향해 앞에 나타난 다섯 부처님들의 빛이 함께 내려온다.

이 빛은 본디 맑고 깨끗한 스스로의 깨달음의 빛인 참고향이니 중음신은 이 가운데 한 빛을 따라가게 된다. 이때 자신의 업력에 빛인 옅은 빛도 함께 나타난다.

하늘나라는 옅은 흰빛, 사람은 옅은 노란빛, 아수라는 옅은 초록빛, 짐승은 어두운 파란빛, 아귀는 옅은 피 빛, 지옥은 뽀얀 검은빛이다.


이 같은 빛들은 깨달음의 빛 속에 섞여 내려온다.

결코 맑고 눈부신 빛을 피해 약하고 부드럽고 어두운 빛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살았을 때 신을 숭배하고 하늘나라에 태어나기를 소망했던 중음신들은 그런 소망을 비워야 한다. 만약 비우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는 흰빛을 따르면 나고 죽는 윤회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일곱째 날 : 엿새 동안에 기회를 다 놓친 중음신은 다시 7일을 맞이하게 된다. 이 날은 오부존자(五部尊者)가 동, 서, 남, 북, 중앙에서 오른손으로는 항복수인(降伏手印)을 지으면서 보배 칼을 높이 들고 왼손에는 피가 담긴 해골을 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중음신에게 빛을 내린다.


이 때 짐승에 길로 이끄는 파란빛이 내려온다. 존자가 내려 주는 빛 속에는 천배로 증폭된 천둥소리가 들린다. 중음신을 결코 두려워 면서 짙은 파란빛으로 들어서서는 안 된다.


존자들에 내려주는 지혜에 빛은 본래 스스로의 본디 광명에서 오는 것이고 축생도의 빛은 어리석은 업력(業力)에서 나온 것이다.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정토(淨土)에서 태어난다.




분노부제존(忿怒部諸尊)의 자기구제법…살아생전에 화를 낸 업력이 나타남


죽은 뒤 둘째 7일 동안에 성낸 모습 짓는 불보살을 만나게 된다.


자비의 모습으로 인도받지 못한 중음신은 분노의 모습을 통해 이끌림을 받게 된다.


악업을 지은 중음신은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친근감이 일어나 고향에 돌아 온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불보살은 중생의 악한 성품을 잘 알고 있기에 가지가지 성내는 모습을 나투어 그 중생을 제도한다. 이것은 중생을 괴로움에서 건지려는 불보살의 자비이자 스스로의 깨달음의 성품이 스스로를 회복하려는 자연스런 움직임이다. 이때 중음신은 이런 현상이 불보살의 자비이고 스스로의 의식이 지어낸 현상임을 알아 겁내거나 달아나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제도법을 한번 보게 되면 의식이 아홉 배나 맑아진 중유기에서 바르고 두려움 없이 윤회를 벗어 날 수 있다.


이것은 중유기에서 자기를 제도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이니 종교와 상관없이 다른 방법으로 자기를 구할 수 없다.


여드렛 날 : 피를 빨아 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홍갈색의 몸을 하고 얼굴 셋에 손이 여섯이고, 발은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색, 왼쪽얼굴은 붉은색, 가운데 얼굴은 흙 갈색으로 온 몸이 불꽃에 휩싸여 있고 아홉 개의 눈으로 빛을 쏘아 내고 있다.


날카로운 이빨과 눈썹에서는 번개 같은 빛을 내고 산이 무너지는 큰소리로 ‘아라하, 하하!’하고 소리친다. 이는 비로자나부처님께서 중음신을 건져주려고 나타낸 모습이다. 절대 겁내지 말고 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아흐렛 날 : 금강부의 피를 빨아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파란색으로 얼굴 셋에 팔은 여섯 개, 발은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빛, 왼쪽얼굴은 붉은빛, 가운데 얼굴은 파란빛이다.


이는 자신의 업식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금강보살의 화현으로 귀의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열흘 날 : 보부(寶部)의 피를 빨아 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황색으로 얼굴 셋에, 팔이 여섯, 발이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빛 ,왼쪽 얼굴은 붉은빛, 가운데 얼굴은 노란빛이다.


이는 업식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보생여래(寶生如來)의 화신(化身)으로 귀의(歸依)하면 정토(淨土)에 태어난다.


열 하룻날 : 연화부의 피를 빨아 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녹색으로 얼굴 셋, 팔 여섯, 발은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빛, 왼쪽 얼굴은 파란빛, 가운데 얼굴은 붉은빛이다. 이는 자신의 업력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귀의 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열 이튿날 : 갈마부의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녹색의 얼굴 셋, 팔이 여섯에, 발이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색, 왼쪽얼굴은 파란빛, 가운데 얼굴은 풀빛이다.


이 또한 자신의 업력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불공성취불(佛空成就佛)의 화신(化身)으로 귀의(歸依)하면 정토(淨土)에 태어난다.


열 사흗날 : 이때는 중음신의 업력에서 나오는 집착으로 허깨비와 같은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주 위험하다. 이때는 동서남북 그리고 그 사이와 위, 아래 팔방에서 무서운 얼굴을 한 분노존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중음신의 업력에서 일어난 환상(幻像)이니 절대 겁먹거나 달아나지 말고 한마음으로 귀의 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열 나흗날 : 이날에 중음신 스스로의 업에서 나타난 화내는 존자와 이십팔여신이류존자(二十八女神異類尊者)들이 보인다. 그 모습은 다음과 같다.


1.동쪽 


l 짙은 붉은색의 소머리와 방패, 해골을 들고 있다.


l 황홍색의 뱀머리와 연꽃을 들고 있다.


l 검은 초록색의 표범머리와 삼지창을 들고 있다.


l 검은 원숭이 머리와 굴레를 들고 있다.


l 붉은 곰머리와 짧은 창을 들고 있다.


l 흰곰 머리와 쇠줄을 들고 있다.




2.남쪽


l 노란색의 박쥐머리와 칼을 들고 있다.


l 붉은 사자머리와 향로를 들고 있다.


l 붉은 전갈머리와 연꽃을 들고 있다.


l 흰독수리 머리와 방패를 들고 있다.


l 검은녹색의 여우머리와 곤봉을 들고 있다.


l 검은 황색의 호랑이 머리와 해골그릇을 들고 있다.




3.서쪽


l 검은 녹색에 독수리 머리와 짧은 곤봉을 들고 있다.


l 붉은색 말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송장을 들고 있다.


l 흰독수리 머리와 곤봉을 들고 있다.


l 노란개머리와 방패, 칼을 들고 있다.


l 붉고 목이 길면서 부리가 굽은 새머리와 활을 들고 있다.


l 녹색 사슴머리와 보배 솥을 들고 있다.


4.북쪽


l 파란색의 늑대머리와 작은 깃발을 들고 있다.


l 불고 굽은 뿔을 한 산양머리와 앞이 날카로운 곤봉을 들고 있다.


l 검은 멧돼지 머리와 이빨로 이어진 고리를 들고 있다.


l 붉은 까마귀 머리와 아이의 송장을 들고 있다.


l 검녹색의 코기리 머리와 송장, 해골을 들고 있다.


l 파란색 뱀머리와 긴 줄을 들고 있다.


5.바깥쪽에 있는 네 문


l 동문 : 검은 꾀꼬리 머리와 쇠고리를 들고 있다.


l 남문 : 노란 산양머리와 밧줄을 들고 있다.


l 서문 : 붉은 사자머리와 쇠줄을 들고 있다.


l 북문 : 녹색의 뱀머리와 종을 들고 있다.


이 같은 진노존자(嗔怒尊者)들은 모두 자비심에서 태어난 모습이니 겁내지 말고 잘 가려내어 한마음으로 염불하면 바로 정토에 태어날 것이다.


만약 중음신이 49일 동안에도 정토에 태어나지 못하고 헤매게 되면 온갖 마왕들이 흉악하고 난폭한 모습으로 중음신을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이럴 때도 중음신은 절대로 겁내지 말고, 염불발원(念佛發願)하면 정토(淨土)에 태어난다.


3.투생중음(投生中陰)


투생중음과 심판


투생중음이란 다시 태어나는 중음신을 말한다.


중음신이 만약이 지은 악업에 걸려 두렵고 무서움의 괴로움을 받으면서 죽은 지 17일반이 지나도록 정토에 태어나지 못하면 처참하고 더욱 괴롭고 무서운 경계를 만나게 된다.


악업을 지은 중음신은 무섭게 불어 대는 악업의 바람에 날리고 끝없는 암흑 속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죽여라! 죽여라!”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산목숨을 즐겨 죽인 중음신은 나찰에게 잡아먹히거나 무서운 맹수들에게 쫒기거나 추위, 뜨거움, 큰물, 눈 조각, 암흑, 거친 바람, 무너지는 산, 하늘까지 타오르는 불길, 살을 에이는 칼바람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만난다.


중음신은 줄 곳 무섭고 두려움에 쫓겨 스스로의 욕심, 성냄,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붉은빛, 흰빛, 검은빛의 낭떠러지를 만나게 된다.


이때 중음신이 받는 괴로움은 말로 다할 수 없고 그 처참하기가 그 보다 더할 수 없다. 생각은 재처럼 죽고 뜻은 얼음처럼 차가워져서 춥지 않은데도 심하게 떤다.


이에 중음신은 자신이 머물던 몸을 찾지만 몸은 이미 죽어 얼었거나 썩었거나 아니면 화장이 되었거나 땅에 묻혀 있는 것을 보고는 큰 바위틈에 짓눌리는 것 같이 말할 수 없는 큰 괴로움을 받는다. 이때 육도로 이끄는 빛이 중음신을 비추는데 만약 중음신이 몸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스스로 지은 업에 따라 여러 갈래 빛 가운데 어느 한 빛 속으로 들어가 끝없는 육도윤회의 괴로움을 받게 된다.


이때 중음신은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사나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칠 흙 같은 어두운 안개 속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의 무리들이 하늘 가득 타오르는 불꽃을 보기도 하고 큰 산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또 성난 바다가 덮쳐오는 듯한 소리를 듣기도 하고 귀를 막는 희고 붉고 검은 세계의 큰 낭떠러지를 만나기도 한다. 중음신이 두려워 거나 놀라서 숨을 곳을 찾으면 가지가지 짐승의 몸으로 태어나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저 두렵고 무서운 중음의 상황들이란 실재하지 않는 허깨비로, 놀라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 마음을 기울여 아미타불을 부르면 한 생각 사이 금빛 몸의 아미타불께서 백호로 눈부신 빛을 비추시며 바로 눈앞에 나타나 정토로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이다.


중음신은 가지가지 험한 모습을 한 귀왕들에게 심판을 받고 온갖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중음신은 이 모든 현상이 스스로가 지은 나쁜 업에서 흘러나온 현실임을 알고 『반야심경』에서의 가르침인 “모양이 비어 있음이고 비어 있음이 곧 모양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가르침이나 『금강경』말씀인 “모든 모습을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如來)를 보리라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의 진실한 뜻을 잘 관조해야 한다.


그러면 중음신은 살아있을 때보다 아홉 배 맑은 영성으로 쉽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만약 그래도 진실한 뜻이 밝혀지지 않으면 모든 두려운 모습들에 눈을 팔지 말고, 다만 아미타불만을 지극하게 부르면 험한 중음계를 벗어나 정토에 태어난다.


만약 중음신이 남녀가 음행하는 모습을 보거든 냉정함을 잃지 말고, 절대로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샘내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만에 하나 이런 마음을 내면 바로 윤회하는 아기집 속에 들어가 짐승의 몸을 받아도 본인의 의식은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이럴 때 중음신은 결코 탐애, 성냄, 교만, 시기심을 일으켜서는 안 되고 평정을 잃지 말고 오직 염불하는 마음만을 이어가야 한다.


만약 이 같은 노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모든 경계가 실재가 아님을 깨닫기 어려우면 음행하는 남녀를 관세음보살의 화현으로 보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한마음 한뜻으로 예배하면 모든 욕심이 사라져 아기집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또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거룩한 모습의 아미타부처님께서 눈앞에 나타나 어느새 정토로 이끌어 주신다.


윤회하는 아기집에 들어가지 않는 길


희락부의 오방부처님의 빛과 분노제존의 빛은 중음신 스스로의 본디 생명이 빛이다.


그 빛을 받고도 지어놓은 나쁜 업력에 이끌려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또 바른 생각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지 않아 해탈의 길로 나아갈 수 없다면 중음신은 더더욱 험하고 위험한 투생중음의 단계로 접어든다.


투생중음기의 중음신은 스스로의 선악업력의 감응에 따라 자신의 존재가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떨어지거나 옆으로 옮아가는 느낌이 든다. 뒤이어 폭풍, 찬바람, 우박, 진눈깨비, 암흑이 펼쳐지는 상황을 만나거나 누군가 뒤쫓아 오는 느낌을 받는다.


좋은 업을 쌓지 못한 중음신은 괴로운 경계를 피해 도망 다니기 바쁘고 좋은 업을 쌓은 중음신은 아주 편안한 느낌을 갖는다.


중음신은 스스로의 업력에 따라 다시 태어날 몸을 받는데 이때 중음신을 이끄는 빛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중음신이 한번 이 빛 가운데 들어서면 다시 윤회하는 삶인 육도의 아기집속에 빠져들게 된다.


투생중음기에 모든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참되고 맑은 생각을 일으키면 바로 육도윤회의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만약 음행하는 남녀를 보면 흔들림이 없도록 해야 되고 결코 마음이 움직여 탐애심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자신의 생명의 어머니인 관세음보살이 화현하신 모습이라 여기고 절하고 예배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아기집의 문이 저절로 닫힌다.


만약 중음신이 아주 무거운 업력 때문에 위에서 말한 방법으로도 여전히 아기집의 문이 닫히지 않아 이미 아기집 속에 들어갔음을 알게 되었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다시 아기집을 벗어 날 수 있다.


아기집에 들어갈 때 스스로의 경계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허깨비임을 관찰하고 거짓을 참으로 삼는 집착을 깨뜨리고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아기집을 벗어나 해탈에 이른다. 중음신은 앞에 펼쳐지는 현상들을 이렇게 밝게 보아야 한다.


“아! 부모여, 함께 몸을 섞는 모습이여, 검은 빗줄기여, 거친 바람이여, 간장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리여, 울부짖는 귀신의 외마디여, 모두가 덧없어 참으로 있는 것이 없구나.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그것이 어떤 소리든 그것은 마치 물거품처럼, 거울 속의 그림자처럼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것은 다만 나의 업식에서 일어난 모습과 소리인 것을…이제 다시 내가 그것들과 함께 어우러진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나의 업식도 본디 덧없는 것인데 하물며 그것이 지어낸 모습과 소리가 실재일 수 있는가!


이 같은 진실을 모르고, 거짓을 참으로 삼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여겨 끝없는 윤회의 강물에 휩쓸려 지금에 이르렀으니 아! 윤회여, 이제는 사라지거라, 물거품 같은 윤회여.”


이렇게 관조하면 어느 새 큰 평화로움이 밀려오고 중음신은 태어남이 없는 고요함 속에 더없이 말고 밝아져 윤회하는 아기집을 영원히 떠나게 된다.


거듭 말하지만 중음기에는 살아 있을 때보다 영성의 힘이 아홉 배나 밝으니, 이 힘을 한껏 활용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투생중음신은 난생, 태생, 습생, 화생 가운데 어느 하나로 태어나게 된다.

정자와 난자가 서로 만나는 순간 중음신은 큰 쾌락을 느끼며 이 쾌락 속에서 의식을 잃고 알이나 태속에서 몸을 받고 태어나 두 눈을 뜬 뒤에야 자신이 돼지, 소, 개, 염소 또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또는 육도에 윤회하는 몸을 받아 갖가지 괴로움을 받게 된다.


거꾸로, 지금 살아서 닦는 수행은 중음기보다 아홉 배나 어려운 수행이라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이생에 닦는 수행이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중음기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큰 것이다.


만약 근기가 낮고 업장이 무거운 데다 한량없는 옛 생부터 지어온 나쁜 버릇으로 모든 해탈법문이 도움이 되지 않는 중음신은 제4장에서 밝힌, 투생중음이 맞는 여섯 가지 세계를 잘 가리고 나아갈 길을 바르게 잡아 마지막 해탈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제 6 장 : 제 8 식과 중음신(中陰身)-마지막 의식구조


1.식(識)의 감응


중유기에 경험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전능한 신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가장 깊은 의식 구조인 제 8식(아뢰야식)이 지어낸 현상들이다. 어찌 중유기의 현상들 뿐 이겠는가.


태어남, 죽음, 윤회, 괴로움, 즐거움 같은 삶의 현상들도 다 마찬가지다.


제 8식은 주관과 객관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 삶의 마당인데 갈무리한 삶의 모든 내용과


그 기능이라는 쪽에서 아뢰야식 이라고 한다.


아주 강력한 탐욕의 기운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생의 아뢰야식은 끝없는 망상 속에서 자기를 본떠 만들어서 몸과 환경을 지어 가는데 그 과정이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뢰야식의 특징은 놀라운 갈무리 능력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고, 저지르는 모든 삶의 경험들을 컴퓨터와 같이 고스란히 갈무리한다.


