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전공의 의료현장 복귀 .. 환자들 "치료 연기는 사형 선고" (이슈라이브)

 

‘중증’일 때만 대형병원 찾아

입력 2024.03.01. 03:44업데이트 2024.03.01. 09:54
 
전공의 집단이탈 열흘째, 정부가 제안한 복귀 시한 마지막 날인 29일 대구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연합뉴스

29일 오전 10시쯤 말기 암 투병 중인 남성 A(83)씨가 서울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 그의 딸은 “아버지가 ‘복수(腹水)가 가득 차서 배가 너무 아프다’고 해서 왔다”고 했다. 이날 오전 6시 40분쯤엔 홍모(37)씨가 22개월 아이를 안고 이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는 “아이가 밤새 구토를 했다”고 했다.

응급실을 지키던 전공의들이 지난 20일 근무지를 집단 이탈한 뒤 대형 병원 응급실을 찾는 경증 환자는 줄어들고 중환자가 늘고 있다. 일선 응급실 교수와 전임의들은 “전공의 파업으로 힘들지만, 응급실이 응급실다워지고 있다”고 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전공의 집단 이탈 후 환자 수가 40% 정도 감소했고, 경증 환자도 줄었다”며 “환자들이 지금은 큰 병원 응급실에 가도 의사가 없어 빨리 검사·치료를 받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부산 대형 병원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에 중환자들이 주로 오고 있고 전체 외래 환자 수도 40~50% 줄었다”며 “(전공의 파업은) 의도치 않은 상황이지만 이게 중환자 치료를 전담하는 진짜 대형 병원과 응급실의 모습”이라고 했다. 강원도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공의 집단 이탈 후 중증 환자가 상급(대형) 병원으로 가고, 경증 환자는 그보다 작은 규모의 병원으로 가는 게 느껴진다”며 “(경증 환자는) 대형 병원 응급실에 가도 의사가 없다고 하는 뉴스를 보고 스스로 자제하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의 대형 병원 간호사도 “주취자나 단순 두통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29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정부가 정한 복귀 시한이었던 이날 수련 병원 100곳에 돌아온 전공의는 294명(오전 기준)에 그쳤다. /오종찬 기자

서울 강남구에 사는 소모(40)씨는 지난 21일 밤 감기 증세가 심해졌다. 목 등이 부어 숨 쉬기가 불편했다. 야간에 이런 일이 생기면 주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가곤 했다. 이번엔 심야에 문을 여는 내과에 갔다. 그는 “응급실에 가면 치료는 못 받고 대기만 할 것 같아 밤 12시까지 하는 내과를 찾아가 주사를 맞고 약 처방도 받았다”며 “지금은 큰 병원 응급실에 당장 치료를 안 받으면 안 되는 위급 중환자들만 가는 게 맞는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응급실 의사들은 “이번 사태가 지나면 다시 응급실은 복통·두통·두드러기 환자들로 미어터지는 ‘24시간 편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응급실 방문 환자(221만8942명) 중 40%(89만7570명)가 경증 환자였다. 중증 환자(23만6581명)의 3.8배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막기 위해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외국 주요국처럼 일명 ‘걸어 들어오는 환자’(경증 환자)는 중환자를 맡는 대형 병원의 응급실 이용을 제한하는 법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의 응급실은 1·2·3차 응급센터로 나뉘어 있다. 경증 환자는 3차 응급센터는 이용할 수 없다. 프랑스도 응급실을 중환자를 담당하는 대형 병원 응급실(SAU), 특정 장기를 다루는 전문병원 응급실(POSU), 경미한 환자 담당 병원 응급실(UPA)로 구분해서 운영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응급실은 경증 환자라고 돌려보냈다간 의사가 멱살을 잡히고 ‘진료 거부’로 고소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경남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시행 규칙 등을 조금만 손봐도 경증 환자 쇄도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며 “정부가 이들의 원성을 사기 싫어 문제를 수십 년간 방치해왔다”고 했다. 서울 대형 병원의 응급실 의사도 “응급실에서 멱살을 잡고 소란을 피우는 건 비응급 환자들이다. 중증 환자는 소리치고 폭력을 휘두를 힘도 정신도 없다”며 “정부가 경증 환자만 막아줘도 의사가 중환자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응급실 이용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우리는 경증 환자가 큰 병원 응급실을 이용해도 응급 의료 관리료 5만~7만원 외엔 별도로 부담하는 돈이 없다. 이마저도 실손보험으로 환급을 받는다. 응급실 의사들은 “응급실을 찾은 경증 환자에 대해선 본인 부담금을 더 높이고, 실손보험 혜택도 적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중환자는 건보 재정과 실손보험으로 두텁게 보호하되,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비는 훨씬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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