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인기인 ‘한국 투자이민제도’ 들여다보니
금융투자 이민, 70%가 중국인...전과만 없으면 가능
5억원이면 됐던 부동산투자 이민은 95% 중국인
입력 2023.06.09. 09:36업데이트 2023.06.09. 11:12
‘가장 쉽고 빠른 한국 이민, 아시아에서 가장 간단한 영주권, 예금만 하면 된다’
중국 현지 이민 중개업체의 홍보물 표지 문구다. 이 홍보물을 소개한 국내 유튜버 ‘영환이’는 “중국에서 요즘 ‘한국 적금 이민’이 엄청 뜨고 있다”며 “나는 ‘우리나라 영주권 취득이 이렇게 쉽다고?’ 하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실제로 이민 중개 업체들은 온라인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적금 이민’을 홍보하면서 ▷한국 건강보험 이용 ▷투자 원금 보장 ▷투자 후 거주 비자 발급, 5년 뒤 영주권 취득 ▷가족 초청 가능 ▷자격 심사 면제 ▷취업 가능 등을 혜택으로 내세우고 있다.
‘적금 이민’이란 정확하게 무엇일까. 이는 한국 정부가 운영 중인 ‘투자이민제’ 중 하나인 ‘공익사업 투자이민제’를 말한다. ‘공익사업 투자이민제’가 중국에서는 ‘금융상품에 5억원을 예치하면 된다’는 의미에서 ‘적금 이민’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적금이 아니라 정기 예금의 형식이다.
쉽게 말하면 한국 정부가 지정한 금융상품에 55세 미만은 5억원, 55세 이상은 3억원을 투자하면 거주 자격(F-2)이 부여되고, 5년 동안 거치하면 영주권(F-5)이 나온다. 한국 정부가 원금을 보장하고, 영주권 취득 후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한국 의료보험 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데, 범죄 기록만 없으면 학력과 언어도 무관하다. 심지어 배우자와 만 18세 미만 자녀가 있으면 자녀에게도 적용된다.
한국 투자이민제를 통해 지난 2018~2022년 국내 거주비자(F-2)나 영주권(F-5)을 받은 외국인의 85%가 중국인으로 파악됐다. 코로나 사태 이후 어려워진 중국 국내 상황과 한국의 쾌적한 생활 환경, 사회 안전망에 대한 수요 등이 겹친 현상이란 해석이다.
◇한국 투자이민제, 중국인이 85.3%
국외 자본 유치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2013년 5월 도입된 ‘투자이민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다.
투자이민제에는 ‘부동산 투자이민제’와 ‘공익사업 투자이민제’ 등 2가지 종류가 있다. 부동산의 경우 제주, 인천, 평창, 여수, 부산 등 국내 5개 지역 부동산 개발에 일정 금액 이상 투자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정부는 부동산이나 금융상품에 5억원 이상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국내 거주비자(F-2)를 발급하고 이후 5년이 지나면 영주권(F-5)을 부여해왔다. 영주권을 취득한 외국인은 내국인과 동일하게 공교육·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법무부는 지난달 부동산 투자이민제 투자금 하한액을 기존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상향했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투자이민제로 거주 비자나 영주권 등 체류 자격을 얻은 외국인은 총 4784명이다. 국적별로 보면 중국인이 4081명으로 85.3%에 달했다.
같은 기간 부동산 투자 이민제를 통해 체류 자격을 얻은 외국인(2985명) 가운데 중국인(2807명)이 94%였다. 거주 비자(F-2)를 발급받은 외국인(1187명) 중 중국인(1078명)이 90.8%를 차지했다. 영주권(F-5)을 취득한 이들(1798명) 중 중국인(1729명)이 96.2%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공익사업 투자 이민제(1799명)로 체류 자격을 얻은 경우 중국인(1274명)은 70.8%로 부동산 투자 이민제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거주 비자(1534명)는 중국인(1070명) 69.8%, 영주권(265명)은 중국인(204명) 77%로 나타났다.
실제 중국에서는 한국 투자 이민을 주선하는 전문 사업체가 성행한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국내에 중국 식당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 ”중국 국내 상황, 쾌적한 한국 생활 수요 등 겹쳐”
이처럼 한국 투자 이민제도가 중국인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과거에는 제주도가 국제 자유도시로 지정되며 중국인 유입을 끌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중국 국내 상황과 한국의 쾌적한 생활 환경과 사회 안전망에 대한 수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문제 전문가인 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코로나 사태 3년간 빈부격차도 커지고 민심이 흉흉해지는 등 중국 국내 상황이 굉장히 악화된 영향이 크다”며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농촌 지역은 사회 보장 정책도 제대로 돼있지 않은데,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임에도 외국인에게도 사회 안전망이 잘 되어 있고 거주 환경이 쾌적하고 혜택도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한국에 중국인 유학생이 엄청 늘었는데, 15년쯤 지난 현재 그들이 중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재산을 모아 한국에 정착하고 싶어한다. 또 과거처럼 젊은이들이 고향이나 자신의 뿌리에 집착하지 않는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중국의 국내 거주 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도 이탈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그 중에도 한국은 정서적 거리가 가깝고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어 중국인에게 매력적인 이민 국가라는 것이다.
◇법무부, 투자이민 제도 개선
그러나 체류상 혜택에 비해 투자 금액이 지나치게 낮다는 비판과 함께 부동산 투자이민제의 경우 대상 지역의 지가 상승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외 다른 국가들은 투자 이민의 투자 금액을 높였으며, 폐지하기도 하는 추세다. 실제로 유사한 투자 이민 비자를 발급하는 미국은 투자액으로 80만달러(약 10억원), 싱가포르는 250만 싱가포르달러(약 24억원)를 각각 요구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만 65세 이하, 최소 3년 이상의 사업 경력과 뉴질랜드 내 4년에 걸쳐 300만 뉴질랜드 달러 이상(약 24억원)을 투자한 자를 받고 있다. 호주 투자자 비자는 호주 내에서 지난 4년간 최소 250만 호주 달러(약 22억원)를 투자해야 한다. 캐나다는 현재 투자이민을 받지 않고 있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달 1일 부동산 투자이민제 운영 기간을 3년 연장하면서 투자 금액을 10억원으로 상향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4월 30일 종료된 제주, 인천 송도·영종·청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전남 여수 경도 지역의 부동산 투자이민제 시행 기간을 2026년 4월 30일까지 3년 연장했다. 5월 19일 종료된 부산 해운대·동부산 지역의 부동산 투자이민제도 3년 연장된다.
그러면서 투자 금액 기준을 5억원 이상에서 10억원 이상으로 상향하고, 명칭도 ‘관광·휴양시설 투자이민제도’로 변경해 고시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공익사업 투자이민제도 개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투자이민으로 영주권을 취득한 후 투자금을 바로 회수하는 사례 등 그간 지적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투자이민 영주자격의 요건을 강화할 예정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영주자격은 지방선거 투표권까지 연결되는데 일정기간 자본금 투자만으로 쉽게 영주자격을 받게 될 우려가 있어 개선방안을 검토해왔다”며 “해외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거주요건 강화 등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제도를 개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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