이렇게 갈무리한 낱낱의 삶의 경험들을 종자, 곧 씨앗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때 말하는 씨앗의 개념은 수행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꾸어질 수 있다.


그리고 아뢰야식(제8식)은 이러한 씨앗과 씨앗 사이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유기적 생명활동이라는 점에서 콩씨, 팥씨나 컴퓨터의 기억내용과는 다르다.


중생이 수많은 삶을 살면서 얻은 삶의 경향은 모두가 욕심, 성냄, 어리석음, 잘난 체함. 삿된 의심 같은 번뇌에서 온 것이다. 번뇌가 없다면 윤회의 괴로움도 없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삶을 윤회로 이끄는 뒤바뀐 삶의 경향을 업(業)이란 한다.


중생은 이 같은 업으로 스스로의 삶의 마당인 제8식을 삼고 있는 것이다.


8식은 새로운 생명활동을 결정짓는 힘이다. 죽을 때는 마지막으로 떠나고 다시 태어날 때는


먼저 들어가 생명형성의 조건을 결정짓는 힘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지어놓은 8식에서 터져 나오는 삶의 현상들을 실재하는 것으로 인식할 때 삶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 빠져든다.


중유기에도 마찬가지이다.


8식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환상들을 바르게 읽지 못하면 윤회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창조신을 숭배하고 삶과 죽음까지도 창조신의 조화로 여기는 행위도 자신이 지어놓은 깊은 의식인 8식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처럼 중유기에 든 중생이 8식의 감응을 바르게 아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8식에서 일으키는 선악의 생각에 따라 중음신은 천당이나 지옥 같은 가지가지 세계를 지어낸다. 그러나 이렇게 지어낸 세계는 좋든 싫든 영원한 것은 없다. 지어낸 세계에 따라 그 기간이 길거나 짧은 차이는 있지만 이것은 모두 8식의 조건에 따라 나타나는 과보로, 8식의 조건이 바뀌면 세계고 바뀌기 마련이다. 신을 섬기면 신의 세계가 나타나고 욕심을 섬기면 욕심의 세계가 나타난다.


중생의 어리석음은 이같이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8식의 현상들을 진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있다.


제8식 아뢰야식이 무엇인지 바르게 아는 일이야 말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여실관(如實觀)이고 어리석음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2.염불법문(念佛法文)의 감응




불법(佛法)을 믿지 않는 이들은 염불법문의 오묘함을 알지 못한다.


중생은 시작이 없는 옛적부터 스스로의 삶을 굴려온 허깨비 같은 8식의 힘을 한꺼번에 없애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끝없는 자비원력을 일으켜 중생들로 하여금 건너기 힘든 윤회의 강을 쉽게 뛰어 넘게 하신다.


아미타불의 자비원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8식의 본디 모습인 아미타불의 세계를 청정한 마음으로 불러 정토에 태어나게 한 뒤 그 근기에 따라 저도 모르게 8식에 녹아 있는 삼독번뇌를 남김없이 없애주는 위없는 방편을 말한다.


이것은 중생이 윤회하는 삶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힘 있는 실천법이다.


사람이건 앵무새건 원숭이건 지극한 한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그는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 윤회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나무아미타불’은 신비한 암호와도 같아서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괴로움일지라도 쉽게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업장이 무거운 중생일수록 염불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 종파가 있고 종파에 따른 독특한 가르침이 있다.


가르침은 저마다 뛰어나고 훌륭하다. 그러나 염불법문 밖의 가르침들은 그것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려면 많은 생을 두고 닦은 숙세(宿世)의 근기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중생의 성품이 흐리고 생활이 복잡한 시대에는 섣불리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수행법이나 실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오직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왕생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아미타경』을 비롯해 『무량수경』.『관무량수경』.『법화경』.『화엄경』.『능엄경』.『대집경』.『대운경』 『반주경』같은 많은 경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문수보살,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도 염불을 발원했고, 마명스님, 용수스님, 혜원스님, 천태스님, 원효스님, 서산스님, 감산스님, 같은, 불문이 수많은 용상대덕(龍象大德)들이 염불법문을 수행했다.


염불법문은 불법의 큰 줄기다. 선종(禪宗)에는 돈(頓),점(漸)두 파가 있는데 돈파(頓波)에서는 근기(根機)에 따라 문득 깨달아 불법의 모든 것을 이루게 하고 점파(漸派)에서는 점차로 수행을 닦아 본성을 되찾게 하는 가르침을 편다.


염불법문은 돈, 점의 수행공덕을 함께 이루어 준다.


또 꾸준히 염불하면 스스로 죽을 날을 알게 되어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죽음을 맞는 법을 몸으로 가르치고 보여 주어서 그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공부를 하게 하는 큰 공덕을 지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죽음에 거의 다다라 좋은 스승을 만나서 염불수행을 하다 바로 정토에 태어나기도 하니, 이것은 돈파(頓波)에서 말하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참선수행은 마념(魔念)의 침해를 쉽게 받지만 정토수행(淨土修行)에는 그럴 위험이 거의 없다.


밀종(密宗)의 수행은 만트라를 수지하는 수행법이지만 밀법수행도 숙세의 근기가 있어야 한다. 끈기 있게 애써 수지한다면 이룰 수도 있지만 죽음을 잘 맞을 수도 있다는 보장이 없다.


죽을 때 무거운 업장 때문에 자칫 정념(正念)을 잃어 만트라를 수지하지 못한다면 다시 윤회 속에 빠지고 만다.


염불법문은 말법시대에 가장 맞는 수행법이다. ‘아미타불’,이 염불은 만트라 가운데 만트라로서 한 번 불러도 왕생하고 열 번 불러도 왕생한다.


그래서 목련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염불법문처럼 쉽고 간단한 법문을 수행하지 않고 다른 수행법을 실천하는 것은 마치 장님이나 귀머거리 같다.”


염불법문은 너무나 간단하다. 그저 딴 생각 없는 간절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수행하면 아미타불의 큰 원력을 믿게 되고 윤회하는 괴로움을 절실히 느껴 해탈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수행하면 시작 없는 옛날부터 지어온 업장을 참회하고 참된 귀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이렇게 수행하면 덧없는 나고 죽음의 절박함을 알게 되어 결코 게으르지 않게 된다.


‘아미타불’을 부르는 진리의 힘을 8식의 내용이 바뀌면서 본디의 자기 모습인 끝없이 밝은 佛性이 환히 드러나니 이것이 바로 ‘자성미타(自性彌陀)’이다. 자성미타는 생명의 참 모습이자 부처님의 염통이다.


중생은 삼독번뇌로 육도의 업보를 받게 되고 깨달음으로 정토에 태어난다. 날마다, 날마다 아미타불을 부르면 8식이 부처님의 세계로 피어나고, 그릇된 업으로 살면 8식이 삼악도를 지어낸다.


또한 염불도 입과 마음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해야지 입만 염불하고 마음으로는 나쁜 생각을 한다면 무슨 공덕이 있겠는가. 오히려 악한 사람일지라도 참마음으로 염불하면 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3.부모불(父母佛)의 감응


머무름이 없는 열반인 무주열반에 드신 부천님은 인연중생을 건져 주시려고 가지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중음신의 윤회는 비록 업력 때문에 이루어지지만 중음신은 윤회할 생명으로 아기집 속에 들어가기 앞서 부모가 결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음행의 업에 물든 중생은 쉽게 생각이 뒤집혀 버린다. 이 일을 잠깐 뉘우쳐 보지만 그것은 이미 아기집 속에 든 뒤의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같은 중생을 제도하시려고 남녀가 끌어안고 있는 쌍신불의 모습을 나투신다.


부모불의 모습에 이끌려 들어와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바른 귀의를 이룬 중음신은 정토에 태어나게 된다. 이 같은 부모불의 모습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은 중유기에 들어간 중음신이 이 같은 모습을 보면 곧 다가가 정토에 왕생하라는 뜻이다.


부모불의 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부모불에 사악한 느낌을 갖기 쉽다. 하지만 부모불이 사악하다고 한다면, 사람을 창조해 놓고 지어낸 사람이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나쁜 짓을 저지를 때 사정없이 벌을 내리는 창조신은 어떠한가.


부모불의 모습까지 나투며 끝까지 어린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부처님의 자비심은 참으로 끝이 없다 하겠다.


 

제7장 : 죽는 법과 죽는 이 보살펴 주기


1.죽기에 앞서  주의할 일들


l)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정신이 아직 맑을 때 스님을 모셔온다. 그래서 정토에 대한 믿음과 반드시 그 곳에 태어나겠다는 원을 일으켜 주고 기쁜 마음으로 염불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제지보살이 크나큰 빛살을 타고 오시어 정토로 이끌어 주시는 것 말고는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흔들림이 없도록 잘 일러주어야 한다.




2) 죽을 사람이 염불하기를 싫어하거나 괴로워 발버둥치거나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업장이 드러난 것으로 정토에 태어나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


이럴 때일수록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참회하거나 왕생주(往生呪)를 108번 지송하거나 『지장경』을 읽고 그 공덕을 죽는 사람의 마음상태에 따라서 함께 염불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3)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더는 목숨을 이어가기가 어렵다고 판단될 때는 바로 가족들과 상의해서 빨리 병에서 집으로 데려간다.


죽은 사람이 조용하고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염불하도록 해야 한다.



4) 죽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고 혹시나 당부할 일이 있는지 물어서 죽은 사람이 죽은 뒤의 일을 걱정하거나 매달리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당부하거나 정리할 일을 다 말하게 한 뒤로는 모든 세상인연을 다 놓아버리고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 육도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5) 가족들은 죽는 사람의 곁에 모여 함께 염불한다. 불보살님께서 자비를 드리워 죽는 사람이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길 정성스런 마음으로 기원해 주어야 한다.



6) 가족들이나 벗들은 절대로 죽는 사람의 마음이 약해질 만큼 지나치게 부드럽고 사랑스런 말을 건네거나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죽는 사람이 가족에 끄달려서 바른 생각을 잃고 나쁜 길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목숨을 거둔 뒤에 주의할 일들



죽는 사람의 의식은 숨을 거둔 뒤에도 몸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으면서 여전히 지각활동을 하고 있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12시간쯤 지나 죽는 사람의 온몸이 차갑게 식고 의식이 몸을 떠난 뒤에 비로소 죽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 12시간 안에는 모든 행동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여 죽은 이가 동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1) 좋은 방편으로는 죽은 이를 편한케 하여 바른 믿음을 내게 해준다.

스님이나 함께 염불할 수 있는 벗들을 불러 죽은 이의 상황에 따라 정토로 이끌어 준다.

염불할 때는 실제 상황에 따라 때에 맞게 이끌어 주고 왕생에 대한 믿음과 바람을 일깨워 준다.




2) 번갈아 가면서 염불한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경건하게 염불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죽은 이의 신식(神識)이 염불하도록 이끌어 주고 아울러 염불 공덕을 죽은 이에게 돌려준다.



3)결코 죽은 이의 몸을 만지거나 흔들어서는 안 된다.


죽은 이의 몸을 바삐 씻거나 옷을 입히거나 영양제 주사바늘 같은 것을 뽑거나 하는 것은 죽은 이에게 말할 수 없이 큰 괴로움을 주는 행동이다.


만일 어쩔 수 없이 죽은 이를 옮겨야 할 때는 반드시 큰 소리로 염불해야 한다.


끊임없이 주의해야 할 것은 모기, 파리, 개미 같은 벌레가 죽은 이의 얼굴이나 몸에 붙거나 기어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4) 소리 내어 울거나 죽은 이의 몸에 눈물을 떨러 트려서는 안 된다.


울음을 참을 수가 없거든 다른 곳에 가서 울고 가라앉으면 다시 돌아와 염불해준다.




5)시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


염불하는 곳에서 기침이나 하품, 재채기를 하거나 전화소리, 가족들이 의논하는 소리를 내서 염불하는 망자의 의식을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된다.




6) 세상 풍습에 따라 죽은 이에게 종이돈을 올리는 등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죽은 이에게 끄달리는 마음을 일으켜 정토에 태어나는 일을 방해  해서는 안 된다.


또 염불하는 방안의 공기를 더렵혀서 염불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7) 병원에서 목숨을 마친 이의 몸을 냉동처리 하거나 방부 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


냉동처리 하면 죽은 이에게 얼음 지옥에 빠진 것과 같은 괴로움을 준다.


송장이 썩을 까봐 걱정되면 좋은 향을 피우거나 얼음을 방안에 놓아두되 절대로 얼음을 송장위에 놓거나 너무 가까운 곳에 두어서는 안 된다.



8) 송장이 차갑게 식은 뒤에 두어 시간 지난 뒤에 목욕을 시켜주고 옷을 입힌다.


절대로 마음대로 행동하지 말고 잘 아는 이나 경험 있는 이를 불러서 처리해야 한다.


만약 이런 사람이 없거든 가족들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뼈마디가 굳었을 때에는 더운물에 적신 수건을 덮어 주면 저절로 펴진다.




9) 화장은 7일 뒤에 하는 것이 원칙이다.


만에 하나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크게 다치거나 병을 앓다 죽은 경우에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3.왜 염불해 주어야 하는가?




죽은 이가 정토에 태어나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서이다.


염불해주는 이는 왕생정토에 대한 도리와 방법을 분명히 알아야 죽은 이를 도울 수 있다.


죽은 이에 따라 신식(神識)의 모습이 저마다 다르다. 숨길이 끊어져 죽으면 살아온 삶의 경향이 낱낱이 그림자처럼 나타나고 이것이 본성에 달라붙어 바깥 경계를 향해 설쳐댄다.


이때에는 완전히 업이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는데 힘이 큰 업일수록 곧바로 들어난다.


악업(惡業)을 많이 지은이는 악종자(惡種子)의 힘이 커서 이 씨앗의 기운이 들어나면 삼악도에 떨어진다. 선업(善業)을 많이 지은이는 善種子가 하늘 세계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살아 있을 때 염불공부를 한 이라면 염불 씨앗이 있기 마련이다.


이 염불 씨앗의 힘이 아주 커서 다른 씨보다 먼저 나타나면 불보살의 힘이 아주 커서 다른 씨보다 먼저 나타나면 불보살의 자비광명을 따라 정토에 태어난다.


그러나 염불씨앗의 힘이 적어서 잘 나타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이 곁에서 염불을 도와주면 죽은 이의 염불씨앗이 쉽게 나타나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살아 있을 때 경전을 독송한 이, 만트라 수행을 한 이 가릴 것 없이 죽음에 다다르면 오직 ‘아미타불’이 염불씨앗이 나타나야 힘이 되고 빛이 되어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4. 어떻게 죽는 이를 도울 수 있는가?


『지장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어떤 이가 죽은 날에는 산목숨을 죽이는 일 같은 나쁜 인연을 짓거나 신에게 기대는 행동을 하지 말라.


왜 그런가? 이 같은 행위가 털끝만큼도 죽은 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쁜 인연만을 크고 깊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 이런 말씀도 있다.


“만약 죽은 지 49일 안에 널리 착한 일을 지어 모든 중생들이 나쁜 세계를 여위게 하고 하늘이나 사람으로 태어나 뛰어나고 묘한 기쁨을 얻게 해준다면 그 공덕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죽은 이를 위해 49일 안에 복을 닦는 일이야 말로 죽은 이나 살아 있는 이에게 가장 뛰어난 공덕이요 이익 된다 하겠다.


아래 사항들은 49일 동안 지킬 일들이다.




1) 장례음식은 필히 나물을 써야 한다.


짐승을 죽여 재물로 쓰면 죽은 이에게 죄업을 더해 고통을 줄 뿐이다.


2)가족들은 49일 동안 최소한 나물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찾아온 손님들도 그렇게 맞아야 죽은 이에게 도움이 된다.



3)『관경』에 말씀하시길 “한 번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팔십억 겁의 악업이 사라진다.”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죽은 이를 위해 가족들이 날마다 염불해 주는 일이야 말로 가장 절실하고 큰 공덕이며 저세상이나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4) 사람이 죽은 지 49일 안에는 부부일지라도 잠자리를 해서는 안 되며 5계를 잘 지켜야 한다.



5)죽은 이가 모은 재산은 좋은 일에 잘 쓰고 그 공덕을 죽은 이 에게 돌려준다.



6) 스님이 죽은 이를 천도 해줄 때는 가족과 벗들을 불러 바른 생각을 세워 부지런히 수행할 수 있는 인연을 심어 주고 그 공덕을 죽은 이에게 돌려준다.



7) 가족들은 49일 동안 절에 가서 죽은 이를 천도해준다.

천도는 정성이 중요하지 천도재에 드리는 재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5. 장례지내는 법



1)스님이나 불교장례를 잘 아는 이를 불러서 할일들을 잘 처리 한다.


2) 장례는 간소하면서 엄숙하게 치루고 가족의 체면 때문에 돈을 허투루 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삼보(三寶)께 공양을 올리고 경전을 보시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갇힌 생명들을 놓아 주는 일을 해서 죽은 이게도 참된 도움이 되고 가족들에도 큰 복이 되게 해야 한다.


3) 화장을 하면 절이나 납골당에 잘 모신다.




