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 봉쇄”…하마스 “폭격 시 인질 처형”  2023.10.10.

 

이스라엘 텔아비브 현장 정철환 특파원 르포

  조선일보  텔아비브(이스라엘)=정철환 특파원

입력 2023.10.10. 03:00업데이트 2023.10.10. 07:16
 
 
8일(현지 시각) 튀르키예 이스탄불 공항에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인들이 대체 항공편에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전날부터 로켓 공습을 가하면서 해외로부터 이스라엘로 향하는 항공편이 대거 취소됐지만, 예비군을 포함한 이스라엘 국민은 귀국길에 올라 이틀 동안 공항에서 비행기가 오기를 기다렸다./정철환 특파원

“분노와 울분을 억지로 참아 삼키고 있다. 폭풍우 직전의 고요함이라고 생각해 달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와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월요일 아침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9일 새벽(현지 시각) 도착한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의 한 보안 요원은 “어제까지 계속된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앞서 7일 새벽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미사일 5000여 발로 폭격했다. 이후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을 뚫고 민가로 진입해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하고 인질을 납치했다. 50년 만에 단행한 아랍·이슬람 세력의 이스라엘 영토 공격 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길고 힘겨운 전쟁”을 선언했다.

그래픽=김현국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함께 터키항공 임시 편을 타고 텔아비브 공항에 내린 사업가 예호나탄(45)씨는 “남부 스데로트 인근에 살던 사촌이 하마스 테러리스트와 총격전을 치르다 사망했고 친구 가족은 납치당했다”며 “이제 남은 것은 보복뿐”이라고 했다. 그는 담담한 표정을 짓다가도 “100명이 넘는 이가 납치를 당했고, 수백 명이 가축처럼 학살당했다”고 말할 때는 오른손을 꽉 쥐고 떨었다. 하마스 공습 이후 항공편이 결항하면서 이틀 이상 세계 각지 공항에 발이 묶였던 이스라엘인들은 공항이 재가동되자마자 비행기에 올라 텔아비브로 향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하마스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며 이스라엘로 향한 예비군이다.

이틀 가까이 운항하지 않던 텔아비브행 비행기가 다시 뜬다는 안내가 이스탄불 공항에 나오자 기다리던 1000여 승객이 일제히 카운터로 몰려들었다. 가까스로 탑승권을 손에 쥔 이들은 환호하고 손뼉 치며 기뻐했다. 전쟁 중인 조국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프랑스 파리와 텔아비브를 오가며 무역업을 한다는 야이르(45)씨는 “이스라엘엔 아내와 두 딸, 연로한 부모님이 있다. 내가 아니면 누가 그들을 지키겠느냐”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선 하마스의 대규모 포격과 무장 전투원 침입으로 700명 이상이 숨지고 150여 명이 납치됐다. 부상자는 2400여 명에 이른다.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 접경지역의 탱크 앞에서 8일 이스라엘 군인이 선 채로 기도하는 모습.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가 7일 이스라엘을 공습한 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이스라엘을 폭격해 확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하마스는 전날 벤구리온 공항과 그 주변을 집중 포격했다. 9일 오전엔 폭격이 재개될 경우 몸을 피할 대피소 안내판이 곳곳에 붙은 상태로 조용했다. 하지만 이 불안한 고요함 이면에선 안식일 새벽 불의의 습격으로 수많은 생명을 잃은 이스라엘인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공항에서 텔아비브로 향하는 새벽 기차 안에는 청년이 많았다. 이들 상당수가 ‘조국의 부름’에 응해 해외에서 귀국한 예비군이다.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컴퓨터 공학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알렉스(29)씨는 “(공격이 벌어진) 토요일 아침 ‘일요일 오후까지 입소하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처음에는 다음 주 예정인 예비군 훈련이 앞당겨졌나 싶었는데 TV를 켜보니 하마스의 대공습이 벌어졌다”고 했다. 이스라엘 남성들은 대체로 3년 의무 복무 후 약 20년에 걸친 예비군 복무를 한다. 해외에 있는 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이스라엘군은 예비군 45만명 중 약 30만명을 소집했다고 알려졌다.

청년들은 대부분 가자지구에 은신한 하마스에 대한 대규모 보복 공격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스라엘군은 현재 가자지구에 전면 진입해 인질들을 구출하고, 무장 세력을 완전 소탕하는 것을 목표로 여러 사단 병력을 가자지구 주변에 집결 중이다. 알렉스씨는 “내일 아침 바로 하마스와 격돌할 가자지구 인근으로 배치될 것 같다”고 했다. 두렵지 않은지 물으니 “우리는 건국 후 매일매일 생존을 위한 투쟁 역사를 살았다”며 “그저 담담할 뿐”이라고 했다.

