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청곡의 니캉내캉   녹림처사|작성시간23.03.24|조회수27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다는 뜻이지요 

중국 전한(前漢)의 원조(元祖)때의 일인데

왕소군(王昭君)에게는 봄은 봄이 아니었어요

 

한(漢)나라 원제(元帝BC74~BC33)는 색(色)을 밝힌 인물이었지요

장안(長安)의 미인이라는 미인은 모두 궁(宮)으로 불러들여 궁녀로 삼았어요

그렇게 들인 여인이 3000여명.

원제는 궁녀를 매일밤 바꿔 가며 밤을 보냈지요

고르는 것에 지친 그는 화공 모연수(毛延壽)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어요

그림을 보고 여인을 간택하기 위해서 였지요

이중에는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이름의 궁녀도 있었어요

절세 미인이 따로 없었지요

후대인들은 중국 전한(前漢) 시대 원제(元帝)의 궁녀였던 왕소군

춘추전국시대의 서시(西施),

삼국시대의 초선(貂蟬),

당나라의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중국 고대의 4대 미인이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왕소군은 이미 고령이 된 원제에게 눈에 띨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지요 

돈도 없었지만 자신의 미모에 자신만만했기 때문이었어요

괘씸하게 여긴 모연수는 왕소군을 가장 못나게 그려 바치고 말았지요

다른 궁녀들은 모연수에게 돈을 줘가며 잘 그려달라고 매달렸지만

왕소군은 그러지 않았어요

당연히 그림 속의 얼굴은 미인(美人)과는 거리가 먼 추녀(醜女)중에 추녀 였지요

어느날 북방의 흉노족 족장이 원제를 찾아와 한족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요구했어요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한(漢)나라 원제(元帝)는

흉노 왕에게 반반한 궁녀 하나를 주기로 약속했지요

누구를 보낼 것인가 생각하다가 원제는 궁녀들의 초상화집을 가져오게 해서 쭉 훑어봤어요

그 중 가장 못나게 그려진 왕소군을 찍었지요

 

몇일후 작별 인사 차 온 왕소군을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그림과는 달리 절세 미인이었던 때문이었지요

오랑캐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의 실물을 본 원제는 땅을 치고 후회했어요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지요

모연수의 비리 행각을 알게 된 원제는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잘랐어요

 

기원전 33년,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기 3년전

정략(政略)의 도구가 된 궁녀(宮女) 왕소군은

이렇게 흉노(匈奴)의 왕(王)에게 억지로 시집을 갔어요

 

이국 땅으로 떠나가는 날

왕소군은 고향 생각이 나 금(琴)을 연주했어요

아름다운 선율이었지요

한 무리 기러기가 날개짓을 잊고 그만 땅으로 고꾸라질 정도였어요

낙안(落雁)이란 떨어질 낙(落)자에 기러기 안(雁)자를 쓰는데

그래서 왕소군을 낙안(落雁)이라 칭하였지요


훗날 많은 화가들이 왕소군을 그렸고

시인들은 그의 애달픈 삶을 노래했지요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진 게 바로 당(唐)나라 측천무후의 좌사(左史)였던

동방규가 쓴 ‘소군원삼수(昭君怨三首)’이지요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어(胡地無花草)
봄이 왔으되 봄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
나도 모르게 옷 띠가 느슨해졌나니(自然衣帶緩)
몸이 약해진 때문만은 아니리니(非是爲腰身)

이 시에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다시말해 '춘래불사춘'은 중국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에서 유래한 말이지요

 

요즘 봄은 왔어도 봄같지가 않아요

시국 정세 또한 어수선 하기만 하지요

거기다가 하늘마져 중국발 미세먼지로 뿌였게 뒤덮혀 있으니

봄꽃일랑 제대로 피어 날런지 모르겠어요

모든것이 그저 답답하기만 하네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一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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