6. 정토에 태어나는데 걸림돌이 되는 나쁜 습관들


염불수행자가 죽을 때 바른 생각이 뚜렷하다면 이는 정토에 태어나는 길을 얻은 셈이지만 살생하는 습관과 음행한 습관이 있다면 이는 왕생정토에 태어나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죽이는 습관


경전 말씀에 “고기를 먹으면 좋은 공덕을 구해도 이룰 수 없고 모든 하늘신이 가까이 하지 않고 만나는 중생들이 무서워한다. 죽으면 나쁜 곳에 떨어져 큰 괴로움을 받는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따르면 고기를 즐겨 먹는 이는 원한을 품고 죽은 중생들의 기운 때문에 하는 일이 뜻과 같이 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집안이 편안하고 몸이 건강하고 사업이 잘 풀리고 아이들이 효순하고 서로 화목하기를 아무리 바란들 이 같은 바람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고 온갖 번뇌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속에서 길이 헤매게 된다.


염불수행자가 5계도 지키지 못하고 죽은 중생의 몸을 부끄럼도 없이 아귀처럼 먹는 다면 이미 자비심이 죽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름만 염불수행자요, 불교인으로써 짓는 일마다 마업(魔業)을 이루니 염불수행자는 참으로 이를 삼가 해야 한다.


고기를 먹어 생기는 좋지 않는 재앙은 죽을 때 낱낱이 나타난다.


원한을 품은 중생들이 끝없이 나타나 죽음을 맞는 염불행자에게 바른 생각을 잃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여 정토에 태어나지 못하고 삼악도에 떨어지게 한다.


삼악도에 떨어지면 부끄러움 없이 삼켰던 고기 한 점 한 점에 깃든 아픔과 원한을 다 갚아야 한다.


또 삼악도를 벗어나 사람으로 태어나도 목숨이 짧고 병이 많은 과보를 받게 되니, 세 치 혀끝으로 맛을 탐해 저지른 끝없는 재앙이 끝내 정토에 나는 일을 이룰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지혜 있는 이라면 고기 먹는 나쁜 습관을 결정 코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짐승의 알과 오신채는 염불수행자가 먹어서는 안 될 먹거리로, 마땅히 멀리해야 한다.


『현식론(顯識論)』에 이런 말이 있다.


“생명의 형태는 태(胎),란(卵),습(濕),화(化)네 가지가 있다. 알은 이 가운데 두 번째의 생명형태다. 알에는 미묘한 목숨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중생의 목숨이란 그 신령스럽고 묘하기가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에 따르면 알 하나를 먹는 일은 목숨 하나를 죽이는 일과 같다.


『능엄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삼매를 이루고자 하는 중생은 세상 사람들이 즐겨 먹는 오신채를 입에 대지도 말아야 한다. 오신채는 익혀 먹으면 음욕이 일어나고 날로 먹으면 성내는 기운이 커진다.”


이 말씀에 비춰보면 오신채에 들어 있는 정갈하지 못하고 탁한 기운은 사람의 욕심을 길러주고 오신채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는 사람의 성내는 마음을 키워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경에 말씀하시기를 “오신채를 먹는 이는 비록 경전을 막힘없이 말하더라도 시방세계 모든 하늘 신들이 그 냄새를 싫어해 다 멀리 떠나버린다.” 하셨다.


이와 같이 오신채가 주는 허물과 화는 음심과 화내는 마음을 키우는 일 말고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켜주는 호법 신장들이 멀리 떠나버리게 하여 날로 복덕이 줄어들고 깨달음을 이룰 수 없게 된다.




음행에 대한 생각과 음행습관




오늘날의 세상풍조를 보면 남녀가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 절제할 줄을 모르고 한 몸뚱이의 즐거움만을 탐내 뱃속아이를 지우는 살생 업을 되풀이하고 자기 살붙이를 무참히 죽이고 있다.


호랑이나 독사도 자기 새끼는 죽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람은 이렇듯 멋대로 자기자식을 죽이니 죽은 아이들이 원한을 품지 않겠는가?


이 같은 나쁜 업과 그 인과를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이 같은 짓을 저지르고도 집안이 평안하고 식구가 화목하고 몸이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풀리고 아들딸이 효순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모든 선은 효도를 으뜸으로 삼고 모든 악은 음욕을 머리로 삼는다.”는 말이 있다. 염불수행자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부부 사이라도 법도가 없이 애욕을 탐해서는 아니 되는데 삿된 음행이야 더구나 안 될 일이다. 음욕을 탐하거나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짓으로 그 과보가 빠르고도 무서워 화가 자손에까지 미친다.


『원각경』말씀에 “저 모든 세계 모든 중생의 모습인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은 다 음욕으로 몸과 마음을 받는다.”고 하셨고


『능엄경』말씀에 “저 모든 세계 육도중생이 마음에 음욕이 없으면 생사윤회를 따르지 않는다. 너희가 닦는 삼매는 본디 욕심과 번뇌를 벗어난 세계이니 음욕을 없애지 않으면 번뇌를 벗어날 길이 없다.”하셨다.


그러므로 생사윤회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음욕과 음행 짓는 습관을 끊어 없애고 맑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음행하는 업과 음행하는 습관은 우리의 신식(神識)을 속박해서 해탈할 수 없게 하는 크나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음욕과 그것에 대한 생각을 말끔히 없애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 중음에 태어나 남녀가 음행하는 모습이 눈앞에 나타날 때 염불하는 바른 생각을 잃어 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음행하는 경지에 들어가 순식간에 사생육도를 맴도는 중생의 몸을 받아 윤회의 온갖 괴로움을 받게 된다.


다시 정리해 보자.


목숨을 죽이는 일과 음행하는 일은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이다.


그것은 살아서 과보도 무섭거니와 죽어서는 정토에 태어나는 일을 가로막는 무거운 업장이 된다.


죽을 때 염불하는 바른 생각이 또렷하도록 하려면, 죽이고 음행하는 나쁜 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죽여서 그 고기를 먹고 음행하고 사음하는 악업을 하루라도 빨리 끊어버리고


스스로의 삶과 죽음의 세계를 바르게 지켜보아야 한다.


계율을 잘 지키고 채소 음식을 먹으면 결정코 한때 쾌락에 눈이 멀어 끝없는 괴로움의 세계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제 8장 : 한 번 보고 한 번 들어도 정토에 태어난다.


1.정토에 태어나게 하는 기회



(1)늘 공경히 염불수행을 닦는 이는 죽을 때 스스로 죽을 시간을 알 수 있고 마음이 뒤집히는 일이 없이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잠깐 사이에 정토에 태어난다.

이들은 중음의 단계를 거치는 일 없이 바로 해탈세계에 이른다.


 다른 수행법으로 공부를 이룬 이나 스스로를 제도하는 법인 이 책을 익혀 공부한 이도 중음의 세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른다.


(2)수행한 공력이 (1)만 못해도 이 책을 익혀 공부한 이는 죽어 나타나는 빛을 바르게 인식하는 힘으로 바로 위없는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간다.

또 아미타불을 놓치지 않고 부르는 바른 생각의 힘으로 정토에 태어나 해탈한다.


 (3)비록 공부가 보잘것없는 이라도 죽은 뒤 열나흘 동안 이 책에서 말하는 가르침을 보고 들어서 거룩한 빛을 잘 가려내어 그 속에 들어가거나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바로 해탈한다.


(4)착한 인연도 보잘것없고 업장이 깊고 무거워 한두 번 방황하다 나쁜 길에 들어선 중음신이라도 이 책에서 말한 가르침을 보고,  기억하고, 생각하여 가르침에 따라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부처님의 자비원력의 힘으로 극락정토에 태어나 바로 해탈한다.


(5)죽어 두렵고 무서움에 시달리는 이라도 이 책의 가르침을 보거나 듣고 아미타불을 부르면 바로 해탈한다. 또 이 책에서 가르치는, 아기집에 들어가지 않는 법과 아기집을 잘 가리는 법에 따르면 원하는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다.


(6)어리석기 말할 수 없는 이라도 아미타불의 큰 원과 가피의 힘을 믿고 따르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원만한 사람으로 태어나고 바른 스승과 가르침을 만나 앞으로 완전한 해탈에 이를 수 있다.



2.어떻게 이 가르침을 보고 듣고 해탈하는가?


(1) 죽으면 아는 힘이 살아있을 때보다 아홉 배가 밝아진다.


그래서 여러 가지 빛이 나타나거나 모습이 나타날 때 이 가르침을 기억하거나 보고 듣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거나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아미타부처님이 정토로 이끌어 주시어 육도윤회의 나고 죽는 괴롬바다를 벗어난다.


(2) 죽은 이가 중음신이 되면 거칠고 걸림이 많던 몸이 사라져 모든 것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런 감수성에서 한마음으로 지극하게 아미타불을 부르면 정토에 태어나 해탈할 수 있다.


(3) 거센 업의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중음신은 뛰어난 감각과 아는 힘이 있다.


그래서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걸림이 없어진다. 이 가르침을 일러주는 이의 부름을 한번만 들어도 곧바로 그곳에 가서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 한번 가르침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마음이 열리고 뜻이 밝아져 마음 다해 아미타불을 부르게 되고, 그러면 정토에 태어나 해탈을 얻는다.


3.육도윤회를 벗어나는 법


 스스로 벗어나는 법


살았을 때 늘 이 책을 읽고 죽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마음에 새겨두자.


그러면 죽은 뒤에 무섭고 두려운 현상이 나타났을 때 살았을 때보다 아홉 배 뛰어난 기억력과 영상으로 가지가지 현상을 바르게 알아차릴 수 있다.

또 두려움 없이 한마음으로 염불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죽음의 길을 끊어버린다.


다른 이의 해탈을 도와주는 법


이 책에 나와 있는 중음세계의 여러 가지 단계를 잘 이해한 뒤에 죽은 이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을 베풀어 준다. 또 죽은 이가 가장 크게 매달리는 것, 큰 걱정거리에 대해 그것이 덧없고 이익이 없는 것들임을 가장 간단하고 알기 쉽게 차근차근 일러준다. 그리고 죽은 이가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고 둘레상황에 대해 알려고 할 것 없이 청정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게 한다.


죽은 이는 이렇게 해서 눈부신 빛의 몸, 끝없는 빛의 몸인 아미타부처님을 따라 극락정토에 태어나 참된 해탈을 얻게 된다.



다른 이의 해탈을 도와주는 보기


 먼저 청정한 마음으로 정성을 기울여 아미타불을 108번 부른 뒤 죽은 이에게 아미타부처님의 가피가 내리길 기원한다.


"ㅇㅇㅇ영가시여, 허둥대거나 방황하거나 두려워 하지마소서.ㅇㅇㅇ영가시여, 아미타불을 부르는 염불 소리와 지금 내가 영가에게 드리는 말에 크게 귀를 여소서. 영가는 이제 죽음에 이르러 떠도는 중음세계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직 불보살님만이 영가를 도울 수 있으니 영가는 의심하지 말고 깊고 맑은 믿음을 일으키소서.


불꽃이 휘날리고 얼음바람이 휘몰아쳐도 한마음 한뜻으로 한결같이 아미타불만을 부르소서.


이렇게 하면 두려움과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이렇게 하면 악업에서 일어나는 두려운 현상들이 맑게 개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미타부처님께서 영가를 품에 안아 정토에 태어나게 하십니다.


영가시여, 세상 그 어떤 것도 본디 덧없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과거. 현제. 미래. 그 어떤 일도 놓아버리고 한 순간 한 순간 아미타불을 부르소서. 누구도 영가를 도울 수 없습니다. 오직 아미타불만이 영가의 빛이 되고 길이 될 수 있으니 맑은 맘 다 기울여 우리와 함께 아미타불을 부릅시다."


염불은 많이 할수록 좋다. 짧아도 108번 하고 그 공덕을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해 주면 영가는 반드시 극락정토에 태어날 것이다.  



제 9 장 :  염불은 한 생각에 해탈 하는 길


1.어떤 중생이라도 염불하면 해탈한다.


인광(印光:1862-1940.중국 정토종 13조)조사께서 쓰신 극락도<極樂圖>머리글 가운데는 정토법문을 높이 기리는 이런 말씀이 있다


"정토법문은 이 마음이 부처되고 이 마음이 부처임을 가르치는 법문이다. 선종에서 말하는 '바로 마음을 가리킴도,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룬다는 정토의 가르침만 못하다.


 깨달음을 이룬 모든 수행자들은 모두 이 드높은 가르침을 드날렸으니 정토법문은 위. 아래. 가운데 중에 모든 근기의 중생들을 함께 끌어안고 율종. 선종. 같은 여러 종파들을 다 아우르는 법문이다.


정토법문은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때맞춰 내리는 단비와 같고 모든 강물을 다 받아들이는 큰 바다와 같다.


변(邊),원(圓),돈(頓)점(漸)의 모든 가르침이다 이 법문 가운데서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 없고, 삼승(三乘)과 오성(五性)을 한데 아울러 모두 참 진리를 얻게 하고 성인과 범부를 함께 이끌어 정토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구계(九界)가 모드 귀의하고 시방세계가 함께 찬탄하고 경전마다 이 가르침을 밝히고 논장마다 이 가르침을 펴니, 이는 가르침의 가르침이고 위없는 일승의 큰 빛이라 이를만하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말법시대 중생들에게 이 정토법문에 귀의해 해탈 하라고 가르치셨다.


관음, 세지, 문수, 보현, 같은 모든 위대한 보살들도 정토법문을 수행하고 아미타불을 염불해서 극락정토에 태어나 물러섬이 없는 땅에 이르러 온전한 깨달음을 이루라고 권하셨다.


2.염불법문에는 어떻게 한 생각에 부처를 이루는 힘이 있는가?


이런 힘의 뿌리는 아미타불의 48원의 알맹이인 "결정코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하겠다(決定正覺願)".는 원력과 "열 번 아미타불을 부르면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게 하겠다(十念往生願)". 는 원력에 있다.


"결정코 바른 깨달음을 얻게 하겠다."는 원력이란 무엇인가?


극락정토에 태어난 이는 이미 지은 업장의 무겁고 가벼움에 가릴 것이 없이 한결같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하겠다는 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토에 갈수 있는가?


아미타불을 부르면 그렇게 된다. "열 번 아미타불을 부르면 반드시 정토에 태어나게 하겠다."는 원력이란 무엇인가?


아미타부처님은 과거 원력 보살로 수행할 때 "내가 만약 성불하면 시방중생이 나의 국토에 태어나기를 소원하고 내 이름을 열 번만 부르면 정토에 태어나게 하리라. 만약 한 중생이라도 정토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깨달음을 이루지 않으리라,"는 원을 세우셨다.


시방중생이란 사람뿐만이 아니다. 중음세계의 중생이든 나아가 짐승, 아귀, 지옥중생 할 것 없이 신령하고 밝은 깨달음의 성품은 그대로이니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부처님을 생각하면 반드시 부처님의 손에 이끌려 정토에 태어나 성불하고 만다.


더욱이 중음세계의 중생은 그 영성이 생전보다 아홉 배가 밝으니 이 같은 영성으로 지극하게 아미타불을 부르면 아미타불의 원력을 타고 한 생각 사이에 정토에 태어나 깨달음을 이룬다.



3.중음세계가 아무리 험해도 아미타불만을 부르면 벗어날 수 있는가?



성불하기에 가장 쉽고 빠른 길은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아미타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중음신에게 보이는 온갖 밝은 빛, 기쁨과 성냄의 모습을 나투는 여러 성상과 나찰, 맹수, 우박 같은 현상은 모두 스스로의 의식이 바뀌어 나타난 모습이다.


살아 있을 때 중음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죽어서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경계를 만나면 그런 경계들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해 자성불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구제할 기회를 놓쳐 윤회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만다.


이와 같이 참으로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만약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고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간절히 구하면 문득 허망 된 의식의 흐름이 끊어지고 변화해 나타난 허망한 경계들이 사라진다.


아미타불은 결코 스스로 세우신 서원을 저버리시는 법이 없다. 부르는 소리를 따라 바로 오시고 이끌어 정토에 태어나게 하신다. 부르는 중생이 비록 삼천 대천 세계의 큰 불로 가득 찬 곳에 있다 하더라도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이 활활 타는 불꽃 바다를 뛰어넘어 정토에 태어나 바로 깨달음을 이룬다.



4.죄업이 깊고 무거운 중생도 아미타불을 부르면 구제될 수 있는가?


그것은 스스로에게 달렸다. 그대로 믿고 정토에 태어나기만을 바라고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틀림없이 구제될 수 있다.


<관무량수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어떤 중생이 오계. 팔계. 구족계. 같은 청정한 계율을 깨뜨리고 살면서도 참회하는 마음이 없다면 죽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죽어 지옥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때 대부분은 "이제는 영영 지옥을 피할 길이 없겠구나"하고 체념해 버린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런 때라도 좋은 스승을 만나 광명이 끝없는 아미타불의 공덕과 서원을 찬탄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염불하면 팔십억 겁의 죄업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


무서운 지옥불은 맑고 서늘한 바람이 되어 가지가지 하늘 꽃을 흔들고 그 꽃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부르는 중생을 맞아 주시니 한 생각에 극락정토의 연꽃 속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죄업이 무겁고 깊어 지옥, 아귀, 축생, 같은 삼악도에 떨어져 끝없는 괴로움을 받을 이라도 염불하는 한 생각 속에 팔십억 겁의 죄업을 없앨 수 있다.