9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내 미호엘스 광장에서 가자지구 무장 정파 하마스의 공습으로 숨진 사망자와 부상자를 추모하고 이스라엘 군인들을 지지하는 의미로 시민들이 내건 깃발이 걸려있다. 깃발은 이스라엘 국기에 붉은 색 하트를 그렸다. /텔아비브=정철환 특파원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설치한 각종 부비트랩(폭발물 함정)과 건물 사이를 거미줄처럼 잇는 땅굴로 악명이 높다. 또 병원과 학교, 탁아소 등에 기관총과 로켓포·탄약 등을 숨겨 놓고 이스라엘 군인들이 수색하려고 진입하면 여자와 어린이를 방패처럼 앞장세운다고도 알려졌다. 아론(28)씨는 “9년 전(2014년) 가자지구에 작전을 하러 들어갔는데 하마스 대원들이 놀라서 우는 아이들을 껴안고 총질을 해대 너무나 놀랐다”며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맹목적 증오에 세뇌되어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포기한 자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자지구를 ‘지상전을 벌이기 끔찍한(nasty) 곳’이라고 표현했다.

 

이스라엘 방송 채널12에는 가족을 잃거나 납치당한 여성들이 연이어 나와 비통함을 호소했다. 한 여성은 TV 카메라 앞에서 울먹이며 “내 딸과 손자가 집 안까지 들이닥친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됐다”며 “비록 살아 있더라도 비인간적 대우를 당하며 인간 방패로 쓰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아옐레트라는 대학생은 “남부 키부츠의 축제에 갔던 친구와 급우 10여 명 대부분이 죽거나 실종됐다”며 오열했다.

지난 7일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에서 경찰관(가운데)이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AP 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이날 1면 제목으로 “공격, 복수, 전쟁 그다음은 무엇인가”라며 이스라엘 내 격앙된 분위기와 이에 따른 확전 가능성을 우려했다. 토요일 새벽 로켓포 5000여 발이 쏟아지는 가운데 방공 시스템인 ‘아이언돔’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스라엘 시민들은 그러나 “너무 많은 로켓포가 날아와 어쩔 수 없었다”며 “그래도 아이언돔 덕분에 텔아비브 등 대도시 피해는 거의 없었다”고 여전한 신뢰를 드러냈다. 9일 오후 1시경에도 텔아비브 상공에서는 ‘쾅’ 하는 폭발음이 다섯 차례 이상 울려 퍼져 길 가던 행인들이 놀라 몸을 움츠렸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로켓 공격이 (아이언돔에) 모두 저지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방공 미사일인 '아이언돔'이 9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가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해 떨어뜨리는 모습. /로이터 뉴스1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75년에 걸친 ‘피의 투쟁’을 벌여왔다. 네 차례에 걸친 전쟁과 10여 차례 크고 작은 분쟁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남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 자치 정부를 구성하고 지냈다. 거듭되는 유혈 분쟁 속에서 이스라엘은 2005년 중동 평화 일정에 따라 가자와 서안지구에서 완전히 물러나기로 했고,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2007년 무장 강경 투쟁을 주장하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손에 넣고 이곳을 대(對)이스라엘 투쟁 요새로 만들어 이스라엘에 지속적 테러 공격을 하면서 양측은 폭력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그래픽=양진경

텔아비브 시민들은 “이번 공격은 지금까지 있었던 크고 작은 분쟁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대규모 확전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진입하면 하마스가 이란에서 지원받은 화학·방사능 무기를 이용해 후속 테러를 저지를 수 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하마스 측이 이날 새벽 “‘알아크사 홍수(이번 공습의 작전명)’는 계속 진행 중”이라며 공격을 중단할 의사가 없음을 밝힌 가운데, 이란 정부는 주유엔 대표부를 통해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대응에 관련되어 있지 않다”며 이번 공격의 ‘이란 배후설’을 부인했다.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장기화로 몇몇 국가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운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도 서방 진영의 개입이 불가피해졌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마스 공격으로 영국·프랑스·우크라이나·태국·네팔 국민들이 사망·실종됐다. 미국인 사망·실종자는 10여 명이다. 이날 아침 워싱턴에서 도착한 말라치(48)씨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 북쪽) 레바논의 무장 세력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공격을 계속 저울질하는 것 같다”며 “만약 헤즈볼라가 협공해 오면 우리는 양면에서 싸우는 불리한 상황에 빠지고 이 경우 모든 군사적 역량을 동원한 총력전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