그리하여 아미타불의 원력을 타고 극락정토에 태어나, 길이 윤회의 바다를 건너 바로 깨달음을 이룬다.


그러니 지옥에 떨어질 중생이라도 죽어 지옥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때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한 생각에 깨달음을 이루게 됨이 결코 허망한 말이 아님을 뚜렷이 알아야 한다.


부처님은 인과에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질 이가 어떻게 아미타불을 부르는 한 생각으로 무서운 인과의 그물을 벗어날 수 있는가?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부르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거나 뜻밖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인연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의 씨앗이 무르익어야 피어난다. 지옥불 앞에서 아미타불을 염불 하는 마음이야말로 무르익은 인연이요. 공덕의 끝이 아닌가. 그래서 부처님과 조사님들은 한결같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염불하는 공덕은 금강을 먹는 것과 같아서 그 기운과 힘이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팔만 겁 전에 길을 가던 나그네가 큰 호랑이를 만났다. 나그네는  너무 바쁜 나머지 "나무불(南無佛)"하고 외쳤다. 이한마디 염불 공덕으로 나그네는 팔만 겁이 지난 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아라한과를 이루었다.


염불수행자는 결코 염불공덕을 의심 하지 말고 나고 죽음을 생각하는 참 마음으로 용맹염불 해야 한다.


염불이야말로 금강식(金剛識)인 것이다.


5. 염불문은 늙은이에게나 맞는, 낮은 수행법이 아닌가?


정토법문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것은 지혜 있고 공덕을 짓는 이의 말이 아니다.


왜 그런가.


정토법문을 믿고 수행할 수 있는 이는 수많은 생을 통해 수행 공덕을 쌓는 큰 지혜 인으로 낮은 근기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량수경>에 "이미 복과 지혜를 닦지 않은 이는 이 정토 법문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다." 하셨고 또 "어떤 선남자 선 여인이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기쁜 마음을 일으켜 우러러 아미타불께 귀의하고 염불수행 한다면 이런 이는 작은 근기가 아님이라. 그런 사람은 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제자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참으로 정토법문을 듣고 맑은 믿음으로 받들어 실천하는 이는 헤아릴 수없이 많은 지난 생에 수없이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고 수행한 복덕과 지혜가 크고 깊은 이들로써 으뜸가는 부처님 제자인 것이다. 부처님조차도 찬탄하신 이 법문을 얕잡아 보는 일은 참으로 삼가고 삼가 할 일이다.


염불법문의 수승한 공덕은 <화엄경>이나 <법화경>에서도 잘 밝혀주고 있다. 더 깊이 공부해보려는 이는 <정토오부경>을 보면 된다.


<무량수경> 에서 극락세계와 아미타불의 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고 <아미타경>에서는 근기가 서로 다른 중생들이 염불수행으로 빠짐없이 구제를 받는 불가사의한 경계를 알 수 있다.


또<대세지보살염불원통장>과 <화엄경><보현보살행원품> 에서는 시방세계의 모든 큰 보살들이 깨달음의 과위에 올라서야 염불법문의 뛰어남을 알고 한마음으로 염불하고 부처를 이루어 모든 중생들에게 염불해서 극락정토에 태어나길 가르치심을 알 수 있다.


아. 우리가 지금 이같이 수승한 염불법문을 만나게 된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이생에 이같이 으뜸가는 법문을 만났으니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간절한 원을 세우고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정토에 태어나길 희망하자.


이생에 만난 이 귀중한 인연을 헛되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6. 이 시대에는 어떤 수행을 닦는 것이 가장 좋을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대집경>  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법 시대에는 수없이 많은 이들이 수행하나 깨달음을 이룬 이는 참으로 드물다. 염불수행만이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말법시대에는 가르침도 많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가르침과 사람의 근기가 서로 맞지 않아서 깨달음을 얻은 이가 드물다.


염불법문을 수행하는 이만이 나고 죽음의 괴롬바다를 뛰어넘고 육도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부처님의 이름을 부를 것인가?


빛 가운데 빛이시고 부처님 가운데 부처님이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앞서 말법중생들에게 해탈과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정토법문을 남겨 주셨다. 불자라면 부처님이 일러주신 이 정토법문을 기쁘게 받아 지녀야 할 것이다.



7. 마(魔)는 수행하는데 커다란 걸림돌인데, 염불법문을 수행하면 마(魔)가 없을까?



<수능엄경 오십음마장)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다.


"여러 귀신의 무리들과 함께하는 말법시대에 이르면 천마(天魔),외도, 귀신, 요정 같은 기운들이 불길처럼 일어나 모든 수행자들을 괴롭힌다.


참선이나 밀법을 닦는 이가 계율을 지키지 않고 바른 견해가 없으면 바로 마군의 그물에 걸리고 만다. 그러나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고 염불법문을 받아 지닌 이는 삿된 마군의 괴롭힘에 걸려들지 않는다."


왜 그런가?


<십왕생경>말씀을 보자.

"어떤 중생이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정토에 나기를 원하면 아미타불께서 스물다섯분의 큰 보살을 보내어 수행자를 보살펴. 가거나 앉거나 머물거나 눕거나 밤이거나 낮이거나 어떤 때 어떤 곳을 가림 없이 악귀나 악신이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


또<아미타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경>을 받아 지니거나 여러 부처님의 이름을 들으면 이 선남자 선여인들은 모두 부처님들께서 보살펴 주시나니, 모두 물러섬이 없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렇듯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는 수행자는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들이 보살펴 주시사 언제나 40리에 뻗치는 밝은 빛 속에 있어 어떤 마(魔)도 가까이 할 수 없다.


염불법문이야말로 이 말법시대 중생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가장  근기에 맞는 수행법이자 생사해탈을 가장 완전하고 빠르게 이루어주는 성불의 문이다.


8.염불 수행자는 꼭 채식을 해야 하나?


<수능엄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육도에 윤회하는 중생이라도 마음에 죽이는 기운이 사라지면 더 이상 태어남과 죽음의 윤회를 따르지   않는다. 삼매를 닦아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죽이는 마음을 없애지 않고는 이룰 수 없다."


고기가 맛이 있고 그래서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은 죽이는 마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이는 마음을 없애려면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어떤 수행법으로 수행을 하든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은 태어남과 죽음의 윤회에서 해탈할 수 없다.


목숨을 죽이거나 그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이 죽음에 이르면 빚을 진 생명들이 나타나 바른 생각을 잃게 하여 정토에 태어나는 길에 큰 걸림돌이 된다.


염불 수행자는 언제 어디서나 혼자 몸이 아니라 보이고 들리는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겠다는 큰 자비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비심이야말로 염불수행자의 생명이다. 그래서 염불수행자는 채식을 해야 하고 알이나 오신채도 먹어서는 안 된다.


왜 그런가?

<관무량수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맑은 업을 닦아 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중생은 마땅히 다음과 같은 복덕을 쌓아야 한다.


첫 번째는 부모께 효도하고 스승께 헌신하고 자비심으로 목숨을 사랑하면서 열 가지 착한 업을 닦는 일이다. 두 번째는 삼보께 귀의하고 맑은 계율을 받아 지녀 자비행자의 위의를 잃지 않는 일이다. 이와 같이 맑은 업은 삼세 모든 부처님들이 깨달음을 이룬 씨앗이니 정토행자는 염불과 정업을 닦는 일을 치우침 없이 함께 닦아 나가야 한다.


<지장경>말씀에 "깊고 큰 업력은 해탈의 길을 막는 수미산과 같고 바다와 같다"고 하셨다. 비록 아미타부처님의 서원과 자비심이 끝이 없기는 하지만 죽음에 이르러 집착을 놓아 버리지 못하고 맑고 바른 생각으로 염불하지 못하는 중생은 제도해 줄 수 없다.


한편으로는 염불하고 한편으로는 죽이고 즐겨 고기를 먹다가 죽음에 이르러서 바른 생각을 잃어 버리면 길이 삼악도에 떨어지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이것은 스스로 지여 스스로 받는 과보이지 부처님의 자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고기가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다. 그래도 염불 수행이 아주 잘 된다 나는 채식에 집착 하지 않는다. " 이 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말이다. 생각해 보라. 생명을 죽이는 기운이 살아있는 입으로 어떻게 염불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말은 자비심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아는 이가 하는 말이 아니다.


사바세계의 모습과 소리와 맛과 냄새와 느낌과 생각에서 해탈하여 저 맑은 나라인 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수행자라면 어떻게 사바의 어두운 고기 씹는 버릇에 집착 하겠는가?


연지대사는 말했다


 "죽이고 그 고기를 즐겨 먹는 마음이여!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흉악하고 슬프고 독한 마음이 또 어디 있으리."


자비심은 모든 불보살의 생명이다. 자비의 세계인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어떻게 고기 먹는 나쁜 업을 즐겨 쌓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고기를 즐겨 먹으면 오래 살지 못하고 병치레를 많이 하는 과보를 받게 된다. 병에 걸려 괴로울 때 바른 생각으로 염불 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은 "사람 몸을 잃어버리는 중생은 땅과 같은데 사람 몸을 잃지 않는 중생은 손톱 밑에 흙과 같다"고 말씀 하셨다.


슬프다. 맛에 집착하지 않는다며 즐겨 고기를 먹다가 사람 몸을 잃어버리고 삼악도에 떨어져 헤매는 중생이 수미산과도 같음이여!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능엄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생명을 죽이면 그 생명을 갚아 주어야 한다. 중생은 이 같은 인연의 고리 속에서 길이 나고 죽는다."


정토에 태어나길 발원하는 염불행자는 반드시 나고 죽음의 흐름을 끊어 버려야 한다. 목숨을 죽이고 그 고기를 먹어. 나고 죽음의 씨앗을 만드는 일은 염불행자가 할일이 아니다.


"보살은 그 씨앗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그 열매를 두려워한다"하셨다. 태어남과 죽음의 고리 속에서 벗어나려고 수행하는 수행자는 태어남과 죽음의 씨앗을 두려워해야 한다. 삶의 씨앗이 바르지 못하면 바른 삶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하련(夏蓮)거사는 이렇게 노래했다.


"슬프구나. 흐르는 과보의 물결이여. 흘러흘러 윤회의 바다에 넘치네. 아. 어디에서 왔는가. 하늘에 가득한 괴로움의 불길이여. 목숨을 죽이는 한 생각에서 왔네."


염불행자는 채식을 해야 하는가?이것은 따지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이는 염불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바른 길이요.기쁜 길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다른 중생들도 싫어한다. 염불행자는 언제나 스스로의 삶을 비춰보고 잘 다스려 나가야 한다. 




 제10장 :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빈틈없는 해탈공부




어렵고 어려운 일은

죽음뿐

모든 것이 사라 질 때

죽음이 올 때

그대여,

죽음을 죽음이라고 알아서

그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가?

나고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그대는 공부를

해 두었는가?


『화엄경』<보현행원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 모든 감각은 다 흩어져버리고 가족도 이웃도 다 떠나버린다. 명예도 위엄도 재물도 다 사라진다. 따르던 이들도 헐뜯던 이들도 함께 갈 수 없는 죽음의 길에 오직 함께하는 것은 정토를 그리던 이 마음뿐. 자나 깨나 아미타불을 그리던 마음의 빛이 죽음의 길을 환하게 비추어 한 순간에 정토에 태어나게 하리라.


정토에 태어나면 아미타불,문수보살,보현보살,관세음보살,미륵보살 같은 수많은 보살님께 에워싸여 연꽃 속에 태어나며 부처님께 수기를 받으리라.


죽으면 가장 아끼던 몸이며, 눈, 귀, 코, 혀, 같은 모든 감각기관이 한꺼번에 허물어져 다시는 쓸 수 없게 된다. 그뿐인가.

사랑하던 가족과 이웃들도 영영 헤어지게 되고 피땀 흘려 모은 재산도 아무런 힘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부리던 이라도 숨길 한번 끊어지면 한 사람도 뜻대로 부릴 수 없다. 이 같은 죽음을 맞이하여 창자를 끊는 듯한 괴로움 속에 몸부림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중음의 세계는 친척도 없고, 벗도 없고 기댈 사람도 없다. 시커먼 어둠의 두려움 속에는 살려달라고 부를 이름도 모습도 없어 지은 업대로 곤두박질치며 온갖 괴로움을 받는다.


살아 있을 때 가족이나 이웃이 이런 괴로움 속에 몸부림치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슨 힘이 될 수 있을까.나아가 우리는 스스로 이 같은 중음의 고통 속에 빠져있을 때를 대비해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나고 죽음만을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깔끔히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삶의 순간순간 속에서 삶의 온갖 현상은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갯불 같음을 깨달아 욕심과 애착을 놓아버려야 한다.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아미타불을 그리는 마음을 키워나가고 보현보살의 열 가지 큰 원을 닦으면서 정토에 태어나기를 소원해야 한다.


이렇게 힘써 수행한 이는 죽음에 이르러 한꺼번에 온갖 세상 인연들이 사라질 때 불보살님의 가피의 빛살이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정토로 이끌어 주신다.


그리하여 한 순간에 극락정토의 연화 속에 태어나 아미타불님의 수기를 받고 자기가 성불할 때와 나라와 이름을 밝게 알 수 있다.


이 얼마나 뛰어나고 시원한 일인가! 이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이는 죽음을 뛰어넘어 번뇌의 굴레를 벗어나서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아가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들까지도 인연 따라 구제하게 될 것이니 어찌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을 윤회의 깊은 강에서 건지지 못할까 걱정할 것인가.


죽은 사람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도 이 정토의 맑은 가르침을 따른 다면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해 보기가 어려운 모든 근심과 집착을 놓아 버리게 된다.


또 정토의 부신 빛살에 눈이 뜨여 한마음 한뜻으로 정토에 태어나길 소원하게 되나니, 다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게 되더라도 끝내 정토를 향한 큰 소망을 남김없이 어느 생엔가는 이루게 된다.


사람 몸을 받고서도 정토의 길 안 닦으면

보배산에 들어가서 빈손으로 나옴과 같도다.   




제11장 : 돌고 도는 생명의 수레바퀴


-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 -


1. 육도 중생을 위한 기도


티벳 불자들은 새해 초에 오체투지의 성지순례를 한다. 온몸을 땅 위에 던지면서 그 사람들이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는 자기의 소원이나 집안의 행복이 아니다. 조국 티벳의 독립도 아니다


티벳 불자들은 여섯 갈래의 존재계에 윤회하는 중생들이 모두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기를 축원한다. 그 사람들은 윤회하는 세계 속에서 얻는 행복과 권력과 재산 같은 것은 모두 참된 것이 아니고 괴로움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삶의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은 삼보에 귀의하여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공덕을 쌓고 깨달음을 얻는 데 있다고 본다.



2. 마음속의 세 마리 짐승, 세 가지 독


티벳의 절 어귀마다 그려놓은 벽화가 있는데.


“생명의 수레바퀴”라고 일컫는 이 그림은 욕심, 성냄, 어리석음 의 세 가지 독으로 선업과 악업을 쌓고 그 결과 끝없이 여섯 갈래를 윤회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맨 가운데 동그라미를 보면 세 마리 짐승이 서로 꼬리를 물고 시계바늘 가는 쪽으로 돌고 있다.


수탉은 뽐내기를 좋아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중생의 탐냄과 애욕을 나타내고, 독뱀은 미움과 샘냄처럼 다른 이를 해치려고 하는 원한과 분노를, 돼지는 고통의 원인과 소멸에 이르는 법(사성제)과 삼세인(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같은 진리를 모르고 망상과 모든 번뇌의 뿌리인 어리석음을 뜻한다.


바로 이 세 마리 짐승이 사람의 마음속에 살면서 여섯 갈래를 떠돌아 괴로움을 겪게 하는 뿌리가 된다. 그러니 괴로움과 두려움이 끝이 없는 윤회를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다시 태어나게 하는 원인을 없애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 세 마리 짐승을(탐심, 화내는 마음, 어리석음의 삼독) 원수처럼 여기고 잘 다스려야 한다. 두 번째 동그라미 오른쪽은 세 마리 짐승의 힘에 끌려 다니면서 어둠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림인데 이 세계는 나쁜 업과 나쁜 인연으로 맺어진 검은 업의 세계다.


동그라미 왼쪽 그림은 선지식을 만나 육도윤회의 괴로움을 깨닫고 아미타불의 원력과 가피력으로 윤회세계에서 벗어나 극락정토에 태어나는 내용이다.


그림 오른쪽 위 그림은 석가모니께서, 괴로움을 겪는 중생들이 해탈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나도록, 오른쪽을 들어 해탈의 바른 길을 가르치고 계시는 내용이다.


왼쪽 윗 그림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이다.


죽을 때 바른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면 아미타불의 은빛광명의 길을 타고 곧바로 극락정토에 태어남을 보여 준다.


3. 여섯 갈래의 중생세계, 육도윤회


그림 가운데 있는 여섯 개 그림은 여섯 갈래의 윤회 세계를 뜻한다.

위쪽에는 계율을 지키고 공덕을 쌓아 태어나는 천상세계가 있고, 그 오른쪽에는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사람 세계가 있다. 그 아래에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욕심을 부리다가 떨어지는 굶은 아귀의 비참한 세계가 있다.


맨 아래 가장 큰 그림은 지옥세계의 여러 가지 괴로운 모습이다.


지옥 왼쪽에는 네 발 달린 짐승과 물고기, 새 같은 축생들의 세계가 있고, 그 위에는 질투와 싸움의 업보로 태어나는 아수라 세계가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뿐 아니라 우주법계의 모든 생명들은 스스로 지은 선악의 업보에 따라 여섯 갈래의 세계에 끝없이 태어나게 된다.


이러한 육도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데는 두 가지 큰 길이 있다.


첫째는 자기 수행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는 원인을 없애 열반에 이르는 성도해탈문(成道解脫門) 자력(自力)수행이고


둘째는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지하여 육도윤회에서 바로 벗어나는 왕생정토문(往生淨土門) 이다.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착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윤회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윤회하는 중생들을 구해주는 일을 으뜸으로 한다.


꿈속에서 착한 일을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꿈을 깨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직 해탈하지 못한 중생이 꿈에서 깨어나는 12가지 법칙이 있는데 이것을 12연기(緣起)라 한다. 12 인연법을 또렷이 깨달아야 자기만 알고 자기만 고집하는 그릇됨에서 벗어나 나만을 내세우지 않고(무아) 자기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무소유) 해탈 세계에 이르러 고해를 벗어 날 수 있다.



4. 열두 가지 인연법칙(12연기)


육도윤회의 여섯 개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열두 개의 그림은 12 연기법을 그린 것이다


시계바늘 도는 쪽으로 첫 번째 그림은 어리석음인 ‘무명(無明)을 뜻한다. 눈 먼 늙은이 그림은 빛이 없는 어둠의 상태, 삼세인과와 사성제 같은 진리의 가르침에 어두워 사물의 도리를 알지 못하는 처음의 한 생각을 나타낸다.


두 번째 그림은 행위를 뜻하는 ‘행(行)’을 나타낸다.


짐을 나르는 사람 그림은 업보가 만들어짐, 곧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집착하는 대상을 실제화 하는 현선작용이다.


세 번째 그림은 분별작용인 ‘식(識)’을 나타낸다. 나무 위의 원숭이 그림은 개체가 만들어지면 자기를 가운데 두고 분별작용을 계속하는 인식이 생겨남을 뜻한다.


네 번째 그림은 정신과 물질이 하나로 맞붙는 ‘명색(名色)을 나타낸다.


나룻배에 두 사람이 타고 있는 그림은 정신적인 명(名)과 물질적인 색(色)이 결합하는 것을 뜻하는데, 명색(名色)은 식(識)을 인연으로 생긴다.


다섯 번째 그림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입(六入)’을 나타낸다.


창문이 여섯 개 달린 집 그림은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뜻하는데 위의 名과 색(色)이 결합하면 이 감각기관이 생긴다.


여섯 번째 그림은 감촉기관인 촉(觸)을 나타낸다.


다정한 여자와 남자 그림은 감각기관이 경계를 만나 느끼는 감촉작용을 상징한다.


일곱 번째 그림은 느낌작용인 ‘수(受)’를 나타낸다. 눈에 화살 맞는 사람 그림은 느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즐거움과 괴로움 등 모든 느낌을 뜻한다.


여덟 번째 그림은 이성을 그리는 감정인 ‘애(愛)를 나타낸다.


술 취한 사람을 여자가 시중들고 있는 그림은 즐거운 느낌에 따라 즐거움의 대상을 끝없이 갈구하는 눈 먼 욕망을 상징한다.


아홉 번째 그림은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인 ‘취(取)’를 나타낸다.


과일 따는 사람 그림은 욕망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바라는 대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마음의 작용을 뜻한다.


열 번째 와 열한 번째 그림은 나고 죽음을 되풀이 하는 존재가 만들어 지는 ‘유(有)’로 말미암아 생명이 탄생함을 나타낸다.


열두 번째 그림은 삶의 여러 가지 괴로움, 노사우비고뇌(老死優悲苦惱)’이다


송장 나르는 사람 그림은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삶의 갖가지 괴로움과 슬픔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12연기법은 모든 현상이 서로 관련되어 존재하고 인연 따라 일어난다는 인연(因緣生起)의 가르침이다.


그것은 모든 사물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아사상을 뒷받침해 주는 이론이다.


12연기설은, 중생들이 업력에 따라 삼세에 걸쳐 끝없이 나고 죽음을 되풀이 하는 과정을 사실에 뿌리를 두고 12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 관찰하는 법이다.


모든 괴로움과 불행의 원인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12 연기의 가르침이다.


불행한 사람은 어리석은 값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대품반야경』에 

“사람의 큰 죄는 어리석음이다. 불행과 괴로움은 어리석음의 갚음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여 진리의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참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모든죄업 참회하고 나쁜습관 바꾸어서

이몸이제 맑고맑은 보살의길 닦으리라

아침이슬 우리인생 모든슬픔 사라져라

사람의삶 뜻이없다 어느누가 말했던가

비우고또 맑히는일 우리행복 아니던가


      南  無  阿  彌  陀  佛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향련 원글보기
메모 :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마하가로 니가야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까리다바 이맘알야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하리나야 마발다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아예염 살바보다남 바바말야 미수다감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구로구로 갈마사다야 사다야 도로도로 미연제마하미연제 다라다라 다린나례 새바라 자라자라 마라 미마라 아마라 몰제예혜혜 로계 새바라 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례바나마 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매다라야 니라간타 가마사날사남 바라 하라나야 마낙사바하 싯다야 사바하 마하싯다야 사바하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니라간타야 사바하 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자가라욕다야 사바하 상카섭나네 모다나야 사바하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바마사간타 이사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 먀가라 잘마이바 사나야 사바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독경. 정곡스님




독경. 여강스님
 
       
      [신묘장구대다라니 해설-1]
       
      통방산住 正谷스님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천수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대다라니를 귀절별로 나주어 설명토록 하겠습니다

        1.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모《namo》〓귀의 한다는 의미입니다. 귀명《歸命》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라다나《ratna》〓본래 보물, 보석 등의 의미입니다. 보물 보석 등은 가장 훌륭한,
        가장 으뜸 가는, 최상《最上》의 의미로 해석됩니다.
        다라야야《trayaya》〓보호자의 의미로 관세음보살님을 의미합니다.

         

        <가장 거룩한 관세음보살님 귀의합니다>
        2.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마하가로 니가야

        나막〓나모와 같은 뜻
        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arya valokite svaraya》〓관세음보살님의 본명
        모지사다바야《bodhisattvaya》〓보살의 원음
        마하사다바야《mahasattvaya》〓마하살, 큰 보살의 의미
        마하가로니가야《mahakarunikaya》〓대자대비의 뜻

         

        <거룩하신 관세음보살님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합니다>

        3.옴살바바예수 다라나가라야 다사명 나막까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옴〓 옴은 A. U. M의 뜻으로 시작과 과정과 끝을 의미하는 우주의 본질을 뜻하는 가장
        근본적 진언입니다.
        살바 〓일체의 뜻, 전체.
        바예수〓공포, 두려움
        다라나 〓보호, 피난처, 구제제도
        가라야 〓고난
        다사명 〓구한다, 제도한다 여기까지의 의미는 <일체의 공포로 부터 지켜주시는>의
        의미입니다.
        나막 〓나모와 같은 뜻
        까리다바 〓위엄 있는, 힘이 있는 사람
        이맘 〓성인
        알야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관자재보살의 위력, 여기까지의 의미는
         

        <성스러운 관자재보 살님의 위신력이 펼쳐진다>의 뜻입니다.

         

        전체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옴 일체의 공포로 부터 지켜 주시는 성스러운 관자재보살님께 귀의하여 거룩하신
        위신력이 펼쳐집니다. 즉- 구고구난 관세음보살님께 귀의 합니다의 뜻>

        4.니라간타 나막하리나야 마발다 이사미

        니라 〓푸른 빛
        간타 〓머리 <푸른 머리를 지닌 관세음보살님>의 뜻
        나막〓귀의
        하리나야〓마음에 접촉되다【心觸】, 능히 들어가다[能入], 통철[通徹]
        마발다 이사미〓회귀한다, 돌아온다

         

        <관세음보살님의 근본심으로 돌아 가옵니다>

        5.살발타 사다남 수반아예염 살바보다남 바바말아 미수다감 다냐타

        살발타 〓모두를 이롭게 하다, 나와 남이 함께 이롭다.
        사다남〓성취 완성하다,목표로 인도하다, ~을 확보하다.
        수반 〓길상, 행운, 아름답다, 즐겁다.
        아예염〓최고의,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살바보다남〓일체 생물, 모든 존재.
        바바 〓탄생, 기원, 본원, 존재.
        말아 〓길, 통로, 정토, 수단, 방책.
        미수다감〓청정공덕, 진실한 공덕.
        다냐타 〓나아간다.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경지를 성취할 것이며, 지고의 최고의 행운의 경지에 올라
        일체 이 세상에 출현한 중생들을 정도로 이끌어 청정공덕의 길로 나아가겠습니다>

        6.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아로계 아로가 〓관찰자.
        마지〓지혜
        로가 〓존재, 국민, 사람
        지가란제〓초월, 해탈
        혜혜〓따르다.
        하례〓오르다, 타다.
         

        <옴, 통찰자이시며 지혜의 존재이시며 초월자이신 관세음이시여,
        끊임없이 정진하겠나이다, 따르겠나이다>

        7.마하모지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마하모지사다바 〓대보살님
        사마라 〓기억하다.
        하리나야 〓마음에 새기다
         

        <대보살님이시여, 기억해 주소서, 항상 마음에 새겨 주소서>

        8.구로 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미연제 다라다라
        구로〓나쁜
        갈마 〓업, 행위
        사다야 〓승리자, 또는 부사로서 앞서다의 뜻.
        도로〓선장 수장
        미연제〓승리하다
        마하미연제〓크게 승리하다
        다라 〓기억한다, 보존한다, 유지한다.
        <속히 악업을 그치겠나이다. 위대한 승리자이신 관세음이시여,
        항상 우리를 기억해주소서>

        9.다린나례 새바라 자라자라 마라 미마라 아마라 몰제 예혜혜

        다린나례〓옹호하는 주인, 왕, 받아지니는 자[受持].
        새바라 〓자재자, 마음대로 하시는 자.
        자라자라 〓행동하다, 동요[動搖].
        마라 〓번뇌, 오물, 때[垢], 부정[不淨].
        미마라 〓더러움을 없애다, 해탈자.
        아마라 〓더러움을 없앤자, 해탈자
        몰제 예혜혜〓속히, 어서 빨리

         

        <옹호자이시며 자재자이신 관세음이시여,일체 번뇌로 부터 해탈하신 관세음이시여,
        어서 빨리 강림하소서>

        10.로계 새바라 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로계〓세간, 세상
        새바라 〓자재자
        라아 〓욕망, 탐욕
        미사미 〓독심
        나사야 〓잠재우다
        나베〓진심
        사미사미〓독심
        나사야 〓잠재우다
        모하자라 〓치심, 우치심, 무명


        <세간의 자재자이신 관세음이시여, 탐욕의 독심을 잠재워주소서,
        진심의 독심을 잠재워 주소서, 치심의 독심을 잠재워주소서>

        11.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례 바나마 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호로호로〓공포, 두려움
        마라 〓번뇌, 부정, 때[垢]
        하례 〓제거하다, 없앤다.
        바나마 〓연꽃
        나바 〓중심【바나마 나바 〓연화성존《聖尊》】
        사라 〓제도하다.
        시리 〓나아가다
        소로〓펼치다, 꺼내다.흘러내리다.
        못쟈 〓깨달음의 성자
        모다야 〓보리도, 깨달음을 뜻함.

         

        <관세음이시여, 공포를 제거하여 주소서, 속히 제도하여 주소서,
        나아가게 하여 주소서, 깨달음을 얻게 하소서>

        12.매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 하라나야 마낙 사바하 싣다야 사바하

        매다리야 〓어여삐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다.
        니라간타 〓관세음보살, 청경성존
        가마사 〓애욕
        날사남 〓파하다, 부수다, 공격, 학대.
        바라 하라나야 마낙〓분발케하다
        사바하 〓길상, 서상
        싣다야 〓성취
        사바하 〓길상 있으라


        <관세음이시여, 어여삐 여기시어 애욕을 파하도록 힘을 주소서, 성취케 하소서>

        13.마하 싣다야 사바하

        마하 〓크다
        싣다야 〓성취, 달성

         

        <대성취존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14.싣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싣다 〓싣다야와 같은 뜻
        유예새바라야 〓요가의 성취자


        <요가자재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15.니라간타야 사바하

        니라간타야 〓청경존


        <청경존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16.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바라하 〓돼지
        목카 〓모습, 형태.
        싱하 〓사자


        <동물을 제도키 위해 동물 모양을 한 관세음보살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17.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바나마 〓연꽃
        하따야 〓지니다


        <연꽃을 지니신 관음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18.자가라 욕다야 사바하

        자가라 〓큰 수레바퀴
        욕다야 〓구족하다


        <큰 바퀴를 드신 관음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19.상카섭나녜 모다나야 사바하

        상카 〓소라
        섭나녜 〓소리[音]
        모다나야 〓菩提[깨달음]


        <법소라음으로 깨닫게 하시는 관음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20.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마하라 〓크다, 넓다, 거룩한.
        구타 〓병[甁]
        다라야 〓지니다, 맡아 있다.


        <큰 병을 지니신 관음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21.바마 사간타 이사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

        바마 〓오른손
        사간타 〓어깨
        이사 〓방향, 쪽.
        시체다 〓서있다, 있는[有],
        가릿나 〓검은색
        이나야 〓깨달은 자, 여래, 승리자.

         

        <오른쪽 어깨에 검은 서상을 하신 관음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22.먀가라잘마 이바사나야 사바하

        먀가라 〓호랑이
        잘마 〓가죽,피부, 껍데기
        이바사나야 〓의복, 옷.


        <호랑이 가죽 옷을 두른 관음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23.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나모〓귀의, 귀명
        라다나 〓보배
        다라야야 〓보호자의 의미로 관세음보살님을 의미.
        나막 〓귀의, 나모와 같은 뜻
        알야바로기제 새바라야 〓관세음


        <귀의 하옵나니 관음대성존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신묘장구대다라니 해설-2]

         

        <신묘장구대다리니경>의 의미에 대해 누군가 질문을 하고 또한 답변한 글입니다.

        (출처:네이버블로그)

         

        <천수천안 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대비심다라니경>은 인도에서 온 가범달마스님과 보뎨류지 인도스님의 번역으로서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이 아닌 부처님과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위신력을 나타내는

        관세음보살의 삼매력과 중생들의 참회를 하게하는 경전입니다

         

        경전의 다른 부분은 뜻번역을 하면서도  <신묘장구 대다라니>부분만은

        사스크릿트어(범어)로된 원문 그대로 지송하는 이유는

        원어 대로의 심오한 뜻을 그대로 번역이 안되는 한계로 관세음보살의 불지혜와 위신력은

        원문그대로 지송하는것이 오히려 뜻 번역보다 수승한것을 간파한 (초기 경전을 번역한) 스님들의 시도로

        특히 원문으로 지금도 모든 경전을 지송하고 있는 밀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다라니 부분은 번역을 않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님이 한글의 번역을 원하시니 번역을 해드리지만 참고로만 아시고 혹 경전을 독송 하시게 될경우는

        번역의 뜻을 지우시고 원어대로 지송을 하시는것이 기도에는 도움이 되실것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그대로 풀이하면 "중생들의 소견으로는 측량하기 힘든 신기하고

        미묘하여 불가사의한 내용을 담고있는 큰 다라니"라는 뜻입니다.

         

        <다라니>속에는 그러한 힘과 신비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지요.
        <다라니>를 한문으로 음사(音寫)하는 과정에서 중국식 발음으로 변형되였고 그것이 다시 우리말로

        전달 되면서 변형된 인도의 말입니다

         

        예를 들면 똑같은 영어를두고도 중국,일본,한국 사람의 발음이 원어대로100% 그대로가 아니고

        조금씩 다른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우리가 전국사찰 에서나 가정에서 읽고 외우고 있는 이 다라니는 발음에서 뿐만아니라

        띄어쓰기에서도 잘못 표기된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세월 동안 내려온 관습으로 하루 아침에 고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므로 여기에서는

        그차이점을 조금씩 끊어서 짚어가면서 그뜻을 번역 해보록 하겠습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세바라야 모지 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

        마하 가로니가야 옴 살바바 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가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우선 여기까지의 내용을 살펴 보면은 맨처음 나오는 <나모라 다라다라 야야>는 <나모 라다나 다라야야>라고

         띄여 읽어야 뜻이 통합니다.

         

        <나모>는 "귀의 하여 받든다"는 뜻으로 여러번 반복하여 나오는데 <나무>와 같은 뜻입니다

        간혹 <나막>이라고 표기하는곳도 있는데 같은말을 조금 다르게 표기한것 뿐입니다.

         

        그 귀의하는 대상으로 <라다나>는 "보배"라는 뜻이며, <다라야야>의 <다라야>는 삼(三)=셋이라는 뜻이고

        그 끝에 붙은 <야>는 "~에게"라는 위격 조사입니다,

         

        그래서 회화형식으로 한문장으로 자연스럽게 해석하면 "삼보님께 귀의의 합니다~!"

        이어서 <나막알약 바로기제 세바라야>는 <나막 알약 바로 기제 새바라야>로 띄어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나막은 나모와 같은 말로 "귀의 하여 받든다"는 뜻입니다

         

        결국 나모=나무=마막 같은 말인데 발음표기만을 조금씩 다르게 표현된것 뿐입니다.

         

        <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는 원레는<아바로기떼 새바라야>인데

        관세음보살의 본래 (원어그대로의)이름입니다,

        <알약>은 성스럽다는 뜻이고

         <바로기제 새바라야>까지는

        "관자재"로 번역 되는데 관세음 보살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끝에 붙는 <야>는 "~에게"의 뜻이니 이문장은 "성스러운 관자재에게"가 됩니다.

         그다음 <모지>는 "보리"라는 뜻이며 <사다바>는"살타"가되니 합쳐서 "보리살타" 즉 "보살"이란 뜻입니다.

         

        <야>는 "~에게"위격조사이고 <마하>는 "크다"합치면 "대 보살에게"가 됩니다.

         

        <마하 가로 니가야><마하 가로니가야>띄어서 읽어야 하며 한글로 원음을 100%표기란 불가능하나

        최대의 원음근사치의 음은 <마하 까로니까야>이며 "대비존에게"가됩니다.

         

        여기까지만 살펴 보아도 <신묘장구 대다라니>는 관세음 보살을 중심으로 한 자비사상을 담고 있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어서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옴>은 모든 진언의 모체가되는 우주의 핵심이며 지극한 찬탄의 소리이며 모든것을 먹음은 알파와 오메가의 소리입니다

         

        <살바>는 "일체" <바예수>는 "두려움"

         <다라니>는 "주제" "구도" 의 의미가 있으며

        <가라야>는  "행위한다"이니 합쳐서 "일체의 두려움을 구해주시는"뜻으로 해석된다.

         

        <다사명>은 "그런 까닭에"  <나막 까리다바>의 나막은 "귀의 하여 받든다"

         

        <까리다바>는 "어지신분"이 됩니다. <이맘>은 "이로 말미암아"가되며 <알야>는 앞서서의 <알약>과 같은 말로

         "성스럽다"  <바로기제 새바라>는 "관자재 보살"이라는 뜻이다.

         

        <옴>~<새바라 다바>까지 해석은 "일체의 두려움에 있어서 구제해 주시는 저 어진 관세음 보살님께 귀의하고

        예경하면 이로 인하여 성스러운 관자재 보살의 위신력은 출현한다"는 내용이 되는것입니다.

         

        니라간타 나막하리나야 마발타 이사미살발타 사다남 수반 아예염 살바 보다남 바바말아 미수다감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 미연제 다라 다라  다린 나례 새바라 자라자라 마라 미마라 

        아마라 몰제 예혜혜 로계 새바라 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례 바나마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니라>는 "푸른" <간타>는 "목" 이란 "청경(靑頸)" 이렇게 해서 "푸른목"인데 이런 말의 연유는

        보살행을 닦을때 독룡을 항복 받기위하여 싸울때 용으로 변하여 싸우는 과정에서 독룡의 목을 물어 피를 빨았는데

        어찌나 독하였는지 목에 시퍼런 자국을 남겼다는데서 유래된말,

         

        때때로 관세음보살은 이처럼 무섭게 싸워 적을 물리치기도 하는것이지요.

         <나막>은 "음성이 높은" <하리나야>는 "마음"="심수(心隨)" 즉 "진언"이란 뜻.

         

         <마발다>는 "회귀(回歸)",돌아온다의 뜻,그래서 마음의 근원으로 회귀한다.

         <살발타 사다남>에서 <살발타>는 <살바르타>를 줄여서 <살발타>라고 하는데

        살바는 "일체"며 르타 는 "목적" "이익"이라는 뜻

         

        <사다남>은 "완성" "성취"라는 뜻이지 붙여서 해석하면 "일체의 목적을 성취하는" 이라고 해석.

         <수반 아예염>에서 수반은 "길상(吉祥)"혹은 "훌륭한",<아예염>은 "불가승(不可勝)"즉 "이길수 없는",

         <살바보다남>에서 <살바>는 "일체" <보다남>은 "귀신" "정령"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니라간타 나막하리나야 마발타 아사미 살타 사다남 수반 아예염 살바 보다남> 까지를 붙여서 풀이하면

         

        "저 청경의 높은 마음의 주(呪)에 회귀 하옵니다.

        일체의 이익을 성취하시고 길상으로서 일체의 모든 귀신들이 이길수 없는 분이시여 "라고 해석 할수 있다.

         

         <바바말아>는 "탄생하다" "존재하다" "있다"혹은 "삶의 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미수다감>은 "정화" "청정"의 듯이 있으니 "삶의 길에서 청정케 하옵는" 이라고 해석.

         

         <다냐타 옴 아로계아로가>에서 <다냐타>는 "이와같이", <옴> 은 극찬의 이미를 가진 진언의 근본의 의미,

         

        <아로계 아로가> 할때 <아로계>와 <아로가>는 같은 뜻을지닌 "광명" "관조" "안목" "주시" "봄" 의 의미가 있습니다.

         

        <마지로가 지가란제>에서 <마지로가>는 다시 <마지>와 <로가>로 분리해서 <마지>는 "숭배" "공경" "찬탄"의 의미가 있고

         

        <로가>는 <로까>라고 하는데 "세간" "세계"라는듯 지가란제는 "초월한다"라고 풀이,

         

        그래서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까지 붙여서 해석하면 "이와같이

         

        옴~! 광명존이시여 광명의 지혜존이여 세간을 초월하신 존 이시여"라고 풀이할수 있습니다.

         

         <혜혜하례>에서 혜혜는 "오!"라는 감탄사이며 하례는 "신의 이름"혹은 "실어나른다"라는 두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하례>는 결국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혜혜하례>가 궁극적으로 "오! 관세음 보살이시여,저 피안으로 우리를 실어날으시옵소서"라고 해석 할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마하모지 사바하>에서 마하는 잘알다싶이 큰 대(大) 라는 뜻,

        모자 사바하 는 앞에서 이미나왔듯이 "보리살타"즉 "보살"의 듯입니다.

         

         <사마라 사마라>의 반복은 "기억하다" 억념(億念)하라"는 뜻.

        하리나야는 "마음의 진언,심수(心隨)라는 의미,

         

        그래서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까지는

        "위대한 보살이시여 마음의 진엄을 억념하옵소서,억념하옵소서"라고 해석 합니다.

         

         <구로구로갈마>는 "작업을 실행 하옵소서,실행 하옵소서"이고

         <사다야 사다야>라고 할때 사다야는 앞에서 여러 번 나온 단어로 "성취한다"의 뜻,

         

        <도로도로>는 "호지(護持)의 반복" 도 되나 "보호해 가지다"라는 뜻,

        <미연제>는 "승리하다" "조복받다" "아무도 이길수 없다"라는 의미,

         

        그래서<사다야 사다야 도로도로 미연제> 까지를 연결 해석하면

        "성취케 하옵소서 성취케 하옵소서 보호 견지해 주옵소서 보호 견지해 주옵소서

        승리자시어"라고 해석 합니다.

         

         <마하 미연제 다라다라 다린 새바라>에서  마하미연제는

        "위대한신 승리지" "대승리자"라는 듯이 됩니다.

         

        <다린나례>는 "보호해 가지는 주인이시여"

         새바라 는 "자재(自在) 그래서 <마하 미연제 다라다라 다린 나례 새바라>는

         "대승리자시여 수지보존 하옵소서 수지 보존 하옵소서,대지의 왕이신 자제존이시여"가 됩니다.

         

         <자라자라 마라 미마라 아마라 몰제 예혜혜>

        "발동 하옵소서,진구를 이탈한 존이시여,무구청정 원만상존이시여,

        강림 하옵소서 강림하옵소서"가 됩니다.

         

         <로계 새바라 라아미사미 나사야> "세계의 주인이시여,탐독을 소멸케 하옵소서" 가 된다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도 앞과 마찬가지로 <나베사 미사 미나사야>로 띄어 읽어야 한다

         

        나베사는 "진심"="성내는 마음" 미사는 "독" 이며

        미나사야는 "소멸=소망"의 뜻이니 "진독을 소먈케 하옵소서"가 된다.

         

        호로 호로 는 취해 가지다 즉 부리채 가지다,

        "세간의 주인이신 자재존이시여,탐심의 독을 소멸케 하옵소서,어서 빨리 가져 가십시요,

        취해 가지십시요"가 되는 것입니다.

         

         <하례 바나마>에서 하례는 신의 이름 혹은 운재 즉 "실어나르다"의 뜻이 있다,

         

         바나마는 "연꽃"이며 나바는 "마음,중심,배꼽,중앙,의 뜻이 있다 그래서

         

        <하례 바나마>는 "연꽃의 마음을 간직한 이여"가 되는것입니다.

         

        연꽃은 불교의 이상적인 꽃으로 여기서는 바로 관세음보살을 나타냅니다.

         

        < 사라사라 시리시리> 물이 흐르는 모습을 나타내는 의성어

         사라사라는 "감로수법을 유출하옵소서"이고

        사라사라는 "감로의 지혜 광명을 유출하옵소서"이다.

         

         <모다야 모다야> 보리(菩提)라는뜻 여기서는 "깨닫게 하옵소서,깨달게 하옵소서"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메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날사남 바라하리나야 마낙사바야 싯다야 사바하 마하 싯다야

        사바하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니라간타야 사바하 바라하 목하 싱하 목카야 사바하

        상카섭나네 모더나야 사바하 마하라 그타다라야 사바하 바마 사간타이사 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 마가라 잘마 이바 사나야 사바하

         

        위의 내용은 <신묘장구 대다라니>의 마지막 부분인데 이것은

        관세음 보살의 여러가지 역활과 위신력에 따라 붙여진 열두가지의 상징적인 이름에 해당 됩니다

         

        관세음 보살은 항상 자비스러운 모습으로만이 아니라 때로는 위엄스러운 모습으로 때로는 화엄 신장 같은 두려움을

        가진 존제로도 불법을 지켜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맨처음나오는 <매다리야>는 미트리야라고 하여 미륵 보살의 이름인데

        "자비스러운 ,인정이 깊은"의 의미를 먹음고 있습니다

         

        <나라간타>는 앞에서도 나온 청정 관음이고 가마사는 "욕망, 원망"의 뜻

         

        <날사남>은 "바라본다" <바라하라나야>는 "기쁨.환희" <마낙>은 "공경, 경외"의 뜻

         

        <사바하>는 여러번 반복 나온 단어로 "성취,원만,구경,완성,"의 뜻이 담긴 종결어미 입니다.

         

        여기가지 연결된 해석은 "자비심이 깊으신 청경 관음존이시여 보는것을 바라는자에게

        환희,공경심을 내게 하는 분이시여 성취하게 하소서"가 되는 것입니다.

         

        두번재 이름인 <싯다바야 사바하>는 "성취하산 분이시여 성취케 하소서"가되며

         

        세번재 이름인< 마하 싯다바야 사바하>는 "위대하신 성취존이시여 성취하게 하소서"가 됩니다

         

         네번재 이름인 <싣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는 "요가를 성취하신 자재존이시여

        성취하게 하소서"라고 풀이 할수 있습니다

         

         다섯번재 이름인 <니라간타 사바하>는 "청경 관음존이시여 성취하게 하소서"이며

         

         여섯번째 이름인 <바라하 목하싱하 목카야 사바하> 

        바라하는 산돼지, 모카는 얼굴, 싱하는 사자 이니

        "산돼지 얼굴 사자얼굴 을 한 관세음 보살이시여 성취케 하소서"라고 해석 할수 있습니다

         

         일곱 번재이름인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는 연꽃을 손에 잡으신 관음 존이시여 성취하게 하소서.

         

         여덟번재 이름인 <자가라 욕다야 사바하> 는 큰 바퀴를 들고 전투하는 관음존이시여 성취하게 하소서.

         

         아홉 번재의 이름인 <상카섭나네 모다나야 사바하>는

        "법소리 나팔소리로서 깨닫게 하시는 관음보살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열번째 이름인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는 "큰 곤봉을 가지신 관음존이시여 성취하게 하소서 "

         

        열한번째 이름인 <바마사간타  이사시체다 가릿나이나야 사바하>는

        "왼쪽 어깨의 모서리를 굳게 지키는 흑색의 승리자이신 관음존이시여 성취하게 하소서 "

         

         열두번재 이름인 <먀그라 잘마 이바사나야 사바하>는

        "호랑이 가죽옷을 입으신 관음존이시여 성취하게 하소서"라고 해석할수 있는것입니다

         

        [나모라 다라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세번 이부분은 맨처음 나왔던 구절인데

        다시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삼보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성스러운 관자재 보살에게 귀의 합니다

         

        불법승인 삼보와 관세음 보살님께 귀의함이 바로 불교를 신앙하는 기본적인 마음 가짐인것입니다 

        영어나 그외의 국가중 기존의 많이 통용되는 문자면은 원문을 써가면서 해석을 붙여야 하건만

        50자의 산스크릿트어의 기록은 컴퓨터상에 표기하기가 불가하여 원문을 싣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하면서

        비록 표기가 불가피한 외래어의 발음을 한글로 옮기어 사용하다보니 원어와 상이하게 달라진 점도 있지만은

         

        이 신묘장구 다라니의 깊교 묘한 뜻이 담긴 것을 주력 기도 하여 성취하신 무수한 예가 오늘날에도 해석을 하지 않고

        삼매메 들다 보면은 다라니의 뜻을 통하여 불망염지의  불지혜를 얻는 힘이 있는 다라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본래의 깊은 뜻을 해석으로 불가능한 겉핥기식 밖게 안되는 한글 번역은 대충 그렇다는

        참고로만 보시고 기도나 주력을 하실때에는 일체의 반딧불같은 해석의 의미는 두지를 않고

        기도나 주력하는 자체에 임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성불하십시요_()_

     

     

     

     
     

     

     
    출처 : 無 淸
    글쓴이 : 法住 원글보기
    메모 :

    * 능엄경에 나오는 진언으로서 위대한 부처님의 정수리에서 뻗어나온 광명 속의 화신불께서

       설하신 신비한 진언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
    01> 스타타 가토스니삼 시타타 파트람 아파라지탐 프라튱기람 다라니
    02> 나맣 사르바 붇다보디사트베뱧

    03> 나모 샴타남 사먁삼붇다 코티남 사스라바카삼가남
    04> 나모 로케아르한타남
    05> 나모 스로타판나남

    06> 나모 스크르타가미남
    07> 나모 아나가미남
    08> 나모 로케사먁가타남 사먁프라티판나남
    09> 나모 라트나 트라야야
    10> 나모 바가바테 드르다수라세나 프라하라나라자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11> 나모 바가바테 아미타바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12> 나모 바가바테 악소뱌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13> 나모 바가바테 바이사이쟈구루 바이투랴 프라바라자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14> 나모 바가바테 삼푸스피타사 렌드라라자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15> 나모 바가바테 사캬무나예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삼붇다야
    16> 나모 바가바테 라트나쿠수마 케투라자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17> 나모 바가바테 타타가타쿠라야

    18> 나모 바가바테 파드마쿠라야
    19> 나모 바가바테 바즈라쿠라야
    20> 나모 바가바테 마니쿠라야
    21> 나모 바가바테 가르자쿠라야
    22> 나모 데바르시남
    23> 나모 싣다 비댜 다라남
    24> 나모 싣다비댜다라르시남 사파누그라하 사마르타남
    25> 나모 브라흐마네
    26> 나모 인드라야
    27> 나모 바가바테 루드라야 우마파티사헤야야
    28> 나모 나라야나야 락삼미사헤야야 팜차마하무드라 나마 스크르타야
    29> 나모 마하카라야 트리푸라나가라 비드라파나카라야 아디묵토카스마사나바시니

          마트르가나
    30> 나맣 스크르타야 에뵤 나맣 스크르트바 이맘

    31> 바가바타 스타타가토스니삼 시타타파트람 나마 파라지타 프라튱기람

    32> 사르바데바 나마 스크르탐
    33> 사르바데베뱧 푸지탐
    34> 사르바데베스차 파리파리탐
    35> 사르바부타그라하 니그라하카림 파라비댜체다나카림 두남타남 사트바남 다마캄

          두스타남 니바라님 아카라므르튜 프라사마나카림
    36> 사르바반다 나목사나카림
    37> 사르바두스타 두스바프나니바라님 차투라시티남 그라하사하스라남 비드밤사나카림 
    아스타빔사티남 낰사트라남 프라사다나카림 아스타남 마하그라하남 비드밤사나카림
    38> 사르바 사트루니바라님 구람 두스바프나남차나사님  비사사스트라 아그니
    우다카우트라님 아파라지타구라
    39> 마하 찬남
    40> 마하 디프탐

    41> 마하 테잠
    42> 마하 스베탐 즈바라
    43> 마하 바라 스리야판다라바시님 아랴타라 브르쿠팀체바잠
    44> 바즈라 마레티 비스루탐 파드마크맘
    45> 바즈라 지흐바차 마라체바파라지타
    46> 바즈라 단디 비사라차 산타바이데하푸지타 사이미루파 마하스베타 아랴타라

          마하바라아파라
    47> 바즈라 상카라체바 바즈라코마리 쿠란다리
    48> 바즈라하스타차 마하비댜 타타캄차나마리카 쿠숨바라타나 체바 바이로차나

          쿠다르토스니사 비즈름바마나차
    49> 바즈라 카나카 프라바로차나
    50> 바즈라 툰디차 스베타차카마락사 사시프라바

    51> 이톄테 무드라가나 사르베락삼 쿠르반투 마마샤


    52> 옴 리시가나 프라사스타 타타가토스니사
    53> 훔브룸 잠바나
    54> 훔브룸 스탐바나
    55> 훔브룸 보하나
    56> 훔브룸 마타나
    57> 훔브룸 파라비댜삼먁사나카라
    58> 훔브룸 사르바두스타남 스탐바나카라
    59> 훔브룸 사르바약사 락사사그라하남 비드밤사나카라
    60> 훔브룸 차투라시티남 그라하사하스라남 비나사나카라

    61> 훔브룸 아스타빔사티남 낙사트라남 프라사다나카라
    62> 훔브룸 아스타남 마하그라하남 비드밤사나카라
    63> 락사락사 맘 바가밤 스타타가토스니사
    64> 마하프라튱기레
     

    65> 마하사하스라부제 사하스라시르사이 코티사타사하스라 네트레아벰댜

          즈바리타나타나카
    66> 마하바즈로다라 트르부바나 만다라 옴 스바스티르바바투 마마


    67> 라자바야 초라 바야 아그니 바야 우다카 바야
    68> 비사바야  사스트라 바야  파라차크라 바야  두르빅사바야
    69> 아사니바야  아카라므르튜바야  다라니부미캄파바야  우르카파타바야
    70> 라자단다바야  나가바야  비듀바야 수프라니바야

    71> 약사그라하  락사사그라하  프레타그라하  피사차그라하
    72> 부타그라하 쿰반다그라하 푸타나그라하 카타푸타나그라하
    73> 스칸다그라하 아파스마라그라하 운마다그라하  차야그라하  레바티그라하
    74> 우자하리냐 가르바하리냐  자타하리냐  지비타하리냐
    75> 루디라하리냐  바사하리냐 맘사하리냐  메다하리냐

    76> 마자하리냐  반타하리냐  아수챠하리냐  치차하리냐

    77> 테삼사르베삼 사르바그라하남 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78> 파리브라자카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79> 다카다키니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80> 마하파수파티 루드라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81> 타트바가루다사헤야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82> 마하카라마트르가나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83> 카파리카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84> 자야카라마두카라 사르바르타 사다나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85> 차투르바기니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86> 브름기리티카 난디케스바라 가나파티사헤야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87> 나그나스라마나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88> 아르한타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89> 비타라가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90> 바즈라파니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91> 브라흐마크르탐 루드라크르탐 나라야나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92> 바즈라파니 구햐카디파티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93> 락사락사 맘


    94> 바가밤 시타타파트라 나모스투테
    95> 아시타나라르카 프라바스푸타 비카시타타파트레
    96> 즈바라즈바라 다카다카 비다카비다카 다라다라
    97> 비다라비다라 친다친다 빈다빈다
    98> 훔훔 파트파트 스바하
    99> 헤헤 파트 아모가야 파트  아프라티하타야 파트
    100> 바라프라다야 파트  아수라비드라파카야 파트
     
    101> 사르바 데베뱧 파트  사르바 나게뱧 파트
    102> 사르바 약세뱧 파트  사르바 락사세뱧 파트
    103> 사르바 가루데뱧 파트 사르바 간다르베뱧 파트
    104> 사르바 아수레뱧 파트  사르바 킨다레뱧 파트
    105> 사르바 마호라게뱧 파트  사르바 부테뱧 파트
    106> 사르바 피사체뱧 파트  사르바 쿰반데뱧 파트

    107> 사르바 푸타네뱧 파트  사르바 카타푸타네뱧 파트
    108> 사르바 두르람기테뱧  파트  사르바 두스프타시테뱧 파트
    109> 사르바 즈바레뱧 파트 사르바 아파스마레뱧 파트
    110> 사르바 스라마네뱧 파트 사르바 티르티케뱧 파트
    111> 사르바 운맘데뱧 파트 사르바 비댜차례뱧 파트
    112> 자야카라마두카라 사르바르타 사다케뵤 비댜차례뱧 파트
    113> 차투르바기니뱧 파트 
    114> 바즈라 코마리 쿠란다리 비댜라제뱧 파트
    115> 마하프라 튱기레뱧 파트
    116> 바즈라상카라야 프라튱기라라자야 파트
    117> 마하카라야 마트르가나 나마스크르타야 파트
    118> 인드라야 파트  브라흐미니예 파트
    119> 루드라야 파트  비스나비예 파트
    120> 비스네비예 파트  브라흐미예 파트
    121> 아그니예 파트 마하카리예 파트
    122> 로드리예 파트 카라단디예 파트
    123> 아인드리예 파트  마트리예 파트
    124> 차문디예 파트 카라라트리예 파트
    125> 카파리예 파트 아디묵토카스마사나 바시니예 파트
    126> 예케칠타 사트바 마마


    127> 두스타칠타  파파칠타  로드라칠타
    비드바이사칠타 아마이트라칠타
    128> 우트파다얀티 키라얀티  만트라얀티 자판티 조한티
    129> 우자하라 가르바하라 루디라 하라
    130> 맘사하라 메다하라 마자하라 바사하라
    131> 자타하라 지비타하라 마랴하라 바랴하라
    132> 간다하라 푸스파하라 파라하라 사샤하라
    133> 파파칠타 두스타데타
    134> 데바그라하 나가그라하
    135> 약사그라하 락사사그라하  아수라그라하  가루나그라하
    136> 킨다라그라하  마호라가그라하  프레타그라하  피사차그라하
    138> 부타그라하 푸타나그라하 카타푸타나그라하  쿰반다그라하
    139> 스칸다그라하 운마다그라하 차야그라하 아파스마라그라하
    140> 다카다키니그라하 레바티그라하 자미카그라하 사쿠니그라하
    141> 난디카그라하 람비카그라하  칸타파니그라하
    142> 즈바라 에카히카 드바이티야카 트레티야카 차투르타카
    143> 니탸즈바라 비사마즈바라  바티카 파이티카 스레스미카 산디파티카
    144> 사르바즈바라 시로르티 아르다바베다카 아로차카
    145> 악시로감  무카로감 흐르드로감
    146> 카르나수람  단다수람 흐르다야수람
    147> 마르마수람  파라스바수람  프르스타수람
    148> 우다라수람 카티수람  바스티수람
    149> 우루수람  잠가수람  하스타수람
    150> 파다수람  사르방가프라튱가수람
    151> 부타베타다 다카다키니
    152> 즈바라다드루칸듀키티 바로타바이 사르파로하링가 소사트라사가라
    153> 비사요가 아그니 우다카 마라베라 칸타라
    154> 아카라므르튜 트라이무카 트라이라타카 브르스치카 사르파나쿠라
    155> 심하 뱌그라릭사  타라릭사 차마라지비베
    156> 테삼사르베삼 시타타파트라 마하바즈로오스니삼 마하프라튱기람
    157> 야바드바 다사요자나 뱐타레나
    158> 사마반담카로미
    159> 디사반담카로미
    160> 파라비댜반담카로미

    161> 테조반담카로미
    162> 하스타반담카로미
    163> 파다반담카로미
    164> 사르방가프라튱가 반담카로미
    165> 타댜타 옴 아나레 아나레 비사다비사다 반다반다 반다니반다니
    166> 바이라바즈라파니 파트 훔브룸 파트 스바하
    167> 나모스타타가타야  수가타야르하테 사먁삼붇다야 시댬투 반트라파다 스바하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

     

    第 1 會 : 毘 盧 眞 法 會 

    1.스타타 가토스니삼 시타타 파트람 아파라지탐 프라튱기람 다라니
       大佛頂 如來 白傘蓋 아래 능히 미치는 자가없는 完全調伏하는 最强調伏 陀羅尼 

       (眞言입니다) 

     

    2.나맣 사르바 붇다 보디샤트베뱧
       一切의 佛(부처님),佛菩薩에게 歸依합니다. 

     

    3.나모  샴타남 사먁삼붇다 코티남 사스라바카삼가남
       칠구지에 이르는 正眞正覺과 聲聞,僧家들에게 歸命합니다. 

     

    4.나모 로케 아르한타남
       世間에 있는 阿羅漢들에게 歸命합니다 

     

    5.나모 스로타판나남
       모든 預流果에게 歸命합니다. 

     

    6.나모 스크르타가미남
       모든 一來果에게 歸命합니다. 

     

    7.나모 아나가미남
       모든 不還果에게 歸命합니다.  

     

    8. 나모 로케사먁가타남 사먁프라티판나남
       世間에서 바르게 聖果로 걸어가고 있는 四果 수행자와 四向의 여러 수행자 분들에게

       歸命합니다. 

     

    9.나모 라트나 트라야야
       三寶(불,법,승)에게 歸命합니다. 

     

    10.나모 바가바테 드르다수라세나 프라하라나라자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堅固하고 勇猛한 군사들을(大黑天三宮城)擊破하신王, 如來,應供이신 世尊의 正眞正覺
    에게 歸命합니다. 

     

    11.나모 바가바테 아미타바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아미타불의 如來, 應供이신 世尊의 正眞正覺에게 歸命합니다. 

     

    12.나모 바가바테 악소뱌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世尊 이신(아크쇼바야)와 應供이신  正眞正覺에게 歸命합니다 

     

    13.나모 바가바테 바이사이쟈구루 바이투랴 프라바라자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세존이신 藥師琉璃왕,光王 如來, 應供이신 世尊의 正眞正覺에게 歸命

        합니다.  

     

    14.나모 바가바테 삼푸스피타사 렌드라라자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세존이신 開敷華王(삼푸슈피타), 沙羅樹王(사라수왕), 如來, 應供이신 如來와 應供이신 
    正眞正覺에게 歸命합니다 

     

    15.나모 바가바테 사캬무나예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세존이신 釋迦牟尼如來와, 應供이신 正眞正覺에게 歸命합니다  

     

    16.나모 바가바테 라트나쿠수마 케투라자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사먁삼붇다야
        世尊이신 寶花撞王(보화당왕)如來와 應供이신 正眞正覺에게 歸命합니다 

     

    17.나모 바가바테 타타가타 쿠라야
        世尊의 如來部에 歸命합니다.  

     

    18.나모 바가바테 파드마 쿠라야
        世尊의 蓮花部에 歸命합니다. 

     

    19.나모 바가바테 바즈라 쿠라야
        世尊의 金剛部에 歸命합니다. 

     

    20.나모 바가바테 마니 쿠라야
        世尊의 如意寶部에 歸命합니다. 

     

    21.나모 바가바테 가르자 쿠라야
        世尊의 白象部에 歸命합니다. 

     

    22.나모 데바르시남
        一切의 天神과 聖神들에게 歸命합니다. 

     

    23.나모 싣다 비댜 다라남
        明呪를 成就하여 神通力을 지닌 이들에게 歸命합니다. 

     

    24.나모 싣다비댜다라르시남
        明呪를 成就하여 神通力을 지닌 모든 天, 神, 仙에게 歸命합니다. 

     

    25.사파누그라하 사마르타남
        明呪를 지니고 두루 이익을 攝受하시는 대중들에게 歸命합니다. 

     

    26.나모 브라흐마네 나모 인드라야
        梵天과 인드라신(帝釋天)에게 歸命합니다. 

     

    27.나모 바가바테 루드라야 우마파티사헤야야
        세존이신 루드라神과 우마파티神과 그 眷屬에게 歸命합니다. 

     

    28.나모 나라 야나야  락삼미사헤야야 팜차마하무드라
        세존이신 나라야나(비시누)神衆과 五大印(팜차마하삼무드라)에게 歸命합니다. 

     

    29.나마 스크르타야
        頂禮하고 歸命합니다. 

     

    30.나모 마하카라야 트리푸라나가라 비드라파나카라야 아디묵토카 스마사나바시니 마르트가나 

       大黑天神의 三宮城(天,空,地)을 破壞(파괴)한 아디묵티카神의 묘소에서 즐겨살고 있는 성스러운 마트리神衆에게 歸命합니다.      

     

    31.나맣 스크르타야
        頂禮하고 祈願합니다. 

     

    32.에뵤 나맣 스크르트바 이맘
        위와같이 거룩한 분들에게 頂禮하고 歸命합니다. 

     

    33.바가바타 스타타가토스니삼 시타타파트람 나마 파라지타 프라튱기람
        이 거룩한 如來佛頂, 白傘蓋呪과 모든것을 다 完全調伏시키는 呪文에게 歸命합니다. 

     

    34.사르바데바 나마 스크르탐
        一切의 天,神,仙에게 頂禮하고 歸命합니다. 

     

    35.사르바 데베뱧 푸지탐 사르바 데베스차 파리파리탐 사르바 부타그라하 니그라하카림 

        一切의 天,神,仙에게 供養드리며, 一切의 천녀를 계호하는 諸天部의 一切의 많은 鬼神을 完全調伏하노라! 

     

    36.파라비댜체다나카림
        다른 모든신의 '呪'를 絶斷하노라! 

     

    37.두남타남 사트바남 다마캄 두스타남 니바라님
        결호되어 항복받기 어려운 '濟衆生'을 항복받는 모든 악한자들의 '呪'를 차단하노라! 

     

    38.아카라므르튜 프라사마나카림
        때아닌 죽음의 액(변사,횡사)를 능히 制度 하시는 분입니다 

     

    39,사르바 반다 나목사나카림
        一切衆生의 繫縛(계박)을 능히 解脫케  하시는 분입니다. 

     

    40.사르바 두스타 두스바프나니바라님
         一切의 惡夢과 不信을 능히 없애는  분입니다. 

     

    41.차투라시티남 그라하사하스라남 비드밤사나카림
        八萬四阡의 邪*魔들을 破滅시킨는 분입니다. 

     

    42.아스타빔사티남 낰사트라남 프라사다나카림
         二十八가지의 星宿들을 청정히 바로 잡는 분입니다. 

     

    43.아스타남 마하그라하남 비드밤사나카림
        여덟 가지의  大惡星들을 破滅시키는 분입니다. 

     

    44.사르바 사트루니바라님
        一切의 怨敵을  이기는 분입니다. 

     

    45.구람 두스바프 나남차나사님
        또한 무서운 惡夢등을 消滅는 분입니다. 

     

    46.비사사스트라 아그니 우다카우트라님 아파라지타구라
         毒藥과 檢의 재앙과 火의 재앙, 水의 재앙으로부터  구제하시는 분입니다.

         불패의 구라女神

     

     47.마하 찬남 마하 디프탐 마하 테잠
         大力의 찬다神과 大火炎의 女神과 大威德光의 女神과 

     

    48.마하 스베탐 즈바라  마하 바라 스리야판다라바시님 아랴타라 브르쿠팀체바잠
         大天女의 炎光神과 大力白衣女神과 賢度天女神과 瞋女神과 

     

    49.바즈라 마레티 비스루탐 파드마크맘
         最勝女神과 마라티 꽃을 가진 金剛母神과 유명한 연꽃에 앉은 여신과 

     

    50.바즈라 지흐바차 마라체바파라지타

        또한 金剛舌女神과   꽃다발을 가진 不敗의 女神과  金剛杵女神과 

     

    51.바즈라 단디 비사라차 산타바이데하푸지타 사이미루파 마하스베타 아랴타라

         마하바라라  아파라 또한 위대하며 아름다운  神들로부터 공양받는 여신과 뛰어난

         주술자의 모습을 한 太白女神

     

     52.바즈라 상카라체바 바즈라코마리 쿠란다리
         賢度天女神과 大力女神과 金剛銷女神과 金剛童女神과 侍女神과 

     

    53.바즈라하스타차 마하비댜 타타캄차나마리카

        또한 金剛手女神과 明呪女神과 金髮女神과 

     

    54.쿠숨바라타나체바 바이로차나 쿠다르토스니사 비즈름바마나차

        황금의 보물을 가진 女神과 두루 비치는 역량의 佛頂女神과  開口女神과 

     

    55.바즈라 카나카 프라바로차나 바즈라 툰디차 스베타차카마락사 사시프라바

        인드라신의 무기인 번개와 같고 황금 빛이 나는 (바쥬라 카나카 프라바) 눈이며

    金취여 인신과 힌 연꽃같은 눈을 가진 女神과 빛나는 눈을 가진 月光女神과 

     

    56.이톄테 무드라가나 사르베락삼 쿠르반투 마마샤
        위와같이 一切의 諸印을 보이는 諸尊들이여! 나를 위하여 守護를 베푸소서! 守護하소서! 

     

    第 2 會: 釋 尊 應 化 會 

    57.옴 리시가나 프라사스타 타타가토스니사
        祈願합니다! 天, 神, 仙들에게 참미된 大如來佛頂이시여!!

     

    58.훔브룸 잠바나, 훔브룸 스탐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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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컨데 吉相이 있으소서! 나에게 이와같이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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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히 尊敬하는 8만4천의 사특한 마구니의 귀신들을 破滅하신분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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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히 尊敬하는 8大惡星을 破壞하신 분이시여!

     

    66.락사락사  맘
        이렇게 지극한 마음으로 존경하고 있는 저를 守護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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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如來彿頂으로써 惡呪를 조복케 하시는 世尊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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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하늘 에 있는 手女神이여! 手頭女神이여! 일조(一兆)의 눈을 가진 여신이여!

     

    69.아벰댜 즈바리타나타나카 마하바즈로다라 트르부바나 만다라

        화염처럼 무명을 비추며 춤추는 여신이여! 대금강저를 지닌 여신이여! 삼계의 만달라를 지배하는 여신이여!

     

    70.옴 스바스티르바바투 마마
        원컨데 吉相이 있으소서! 나에게 이와같이 나에게!
      

     

    第 3 會: 觀 音 合 同 會  

    71.라자 바야, 초라 바야, 아그니 바야, 우다카 바야
        王의 재앙, 도적의 재앙,  火의 재앙, 水의 재앙,

     

    72.비사 바야, 사스트라 바야, 파라차크라 바야, 두르?사바야
        毒의 재앙, 武器의 재앙,적병의 재앙, 기근의 재앙

     

    73.아사니 바야, 아카라므르튜 바야, 다라니부미캄파 바야
        벼락의 재앙, 횡사의 재앙, 지진의 재앙

     

    74.우르카파타 바야, 라자단다 바야, 나가 바야 ,비듀 바야
        유성의 재앙, 刑罰의 재앙, 뱀의 재앙,우뢰와 번개의 재앙

     

    75.수프라니 바야  약사그라하  락사사그라하, 프레타그라하
        독수리의 재앙, 야차귀의 재앙, 나찰귀의 재앙,아귀의 재앙

     

    76.피사차그라하,부타그라하,쿰반다그라하,푸타나그라하
        시체만 먹는 귀신을 만나 재앙과 정령마의 재앙, 수궁부년귀의 재앙,취귀의 재앙

     

    77.카타푸타나 그라하 스칸다그라하,아파스마라그라하
        기취마의 재앙, 어린이를 병들게하는 마를 만나는 재앙, 양머리귀신의 재앙

     

    78.운마다그라하, 차야그라하, 레바티그라하
        狂病魔의 재앙, 사악한 영귀의 재앙,여도깨비의 재앙

     

    79.우자하리냐,가르바하리냐, 자타하리냐, 지비타하리냐
         精氣를 먹는 鬼女, 胎兒 먹은 鬼女, 生兒를 먹는 鬼女, 壽命 먹는 鬼女

     

    80.루디라 하리냐, 바사 하리냐 맘사 하리냐, 메다 하리냐
         피먹는 鬼女, 목숨을  잡아 먹는 鬼女, 살을 먹는 鬼女, 손가락을 잘라 먹는 鬼女

     

    81.마자하리냐, 반타하리냐, 아수챠하리냐, 치차하리냐
        骨髓 먹는 鬼女, 토물을 먹는 鬼女, 不淨物을 먹는鬼女, 心을 먹는 鬼女

     

    82.테삼사르베삼 사르바그라하남, 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위와같은  一切의 재앙을 일으키는 一切의 魔鬼神들의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한다, 나는 
    지금 묶어 놓겠노라!

     

    83.파리브라자카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리야미
        외도들이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묶어 놓겠노라!

     

    84.다카다키니 크르탐비담  친다야미 키라야미
        다키니 女鬼가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나는 지금禁止하노라!

     

    85.마하파수파티 루드라 크르탐비담 친다야미 키라야미
        큰 짐승의 주인인 루드라신이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묶어 놓겠노라!

     

    86.타트바가루다사헤야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金시조왕과  그 권속들이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나는 지금禁止하노라!

     

    87.마하카라 마트르가나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대흑천신과 그 부인들이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切斷하노라, 나는 지금禁止하노라!

     

    88.카파리카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촉루외도들이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나는 지금禁止하노라!

     

    89.자야카라마두카라 사르바르타 사다나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승리한 자, 꿀을 만드는 자등  一切의 이익을 成就하고자 하는 자가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나는 지금 禁止하노라!

     

    90.차투르바기니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네 자매女神이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나는 지금 禁止하노라!

     

    91.브름기리티카 난디케스바라 가나파티사헤야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투전외도,공작왕,歡喜王과  그 권속이 행하는 주문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나는

    지금 禁止하노라!

     

    92.나그나스라마나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裸形외도가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나는 지금 禁止하노라!

     

    93.아르한타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阿羅漢들이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나는 지금 禁止하노라!

     

    94.비타라가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離欲者들이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나는 지금 禁止하노라!

     

    95.바즈라파니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金剛手가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나는 지금 禁止하노라!

     

    96.브라흐마크르탐 루드라크르탐 나라야나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梵天 주장이 행하는, 自在天 主장이 행하는 ,那羅延天 주장이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나는 지금 禁止하노라!

     

    97.바즈라파니 구햐카디파티 크르탐비댬 친다야미 키라야미
        金鋼手의 秘密주관이 행하는 呪文을 나는 지금 切斷하노라, 나는 지금 禁止하노라!

     

    98. 락사락사 맘
        거룩하신 世尊께서 나를 위하여 守護하소서! 守護하소서!

     

    第 4 會 : 剛 藏 折 攝 會  

    99.바가밤 시타타파트라 나모 스투테
         世尊이시여! 白傘蓋 女神이시여! 頂禮하고 歸命합니다.

     

    100.아시타나라르카 프라바스푸타 비카시타타파트레
          흰 불빛과 같이 빛나는 활짝핀 白傘蓋  女神이시여!

     

    101.즈바라즈바라 다카다카 비다카비다카 다라다라
          放光 放光, 威光 威光, 遍위광 遍위광, 紛碎 紛碎

     

    102.비다라비다라 친다친다 빈다빈다
          破裂 破裂, 切斷 切斷, 뚫는다  뚫는다.

     

    103.훔훔 파트파트 스바하, 헤헤 파트
          거룩하고 신비한 힘으로 저들을 물리쳐 주옵소서! 오직 다음의 주문들 까지도!

     

    104.아모가야파트,아프라티하타야파트

          不空者의 주문과 무애자의 주문과

     

    105.바라프라다야 파트 아수라 비드라파카야 파트
          은혜를 베푸는 자의 주문과 아수라를 물리치는 자의 주문과

     

    106.사르바 데베뱧 파트 사르바 나게뱧 파트
          一切 天神들의 주문, 一切 용신들의  주문

     

    107.사르바 약세뱧 파트 사르바 락사세뱧 파트
          一切 野叉神들의  주문,  一切 羅刹神들의  주문

     

    108.사르바 가루데뱧 파트 사르바 간다르베뱧 파트
          一切의 금시조신들의  주문,  一切 音樂神들의  주문

     

    109.사르바 아수레? 파트 사르바 킨다레? 파트
          一切  阿修羅神들의  주문,  一切  긴다라신들의  주문

     

    110.사르바 마호라게뱧 파트 사르바 부테뱧 파트
          一切  마후라신들의  주문, 一切  정령마들의 주문

     

    111.사르바 피사체뱧 파트 사르바 쿰반데뱧 파트
          一切 치신들의  주문, 一切 수궁부녀귀의 주문 

     

    112.사르바 푸타네뱧 파트 사르바 카타푸타네뱧 파트
          一切  취귀들의  주문, 一切 奇息鬼들의 주문

     

    113.사르바 두르람기테뱧 파트 사르바 두스프타시테뱧 파트
          一切 재앙을 지나가게하는 神들의  주문, 一切  추악한 재앙을 일으키는 모든 신들의 
    주문

     

    114.사르바 즈바레뱧 파트 사르바 아파스마레뱧 파트
          一切  熱病鬼들의  주문, 一切  양두여우鬼의  주문

     

    115.사르바 스라마네뱧 파트 사르바 티르티케뱧 파트
          一切  聲聞들의  주문, 一切 外道士들의  주문

     

    116.사르바 운맘데뱧 파트 사르바 비댜차례뱧 파트
          一切 狂亂鬼(광란귀)들의  주문, 一切  明呪를 가진들의  주문

     

    117.자야카라마두카라 사르바르타 사다케뵤 비댜차례뱧 파트
          승리한 자와 꿀을 만드는 자와 더 나아가 모든 이익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들의 주문

     

    118.차투르바기니뱧 파트
          네 자매 여신들의 주문

     

    119.바즈라 코마리 쿠란다리 비댜라제뱧 파트
          金剛童子와 지성녀과  名呪女王神의 주문

     

    120.마하프라 튱기레뱧 파트

          크게 調伏한 女神과 그 권속들의 주문

     

    121.바즈라상카라야 프라튱기라라자야 파트
          金剛連鎖調伏王(금강연쇄조복왕)의  주문

     

    122.마하카라야 마트르가나 나마스크르타야 파트
          大黑天神의 주문과  大聖母의 주문과 예배받는 자의 주문

     

    123.인드라야 파트, 브라흐미니예 파트
          帝釋天神의 주문과  梵天神의  주문

     

    124.루드라야 파트, 비스나비예 파트
          自在天神의  주문과  비슈누신의  주문

     

    125.비스네비예 파트, 브라흐미예 파트
          비주천신의  주문과 梵天의  주문

     

    126.아그니예 파트 마하카리예 파트
          火神의 주문 과 大黑天女神의  주문

     

    127.로드리예 파트, 카라단디예 파트
          自在天神의 주문과  죽음의 신의 주문

     

    128. 아인드리예 파트, 마트리예 파트
           大在天神의 주문과  마트리(聖母)신의 주문

     

    129.차문디예 파트, 카라라트리예 파트
          차문다신의 주문과  黑夜神의  주문

     

    130.카파리예 파트,아디묵토카스마사나 바시니예 파트
          觸縷神의 주문 기쁘게 아디무크타카의 묘지에 머무는 시바신의 주문

     

    131,예케칠타 사트바 마마
          이들 어떤 呪文라도 모두 破滅시킬 수 있는 힘으로 衆生인 나를 守護하소서!  

     

    第 5 會 :文 殊 弘 傳 會 

    132.두스타칠타, 파파칠타, 로드라칠타, 비드바이사칠타, 아마이트라칠타
           惡心, 罪惡心,暴惡心, 진애심, 無慈悲心을  지니고  있는

     

    133.우트파다얀티, 키라얀티, 만트라얀티, 자판티 조한티
          食精鬼, 食色鬼, 食顔鬼, 食氣鬼

     

    134.우자 하라, 가르바 하라, 루디라 하라
           食靈鬼, 食生鬼,食胎鬼, 食血鬼

     

    135.맘사 하라, 메다 하라, 마자 하라, 바사 하라
          食肉鬼, 食脂鬼, 食骨髓鬼, 食産鬼

     

    136.자타 하라, 지비타 하라, 마랴 하라, 바랴 하라
           食生兒鬼, 食壽命鬼, 食 鬼, 食供物鬼

     

    137.간다 하라, 푸스파 하라, 파라 하라, 사샤 하라
          食香鬼, 食花鬼, 食果實鬼,食穀物鬼 등의 재앙

     

    138.파파칠타, 두스타데타, 데바그라하, 나가그라하
          罪惡心이 있고,  惡心이 있고, 暴惡心이 있는 천신의 재앙,용신의 재앙

     

    139.약사그라하, 락사사그라하, 아수라그라하, 가루나그라하
          야차신의 재앙과 나찰신의 재앙과 아수라신의  재앙과 금시조신의 재앙

     

    140.킨다라그라하, 마호라가그라하, 프레타그라하, 피사차그라하
          긴다라신의 재앙과  마후라카신의 재앙과 아귀신의 재앙

     

    141.부타그라하, 푸타나그라하, 카타푸타나그라하, 쿰반다그라하
          정령귀의 재앙과 취귀의 재앙과 奇臭鬼의  재앙과 여자(宮女)만 따라다니는 귀신의

          재앙

     

    142.스칸다그라하, 운마다그라하, 차야그라하, 아파스마라그라하
          어린이를 병들게 하는 귀신의 재앙과 狂病魔의 재앙과 影鬼의  재앙과 羊頭形

          여우귀신의  재앙

     

    143.다카다키니그라하, 레바티그라하, 자미카그라하, 사쿠니그라하
          壓蠱女鬼의 재앙과 女魅의 재앙과 독수리 모양의 귀신의 재앙과 말모양을 한 귀신의 
    재앙

     

    144.난디카그라하, 람비카그라하, 칸타파니그라하
          주문을 지니기를 기뻐하는 귀신의 재앙 뱀의 모양을 한 귀신의 재앙과 닭모양을 한

          귀신의 재앙

     

    145.즈바라 에카히카 드바이티야카 트레티야카
          열학질귀의 1일1발열과  이틀째 발학과  사흘째 발학

     

    146.차투르타카 니탸즈바라 비사마즈바라 바티카
          나흘째 발학과 계속되는 의식불명의 높은 학질열과 풍병과

     

    147.파이티카 스레스미카 산디파티카
          沮汁質의 황달병과 염창병과 이질병

     

    148.사르바즈바라 시로르티 아르다바베다카
          一切의 열병과 頭痛, 偏頭痛, 굶고도 먹지못하는炳

     

    149.아로차카 악시로감, 무카 로감
          眼疾, 입병, 목병, 인후병

     

    150.흐르드 로감, 카르나 수람, 단다 수람, 흐르다야 수람
          귀병과 齒痛과 心痛과

     

    151.마르마 수람, 파라스바 수람, 프르스타 수람, 우다라 수람
          관절통과 늑막염과 척추통과 복통과

     

    152.카티 수람, 바스티 수람, 우루 수람, 잠가 수람
          요통과  방광통과  대퇴통과  완통과

     

    153.하스타 수람, 파다 수람, 사르방가프라튱가 수람
          수통과 족통과 一切의 지절통과

     

    154.부타베타다 다카다키니
          起死鬼과 壓蠱女鬼에 의한 열병이나

     

    155.즈바라다드루칸듀키티 바로타바이 사르파로하링가 소사트라사가라
          거미 등과 같은 곤충에 의해 피부에 계속 퍼지는 적반창이나 음식독에 의한 乾枯病

    이나

     

    156.비사요가 아그니 우다카 마라베라 칸타라
          독이 있는 火神이나 水神, 용맹스러운 짐승 모양의 신과

     

    157.아카라므르튜 트라이무카 트라이라타카 브르스치카 사르파나쿠라 심하 뱌그라

           릭사 타라릭사 차마라지비베 횡사를 가져오는 벌과 말등에, 전갈, 뱀, 사자, 호랑이

           곰, 말곰, 마갈어등의 모든 재앙들을       

     

    158.테삼사르베삼  시타타파트라  마하바즈로오스니삼  마하프라튱기람
          위와 같은 一切의 모든재앙을 白傘蓋인 大金剛佛頂의 大調伏으로 자연 퇴멸 시키고

     

    159.야바드바 다사요자나 뱐타레나 사마 반담 카로미, 디사 반담 카로미
          적어도 12유순 안에서 행하는 그 주문들을 나는 결박하고, 도량을 지키겠노라!

     

    160.파리비댜 반담 카로미

          그리고 다른 명주들도 나는 결박하여 도량을 지키겠노라!

     

    161.테조 반담 카로미
          광취로서 그것들을 결박하고 도량을 지키겠노라!

     

    162.하스타 반담 카로미 파다 반담 카로미 

          타주을 행하는 손을 결박하고, 타주을 행하는 다리를 결박하고

     

    163.사르방가프라튱가 반담 카로미
          타주를 행함이 一切가 저절로 결박되노라!!!

     

    164.타댜타
          즉설주왈

     

    165.옴 아나레 아나레  비사다비사다  반다반다  반다니반다니
          원합니다!  光明 光明, 광취 광취로서 용감한 금강저로서 타주를  주박 주박,

          계박 계박, 해주소서!

     

    166.바이라바즈라파니 파트
          勇敢한 金剛手의 명주를 파패케 해주심을 원하옵니다!

     

    167.훔브룸 파트 스바하
          尊敬받는 타주에 파패를 成就케 해주소서!

     

    168.나모 스타타가타야
          大如來에게 歸命합니다.

     

    169.수가타야르하테 사?삼붇다야 시?투 반트라파다 스바하
          선호 應共의 正眞정각을 成就토록 해주심을 나는 믿어 구합니다.

     

     

     

    廻   向   偈  

    上 來 現 前 淸 淨 衆    諷 誦 능 엄 秘 密 呪 

    廻 向 三 寶 衆 龍 天    守 護 伽 藍 諸 星 衆 

    三 途 八 難 俱 離 苦    四 恩 三 有 盡 첨 恩 

    國 界 安 寧 兵 革 銷    風 調 雨 順 民 安 樂 

    大 衆 熏 修 希 勝 進    十 地 頓 超 無 難 事 

    三 門 淸 淨 絶 非 虞    檀 信 歸 依 增 福 慧 

    十 方 三 世 一 切 佛    諸 尊 菩 薩 摩 訶 薩 

    摩  訶  般  若  波  羅  密 (3번) 

                                                     법신 진언 

    옴  아비라  훔  캄  사바하

     


     

    성불하십시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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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無 淸
    글쓴이 : 法住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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